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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별곡(惡人別曲) (1)



경구는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생전 처음으로 일본도로 사람을 베었다. 그저 벤 정도가 아니다. 지금 눈앞에서 재구는 목부터 사타구니까지 일직선으로 잘렸으니까. 반으로 잘린 그는 내장을 쏟아내며 깨끗하던 방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우에에에엑!”
살아남은 조직원들은 그 끔찍한 광경에 참지 못하고 속에 있는 것들을 게워냈다. 그들의 입에서 연신 욕이 쏟아졌다.
“후읍.”
경구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는 일본도를 손에서 놓지 않은 채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빨리 무장해서 위로 올라가 봐. 도련님한테도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도 몰라.”
“도대체 어떤 새끼들일까요?”
“나도 모르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 중에 배신자가 있다는 거야.”
경구는 피바다가 되어버린 거실과 방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재구가 배신할 줄이야. 다른 조직 혹은 다른 기업에게 넘어갔다는 소리였다.
미련한 새끼. 죽으면 끝인데…… 돈을 얼마나 받는다고 이 꼴이 되냔 말이다.
일단은 현재 벌어진 상황부터 정리를 해야 한다. 만약 배신자가 한 명만 더 있다면 도련님이 위험했다. 기업의 후계자인 도련님에 무슨 일이 생기면…… 오늘 이곳에 있는 경호원들은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회장님의 왼팔이라고 불리는 김 실장도 마찬가지.
“어서 서둘러!”
경구가 외쳤다. 그의 명령에 따라 야구 방망이를 든 사내들이 큰 걸음으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도련님!”
사내들이 놀라서 외쳤다.
상태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계단을 내려오고 있던 것이다. 그는 사내들을 보자마자 풀썩 주저앉았다.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괜찮으십니까?”
사내가 물었다.
“씨, 씨발, 이게 괜찮아 보이냐?”
“……아, 아뇨. 일단 내려오시죠.”
경구는 급히 큰 천을 가지고 와서 시체들을 덮었다. 하필 흰 천이다. 흰 천은 금방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그것밖에는 시체들을 덮을 만한 크기의 천이 없었다.
부하들이 상태를 부축해서 밑으로 내려왔다.
“무슨 일입니까? 김 실장은 어디 있습니까?”
경구가 물었다.
“죽었어.”
“네?”
“못 들었어? 죽었다고.”
“아, 아니, 그게 무슨……. 누가?”
“척살조의 혁진인가 뭔가 하는 새끼가 회까닥 미쳐서 김 실장을 찔러 죽였다고! 너희 둘, 빨리 준비해. 그 새끼 곧 이리로 내려올 거야.”
경구의 안색이 나빠졌다. 그도 혁진을 잘 안다. 척살조에서 꽤나 촉망받은 인재니까. 실력도 대단해서 그와 맞짱을 뜬다면 이길 자신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배신을 했다고? 아니 왜? 조금만 더 이곳에서 참으면 분명 간부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계단 윗층에서부터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들린다. 노래 소리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노랫소리를 들은 상태가 화들짝 놀랐다. 춥지 않은 날씨이지만, 이빨이 위아래로 따닥따닥 부딪쳤다.
“왔어, 왔다고! 그 개새끼가 왔다고!”
상태는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극도의 공포를 몇 번이나 맛본 그는 이미 이성을 상실했다. 숨이 턱턱 막히는지, 가슴을 부여잡고 몸을 마구 뒤틀었다. 극심한 공황장애 증세였다.
“너희들은 위로 올라가 봐!”
경구는 두 명의 부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고는 다른 부하에게 상태를 업으라고 시켰다.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야 할 듯했다.
두 명의 부하가 야구 방망이와 골프채를 들고 조심스레 계단을 올라갔다. 그 순간, 위에서 들려오던 노래가 뚝 그쳤다.
[오늘 날씨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강원 지방은…….]
대저택 안에 적막이 찾아왔다. 들리는 것은 TV에서 흘러나오는 기상 캐스터의 목소리뿐이었다. 어쩐지 그 목소리가 더 섬뜩하게 들렸다.
“아하하하하! 여기다, 여기에 있다! 도련님! 띠발! 도련님!”
혁진이 몸을 사리지 않고 계단에서 풀쩍 뛰어내렸다. 까딱 잘못하면 발목이 나갈 수도 있는 높이이지만, 혁진은 부상에 대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으아아아악!”
계단을 오르던 두 명의 부하가 혁진과 함께 굴렀다. 팔과 다리가 뒤엉켰지만, 손은 부지런히 움직인다. 서로가 서로의 육체를 칼로 마구 찔러 대고 있는 것이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젠장, 서둘러. 이곳에서 빠져나간다.”
경구는 상태를 업고 있는 부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의 지옥도로 변한 이곳에서는 더는 숨도 쉬고 싶지 않았다.
경구는 현민수 부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손가락이 떨려서 제대로 번호가 눌러지지 않았다. 간신히 버튼을 모두 누르자 전화벨이 울린다.
뚜루루루.
이내 현민수 부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네, 지금 몇시인 지 아는가.]
꽤나 노한 목소리다.
경구는 바짝 긴장했다.
현민수 부회장. 현기출 회장의 친동생이다.
R그룹은 현기출 회장이 키웠지만, 그것을 지켜낸 것은 현민수 부회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즉, 사업적 수단은 현기출 회장이 높지만, 음지에서 행하는 일은 현민수 부회장이 도맡아서 했다는 말과도 같았다.
무엇보다 현기출 회장은 현민수 부회장의 비해서 자비롭다. 사람을 상대하는 데 있어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 바로 현민수 부회장이었다.
피붙이를 제외하고는 상대가 누구든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다. 그렇기에 경구를 비롯하여 모든 조직원들은 현민수 부회장을 두려워했다.
“곤히 주무시는데 깨워서 죄송합니다.”
경구는 현민수 부회장이 보이지도 않는데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무슨 일이야?]
현민수 부회장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용에 따라서는 벌을 내릴 수도 있다는 말투였다.
경구는 마른침을 삼켰다.
“저기…….”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믿지 못할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 * *

천우는 저택의 옥상에서 상태가 업혀 나가는 것을 보았다. 쫓을까 하다가 관두기로 했다. 일본도를 든 자가 꽤 위협적이다. 물론 자신이 그에게 당할 것이라고는 여기지 않지만, 방심은 할 수 없었다. 애초에 위험 요소는 제거해야 한다.
“으아아아악! 씨발, 개새끼야! 죽어!”
“죽여! 죽이란 말이야!”
저택 내부에서는 아직도 온갖 비명 소리가 오갔다. 아마도 혁진과 경호원들의 사투가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누가 이기든 상관이 없다. 앉아서 팝콘을 먹으며 지켜볼 것도 아니고. 당연히 누가 죽어도 상관이 없었다.
부르르릉―
저택에서 차량 한 대가 급히 빠져나갔다. 이제 이곳은 무주공산이다.
자, 이제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할까.
천우는 지붕에 걸터앉은 채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이곳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 자신을 의심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얼굴을 본 사람도 없고. 당연히 용의선상에 오를 리도 없을 것이다.
만약 경찰이 자신을 의심한다면 박수를 쳐줄 용의도 있다. 수사력이 엄청나다고.
물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만.
일단 자신의 목숨을 노린 혁진이 반대로 상태를 노렸다. 그 이유를 캐내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할 것이 빤하다. 어쩌면 납치를 시도할지도 모르고.
목숨도 노리는 판국인데, 그 정도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행할 놈들이다.
“상태를 여기서 끝장낼 걸 그랬나.”
받은 만큼 돌려준다. 그것이 천우의 지론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마지막에 손을 거둔 이유는…… 상태가 죽음으로써 다른 놈들이 가지게 될 경각심 때문이었다. 진성과 현미를 비롯해서 처리해야 할 놈들이 아직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최대한 한 번에 걷어내지 못하면, 나머지 놈들은 모두 몸을 숨길 가능성도 있었다.
막말로 미국 어딘가로 갑자기 떠나 버리면 고등학생 입장인 자신이 그들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좋아, 하나씩 하자, 하나씩. 그물을 넓게 펴고.”
천우는 엉덩이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는 나와야 할 듯싶다. 그곳에서 계속 사는 것은 무리다. 옆집에 사는 아저씨도 신경에 거슬리고.
그런데…… 돈이 없다. 겨우 500에 35만 원 월세를 사는데… 그 정도의 보증금 가지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옥탑방이나 전전하겠지.
아무래도…….
천우는 상태가 살고 있는 대저택을 훑어봤다.
“내 목숨을 노린 대가는 받아 가야겠지.”
그는 저택 안으로 안개처럼 스며들었다.

동이 터올 무렵, 천우는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어라?”
문이 반쯤 열려 있다. 잠그지는 않았지만 분명 닫아놨는데, 누군가 집을 뒤진 것이다.
혹시 경찰이?
놀란 천우는 급히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안에는 역한 피 냄새가 가득했다. 그가 나갈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딱 하나.
목이 잘린 필승이 사라졌다는 것.
아무래도 그 역시 좀비로 되살아난 듯했다. 좀비라고 해서 전염성이 있는 괴물은 아니었다. 그냥 살아 있는 시체라고 보면 된다. 정보 입력에도 좋다. 그들이 보는 것을 나도 볼 수가 있으니까.
하지만 필승은 그렇지 않았다. 되살아났다면 뭔가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자신의 의지가 있거나, 가까이 있거나, 서로 간의 어떤 공통점이 있어야 의식이 연결되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예측을 해본다.
“머리까지 들고 나가다니… 그나마 다행이네.”
이곳까지 오면서 필승의 시체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이렇게 알아서 밖으로 나가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쿵.
천우가 숄더백을 책상 위에 올려놓자 꽤 무거운 소리가 난다. 슬쩍 안을 들여다보니 5만 원권 지폐가 가득했다. 언뜻 봐도 수억이 넘었다.
천우로서도 의외의 수확이었다. 설마 집 안에 그토록 많은 현금 다발을 숨겨놓고 있을 줄이야. 이것도 다 가지고 나오지 못한 것이다. 이것보다 열 배 정도 많은 현금이 침대 밑에 가득 쌓여 있었다.
그 돈을 모두 가지고 나오지 못한 것이 다소 아쉬웠다. 지금 다시 가서 가져오려고 해도 늦었다. 모르긴 해도 저택에는 조폭 혹은 경찰들이 바글바글할 터였다.
이미 늦은 일에는 미련 갖지 말자.
천우는 훌훌 털어버렸다. 그것이 그의 평상시 성격이다. 어지간해서는 어떤 일에 집착도 그리 하지 않는다. 동생이 무사태평이라면서 부러워하기도 한…….
“그나저나…… 이게 문제네.”
천우는 집 안을 둘러봤다. 온통 피투성이다. 이 상태로는 학교도 갈 수 없을 듯했다. 일단 방 안부터 정리를 해야지. 이대로 뒀다가 누군가가 보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다. 만약 가스 검침원이나 집주인이 본다면 살인마로 오해받기 딱 좋았다.
음, 오해는 아닌가.
어쨌든 대청소를 하긴 해야겠다.
그러고 나서 집주인에게 말해서 집을 뺀다고 말을 해야지. 그럼 이제 어디로 간다?
상태는 꽤 충격을 먹었다. 당분간은 자신에게 신경을 쓸 틈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방심은 금물이다. 또한 다른 놈들도 자신에 대한 악의적인 감정을 키우고 있을 테니……. 일단은 학교와 거주 공간은 별개로 쪼개놔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이 돈은…….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동생이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몰디브로 가자.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라고 했지? 네 소원을 들어줄게.
가자, 몰디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