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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2)



능력치의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은 간단했다.
사람의 피.
동물의 피는 마셔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일단은 사람의 피를 마시게 되면 능력치가 대폭 활성화된다. 가장 좋은 점은 상대에게 꼬치꼬치 캐물어도 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입을 열기 위해서 어떤 고문 방법을 쓸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상대의 피를 마시면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마음껏 뽑아낼 수가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이런 경악스러운 일을 벌인 놈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은 간단했다. 필승의 피를 마시면서 대번에 눈치챘다. 혁진을 살려놓은 것은 알리바이를 위해서고.
그렇다고 무작정 피에 대한 갈증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었다. 필승의 피를 마시고 나자 갈증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오감은 더욱 높아졌고, 근력은 최소 반 배 이상 더 강해졌다.
지금 상태라면 전설의 싸움꾼인 최배달이나 시리소니, 김두환이 살아온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이기지 못할 듯하다.
어쨌든 일은 벌어졌다.
영어 선생한테는 입에 지퍼를 채우고 절대 말하지 않을 생각이다. 혹시나 눈치챈다면 모르지만, 먼저 나서서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천우는 힐끗 하늘을 바라봤다.
네온사인이 사방에서 환히 빛나 별빛 하나 보이지 않는 밤이지만, 어둠은 천우에게 힘을 준다.
어둠이 오면 더욱 강해지고 상대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너희가 먼저 나를 노렸으니…….

거침없이 너희를 유린해 주겠다.

“크으으윽!”
문을 뚫고 나온 사내는 문신이 잔뜩 그려진 팔을 마구 휘어졌다. 아직도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할지 전혀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천우는 사내의 목을 깨물었다.
빠직.
사내의 동맥이 찢어지며 펌프에서 물을 쏟아내듯이 피를 뱉어냈다.
콸콸콸.
천우의 육체가 피로 물들어간다. 눈빛의 혈광에서 섬뜩한 사기가 흘렀다.
“흐읍.”
천우가 사내의 목에서 입을 뗐다. 혈관을 타고 사내의 정보가 뇌리에 입력되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점점 천우의 인상이 찌푸려진다.
이놈, 생각보다 더한 쓰레기다.

싸움 좀 하고 성격 더러운 건달. 나름 공명심은 있는지 위에는 깍듯하다. 밑에 애들은 쥐 잡듯이 잡아서 그렇지.
그의 무의식에 남아 있는 가장 강력한 기억은 1년 전의 사건이다.
사내, 재구의 고향은 목포다. 간만에 내려간 고향에서 술에 취해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늦은 밤. 그는 기분이 좋아서 도로를 걸었다.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면서.
그때, 누군가 뒤에서 빠빵, 경적을 울렸다. 2차선 도로에 양쪽으로 불법 주차가 되어 있어 차량이 지나가지 못했다. 뭐, 어쩌라고. 재구는 가운뎃손가락을 내밀었다. 좀 기다려. 이 재구 님이 지나가시는데.
빠방―
다시 경적이 울렸다.
재구는 울컥했다. 씨발, 겨우 몇 분을 못 참아! 그는 차량으로 다가갔다. 좆도, 차도 엿 같은 걸 모는 새끼가! 이런 차를 몰면서 클랙슨 울려 대지 말란 말이다. 쪽팔린 줄 알아야지.
재구는 차에 타고 있던 젊은 남자를 끄집어내 욕 몇 마디를 하고 가슴을 때렸다. 남자는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컥컥 소리를 내면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씨발 놈이…… 샤킹 쓰네.”
남자의 배를 강하게 발로 찬 뒤, 자리를 떴다.
재구는 그렇게 남자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다음 날 오후에 언론을 통해서 남자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남자는 야간 근무 중 아내의 분만 소식에 동료들에게 일을 맡기고 병원으로 달려가던 중. 하지만 갑작스럽게 길거리 한복판에서 맞아 죽은 채 발견된 것이다.
다행히 남자의 아내는 건강한 사내를 순산했다. 비록 아버지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되겠지만.
그 사연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국민들은 엄청나게 분노했다. 반드시 범인을 잡아야 한다고 전국이 들썩거렸다.
하지만 끝내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수사도 별다른 진척 없이 오리무중 상태에 빠져들었다. 천하의 나쁜 놈이라고 수많은 사람들이 욕을 했지만, 재구는 결코 자수 따위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수가 없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천우는 헐떡이고 있는 재구를 보았다. 동맥이 파열됐지만, 꽤 명줄이 길다. 기분이 더러워졌다. 원하지 않는 장면을 보게 됐다. 이런 것을 보기 위해서 피를 마신 것은 아니었다.
천우는 재구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렸다.
“하악하악…….”
재구가 거친 숨을 내쉬고 있다. 고통이 심한지 미간을 찌푸리며 눈썹이 일그러졌다.
“아저씨.”
천우는 재구를 넌지시 불렀다.
“쿨럭쿨럭…… 씨발, 넌 뭐야? 뭐하는 새끼야!”
“그게 문제가 아니고…… 아저씨, 사람 죽였네?”
“뭐?”
흐릿한 재구의 눈빛이 흔들렸다.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눈빛이다. 목에서는 아직도 피가 흘러나오고 있지만,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너…… 어디 애들이야?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쿨럭쿨럭…… 넌 뒈졌어. 내가 직접 회를 쳐주지.”
“흠…….”
천우는 재구의 머리를 밑으로 눌렀다. 본인도 그리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많은 싸움을 통해 누군가를 다치게 한 적도 있고, 바로 조금 전에는 사람도 죽여봤다.
굳이 사람을 죽였다고 해서 죄책감이 들지는 않는다. 상대가 먼저 자신을 죽이려 했으니까. 나도 똑같이 상대를 죽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당방위란 말도 있는 것이고.
하여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리고 눈앞의 사내를 추가로 죽인다 해도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꽥꽥 안 짖어도 된다.
“아저씨, 인터넷 봤어?”
“크르륵, 크르륵…….”
목이 문틈에 걸려서 재구는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짓눌리는 압력으로 인해서 눈알이 빠질 것처럼 튀어나오고 있었다.
“안 봤어? 아저씨는 멀쩡한 한 가정을 박살 내버렸더라. 아니, 술 처먹었으면 곱게 집을 가야지, 왜 길 가는 사람에게 시비를 걸어서 죽여, 죽이긴. 애기는 무슨 죄야? 태어나자마자 아버지 없는 애를 만들어 버렸어. 평생 아빠의 얼굴도 모르고 살아갈 것 아냐. 안 그래?”
“크르륵, 크르르륵…….”
이번에도 역시 재구는 대답하지 못했다. 입만 우물무물거렸다. 입술이 툭 튀어나온 것으로 봐서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보였다. 욕이나 하겠지.
천우는 한쪽 무릎을 꿇고는 재구의 눈과 마주했다.
“아저씨 같은 사람이 그냥 죽는 것은 너무 자비로운 일이라고 생각해. 안 그래?”
“크르를, 씨발…… 새끼…… 넌 뒈졌어.”
악에 받친 듯 재구는 끝내 욕을 토해냈다.
“더 이상 상종해서는 안 될 아저씨네.”
천우는 한 손으로 재구의 머리통을 눌러 버렸다.
파삭.
동시에 재구의 목이 잘려 나가고 말았다. 재구의 눈은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한껏 치켜떠진 채 머리통이 바닥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그런데…….
그 순간, 천우는 기묘한 감정을 느꼈다.
마치 재구의 전신과 자신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필승을 죽였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감각이다. 자신이 둘이 된 것 같았다. 보는 시점이 둘이다. 그것 때문에 잠시 뇌가 혼란을 일으켰다.
천우는 재구를 바라봤다.
죽었는데…….
분명 죽었는데…….
재구의 팔과 다리가 문틈에 끼어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잘린 머리통에서 눈알이 데룩데룩 굴러다닌다.
이야, 이거 정말 엽기적인데?
천우는 입술을 뒤틀었다.
본능적으로 재구가 어떤 상태인지 깨달았다. 놈은 자신의 노예다. 의학적으로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지만, 분명 놈은 자신에게 영혼까지 사로잡혔다.
이런 능력이 있을 줄이야.
왜 영어 선생이 부활자가 위험하다고 말을 늘어놨는지 알 것 같았다.
설마 내가 벌써 노예까지 만들어낼 줄은 생각도 못했겠지. 그런데 이 아저씨가 다른 사람을 물면 역시나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는 걸까? 뭐, 일단 확인을 해보면 알겠지
“아저씨, 일어나.”
천우는 재구의 옆구리를 발로 찼다. 목 없는 재구의 몸이 쿵, 옆으로 쓰러지더니, 천천히 전신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바닥에서 뒹굴던 머리를 잡고 목 위에 올린다.
마치 로봇이나 마네킹이 움직이는 것 같다. 보고 있노라니 불편한 마음이 든다.
재구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크르르르, 크르르르…… 주, 죽여, 주세요…….”
오호, 아직 의식이 남아 있는 모양이네?
“미안하지만…… 안 되겠어. 다시 물을게. 아비 없는 애기를 만든 느낌이 어때?”
“죄, 죄송합니다…… 요, 용서해…… 주세요.”
“아니. 이미 늦었어. 가. 가서 니 친구들이나 마음껏 먹어 치워.”
천우의 명령이 떨어졌다.
“아, 안 돼……. 시, 싫단 말이야.”
재구의 몸이 휙 돌아섰다. 그는 천천히 건물 안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안쪽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재구가 뒤뚱뒤뚱 걸어갔다.
천우는 집에 남아 있을 필승의 시체를 떠올렸다.
혹시 그 아저씨도 혼자서 돌아다니면 어떡하지?
여기의 일이 끝나면 아무래도 확인을 해봐야겠다.
만약 혼자서 돌아다니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 * *

외부와 단절된 회장님의 자택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이 난리가 났어도 외부인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살육의 파티가 벌어지는 동안 다섯 번의 순찰차가 왔다 갔고, 백 명 이상의 사람들이 건물 앞을 지나쳤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비명 소리 한 번 듣지 못했다. 피 냄새도 맡지 못했다.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로 완벽한 방음이다.
그런 탓에 누구도 밖으로 뛰쳐나가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
경구는 벽장에 걸린 일본도를 들었다. 검집을 벗겨내자 날카롭게 날이 선 일본도가 그 자태를 드러났다.
양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앞에 서 있는 재구를 노려보았다.
“미친 새끼야! 뭐하는 짓이야!”
경구가 외쳤다.
조금 전, 피로 범벅이 된 재구가 방 안으로 들어왔을 때 동료들은 깜짝 놀랐다. 명국은 그에게 다가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기까지 했다. 걱정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하지만 명국이 가장 먼저 죽었다.
재구가 명국의 코를 물어뜯어 버린 것이다. 코가 잘려 나가자 다음에는 귀를 뜯어버렸다. 그런 후에는 입술을, 볼을 물고서 자근자근 씹었다.
순식간에 명국의 얼굴이 사라졌다.
태어나서 그렇게 잔인한 장면은 처음 봤다. 그도 조폭이기에 자신의 손으로 몇이나 되는 사람들을 처단한 적이 있다. 시체 처리는 부하들이 했지만.
그럼에도 눈앞에서 사람의 얼굴이 산산조각 찢기는 것은 보지 못했다. 아니,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아아아아악!”
어느덧 명국의 비명이 잦아들었다. 그의 사지는 여전히 경련을 일으키며 움찔거린다. 고급 소파는 순식간에 피바다로 변했다. 회장님이 모처럼 마련해 준 값비싼 소파인데, 쓸모가 없게 됐다.
바닥에서 고스톱을 치고 있던 조직원들은 그때까지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재구와 명국이 장난을 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현실성이 없는 장면이었다.
명국을 잡아먹은 재구는 바닥에 있는 조직원들에게 다짜고짜 덤벼들었다. 마구 할퀴고 물어뜯는다. 놀란 조직원들이 바닥에서 일어나 재구를 발로 찼다.
재구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맞는 것은 상관하지 않고 밑에 깔린 상수의 배를 이빨로 물어뜯는다. 부드러운 비단인 양 살점은 금방 갈라졌다.
“이, 씨발, 씨발 새끼야!”
동료들이 주변에 있던 물건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쥐고서 재구를 마구 후려쳤다. 그럼에도 끄떡하지 않는다. 마치 콘크리트 벽면을 치는 느낌이었다.
재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경구와 동료들은 오줌을 지릴 것만 같았다.
이건 흉악이라는 단어로는 표현하지 못한다.
악몽이다.
아니, 지옥이다.
왜 자신들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그들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으아아아앗!”
경구는 사력을 다해서 일본도를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