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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제2장


컥!
정신을 차리자마자 비릿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들어온다. 숨을 쉬려 하지만 쉴 수가 없다.
‘치, 침착하자.’
당혹스러운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자 편해졌다.
‘온 건가?’
영혼을 비틀어 시간의 빈틈을 파고들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목표한 시간대에 도착한 것 같다. 목을 통해 들어온 액체가 양수인 것 같으니 말이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주변을 느끼려 애를 썼다. 태아의 몸이라 어렵기는 하지만, 지금은 주변을 아는 것이 제일 시급한 과제다.
태아인 상태라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는 있다.
감각이 확장되며 점차 뭔가가 느껴진다.
‘엄마!’
어릴 적에 다른 세계로 사라져 버리신 어머니의 기운이 느껴진다.
컥!
울컥하는 기분에 평정심이 흐트러져 다시 양수를 들이켰다.
‘침작하자. 어차피 길을 찾아놓은 상태이니.’
마음을 가라앉히자 심신이 평안해졌다.
‘아버지도 계시는구나.’
어머니의 손을 잡고 계신 것인지, 아버지의 기운도 느껴진다. 거칠지만 푸근하던 아버지의 품이 생각난다.
‘으음, 두 분이 긴장하신 것을 보면 주변에 위협이 될 만한 존재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강단이 대단하신 분들이 긴장한 것을 보면, 위험한 상황에 놓인 것 같다.
‘알아봐야겠구나.’
어떤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나와 어머니를 중심으로 감각을 확장시켰다.
‘으음, 이 기운은?’
언젠가 한 번 마주했던, 익숙한 기운이다.
‘그럴 리가?’
의심이 들어 다시 한 번 기운을 확인했지만 틀림없었다. 한 번밖에 보지 않았지만 강렬한 여운이 가시지 않던 추상철 장군의 기운이다.
‘중국과의 전쟁 당시 전장을 지휘하던 그의 기운이 틀림없다. 놀랍군, 이 시간대에 이 사람과의 접점이 있었다니…….’
세상을 두고 각축을 벌이던 존재들 중 하나가 지금 시간대에 어머니와 마주하고 있다니, 경악할 일이었다. 그녀와의 인연으로 처음 접점이 생긴 줄 알았는데, 추상철과의 처음 만남이 이때 이루어졌다니 말이다.
‘그렇지만 아직은 걱정 없겠다. 아직 각성하기 전 같으니 말이다.’
폭풍같이 전장을 휩쓸던 추상철이다. 대적할 상대가 거의 없을 정도로 모두가 두려워한 초강자였던 그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추상철이 각성한 상태라면 문제가 커졌을 것이다. 이렇게 가까이 있게 되면 아무리 태아 상태일지라도 내 존재에 대해서 알아차렸을 테니 말이다.
‘세상이 변하기 시작한 초기 단계니 다들 각성하기 전이겠지만, 이런 접점이 계속 있을 수도 있으니 앞으로 최대한 조심해야겠다. 예상보다 빨리 각성한 존재들도 있을 테니까.’
세상을 뒤흔든 초강자들이 각성한 시기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변화가 가속되는 것은 앞으로 20년 후지만 그보다 빨리 각성할 수도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지금은 태아인 상태이니 내 존재가 드러날 염려는 거의 없을 것이다. 조금만 더 지켜보자. 문제가 닥치면 곧바로 봉인해야겠지만,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세상에 나가기 직전에 감추는 것이 좋을 테니까.’
부모님이나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적이 없는 상황이지만 북쪽으로 끌려가기 직전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추상철과 접점이 있을 만한 시기는 대한민국이 점령당한 직후밖에 없으니 말이다. 세상에 나가기 전까지는 최대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신체 기관이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으니 일단 영혼의 감각이라도 최대한 확장을 해놓자. 각성하기 전이라면 추상철도 영혼의 감각에 대해서 알 수 없을 테니까.’
영혼이 비틀리고 시간의 역전을 만드느라 대부분 소진되기는 했지만, 스피릿 파워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상태다. 전처럼 힘을 쓰지는 못할 테지만, 감각을 확장하고 단련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니 집중을 해봐야겠다.
천천히 감각이 확장되어 간다. 제7의 감각이라 불리는 영혼의 눈이다. 영혼의 눈은 불가에서 말하는 육신통 중 천이와 천안에 버금가는 능력으로, 오감을 넘어선 육감보다 더욱 정확하게 세상을 인지할 수 있다.
‘오시는구나.’
감각을 확장해 나가는 도중에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잊혀지지가 않는 기운이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기운을 다룰 수 있는 분이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그것을 이때부터 가지고 계셨던 모양이구나.’
할아버지의 기운 말고도 익숙한 것이 느껴진다. 끝내 다 흡수하지 못했던 미지의 기운이다.
‘그린 하트와 할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것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내가 실패한 근본적인 이유가 그것들을 얻고도 완전한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니까.’
반드시 얻어야 하는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지금 할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것은 완벽하게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그린 하트를 완전하게 흡수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할아버지도 추상철의 존재를 느끼신 모양이구나.’
할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시다가 뒤로 물러나시는 것이 느껴진다.
가지고 계신 힘을 사용할 수도 있으시겠지만 그러시지 않은 것을 보니, 특유의 위기감이 작동한 모양이다. 각성하기 전이라지만 추상철은 그리 호락호락한 자가 아니니 말이다.

‘뭐지?’
조심스럽게 이동을 하며 집에 가까이 왔을 때, 박상훈은 숨어 있는 자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강한 자다.’
은밀한 기척을 통해 자신보다 하수가 아님을 직감한 박상훈은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냥 들어갈 수는 없으니, 놈들이 먼저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박상훈은 평범한 사람처럼 초조한 눈빛으로 골목길에 숨어 차량을 확인하는 척했다. 누가 보더라도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척!
“헉!”
귓가에 어리는 차가운 느낌에 박상훈은 비명을 질렀다. 그의 귓가에 닿은 것은 권총이었다.
“박상훈인가?”
“그, 그렇습니다.”
“어디 갔다가 오는 길인가?”
추상철의 물음에 박상훈은 낭패한 표정으로 떨어진 자루를 바라보았다.
“보급 투쟁을 한 모양이군. 어디서 난 건가? 보급 창고에서 훔친 건가?”
“잘, 잘못했소. 며느리가 손주 아이를 가졌소.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를 못해서 먹을 것들을 훔칠 수밖에 없었소.”
“…….”
“아들과 며느리는 상관이 없소. 어차피 얼마 있지 않아 죽을 몸이니 나만 처벌해 주시오.”
말이 없는 추상철을 보며 박상훈은 다급히 변명을 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의 여파가 아들 내외에게 미칠까 두려워서였다.
‘식량과 생필품은 전부 한곳으로 모은 상태니 저만한 양이면 그곳밖에는 없는데… 대단한 양반이군.’
보급 창고에 무단으로 침입하는 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총살이다. 목숨이 위험한 상황인데도 며느리를 위해 식량을 훔쳐 냈다. 팍 삭은 모습이지만 노동 일을 오래한 덕분인지 뼈마디가 굵었다. 거기다가 며느리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강단까지. 여러모로 대단한 노인이었다.
“공화국이 그리 인심이 야박한 곳은 아니오. 며느리를 생각하는 마음이 가상해 이번만은 용서하겠소. 하지만 다음번에는 용서하는 일이 없을 것이오.”
“고, 고맙소.”
“그런데 어떻게 식량 창고에 들어간 것이오?”
“얼마 전에 그 창고를 수리할 때 보아두었던, 고장 난 환풍구가 있었소. 그리로 해서 안으로 들어갔소.”
“쥐새끼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환풍구를 막아야겠군. 임무를 게을리한 놈들도 모두…….”
창고 안도 순찰을 돌도록 했는데 자신의 명령을 무시한 모양이었다. 아무리 끈 떨어진 연 같은 신세라도 바로잡아야 할 일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번만 용서하는 것이오, 동무.”
“알겠습니다.”
박상훈이 고개를 숙였다.
“어서 챙겨 가지고 들어가시오.”
“고맙소.”
추상철은 박상훈으로부터 아무런 혐의를 찾을 수 없었다. 들고 있는 봉투를 보니 방수환의 집에 불을 지를 만한 여가가 없었을 것 같았다.
박상훈이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한 추상철은 손짓을 해 근처에 숨어 있는 운전병을 불렀다.
“보급 창고로 가자.”
추상철은 운전병에게 한마디 한 후 곧바로 차를 타고 창고 쪽으로 떠났다.
비록 혐의가 없다고는 하지만 박상훈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추상철이 떠난 모양이다. 할아버지의 기운을 느끼고 곧바로 나가더니 확인을 끝낸 것 같다.
‘나보다 늦기는 했지만 분명히 할아버지의 기척을 알아차리고 움직였다. 각성하기 전임에도 능력자에 버금가는 힘을 지녔다니, 대단한 자다.’
세상이 바뀌고 전쟁의 양상이 변했다. 능력자와 초월자들이 나타나고 총이나 대포 같은 현대 화기가 아닌 칼과 마법이 난무했다.
그런 세상에서 추상철은 일인군단이라 불렸다. 각성 전에도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가 얻은 칭호에 대한 설명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할아버지는 가족들을 위해 끝없이 희생을 하셨구나. 아주 위험했을 텐데…….’
북쪽에서 대한민국을 점령한 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반항의 기미가 보이면 사람들을 가차 없이 죽였다. 그것도 총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칼 같은 것을 이용해 공포감을 조성해 가며 반기를 든 이들을 죽였다.
또한 그들에 못지않게 많이 죽어 나간 사람들은 보급품을 훔친 이들이었다. 북쪽의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점령하자마자 모든 물자를 통제했다.
특히나 식량은 겨우 연명할 정도만 배급을 했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식량을 훔쳤던 자들은 잡힐 경우 대부분 사형이었다. 그냥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도세자처럼 상자에 가두고는 굶겨 죽였다.
그럼에도 가족을 위해 식량을 훔쳐 오다니, 할아버지는 정말 대단한 분이셨다.
할아버지를 비롯해 부모님이 식사를 시작했다. 통조림 같은 것이 분명했지만, 상당히 굶주리셨는지 허겁지겁 드신다. 그 와중에도 아내와 며느리를 위해 양보를 하시는 두 분을 보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당분간은 굶주릴 염려는 없을 것 같고, 일단 영혼의 눈을 찾은 상태니 따라가 보자.’
추상철은 세계의 향방을 좌우할 중요한 인물 중 하나다. 나를 가지고 놀았던 자들과 연관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니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차를 이용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찾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의 기운은 영혼에 새겨진 상태니 흔적만 쫓아가면 금방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