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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일단 빗자루질부터 했다. 쓰레기들을 치우고 난 뒤 바닥에 앉아 초를 먹이기 시작했다.
초를 먹여 걸레질을 하면서 바닥을 두들겨 밑에 뭔가 있는지 살폈다.
퉁! 퉁!
툭툭거리던 다른 곳과는 달리 울리는 소리가 난다.
책상 밑에 있는 바닥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끊어진 마루 한쪽이 닳아 있는 것이 보인다.
‘여기구나.’
바닥에 비밀 금고를 만들어놓다니, 재미있다. 옷에 먼지 같은 것이 묻어 있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놈인데 말이다.
‘어딘가 이걸 여는 장치가 있을 텐데…….’
뭔가가 돌출되어 있다면 금방 눈에 띄기에 바닥에는 금고를 여는 장치가 없을 것이 분명했다. 마루에 등을 대고 책상을 살폈다.
‘저거로군.’
책상 다리 한쪽이 닳아 있는 것이 보인다. 미세하기는 하지만 분명히 많이 만져서 닳은 자국이다.
꾹!
자리에서 일어나 닳은 부분을 눌렀다.
그르르륵!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마룻바닥이 아래로 밀려나며 비밀 공간이 보인다.
“금고라…….”
다이얼로 여는 금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것쯤이야.”
드르르르.
좌부터 시작해 번호를 맞춘다. 천천히 돌아가는 소리에 따라 걸쇠가 맞춰지는 것이 느껴진다.
좌로 세 번 돌려서 맞추고, 우로 두 번 돌려서 번호를 맞춘다. 마지막으로 다시 좌로 한 번 돌려서…….
찰칵!
금고가 열렸다.
“으음.”
금고 문을 들어서 열어보니 여러 가지가 들어 있다. 한 뭉텅이의 달러와 주머니들이다. 주머니를 들어서 열어보니 다이아몬드가 가득하다.
“십 년 동안 많이도 모아뒀군. 그런데 이건 뭐지?”
옆에 있는 작은 수첩을 꺼내 들춰보았다. 페이지마다 여러 가지 숫자들이 조합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스승님께 배웠던 것들이 분명하다.
“비밀 계좌들이군.”
다이아몬드를 처분해 자금을 숨긴 비밀 계좌들이다.
주머니 안에 있는 것들이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양의 다이아몬드들이 발견되는 것 같다.
“이제 닫아…….”
금고를 닫으려는데 조금 이상한 것이 느껴졌다. 생각보다 금고 깊이가 깊지가 않다. 이상한 것 같아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을 전부 꺼내 마룻바닥에 올려놓았다.
“역시!”
금고 뒷면 아래쪽에 작은 홈이 보인다. 통짜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있을 수 없는 홈이다. 손가락을 걸어서 들어 올렸다. 예상대로 금고 벽이 아니었다.
“금고 뒤에 또 금고가 있었군.”
열두 개의 단추가 달린 금고가 나타났다. 번호로 작동하는 것 같다.
“어디 보자.”
정신을 집중하고 눈에 불을 켰다.
‘역시 보이는군.’
지문이 묻어 있는 번호들이 보인다.
0, 2, 4, 7. 번호가 모두 네 개다. 짐작이 가는 것이 있기에 번호를 차례대로 눌렀다.
띠디디디!
번호가 맞지 않는다. 소장 놈의 생일에 맞춰서 번호를 눌렀는데 아니었다.
‘그러면…….’
7! 2! 4! 0!
띠리릭!
철컥!
‘4월 27일인 생일을 거꾸로 해서 비밀번호를 만들었군.’
지문이 묻어 있는 번호들을 찾아냈을 때 생일을 이용해 번호를 조합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소장 놈은 생일이 되면 마치 임금처럼 특식을 내리곤 했다. 특식이라고 해봐야 검은 빵 한 덩어리를 더 주는 것이지만, 사람들에게는 아주 요긴했다.
손잡이를 잡고 금고 문을 열었다.
‘이게 뭐지?’
금고 안에는 녹색이 감도는 광석들이 가득했다. 마치 수정처럼 육각형으로 각이 진 광석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으음, 이건 보석이 아닌 것 같은데?’
녹색이기는 하지만 배운 대로라면 에메랄드라고 불리는 녹주석이 아니다. 녹색이 감돌 뿐, 불투명한 광석이다.
‘투명도가 아주 많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그다지 값어치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 물건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중으로 된 비밀 금고에 보관을 한다니… 어디…….’
뭔가 있을 것 같아서 광석 중 손가락 한 마디 크기만 한 것을 하나 챙겼다.
‘이제 닫아놓자.’
이중 금고를 닫은 후에 물건들을 제자리에 넣어놓고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금고 문을 닫았다.
책상다리 옆에 닳은 자국을 다시 누르자 작은 소리와 함께 마룻바닥이 다시 올라왔다.
걸레를 찢어 녹색 광석을 말아 주머니에 넣었다. 흔적이 남을 것 같아 초를 마룻바닥에 다시 먹이며 아주 반들반들하게 되도록 걸레질을 했다.
청소를 끝내고 집무실을 나왔다. 청소 도구함에 빗자루를 챙겨 넣었다.
끼익!
“어마!!”
누군가 침실로 가는 문을 열고 나오다가 나를 보더니 흠칫 놀란다.
‘개새끼!’
이제 겨우 내 또래나 됐을 여자아이가 가슴에 뭔가를 품고 있다. 아마도 먹을 것이나 약일 것이다.
“놀라지 않아도 돼. 난 아무것도 보지 못했으니까.”
“고, 고마워.”
“얼른 나가봐. 경비병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 그래.”
여자아이가 주춤거리며 문 쪽으로 다가간다. 어기적거리는 모습을 보니 밤새 소장 새끼에게 호되게 당한 모양이다.
‘언젠가 반드시 잘라주마.’
하도 많이 보았던 장면이라 그리 놀랍지는 않다. 원래 그런 놈이니까 말이다.
수용소에서 생활하는 동안 계속해서 사람들이 보충이 됐다. 소장 놈은 새로운 사람들이 보충되면 얼굴이 예쁘거나 어린 여자는 반드시 건드렸다.
반항을 하면 경비병들을 시켜 몽둥이질을 했다. 악착같이 반항하면 본보기로 패 죽이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욕구를 기분에 맞춰 잘 들어주면 수용소에서 천금이나 다름없는 약이나 먹을 것을 주어 여자들을 농락했다.
그렇게 자신의 위치를 아주 잘 이용해 사욕을 채우는 놈이다. 놈에게 언젠가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줄 생각이다.
‘나가보자.’
청소를 마쳤으니 이제 식당으로 갈 차례다. 소장 놈과 경비병들이 식사를 하는 식당이다.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 중 하나가 요리다. 4년 전부터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돕다가 작년부터는 나도 가끔씩 요리를 한다. 소장 놈과 경비병들이 먹을 요리였다.
밖으로 나오자 경비병 하나가 기다리고 있다.
관사와 식당이 수용소 외곽에 위치하다 보니 탈출을 염려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식당 뒷문으로 가서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시작했다. 요리를 책임지고 있는 분은 서울 무슨 호텔인가에서 총주방장을 했다는 아저씨다.
일단 옆에서 재료들을 손질했다. 수용소 사람들에게 배급되는 급식과 다르게 아주 싱싱한 놈들이다.
재료를 다듬고 주방장 아저씨에게 건넸다.
치이익!
요리가 시작된 후에 나도 밖에서 준비를 했다. 만들 것이 있어서다. 바로 수용소 사람들에게 배급될 점심이다.
처음에는 일을 하지 않으면 배식이 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채광의 성과가 좋으면 이렇게 휴일에도 급식을 해주었다.
“전 급식 준비를 할게요.”
“그래라.”
요리하는 주방장 아저씨에게 말을 한 후 밖으로 나갔다.
구내식당 옆에 수용자들의 급식을 만드는 주방이 따로 있다.
창고 같은 커다란 주방으로 들어가니 사람 키만 한 커다란 솥 밑에서 불이 피어오르고 있다.
잡일을 하는 아저씨들이 이미 물을 끓이고 있었다.
“차훈이 왔니?”
“준비가 벌써 끝난 모양이네요.”
“그래. 이제 네가 만들기만 하면 된다.”
오늘 만드는 것은 빵이다. 들어가는 재료가 뭔지 안다면 절대 먹지 않을 그런 것이다.
이미 몇 번 끓여 진국을 다 빼낸 돼지나 소의 뼈를 잘게 부숴서 만든 골분이 끓는 물에 먼저 들어간다. 골분이 풀어지면 다음에는 옥수수 가루가 풀린 물이 들어간다.
어느 정도 익을 무렵이면 빵을 만드는 주재료가 들어간다. 주재료는 일주일에 한 번 차량을 통해 들어오는 커다란 포대에 들어 있다. 검은색 가루인데, 도대체 성분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재료다.
검은색 가루를 집어넣으면 무척이나 뻑뻑해진다. 이때부터 힘든 작업이 시작된다. 불을 줄이고 한 시간 동안 쇠로 된 삽 같은 주걱으로 내내 저어줘야 한다. 나는 배합만 하면 되지만, 아저씨들에게는 무척이나 힘든 중노동이다.
더 이상 젓기 힘들 정도로 저은 다음, 삽 같은 주걱으로 퍼서 좌우로 각각 열 개의 칸으로 나누어진 틀에 담는다.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뻑뻑한 죽은 아주 딱딱해진다. 바로 수용소 사람들이 먹는 빵이 되는 것이다.
‘저 검은 가루가 뭔지 알아야 하는데 말이야.’
아주 적은 양을 넣는데도 큰 솥 하나를 감당할 정도로 부풀어 오른다. 상당한 양의 물이 들어가는데도 빠르게 굳어서 돌처럼 딱딱해진다.
무슨 성분인지 알아보려 노력을 해봤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수용소에는 누구도 검은 가루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에게 해가 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아저씨들이 수십 개의 틀에서 빵을 꺼내 막사별 양동이에 담는다. 점심 준비가 끝났으니 주방으로 가서 마무리를 도와주고 막사로 돌아가야 한다.
주방으로 가보니 나를 기다린 듯하다.
“무슨 일 있어요?”
“그래. 내일은 조금 일찍 나오도록 해라.”
“누가 오나요?”
“감찰을 나온다고 하니 요리할 것이 많을 것 같다.”
“벌써 그렇게 됐군요. 일찍 오도록 하겠습니다.”
1년에 한 번씩 실시되는 감찰이 나오면 주방이 바빠진다. 소장이 감찰을 나온 자들에 대해 무척이나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특히나 음식 대접에 많은 정성을 기울인다. 좋은 접대가 되는 모양이다.
특급 호텔 주방장이 만든 요리를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주방장의 말을 듣고 주방을 나서 막사로 돌아갔다. 쉬는 날이지만 모두 막사 안에 있어서 답답할 텐데도 밖으로 나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괜히 잘못 보이기라도 하면 경비병들에게 치도곤을 당하니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급식조가 나가 빵을 받아 왔다.
점심 식사 시간이 끝난 후, 얼마 있지 않아 스승님께서 조용히 나를 부르신다.
“오늘 일은 다 끝난 것이냐? 전수 받는 것도?”
“예, 스승님.”
“고생했다. 그들이 비록 힘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이전에는 다들 한가락 하던 이들이니, 그들에게 전수 받은 것을 전부 네 것으로 만들도록 해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 탈출하는 겁니까?”
“아직은 아니다. 때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리 머지않았으니 네가 가진 것들을 이해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예, 스승님.”
누구보다 돌아가는 사정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이시다. 때가 되면 알려주실 테니 내가 할 것만 하면 된다.
스승님 옆에 앉아 오전에 외웠던 구결들을 떠올리며 해석을 해 나갔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직접적인 수련은 하지 못하지만, 운용하는 방법은 이렇게라도 모두 깨우쳐야 한다.
이곳을 벗어나는 순간, 최대한 빨리 사용할 수 있어야 하니 말이다.
아저씨들의 가르침을 되새기다 문득 주변을 보니 어둑어둑하다. 산속이라 밤이 빨리 찾아오는 탓이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이제부터 하는 수련이 진짜지.’
정신을 집중해 생명체를 가려내는 연습을 할 시간이다. 탈출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