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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둠이다 (1)



날카로운 눈매의 사내. 이름은 고혁진. 나이는 24세.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벌교 출신.
오로지 주먹 하나 믿고 상경하여 폭력으로 별 두 개를 달았다. 하지만 그의 본업은 상대방 조직의 간부를 목을 베는 척살조다.
그의 조직에서 척살조는 빠른 성공을 의미한다. 아닌 게 아니라 간부들 대부분이 척살조 출신이라고 들었다. 가장 화려한 미담을 자랑하는 곳도 척살조였다.
또한 척살조에도 기수가 있다. 제아무리 직급이 높은 간부라고 하더라도 같은 척살조의 선배에게는 최소한 사석에서 존대를 쓸 정도였다.
혁진은 그런 척살조에 들어간 것에 대해서 무한한 영광을 느꼈다.
비록 오늘 내려진 명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일의 연장선상일 뿐이었다. 더군다나 명령을 내린 사람은 조직의 후계자인 도련님이 아니던가.
도련님의 눈에 들면 간부가 되는 것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그가 똥을 핥으라면 그대로 따를 각오도 되어 있었다. 맨몸으로 고층 빌딩에서 뛰어내리라 명령을 내린다면 그것도 하겠다. 자신의 충성심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그렇기에 그의 인생에서 얼굴도 모르는 고딩 한 마리가 사라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냥 눈앞의 걸리적거리는 돌을 치운다는 느낌이었다. 단지 동생 정도 되는 아이의 목숨을 빼앗는다는 것만 신경에 거슬릴 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아프리카의 난민들이 물에 빠져서 죽었다고 해서 슬픈가?
중동의 내전에서 정부군 폭격으로 아이들이 죽었다고 해서 슬픈가?
인도의 지진으로 수만 명이 죽었다고 해서 슬픈가?
물론 슬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혁진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재수가 없네’라고 생각할 뿐, 그는 전혀 슬프지 않았다. 이제까지도 그래왔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이름도 모르는 고딩이 자신의 손에 죽었다고 해서 슬프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마음에 걸린다면 술 한 잔 마시고 털어버리면 된다.
그렇게 여겼는데……
이건 뭔지?
덜덜덜덜덜.
다리가 쉴 새 없이 떨린다. 팔도 마찬가지. 사지가 떨린다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겁에 질리면…… 정말로 사지가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친 듯 떨린다.
머릿속은 이미 혼돈이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져서 어떻게, 무엇부터 손을 써야 할지를 모르겠다.
이대로 있으면 죽는데.
이대로 우두커니 서 있으면 저렇게 되는데.
뜻하지 않게 조금 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덩치 큰 사내, 이필승. 나이는 한 살 어리지만 비슷한 시기에 조직에 들어와 형제처럼 지내는 사이였다. 그도 재능이 높아 척살조에 뽑혔다. 하여 대부분의 일은 그와 함께한다고 보면 된다.
지금은 그가 먼저 나섰다. 낚싯줄로 교살하고 천장에 매달면 일은 끝. 대충 씻고 옷은 불태우고서는 술이나 한잔하러 가면 된다. 오늘 같은 날은 두둑하게 입금도 되기 때문에 여자를 낀 채 술을 마셔도 되고.
그랬는데…… 필승의 목이 반쯤 휘어져 있다.
뿌드드득―
부러진 채 360도로 회전한다.
혁진으로서는 평생 잊지 못할 공포스러운 장면이었다. 친한 동생의 공허한 두 눈동자가 자신의 눈 속에 쾅쾅, 박혔다.
그 역시 죽은 사람의 눈을 수차례 봐왔다. 자신이 직접 죽인 사람의 눈도 봤다. 당시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마치 썩은 동태의 눈깔을 보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형제처럼 가까운 필승의 눈동자였다. 죽어버린 눈동자에서 눈물이 줄줄, 코에서도 콧물이 줄줄, 벌어진 입술 사이로 축 늘어진 혀에서도 침이 줄줄.
마지막으로 바지 사이로 지린 오줌이 줄줄.
끔찍했다.
그의 눈동자는 마치 말을 하고 있는 듯했다.

― 너는 나보다 더 잔인하게 죽을 거야. 왜냐고? 나는 본보기니까. 너는 입을 열 때까지 죽을 수 없어. 미안.

“너, 너 뭐야?”
혁진은 식칼을 들어 천우에게 겨눈 채 말했다.
놀랍게도 천우는 필승의 목을 물어뜯고 있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벌레 한 마리 죽이지 못할 만큼 마르고 연약해 보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달빛에 비친 그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마치 짐승인 것처럼 필승의 목을 이빨로 물어뜯고 있는 것이다.
뿌드드득.
힘을 줄수록 혁진의 목이 뒤틀렸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천우의 입안으로 빠르게 흘러 들어갔다.
아아아아~
천우는 잠시 눈을 감았다.
이 고취감!
이 고양감!
이것이 사냥의 묘미구나.
난생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 피를 모두 빨린 이자가 멀쩡하게 되살아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죄책감 따위는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하나의 의문이 들었다.
나는 인간의 피를 마셨다. 피를 마시고 걷잡을 수 없는 흥분과 활기를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인간이 맞는가, 아니면 괴물인가.
되살아나면서…… 나는 인간이 아닌 무엇이 된 것일까?
모른다.
아무런 정보도 없다.
영어 선생에게 단편적으로 들은 약간의 내용만 알 뿐이다.
좋아, 나머지 얘기는 영어 선생한테 들으면 되겠지.
일단 이것들부터 처리하고.
누군지 몰라도…… 나를 죽이려고 했다. 용의자는 대충 추려진다. 지금쯤 희희낙락하며 나의 죽음을 즐기고 있겠지.
그런 생각이 들자 뒷머리가 뻣뻣하게 굳어왔다.
누구 좋으라고?
동생의 인생도 파멸시킨 것도 모자라 나까지?
어림도 없는 소리다.
저 자식의 입을 여는 순간…….
나는 너에게 간다.
와득―
천우는 고개를 털었다. 어느새 그의 입 주변은 시뻘건 피로 가득하다.
필승은 이미 이승의 인간이 아니었다. 머리와 육체가 분리되며 벽면으로 튕겼다.
쿵!
하지만 거의 모든 피를 천우에게 빨린 탓인지, 더 이상의 피는 벽면에 튀지 않았다.
“야! 잠 좀 자자! 씨발, 아까부터 졸라게 쿵쿵거리네.”
옆집 술꾼이 벽을 두드리면서 소리친다.
저 아저씨는 만날 노는 것 같던데, 돈이 어디서 나서 매일 술을 저렇게 마셔 댈까? 하늘에서 돈이라도 떨어지나?
나중에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어쨌든 알았습니다, 아저씨. 빨리 끝내도록 하죠.
천우가 혁진에게로 움직였다. 그러지 않아도 빠른 몸놀림이 더욱 빨라졌다. 혁진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았다. 어둠에서 움직이는 천우는 도저히 인간의 시력으로는 쫓을 수가 없었다.
혁진은 겁에 질려 닥치는 대로 칼을 휘둘렀다. 선배들에게 배운 칼솜씨는 지금 이 순간 전혀 필요가 없었다. 일단 상대의 접근을 막아야 한다.
문제는 천우가 그의 칼질보다 더욱 빠르다는 것.
어느새 천우는 혁진의 등 뒤에 서 있었다. 그는 눈동자의 혈광을 빛내며 붉게 물든 혀를 날름거렸다. 목덜미를 핥으며 말한다.
“누구야?”
“으아아아아악!”
혁진의 머리털이 하늘로 곤두섰다.
머리털이 곤두선다는 말은 놀라는 말을 빗대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진짜로 너무 놀라면 머리가 곤두선다.
호랑이의 화광(火光)을 본 사람은 척추신경이 마비되고 부지중 대소변을 지리게 된다. 하반신은 마비되어 촌보도 움직이지 못한다고 한다. 조금도 과장이 보태진 말이 아니다. 야생 호랑이를 만나본 자들의 실태다.
지금 혁진이 느끼는 바가 그러했다.
그는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등 뒤로 칼을 휘둘렀다.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기대도 하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봤다.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방에 불을 켤 자신도 없었다. 그곳까지 가는 동안 자신의 목도 필승이처럼 될 것 같았다.
그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벽에 등을 기대면…… 최소한 등 뒤에서 공격을 받지는 않을 테니까.
한 발, 한 발.
으직.
“씨……발.”
필승의 잘린 팔뚝을 밟았다. 하마터면 미끄러질 뻔했다. 그는 발끝으로 필승의 팔등을 툭, 쳐냈다. 다시 밟으면 안 되니까.
문득 한쪽 벽면에 세워져 있는 커다란 전신 거울을 보았다. 자신의 모습이 달빛에 비쳤다.
이, 이게 나야?
믿을 수가 없었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했다. 눈두덩이는 시커멓다. 아까의 모습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마스크를 벗었다. 입술이 새파랗다. 경련을 일으키는 것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마치 죽음을 앞두고 있는…… 저승사자를 맞이하기 위해서 얼굴에 분칠을 한 사람 같았다.
그리고…….
거울 속에 비친 소년.
채 반응하기도 전에 천우는 혁진의 몸에 달라붙었다. 그의 자잘한 근육이 혁진의 숨통을 조였다. 떨쳐 내기 위해서 몸을 흔들지만, 꼼짝도 하지 않는다.
“씨발! 씨발! 떨어져, 이 새끼야!”
“아, 잠 좀 자자고!”
옆집의 아저씨가 또다시 벽을 두드렸다.
“조용히 하라잖아.”
천우는 혁진의 입에 손을 쑥 집어 넣어 혀를 잡아 뺐다. 그러고는 배추 뽑듯이 뽑아버렸다.
“우우우웁.”
혁진이 왈칵 핏덩이를 쏟아냈다. 그럼에도 그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천우는 겨우 170센티나 넘을 만한 신장에 삐쩍 마른 몸인데, 완력은 상상도 못할 만큼 강했다. 붙잡힌 전신에서 와드득 소리가 난다.
혁진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알아차렸다. 마치 아나콘다의 긴 몸통에 친친 휘감긴 듯한 기분이었다. 실제로도 도저히 빠져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점점 수렁 속으로 빠질 뿐이다.
“말해. 누가 보냈는지.”
천우는 혁진의 등에 달라붙은 채 그의 고개를 자신에게 돌렸다.
혁진은 발버둥을 쳤다.
저놈의 눈을 보면 안 된다. 보면 죽는다.
지금껏 혁진은 언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해 왔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사나이 인생인데, 굵고 짧게 가는 거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이름을 남긴다. 그는 이름을 남기고 싶었다.
그러나 이렇게 개죽음보다 못한 죽임은 당하고 싶지 않았다.
뿌드드득.
힘주어 버텼지만 소용이 없었다.
끝내 혁진의 고개가 완전히 돌아가 천우의 눈과 마주쳤다.
천우의 눈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태어나서 이토록 무서운 인간의 눈은 보지 못했다.
회장님의 위엄 있는 눈.
척살조 선배들의 살벌한 눈.
자신의 손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공포에 질린 눈.
후배들의 존경심이 가득 배어 있는 눈.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이름만큼이나 강렬한 의지가 담긴 필승의 눈.
수많은 눈동자를 봐왔지만, 이런 눈빛은 정말 처음이었다. 이놈의 눈빛은 블랙홀이다.
빨려들면 반드시 죽는다.
천우는 입을 벌렸다. 날카로운 송곳이가 혁진을 향해서 조금씩 전진한다.
“누구야?”
말을 하지 않으면 귓불부터 자근자근 씹어서 먹어버릴 테다. 심장은 파헤쳐서 너희 부모의 앞에 던져 주지. 불알을 잘라서 애인한테 던져 주고. 자식이 있어? 자식이 있으면 잘린 머리를 남겨주지.
넌 계속 의리를 지키도록 해.
나는 너의 가족을 산산조각 내버리겠다.
“으으으으으읍.”
끝내 혁진의 입에서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오줌을 질질 싸면서 무릎을 꿇었다. 이제껏 지켜온 모든 가치관과 세계관이 무너졌다. 그에게 남은 것은 생존의 대한 절실함과 가족에 대한 애착뿐이었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혁진은 머리를 바닥에 박고 빌듯이 울었다.
그런 혁진을 보며 천우는 얼음처럼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