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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흥미롭군. 저 여자가 바로 그녀였다니 말이야.’
정말 재미있는 세상이다. 요마라 칭해지던 이가 이렇게 내 눈앞에 나타나다니 말이다. 더군다나 그녀가 성녀의 자질을 타고났다니,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무래도 현재의 상황이 그녀를 요마로 만든 것 같구나.’
처음 요마를 보았을 때 무척이나 놀랐다. 내가 겪었던 요마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면목을 봤으니 말이다.
대한민국이 점령당하고 난 뒤, 보호자도 없는 어린 여자가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작 식량 때문에 정절을 버려야 하는 상황을 겪어야 했다면 성정이 변하고도 남았을 것 같았다.
‘당시 요마가 사라진 것이 정말 의문이었는데,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
세상이 변하고 능력자들이 전면에 나서자 모든 것이 혼란으로 치달았다. 기존의 질서가 파괴되고 강자존의 세상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기존의 힘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자 수많은 이면 조직들의 쟁패가 시작되었다. 중국 또한 마찬가지여서 기존의 군벌을 이면에서 장악한 능력자들이 세를 불리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바로 전쟁으로 이어졌다.
그중 가장 강한 전력을 보유한 곳이 철혈마세였다. SSS급에 달하는 능력자가 세 명이나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철혈마세는 강력한 전력을 바탕으로 다른 조직들을 병탄하기 시작했다. 끊임없는 쟁패의 결과, 결국은 천의맹과 함께 중국 대륙을 양분하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요마는 중국 대륙을 휩쓸던 철혈마세의 삼대천마 중 한 명이다. SSS급 능력자인 것이다.
반면, 추상철은 북명에 속해 있던 자다. 만주와 연해주를 기점으로 세력을 일으킨 조직이 북명이다. 북명 또한 막강한 전력을 보유한 이면 조직이었다.
북경을 중심으로 세를 확장해 나가던 철혈마세와는 필연적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양측은 동북아를 놓고 자웅을 겨루었다.
하지만 전력상으로는 상당한 차이가 났다. 삼대천마라 일컬어진 SSS급 능력자가 세 명이나 있는 철혈마세에 비해 북명의 최고 능력자는 겨우 한 명의 SSS급밖에는 없었다.
전력이 차이가 나는 만큼, 북명은 철혈마세에 계속해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배후에 천의맹이 없었다면 진즉에 병탄되고 말았을 정도로 극심한 전력 차이였다.
간신히 전력을 유지하며 근거지를 지키던 북명의 세력 중에서 유일하게 철혈마세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이가 바로 추상철이다.
추상철은 철혈마세에 승리한 것을 기점으로 지지를 얻어 북명의 수장이 되기도 했는데, 이런 사정이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철혈마세에서 일인군단이라 칭해지던 추상철을 봐주던 이가 있었다니 말이다.
‘철혈마세에서 요마가 갑자기 사라지고 난 뒤에 북명이 동북아를 틀어쥔 것은 분명 그녀가 뒤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성력이 요마력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요마로 완전히 각성하기 전이니 그 정도를 이겨내지 못할 추상철이 아니었다. 지금의 추상철이라면 거뜬히 김소정을 제압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유혹에 넘어가 그녀를 취한 것은 김소정이 진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저런 식으로 맺어지면 두 사람은 연리지처럼 하나나 다름없다. 절대로 배신할 수 없는…….’
추상철은 성력이 요마력으로 변화하며 김소정에게 첫 번째로 각인된 존재다. 추상철도 마찬가지로 김소정이 영혼에 각인된 존재로 남겨졌다.
김소정은 자신의 순결로 반려를 맞았다. 나이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그것으로 부부의 인연은 맺어졌다. 그것도 서로를 영혼으로 받아들인 완전한 부부로 말이다. 영혼의 반려니 아마도 배신을 염려할 일은 없을 것이다.
‘후후후, 이런 배후를 알지 못했으니 놈들에게 당할 수밖에. 나로서도 요마나 추상철을 절대 믿을 수 없었으니 말이야.’
과거에는 힘이 되어주겠다던 요마의 제의를 거절했었다. 당시에는 요마력밖에는 보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요마력이 성력이 변화한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평소에 보이는 모습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 법이니 말이다.
‘큰 수확이다.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것을 시도해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인연을 맺어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끈을 남기고 왔다. 봉인을 끝내고 나면 두 사람에 대해서는 기억을 하지 못하겠지만, 남겨진 끈이 우리의 만남을 인도할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자.’
생각을 접는 순간, 영혼의 눈이 내 몸으로 돌아왔다. 긴장했던 어머니가 안정되셨는지 포근한 느낌에 기분이 좋아진다.
‘잠을 좀 자둬야겠군.’
추상철을 따라붙었다가 김소정을 보고 무리를 했다. 결과는 좋았지만, 무척이나 피곤한 상태다.
이제 겨우 형체만 갖춘 아이의 몸이라서 그런지 영혼의 눈을 사용한 것 정도로도 많이 지치는 것 같다. 잠을 자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함!’
정말 늘어지게 잤다. 그런데도 겨우 이틀 정도 지났다. 태내가 가장 순순한 공간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적어도 석 달은 자야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이제 떠나는 모양이구나.’
주변에 많은 이들이 느껴진다.
북한은 대한민국을 점령한 후 주민들의 이동을 통제했는데, 이 정도의 사람이 모인 것을 보면 이유는 하나뿐이다. 사람들을 북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그동안 할아버지와 부모님의 대화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미 알고 있던 일이지만, 조금 더 세세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북한은 대한민국 점령 후, 4개월 동안 총 다섯 계급으로 주민들을 분류했다.
일제 및 미국에 협력한 자들과 그 가족은 최하위인 5계급이었다. 5계급 출신들은 북한의 최우선 척결 대상이었다.
다음은 4계급으로, 공무원과 경찰 출신, 그리고 하사관 이상의 군 출신과 그 가족이 대상이었다.
3계급은 월남한 이들과 그 가족이었는데, 3계급에서 5계급까지는 모두 처분 대상이었다.
이들 계급에 속하지 않는 남한 출신과 그 가족은 2계급, 그리고 남한 출신으로 북한에 동조하거나 이로 인해 복역한 자들과 그 가족은 1계급으로 분류되었는데, 이들은 모두가 관리 대상이었다.
이제 주민들에 대한 분류가 끝나 전격적으로 조치가 취해진 것이 분명했다.
‘이제부터 지옥이 시작되겠군.’
처분 대상인 이들은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강제 노동으로 뽑아낼 수 있는 것은 전부 뽑아낸 후 처리될 것이다.
능력자들을 키우기 위한 실험체로서 말이다.
‘어차피 지금으로서는 저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수용소에 가기 전까지 할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것과 연결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정확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파악을 못하고 있다.
다만,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나를 이용했던 놈들에게 반격을 먹일 만큼 커다란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성질이야 이미 파악이 끝났고, 지금부터라도 적응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수용도가 높아져 파각이 시작될 때 온전하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테니까.’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것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기운에 조용히 집중했다. 태아인 상태라 가장 안정적인 호흡인 태식이 가능했기에 기운과 금방 연결이 되었다.
* * *
얼마 전까지 대한민국이라고 불리던 한반도 남부 곳곳에서 버스들이 차출되고, 이를 통해 3계급에서 5계급까지의 주민들이 북한으로 이송되었다.
버스로 이동하는 이들의 얼굴에는 절망이 서려 있었다. 북한이 분류한 다섯 계급 중에서 하위에 속하는 계급의 주민들은 북한 오지에 마련된 수용소에 수용된 후 강제 노동과 교화가 진행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와는 달리 2계급과 1계급의 주민들은 구 대한민국에 그대로 머물게 되었다. 북으로 이송되는 주민들에 비해서는 그나마 낫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진주한 230만 명의 북한군과 노동당에서 파견 나온 당원들이 이들을 관리했는데, 성분 조사를 거쳐 계급을 다시 책정한 후에 미달되는 자는 수용소로 보내질 것이라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분류가 끝난 후 이송이 시작되었지만, 상철은 상훈의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난생처음 여자를 접한 그는 처음 동정을 잃은 날부터 소정에게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영혼으로 각인된 상태라 소정은 빠져나올 수 없는 늪이었다. 이성적으로는 자제하려고 했지만, 소정을 보는 순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소정과 쉴 새 없이 육체관계를 맺어야 했던 것은 서로 완전한 하나가 되기 위한 이유에서였다. 육체관계를 통해 영혼을 교류하는 과정이라 추상철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분류 작업이 끝난 후의 일은 전부 부관에게 맡겨놓은 터라 그동안 소정과 숙소에서만 지낸 추상철이었다.
오늘도 상철은 자신의 숙소에서 소정을 탐하고 샤워를 했다.
쏴―아아!
영혼의 교류가 거의 끝나 어느 정도 이성을 되찾은 상철은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다가 지난 며칠 동안 벌어졌던 일이 생각나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미쳤었군. 고작 그런 어린아이에게 빠져 버리다니.”
그동안 오직 하나만 바라보며 금욕의 생활을 해왔다. 아무리 여자를 멀리한 지 오래되었다고는 하지만 한순간에 빠져 버리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내가 이렇게 정신없이 빠져 버릴 정도라면 능력이라고 보아야 한다. 으음…….”
능력자인 남자를 넋 놓게 만드는 치명적인 육체라면, 가히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면 저 아이가!”
상철은 소정이 각성자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선천적으로 능력을 타고났고, 계기를 만나 각성하게 된 것이 분명했다.
“그래, 소정이는 각성자가 분명한 것 같으니 검사를 한 번 해봐야겠다.”
중앙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배후가 든든해야 하지만, 뭐 두 쪽밖에 없는 자신이다. 만약 소정이 능력자라면 자신에게는 기회였다.
“소정이가 정말 능력자라면 결혼까지 생각을 해야겠군.”
순결을 빼앗은 터라 같이 데리고 있으려 했지만, 결혼까지는 아니었다. 자신의 발목을 잡을 수 있어서였다.
그러나 이제는 심각하게 고민을 해봐야 할 때였다.
사실 상철의 고민은 의미 없는 일이었다. 소정과는 이미 영혼의 교류까지 이루어진 사이다. 떨어지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것이다.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이미 두 사람은 완전한 하나에 다가서고 있었다.
‘그만 나가봐야겠군.’
소정과의 앞날을 생각한 상철은 빠르게 몸을 씻고 욕실을 나섰다. 밖으로 나서자 소정이 알몸으로 수건을 든 채 상철을 맞았다.
“오늘은 나가봐야 한다.”
“알겠어요.”
대답을 한 소정이 곧바로 상철의 방으로 들어갔다. 소정은 상철의 방에서 옷가지와 군복을 챙겼다.
상철이 방 안으로 들어오자 소정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상철 또한 아주 자연스럽게 소정의 시중을 받아들였다.
속옷을 입히고, 군복과 양말까지 소정은 나신인 채로 상철의 복장을 갖추어주었다.
옷을 다 입은 상철이 매무새를 가다듬는 동안 소정도 옷을 입었다. 옷이라고 해봐야 한 벌이 전부인 원피스였다.
소정은 밖으로 나서는 상철의 뒤를 따랐다.
“나오지 마라.”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현관을 벗어나지 못하게 했기에 소정은 응접실에서 인사를 했다.
“저녁은 돌아와서 먹을 거다.”
“준비해 놓을게요. 호호호.”
“으음…….”
배시시 웃는 소정의 모습에 마음이 울렁거렸다.
“갔다 오마.”
상철은 애써 진정하며 곧바로 숙소를 나섰다. 더 있다가는 소정을 덮칠 것 같아서였다.
건물 밖으로 나서자 운전병이 차량을 대고 있었다. 상철이 타자 차는 곧바로 움직였다.
‘소정이가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궁금하군. 매혹과 관련한 능력 같은데 말이야… 응?’
사무실로 향하며 소정을 생각하던 상철은 길게 늘어서서 이동하고 있는 버스를 발견했다.
“저게 뭔가?”
“수용소로 이송되는 남한 동무들입니다.”
“수용소로 이송이 돼?”
“평양에서 서두르라는 명령이 내려와서 곧바로 이송이 시작됐습니다, 대좌 동지.”
‘이런!’
추상철의 뇌리로 박상훈의 모습이 스쳤다.
“언제부터 이송이 시작됐나?”
“사흘 전부터입니다.”
“전에 갔던 곳으로 가자.”
“어디 말씀이십니까, 대좌 동지?”
“며느리를 위해서 식량을 훔쳤던 그 노인 집으로 가자는 말이다. 어서!”
상철은 운전병을 재촉했다.
하지만 박상훈의 집에 도착한 상철은 이미 늦었음을 깨달았다.
“늦었구나.”
반지하의 집은 이미 텅 비어 있고, 온기가 식은 지 오래였다.
“사령부로 가보자.”
상철은 곧바로 사령부로 향했다. 박상훈이 어디로 이송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흥미롭군. 저 여자가 바로 그녀였다니 말이야.’
정말 재미있는 세상이다. 요마라 칭해지던 이가 이렇게 내 눈앞에 나타나다니 말이다. 더군다나 그녀가 성녀의 자질을 타고났다니,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무래도 현재의 상황이 그녀를 요마로 만든 것 같구나.’
처음 요마를 보았을 때 무척이나 놀랐다. 내가 겪었던 요마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면목을 봤으니 말이다.
대한민국이 점령당하고 난 뒤, 보호자도 없는 어린 여자가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작 식량 때문에 정절을 버려야 하는 상황을 겪어야 했다면 성정이 변하고도 남았을 것 같았다.
‘당시 요마가 사라진 것이 정말 의문이었는데,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
세상이 변하고 능력자들이 전면에 나서자 모든 것이 혼란으로 치달았다. 기존의 질서가 파괴되고 강자존의 세상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기존의 힘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자 수많은 이면 조직들의 쟁패가 시작되었다. 중국 또한 마찬가지여서 기존의 군벌을 이면에서 장악한 능력자들이 세를 불리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바로 전쟁으로 이어졌다.
그중 가장 강한 전력을 보유한 곳이 철혈마세였다. SSS급에 달하는 능력자가 세 명이나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철혈마세는 강력한 전력을 바탕으로 다른 조직들을 병탄하기 시작했다. 끊임없는 쟁패의 결과, 결국은 천의맹과 함께 중국 대륙을 양분하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요마는 중국 대륙을 휩쓸던 철혈마세의 삼대천마 중 한 명이다. SSS급 능력자인 것이다.
반면, 추상철은 북명에 속해 있던 자다. 만주와 연해주를 기점으로 세력을 일으킨 조직이 북명이다. 북명 또한 막강한 전력을 보유한 이면 조직이었다.
북경을 중심으로 세를 확장해 나가던 철혈마세와는 필연적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양측은 동북아를 놓고 자웅을 겨루었다.
하지만 전력상으로는 상당한 차이가 났다. 삼대천마라 일컬어진 SSS급 능력자가 세 명이나 있는 철혈마세에 비해 북명의 최고 능력자는 겨우 한 명의 SSS급밖에는 없었다.
전력이 차이가 나는 만큼, 북명은 철혈마세에 계속해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배후에 천의맹이 없었다면 진즉에 병탄되고 말았을 정도로 극심한 전력 차이였다.
간신히 전력을 유지하며 근거지를 지키던 북명의 세력 중에서 유일하게 철혈마세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이가 바로 추상철이다.
추상철은 철혈마세에 승리한 것을 기점으로 지지를 얻어 북명의 수장이 되기도 했는데, 이런 사정이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철혈마세에서 일인군단이라 칭해지던 추상철을 봐주던 이가 있었다니 말이다.
‘철혈마세에서 요마가 갑자기 사라지고 난 뒤에 북명이 동북아를 틀어쥔 것은 분명 그녀가 뒤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성력이 요마력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요마로 완전히 각성하기 전이니 그 정도를 이겨내지 못할 추상철이 아니었다. 지금의 추상철이라면 거뜬히 김소정을 제압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유혹에 넘어가 그녀를 취한 것은 김소정이 진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저런 식으로 맺어지면 두 사람은 연리지처럼 하나나 다름없다. 절대로 배신할 수 없는…….’
추상철은 성력이 요마력으로 변화하며 김소정에게 첫 번째로 각인된 존재다. 추상철도 마찬가지로 김소정이 영혼에 각인된 존재로 남겨졌다.
김소정은 자신의 순결로 반려를 맞았다. 나이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그것으로 부부의 인연은 맺어졌다. 그것도 서로를 영혼으로 받아들인 완전한 부부로 말이다. 영혼의 반려니 아마도 배신을 염려할 일은 없을 것이다.
‘후후후, 이런 배후를 알지 못했으니 놈들에게 당할 수밖에. 나로서도 요마나 추상철을 절대 믿을 수 없었으니 말이야.’
과거에는 힘이 되어주겠다던 요마의 제의를 거절했었다. 당시에는 요마력밖에는 보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요마력이 성력이 변화한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평소에 보이는 모습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 법이니 말이다.
‘큰 수확이다.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것을 시도해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인연을 맺어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끈을 남기고 왔다. 봉인을 끝내고 나면 두 사람에 대해서는 기억을 하지 못하겠지만, 남겨진 끈이 우리의 만남을 인도할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자.’
생각을 접는 순간, 영혼의 눈이 내 몸으로 돌아왔다. 긴장했던 어머니가 안정되셨는지 포근한 느낌에 기분이 좋아진다.
‘잠을 좀 자둬야겠군.’
추상철을 따라붙었다가 김소정을 보고 무리를 했다. 결과는 좋았지만, 무척이나 피곤한 상태다.
이제 겨우 형체만 갖춘 아이의 몸이라서 그런지 영혼의 눈을 사용한 것 정도로도 많이 지치는 것 같다. 잠을 자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함!’
정말 늘어지게 잤다. 그런데도 겨우 이틀 정도 지났다. 태내가 가장 순순한 공간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적어도 석 달은 자야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이제 떠나는 모양이구나.’
주변에 많은 이들이 느껴진다.
북한은 대한민국을 점령한 후 주민들의 이동을 통제했는데, 이 정도의 사람이 모인 것을 보면 이유는 하나뿐이다. 사람들을 북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그동안 할아버지와 부모님의 대화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미 알고 있던 일이지만, 조금 더 세세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북한은 대한민국 점령 후, 4개월 동안 총 다섯 계급으로 주민들을 분류했다.
일제 및 미국에 협력한 자들과 그 가족은 최하위인 5계급이었다. 5계급 출신들은 북한의 최우선 척결 대상이었다.
다음은 4계급으로, 공무원과 경찰 출신, 그리고 하사관 이상의 군 출신과 그 가족이 대상이었다.
3계급은 월남한 이들과 그 가족이었는데, 3계급에서 5계급까지는 모두 처분 대상이었다.
이들 계급에 속하지 않는 남한 출신과 그 가족은 2계급, 그리고 남한 출신으로 북한에 동조하거나 이로 인해 복역한 자들과 그 가족은 1계급으로 분류되었는데, 이들은 모두가 관리 대상이었다.
이제 주민들에 대한 분류가 끝나 전격적으로 조치가 취해진 것이 분명했다.
‘이제부터 지옥이 시작되겠군.’
처분 대상인 이들은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강제 노동으로 뽑아낼 수 있는 것은 전부 뽑아낸 후 처리될 것이다.
능력자들을 키우기 위한 실험체로서 말이다.
‘어차피 지금으로서는 저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수용소에 가기 전까지 할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것과 연결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정확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파악을 못하고 있다.
다만,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나를 이용했던 놈들에게 반격을 먹일 만큼 커다란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성질이야 이미 파악이 끝났고, 지금부터라도 적응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수용도가 높아져 파각이 시작될 때 온전하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테니까.’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것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기운에 조용히 집중했다. 태아인 상태라 가장 안정적인 호흡인 태식이 가능했기에 기운과 금방 연결이 되었다.
* * *
얼마 전까지 대한민국이라고 불리던 한반도 남부 곳곳에서 버스들이 차출되고, 이를 통해 3계급에서 5계급까지의 주민들이 북한으로 이송되었다.
버스로 이동하는 이들의 얼굴에는 절망이 서려 있었다. 북한이 분류한 다섯 계급 중에서 하위에 속하는 계급의 주민들은 북한 오지에 마련된 수용소에 수용된 후 강제 노동과 교화가 진행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와는 달리 2계급과 1계급의 주민들은 구 대한민국에 그대로 머물게 되었다. 북으로 이송되는 주민들에 비해서는 그나마 낫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진주한 230만 명의 북한군과 노동당에서 파견 나온 당원들이 이들을 관리했는데, 성분 조사를 거쳐 계급을 다시 책정한 후에 미달되는 자는 수용소로 보내질 것이라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분류가 끝난 후 이송이 시작되었지만, 상철은 상훈의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난생처음 여자를 접한 그는 처음 동정을 잃은 날부터 소정에게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영혼으로 각인된 상태라 소정은 빠져나올 수 없는 늪이었다. 이성적으로는 자제하려고 했지만, 소정을 보는 순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소정과 쉴 새 없이 육체관계를 맺어야 했던 것은 서로 완전한 하나가 되기 위한 이유에서였다. 육체관계를 통해 영혼을 교류하는 과정이라 추상철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분류 작업이 끝난 후의 일은 전부 부관에게 맡겨놓은 터라 그동안 소정과 숙소에서만 지낸 추상철이었다.
오늘도 상철은 자신의 숙소에서 소정을 탐하고 샤워를 했다.
쏴―아아!
영혼의 교류가 거의 끝나 어느 정도 이성을 되찾은 상철은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다가 지난 며칠 동안 벌어졌던 일이 생각나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미쳤었군. 고작 그런 어린아이에게 빠져 버리다니.”
그동안 오직 하나만 바라보며 금욕의 생활을 해왔다. 아무리 여자를 멀리한 지 오래되었다고는 하지만 한순간에 빠져 버리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내가 이렇게 정신없이 빠져 버릴 정도라면 능력이라고 보아야 한다. 으음…….”
능력자인 남자를 넋 놓게 만드는 치명적인 육체라면, 가히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면 저 아이가!”
상철은 소정이 각성자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선천적으로 능력을 타고났고, 계기를 만나 각성하게 된 것이 분명했다.
“그래, 소정이는 각성자가 분명한 것 같으니 검사를 한 번 해봐야겠다.”
중앙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배후가 든든해야 하지만, 뭐 두 쪽밖에 없는 자신이다. 만약 소정이 능력자라면 자신에게는 기회였다.
“소정이가 정말 능력자라면 결혼까지 생각을 해야겠군.”
순결을 빼앗은 터라 같이 데리고 있으려 했지만, 결혼까지는 아니었다. 자신의 발목을 잡을 수 있어서였다.
그러나 이제는 심각하게 고민을 해봐야 할 때였다.
사실 상철의 고민은 의미 없는 일이었다. 소정과는 이미 영혼의 교류까지 이루어진 사이다. 떨어지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것이다.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이미 두 사람은 완전한 하나에 다가서고 있었다.
‘그만 나가봐야겠군.’
소정과의 앞날을 생각한 상철은 빠르게 몸을 씻고 욕실을 나섰다. 밖으로 나서자 소정이 알몸으로 수건을 든 채 상철을 맞았다.
“오늘은 나가봐야 한다.”
“알겠어요.”
대답을 한 소정이 곧바로 상철의 방으로 들어갔다. 소정은 상철의 방에서 옷가지와 군복을 챙겼다.
상철이 방 안으로 들어오자 소정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상철 또한 아주 자연스럽게 소정의 시중을 받아들였다.
속옷을 입히고, 군복과 양말까지 소정은 나신인 채로 상철의 복장을 갖추어주었다.
옷을 다 입은 상철이 매무새를 가다듬는 동안 소정도 옷을 입었다. 옷이라고 해봐야 한 벌이 전부인 원피스였다.
소정은 밖으로 나서는 상철의 뒤를 따랐다.
“나오지 마라.”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현관을 벗어나지 못하게 했기에 소정은 응접실에서 인사를 했다.
“저녁은 돌아와서 먹을 거다.”
“준비해 놓을게요. 호호호.”
“으음…….”
배시시 웃는 소정의 모습에 마음이 울렁거렸다.
“갔다 오마.”
상철은 애써 진정하며 곧바로 숙소를 나섰다. 더 있다가는 소정을 덮칠 것 같아서였다.
건물 밖으로 나서자 운전병이 차량을 대고 있었다. 상철이 타자 차는 곧바로 움직였다.
‘소정이가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궁금하군. 매혹과 관련한 능력 같은데 말이야… 응?’
사무실로 향하며 소정을 생각하던 상철은 길게 늘어서서 이동하고 있는 버스를 발견했다.
“저게 뭔가?”
“수용소로 이송되는 남한 동무들입니다.”
“수용소로 이송이 돼?”
“평양에서 서두르라는 명령이 내려와서 곧바로 이송이 시작됐습니다, 대좌 동지.”
‘이런!’
추상철의 뇌리로 박상훈의 모습이 스쳤다.
“언제부터 이송이 시작됐나?”
“사흘 전부터입니다.”
“전에 갔던 곳으로 가자.”
“어디 말씀이십니까, 대좌 동지?”
“며느리를 위해서 식량을 훔쳤던 그 노인 집으로 가자는 말이다. 어서!”
상철은 운전병을 재촉했다.
하지만 박상훈의 집에 도착한 상철은 이미 늦었음을 깨달았다.
“늦었구나.”
반지하의 집은 이미 텅 비어 있고, 온기가 식은 지 오래였다.
“사령부로 가보자.”
상철은 곧바로 사령부로 향했다. 박상훈이 어디로 이송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