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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파이터 (1)



천우는 물끄러미 현태를 바라봤다. 현태도 천우를 바라봤다.
“야, 너 대갈통이 빠개져서 확 돌아버렸다면서?”
그 말에 현태의 주변에 있던 폭주족 놈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도대체 이놈들과는 웃음 코드가 안 맞아서 뭘 못하겠다. 왜 한 놈이 허튼소리를 하면 다들 영혼 없는 좀비처럼 어이가 없을 정도의 리액션을 하면서 웃는 건데?
천우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가 지금 서 있는 곳은 한강 둔치였다. 날씨가 꽤 좋아서 사람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주변에는 사람들이 얼마 없다. 아마도 저 새끼들이 다 내쫓은 모양이다.
그나마 한구석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눈치를 살피듯 고개만 힐끗거릴 뿐, 다가오려 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현태와 열다섯 정도의 폭주족들이 이룬 업적이었다.
박수를 쳐주고 싶다. 역시 강남의 폭주족.
오토바이도 여느 애들과는 다르게 하나같이 번들번들거린다. 최저가만 400만 원 이상에 이것저것 옵션을 달면 천만 원은 예사로 넘어가는 경주용 오토바이들이다.
그런 오토바이가 이십여 대.
다른 지역의 폭주족들은 오토바이만 보고도 기가 죽어서 말도 걸지 못할 듯하다.
그런 돈 많은 놈들이 불량스런 모습으로 설쳐 대니 주변으로 사람들이 다가오지 못하는 것이겠지.
오토바이에 대해서 잘 모르는 천우가 보기에도 확실히 남다른 무언가가 이놈들에게는 있었다.
한창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는 천우의 태도에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현태가 욕설과 함께 입을 열었다.
“씨발 놈 보게? 정말 돌았나 보네. 감히 내가 말을 하는데도 씹어버리고.”
현태의 옆으로 태희가 다가갔다. 마치 아양을 떠는 고양이처럼 현태의 무릎에 풀썩 앉는다. 그런 태희의 목덜미를 현태는 부드럽게 쓸었다.
“내가 말했잖아,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고.”
아담한 몸집에 귀여운 스타일의 태희가 현태의 품에 폭 안겼다. 다른 이들이 보고 있어도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마치 일부러 보라는 듯이 행동한다.
“그런데 있잖아, 저 자식이 내 목을 꽉 잡았떠. 나더러 죽여 버린다고 했떠.”
태희는 혀 짧은 말투로 ‘이랬쪄요, 저랬쪄요’ 하며 현태에게 일러바치듯 고자질했다. 현태는 아기를 상대하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달래줬다.
“어이, 덩어리.”
그 꼴을 더는 봐줄 수 없다는 듯이 천우는 현태에게 손짓을 했다.
현태는 주위를 돌아본 후, 자신을 검지로 가리켰다.
“그럼 내가 여기 아는 사람이 너 말고 또 있냐? 너, 덩어리. 도대체 왜 나를 부른 거야?”
“아니, 이 씨~벌 놈이…… 애완견이면 애완견답게 굴어야지. 뭐? 나를 왜 부른 거야?”
애완견이라…….
천우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어째 노예보다 더 굴욕적인 단어였다. 평소 아무렇지도 않게 쓰던 단어가 이토록 엿 같은 기분이 들게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 노예는 그래도 사람을 말하는 거잖아. 애완견은 짐승이고.
그런데 나더러 개새끼라고? 니가 키우는?
“애완견이라…….”
“그래, 이 새끼야. 좋아, 간만에 해보자. 거기서 영역 표시나 해봐. 저기 전봇대가 좋겠네.”
이건 또 무슨 소리?
“영역 표시?”
“그래, 네가 자주 하던 것 있잖아. 큭큭큭.”
“아이, 우리 자기는 저질. 나 그거 보고 싶지 않단 말이야. 흉측해.”
태희가 부끄럽다는 듯이 현태의 가슴을 툭, 쳤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폭주족들의 웃음이 다시 터졌다.
“하하하, 그거 재밌겠다. 간만에 보자.”
“야, 동영상 찍어. 이거 올리면 난 SNS 스타가 될 수 있어. 최소 10만 조회 수는 나올걸? ‘좋아요’는 1만 건 이상이 찍히고.”
“나도 올릴래.”
이제야 무슨 소리인지 알겠다.
천우는 자신의 가슴을 쳤다.
이 불쌍한 놈. 그런 짓까지 당했냐.
“야! 빨리해. 세 번에 나눠서 해야 한다. 저기, 저기, 저기. 이렇게 세 곳에 나눠서 싸.”
현태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천우는 손잡이를 잡은 것처럼 왼쪽 손을 빙글빙글 돌렸다. 동시에 마치 보이지 않는 실이 연결된 듯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이 조금씩 올라갔다.
현태의 입술이 실룩거렸다.
“허참,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널 꽤 예뻐해 줬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배신이야.”
현태는 한쪽 눈을 찡그렸다. 안하무인, 부모의 비호 속에서 거칠 것 없이 살아와서 그런지 살기도 꽤 강하다. 총이라도 들고 있다면 주저 없이 쏴 죽일 기세였다.
“염병하네. 까는 소리 하지 말고, 이리 와. 내가 오늘 꼭 좀 봐야겠다.”
“뭘 봐?”
“네가 영역 표시 하는 것을. 아니, 여기 있는 새끼들 모두 바지 벗고 쌀 준비해.”
“이런 미친 새끼가!”
참다못한 폭주족 두 놈이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러더니 들고 있던 헬멧을 크게 휘둘렀다.
되살아났을 때 처음 만난 사람도 폭주족이다. 왜 하필 폭주족이었을까? 하다못해 자신을 불쌍히 여겨 옷이라도 순순히 줬다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두 번의 경험을 통해 천우는 폭주족이란 사회의 해악일 뿐이라고 결론 내렸다.
해악은 병충해.
병충해는 박멸해야 한다.
천우의 상체가 슬쩍 뒤로 물러났다. 양쪽에서 휘둘러진 헬멧이 허공을 가른다. 그들이 휘두른 헬멧은 어이없게도 서로의 면상을 치고 말았다.
의기양양하게 다가온 그들의 고개가 뒤로 팍 젖혀졌다.
천우의 신장은 그들보다 훨씬 작다. 몸도 왜소하게 보여서 더 작을지도 모른다. 한데 그런 그가 폭주족들의 머리채를 양손으로 잡더니 우악스럽게 힘으로 끌어당겼다.
빠각!
돌이 깨지는 소리가 이럴까.
“으아아아아악!”
두 폭주족 놈은 서로 이마를 잡고서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러는 사이, 천우는 바닥에 떨어진 헬멧을 주워 들고 쓰러져 있는 폭주족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사정없이 머리통을 후려쳤다.
빠각! 빠각! 빠각!
인정사정없이.
얼마나 세게 내려치는지 다른 이들이 놀라 일순 끼어들지 못할 정도였다.
“저, 저, 저 미친 새끼가!”
정신을 차린 누군가가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폭주족 둘은 피 범벅이 돼서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만신창이다.
“저 개새끼, 죽여 버려!”
폭주족들이 벌 떼처럼 일어났다.
그들을 향해서 천우는 헬멧을 들어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
“거기서 순서 기다리고 있어. 오줌 쌀 준비하고.”

* * *

후욱후욱.
천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되살아났을 때부터 느꼈지만, 달이 뜨면 온몸에서 활력이 돈다. 마치 설악산 정상에서 호연지기를 느끼는 기분이랄까. 가슴이 뻥 뚫리며 숨을 쉬기가 쉬웠다.
이런 내가 언데드라고? 각성자가 되면 다른 종으로 변화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게 뭔데? 까는 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
인간이든 인간이 아니든…….
나는 나야.
내 목적은 저놈들의 말살.
사회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완전히 끝장내 주지. 가로막는 자는 상대가 누구든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설사 신(神)이라고 하더라도!
“이 씨발 새끼야!”
최고급 라이더 재킷을 입은 놈이 쇠망치를 휘둘렀다.
쇠망치라니…… 기가 막힐 지경이다. 이러니 내가 손속에 사정을 더 두지 않게 되는 것이란 말이다.
천우는 고개를 숙여 쇠망치를 피했다. 정말 사람을 죽이겠다는 듯이 휘두른 모양이다. 머리카락 위로 사납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만으로도 뒤통수가 찌릿찌릿하다.
이런 놈은 봐줄 이유가 전혀 없다.
천우는 손바닥으로 놈의 안면을 잡고 쭉 밀어 쳤다. 보통 힘이 아니다. 호리호리한 몸매지만 기중기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 천우의 밀침이었다.
안면이 잡혀서 내던져진 놈은 10여 미터를 날아서 자신의 애마와 쾅! 소리가 나도록 부딪쳤다. 사람 한 명의 힘으로는 일으킬 수도 없는 무거운 오토바이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넘어갔다.
와지지직―
넘어간 오토바이는 동료들의 값 비싼 오토바이까지 연쇄적으로 넘어트렸다.
도미노처럼 와르르르―
“이, 이, 이 씨발 놈이!”
놈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경주용 오토바이는 2천만 원이 넘는다. 이것을 사기 위해서 그는 부단한 노력을 했다. 아버지의 지갑을 수시로 턴 것이다. 워낙 돈이 많은 양반이니 2천 만 원 정도는 없어져도 모를 것이라 여겼다.
그런 오토바이가 넘어지면서 흉터가 생겼다. 자신의 것은 그나마 양호하다. 다른 오토바이들은 충돌과 함께 뒤엉키면서 반파가 된 것도 꽤 많았다.
시가로 따지면 한순간에 1억이 넘게 날아간 셈이다.
눈이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그는 쇠망치를 들고 벌떡 일어났다. 눈이 뒤집혔다. 반드시 저 자식을 죽이리라 마음먹었다.
어차피 자신은 미성년자이니 저 자식을 죽이고 나서 자수를 하면 된다. 저 자식이 먼저 다짜고짜 이곳에 와서 시비를 걸었다고, 그리고 쇠망치로 자신을 공격했다고, 나는 저 자식이 휘두른 쇠망치를 빼앗아 휘두른 죄밖에 없다고, 이건 정당방위입니다, 라고 외칠 생각이었다.
그럼 게임 끝!
황급히 달려온 아버지는 끝내주는 인맥을 동원해서 자신을 무사히 경찰서에서 빼내주겠지.
귀찮게 조서야 꾸며야겠지만…… 그 정도는 감수한다.
그렇지 않아도 이것으로 사람의 대갈통을 때리면 죽는지 안 죽는지 궁금했는데…… 마침 잘 걸렸다, 개새끼.
폭주족 놈은 있는 힘껏 쇠망치를 휘둘렀지만…….
그의 손은 허무하게도 천우에게 잡혔다.
“어라?”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쇠망치는 어느새 천우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이걸로 사람을 치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천우가 물었다.
“알게 뭐야, 병신아!”
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래? 그럼 한 번 시험해 보지.”
“미, 미친 새끼, 그걸로 사람을 치면…….”
“죽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말이야, 나는 미성년자야. 작의적, 고의적으로 대량 살상을 벌이지 않으면…… 기껏해야 소년원이라고. 그리고 이건 내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휘두른 거야. 네가 들고 있던 무기를 빼앗아서.”
“뭐?”
“뭐는 무슨. 네가 하려고 하던 짓이잖아.”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천우는 쇠망치를 휘둘렀다.
놈의 안면에 쾅!
안구에 맞았다. 뭔가 퍼석,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폭주족 소년은 난생처음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맛봤다. 아울러 한순간에 어둠이 찾아왔다. 영원히 한쪽 빛을 잃어버린 어둠이. 그리고 충격은 곧바로 뇌신경을 건드렸다.
“으아아아아악!”
놈은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무릎을 꿇고 얼굴을 감싼 채.
하지만 천우는 인정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쓰러진 놈의 뒤통수에 쇠망치를 휘두른다.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놈은 두 손을 바닥에 짚으며 개처럼 엎드렸다.
그러자 이번에 두 손 위로 망치가 내려쳐졌다.
빠각! 빠각! 빠각! 빠각!
피가 튀고, 손을 이루고 있는 피와 살점이 엉망으로 쪼개지고 박살 난다.
산산조각 난 뼈는 더 이상 제 구실을 못할 것이다.
이 손으로는 다시는 그 잘난 오토바이의 핸들조차 쥘 수 없겠지. 멋진 라이더를 꿈꾸던 어설픈 폭주족의 비참한 결말이리라.
바닥은 바라보는 게 섬뜩할 정도로 많은 피가 흘렀다. 놈은 움찔움찔, 경련을 일으켰다.
천우는 쇠망치를 들고 일어섰다. 이미 그의 교복은 피로 흠뻑 물들어 있다. 얼굴도 예외는 아니었다.
“히익.”
느긋하게 자리에 앉아서 현태와 애정 행각을 벌이던 태희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이런 끔찍한 광경은 처음이다. 헬멧으로 사람의 머리를 후려치고, 쇠망치로 거리낌 없이 사람을 두드리다니. 바닥은 폭주족 놈들이 흘린 피로 넘쳐흘렀다.
너무도 끔찍해서 차마 천우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녀가 알던 천우는 이렇지 않았다. 예전에는 공부를 잘해서 호감이 있었다. 얼굴도 그 정도면 반반했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전교생이 천우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반 아이들이 아닌 전교생이다. 그렇게 한 사람이 바보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태희도 천우에게서 관심을 끊었다. 왕따가 되니 상대도 하기 싫었다. 비굴해 보이는 그의 모습이 짜증 났다. 옥상에서 뛰어내렸다고 들었을 때도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왕따 새끼가 약해 빠져서는.
그렇게 생각한 왕따가 전신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사람의 눈이 저토록 흉포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사람의 눈동자가 아니다.
짐승이다.
“흐이이이익! 나 여기서…… 여기서 나갈래!”
태희는 벌벌 떨며 상태를 팔을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