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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제3장
‘늦었군.’
사령부로 간 상철은 한 가지만 확인할 수 있었다. 5계급에 해당하는 주민들은 이송이 시작된 첫날에 북으로 떠났다는 것뿐이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5계급에 속한 이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느 수용소로 간 것인지에 대해서는 상부에서 특급 비밀로 정해 버렸기 때문이다.
‘진즉에 서둘러야 했는데…….’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오는 내내 상철은 자책감이 들었다.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단란했던 한 가족을 지옥으로 끌어들인 것 같은 기분에서였다.
‘어쩔 수 없다. 평양에서 특급 비밀로 정한 이상 방법이 없으니. 하지만 고작 수용소로 보내는 것뿐인데 특급 비밀이라니… 뭔가 있을지도 모르니 평양으로 가면 한 번 알아봐야겠구나.’
찜찜한 구석도 있고, 상부의 조치도 이해가 가지 않았기에 상철은 중앙으로 진출한 후 박상훈 일가에 대해 알아보기로 결심했다.
‘일단은 그자에게 연락을 하자. 금이라면 환장을 하는 자이니 자리를 내줄 것이다.’
연락을 할 상대는 후계자의 매제이자 최고 지도자의 사위였다. 후계자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는 터라 나름의 세력을 꾸리고 있기에 자신이 가담한다고 하면 좋아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자신의 힘을 원하기는 해도 그냥은 받아줄 사람이 아니었다. 합류를 하려면 그만한 성의 표시를 해야 했다. 그도 상철이 그리 부유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아는 터라 방수환으로부터 받은 금괴 중 5킬로그램이면 충분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의 주인이 남긴 비밀 금고에서 얻은 것이라고 하면 충분하겠지.’
여의도 앞마당에서 삼부 요인과 국회의원들이 전부 총살되었다. 최고 지도자의 특별 지시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총살된 자들의 집은 전부 장교들의 숙소로 쓰였다. 상철이 머물고 있는 숙소의 주인은 여당의 총무까지 했던 자였다. 충분히 금괴를 얻게 된 핑곗거리가 되었다.
상철은 부관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대좌 동지.”
“오늘따라 모란봉이 보고 싶군.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차 한잔 주겠나?”
상철의 말에 부관이 눈을 빛냈다. 약속했던 암어지만 부관은 내색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요즘 즐겨 드시는 커피를 타 오겠습니다.”
“고맙네.”
부관이 사무실을 나서자 상철은 작은 가방을 하나 꺼내 책상 서랍에 들어 있는 금괴를 집어넣었다. 1킬로그램짜리 금괴가 모두 다섯 개였다.
잠시 뒤, 부관이 잔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잔은 책상 위에 내려놓게.”
“예, 대좌 동지.”
“자네, 힘들지 않으면 이 가방을 평양에 있는 내 집으로 보내줬으면 하네만.”
“대좌 동지 집으로 말씀입니까?”
“그래. 귀한 분에게 드릴 선물이라서 잘 보내야 하네.”
“알겠습니다. 손이 타지 않도록 잘 보내겠습니다.”
“고맙네.”
상철에게는 평양에 집이 없었다.
뜬금없이 내린 지시가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부관이 가방을 집어 들었다.
‘금이다.’
부피에 비해 상당히 묵직한 느낌에 안에 금괴가 들어 있음을 직감했다.
‘어떻게 저 양반이?’
재물에 담백한 인사가 추상철이었다.
그런 그가 상당한 양의 금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으음, 어쩌면 그 집에서 발견한 것일 수도 있겠군. 이 정도 양이면 전부 같은데 다 내주다니, 할 수 없는 양반이로군.’
비록 감시역이 되기는 했지만 군인으로서는 존경하는 상관이었다. 이번에도 재물에는 욕심이 없는 것 같았다.
자신이 모시는 사람을 따르기로 한 것을 보면 뭔가 생각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한 날 이후로 한 달이 흐른 뒤, 상철은 1계급 특진과 함께 평양으로 전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놀랍게도 그가 새로 맡게 된 직책은 권력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호위총국의 부국장이었다.
* * *
1982. 5. 17. (월) 16:20.
개마고원의 깊은 산중.
한반도 각지에서 출발한 버스들은 북쪽으로 이동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이동한 버스들이 닿은 곳은 개마고원에 위치한 수용소들이었다.
수용소의 규모는 하나당 2만 명 내외를 수용할 수 있도록 지어졌는데, 5계급에 속하는 400만 명의 사람들이 1차적으로 머물게 되어 있었다.
상훈 일가 또한 개마고원에 있는 수용소에 수용되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상훈 일가족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아버님,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이곳에서 강제 노역을 하지 않을까 싶다. 힘이 들기는 하겠지만 그리 오래갈 것 같지는 않으니, 너무 무서워하지 말거라.”
상훈은 굳은 얼굴로 떨고 있는 며느리의 손을 잡으며 위로했다.
“어째서 우리가 이곳으로 와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계급을 정하는 기준이 알려져 있기에 자신들은 아니라고 거듭 말하다가 인민군에게 두들겨 맞은 박준호다. 얼굴에 붉게 멍이 든 그는 연신 불만을 터트렸다.
“아무리 애원을 해도 들어주지 않을 거다. 자세히 조사하지도 않을 거고. 그러니 몸을 우선시해라. 이곳에서 빠져나가려면 건강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당장은 빠져나가지 못한다. 아내의 산달이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출산한 아내가 몸을 회복한 다음에나 탈출을 도모할 수 있기에 박준호는 분을 삼켰다.
― 배급이 실시된다. 모두 집합해라.
확성기 소리가 수용소를 울렸다. 입소하며 받은 교육대로 사람들은 연병장 같은 곳에 다들 집합을 했다.
2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이는 터라 소란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 다들 조용히 해라. 떠드는 자는 즉결 처분하겠다.
장내가 시끄러워지자 다시 한 번 확성기가 울렸다.
북한의 행태를 잘 모르던 사람들 중 몇몇이 확성기 소리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떠들었다. 겁이 나기도 하고, 앞날의 불안감 때문이기도 했다.
타타타탁!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 사람과 이야기하던 이들에게 사방을 둘러싸고 있던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제법 긴 몽둥이를 들고 있었는데, 안에는 철심이 박혀 있는 것이었다.
퍼퍼퍽!
“커억!”
“크윽!”
퍼퍼퍼퍽!
“아아악, 살려줘!”
퍼퍼퍼퍽!
“커억! 잘못했어요! 끄윽!”
군인들의 몽둥이질은 가차 없었다. 머리가 깨지고 팔다리가 부러져도 몽둥이질을 멈추지 않았다.
대들어보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 역시 살벌한 살기를 흘리며 휘둘러진 몽둥이에 쓰러져야만 했다.
군인들은 쓰러진 자들에게도 몽둥이질을 멈추지 않았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자들 전부가 몽둥이에 맞아 죽었다.
퍼퍼퍼퍼퍽!
죽어버린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몽둥이질이 장내를 침묵으로 물들였다. 피에 흥건하게 물든 시체들의 살점이 튀어 얼굴에 붙어도 사람들은 신음조차 흘릴 수 없었다.
소리를 내는 순간 야차 같은 군인들의 몽둥이질이 시작된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 그만! 이제 좀 조용하군. 지금부터 배식을 시작할 테니, 다들 줄을 서라.
사람들은 피에 젖은 흙을 밟으며 배식대 앞에 서기 시작했다. 움직이지 않으면 무슨 꼴을 당할지 몰라서였다.
배식대 앞에 서자 나무로 만들어진 그릇이 하나씩 주어졌다.
철퍼덕!
그릇 안에 주걱으로 뜬 검은색의 죽이 떨어졌다.
“다음!”
배식을 받은 자가 옆으로 비켜서자 다음 사람이 뒤를 이었다.
― 배식을 받은 자들은 처음 집합했던 자리로 돌아가 먹도록 해라.
확성기가 울렸다. 배식을 받았지만 검은 죽을 떠먹을 수저가 없었다. 식기를 달라고 할 용기가 없기에 사람들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수저가 없어서 손으로 죽을 떠먹어야 하지만, 먹을 수가 없었다. 몽둥이질에 고깃덩어리로 변해 버린 사람들의 시신이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탓이었다.
“아가, 무조건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를 보장할 수 없으니 말이다.”
구역질을 참으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며느리를 향해 박상훈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님…….”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 네 배 속에 있는 아기를 위해서라도 무조건 먹어라.”
“크흑. 예, 아버님.”
“울지 마라. 놈들이 보고 있다.”
역시나 어머니는 강했다. 강미소는 배 속에 있는 아이를 위해 구역질을 참으며 검은 죽을 손으로 떠서 입에 넣었다.
“아가도 저리 노력하는데 사내가 되어가지고. 너도 어서 먹도록 해라. 입에 넣고 오래 씹어서 삼켜라.”
“예, 아버지.”
박상훈 일가는 조금씩 검은 죽을 먹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끌려 나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이동한 탓에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검은 죽을 먹기 시작했다.
간도 거의 되어 있지 않은 검은 죽은 맛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씹을 것도 없지만, 입에 넣고 오래 우물거리면 고소한 맛도 조금은 느껴졌다.
― 빨리빨리들 먹어라. 식사 시간은 20분뿐이다.
확성기가 다시 울렸다.
“전부 입에 넣고 천천히 씹어서 삼켜야 한다.”
박상훈의 말에 박준호와 강미소는 남아 있는 죽을 입에 넣고는 천천히 우물거렸다.
― 식사 끝이다. 식기는 전부 배식대로 모으도록! 식기 반납이 끝난 후에는 각자 배정된 막사로 돌아간다. 오늘은 특별히 일찍 취침하는 것을 허락하마. 하하하하!
큰 선심을 베푸는 것처럼 확성기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몰랐지만 그것은 정말 큰 선심이었다.
다음 날부터는 지옥 같은 수용소 생활이 시작되었다.
제3장
‘늦었군.’
사령부로 간 상철은 한 가지만 확인할 수 있었다. 5계급에 해당하는 주민들은 이송이 시작된 첫날에 북으로 떠났다는 것뿐이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5계급에 속한 이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느 수용소로 간 것인지에 대해서는 상부에서 특급 비밀로 정해 버렸기 때문이다.
‘진즉에 서둘러야 했는데…….’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오는 내내 상철은 자책감이 들었다.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단란했던 한 가족을 지옥으로 끌어들인 것 같은 기분에서였다.
‘어쩔 수 없다. 평양에서 특급 비밀로 정한 이상 방법이 없으니. 하지만 고작 수용소로 보내는 것뿐인데 특급 비밀이라니… 뭔가 있을지도 모르니 평양으로 가면 한 번 알아봐야겠구나.’
찜찜한 구석도 있고, 상부의 조치도 이해가 가지 않았기에 상철은 중앙으로 진출한 후 박상훈 일가에 대해 알아보기로 결심했다.
‘일단은 그자에게 연락을 하자. 금이라면 환장을 하는 자이니 자리를 내줄 것이다.’
연락을 할 상대는 후계자의 매제이자 최고 지도자의 사위였다. 후계자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는 터라 나름의 세력을 꾸리고 있기에 자신이 가담한다고 하면 좋아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자신의 힘을 원하기는 해도 그냥은 받아줄 사람이 아니었다. 합류를 하려면 그만한 성의 표시를 해야 했다. 그도 상철이 그리 부유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아는 터라 방수환으로부터 받은 금괴 중 5킬로그램이면 충분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의 주인이 남긴 비밀 금고에서 얻은 것이라고 하면 충분하겠지.’
여의도 앞마당에서 삼부 요인과 국회의원들이 전부 총살되었다. 최고 지도자의 특별 지시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총살된 자들의 집은 전부 장교들의 숙소로 쓰였다. 상철이 머물고 있는 숙소의 주인은 여당의 총무까지 했던 자였다. 충분히 금괴를 얻게 된 핑곗거리가 되었다.
상철은 부관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대좌 동지.”
“오늘따라 모란봉이 보고 싶군.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차 한잔 주겠나?”
상철의 말에 부관이 눈을 빛냈다. 약속했던 암어지만 부관은 내색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요즘 즐겨 드시는 커피를 타 오겠습니다.”
“고맙네.”
부관이 사무실을 나서자 상철은 작은 가방을 하나 꺼내 책상 서랍에 들어 있는 금괴를 집어넣었다. 1킬로그램짜리 금괴가 모두 다섯 개였다.
잠시 뒤, 부관이 잔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잔은 책상 위에 내려놓게.”
“예, 대좌 동지.”
“자네, 힘들지 않으면 이 가방을 평양에 있는 내 집으로 보내줬으면 하네만.”
“대좌 동지 집으로 말씀입니까?”
“그래. 귀한 분에게 드릴 선물이라서 잘 보내야 하네.”
“알겠습니다. 손이 타지 않도록 잘 보내겠습니다.”
“고맙네.”
상철에게는 평양에 집이 없었다.
뜬금없이 내린 지시가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부관이 가방을 집어 들었다.
‘금이다.’
부피에 비해 상당히 묵직한 느낌에 안에 금괴가 들어 있음을 직감했다.
‘어떻게 저 양반이?’
재물에 담백한 인사가 추상철이었다.
그런 그가 상당한 양의 금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으음, 어쩌면 그 집에서 발견한 것일 수도 있겠군. 이 정도 양이면 전부 같은데 다 내주다니, 할 수 없는 양반이로군.’
비록 감시역이 되기는 했지만 군인으로서는 존경하는 상관이었다. 이번에도 재물에는 욕심이 없는 것 같았다.
자신이 모시는 사람을 따르기로 한 것을 보면 뭔가 생각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한 날 이후로 한 달이 흐른 뒤, 상철은 1계급 특진과 함께 평양으로 전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놀랍게도 그가 새로 맡게 된 직책은 권력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호위총국의 부국장이었다.
* * *
1982. 5. 17. (월) 16:20.
개마고원의 깊은 산중.
한반도 각지에서 출발한 버스들은 북쪽으로 이동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이동한 버스들이 닿은 곳은 개마고원에 위치한 수용소들이었다.
수용소의 규모는 하나당 2만 명 내외를 수용할 수 있도록 지어졌는데, 5계급에 속하는 400만 명의 사람들이 1차적으로 머물게 되어 있었다.
상훈 일가 또한 개마고원에 있는 수용소에 수용되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상훈 일가족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아버님,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이곳에서 강제 노역을 하지 않을까 싶다. 힘이 들기는 하겠지만 그리 오래갈 것 같지는 않으니, 너무 무서워하지 말거라.”
상훈은 굳은 얼굴로 떨고 있는 며느리의 손을 잡으며 위로했다.
“어째서 우리가 이곳으로 와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계급을 정하는 기준이 알려져 있기에 자신들은 아니라고 거듭 말하다가 인민군에게 두들겨 맞은 박준호다. 얼굴에 붉게 멍이 든 그는 연신 불만을 터트렸다.
“아무리 애원을 해도 들어주지 않을 거다. 자세히 조사하지도 않을 거고. 그러니 몸을 우선시해라. 이곳에서 빠져나가려면 건강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당장은 빠져나가지 못한다. 아내의 산달이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출산한 아내가 몸을 회복한 다음에나 탈출을 도모할 수 있기에 박준호는 분을 삼켰다.
― 배급이 실시된다. 모두 집합해라.
확성기 소리가 수용소를 울렸다. 입소하며 받은 교육대로 사람들은 연병장 같은 곳에 다들 집합을 했다.
2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이는 터라 소란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 다들 조용히 해라. 떠드는 자는 즉결 처분하겠다.
장내가 시끄러워지자 다시 한 번 확성기가 울렸다.
북한의 행태를 잘 모르던 사람들 중 몇몇이 확성기 소리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떠들었다. 겁이 나기도 하고, 앞날의 불안감 때문이기도 했다.
타타타탁!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 사람과 이야기하던 이들에게 사방을 둘러싸고 있던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제법 긴 몽둥이를 들고 있었는데, 안에는 철심이 박혀 있는 것이었다.
퍼퍼퍽!
“커억!”
“크윽!”
퍼퍼퍼퍽!
“아아악, 살려줘!”
퍼퍼퍼퍽!
“커억! 잘못했어요! 끄윽!”
군인들의 몽둥이질은 가차 없었다. 머리가 깨지고 팔다리가 부러져도 몽둥이질을 멈추지 않았다.
대들어보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 역시 살벌한 살기를 흘리며 휘둘러진 몽둥이에 쓰러져야만 했다.
군인들은 쓰러진 자들에게도 몽둥이질을 멈추지 않았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자들 전부가 몽둥이에 맞아 죽었다.
퍼퍼퍼퍼퍽!
죽어버린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몽둥이질이 장내를 침묵으로 물들였다. 피에 흥건하게 물든 시체들의 살점이 튀어 얼굴에 붙어도 사람들은 신음조차 흘릴 수 없었다.
소리를 내는 순간 야차 같은 군인들의 몽둥이질이 시작된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 그만! 이제 좀 조용하군. 지금부터 배식을 시작할 테니, 다들 줄을 서라.
사람들은 피에 젖은 흙을 밟으며 배식대 앞에 서기 시작했다. 움직이지 않으면 무슨 꼴을 당할지 몰라서였다.
배식대 앞에 서자 나무로 만들어진 그릇이 하나씩 주어졌다.
철퍼덕!
그릇 안에 주걱으로 뜬 검은색의 죽이 떨어졌다.
“다음!”
배식을 받은 자가 옆으로 비켜서자 다음 사람이 뒤를 이었다.
― 배식을 받은 자들은 처음 집합했던 자리로 돌아가 먹도록 해라.
확성기가 울렸다. 배식을 받았지만 검은 죽을 떠먹을 수저가 없었다. 식기를 달라고 할 용기가 없기에 사람들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수저가 없어서 손으로 죽을 떠먹어야 하지만, 먹을 수가 없었다. 몽둥이질에 고깃덩어리로 변해 버린 사람들의 시신이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탓이었다.
“아가, 무조건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를 보장할 수 없으니 말이다.”
구역질을 참으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며느리를 향해 박상훈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님…….”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 네 배 속에 있는 아기를 위해서라도 무조건 먹어라.”
“크흑. 예, 아버님.”
“울지 마라. 놈들이 보고 있다.”
역시나 어머니는 강했다. 강미소는 배 속에 있는 아이를 위해 구역질을 참으며 검은 죽을 손으로 떠서 입에 넣었다.
“아가도 저리 노력하는데 사내가 되어가지고. 너도 어서 먹도록 해라. 입에 넣고 오래 씹어서 삼켜라.”
“예, 아버지.”
박상훈 일가는 조금씩 검은 죽을 먹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끌려 나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이동한 탓에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검은 죽을 먹기 시작했다.
간도 거의 되어 있지 않은 검은 죽은 맛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씹을 것도 없지만, 입에 넣고 오래 우물거리면 고소한 맛도 조금은 느껴졌다.
― 빨리빨리들 먹어라. 식사 시간은 20분뿐이다.
확성기가 다시 울렸다.
“전부 입에 넣고 천천히 씹어서 삼켜야 한다.”
박상훈의 말에 박준호와 강미소는 남아 있는 죽을 입에 넣고는 천천히 우물거렸다.
― 식사 끝이다. 식기는 전부 배식대로 모으도록! 식기 반납이 끝난 후에는 각자 배정된 막사로 돌아간다. 오늘은 특별히 일찍 취침하는 것을 허락하마. 하하하하!
큰 선심을 베푸는 것처럼 확성기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몰랐지만 그것은 정말 큰 선심이었다.
다음 날부터는 지옥 같은 수용소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