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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둠이다 (2)
현상태의 집은 강남에서도 300평이 넘는 부지에 100평이 넘는 2층 저택으로 되어 있었다. 시가로는 수백억을 호가할 정도. 그렇다고 상태가 학교에서 자랑을 하고 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학교에는 워낙 대단한 부모를 둔 애새끼들이 많았다.
아침부터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반장, 진성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서열 10위 안에 드는 대기업 회장의 하나뿐인 장손자다. 장관의 아들, 손자들도 수두룩하다. 장군의 아들은 발에 치인다.
어디 대기업의 임원이라는 타이틀은 학교에서 통용되지 않았다. 대기업 회장의 자식들이 수두룩한데 임원이 무슨 소용인가. 학교에서 그들의 수발을 들기에 바쁠 뿐이었다.
눈치가 빠른 현상태는 자신의 부모 얘기를 거의 꺼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소문은 돈다.
강남에서 부동산 큰손으로 통하는 현기출.
그냥 자그마한 부동산 중개업자가 아니다. 신도시의 부지를 매입하고, 아파트 단지를 짓는다. 정부의 누군가와 입을 맞춰 준공업자들을 선정하기도 한다. 그가 한 달에 굴리는 돈만 1조가 넘는다고 하니, 일반인들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것이다.
돈이 있는 곳에는 똥파리가 꼬이는 법.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현기출은 꽤 큰 사조직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들이 바로 R그룹이라고 불리는 전직 소나기파의 조직원들이었다. 보통 조직원들과는 다르다. 그들도 일반인들과 똑같이 정장을 입고 출근한다. 정작 회사에서 하는 일은 별로 없지만, 힘을 쓸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출동을 했다.
현기출의 더러운 일들은 모두 그들이 처리한다고 보면 된다.
현상태는 그런 현기출의 외동아들이자 후계자였다.
상태는 아버지의 술 창고에서 독한 위스키 한 병을 꺼내 거실로 나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함께 출장 중이다. 부모님이 없다는 말인즉, 지금 이곳에서 자신이 왕이라는 것을 뜻했다. 저택을 관리하는 김 실장도 자신이 어떤 짓을 해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값비싼 천연 가죽 소파에 앉고서는 리모컨으로 TV를 켰다. 새벽이라 유선 방송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프로가 나오지 않았다.
“젠장.”
그는 붕대가 감긴 팔을 보며 입매를 뒤틀었다.
설마 자신이 이런 일을 당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병원에서 말하기를, 일주일은 안정을 취해야 한단다.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부모님들에게 당장 연락이 왔다. 노인네들이 겁은 많아서. 그들은 김 실장에게 잔인한 명령을 내렸다. 일주일 동안 외출 금지.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은 좋지만, 무척이나 답답했다.
옥상에서 떨어진 다른 친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오금이 저린다.
옥상에서 떨어지고도 살아남았다는 것은…… 아무래도 신이 나의 편이라는 뜻이겠지. 아니, 일곱 명이 다 살아남았으니, 왕따보다 자신들이 훨씬 더 세상에 이롭게 쓰일 존재라는 뜻일지도.
하긴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일곱 명의 목숨과 한 명의 목숨.
누가 봐도 일곱 명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
집안이 빵빵한 일곱 명과 부모도 없는 천애고아 한 명.
당연히 집안이 빵빵한 아이들이 살아야 한다.
더 깊게 들어가 보자.
다방면으로 능력이 좋은 일곱 명과 공부만 잘하는 버러지 한 마리.
길을 가는 사람에게 붙잡고 물어봐라. 둘 중에 하나가 죽어야 한다면 누굴 죽여야 하는지. 백이면 백, 다 일곱 명을 찍지 않을까.
하여 신의 뜻에 따라 천우 새끼는 사형이다.
오냐오냐해 줬더니 우리를 이따위로 가지고 놀아?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면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라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
기억을 지우는 기계가 있다면 돈이 얼마나 들든 당장 사고 싶었다. 그때의 추악한 기억만 살짝 지워 버리게.
카톡카톡.
친구들에게 문자가 온다. 어차피 일주일간은 모두 학교에 가지 못한다. 현미는 아예 병원에 입원해 버렸다. 최고급 1인실을 혼자서 마음껏 사용한다나 뭐라나. 우리 오빠도 병원으로 초대한다고 한다. 우리 오빠란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아이돌 럭키유의 리더인 마수리란 놈이다.
지금은 현미의 성노예이기도 하고.
― 야! 그 새끼 어떻게 됐어?
역시나 현미였다. 이년은 우리 오빠랑 밤새 있을 테니까 연락하지 말라고 해놓고 먼저 문자를 보내고 지랄이야.
― 기다려. 곧 연락 올 거야.
― 시간이 몇 신데 아직까지 기다리래?
― 넌 잠도 안 자냐?
― 안 자, 그 새끼 뒈졌다는 소식이 들릴 때까지.
― 마수리란 새끼는?
― 신경 꺼, 우리 오빠한테.
― 잘하는 짓이다.
― 너나 잘하라고.
― 입금은 언제 해?
― 그 왕따 새끼 뒈진 사진이나 보내. 그럼 바로 입금할 테니까.
― 알따.
“에이, 아이돌 빠순이 년.”
성태는 핸드폰을 소파 한구석으로 던져 버렸다. 잠도 안 오는데 술이나 몇 잔 더 마실 생각이다.
음, 소피아나 부를까?
문득 아랫도리가 뻐근해진다. 얼마 전에 만난 아이돌이자 신인 연기자다. 꽤 예쁘장해서 놀아줄 만도 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괜히 회사 소속 아이돌을 집에 들였다가 아버지 귀에 들어간다면 날벼락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아니, 잘하는 부동산업이나 할 것이지, 웬 뜬금없이 엔터테이먼트 회사냐, 이 말이다. 아무래도 귀가 얇은 우리 아버지가 요즘은 언테테이먼트가 돈이 된다는 진성이 아버지의 말에 넘어간 듯했다. 빤하지, 뭐.
카톡카톡.
또 메시지가 온다.
“아, 짜증 나. 이 새벽에 왜 자꾸 문자질이냐고.”
성태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 어케 됐어?
이번에는 진성이었다.
― 뭐가?
― 뭐긴 뭐야. 몰라서 물어?
― 다 됐어. 이제 연락만 오면 돼. 입금할 준비나 해.
― 그 새끼 담근 사진 보내. 그럼 입금한다.
성태는 피식 웃었다. 하여간 변태 새끼들이다. 죽은 시체를 확인해서 뭐하려고. 눈만 버리지. 어차피 내일이면 자살을 했다고 뉴스에 나올 텐데. 뉴스거리도 안 되면 인터넷 어딘가의 지역 신문에 나올지도 모르고.
어쨌든 다음 주부터는 그 재수 없는 새끼의 면상을 보지 않고 살아도 된다.
속은 시원하긴 하다만…….
이젠 누굴 가지고 놀지?
성태는 머릿속을 뒤져 봤다.
전교 1등, 질투가 나도록 잘생긴 외모, 짜증 나니까 패고 싶어지는, 그런 웃음을 가진 자식이 없나? 하긴 천우 새끼만큼 완벽하게 왕따가 되어줄 놈은 없는 듯했다. 조금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만 참고 넘어갈 걸 그랬나?
에이, 아니다.
친구들과 자신을 옥상에서 떨어트린 새끼다. 그런 일을 용서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성태는 김 실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김 실장은 자신이 잠이 들 때까지 저 자리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김 실장.”
“네, 도련님.”
“애들한테는 연락이 왔어요?”
“아직입니다.”
“시간이 좀 오래 된 것 같은데, 연락이 올 시간이 지난 것 아닌가요?”
김 실장은 왼손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확실히 좀 늦다. 평소 페이스라면 진작 연락이 오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30분만 더 기다려 보시죠.”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은 혁진과 필승에게서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젊은 애들이긴 해도 일처리가 신속하고 능숙하다. 조금만 더 가다듬으면 충분히 조직의 간부가 될 수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이 두 명이나 갔다. 겨우 왕따 고등학생 한 명 잡으러.
집 안에만 무사히 들어간다면 1분 내로 끝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연락이 오지 않고 있다.
혹시 교통사고라도 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만약 그렇다면 정말로 일진이 사나운 날이다.
카톡카톡카톡.
상태의 핸드폰으로는 계속해서 메시지가 온다.
“아오, 짜증 나.”
상태는 아예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답장을 하지 않자 현미와 진성에게서 번갈아 전화가 온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전화한다고! 아직 일 안 끝났대. 왜 이렇게 조바심 나게 굴어!”
대차게 소리를 치고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잔에 꽉 차 있던 위스키를 단숨에 마셨다.
“30분 지났잖아! 왜 연락이 안 와?”
상태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김 실장은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다. 이 시간까지 연락이 오지 않을 아이들이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김 실장은 핸드폰을 들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가 현관문 쪽으로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딩동딩동―
누군가가 벨을 눌렀다.
김 실장이 표정이 밝아졌다.
개새끼들, 걱정이나 시키고. 이제 왔나 보다.
* * *
SUV 승합차 한 대가 강남 대저택 앞에 도착했다. 천우를 죽이려 한 자들이 타고 온 자동차였다. 자신을 우습게 본 모양이다, 집 앞에 떡하니 주차를 시켜놓은 것을 보면. 덕분에 편하게 왔다.
천우는 대저택을 훑어보았다. 담만 5미터는 될 법하다. 일반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오르지 못할 듯했다.
또한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천우는 승합차를 뒤져 마스크를 찾았다. 마스크의 숫자는 상당히 많았다. 원래 이런 짓을 하는 놈이니, 준비가 철저하다고 칭찬을 해줘야 하나.
천우는 운전석에 앉아 있는 혁진을 보았다. 입에는 휴지가 잔뜩 물려 있다. 휴지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혀가 반쯤 뽑혀서 그런 것이다.
이미 눈동자는 살짝 맛이 갔다. 극도의 공포로 인해서 정신이 이승과 저승을 헤매고 있는 탓이었다. 그렇다고 정신을 아주 놓을 수는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천우가 심어놓은 협박이 떠나지를 않았다. 여기서 정신 줄을 놓으면 자신만 죽는 것이 아니다.
“집 좋네.”
“…….”
혁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천우를 바라보지도 못하고, 그저 덜덜 몸만 떨 있을 뿐이었다.
“내려.”
“네?”
“내리라고.”
“네, 네.”
혁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서 내렸다. 간신히 대답은 했지만, 발음이 신통치가 않았다.
천우는 차에서 혁진이 가지고 있던 칼을 꺼내 그것을 혁진의 손에 쥐어 주었다.
‘이게 뭡니까?’라는 눈빛으로 천우를 바라보는 혁진이었다.
“뭐긴. 저 저택 안에 있는 새끼들 다 죽여.”
“네?”
“못 들었어? 다 죽이라고.”
“…….”
“다 죽이면 넌 살아. 너의 가족도 살아. 나는 사라질 거야. 그럼 넌 죽어라 도망가면 돼. 중국으로 가든, 일본으로 가든 넌 자유야. 하지만 여기서 머뭇거리면 넌 죽어. 너희 가족도 다 죽어. 내가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갈 거야. 너 보는 앞에서 너의 가장 소중한 존재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야. 재밌겠지?”
“…….”
혁진은 부들부들 떨었다.
이자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저 빗대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이놈은…… 악마다.
24년의 인생 중에서 최악의 지뢰를 밟고 말았다. 절대 벗어날 수가 없는.
설마 악마라는 존재가 진짜로 있을 줄이야.
“…….”
혁진은 혀 때문에 말을 하기 쉽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안에 있는 사람들 다 죽이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가족들은 살려주세요.
“네가 하는 것 봐서. 자, 가라고.”
다행히 의미는 통한 듯했다.
혁진은 칼을 손에 묶었다. 절대 떨어지지 않게. 다 죽이기 전에 자신이 먼저 당할 수는 없었다.
대문 앞에 선 그는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들어와.]
안쪽에서 김 실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덜컹, 문이 열리고 혁진은 부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다잡으며 대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천우의 몸이 붕 떠올랐다. 어느새 그는 5미터나 되는 담벼락 위에 올라서 있었다.
‘현상태…….’
뿌드드드득.
천우의 어금니가 바득바득 갈렸다.
살려줬더니…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쳐?
현상태의 집은 강남에서도 300평이 넘는 부지에 100평이 넘는 2층 저택으로 되어 있었다. 시가로는 수백억을 호가할 정도. 그렇다고 상태가 학교에서 자랑을 하고 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학교에는 워낙 대단한 부모를 둔 애새끼들이 많았다.
아침부터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반장, 진성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서열 10위 안에 드는 대기업 회장의 하나뿐인 장손자다. 장관의 아들, 손자들도 수두룩하다. 장군의 아들은 발에 치인다.
어디 대기업의 임원이라는 타이틀은 학교에서 통용되지 않았다. 대기업 회장의 자식들이 수두룩한데 임원이 무슨 소용인가. 학교에서 그들의 수발을 들기에 바쁠 뿐이었다.
눈치가 빠른 현상태는 자신의 부모 얘기를 거의 꺼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소문은 돈다.
강남에서 부동산 큰손으로 통하는 현기출.
그냥 자그마한 부동산 중개업자가 아니다. 신도시의 부지를 매입하고, 아파트 단지를 짓는다. 정부의 누군가와 입을 맞춰 준공업자들을 선정하기도 한다. 그가 한 달에 굴리는 돈만 1조가 넘는다고 하니, 일반인들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것이다.
돈이 있는 곳에는 똥파리가 꼬이는 법.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현기출은 꽤 큰 사조직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들이 바로 R그룹이라고 불리는 전직 소나기파의 조직원들이었다. 보통 조직원들과는 다르다. 그들도 일반인들과 똑같이 정장을 입고 출근한다. 정작 회사에서 하는 일은 별로 없지만, 힘을 쓸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출동을 했다.
현기출의 더러운 일들은 모두 그들이 처리한다고 보면 된다.
현상태는 그런 현기출의 외동아들이자 후계자였다.
상태는 아버지의 술 창고에서 독한 위스키 한 병을 꺼내 거실로 나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함께 출장 중이다. 부모님이 없다는 말인즉, 지금 이곳에서 자신이 왕이라는 것을 뜻했다. 저택을 관리하는 김 실장도 자신이 어떤 짓을 해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값비싼 천연 가죽 소파에 앉고서는 리모컨으로 TV를 켰다. 새벽이라 유선 방송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프로가 나오지 않았다.
“젠장.”
그는 붕대가 감긴 팔을 보며 입매를 뒤틀었다.
설마 자신이 이런 일을 당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병원에서 말하기를, 일주일은 안정을 취해야 한단다.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부모님들에게 당장 연락이 왔다. 노인네들이 겁은 많아서. 그들은 김 실장에게 잔인한 명령을 내렸다. 일주일 동안 외출 금지.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은 좋지만, 무척이나 답답했다.
옥상에서 떨어진 다른 친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오금이 저린다.
옥상에서 떨어지고도 살아남았다는 것은…… 아무래도 신이 나의 편이라는 뜻이겠지. 아니, 일곱 명이 다 살아남았으니, 왕따보다 자신들이 훨씬 더 세상에 이롭게 쓰일 존재라는 뜻일지도.
하긴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일곱 명의 목숨과 한 명의 목숨.
누가 봐도 일곱 명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
집안이 빵빵한 일곱 명과 부모도 없는 천애고아 한 명.
당연히 집안이 빵빵한 아이들이 살아야 한다.
더 깊게 들어가 보자.
다방면으로 능력이 좋은 일곱 명과 공부만 잘하는 버러지 한 마리.
길을 가는 사람에게 붙잡고 물어봐라. 둘 중에 하나가 죽어야 한다면 누굴 죽여야 하는지. 백이면 백, 다 일곱 명을 찍지 않을까.
하여 신의 뜻에 따라 천우 새끼는 사형이다.
오냐오냐해 줬더니 우리를 이따위로 가지고 놀아?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면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라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
기억을 지우는 기계가 있다면 돈이 얼마나 들든 당장 사고 싶었다. 그때의 추악한 기억만 살짝 지워 버리게.
카톡카톡.
친구들에게 문자가 온다. 어차피 일주일간은 모두 학교에 가지 못한다. 현미는 아예 병원에 입원해 버렸다. 최고급 1인실을 혼자서 마음껏 사용한다나 뭐라나. 우리 오빠도 병원으로 초대한다고 한다. 우리 오빠란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아이돌 럭키유의 리더인 마수리란 놈이다.
지금은 현미의 성노예이기도 하고.
― 야! 그 새끼 어떻게 됐어?
역시나 현미였다. 이년은 우리 오빠랑 밤새 있을 테니까 연락하지 말라고 해놓고 먼저 문자를 보내고 지랄이야.
― 기다려. 곧 연락 올 거야.
― 시간이 몇 신데 아직까지 기다리래?
― 넌 잠도 안 자냐?
― 안 자, 그 새끼 뒈졌다는 소식이 들릴 때까지.
― 마수리란 새끼는?
― 신경 꺼, 우리 오빠한테.
― 잘하는 짓이다.
― 너나 잘하라고.
― 입금은 언제 해?
― 그 왕따 새끼 뒈진 사진이나 보내. 그럼 바로 입금할 테니까.
― 알따.
“에이, 아이돌 빠순이 년.”
성태는 핸드폰을 소파 한구석으로 던져 버렸다. 잠도 안 오는데 술이나 몇 잔 더 마실 생각이다.
음, 소피아나 부를까?
문득 아랫도리가 뻐근해진다. 얼마 전에 만난 아이돌이자 신인 연기자다. 꽤 예쁘장해서 놀아줄 만도 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괜히 회사 소속 아이돌을 집에 들였다가 아버지 귀에 들어간다면 날벼락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아니, 잘하는 부동산업이나 할 것이지, 웬 뜬금없이 엔터테이먼트 회사냐, 이 말이다. 아무래도 귀가 얇은 우리 아버지가 요즘은 언테테이먼트가 돈이 된다는 진성이 아버지의 말에 넘어간 듯했다. 빤하지, 뭐.
카톡카톡.
또 메시지가 온다.
“아, 짜증 나. 이 새벽에 왜 자꾸 문자질이냐고.”
성태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 어케 됐어?
이번에는 진성이었다.
― 뭐가?
― 뭐긴 뭐야. 몰라서 물어?
― 다 됐어. 이제 연락만 오면 돼. 입금할 준비나 해.
― 그 새끼 담근 사진 보내. 그럼 입금한다.
성태는 피식 웃었다. 하여간 변태 새끼들이다. 죽은 시체를 확인해서 뭐하려고. 눈만 버리지. 어차피 내일이면 자살을 했다고 뉴스에 나올 텐데. 뉴스거리도 안 되면 인터넷 어딘가의 지역 신문에 나올지도 모르고.
어쨌든 다음 주부터는 그 재수 없는 새끼의 면상을 보지 않고 살아도 된다.
속은 시원하긴 하다만…….
이젠 누굴 가지고 놀지?
성태는 머릿속을 뒤져 봤다.
전교 1등, 질투가 나도록 잘생긴 외모, 짜증 나니까 패고 싶어지는, 그런 웃음을 가진 자식이 없나? 하긴 천우 새끼만큼 완벽하게 왕따가 되어줄 놈은 없는 듯했다. 조금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만 참고 넘어갈 걸 그랬나?
에이, 아니다.
친구들과 자신을 옥상에서 떨어트린 새끼다. 그런 일을 용서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성태는 김 실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김 실장은 자신이 잠이 들 때까지 저 자리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김 실장.”
“네, 도련님.”
“애들한테는 연락이 왔어요?”
“아직입니다.”
“시간이 좀 오래 된 것 같은데, 연락이 올 시간이 지난 것 아닌가요?”
김 실장은 왼손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확실히 좀 늦다. 평소 페이스라면 진작 연락이 오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30분만 더 기다려 보시죠.”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은 혁진과 필승에게서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젊은 애들이긴 해도 일처리가 신속하고 능숙하다. 조금만 더 가다듬으면 충분히 조직의 간부가 될 수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이 두 명이나 갔다. 겨우 왕따 고등학생 한 명 잡으러.
집 안에만 무사히 들어간다면 1분 내로 끝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연락이 오지 않고 있다.
혹시 교통사고라도 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만약 그렇다면 정말로 일진이 사나운 날이다.
카톡카톡카톡.
상태의 핸드폰으로는 계속해서 메시지가 온다.
“아오, 짜증 나.”
상태는 아예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답장을 하지 않자 현미와 진성에게서 번갈아 전화가 온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전화한다고! 아직 일 안 끝났대. 왜 이렇게 조바심 나게 굴어!”
대차게 소리를 치고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잔에 꽉 차 있던 위스키를 단숨에 마셨다.
“30분 지났잖아! 왜 연락이 안 와?”
상태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김 실장은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다. 이 시간까지 연락이 오지 않을 아이들이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김 실장은 핸드폰을 들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가 현관문 쪽으로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딩동딩동―
누군가가 벨을 눌렀다.
김 실장이 표정이 밝아졌다.
개새끼들, 걱정이나 시키고. 이제 왔나 보다.
* * *
SUV 승합차 한 대가 강남 대저택 앞에 도착했다. 천우를 죽이려 한 자들이 타고 온 자동차였다. 자신을 우습게 본 모양이다, 집 앞에 떡하니 주차를 시켜놓은 것을 보면. 덕분에 편하게 왔다.
천우는 대저택을 훑어보았다. 담만 5미터는 될 법하다. 일반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오르지 못할 듯했다.
또한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천우는 승합차를 뒤져 마스크를 찾았다. 마스크의 숫자는 상당히 많았다. 원래 이런 짓을 하는 놈이니, 준비가 철저하다고 칭찬을 해줘야 하나.
천우는 운전석에 앉아 있는 혁진을 보았다. 입에는 휴지가 잔뜩 물려 있다. 휴지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혀가 반쯤 뽑혀서 그런 것이다.
이미 눈동자는 살짝 맛이 갔다. 극도의 공포로 인해서 정신이 이승과 저승을 헤매고 있는 탓이었다. 그렇다고 정신을 아주 놓을 수는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천우가 심어놓은 협박이 떠나지를 않았다. 여기서 정신 줄을 놓으면 자신만 죽는 것이 아니다.
“집 좋네.”
“…….”
혁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천우를 바라보지도 못하고, 그저 덜덜 몸만 떨 있을 뿐이었다.
“내려.”
“네?”
“내리라고.”
“네, 네.”
혁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서 내렸다. 간신히 대답은 했지만, 발음이 신통치가 않았다.
천우는 차에서 혁진이 가지고 있던 칼을 꺼내 그것을 혁진의 손에 쥐어 주었다.
‘이게 뭡니까?’라는 눈빛으로 천우를 바라보는 혁진이었다.
“뭐긴. 저 저택 안에 있는 새끼들 다 죽여.”
“네?”
“못 들었어? 다 죽이라고.”
“…….”
“다 죽이면 넌 살아. 너의 가족도 살아. 나는 사라질 거야. 그럼 넌 죽어라 도망가면 돼. 중국으로 가든, 일본으로 가든 넌 자유야. 하지만 여기서 머뭇거리면 넌 죽어. 너희 가족도 다 죽어. 내가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갈 거야. 너 보는 앞에서 너의 가장 소중한 존재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야. 재밌겠지?”
“…….”
혁진은 부들부들 떨었다.
이자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저 빗대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이놈은…… 악마다.
24년의 인생 중에서 최악의 지뢰를 밟고 말았다. 절대 벗어날 수가 없는.
설마 악마라는 존재가 진짜로 있을 줄이야.
“…….”
혁진은 혀 때문에 말을 하기 쉽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안에 있는 사람들 다 죽이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가족들은 살려주세요.
“네가 하는 것 봐서. 자, 가라고.”
다행히 의미는 통한 듯했다.
혁진은 칼을 손에 묶었다. 절대 떨어지지 않게. 다 죽이기 전에 자신이 먼저 당할 수는 없었다.
대문 앞에 선 그는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들어와.]
안쪽에서 김 실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덜컹, 문이 열리고 혁진은 부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다잡으며 대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천우의 몸이 붕 떠올랐다. 어느새 그는 5미터나 되는 담벼락 위에 올라서 있었다.
‘현상태…….’
뿌드드드득.
천우의 어금니가 바득바득 갈렸다.
살려줬더니…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