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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Intro
삐이! 삐이!
무척이나 거슬리는 소리. 내 마지막 숨을 재촉하는 소리인 것 같다.
눈은 뜨고 있지만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다.
조명을 받은 실험 도구들이 뿌리는 시리도록 차가운 빛이 눈을 찌르지만, 움직일 수조차 없으니 말이다.
‘어디서 실수를 한 거지?’
계획대로 움직였고, 예상한 대로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어디서 틀어진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다.
― 아마 정신이 없을 거야. 그동안 잘해주었다. 너로 인해 우리가 세운 대계가 완벽해졌으니 말이다.
익숙한 목소리다. 보이지는 않지만 누군지 알 것 같다. 내가 세운 계획에서 전혀 고려하지 않던 자가 변수였다니…….
― 후후후, 분하겠지.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넌 태생부터 우리가 안배했던 존재니 말이다.
그런 건가.
내가 놈에 의해 안배된 존재였던 건가.
― 이제 수확할 때가 되었다. 네 안에 깃든 것들만 얻으면 우리는 세계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될 테니, 자비를 베풀어 고통 없이 보내주도록 하마. 후후후, 하긴 의식이 없을 테니 고통도 없겠지.
‘자비 같은 소리하고 있네. 의식이 있단 말이다. 헛소리할 거면 저 시퍼런 빛을 뿌리는 대롱들이나 치워라, 이 새끼야! 그나저나 우리라고 했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라는 복수형을 사용했다면 놈 말고도 다른 존재가 있다는 뜻이다. 놈은 내가 완전히 의식이 없을 것이라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이런 실수를 했겠지.
‘처음부터 찜찜했어. 내가 누군가에게 휘둘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계속해서 받았지…….’
너희만 준비한 것이 아니다. 나도 나름 준비를 해왔다.
세계를 수도 없이 오가며 시간의 흐름을 비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왔다.
그러다 단 한 번!
시간의 역전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찾아냈다.
‘후우, 이제 시작인가?’
연필 굵기의 대롱들이 다가온다.
조금 있으면 저 대롱들이 내 몸에 꽂힐 것이다. 좁은 면적에 수십 개의 마법진이 새겨진 대롱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뽑아낼 것이다.
‘시작하자. 비록 지금 가지고 있는 기억들 중에 일부는 봉인될 테지만, 영혼의 각인을 통해 내가 바라봐야 할 것들을 새긴다면 놈들을 잡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
영혼을 비트는 것과 동시에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을 창조해 각인을 시켰다.
푸푸푸푸푹!!
작업이 끝나자마자 수백 개의 대롱들이 전신에 꽂혔다.
‘아프지는 않아서 좋군.’
감각이 없는 탓인지, 살과 뼈를 뚫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고통이 없다.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나는 인과율을 위반했다. 영혼을 비튼 탓에 지금 시간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것이다.
이제 틈이 보일 것이다. 시간의 빈틈이 말이다.
‘시작했군.’
영혼으로 바라보는 세계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일렁이는 검은 혼돈이 세상을 완전히 갈랐다.
‘놈들이 어떤 안배를 했든 간섭을 덜 받기 위해서는 시간대가 중요하다.’
내가 가야 할 시간대는 정해져 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놈들의 간섭을 받았을 테니, 인과율이 정해지기 전인 태아 때다.
‘간다!’
쏴아아아!
모든 것이 분리되어 대롱을 따라 흘러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시간의 빈틈 안으로 영혼을 던졌다.
틈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정신이 희미해진다.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바꿀 것이다. 모든 것을…….’
제1장
1981. 12. 31. (목) 02:30.
청와대.
누군가가 다급하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 한참 잠에 빠져 있는 침대의 주인을 흔들어 깨웠다.
“으음.”
연말 종무식 후 술을 한잔 마시고 숙면을 취하고 있던 전두근은 몰려오는 수마를 물리치며 힘겹게 눈을 떴다.
전두근의 희미한 시야 사이로 낯익은 얼굴이 들어왔다.
“가, 각하!”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이가 비서실장임을 자각한 전두근은 정신을 차리려 애를 쓰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음, 무슨 일인가?”
“가, 각하…….”
“무슨 일이냐고 물었네.”
몸을 떨며 할 말을 찾지 못하는 비서실장을 향해 전두근이 노한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물었다.
“북한에서 선전포고를…….”
“뭐!!”
“자정을 기해 북한이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이런 미친놈들을 봤나. 그래, 군부에서는 어떻게 대응했나?”
군 출신 대통령답게 전두근은 군의 대응 상태를 먼저 확인했다.
“이미 휴전선은 완전히 뚫린 상태입니다. 그리고… 우리 군은 이미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뭐, 뭐라고 했나?”
침대에서 일어나며 얼핏 본 시계의 시간은 2시 30분을 조금 넘고 있었다. 고작 두 시간 만에 군이 항복을 했다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각하! 북한의 특수 군단이 수도 서울을 이미 점령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다른 주요 도시들도 대부분 점령이 끝났다고 합니다.”
육군의 전력만 60만 명이 넘어간다. 휴전선에 배치된 전력 말고도 주요 도시 외곽에는 군대가 주둔해 있다. 그런데 벌써 대부분 점령이 되었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치도 않은 소리!”
“사실입니다, 각하!”
“미치겠군. 그럼 미군은?”
기도 차지 않은 말이지만 비서실장이 지금 헛소리를 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전두근은 급히 되물었다.
“미군은 이미 한 시간 전에 북한 특수 군단에 완전히 무장해제를 당했습니다.”
“도,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전두근은 침대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파악된 바로는 자정에 북한군이 휴전선을 넘자마자 육군이 항복했고, 뒤를 이어 해군과 공군도 곧바로 항복을 선언했다고 합니다.”
전두근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곧바로 항복을 선언했다는 것은 별다른 전투가 없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말인가? 우리 군이 어떻게 싸워보지도 못하고 항복을 했다는 것인가?”
“선전포고와 동시에 주요 거주지에 있던 육군의 장성들과 당직을 서고 있던 군 수뇌부가 제압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해군과 공군 또한 북한의 특수전 전력에 의해 완전히 제압을 당한 상태라고 합니다.”
“북한의 특수 군단 말인가?”
“예, 각하! 특수 군단뿐만 아니라, 남파 간첩들이 움직여 전격적으로 진행이 됐다고 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되는 병력이 동원되었기에 그런 사태가 발생한 건가?”
“북한의 특수전 전력인 특수 군단의 병력만 30만 명, 그리고 남침과 동시에 휴전선을 넘어온 북한군의 전력이 무려 180만 명이라고 합니다.”
전두근은 한국전쟁 당시와 같은 기습 남침에 곧바로 후방으로 피신해야 함을 느꼈다.
“그럼 곧 떠나야겠군.”
“크흐흑!”
전두근의 말에 비서실장이 무릎을 꿇으며 흐느꼈다.
“왜 그러는가?”
“크흐흑, 각하!”
자신을 부르고는 눈물만 흘리는 비서실장이었다.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문제가 있다면 말하게.”
“제가 지금까지 드린 보고는 곧 들어올 북한 호위총국의 장교로부터 전해 들은 것들입니다. 수도 서울은 이미 적에게 완전히 점령을 당했습니다.”
“그게 무슨…….”
전두근이 이해가 가지 않아 되물으려 할 때였다.
“모두 체포해라!”
어리둥절해 있던 전두근은 비서실장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되묻지 않아도 되었다.
열려 있는 문 사이로 북한군 복장을 한 군인들이 소총을 들고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보고는 끝냈나?”
군인들의 뒤를 이어 들어온 북한군 장교가 비서실장을 향해 물었다.
“크흑, 끝났소.”
“기회를 주었으니 여한은 없겠지?”
“마지막 보고를 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소. 패전을 했지만 각하에 대한 예우는 지켜주길 바라오.”
“어차피 수용소에 갈 처지지만, 그렇게 하도록 하지.”
“고맙소.”
비서실장은 자신의 바람을 들어준 북한군 장교에게 고개를 숙였다. 옆에 있던 군인들이 그런 그를 끌고 나갔다.
“당신이 남한 괴뢰정권의 수장인 전두근이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바로 나다.”
아직도 대통령임을 내세우는 전두근을 향해 북한군 장교가 비웃음을 흘렸다.
“크크크,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군.”
“비서실장의 말이 사실인가?”
“그러니 내가 당신 앞에 있는 것이 아니겠소.”
“으음…….”
경비 병력과 경호 요원들을 뚫고 자신의 침실에 북한군의 장교가 서 있다.
비서실장의 말대로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이 북한에 의해 점령당한 것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꿈을 꾸는 것 같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금일 02시 30분을 기해 대한민국을 점령했소.”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전두근을 향해 북한군 장교가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사실이었군.”
전두근의 입에서 자조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서 옷을 입는 것이 좋을 것이오. 항복문서에 서명을 해야 하니 말이오. 당신 말대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잠옷 바람으로 국민들 앞에 서는 것은 우습지 않겠소?”
“으음, 알았다.”
군인 출신답게 전두근은 곧장 정신을 차리고 굳은 안색으로 옷장으로 향했다.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소. 당신이 자살을 한다면 수많은 이들이 죽게 될 테니 말이오.”
전두근의 발걸음이 멈춰졌다. 옷장에 숨겨진 권총으로 자살을 생각하던 전두근은 이를 악물었다.
치욕스러운 이름이 역사에 남지 않도록 자살을 할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런 꼴을 보려고 내가 이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었는데… 모두가 내 업보다. 크으으.’
주르륵!
전두근의 볼 위로 두 줄기 눈물이 흘렀다.
권력을 얻기 위해 무고한 국민들을 희생시킨 업보가 돌아오는 것 같았다.
Intro
삐이! 삐이!
무척이나 거슬리는 소리. 내 마지막 숨을 재촉하는 소리인 것 같다.
눈은 뜨고 있지만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다.
조명을 받은 실험 도구들이 뿌리는 시리도록 차가운 빛이 눈을 찌르지만, 움직일 수조차 없으니 말이다.
‘어디서 실수를 한 거지?’
계획대로 움직였고, 예상한 대로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어디서 틀어진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다.
― 아마 정신이 없을 거야. 그동안 잘해주었다. 너로 인해 우리가 세운 대계가 완벽해졌으니 말이다.
익숙한 목소리다. 보이지는 않지만 누군지 알 것 같다. 내가 세운 계획에서 전혀 고려하지 않던 자가 변수였다니…….
― 후후후, 분하겠지.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넌 태생부터 우리가 안배했던 존재니 말이다.
그런 건가.
내가 놈에 의해 안배된 존재였던 건가.
― 이제 수확할 때가 되었다. 네 안에 깃든 것들만 얻으면 우리는 세계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될 테니, 자비를 베풀어 고통 없이 보내주도록 하마. 후후후, 하긴 의식이 없을 테니 고통도 없겠지.
‘자비 같은 소리하고 있네. 의식이 있단 말이다. 헛소리할 거면 저 시퍼런 빛을 뿌리는 대롱들이나 치워라, 이 새끼야! 그나저나 우리라고 했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라는 복수형을 사용했다면 놈 말고도 다른 존재가 있다는 뜻이다. 놈은 내가 완전히 의식이 없을 것이라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이런 실수를 했겠지.
‘처음부터 찜찜했어. 내가 누군가에게 휘둘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계속해서 받았지…….’
너희만 준비한 것이 아니다. 나도 나름 준비를 해왔다.
세계를 수도 없이 오가며 시간의 흐름을 비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왔다.
그러다 단 한 번!
시간의 역전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찾아냈다.
‘후우, 이제 시작인가?’
연필 굵기의 대롱들이 다가온다.
조금 있으면 저 대롱들이 내 몸에 꽂힐 것이다. 좁은 면적에 수십 개의 마법진이 새겨진 대롱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뽑아낼 것이다.
‘시작하자. 비록 지금 가지고 있는 기억들 중에 일부는 봉인될 테지만, 영혼의 각인을 통해 내가 바라봐야 할 것들을 새긴다면 놈들을 잡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
영혼을 비트는 것과 동시에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을 창조해 각인을 시켰다.
푸푸푸푸푹!!
작업이 끝나자마자 수백 개의 대롱들이 전신에 꽂혔다.
‘아프지는 않아서 좋군.’
감각이 없는 탓인지, 살과 뼈를 뚫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고통이 없다.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나는 인과율을 위반했다. 영혼을 비튼 탓에 지금 시간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것이다.
이제 틈이 보일 것이다. 시간의 빈틈이 말이다.
‘시작했군.’
영혼으로 바라보는 세계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일렁이는 검은 혼돈이 세상을 완전히 갈랐다.
‘놈들이 어떤 안배를 했든 간섭을 덜 받기 위해서는 시간대가 중요하다.’
내가 가야 할 시간대는 정해져 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놈들의 간섭을 받았을 테니, 인과율이 정해지기 전인 태아 때다.
‘간다!’
쏴아아아!
모든 것이 분리되어 대롱을 따라 흘러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시간의 빈틈 안으로 영혼을 던졌다.
틈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정신이 희미해진다.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바꿀 것이다. 모든 것을…….’
제1장
1981. 12. 31. (목) 02:30.
청와대.
누군가가 다급하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 한참 잠에 빠져 있는 침대의 주인을 흔들어 깨웠다.
“으음.”
연말 종무식 후 술을 한잔 마시고 숙면을 취하고 있던 전두근은 몰려오는 수마를 물리치며 힘겹게 눈을 떴다.
전두근의 희미한 시야 사이로 낯익은 얼굴이 들어왔다.
“가, 각하!”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이가 비서실장임을 자각한 전두근은 정신을 차리려 애를 쓰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음, 무슨 일인가?”
“가, 각하…….”
“무슨 일이냐고 물었네.”
몸을 떨며 할 말을 찾지 못하는 비서실장을 향해 전두근이 노한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물었다.
“북한에서 선전포고를…….”
“뭐!!”
“자정을 기해 북한이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이런 미친놈들을 봤나. 그래, 군부에서는 어떻게 대응했나?”
군 출신 대통령답게 전두근은 군의 대응 상태를 먼저 확인했다.
“이미 휴전선은 완전히 뚫린 상태입니다. 그리고… 우리 군은 이미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뭐, 뭐라고 했나?”
침대에서 일어나며 얼핏 본 시계의 시간은 2시 30분을 조금 넘고 있었다. 고작 두 시간 만에 군이 항복을 했다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각하! 북한의 특수 군단이 수도 서울을 이미 점령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다른 주요 도시들도 대부분 점령이 끝났다고 합니다.”
육군의 전력만 60만 명이 넘어간다. 휴전선에 배치된 전력 말고도 주요 도시 외곽에는 군대가 주둔해 있다. 그런데 벌써 대부분 점령이 되었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치도 않은 소리!”
“사실입니다, 각하!”
“미치겠군. 그럼 미군은?”
기도 차지 않은 말이지만 비서실장이 지금 헛소리를 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전두근은 급히 되물었다.
“미군은 이미 한 시간 전에 북한 특수 군단에 완전히 무장해제를 당했습니다.”
“도,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전두근은 침대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파악된 바로는 자정에 북한군이 휴전선을 넘자마자 육군이 항복했고, 뒤를 이어 해군과 공군도 곧바로 항복을 선언했다고 합니다.”
전두근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곧바로 항복을 선언했다는 것은 별다른 전투가 없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말인가? 우리 군이 어떻게 싸워보지도 못하고 항복을 했다는 것인가?”
“선전포고와 동시에 주요 거주지에 있던 육군의 장성들과 당직을 서고 있던 군 수뇌부가 제압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해군과 공군 또한 북한의 특수전 전력에 의해 완전히 제압을 당한 상태라고 합니다.”
“북한의 특수 군단 말인가?”
“예, 각하! 특수 군단뿐만 아니라, 남파 간첩들이 움직여 전격적으로 진행이 됐다고 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되는 병력이 동원되었기에 그런 사태가 발생한 건가?”
“북한의 특수전 전력인 특수 군단의 병력만 30만 명, 그리고 남침과 동시에 휴전선을 넘어온 북한군의 전력이 무려 180만 명이라고 합니다.”
전두근은 한국전쟁 당시와 같은 기습 남침에 곧바로 후방으로 피신해야 함을 느꼈다.
“그럼 곧 떠나야겠군.”
“크흐흑!”
전두근의 말에 비서실장이 무릎을 꿇으며 흐느꼈다.
“왜 그러는가?”
“크흐흑, 각하!”
자신을 부르고는 눈물만 흘리는 비서실장이었다.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문제가 있다면 말하게.”
“제가 지금까지 드린 보고는 곧 들어올 북한 호위총국의 장교로부터 전해 들은 것들입니다. 수도 서울은 이미 적에게 완전히 점령을 당했습니다.”
“그게 무슨…….”
전두근이 이해가 가지 않아 되물으려 할 때였다.
“모두 체포해라!”
어리둥절해 있던 전두근은 비서실장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되묻지 않아도 되었다.
열려 있는 문 사이로 북한군 복장을 한 군인들이 소총을 들고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보고는 끝냈나?”
군인들의 뒤를 이어 들어온 북한군 장교가 비서실장을 향해 물었다.
“크흑, 끝났소.”
“기회를 주었으니 여한은 없겠지?”
“마지막 보고를 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소. 패전을 했지만 각하에 대한 예우는 지켜주길 바라오.”
“어차피 수용소에 갈 처지지만, 그렇게 하도록 하지.”
“고맙소.”
비서실장은 자신의 바람을 들어준 북한군 장교에게 고개를 숙였다. 옆에 있던 군인들이 그런 그를 끌고 나갔다.
“당신이 남한 괴뢰정권의 수장인 전두근이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바로 나다.”
아직도 대통령임을 내세우는 전두근을 향해 북한군 장교가 비웃음을 흘렸다.
“크크크,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군.”
“비서실장의 말이 사실인가?”
“그러니 내가 당신 앞에 있는 것이 아니겠소.”
“으음…….”
경비 병력과 경호 요원들을 뚫고 자신의 침실에 북한군의 장교가 서 있다.
비서실장의 말대로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이 북한에 의해 점령당한 것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꿈을 꾸는 것 같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금일 02시 30분을 기해 대한민국을 점령했소.”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전두근을 향해 북한군 장교가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사실이었군.”
전두근의 입에서 자조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서 옷을 입는 것이 좋을 것이오. 항복문서에 서명을 해야 하니 말이오. 당신 말대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잠옷 바람으로 국민들 앞에 서는 것은 우습지 않겠소?”
“으음, 알았다.”
군인 출신답게 전두근은 곧장 정신을 차리고 굳은 안색으로 옷장으로 향했다.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소. 당신이 자살을 한다면 수많은 이들이 죽게 될 테니 말이오.”
전두근의 발걸음이 멈춰졌다. 옷장에 숨겨진 권총으로 자살을 생각하던 전두근은 이를 악물었다.
치욕스러운 이름이 역사에 남지 않도록 자살을 할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런 꼴을 보려고 내가 이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었는데… 모두가 내 업보다. 크으으.’
주르륵!
전두근의 볼 위로 두 줄기 눈물이 흘렀다.
권력을 얻기 위해 무고한 국민들을 희생시킨 업보가 돌아오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