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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역시나 이때부터 놈들의 손길이 주변에 있었군.’
수용소는 거대한 마법진이었다. 그것도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암흑의 마법진 말이다.
마법진은 사람들의 피를 통해 마력을 생산해 내고, 선택된 자들에게 주입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누구도 이것들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없었을 텐데 할아버지는 눈치를 채신 것을 보니, 상당한 경지셨구나.’
배급이 끝난 이후에도 많이 긴장하신 것을 보니 특별하게 만들어진 수용소라는 것을 할아버지가 알아차리신 것 같다. 아직은 느낌뿐이시겠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밤새 뒤척이시겠구나.’
새벽에 취침하러 들어간 막사에서 잠을 이룬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할아버지와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사, 살려주세요.”
“아아아악!”
공포에 질린 목소리와 비명 소리가 들린다.
이대로 있다가는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을 감행한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아아아악!”
“커억!”
지옥이 시작되었다. 비명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미치겠군.’
잔인하게도 단번에 죽이지 않고 두들겨 패서 죽이는 모양이었다.
‘아예 탈출이 불가능한 곳인데…….’
일부지만 수용소에 대한 자료를 본 적이 있었다. 삼중으로 막혀 있고, 반경 10킬로미터를 미친놈들이 빼곡하게 둘러싸고 있다. 수용소를 벗어난다고 해도 보통 사람이 피에 미친 능력자들의 시선을 벗어나 탈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밤새도록 맞아 죽어가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수용소를 울려 댔다. 예상대로 단 한 명도 탈출에 성공하지 못했다.
오들오들 떨며 밤을 지새운 사람들은 다음 날 아침에 막사를 나섰을 때, 참혹한 광경을 목격해야 했다. 상훈 일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우욱!”
“아가, 참아라. 이건 시작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견뎌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참혹한 광경을 보며 헛구역질을 하는 며느리에게 상훈이 한마디 했다.
“무조건 견뎌야 한다.”
“예, 아버님.”
수용소를 둘러싸고 있는 철조망 위로 잘 다져진 고깃덩어리들이 널려 있었다. 너덜너덜해진 고깃덩어리들은 간밤에 탈출을 시도했던 사람들이다. 두렵고 무서운 일이지만 참아야 한다는 시아버지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어서 가도록 하자. 사상 교육을 실시한다고 하니 절대 졸면 안 된다, 준호야. 아가, 너도 마찬가지다. 놈들이 어떤 트집을 잡을지 모르니 절대 졸아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명심할게요.”
상훈 일가족은 연병장으로 향했다. 상훈의 말대로 아침부터 사상 교육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북한식 사회주의인 주체사상에 대한 교육을 눈을 부릅뜨고 들어야 했다. 상훈의 말처럼 교육 시간에 졸다가 몽둥이질에 맞아 죽은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육이 진행되는 동안 식사는 지급되지 않았다. 생으로 굶어가면서 자정이 될 때까지 사상 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런 시간이 이틀이나 지속되었다.
굶주림에 지치고 피곤했던 터라 조는 이가 속출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수용소라고는 하지만 사람들을 수용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는 곳 같았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하는 사상 교육이 이틀간 지속되고, 사흘째 되는 날 저녁에 검은 죽이 지급되었다.
사람들은 죽은 눈빛을 한 채 걸레가 되어버린 시체들을 옆에 두고 아무렇지 않게 검은 죽을 먹었다.
입소한 지 나흘이 되는 날까지 2만 명이었던 사람들 중에 4분의 1이 죽어 나갔다. 5천 명 가까이가 몽둥이질에 맞아 죽어버린 것이었다.
이상한 것은 걸레처럼 변해 버린 사람들의 시신이 이틀이 지나면 감쪽같이 사라지고, 새로운 시신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는 것이었다.
그런 사실을 처음 깨달은 사람은 바로 박상훈이었다.
상훈이 그러한 것을 느낀 것은 군인들이 들고 있는 몽둥이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두들겨 맞던 사람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 몽둥이에서 희미하게 붉은빛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아침 일찍 마당으로 집합하라는 방송에 막사를 나오던 상훈은 다시 한 번 이상한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죽은 자들의 피로 흥건하게 젖어 까맣게 변해 버렸던 흙바닥이 아무런 흔적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몽둥이에 붉은빛이 어린 것도 그렇고, 핏자국이 전부 사라진 것도 그렇고, 이 수용소에는 무언가 비밀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위험한 곳이다.’
박상훈은 눈치가 빨랐다.
그는 수용소가 자신들을 교육시켜 북한 주민으로 만들려고 세워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라도 빨리 탈출해야 할 것 같은데…….’
마음이 답답했다. 손자를 가진 며느리 때문에 당장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었다.
― 모두 잘 듣도록 해라. 오늘부터 광산에서 작업을 할 것이다. 여기에 누구 하나도 예외는 없다. 지시에 잘 따르도록!
“젠장!”
“참아라.”
임산부인 아내도 광산 노역을 해야 한다는 확성기 소리에 화를 내는 아들을 향해 상훈이 말했다.
“화가 나도 참아라. 그래야 살 수 있다.”
분기가 가라앉지 않은 아들을 상훈이 다시 한 번 타일렀다. 박준호 또한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기에 분을 삼켜야 했다.
‘힘든 노역을 견디지 못할지도 모르니, 아가에게 그것을 주어야겠구나.’
상훈은 집안의 원수를 죽이고 찾아낸 나무 구슬을 떠올렸다. 자신에게 힘을 주고 있는 이 구슬이라면 며느리를 보호해 줄 것이 틀림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이 정도면 충분하니까.’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홀로 자라야 했던 상훈은 어려서부터 뒷골목을 전전했다. 타고난 싸움꾼이었던 상훈은 거의 적수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다가 독립투사인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마음을 바꿔 먹고 군에 입대했다. 상훈은 입대 후 부대에서 만난 장교로부터 여러 가지 무예를 배울 수 있었다.
한국전쟁이 터지기 직전에 자신을 가르친 장교를 따라 특수부대에 배속을 받았고, 전쟁을 하는 동안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적진을 넘나들며 작전을 했던 3년의 시간 동안 상훈은 장교로부터 하나의 심법을 배울 수 있었다. 내력을 기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심법이었다. 꾸준히 수련을 해서 어느 정도 내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뿐이었다. 어느 순간이 지나자 더 이상 내력이 늘지 않았다.
그런데 나무 구슬을 얻은 후 변화가 일어났다. 그동안 수련을 계속해도 발전이 없던 내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구슬을 얻기 전과 비교하면 거의 100배에 달하는 내력이 아랫배에 충만했다.
겉모습은 노인이지만 내부는 20대 청년을 능가하는 강인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훈이었다.
스승이나 다름없는 장교로부터 배운 심법과 나무 구슬이라면 며느리와 손자가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가, 전에 이 시애비가 너에게 가르쳐 준 호흡법을 기억하고 있느냐?”
“예, 아버님. 지금도 계속하고 있어요.”
손자를 가진 것을 알았을 때, 며느리에게 심법을 전수했다. 앞으로 태어날 손자를 위한 조치였다. 자신의 당부를 잊지 않고 꾸준히 하고 있던 모양이다.
“잘했구나. 이걸 가지고 있도록 해라.”
상훈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며 호주머니에서 나무 구슬을 꺼내 며느리의 손에 쥐어 주었다.
“이게 뭔가요?”
“주머니 속에 넣고 이 시애비가 가르쳐 준 호흡을 계속 하도록 해라. 그러면 너와 배 속에 있는 아이를 지킬 만한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미소는 상훈이 허튼짓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구슬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자신과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 고맙다. 무엇보다 그 구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절대 들키면 안 된다.”
“조심할게요.”
“아버지, 그런 게 뭐가 도움이 된다고 그러세요.”
“도움이 될 거다. 그러니 넌 모르는 척하고 있어라.”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생각했는지 한마디 하는 아들을 향해 상훈은 핀잔을 주었다.
― 배급이 시작될 테니 줄을 서라.
다시 한 번 방송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고, 상훈 일가도 줄을 서서 배식을 받아 아침을 먹었다.
아침도 저녁때와 마찬가지로 질퍽한 검은 죽이었다. 사람들은 묵묵히 자리에 앉아 손으로 죽을 먹기 시작했다.
상훈은 바닥에 앉아 죽을 먹으며 조심스럽게 흙을 헤집었다. 손가락 다섯 마디 정도를 헤집자 딱딱한 것이 드러났다.
‘으음.’
검붉은 색의 벽돌 같은 것을 확인한 상훈은 재빠르게 흙을 덮었다.
‘이 밑에 깔린 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평범한 것은 아니다. 흙바닥 위에 흥건하던 피들을 흡수하는 것을 보면…….’
보도블록처럼 흙 밑에 깔린 알 수 없는 물건이 피를 흡수한다는 것은 틀림없었다.
블록에 닿은 순간, 손가락 끝에 엷게 피의 흔적이 묻어났다. 게다가 헤집은 흙을 다시 덮으려 할 때 손가락에 묻은 피들이 블록에 빨려드는 것을 보면서 상훈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남기신 것이 정말일지도 모르겠구나.’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수첩의 내용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버지가 남긴 수첩은 남에게 보일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괴물과 마물들이 존재하며, 인간을 잡아먹는다고 쓰여 있으니 어디에 보여줄 수가 없었다.
수첩에는 다른 것도 쓰여 있었다. 인간을 초월한 이들이 있고, 그들이 마술과 주술 같은 것을 사용해 힘을 키운다는 내용이었다.
아버지가 남긴 수첩을 통해서 세상이 이상하게 변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실은 거의 믿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목격한 것들로 미루어 볼 때, 아버지가 남긴 수첩의 내용들이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이면에 살고 있는 존재들은 힘을 얻기 위해 특별한 의식을 치른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이곳이 그런 곳인 모양이다.’
모든 것이 아귀가 맞았다.
특별하게 만들어진 것 같은 몽둥이로 사람을 때려잡는 것도 그렇고, 흙 밑에 깔려 있는 이상한 블록을 보면 사람들을 이용한 의식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며느리에게 효과가 나타나면 곧바로 실행에 옮기자.’
자신에 의해 어릴 때부터 수련을 계속해 온 아들은 어느 정도 내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며느리만 내력을 가지게 된다면 아이를 가지고 있어도 탈출할 수 있을 것이기에 상훈은 위험을 무릅쓰기로 했다.
상훈은 아직 남아 있는 검은 죽을 손으로 싹싹 긁어 입에 넣었다. 아들과 며느리도 그 모습을 보며 남아 있는 죽을 모두 먹었다. 시간을 20분만 주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
― 그릇을 반납하고, 각 막사별로 동쪽에 보이는 문 앞으로 가서 줄을 선다.
방송을 듣고 식기를 반납한 사람들은 동쪽 출입문 앞에 줄을 섰다. 그러자 곧바로 문이 열리고, 줄지어 선 사람들은 경비병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출입문 바깥에는 온통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100미터 가량의 통로가 있었다. 그리고 통로 끝에는 광산으로 들어가는 커다란 철문이 보였다.
그르르릉!
육중한 굉음과 함께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광산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광산 안은 아주 넓었다. 축구를 할 수 있는 운동장 크기 정도의 공동이었다.
공동의 사방에는 비슷한 크기의 통로들이 여러 개 만들어져 있는데, 모두 갱도로 들어가는 입구들이었다.
사람들은 경비병들의 인솔로 갱도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갱도의 수는 모두 아홉 개로, 갱도 하나당 1,500명의 사람들이 들어갔다.
궤도가 설치되어 있는 갱도를 따라 30분을 걸어가서야 새로운 갱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막다른 곳에 뚫려 있는 갱도는 모두 다섯 개였고, 그곳에서 다시 사람들이 나뉘어졌다.
사람들은 갱도 안으로 더욱 깊숙하게 들어갔고, 다시 갈라진 갱도를 따라 인원이 나누어 진 채 이동했다.
마침내 갱도가 끝나자 궤도 차량이 나타났다. 그곳에서 조금 더 들어가서 이동을 멈췄을 때, 막장이 보였다.
“모두들 채광 장비를 챙겨라.”
상훈 일가를 포함한 20명의 사람들을 향해 경비병이 외쳤다. 사람들이 주섬주섬 곡괭이와 삽을 들었다.
“여기는 막장이다. 우리가 캐는 것은 바로 저것이다.”
경비병이 가리키는 곳에는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들이 있었다.
“너희들이 보고 있는 것은 백금이다. 후후후, 욕심을 내도 좋다. 살아남을 수 있다면 말이다.”
눈빛이 변한 사람들을 향해 경비병은 몽둥이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제부터 채광을 시작해라. 남자들은 곡괭이질을 하고, 여자와 아이들은 금광석들을 저기 보이는 망태로 나르면 된다.”
경비병의 지시에 남자들은 곡괭이를 집어 들었다. 제법 날카롭지만, 경비병을 향해 덤벼들 수는 없었다.
지난 시간 동안 무수한 사람들을 몽둥이로 패서 죽인 경비병들이었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사람들을 교묘히 피하며 단 한 방에 죽음을 선사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던 터라 감히 덤벼들 수 없었다.
무엇보다 경비병의 몸에서 풍기는 살기가 무서웠다.
곧바로 채광이 시작되었다.
퍽! 퍽!
곡괭이가 휘둘러지자 광석들이 떨어져 내렸다. 금맥은 상당히 굵었는데, 어쩌다가 떨어지는 콩알만 한 금을 보면 함유량이 상당히 높은 것 같았다.
떨어진 금광석을 아이들과 여자들이 망태에 담아 궤도 차량까지 날랐다.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경비병이 작동을 시키면 궤도 차량이 금광석을 운반했다.
광산에서의 강제 노역은 열두 시간 동안이나 계속됐다. 먹을 것이라고는 중간에 주어지는 감자 한 알과 물이 전부였다. 대부분 처음 해보는 노역으로 인해 지치고 배가 고팠지만, 불만을 토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역시나 이때부터 놈들의 손길이 주변에 있었군.’
수용소는 거대한 마법진이었다. 그것도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암흑의 마법진 말이다.
마법진은 사람들의 피를 통해 마력을 생산해 내고, 선택된 자들에게 주입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누구도 이것들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없었을 텐데 할아버지는 눈치를 채신 것을 보니, 상당한 경지셨구나.’
배급이 끝난 이후에도 많이 긴장하신 것을 보니 특별하게 만들어진 수용소라는 것을 할아버지가 알아차리신 것 같다. 아직은 느낌뿐이시겠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밤새 뒤척이시겠구나.’
새벽에 취침하러 들어간 막사에서 잠을 이룬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할아버지와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사, 살려주세요.”
“아아아악!”
공포에 질린 목소리와 비명 소리가 들린다.
이대로 있다가는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을 감행한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아아아악!”
“커억!”
지옥이 시작되었다. 비명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미치겠군.’
잔인하게도 단번에 죽이지 않고 두들겨 패서 죽이는 모양이었다.
‘아예 탈출이 불가능한 곳인데…….’
일부지만 수용소에 대한 자료를 본 적이 있었다. 삼중으로 막혀 있고, 반경 10킬로미터를 미친놈들이 빼곡하게 둘러싸고 있다. 수용소를 벗어난다고 해도 보통 사람이 피에 미친 능력자들의 시선을 벗어나 탈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밤새도록 맞아 죽어가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수용소를 울려 댔다. 예상대로 단 한 명도 탈출에 성공하지 못했다.
오들오들 떨며 밤을 지새운 사람들은 다음 날 아침에 막사를 나섰을 때, 참혹한 광경을 목격해야 했다. 상훈 일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우욱!”
“아가, 참아라. 이건 시작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견뎌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참혹한 광경을 보며 헛구역질을 하는 며느리에게 상훈이 한마디 했다.
“무조건 견뎌야 한다.”
“예, 아버님.”
수용소를 둘러싸고 있는 철조망 위로 잘 다져진 고깃덩어리들이 널려 있었다. 너덜너덜해진 고깃덩어리들은 간밤에 탈출을 시도했던 사람들이다. 두렵고 무서운 일이지만 참아야 한다는 시아버지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어서 가도록 하자. 사상 교육을 실시한다고 하니 절대 졸면 안 된다, 준호야. 아가, 너도 마찬가지다. 놈들이 어떤 트집을 잡을지 모르니 절대 졸아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명심할게요.”
상훈 일가족은 연병장으로 향했다. 상훈의 말대로 아침부터 사상 교육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북한식 사회주의인 주체사상에 대한 교육을 눈을 부릅뜨고 들어야 했다. 상훈의 말처럼 교육 시간에 졸다가 몽둥이질에 맞아 죽은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육이 진행되는 동안 식사는 지급되지 않았다. 생으로 굶어가면서 자정이 될 때까지 사상 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런 시간이 이틀이나 지속되었다.
굶주림에 지치고 피곤했던 터라 조는 이가 속출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수용소라고는 하지만 사람들을 수용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는 곳 같았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하는 사상 교육이 이틀간 지속되고, 사흘째 되는 날 저녁에 검은 죽이 지급되었다.
사람들은 죽은 눈빛을 한 채 걸레가 되어버린 시체들을 옆에 두고 아무렇지 않게 검은 죽을 먹었다.
입소한 지 나흘이 되는 날까지 2만 명이었던 사람들 중에 4분의 1이 죽어 나갔다. 5천 명 가까이가 몽둥이질에 맞아 죽어버린 것이었다.
이상한 것은 걸레처럼 변해 버린 사람들의 시신이 이틀이 지나면 감쪽같이 사라지고, 새로운 시신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는 것이었다.
그런 사실을 처음 깨달은 사람은 바로 박상훈이었다.
상훈이 그러한 것을 느낀 것은 군인들이 들고 있는 몽둥이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두들겨 맞던 사람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 몽둥이에서 희미하게 붉은빛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아침 일찍 마당으로 집합하라는 방송에 막사를 나오던 상훈은 다시 한 번 이상한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죽은 자들의 피로 흥건하게 젖어 까맣게 변해 버렸던 흙바닥이 아무런 흔적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몽둥이에 붉은빛이 어린 것도 그렇고, 핏자국이 전부 사라진 것도 그렇고, 이 수용소에는 무언가 비밀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위험한 곳이다.’
박상훈은 눈치가 빨랐다.
그는 수용소가 자신들을 교육시켜 북한 주민으로 만들려고 세워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라도 빨리 탈출해야 할 것 같은데…….’
마음이 답답했다. 손자를 가진 며느리 때문에 당장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었다.
― 모두 잘 듣도록 해라. 오늘부터 광산에서 작업을 할 것이다. 여기에 누구 하나도 예외는 없다. 지시에 잘 따르도록!
“젠장!”
“참아라.”
임산부인 아내도 광산 노역을 해야 한다는 확성기 소리에 화를 내는 아들을 향해 상훈이 말했다.
“화가 나도 참아라. 그래야 살 수 있다.”
분기가 가라앉지 않은 아들을 상훈이 다시 한 번 타일렀다. 박준호 또한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기에 분을 삼켜야 했다.
‘힘든 노역을 견디지 못할지도 모르니, 아가에게 그것을 주어야겠구나.’
상훈은 집안의 원수를 죽이고 찾아낸 나무 구슬을 떠올렸다. 자신에게 힘을 주고 있는 이 구슬이라면 며느리를 보호해 줄 것이 틀림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이 정도면 충분하니까.’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홀로 자라야 했던 상훈은 어려서부터 뒷골목을 전전했다. 타고난 싸움꾼이었던 상훈은 거의 적수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다가 독립투사인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마음을 바꿔 먹고 군에 입대했다. 상훈은 입대 후 부대에서 만난 장교로부터 여러 가지 무예를 배울 수 있었다.
한국전쟁이 터지기 직전에 자신을 가르친 장교를 따라 특수부대에 배속을 받았고, 전쟁을 하는 동안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적진을 넘나들며 작전을 했던 3년의 시간 동안 상훈은 장교로부터 하나의 심법을 배울 수 있었다. 내력을 기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심법이었다. 꾸준히 수련을 해서 어느 정도 내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뿐이었다. 어느 순간이 지나자 더 이상 내력이 늘지 않았다.
그런데 나무 구슬을 얻은 후 변화가 일어났다. 그동안 수련을 계속해도 발전이 없던 내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구슬을 얻기 전과 비교하면 거의 100배에 달하는 내력이 아랫배에 충만했다.
겉모습은 노인이지만 내부는 20대 청년을 능가하는 강인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훈이었다.
스승이나 다름없는 장교로부터 배운 심법과 나무 구슬이라면 며느리와 손자가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가, 전에 이 시애비가 너에게 가르쳐 준 호흡법을 기억하고 있느냐?”
“예, 아버님. 지금도 계속하고 있어요.”
손자를 가진 것을 알았을 때, 며느리에게 심법을 전수했다. 앞으로 태어날 손자를 위한 조치였다. 자신의 당부를 잊지 않고 꾸준히 하고 있던 모양이다.
“잘했구나. 이걸 가지고 있도록 해라.”
상훈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며 호주머니에서 나무 구슬을 꺼내 며느리의 손에 쥐어 주었다.
“이게 뭔가요?”
“주머니 속에 넣고 이 시애비가 가르쳐 준 호흡을 계속 하도록 해라. 그러면 너와 배 속에 있는 아이를 지킬 만한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미소는 상훈이 허튼짓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구슬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자신과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 고맙다. 무엇보다 그 구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절대 들키면 안 된다.”
“조심할게요.”
“아버지, 그런 게 뭐가 도움이 된다고 그러세요.”
“도움이 될 거다. 그러니 넌 모르는 척하고 있어라.”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생각했는지 한마디 하는 아들을 향해 상훈은 핀잔을 주었다.
― 배급이 시작될 테니 줄을 서라.
다시 한 번 방송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고, 상훈 일가도 줄을 서서 배식을 받아 아침을 먹었다.
아침도 저녁때와 마찬가지로 질퍽한 검은 죽이었다. 사람들은 묵묵히 자리에 앉아 손으로 죽을 먹기 시작했다.
상훈은 바닥에 앉아 죽을 먹으며 조심스럽게 흙을 헤집었다. 손가락 다섯 마디 정도를 헤집자 딱딱한 것이 드러났다.
‘으음.’
검붉은 색의 벽돌 같은 것을 확인한 상훈은 재빠르게 흙을 덮었다.
‘이 밑에 깔린 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평범한 것은 아니다. 흙바닥 위에 흥건하던 피들을 흡수하는 것을 보면…….’
보도블록처럼 흙 밑에 깔린 알 수 없는 물건이 피를 흡수한다는 것은 틀림없었다.
블록에 닿은 순간, 손가락 끝에 엷게 피의 흔적이 묻어났다. 게다가 헤집은 흙을 다시 덮으려 할 때 손가락에 묻은 피들이 블록에 빨려드는 것을 보면서 상훈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남기신 것이 정말일지도 모르겠구나.’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수첩의 내용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버지가 남긴 수첩은 남에게 보일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괴물과 마물들이 존재하며, 인간을 잡아먹는다고 쓰여 있으니 어디에 보여줄 수가 없었다.
수첩에는 다른 것도 쓰여 있었다. 인간을 초월한 이들이 있고, 그들이 마술과 주술 같은 것을 사용해 힘을 키운다는 내용이었다.
아버지가 남긴 수첩을 통해서 세상이 이상하게 변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실은 거의 믿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목격한 것들로 미루어 볼 때, 아버지가 남긴 수첩의 내용들이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이면에 살고 있는 존재들은 힘을 얻기 위해 특별한 의식을 치른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이곳이 그런 곳인 모양이다.’
모든 것이 아귀가 맞았다.
특별하게 만들어진 것 같은 몽둥이로 사람을 때려잡는 것도 그렇고, 흙 밑에 깔려 있는 이상한 블록을 보면 사람들을 이용한 의식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며느리에게 효과가 나타나면 곧바로 실행에 옮기자.’
자신에 의해 어릴 때부터 수련을 계속해 온 아들은 어느 정도 내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며느리만 내력을 가지게 된다면 아이를 가지고 있어도 탈출할 수 있을 것이기에 상훈은 위험을 무릅쓰기로 했다.
상훈은 아직 남아 있는 검은 죽을 손으로 싹싹 긁어 입에 넣었다. 아들과 며느리도 그 모습을 보며 남아 있는 죽을 모두 먹었다. 시간을 20분만 주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
― 그릇을 반납하고, 각 막사별로 동쪽에 보이는 문 앞으로 가서 줄을 선다.
방송을 듣고 식기를 반납한 사람들은 동쪽 출입문 앞에 줄을 섰다. 그러자 곧바로 문이 열리고, 줄지어 선 사람들은 경비병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출입문 바깥에는 온통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100미터 가량의 통로가 있었다. 그리고 통로 끝에는 광산으로 들어가는 커다란 철문이 보였다.
그르르릉!
육중한 굉음과 함께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광산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광산 안은 아주 넓었다. 축구를 할 수 있는 운동장 크기 정도의 공동이었다.
공동의 사방에는 비슷한 크기의 통로들이 여러 개 만들어져 있는데, 모두 갱도로 들어가는 입구들이었다.
사람들은 경비병들의 인솔로 갱도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갱도의 수는 모두 아홉 개로, 갱도 하나당 1,500명의 사람들이 들어갔다.
궤도가 설치되어 있는 갱도를 따라 30분을 걸어가서야 새로운 갱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막다른 곳에 뚫려 있는 갱도는 모두 다섯 개였고, 그곳에서 다시 사람들이 나뉘어졌다.
사람들은 갱도 안으로 더욱 깊숙하게 들어갔고, 다시 갈라진 갱도를 따라 인원이 나누어 진 채 이동했다.
마침내 갱도가 끝나자 궤도 차량이 나타났다. 그곳에서 조금 더 들어가서 이동을 멈췄을 때, 막장이 보였다.
“모두들 채광 장비를 챙겨라.”
상훈 일가를 포함한 20명의 사람들을 향해 경비병이 외쳤다. 사람들이 주섬주섬 곡괭이와 삽을 들었다.
“여기는 막장이다. 우리가 캐는 것은 바로 저것이다.”
경비병이 가리키는 곳에는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들이 있었다.
“너희들이 보고 있는 것은 백금이다. 후후후, 욕심을 내도 좋다. 살아남을 수 있다면 말이다.”
눈빛이 변한 사람들을 향해 경비병은 몽둥이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제부터 채광을 시작해라. 남자들은 곡괭이질을 하고, 여자와 아이들은 금광석들을 저기 보이는 망태로 나르면 된다.”
경비병의 지시에 남자들은 곡괭이를 집어 들었다. 제법 날카롭지만, 경비병을 향해 덤벼들 수는 없었다.
지난 시간 동안 무수한 사람들을 몽둥이로 패서 죽인 경비병들이었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사람들을 교묘히 피하며 단 한 방에 죽음을 선사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던 터라 감히 덤벼들 수 없었다.
무엇보다 경비병의 몸에서 풍기는 살기가 무서웠다.
곧바로 채광이 시작되었다.
퍽! 퍽!
곡괭이가 휘둘러지자 광석들이 떨어져 내렸다. 금맥은 상당히 굵었는데, 어쩌다가 떨어지는 콩알만 한 금을 보면 함유량이 상당히 높은 것 같았다.
떨어진 금광석을 아이들과 여자들이 망태에 담아 궤도 차량까지 날랐다.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경비병이 작동을 시키면 궤도 차량이 금광석을 운반했다.
광산에서의 강제 노역은 열두 시간 동안이나 계속됐다. 먹을 것이라고는 중간에 주어지는 감자 한 알과 물이 전부였다. 대부분 처음 해보는 노역으로 인해 지치고 배가 고팠지만, 불만을 토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