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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1981. 12. 31. (목) 12:00.
서울.
서울은 패닉에 빠져 버렸다. 아니, 그것은 대한민국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른 아침 출근을 서두르던 사람들은 도로 곳곳을 점령하고 있는 인민군들을 보고는 기겁을 했다.
곧바로 집 안으로 숨어든 국민들은 방송을 통해 전두근 대통령의 얼굴을 봐야만 했다.
침통한 얼굴로 담담히 말을 이어가는 전두근 대통령의 모습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총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았는데 육해공 삼군이 항복을 했으며, 대한민국의 모든 무력은 북한에 의해 해제를 당했다는 패전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패전을 선언하고 북한과 하나가 되었음을 공포하는 방송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송출되었다.
선전포고 직후, 하루도 되지 않은 시간에 대한민국을 집어삼킨 북한의 행보는 세계를 경악시켰다.
휴전 중인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군대와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 대한민국이 하루아침에 점령을 당했다는 사실을 세계는 믿을 수가 없었다.
막강한 전력을 가진 대한민국의 군대가 북한을 향해 두 손을 들어버렸다는 사실은 정말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군 수뇌부가 일제히 변절을 하지 않는 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상한 것은 전투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욱 이상한 것은 어디에서나 군인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연말임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대통령의 긴급 지시로 인해 대한민국 대부분의 부대는 비상대기 중이거나 작전을 수행 중이었다.
전날만 하더라도 도로에서 이동 중인 군인들을 종종 보았는데, 갑자기 모두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대한민국 군대의 항복과 대통령의 패전 선언 이후, 북한의 행보는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패전 선언 하루 뒤, 180만 명에 달하는 병력에 더해 50만에 달하는 추가 병력이 빠르게 남하해 대한민국 곳곳에 진주했다.
상당한 훈련을 받은 듯, 진주한 북한군은 빠르게 주민들을 통제하고 기간시설을 장악해 나갔다.
정전협정을 감시하기 위한 UN군은 물론이고, 주둔 중인 미군들도 있었지만, 북한의 이런 행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침략이 시작된 시점에 이미 특수 군단에 의해 전원 무장해제를 당한 후였기 때문이다.
북한은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외국 군대가 보유하고 있던 무기들을 모두 압수했다. 그리고 패전 선언 이틀 뒤에는 상선을 이용해 주둔군들을 모두 일본으로 강제 출국시켰다.
북한의 조치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해안선을 전부 봉쇄하고, 항공 노선도 전부 폐쇄했다. 한반도 전체를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때문에 북한이 어떤 식으로 대한민국을 점령했는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쫓겨나듯 대한민국을 떠나온 미군들에 의해 알려진 사실은 단 하나뿐이었다.
점령 당시 북한의 특수 군단이 동원됐고, 그들의 활약으로 대한민국이 북한의 손에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점령 당시에 일어난 일이다.
불가사의하게도 인명 피해가 거의 없이 무혈로 대한민국을 점령했다는 것이었다. 무슨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지만, 공화국이 보유한 힘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실이었다.
대한민국의 점령에서부터 UN군과 미군의 강제 출국까지 걸린 시간은 단 이틀에 불과했을 뿐이다.
상황을 지켜보던 일본과 미국은 즉각적으로 반발했다. 대한민국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즉각적인 선전포고가 있을 것임을 천명했다.
그러나 즉각적으로 전쟁 준비를 시작한 두 나라는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를 해야만 했다. 벼랑 끝 전술이라고 일컬어지는 공화국의 외교 전술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북한은 미국 본토를 직접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다수의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북한이 이런 사실을 공개한 이유는 쓸데없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였고, 그것은 일본과 미국에 먹혀들어 갔다. 대한민국의 동맹국을 자처하는 미국은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고, 일본은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꼬리를 말아야 했다.
중국과 러시아도 마차가지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우려하며 경고를 했지만, 공화국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화국은 휴전 상태에서 다시 전쟁이 발발한 것이고, 이에 따라 대한민국을 점령한 것은 내정에 관한 사항임을 못 박았다.
그러고는 만약 내정에 간섭을 한다면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냥 해보는 소리라고 일축할 수도 있겠지만,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러시아와 중국도 외교부의 성명을 통해서 우려만 표시할 뿐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공화국은 만에 하나 있을 강대국의 도발에 대비한 것인지, 점령 나흘 후에 대한민국의 수도였던 서울의 여의도에서 승전을 기념하는 군사 퍼레이드를 펼쳤다.
그리고 세계가 경악할 만한 군사력을 선보였다.
자신들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북한은 100기에 달하는 탄도미사일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한 번도 알려지지 않았던 신형 전투기와 전폭기도 공개했다.
방송이 송출된 이후 세계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화국이 퍼레이드를 펼치며 새로 선보인 무기들의 성능까지 공개해 버린 탓이었다.
100메가톤급의 핵탄두를 탑재한 탄도미사일 100기, 최대 속도 마하 3에 스텔스 기능을 갖춘 전투기, 그리고 순항 핵미사일을 장착한 전폭기는 미국과 러시아, 중국 정도만이 보유하고 있는 전략무기들이기 때문이었다.
북한의 정보 공개에 세계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공화국의 기만 전략일 수도 있다는 언론과는 달리, 각국 정보기관의 무기 전문가들이 퍼레이드에 나타난 무기들이 진짜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무도 모르게 그런 전력을 갖출 수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의 군사력이었다.
세계를 움직이는 정보기관들은 북한의 움직임은 물론이고, 전력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던 터라 가지고 있는 정보망을 총동원했다.
정보기관들은 분주히 움직였고, 일부나마 정보가 밝혀졌다.
대한민국을 소리 없이 점령한 북한의 숨은 힘이 알려진 것이다.
북한이 전력을 완전히 은폐시킬 수 있던 것은 특별한 단체 때문이었다.
영문명으로는 몬스터 섀도, 한국어로는 매영이라고 불리는 단체였다.
매영은 북한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으며, 특별한 능력을 소유한 이들이 모여 만들어진 능력자 조직이라는 사실에 강대국은 또다시 침묵해야만 했다.
자신들만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능력자 조직이 북한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국의 정보기관 분석가들은 이 또한 전쟁을 막기 위한 공화국의 의도라고 밝혔다.
자신들이 알아낸 정보가 매영이 일부러 공개한 것임을 파악한 것은 정보의 출처 때문이었다.
사실 정보기관들이 알아낸 정보들은 그들의 노력으로 얻어진 것들이 아니었다.
대한민국과 공화국에 잠입해 있던 정보원들이 체포된 후, 어선에 실려 일본에 보내지면서 확보된 것들이었다.
강대국들은 비상이 걸렸다. 동북아시아의 패권에 변동을 일으킬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매영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각국의 이면 조직들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정보원들을 한반도로 들여보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공화국 내부의 정보를 바깥으로 전할 수는 없었다.
잠입한 능력자들은 한 명도 예외 없이 체포되어 수용소로 끌려갔고, 생사 여부조차 불분명했다.
아무리 정보원을 들여보내도 감감무소식이자, 정보기관들은 매영이 가진 힘을 일부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특급 능력자인 정보원들이 연락을 취하지도 못하고 제압당할 정도라면 매영을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매영 덕분에 세계는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강국이 탄생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막강한 군사력에, 세계 어느 강대국에도 뒤지지 않는 능력자 전력까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세계 역사에서 대한민국은 사라져 버렸다.
너무도 전격적인 일이라 세계가 놀랐지만, 대한민국의 멸망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북한의 강대한 군사력도, 막대한 능력을 지닌 이면 조직의 존재도 가려진 비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 * *
1982. 4. 30. (금) 18:30.
舊 대한민국 서울.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건가?”
“그놈의 아버지가 독립투사라고 알려져 있지만, 전부 날조된 것입니다. 그런 놈이 공화국의 2계급이라니,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마땅히 수용소로 보내야 합니다.”
“으음…….”
호위총국에서 남쪽으로 파견을 나온 추상철은 고심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전에 들은 말들이 전부 거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놓치기는 아까운 일이지…….’
끈 떨어진 연 신세라 남쪽으로 와야만 했다.
뇌물을 바쳐야 중앙으로 진출할 수 있으니, 지금 청탁을 하는 자가 건네는 금괴가 자신에게는 무엇보다 필요했다.
아무런 연고나 자금이 없는 자신에게 있어서 다시는 없을 기회이기도 했다.
‘어쩔 수 없지. 이대로 살 수는 없으니까.’
어차피 보고서에서 몇 줄만 바꾸면 되는 일기도 했기에 추상철은 결심했다. 점령지 주민들의 인생이야 빤한 것이기에 자신이 크게 신경을 쓸 이유도 없었다.
“그럼 그자와 가족을 수용소로 보내기만 하면 되는 건가?”
“그렇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럼 전 이만.”
자신의 부탁이 성공하자 방수환은 가지고 온 검은색 가방을 책상 위에 두고 사무실을 나섰다.
‘후후후, 역시 뇌물이 통하는군.’
사무실을 나선 방수환은 기분이 좋았다.
일제에 동조해 재산을 늘린 이는 다름 아닌 자신의 아버지였다. 아무도 모르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이를 처리했기에 마음이 놓인 것이다.
‘그놈은 내가 아직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을 모른다. 보급제가 실시되고는 있지만, 지하 창고에는 1년 정도의 식량과 생필품이 있으니 넉넉잡고 한 달 정도만 틀어박혀 있으면 되겠군.’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는 박상훈은 자신이 북쪽으로 끌려간 줄 알고 있을 것이다. 자칫 일을 그르칠 수 있기에 자신이 거짓으로 밀고한 박상훈이 북으로 끌려갈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서는 곤란했다.
‘쥐약을 먹었으니 앞으로는 내 부탁을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남쪽에 남아 있다가는 어떻게 될지도 모르니 기회를 봐서 그자를 따라 북으로 가야 한다.’
호위총국의 파견 장교인 추상철에게 10킬로그램의 금괴를 건넸다. 그럼에도 자신에게는 아직 200킬로그램에 달하는 금괴와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보석들이 남아 있었다.
추상철을 이용해 공화국에 대한 충성을 증명하고, 신분을 바꾼 후에 북쪽으로 이주하면 그다음은 아주 쉬웠다.
북쪽에서 무사히 지내다가 러시아연방의 연줄을 이용해 한반도를 떠나면 그만이었다.
‘후후후!’
오래전부터 계획해 온 일이 있다. 러시아로 넘어가 거래를 트는 일이다. 남아 있는 기반 때문에 망설였지만, 이제는 대한민국이 망한 마당이라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나로서는 오히려 잘된 일이지. 그것이 있으니까 러시아로 가기만 하면 기회를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이번 기회에 자신의 부친이 남긴 것을 러시아연방에 넘길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모르긴 몰라도 새롭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한자리 차지할 수 있을 터였다.
‘오랜만에 한잔 마셔야겠구나. 그동안 뜸했으니.’
집으로 돌아가 보드카를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로 가게 되면 그곳 생활에 적응을 해야 하니 말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건물을 나선 방수환은 도로를 가로질러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곳곳에 설치된 초소에서 검문을 실시했지만, 발급 받은 통행증을 보여줬기에 집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 * *
방수환이 떠난 후, 추상철은 보고서 하나를 작성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731부대의 부역자에 관한 보고서였다.
본래는 독립군 스파이로 731부대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잠입한 사람이지만, 추상철에 의해 부역한 자로 변조가 되었다.
보고서를 다 작성한 추상철은 다시 한 번 내용을 꼼꼼하게 검토했다.
‘이 정도면 알아차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가 관심 있게 볼 보고서도 아니고.’
“후우.”
쾅!
한숨을 크게 쉰 추상철은 떨리는 손으로 책상 위에 놓인 인장 하나를 집어 들고는 보고서 위에 찍었다. 일제 부역자 가족으로 변조된 박상훈의 보고서에는 5급이라는 인장이 선명히 찍혔다.
“부관!”
추상철은 밖에서 대기 중인 부관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이 보고서들을 상부로 올려라.”
추상철은 담당하고 있는 지역의 주민들에 대한 분류 보고서를 부관에게 주었다.
“알겠습니다.”
“이송은 언제부터 실시된다고 했지?”
“다음 달 말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전통이 왔습니다.”
“좋아. 차질이 없게 준비에 만전을 기하도록.”
“예, 대좌 동지!”
“그만 나가보게.”
척!
추상철의 부관은 경례를 한 뒤 곧바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부관이 가지고 나간 박상훈 일가에 대한 보고서는 다른 보고서와 섞여 곧바로 상부로 제출되었다.
‘어차피 운에 따라 좌우되는 인생이라지만, 정말 운이 없는 가족이군. 하지만 그리 원통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오.’
자신에게 뇌물을 바치며 다른 이를 무고한 자를 그냥 둘 생각은 없었다. 독립투사의 자손임이 분명한 이를 무고한다는 것은 약점이 잡힐 일이 있다는 것을 뜻했다.
말도 안 되는 죄를 덮어씌우려 했던 것을 보면 부역의 당사자는 방수환의 아버지가 틀림없었다.
‘무엇보다 10킬로그램이나 금괴를 건넨 것을 보면 그보다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하니 놈도 처리를 해야겠군. 살려두었다가는 내 약점을 잡으려고 할 놈이니 말이야.’
수작을 부리는 것이 빤했다. 놈을 처리하고 감추어둔 것들을 빼앗는다면 좀 더 큰 기회를 잡을 수 있기에 추상철의 눈가가 서늘해졌다.
1981. 12. 31. (목) 12:00.
서울.
서울은 패닉에 빠져 버렸다. 아니, 그것은 대한민국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른 아침 출근을 서두르던 사람들은 도로 곳곳을 점령하고 있는 인민군들을 보고는 기겁을 했다.
곧바로 집 안으로 숨어든 국민들은 방송을 통해 전두근 대통령의 얼굴을 봐야만 했다.
침통한 얼굴로 담담히 말을 이어가는 전두근 대통령의 모습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총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았는데 육해공 삼군이 항복을 했으며, 대한민국의 모든 무력은 북한에 의해 해제를 당했다는 패전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패전을 선언하고 북한과 하나가 되었음을 공포하는 방송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송출되었다.
선전포고 직후, 하루도 되지 않은 시간에 대한민국을 집어삼킨 북한의 행보는 세계를 경악시켰다.
휴전 중인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군대와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 대한민국이 하루아침에 점령을 당했다는 사실을 세계는 믿을 수가 없었다.
막강한 전력을 가진 대한민국의 군대가 북한을 향해 두 손을 들어버렸다는 사실은 정말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군 수뇌부가 일제히 변절을 하지 않는 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상한 것은 전투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욱 이상한 것은 어디에서나 군인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연말임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대통령의 긴급 지시로 인해 대한민국 대부분의 부대는 비상대기 중이거나 작전을 수행 중이었다.
전날만 하더라도 도로에서 이동 중인 군인들을 종종 보았는데, 갑자기 모두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대한민국 군대의 항복과 대통령의 패전 선언 이후, 북한의 행보는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패전 선언 하루 뒤, 180만 명에 달하는 병력에 더해 50만에 달하는 추가 병력이 빠르게 남하해 대한민국 곳곳에 진주했다.
상당한 훈련을 받은 듯, 진주한 북한군은 빠르게 주민들을 통제하고 기간시설을 장악해 나갔다.
정전협정을 감시하기 위한 UN군은 물론이고, 주둔 중인 미군들도 있었지만, 북한의 이런 행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침략이 시작된 시점에 이미 특수 군단에 의해 전원 무장해제를 당한 후였기 때문이다.
북한은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외국 군대가 보유하고 있던 무기들을 모두 압수했다. 그리고 패전 선언 이틀 뒤에는 상선을 이용해 주둔군들을 모두 일본으로 강제 출국시켰다.
북한의 조치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해안선을 전부 봉쇄하고, 항공 노선도 전부 폐쇄했다. 한반도 전체를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때문에 북한이 어떤 식으로 대한민국을 점령했는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쫓겨나듯 대한민국을 떠나온 미군들에 의해 알려진 사실은 단 하나뿐이었다.
점령 당시 북한의 특수 군단이 동원됐고, 그들의 활약으로 대한민국이 북한의 손에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점령 당시에 일어난 일이다.
불가사의하게도 인명 피해가 거의 없이 무혈로 대한민국을 점령했다는 것이었다. 무슨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지만, 공화국이 보유한 힘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실이었다.
대한민국의 점령에서부터 UN군과 미군의 강제 출국까지 걸린 시간은 단 이틀에 불과했을 뿐이다.
상황을 지켜보던 일본과 미국은 즉각적으로 반발했다. 대한민국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즉각적인 선전포고가 있을 것임을 천명했다.
그러나 즉각적으로 전쟁 준비를 시작한 두 나라는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를 해야만 했다. 벼랑 끝 전술이라고 일컬어지는 공화국의 외교 전술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북한은 미국 본토를 직접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다수의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북한이 이런 사실을 공개한 이유는 쓸데없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였고, 그것은 일본과 미국에 먹혀들어 갔다. 대한민국의 동맹국을 자처하는 미국은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고, 일본은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꼬리를 말아야 했다.
중국과 러시아도 마차가지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우려하며 경고를 했지만, 공화국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화국은 휴전 상태에서 다시 전쟁이 발발한 것이고, 이에 따라 대한민국을 점령한 것은 내정에 관한 사항임을 못 박았다.
그러고는 만약 내정에 간섭을 한다면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냥 해보는 소리라고 일축할 수도 있겠지만,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러시아와 중국도 외교부의 성명을 통해서 우려만 표시할 뿐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공화국은 만에 하나 있을 강대국의 도발에 대비한 것인지, 점령 나흘 후에 대한민국의 수도였던 서울의 여의도에서 승전을 기념하는 군사 퍼레이드를 펼쳤다.
그리고 세계가 경악할 만한 군사력을 선보였다.
자신들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북한은 100기에 달하는 탄도미사일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한 번도 알려지지 않았던 신형 전투기와 전폭기도 공개했다.
방송이 송출된 이후 세계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화국이 퍼레이드를 펼치며 새로 선보인 무기들의 성능까지 공개해 버린 탓이었다.
100메가톤급의 핵탄두를 탑재한 탄도미사일 100기, 최대 속도 마하 3에 스텔스 기능을 갖춘 전투기, 그리고 순항 핵미사일을 장착한 전폭기는 미국과 러시아, 중국 정도만이 보유하고 있는 전략무기들이기 때문이었다.
북한의 정보 공개에 세계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공화국의 기만 전략일 수도 있다는 언론과는 달리, 각국 정보기관의 무기 전문가들이 퍼레이드에 나타난 무기들이 진짜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무도 모르게 그런 전력을 갖출 수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의 군사력이었다.
세계를 움직이는 정보기관들은 북한의 움직임은 물론이고, 전력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던 터라 가지고 있는 정보망을 총동원했다.
정보기관들은 분주히 움직였고, 일부나마 정보가 밝혀졌다.
대한민국을 소리 없이 점령한 북한의 숨은 힘이 알려진 것이다.
북한이 전력을 완전히 은폐시킬 수 있던 것은 특별한 단체 때문이었다.
영문명으로는 몬스터 섀도, 한국어로는 매영이라고 불리는 단체였다.
매영은 북한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으며, 특별한 능력을 소유한 이들이 모여 만들어진 능력자 조직이라는 사실에 강대국은 또다시 침묵해야만 했다.
자신들만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능력자 조직이 북한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국의 정보기관 분석가들은 이 또한 전쟁을 막기 위한 공화국의 의도라고 밝혔다.
자신들이 알아낸 정보가 매영이 일부러 공개한 것임을 파악한 것은 정보의 출처 때문이었다.
사실 정보기관들이 알아낸 정보들은 그들의 노력으로 얻어진 것들이 아니었다.
대한민국과 공화국에 잠입해 있던 정보원들이 체포된 후, 어선에 실려 일본에 보내지면서 확보된 것들이었다.
강대국들은 비상이 걸렸다. 동북아시아의 패권에 변동을 일으킬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매영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각국의 이면 조직들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정보원들을 한반도로 들여보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공화국 내부의 정보를 바깥으로 전할 수는 없었다.
잠입한 능력자들은 한 명도 예외 없이 체포되어 수용소로 끌려갔고, 생사 여부조차 불분명했다.
아무리 정보원을 들여보내도 감감무소식이자, 정보기관들은 매영이 가진 힘을 일부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특급 능력자인 정보원들이 연락을 취하지도 못하고 제압당할 정도라면 매영을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매영 덕분에 세계는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강국이 탄생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막강한 군사력에, 세계 어느 강대국에도 뒤지지 않는 능력자 전력까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세계 역사에서 대한민국은 사라져 버렸다.
너무도 전격적인 일이라 세계가 놀랐지만, 대한민국의 멸망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북한의 강대한 군사력도, 막대한 능력을 지닌 이면 조직의 존재도 가려진 비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 * *
1982. 4. 30. (금) 18:30.
舊 대한민국 서울.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건가?”
“그놈의 아버지가 독립투사라고 알려져 있지만, 전부 날조된 것입니다. 그런 놈이 공화국의 2계급이라니,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마땅히 수용소로 보내야 합니다.”
“으음…….”
호위총국에서 남쪽으로 파견을 나온 추상철은 고심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전에 들은 말들이 전부 거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놓치기는 아까운 일이지…….’
끈 떨어진 연 신세라 남쪽으로 와야만 했다.
뇌물을 바쳐야 중앙으로 진출할 수 있으니, 지금 청탁을 하는 자가 건네는 금괴가 자신에게는 무엇보다 필요했다.
아무런 연고나 자금이 없는 자신에게 있어서 다시는 없을 기회이기도 했다.
‘어쩔 수 없지. 이대로 살 수는 없으니까.’
어차피 보고서에서 몇 줄만 바꾸면 되는 일기도 했기에 추상철은 결심했다. 점령지 주민들의 인생이야 빤한 것이기에 자신이 크게 신경을 쓸 이유도 없었다.
“그럼 그자와 가족을 수용소로 보내기만 하면 되는 건가?”
“그렇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럼 전 이만.”
자신의 부탁이 성공하자 방수환은 가지고 온 검은색 가방을 책상 위에 두고 사무실을 나섰다.
‘후후후, 역시 뇌물이 통하는군.’
사무실을 나선 방수환은 기분이 좋았다.
일제에 동조해 재산을 늘린 이는 다름 아닌 자신의 아버지였다. 아무도 모르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이를 처리했기에 마음이 놓인 것이다.
‘그놈은 내가 아직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을 모른다. 보급제가 실시되고는 있지만, 지하 창고에는 1년 정도의 식량과 생필품이 있으니 넉넉잡고 한 달 정도만 틀어박혀 있으면 되겠군.’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는 박상훈은 자신이 북쪽으로 끌려간 줄 알고 있을 것이다. 자칫 일을 그르칠 수 있기에 자신이 거짓으로 밀고한 박상훈이 북으로 끌려갈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서는 곤란했다.
‘쥐약을 먹었으니 앞으로는 내 부탁을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남쪽에 남아 있다가는 어떻게 될지도 모르니 기회를 봐서 그자를 따라 북으로 가야 한다.’
호위총국의 파견 장교인 추상철에게 10킬로그램의 금괴를 건넸다. 그럼에도 자신에게는 아직 200킬로그램에 달하는 금괴와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보석들이 남아 있었다.
추상철을 이용해 공화국에 대한 충성을 증명하고, 신분을 바꾼 후에 북쪽으로 이주하면 그다음은 아주 쉬웠다.
북쪽에서 무사히 지내다가 러시아연방의 연줄을 이용해 한반도를 떠나면 그만이었다.
‘후후후!’
오래전부터 계획해 온 일이 있다. 러시아로 넘어가 거래를 트는 일이다. 남아 있는 기반 때문에 망설였지만, 이제는 대한민국이 망한 마당이라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나로서는 오히려 잘된 일이지. 그것이 있으니까 러시아로 가기만 하면 기회를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이번 기회에 자신의 부친이 남긴 것을 러시아연방에 넘길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모르긴 몰라도 새롭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한자리 차지할 수 있을 터였다.
‘오랜만에 한잔 마셔야겠구나. 그동안 뜸했으니.’
집으로 돌아가 보드카를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로 가게 되면 그곳 생활에 적응을 해야 하니 말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건물을 나선 방수환은 도로를 가로질러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곳곳에 설치된 초소에서 검문을 실시했지만, 발급 받은 통행증을 보여줬기에 집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 * *
방수환이 떠난 후, 추상철은 보고서 하나를 작성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731부대의 부역자에 관한 보고서였다.
본래는 독립군 스파이로 731부대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잠입한 사람이지만, 추상철에 의해 부역한 자로 변조가 되었다.
보고서를 다 작성한 추상철은 다시 한 번 내용을 꼼꼼하게 검토했다.
‘이 정도면 알아차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가 관심 있게 볼 보고서도 아니고.’
“후우.”
쾅!
한숨을 크게 쉰 추상철은 떨리는 손으로 책상 위에 놓인 인장 하나를 집어 들고는 보고서 위에 찍었다. 일제 부역자 가족으로 변조된 박상훈의 보고서에는 5급이라는 인장이 선명히 찍혔다.
“부관!”
추상철은 밖에서 대기 중인 부관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이 보고서들을 상부로 올려라.”
추상철은 담당하고 있는 지역의 주민들에 대한 분류 보고서를 부관에게 주었다.
“알겠습니다.”
“이송은 언제부터 실시된다고 했지?”
“다음 달 말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전통이 왔습니다.”
“좋아. 차질이 없게 준비에 만전을 기하도록.”
“예, 대좌 동지!”
“그만 나가보게.”
척!
추상철의 부관은 경례를 한 뒤 곧바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부관이 가지고 나간 박상훈 일가에 대한 보고서는 다른 보고서와 섞여 곧바로 상부로 제출되었다.
‘어차피 운에 따라 좌우되는 인생이라지만, 정말 운이 없는 가족이군. 하지만 그리 원통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오.’
자신에게 뇌물을 바치며 다른 이를 무고한 자를 그냥 둘 생각은 없었다. 독립투사의 자손임이 분명한 이를 무고한다는 것은 약점이 잡힐 일이 있다는 것을 뜻했다.
말도 안 되는 죄를 덮어씌우려 했던 것을 보면 부역의 당사자는 방수환의 아버지가 틀림없었다.
‘무엇보다 10킬로그램이나 금괴를 건넨 것을 보면 그보다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하니 놈도 처리를 해야겠군. 살려두었다가는 내 약점을 잡으려고 할 놈이니 말이야.’
수작을 부리는 것이 빤했다. 놈을 처리하고 감추어둔 것들을 빼앗는다면 좀 더 큰 기회를 잡을 수 있기에 추상철의 눈가가 서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