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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광산에서의 노역이 끝나고 나면 다시 수용소로 돌아왔다. 세뇌에 가까운 교육을 한 시간 정도 받은 후 저녁으로 검은 죽이 주어졌다. 저녁을 먹은 이들은 다시금 막사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다.
다들 고분고분하게 말을 들어서 그런지 노역이 시작된 이후에는 죽어 나가는 이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워낙 힘든 일과와 부실한 식사 때문인지 다들 야위어갔다.
상훈의 며느리인 강미소도 마찬가지였다.
배는 계속 불러왔지만 다른 곳들은 조금씩 말라가기 시작했다. 뺨이 쏙 들어간 것이, 마치 병자 같은 모습이었다. 곧 쓰러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모습이지만, 강미소는 잘 버텨 나갔다.
사실 마른 모습과는 달리 그녀는 전보다 더 건강해진 편이었다. 시아버지가 준 나무 구슬을 몸에 지니고 호흡을 하고 있으면 피로도 금방 가시고 힘이 생겼던 것이다.
그럼에도 상훈 일가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수용소에서 출산한 이들이 몇 명 있었는데, 아무런 배려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산모들은 노역을 나가다가 아이를 낳기도 했고, 막장에서 일을 하다가도 아이를 낳아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아주 열악했다. 마치 짐승이 자연에서 새끼를 낳듯 수용소는 임산부들을 방치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다.
산모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어서인지, 아니면 굶주린 탓인지 모르지만, 태어난 아이들은 이미 죽은 채로 새로운 세상을 맞이해야 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슬픈 일이지만, 죽은 아이의 부모들은 한편으로는 안도하기도 했다. 지옥 같은 곳에서 고생을 하느니 차라리 하늘나라에 있는 것이 낫다고 여긴 것이다.
누구나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알 만큼 강미소의 배는 나날이 불어났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상훈은 강미소에게 내력을 조금씩 주입해 건강을 유지하도록 했다.
배급 받는 음식이 부족해 쥐나 곤충을 잡아서 강미소에게 먹이기도 했다. 부족한 영양소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여자라면 질겁할 일이었지만, 강미소는 묵묵히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참아냈다.
* * *
‘산달이 다 되어가는 모양이다.’
형체가 자리 잡은 후 주먹만 했던 몸이 어느새 제법 커졌다. 이제 세상으로 나갈 때가 된 것이다.
할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던 구슬이 어머니에게로 넘어온 이후 구슬과 이어진 감각을 좀 더 확실하게 연결시킬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가느다란 끈이었다면, 지금은 굵은 동아줄이나 다름없다.
‘식사량이 절대적으로 열악한 상태에서 그마저 없었다면 큰일이 날 뻔했다.’
제대로 먹지 못해서 왜소했던 지난날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상당히 클 수 있을 것 같다.
제법 강한 능력을 지녔음에도 그리 크지 않은 몸집으로 인해 놀림의 대상이 됐는데, 이번에는 트라우마를 지울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어머니의 배 속에 있었지만 그동안 많은 것을 이루었다. 내부 기관들이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무렵부터는 조금이나마 내력을 쌓을 수 있었다. 그나마 태아라서 순수한 육체를 지니고 있기에 가능했지 그렇지 않았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해냈다.
내력을 쌓은 후부터 스피릿 파워를 기르는 것은 아주 쉬웠다. 이미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상태라 예전의 수준까지 회복하는 것은 한 달이면 충분했다.
‘이제 나름의 대비는 해놓았다. 첫 번째 변화가 시작되면 최대한 많이 받아들여야 한다.’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다가 어머니에게로 넘어온 기물은 이제 머지않아 첫 번째 탈태를 하게 된다.
내가 능력을 가지게 만들어준 변화다. 그 단계에서 얼마나 얻느냐가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배후에 있는 자들의 눈도 속여야 하는데, 봉인까지 가야 하는 건가?’
경도를 통해 어머니의 배 속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는 순간, 나는 놈들에게 노출된다. 더군다나 이곳은 놈들이 만들어놓은 곳이니 숨기려 해봐야 소용이 없는 상황이다.
‘나를 최대한 감추려면 봉인밖에는 방법이 없으니, 지금부터 일어날 일들을 예상해서 곳곳에 열쇠를 심어야 한다. 그렇지만 주변 상황으로 인해 열쇠가 작동하는 것은 막아야 해.’
세계가 불안정해진 탓에 시간의 빈틈을 이용해 시간을 거스를 수 있었다. 비록 내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뿐이지만, 나는 미래를 알고 있다. 내가 바꾸고자 하는 것 때문에 미래가 변할 수도 있으니 신중하게 열쇠를 심어야 한다.
‘계획대로 된다고 해도 큰 줄기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놈들은 자신들이 세워놓은 계획이 어그러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나를 기준으로 열쇠를 심어야 한다. 으음, 그렇다면…….’
봉인을 해제할 열쇠는 세 개를 심기로 했다. 영혼에 새겨지는 봉인이라 위험하겠지만, 예상대로 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니 미리 준비를 해놨다가 세상으로 나가기 전에 봉인을 걸자.’
아직까지는 더 살펴봐야 한다. 지금까지 관찰한 바로는 우리 가족에 대해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는 자들은 없었다.
변수가 있다면 세계가 변화하는 탓에 곳곳에 차원의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것뿐이다. 전에는 특별한 일이 없었지만, 나라는 변수가 있어 어찌 변화할지 모르니 지켜봐야 한다.
봉인을 걸 준비를 했다. 양수가 몸을 감싸고 있어 봉인을 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양수가 터지기 직전 봉인은 작동한다. 1차로 스피릿 파워를 봉인하고, 2차로 내력을 봉인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억을 봉인하게 된다.
스피릿 파워와 내력을 봉인한다 해도 성장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내력은 전신에 퍼져 쌓이게 되고, 스피릿 파워는 그 이면에서 성장을 하게 될 것이다.
온 정신을 집중해 봉인 준비를 마치고 나니 이제 세상에 나갈 때가 된 것 같았다.
* * *
1982. 8. 15. (일) 00:00.
개마고원의 깊은 산중.
쏴아아!
한여름의 소나기가 수용소를 적셨다.
자정이 넘어서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계속해서 굵어져 갔다.
비가 내리는 소리가 밤을 적시는 가운데, 수용소에 있는 막사 중 하나가 잠에서 깨 분주해졌다.
수용소의 생활이 시작된 지 3개월이 다가올 무렵, 강미소에게 산기가 찾아왔던 것이다.
강미소에게 산기가 찾아온 것을 먼저 알아차린 것은 상훈이었다.
“준호야, 준비해라.”
“예, 아버지.”
박준호는 아내를 위해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얇은 담요를 둘러쳐 산실을 만들었다.
아이를 받을 줄 아는 사람이 없어 시아버지인 상훈이 출산을 도와야만 했다. 아들을 직접 받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녀가 유별한 상황이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막사 안의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아이의 출산을 기다렸다.
절망밖에 없는 수용소지만, 아이의 탄생은 막사 안에 있는 사람에게도 경이로운 일이었다.
“힘을 내라, 아가!”
“으으윽.”
강미소는 비명 소리가 나지 않도록 이를 악물며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보통이라면 견딜 수 없는 통증에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겠지만, 내력이 생긴 터라 이를 악물고 참아낼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으으윽!”
“아아앙!”
맑은 울음소리와 함께 아이가 태어났다. 많이 먹지 못해서 그런지 막 세상에 태어난 사내아이는 아주 작아 보였다.
“수고했다.”
“으으, 고맙습니다, 아버님.”
아이를 무사히 낳을 수 있던 것은 모두가 시아버지의 도움 덕분이었다.
“이제 좀 쉬어라. 준호야, 넌 아가를 도와라.”
“예, 아버지.”
박준호는 조심스럽게 피를 닦아낸 후, 미리 준비해 둔 면포를 사용해 아내의 하체를 조심스럽게 감쌌다.
아들이 뒤처리를 하는 동안 상훈은 핏물과 양수로 범벅인 손자의 몸을 닦았다.
어느 정도 닦이자 탯줄을 머리카락으로 단단히 묶고는 남아 있는 것을 이빨로 잘랐다.
“하하하! 그놈, 실하구나.”
비록 지옥 같은 수용소 안이지만 건강하게 태어난 손자를 보니 마냥 좋았다. 상훈은 남아 있는 면포로 손자를 조심스럽게 감싼 후 며느리 옆에 뉘었다.
“아가, 이제부터 넌 엄마다. 차훈이를 잘 지켜야 한다.”
“예, 아버님.”
주르르륵!
아이가 태어났다는 기쁨도 잠시. 곧 지옥과 같은 생활을 견뎌야 한다는 생각에 강미소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걱정하지 마라, 아가. 이 시애비가 어떻게 해서든지 탈출할 방법을 마련할 테니 말이다.’
두 달 전부터 며느리가 내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주 빠른 성취였다.
숙소에 돌아오게 되면 나무 구슬을 아들에게도 이용하도록 했다. 어려서부터 심법을 꾸준히 수련하던 터라 상당한 내력을 쌓을 수 있었다.
게다가 나무 구슬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자신의 내력도 상당히 늘어났다. 일정 경지를 넘어서자 구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중이었다.
며느리와 아들도 곧 내력이 상승할 것이기에 탈출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상당한 능력을 가진 자들이 외곽을 맡고 있지만, 좀 더 노력을 한다면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 이곳이 스팟이 분명한 이상,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으면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다.’
상훈은 과거 사형제로부터 스팟이라 불리는 특별한 장소에 대하여 들은 적이 있었다.
겉보기와는 달리 수용소가 있는 곳은 자연지기가 모이는 스팟이 틀림없었다.
자신과 아들은 스팟을 이용해 내력을 쌓을 수 있기에 나무 구슬은 며느리가 가지고 있었다.
나무 구슬을 이용해 심법을 운용하다 보면 자연지기가 모여들기에 이제 갓 태어난 손자에게도 좋을 터였다.
“박 반장님, 내일부터 한 달 동안 산모를 숙소 당번으로 하는 것은 아무렇지 않지만, 놈들이 그걸 봐줄지 모르겠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옆에서 출산을 도와준 오종화가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다지 뭐라고 하지는 않을 거다. 놈들도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알 테니까 말이야. 더군다나 할당량을 채우는 것에도 차질이 없을 테고.”
“그렇기는 하지만…….”
숙소의 책임자나 마찬가지인 상훈의 대답에도 불안한 듯 오종화가 말끝을 흐렸다.
“다들 들으시오. 놈들이 묻지 않으면 그냥 대답하지 마시고, 혹시 우리 며늘아기에 대해 묻거든 나에게 미루시오. 그러면 아무런 피해도 가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생산량이 떨어지지 않도록 나와 아들이 더 일을 할 테니, 그것도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박상훈이 아니었다면 다른 막사 사람들에 비해 어렵게 생활을 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 정도는 이해해 주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막사 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이들은 모두 50명이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가족 단위로 수용되어 같이 생활하고 있었다.
한 달 전부터 각 막사마다 채광 할당량이 떨어졌는데, 채우지 못하면 한 끼를 굶어야 했다.
그런데 상훈 일가가 속한 막사는 유난히 여자와 어린아이, 그리고 노인의 비율이 다른 숙소보다 많았다.
할당량을 초과해 일하는 상훈과 준호가 없다면 굶주려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다들 우호적이었다.
“밤이 늦었소. 내일도 힘든 일과가 있으니 다들 잡시다.”
상훈의 말에 다들 담요를 덮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잠을 자둬야 내일도 견딜 수 있을 터였다.
“준호야, 너도 자도록 해라.”
“예, 아버지.”
상훈과 준호도 아이를 품에 안은 미소를 가운데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쉽지가 않구나.’
대를 이어갈 핏줄이 태어났지만, 기쁘기보다는 심란했다.
‘이 할아비가 어떻게 해서든지 너만은 이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나게 해줄 테니, 잘 견뎌야 한다.’
손자인 차훈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이곳에 있어야 했다. 지금 탈출을 시도했다가는 손자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평범한 세상이 아니라 지옥보다 더한 곳이다. 손자가 버텨주기만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광산에서의 노역이 끝나고 나면 다시 수용소로 돌아왔다. 세뇌에 가까운 교육을 한 시간 정도 받은 후 저녁으로 검은 죽이 주어졌다. 저녁을 먹은 이들은 다시금 막사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다.
다들 고분고분하게 말을 들어서 그런지 노역이 시작된 이후에는 죽어 나가는 이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워낙 힘든 일과와 부실한 식사 때문인지 다들 야위어갔다.
상훈의 며느리인 강미소도 마찬가지였다.
배는 계속 불러왔지만 다른 곳들은 조금씩 말라가기 시작했다. 뺨이 쏙 들어간 것이, 마치 병자 같은 모습이었다. 곧 쓰러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모습이지만, 강미소는 잘 버텨 나갔다.
사실 마른 모습과는 달리 그녀는 전보다 더 건강해진 편이었다. 시아버지가 준 나무 구슬을 몸에 지니고 호흡을 하고 있으면 피로도 금방 가시고 힘이 생겼던 것이다.
그럼에도 상훈 일가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수용소에서 출산한 이들이 몇 명 있었는데, 아무런 배려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산모들은 노역을 나가다가 아이를 낳기도 했고, 막장에서 일을 하다가도 아이를 낳아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아주 열악했다. 마치 짐승이 자연에서 새끼를 낳듯 수용소는 임산부들을 방치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다.
산모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어서인지, 아니면 굶주린 탓인지 모르지만, 태어난 아이들은 이미 죽은 채로 새로운 세상을 맞이해야 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슬픈 일이지만, 죽은 아이의 부모들은 한편으로는 안도하기도 했다. 지옥 같은 곳에서 고생을 하느니 차라리 하늘나라에 있는 것이 낫다고 여긴 것이다.
누구나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알 만큼 강미소의 배는 나날이 불어났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상훈은 강미소에게 내력을 조금씩 주입해 건강을 유지하도록 했다.
배급 받는 음식이 부족해 쥐나 곤충을 잡아서 강미소에게 먹이기도 했다. 부족한 영양소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여자라면 질겁할 일이었지만, 강미소는 묵묵히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참아냈다.
* * *
‘산달이 다 되어가는 모양이다.’
형체가 자리 잡은 후 주먹만 했던 몸이 어느새 제법 커졌다. 이제 세상으로 나갈 때가 된 것이다.
할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던 구슬이 어머니에게로 넘어온 이후 구슬과 이어진 감각을 좀 더 확실하게 연결시킬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가느다란 끈이었다면, 지금은 굵은 동아줄이나 다름없다.
‘식사량이 절대적으로 열악한 상태에서 그마저 없었다면 큰일이 날 뻔했다.’
제대로 먹지 못해서 왜소했던 지난날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상당히 클 수 있을 것 같다.
제법 강한 능력을 지녔음에도 그리 크지 않은 몸집으로 인해 놀림의 대상이 됐는데, 이번에는 트라우마를 지울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어머니의 배 속에 있었지만 그동안 많은 것을 이루었다. 내부 기관들이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무렵부터는 조금이나마 내력을 쌓을 수 있었다. 그나마 태아라서 순수한 육체를 지니고 있기에 가능했지 그렇지 않았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해냈다.
내력을 쌓은 후부터 스피릿 파워를 기르는 것은 아주 쉬웠다. 이미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상태라 예전의 수준까지 회복하는 것은 한 달이면 충분했다.
‘이제 나름의 대비는 해놓았다. 첫 번째 변화가 시작되면 최대한 많이 받아들여야 한다.’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다가 어머니에게로 넘어온 기물은 이제 머지않아 첫 번째 탈태를 하게 된다.
내가 능력을 가지게 만들어준 변화다. 그 단계에서 얼마나 얻느냐가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배후에 있는 자들의 눈도 속여야 하는데, 봉인까지 가야 하는 건가?’
경도를 통해 어머니의 배 속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는 순간, 나는 놈들에게 노출된다. 더군다나 이곳은 놈들이 만들어놓은 곳이니 숨기려 해봐야 소용이 없는 상황이다.
‘나를 최대한 감추려면 봉인밖에는 방법이 없으니, 지금부터 일어날 일들을 예상해서 곳곳에 열쇠를 심어야 한다. 그렇지만 주변 상황으로 인해 열쇠가 작동하는 것은 막아야 해.’
세계가 불안정해진 탓에 시간의 빈틈을 이용해 시간을 거스를 수 있었다. 비록 내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뿐이지만, 나는 미래를 알고 있다. 내가 바꾸고자 하는 것 때문에 미래가 변할 수도 있으니 신중하게 열쇠를 심어야 한다.
‘계획대로 된다고 해도 큰 줄기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놈들은 자신들이 세워놓은 계획이 어그러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나를 기준으로 열쇠를 심어야 한다. 으음, 그렇다면…….’
봉인을 해제할 열쇠는 세 개를 심기로 했다. 영혼에 새겨지는 봉인이라 위험하겠지만, 예상대로 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니 미리 준비를 해놨다가 세상으로 나가기 전에 봉인을 걸자.’
아직까지는 더 살펴봐야 한다. 지금까지 관찰한 바로는 우리 가족에 대해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는 자들은 없었다.
변수가 있다면 세계가 변화하는 탓에 곳곳에 차원의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것뿐이다. 전에는 특별한 일이 없었지만, 나라는 변수가 있어 어찌 변화할지 모르니 지켜봐야 한다.
봉인을 걸 준비를 했다. 양수가 몸을 감싸고 있어 봉인을 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양수가 터지기 직전 봉인은 작동한다. 1차로 스피릿 파워를 봉인하고, 2차로 내력을 봉인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억을 봉인하게 된다.
스피릿 파워와 내력을 봉인한다 해도 성장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내력은 전신에 퍼져 쌓이게 되고, 스피릿 파워는 그 이면에서 성장을 하게 될 것이다.
온 정신을 집중해 봉인 준비를 마치고 나니 이제 세상에 나갈 때가 된 것 같았다.
* * *
1982. 8. 15. (일) 00:00.
개마고원의 깊은 산중.
쏴아아!
한여름의 소나기가 수용소를 적셨다.
자정이 넘어서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계속해서 굵어져 갔다.
비가 내리는 소리가 밤을 적시는 가운데, 수용소에 있는 막사 중 하나가 잠에서 깨 분주해졌다.
수용소의 생활이 시작된 지 3개월이 다가올 무렵, 강미소에게 산기가 찾아왔던 것이다.
강미소에게 산기가 찾아온 것을 먼저 알아차린 것은 상훈이었다.
“준호야, 준비해라.”
“예, 아버지.”
박준호는 아내를 위해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얇은 담요를 둘러쳐 산실을 만들었다.
아이를 받을 줄 아는 사람이 없어 시아버지인 상훈이 출산을 도와야만 했다. 아들을 직접 받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녀가 유별한 상황이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막사 안의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아이의 출산을 기다렸다.
절망밖에 없는 수용소지만, 아이의 탄생은 막사 안에 있는 사람에게도 경이로운 일이었다.
“힘을 내라, 아가!”
“으으윽.”
강미소는 비명 소리가 나지 않도록 이를 악물며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보통이라면 견딜 수 없는 통증에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겠지만, 내력이 생긴 터라 이를 악물고 참아낼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으으윽!”
“아아앙!”
맑은 울음소리와 함께 아이가 태어났다. 많이 먹지 못해서 그런지 막 세상에 태어난 사내아이는 아주 작아 보였다.
“수고했다.”
“으으, 고맙습니다, 아버님.”
아이를 무사히 낳을 수 있던 것은 모두가 시아버지의 도움 덕분이었다.
“이제 좀 쉬어라. 준호야, 넌 아가를 도와라.”
“예, 아버지.”
박준호는 조심스럽게 피를 닦아낸 후, 미리 준비해 둔 면포를 사용해 아내의 하체를 조심스럽게 감쌌다.
아들이 뒤처리를 하는 동안 상훈은 핏물과 양수로 범벅인 손자의 몸을 닦았다.
어느 정도 닦이자 탯줄을 머리카락으로 단단히 묶고는 남아 있는 것을 이빨로 잘랐다.
“하하하! 그놈, 실하구나.”
비록 지옥 같은 수용소 안이지만 건강하게 태어난 손자를 보니 마냥 좋았다. 상훈은 남아 있는 면포로 손자를 조심스럽게 감싼 후 며느리 옆에 뉘었다.
“아가, 이제부터 넌 엄마다. 차훈이를 잘 지켜야 한다.”
“예, 아버님.”
주르르륵!
아이가 태어났다는 기쁨도 잠시. 곧 지옥과 같은 생활을 견뎌야 한다는 생각에 강미소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걱정하지 마라, 아가. 이 시애비가 어떻게 해서든지 탈출할 방법을 마련할 테니 말이다.’
두 달 전부터 며느리가 내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주 빠른 성취였다.
숙소에 돌아오게 되면 나무 구슬을 아들에게도 이용하도록 했다. 어려서부터 심법을 꾸준히 수련하던 터라 상당한 내력을 쌓을 수 있었다.
게다가 나무 구슬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자신의 내력도 상당히 늘어났다. 일정 경지를 넘어서자 구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중이었다.
며느리와 아들도 곧 내력이 상승할 것이기에 탈출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상당한 능력을 가진 자들이 외곽을 맡고 있지만, 좀 더 노력을 한다면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 이곳이 스팟이 분명한 이상,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으면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다.’
상훈은 과거 사형제로부터 스팟이라 불리는 특별한 장소에 대하여 들은 적이 있었다.
겉보기와는 달리 수용소가 있는 곳은 자연지기가 모이는 스팟이 틀림없었다.
자신과 아들은 스팟을 이용해 내력을 쌓을 수 있기에 나무 구슬은 며느리가 가지고 있었다.
나무 구슬을 이용해 심법을 운용하다 보면 자연지기가 모여들기에 이제 갓 태어난 손자에게도 좋을 터였다.
“박 반장님, 내일부터 한 달 동안 산모를 숙소 당번으로 하는 것은 아무렇지 않지만, 놈들이 그걸 봐줄지 모르겠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옆에서 출산을 도와준 오종화가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다지 뭐라고 하지는 않을 거다. 놈들도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알 테니까 말이야. 더군다나 할당량을 채우는 것에도 차질이 없을 테고.”
“그렇기는 하지만…….”
숙소의 책임자나 마찬가지인 상훈의 대답에도 불안한 듯 오종화가 말끝을 흐렸다.
“다들 들으시오. 놈들이 묻지 않으면 그냥 대답하지 마시고, 혹시 우리 며늘아기에 대해 묻거든 나에게 미루시오. 그러면 아무런 피해도 가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생산량이 떨어지지 않도록 나와 아들이 더 일을 할 테니, 그것도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박상훈이 아니었다면 다른 막사 사람들에 비해 어렵게 생활을 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 정도는 이해해 주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막사 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이들은 모두 50명이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가족 단위로 수용되어 같이 생활하고 있었다.
한 달 전부터 각 막사마다 채광 할당량이 떨어졌는데, 채우지 못하면 한 끼를 굶어야 했다.
그런데 상훈 일가가 속한 막사는 유난히 여자와 어린아이, 그리고 노인의 비율이 다른 숙소보다 많았다.
할당량을 초과해 일하는 상훈과 준호가 없다면 굶주려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다들 우호적이었다.
“밤이 늦었소. 내일도 힘든 일과가 있으니 다들 잡시다.”
상훈의 말에 다들 담요를 덮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잠을 자둬야 내일도 견딜 수 있을 터였다.
“준호야, 너도 자도록 해라.”
“예, 아버지.”
상훈과 준호도 아이를 품에 안은 미소를 가운데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쉽지가 않구나.’
대를 이어갈 핏줄이 태어났지만, 기쁘기보다는 심란했다.
‘이 할아비가 어떻게 해서든지 너만은 이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나게 해줄 테니, 잘 견뎌야 한다.’
손자인 차훈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이곳에 있어야 했다. 지금 탈출을 시도했다가는 손자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평범한 세상이 아니라 지옥보다 더한 곳이다. 손자가 버텨주기만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