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진화 (1)


천우는 오감을 끌어 올렸다. 청각과 후각, 시각으로는 담벼락 안을 살필 수 없으니까.
100평이 넘는 2층 건물. 무엇 하나 고급 아닌 것이 없다. 천우로서는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고급 저택이었다. 이런 집이 있다는 것은 TV로만 봤다.
그런데 설마 이런 식을 방문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훗날, 돈을 벌어서 동생과 함께 ‘이 집이 우리의 새로운 보금자리야’라 말하며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이미 늦었다.
동생은 이제 세상에 없으니까.
그러니 성태야, 그 대가를 치러야겠지?
넌 내 동생을 가져갔고, 난 너의 모든 것을 가져가겠다.
그래야 공평하지 않겠어.
천우는 청각에 집중했다. 이곳저곳에서 소리가 들린다. 2층 건물 밑으로 지하 2층이 더 있었다. 여러 개의 방으로 나눠져 있는 모양이다.
대략 열 명 정도의 사내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곳을 지키는 경호원인 모양이었다. 아니면 혁진이라는 자와 같은 조직원들이든지.
그들이 누구든 상관없다.
어차피 오늘 이후에는 그 누구도 해가 뜨는 것을 보지 못할 테니까.
후각이 발동한다.
킁킁―
라면을 끓이는 냄새다.
대단한데.
이런 냄새까지도 맡을 수가 있다니.
운동장만큼이나 넒은 저택이다. 자신이 지금 서 있는 담 위에서 저택까지의 거리도 상당했다. 더군다나 저택은 방음, 방벽이 잘되어 있었다. 창문을 열어놓지 않는 이상, 냄새가 밖으로 흘러나올 리가 없다.
그럼에도 냄새를 맡을 수가 있다.
놈들의 기척도 손에 잡힐 듯 들어왔다. 사각사각, 볼펜으로 뭔가를 쓰고 있고, 콰르르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며, 후루루룩, 면발이 잘 익었는지 맛을 본다.
눈을 감아도 그들의 움직임이 머릿속에 그려진 것처럼 보였다.
대단한 능력을 손에 넣었지만……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때려 죽여 마땅할 상태가 저 중에 누군지 모르겠다.
인간을 넘어서는 압도적인 체력과 힘, 오감으로 인해서 장점만 강조된 셈이다. 그 정도만 하더라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다.
저 중에 나와 같은 부활자가 있으면 어쩌지? 만에 하나 그가 각성자라면? 제아무리 강력한 힘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되지 않을지도 몰랐다.
영어 선생의 태도만 보면 안다.
같은 부활자는 충분히 상대할 수가 있다. 하지만 각성자는 위험하다. 그렇기에 자신을 앞에 두고도 그렇게 여유만만할 수 있던 것이겠지.
결론은 하나다.
힘을 얻었다고 해서 기고만장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자세를 낮추고 저 중에 부활자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먼저 발견한 사람이 유리하다. 만약 위협이 된다고 판단이 들면 미리 손을 써야 하니까.
하여 혁진이라는 놈을 들여보냈다.
놈은 미끼. 이제 놈들이 확 물기만 하면 된다.
이런 방법…… 종종 써먹어야겠다.
“자, 그럼 어디부터 칠까…….”
어차피 상태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면, 이곳에 있는 모든 인간들을 싸그리 잡아버리면 된다. 그럼 그중에 상태가 있겠지. 간단하잖아.

* * *

혁진은 거친 숨을 헐떡였다.
뒷덜미 어디선가 놈이 노려보고 있는 듯했다. 짐승처럼 낮은 숨소리가 들린다. 실제인지, 환상인지 모르겠지만, 혁진은 개의치 않았다. 자신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아직도 머릿속에서 필승이 죽는 모습이 떠나지 않는다.
그 눈동자!
공포에 질려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어가던 필승의 눈동자.
주르르륵―
단지 머릿속에서 떠올랐을 뿐인데, 몸이 반응하여 저절로 오줌을 지렸다.
뿌드드득.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나에게 이 지옥을 안겨준 자는 누굴까.
왜 내가 그토록 무서운 놈에게 걸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것일까.
누구 때문에?
누가 날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 막말하는 어린놈의 새끼!
지 애비만 믿고 까부는 개새끼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그 씨발 놈이 나를 지옥으로 밀어 넣었다고!
그래, 그 새끼는 분명 알고 있었을 거야. 거기가 어떤 곳인지 알면서 나를 집어넣었다고.
죽여 버릴 테다, 어린놈의 새끼. 지가 회장님의 아들이면 다야? 전부터 재수가 없었어.
혁진의 눈빛이 점점 흉악해졌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짐승의 수준이었다.
그는 현관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문이 열리는 짧은 순간이 그에게는 억겁처럼 길게 느껴졌다.
훅훅, 숨을 몰아쉬면서.
정신분열증 환자처럼 한쪽 다리를 바들바들 떨면서.
덜컹―
마침내 현관문이 열렸다.
상대의 머리카락은 짧고 두꺼운 뿔테 안경을 썼다. 신장은 상당히 크다. 대략 185센티 정도는 되는 듯했다. 조금 더 클 수도 있고. 다른 조직원들처럼 몸이 옆으로 붙지는 않았다. 호리호리 혹은 샤프하다.
그가 바로 김 실장. 한국대 경영학과를 나온 최고 엘리트 중 한 명이자 조직의 최연소 간부이기도 했다. 나이는 겨우 28살. 현기출 회장의 왼팔이자 그가 저지르는 모든 비리를 삼켜 버리는 사내였다.
이곳을 떠나기 전까지는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신분의 차이가 났지만, 지금은 아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커헉!”
김 실장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느닷없이 진혁이 칼로 그의 복부를 찌른 것이다.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한 번이 아니었다.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강하게.
푹푹푹푹!
김 실장은 뭐라 반문을 하지도 못했다. 그저 찔리는 충격에 뒤로 밀려났다. 그가 손을 뻗었다. 신발장에 손이 닿는다. 그렇다고 잡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고급 신발들이 그의 손에 스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내 그는 쿵, 소리를 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의 등이 가까스로 벽에 닿았다.
“크륵, 크르륵.”
김 실장이 겨우 입을 열었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피가래가 드글드글 끓는다.
뻐끔뻐끔.
붕어처럼 입을 벌리며 자신의 배를 바라봤다. 수십 번을 찔렸다. 내장이 와르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손으로 막으려 애를 쓰지만, 힘이 없다.
이게 뭐야.
나는…….
김 실장의 고개가 앞으로 푹 꺼졌다.
“뭐야, 무슨 일이야?”
벌써 위스키를 반이나 비워서 눈이 풀린 상태가 현관문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묻는 말투에 짜증이 섞여 있다.
어서 연락이 와야 애들한테 전화를 해주고 잠을 잘 텐데, 도무지 소식이 없다.
점점 술에 취해간다.
아빠 몰래 비자금을 만들려고 했는데…… 쉽지가 않네.
그런데…….
저건 뭐지?
현관문으로 다가간 김 실장이 비칠비칠 뒤로 물러난다. 등을 벽에 붙인 채 숨을 헐떡거린다. 배를 움켜잡는가 싶더니, 고개가 숙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주르르르륵―
그가 주저앉은 바닥은 온통 피로 얼룩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뻘건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술이 확 깬다.
상태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지, 무슨 일이지?
곧 한 사내가 신발을 신은 채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쓰러져 있는 김 실장을 마구 발로 밟았다.
“띠발 때끼, 모두 너희 때문이야. 모두 너희 때문이라고! 그 꼬마 때끼 어디 가떠! 우리 도련님 어디 갔냐고!”
발로 밟더니 칼로 연신 찌른다.
상태는 뒷덜미가 삐죽삐죽 섰다. 꼬마 새끼, 도련님이라는 단어를 확실하게 들었다.
저 녀석이 찾는 사람이 혹시 나인가? 그나저나 어디서 봤던 얼굴인데…….
그 순간, 혁진이 고개를 확 돌렸다.
그의 눈과 상태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깜짝 놀란 상태는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위스키 잔과 병들이 옆으로 엎어졌다. 비싼 위스키가 콸콸콸 쏟아져 양탄자를 적셨다.
“꼬마야, 우디 도년님 못 봤니? 봤뜨면 봤따고 말해.”
상태는 마른침을 삼켰다.
흉측한 몰골과 혀 짧은 말투 때문에 잠시 누군지 못 알아봤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김 실장이 꽤 마음에 들어 하던 혁진이라는 친구다.
아까 이곳에서 나갈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저 몰골은 도대체 뭐냐. 그리고 나를 못 알아봐?
완전히 미쳤다.
도대체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쿨럭쿨럭.”
혁진이 심하게 기침을 한다. 입에서 잔뜩 피를 뱉어냈다. 피를 보면서 화들짝 놀란다.
“죄똥합니다. 죄동합니다. 띠금 바로 처리하겠뜹니다.”
혁진은 다시금 오줌을 지리며 고개를 좌우로 마구 돌렸다. 눈동자의 초점이 맞지 않았다. 두리번두리번, 급하게 뭔가를 찾는다. 그러더니 상태의 앞으로 다가온다.
상태는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슬그머니 아빠의 골프 가방에서 골프채를 꺼냈다.
푹푹푹푹!
혁진은 고급 가죽으로 된 소파를 마구 칼로 찔렀다. 갑자기 흥얼흥얼 노래를 부른다.
그가 고개를 들어서 상태를 바라봤다.
“너구나!”
“으아아악! 씨발!”
상태는 골프채를 휘둘렀다.
퍼어억!
골프채에 혁진은 머리통을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얼마나 세게 맞았는지, 그의 전신이 크게 휘청거리며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상태는 그가 어떻게 됐는지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조건 지하로 뛰었다. 지하에는 24시간 거주하는 경호원들이 잔뜩 있었다.

* * *

천우는 마당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마치 고양이처럼 가벼웠다. 전혀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사뿐사뿐하게 움직인다.
두 갈래의 길이 있다.
하나는 반 층을 올라가는 현관문. 그곳은 이미 혁진이라는 자가 들어갔다. 안에서 비명이 난발하는 것으로 보아 꽤 거창하게 시작한 모양이다. 약간 벌어진 현관문 사이로 피 냄새가 진동을 한다.
향기롭다.
다른 길은 반 층 아래의 문. 이곳에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조용히 계단을 내려가 문을 벨을 눌렀다.
딩동딩동.
“씨발, 이 시간에 누구야? 졸려 죽겠네.”
안쪽에서 누군가 투덜거리며 걸어 나온다. 상대가 문 앞에 섰다.
“누구세요?”
상태의 목소리는 아니다.
그렇다면 제거.
천우는 두꺼운 합판으로 된 문짝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쾅!
순간, 엄청난 소리와 함께 구멍이 뚫린다. 천우의 손이 그 안으로 쑥 들어가 사내의 머리채를 잡고 밖으로 끌어냈다.
와지지직!
사내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제대로 된 힘도 쓰기 전에 밖으로 딸려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의 머리가 부서진 문 사이로 빠져나왔다.
“씨, 씨발, 이거 뭐야?”
문에 긁혀서 얼굴의 이곳저곳이 찢어진 사내가 연신 욕설을 내뱉었다.
천우는 그의 목을 수도로 내려쳤다.
빠각―
인간의 목이 너무도 쉽게 부러졌다. 사내의 목은 부러진 닭의 대가리처럼 대롱대롱거렸다.
카악!
천우의 입이 벌어지더니, 이내 목덜미를 꽉 깨물었다. 뿌드득, 소리와 함께 심줄이 갈기갈기 찢어지며 천우의 입속으로 피가 콸콸콸 쏟아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천우의 눈빛이 점점 짙은 혈광으로 물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