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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毒)과 악(惡) (1)
현태는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양평의 고급 별장에 다다랐다. 강남에서 양평까지는 도로가 잘 닦여 있기 때문에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렇기에 경춘가도에 위치한 양평이나 가평은 라이더들의 천국이다. 서울과 근접해 있지만, 강원도 못지않게 풍경도 수려했다.
강원도는 웅장하다면 가평, 양평은 아기자기해서 보는 맛이 있다고 해야 할까. 하여 연예인, 정치인, 기업인 등 돈 좀 있다는 양반들은 이곳에 필수적으로 별장이 있었다.
현태는 경주용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헬멧을 벗고 차고에 세워진 차들을 보았다.
람보르기니 한 대, BMW 한 대, 허머 한 대, 이곳과는 무척이나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승합차 한 대, 고급 세단 세 대.
“새끼들, 다들 와 있네.”
현태는 피식 웃고는 별장 내부로 걸음을 옮겼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천우가 모는 오토바이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개새끼…… 졸라게 악착같네.”
현태는 비릿하게 웃었다.
저 자식에게 이곳은 인생의 종착지가 될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불나방처럼 날아드는 꼴이라니. 솔직히 놈의 변한 모습을 보고는 많이 놀라기는 했다. 혼자서 열다섯 명이나 되는 동료들을 쓰러트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설마해서 모은 애들이었다. 현미나, 진성, 상태가 아니었다면 결코 폭주족들을 모으지 않았을 것이다. 서너 명만 있으면 충분하니까.
하지만……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는 말이 옳다는 것을 오늘 깨달았다. 열다섯 명이나 되는 인원이 한 명에게 나가떨어지는 모습은 머리털 나고 처음 봤다. 설사 프로 이종 격투기 선수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해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을 저 왕따가 해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저런 호리호리한 몸매로 휘두르는 주먹은 괴력, 그 자체였다. 마약이라도 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힘이었다.
운동을 배웠다고 해도 그 짧은 시간 동안 저토록 강해질 수는 없었다.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지만, 그 내력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저 자식은 이제 죽는다.
놈은 이미 죽으려 옥상에서 뛰어내린 경력이 있다. 다시 죽는다고 해서 억울하지는 않겠지.
그 자식들한테 돈도 두둑하게 받을 테고.
계단을 올라가자 너른 정원이 나왔다. 족히 100평 가까이 되는 정원이다. 관리가 잘된 잔디가 쫙 깔려 있고, 작지만 예쁜 분수도 있다. 분수 위로 물이 콸콸콸 쏟아진다. 안면도에서 사 온 고급 소나무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질서 있게 우뚝 솟아 있었다.
척 봐도 전원적인 별장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정원에는 딱 하나의 탁자가 우두커니 놓여 있고, 그 앞에서는 세 명의 젊은 남녀가 우하하게 차를 마신다.
바로 고현미, 김진성, 현상태였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대단한 재력가의 자식들. 물론 자신도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부모들끼리 자주 만나니 자식들도 어쩔 수 없이 얼굴을 자주 볼 수밖에 없었다.
친하다는 느낌보다는 미래 전략적으로 서로가 돕는 사이랄까. 그러다가도 누군가 한 명이 몰락한다면 쳐다도 보지 않을 사이이기도 했다.
이들의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오로지 돈과 권력 때문이다.
“어케 됐냐?”
고현미는 천우에게 찢긴 아랫입술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일주일이 넘게 지나서인지 붓기는 많이 가라앉았다. 아직 흉터가 남아 있지만,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 보나마나 성형을 할 테니.
“오고 있어.”
“오고 있어?”
“그래.”
“개새끼, 이번에는 진짜 죽여 버릴 테다.”
현미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옥상에서 떨어졌을 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그때의 충격과 공포는 며칠간 제대로 잠도 못 잘 정도였다.
무엇보다 도저히 자존심이 상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하여 상태에게 거금을 주기로 하고 그의 똘마니들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설마 그들까지도 개박살이 날 줄은 몰랐지만.
옆에 앉아 있는 상태도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었다.
그날, 미쳐 버린 새끼들 때문에 다섯 명이나 죽었다. 조직원이야 죽어도 얼마든지 대체를 할 수 있지만, 김 실장이 죽은 것이 가장 큰 타격이었다.
김 실장이 전화를 받지 않자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김 실장 왜 전화를 안 받냐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김 실장이 죽었다고. 누군가 집을 습격했다고.
“너는 다친 데 없고?”
아빠는 꽤 놀란 모양이다. 평상시에는 묻지도 않던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저는 괜찮아요. 하지만 다섯 명이나 죽었어요.”
“누군지 알아?”
아빠가 다시 물었다.
“짐작은 가요.”
왕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왕따가 저택에 침입을 했을 거란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의문이 가는 것은 왜 왕따를 처리하려던 혁진이라는 새끼가 왜 미쳤느냐는 것이다. 그와 같이 간 자식은 어디로 갔고…….
뭐, 이젠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천우 자식만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날 테니까.
“나는 일주일 뒤에 한국에 돌아간다. 그러니까…… 이번 일은 네가 처리해. 조직원들은 얼마든지 써도 좋다.”
“정말요? 제가 그래도 돼요?”
“그래, 내 후계자는 너잖아. 이제부터 슬슬 밑에 놈들 다스리는 법도 배워야지.”
아빠의 말에 상태는 기분이 풀어졌다. 이제 공식적으로 백 명이 넘는 조직원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가 있게 된 것이다. 비록 일시적인 것이지만, 그게 어디인가.
지금 그와 현미, 진성의 뒤에 서 있는 아홉 명의 사내는 모두 조직에서 손꼽히는 칼잡이들이었다. 총이라도 쓰지 않는 이상 저들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할 수가 없다.
“자, 이제 입금들 해.”
상태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두당 오천이다. 도합 1억 5천. 일당치고는 나쁘지 않다. 물론 5천 정도는 입막음용으로 풀어야겠지만.
저 뒤에 서 있는 형사들.
상태는 꼼꼼했다. 하여 만에 하나 벌어질 일에 대해서도 미리 대비를 마쳤다.
“저 새끼가 골로 가는 것을 보면 바로 입금할게.”
진성이 말했다.
“그러든지. 근데 같은 반 친구가 꼭 죽는 꼴을 봐야겠어?”
“친구는 개뿔. 왕따 새끼가 무슨 친구야?”
진성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 진성의 모습을 보면서 상태는 비릿하게 웃었다.
전교회장이라는 새끼가 참 잔인해요. 그나저나 너도 참 안됐다. 한 번도 왕따 새끼한테 공부로는 이겨보지 못하고.
“자, 그럼 우리 즐겁게 왕따 새끼를 맞이하자고. 일어나, 일어나. 박수라도 쳐줘야지.”
속내를 전혀 드러내지 않은 채 상태가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서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김경식과 오태수는 강남 경찰서 강력반 형사다. 꽤나 실적도 좋은 베테랑이다. 다만, 그렇다고 꼭 평판이 좋지만은 않다. 고과 점수를 높이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에 후배들에게는 좋은 귀감이 되지는 못한 것이다.
또한 누구나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
김경식과 오태수는 경찰청장 이수남의 딸랑이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꽤 오만방자하다. 이수남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믿고 경찰서장의 말조차 듣지 않을 때가 빈번했다. 당연히 어지간한 선배들이 하는 말은 콧방귀를 뀌어버린다. 그렇기에 그들을 곱게 보는 선후배들은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은 어중간한 선후배들에게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나마 신경을 쓴다면 승급의 관련된 사람들뿐이다.
이수남이라는 확실한 줄이 있긴 하지만, 권력이라는 것이 언제 바뀔지 모를 일이다. 줄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이것참, 어린애들 조폭 놀이에 어른인 우리가 끼어도 되는 거랍니까?”
후배인 오태수가 투덜거렸다.
“저것들 보고도 어린애들 조폭 놀이처럼 보이냐?”
선배인 김경식이 턱으로 아홉 명의 건달을 가리켰다.
오태수가 그들을 힐끗 바라봤다. 분위기가 묘하다. 입고 있는 옷은 영락없는 건달이지만, 분위기는 뭐랄까…… 잘 훈련된 군인 같다고나 할까. 형사로서 꽤 짬밥을 먹었기에 그의 느낌은 꽤 잘 맞는 편이었다.
보통 저런 자들을 킬러라고 부른다.
강력반이기는 하지만 저런 놈들과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다. 놈들의 일처리가 은밀하기도 하거니와, 워낙 살벌하여 저들이 저지른 살인 사건과는 어지간하면 엮이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킬러가 한두 명도 아닌 아홉 명이나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설마 킬러?”
“딱 보면 모르냐?”
김경식이 핀잔을 줬다.
“왜 저런 자들을 아홉 명이나 불렀을까요?”
“어휴, 이 맹꽁아.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냐?”
“네? 뭐가…….”
오태수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다.
“우리를 왜 불렀겠냐?”
“글쎄요.”
“뒤처리를 하려고 시킨 거다.”
오태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씨발,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아. 아주 엿 같은 일에 엮일 것 같다.”
“자세히 좀 얘기해 주세요.”
“우리 도련님들께서 사고 치려고 하잖아.”
“그게 뭐냐니까요. 아!”
그제야 오태수도 감이 온 모양이다.
자신들에게 뒤처리를 시킨다.
앞서 킬러들이 아홉 명이나 와 있다.
……저 어린 도련님들이 생각한 게임은 섬뜩하고도 잔인한 것이었다.
“이번 일로 우리는 빼도 박도 못하고 저들 가문에 발을 담그게 된 거야.”
“하아, 정말 미치겠네.”
오태수는 양손으로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어쩔 수 없지. 개가 되자. 개로 사는 대신에…… 우리는 평생 배부르게 살 수 있을 거야.”
* * *
천우는 오토바이를 멈춰 세웠다. 그는 고개를 들어서 고급 별장을 어이없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가 천혁이던 시절에 다니던 학교와는 차원이 다르게 노는 아이들이다. 예전 학교에서는 겨우 주먹다짐이 전부였다. 그러다 좀 더 일이 커지면 패거리를 불러서 패싸움을 하는 정도.
그러다 보니 이처럼 누군가를 꼬여내기 위해서 거창하게 일을 벌이지는 않았다.
그래. 있는 집 도련님들이라 다르다, 이거지? 그놈의 돈지랄,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봐주지.
천우는 별장의 정문으로 다가갔다. 고급 외제차가 줄줄이 서 있다.
정말 욕이 절로 나온다. 안에 누가 있을지는 대충 예상이 간다. 반에서 이 정도로 돈지랄을 할 수 있는 아이들을 추려보면 다섯 명 정도가 된다. 그중에서 세 놈이 자신에게 호되게 당했다.
그렇지만 면허도 따지 못하는 놈들이 고급 외제 스포츠카라니. 외국인 면허증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끼익―
천우는 바닥에 침을 탁, 뱉고는 정문을 열어 돌로 만든 계단 안쪽으로 올라갔다. 계단 끝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가 우뚝 서 있다. 눈매가 상당히 날카롭다. 살기가 풀풀 풍긴다. 마치 살쾡이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는 자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런 몸이 되고 나니 살기라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뱉는 살기는 미미한 수준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떠올려 보는 ‘저 새끼 진심 죽여 버리고 싶다’ 정도랄까. 조금 과하다 싶으면 싸움이 붙을 때였다. 그때는 조금 더 살기가 짙게 흘러나온다. 그렇다고 해도 신경을 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살인을 해본 자는 그렇지 않다.
살인을 한 자는 말 그대로 짐승과 비슷한 기운을 가지게 된다. 먼 옛날 야생에서 사냥할 적의 인간으로 되돌아간다. 살인을 함으로써 본성을 깨운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저벅저벅.
사내는 돌계단을 내려왔다. 가타부타 말도 없다.
이럴 때는 분위기를 풀 겸 나불나불 떠들어줘도 좋을 텐데, 그런 취미는 없는 모양이다.
사내가 가죽 장갑을 낀 양손으로 낚싯줄을 쭉 당겨 보인다. 꼴을 보아하니 자신을 교살시키려는 모양이다.
상대를 가장 고통스럽게 죽이는 방법 중에 하나. 교살을 당하는 사람은 그 짧은 시간이 억만년보다 길게 느껴진다. 또 그사이에 온갖 생각이 뇌리를 지배한다고 한다.
죽고 나서도 깨끗한 몸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 칠공이 확 열리며 온갖 노폐물이 육체 밖으로 뿜어져 나온다. ‘참혹하다’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천우는 별장 밖에서 주운 낫을 들었다. 녹슨 낫이었다. 날은 이빨이 다 빠졌다. 잡초를 제거하다 날이 들지 않아 아무렇게나 버린 듯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쓰레기이겠지만…….
천우의 몸이 움직였다.
사내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퍽!
그의 정수리에 녹슨 낫이 꽂혔다.
이렇게 천우에게는 심플하고 사용하기 좋은 무기가 된다.
자, 가볼까.
현태는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양평의 고급 별장에 다다랐다. 강남에서 양평까지는 도로가 잘 닦여 있기 때문에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렇기에 경춘가도에 위치한 양평이나 가평은 라이더들의 천국이다. 서울과 근접해 있지만, 강원도 못지않게 풍경도 수려했다.
강원도는 웅장하다면 가평, 양평은 아기자기해서 보는 맛이 있다고 해야 할까. 하여 연예인, 정치인, 기업인 등 돈 좀 있다는 양반들은 이곳에 필수적으로 별장이 있었다.
현태는 경주용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헬멧을 벗고 차고에 세워진 차들을 보았다.
람보르기니 한 대, BMW 한 대, 허머 한 대, 이곳과는 무척이나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승합차 한 대, 고급 세단 세 대.
“새끼들, 다들 와 있네.”
현태는 피식 웃고는 별장 내부로 걸음을 옮겼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천우가 모는 오토바이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개새끼…… 졸라게 악착같네.”
현태는 비릿하게 웃었다.
저 자식에게 이곳은 인생의 종착지가 될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불나방처럼 날아드는 꼴이라니. 솔직히 놈의 변한 모습을 보고는 많이 놀라기는 했다. 혼자서 열다섯 명이나 되는 동료들을 쓰러트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설마해서 모은 애들이었다. 현미나, 진성, 상태가 아니었다면 결코 폭주족들을 모으지 않았을 것이다. 서너 명만 있으면 충분하니까.
하지만……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는 말이 옳다는 것을 오늘 깨달았다. 열다섯 명이나 되는 인원이 한 명에게 나가떨어지는 모습은 머리털 나고 처음 봤다. 설사 프로 이종 격투기 선수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해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을 저 왕따가 해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저런 호리호리한 몸매로 휘두르는 주먹은 괴력, 그 자체였다. 마약이라도 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힘이었다.
운동을 배웠다고 해도 그 짧은 시간 동안 저토록 강해질 수는 없었다.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지만, 그 내력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저 자식은 이제 죽는다.
놈은 이미 죽으려 옥상에서 뛰어내린 경력이 있다. 다시 죽는다고 해서 억울하지는 않겠지.
그 자식들한테 돈도 두둑하게 받을 테고.
계단을 올라가자 너른 정원이 나왔다. 족히 100평 가까이 되는 정원이다. 관리가 잘된 잔디가 쫙 깔려 있고, 작지만 예쁜 분수도 있다. 분수 위로 물이 콸콸콸 쏟아진다. 안면도에서 사 온 고급 소나무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질서 있게 우뚝 솟아 있었다.
척 봐도 전원적인 별장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정원에는 딱 하나의 탁자가 우두커니 놓여 있고, 그 앞에서는 세 명의 젊은 남녀가 우하하게 차를 마신다.
바로 고현미, 김진성, 현상태였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대단한 재력가의 자식들. 물론 자신도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부모들끼리 자주 만나니 자식들도 어쩔 수 없이 얼굴을 자주 볼 수밖에 없었다.
친하다는 느낌보다는 미래 전략적으로 서로가 돕는 사이랄까. 그러다가도 누군가 한 명이 몰락한다면 쳐다도 보지 않을 사이이기도 했다.
이들의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오로지 돈과 권력 때문이다.
“어케 됐냐?”
고현미는 천우에게 찢긴 아랫입술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일주일이 넘게 지나서인지 붓기는 많이 가라앉았다. 아직 흉터가 남아 있지만,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 보나마나 성형을 할 테니.
“오고 있어.”
“오고 있어?”
“그래.”
“개새끼, 이번에는 진짜 죽여 버릴 테다.”
현미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옥상에서 떨어졌을 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그때의 충격과 공포는 며칠간 제대로 잠도 못 잘 정도였다.
무엇보다 도저히 자존심이 상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하여 상태에게 거금을 주기로 하고 그의 똘마니들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설마 그들까지도 개박살이 날 줄은 몰랐지만.
옆에 앉아 있는 상태도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었다.
그날, 미쳐 버린 새끼들 때문에 다섯 명이나 죽었다. 조직원이야 죽어도 얼마든지 대체를 할 수 있지만, 김 실장이 죽은 것이 가장 큰 타격이었다.
김 실장이 전화를 받지 않자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김 실장 왜 전화를 안 받냐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김 실장이 죽었다고. 누군가 집을 습격했다고.
“너는 다친 데 없고?”
아빠는 꽤 놀란 모양이다. 평상시에는 묻지도 않던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저는 괜찮아요. 하지만 다섯 명이나 죽었어요.”
“누군지 알아?”
아빠가 다시 물었다.
“짐작은 가요.”
왕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왕따가 저택에 침입을 했을 거란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의문이 가는 것은 왜 왕따를 처리하려던 혁진이라는 새끼가 왜 미쳤느냐는 것이다. 그와 같이 간 자식은 어디로 갔고…….
뭐, 이젠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천우 자식만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날 테니까.
“나는 일주일 뒤에 한국에 돌아간다. 그러니까…… 이번 일은 네가 처리해. 조직원들은 얼마든지 써도 좋다.”
“정말요? 제가 그래도 돼요?”
“그래, 내 후계자는 너잖아. 이제부터 슬슬 밑에 놈들 다스리는 법도 배워야지.”
아빠의 말에 상태는 기분이 풀어졌다. 이제 공식적으로 백 명이 넘는 조직원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가 있게 된 것이다. 비록 일시적인 것이지만, 그게 어디인가.
지금 그와 현미, 진성의 뒤에 서 있는 아홉 명의 사내는 모두 조직에서 손꼽히는 칼잡이들이었다. 총이라도 쓰지 않는 이상 저들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할 수가 없다.
“자, 이제 입금들 해.”
상태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두당 오천이다. 도합 1억 5천. 일당치고는 나쁘지 않다. 물론 5천 정도는 입막음용으로 풀어야겠지만.
저 뒤에 서 있는 형사들.
상태는 꼼꼼했다. 하여 만에 하나 벌어질 일에 대해서도 미리 대비를 마쳤다.
“저 새끼가 골로 가는 것을 보면 바로 입금할게.”
진성이 말했다.
“그러든지. 근데 같은 반 친구가 꼭 죽는 꼴을 봐야겠어?”
“친구는 개뿔. 왕따 새끼가 무슨 친구야?”
진성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 진성의 모습을 보면서 상태는 비릿하게 웃었다.
전교회장이라는 새끼가 참 잔인해요. 그나저나 너도 참 안됐다. 한 번도 왕따 새끼한테 공부로는 이겨보지 못하고.
“자, 그럼 우리 즐겁게 왕따 새끼를 맞이하자고. 일어나, 일어나. 박수라도 쳐줘야지.”
속내를 전혀 드러내지 않은 채 상태가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서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김경식과 오태수는 강남 경찰서 강력반 형사다. 꽤나 실적도 좋은 베테랑이다. 다만, 그렇다고 꼭 평판이 좋지만은 않다. 고과 점수를 높이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에 후배들에게는 좋은 귀감이 되지는 못한 것이다.
또한 누구나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
김경식과 오태수는 경찰청장 이수남의 딸랑이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꽤 오만방자하다. 이수남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믿고 경찰서장의 말조차 듣지 않을 때가 빈번했다. 당연히 어지간한 선배들이 하는 말은 콧방귀를 뀌어버린다. 그렇기에 그들을 곱게 보는 선후배들은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은 어중간한 선후배들에게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나마 신경을 쓴다면 승급의 관련된 사람들뿐이다.
이수남이라는 확실한 줄이 있긴 하지만, 권력이라는 것이 언제 바뀔지 모를 일이다. 줄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이것참, 어린애들 조폭 놀이에 어른인 우리가 끼어도 되는 거랍니까?”
후배인 오태수가 투덜거렸다.
“저것들 보고도 어린애들 조폭 놀이처럼 보이냐?”
선배인 김경식이 턱으로 아홉 명의 건달을 가리켰다.
오태수가 그들을 힐끗 바라봤다. 분위기가 묘하다. 입고 있는 옷은 영락없는 건달이지만, 분위기는 뭐랄까…… 잘 훈련된 군인 같다고나 할까. 형사로서 꽤 짬밥을 먹었기에 그의 느낌은 꽤 잘 맞는 편이었다.
보통 저런 자들을 킬러라고 부른다.
강력반이기는 하지만 저런 놈들과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다. 놈들의 일처리가 은밀하기도 하거니와, 워낙 살벌하여 저들이 저지른 살인 사건과는 어지간하면 엮이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킬러가 한두 명도 아닌 아홉 명이나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설마 킬러?”
“딱 보면 모르냐?”
김경식이 핀잔을 줬다.
“왜 저런 자들을 아홉 명이나 불렀을까요?”
“어휴, 이 맹꽁아.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냐?”
“네? 뭐가…….”
오태수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다.
“우리를 왜 불렀겠냐?”
“글쎄요.”
“뒤처리를 하려고 시킨 거다.”
오태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씨발,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아. 아주 엿 같은 일에 엮일 것 같다.”
“자세히 좀 얘기해 주세요.”
“우리 도련님들께서 사고 치려고 하잖아.”
“그게 뭐냐니까요. 아!”
그제야 오태수도 감이 온 모양이다.
자신들에게 뒤처리를 시킨다.
앞서 킬러들이 아홉 명이나 와 있다.
……저 어린 도련님들이 생각한 게임은 섬뜩하고도 잔인한 것이었다.
“이번 일로 우리는 빼도 박도 못하고 저들 가문에 발을 담그게 된 거야.”
“하아, 정말 미치겠네.”
오태수는 양손으로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어쩔 수 없지. 개가 되자. 개로 사는 대신에…… 우리는 평생 배부르게 살 수 있을 거야.”
* * *
천우는 오토바이를 멈춰 세웠다. 그는 고개를 들어서 고급 별장을 어이없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가 천혁이던 시절에 다니던 학교와는 차원이 다르게 노는 아이들이다. 예전 학교에서는 겨우 주먹다짐이 전부였다. 그러다 좀 더 일이 커지면 패거리를 불러서 패싸움을 하는 정도.
그러다 보니 이처럼 누군가를 꼬여내기 위해서 거창하게 일을 벌이지는 않았다.
그래. 있는 집 도련님들이라 다르다, 이거지? 그놈의 돈지랄,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봐주지.
천우는 별장의 정문으로 다가갔다. 고급 외제차가 줄줄이 서 있다.
정말 욕이 절로 나온다. 안에 누가 있을지는 대충 예상이 간다. 반에서 이 정도로 돈지랄을 할 수 있는 아이들을 추려보면 다섯 명 정도가 된다. 그중에서 세 놈이 자신에게 호되게 당했다.
그렇지만 면허도 따지 못하는 놈들이 고급 외제 스포츠카라니. 외국인 면허증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끼익―
천우는 바닥에 침을 탁, 뱉고는 정문을 열어 돌로 만든 계단 안쪽으로 올라갔다. 계단 끝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가 우뚝 서 있다. 눈매가 상당히 날카롭다. 살기가 풀풀 풍긴다. 마치 살쾡이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는 자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런 몸이 되고 나니 살기라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뱉는 살기는 미미한 수준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떠올려 보는 ‘저 새끼 진심 죽여 버리고 싶다’ 정도랄까. 조금 과하다 싶으면 싸움이 붙을 때였다. 그때는 조금 더 살기가 짙게 흘러나온다. 그렇다고 해도 신경을 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살인을 해본 자는 그렇지 않다.
살인을 한 자는 말 그대로 짐승과 비슷한 기운을 가지게 된다. 먼 옛날 야생에서 사냥할 적의 인간으로 되돌아간다. 살인을 함으로써 본성을 깨운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저벅저벅.
사내는 돌계단을 내려왔다. 가타부타 말도 없다.
이럴 때는 분위기를 풀 겸 나불나불 떠들어줘도 좋을 텐데, 그런 취미는 없는 모양이다.
사내가 가죽 장갑을 낀 양손으로 낚싯줄을 쭉 당겨 보인다. 꼴을 보아하니 자신을 교살시키려는 모양이다.
상대를 가장 고통스럽게 죽이는 방법 중에 하나. 교살을 당하는 사람은 그 짧은 시간이 억만년보다 길게 느껴진다. 또 그사이에 온갖 생각이 뇌리를 지배한다고 한다.
죽고 나서도 깨끗한 몸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 칠공이 확 열리며 온갖 노폐물이 육체 밖으로 뿜어져 나온다. ‘참혹하다’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천우는 별장 밖에서 주운 낫을 들었다. 녹슨 낫이었다. 날은 이빨이 다 빠졌다. 잡초를 제거하다 날이 들지 않아 아무렇게나 버린 듯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쓰레기이겠지만…….
천우의 몸이 움직였다.
사내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퍽!
그의 정수리에 녹슨 낫이 꽂혔다.
이렇게 천우에게는 심플하고 사용하기 좋은 무기가 된다.
자,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