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징벌


애애애애앵―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빗줄기가 세차게 몰아치는 가운데 119 구급 차량과 경찰 차량이 대성 고등학교 건물을 에워싸고 있었다.
당직을 서던 엄형태 선생은 사색이었다. 야자도 끝나고 학교에는 남아 있는 사람은 없었다. 밤을 꼴딱 새는 경비 윤씨만 보일러실에서 잠을 자고 있을 터였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일상.
엄형태 선생은 소주 두 병을 미리 챙겨뒀다. TV를 보면서 마른 오징어에 소주나 한잔 마시고 잠을 잘 생각이었다. 별일이야 있겠냐 하며.
한데 그 설마가 사람을 잡고 말았다.
일곱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집단 자살을 하다니……
“비키세요, 비키세요!”
아이들은 지금 119 구조대원들이 황급히 달라붙어 이송을 하려는 중이다.
“괜찮니? 얘들아, 괜찮아? 많이 다쳤어? 학교에는 어떻게 들어온 거야? 담 넘어왔어?”
“나중에 하세요. 지금은 병원을 가야 합니다.”
젊은 119 구조대원은 짜증이 나는지 약간 언성을 높였다.
그럼에도 엄형태 선생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눈이 뒤집힌 아이들에게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너희는 괜찮을 거야. 선생님이 엄마, 아빠한테 전화를 할게. 곧 오실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그런데 어떻게 들어왔어? 몰래 들어온 것이 맞지? 나 모르게. 일부러 몰래 들어온 거지?”
엄형태 선생은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제발 무슨 말이라도 해줘. 나 몰래 학교에 들어왔다고. 그 말 한마디만 하면 돼. 선생님은 잘못이 없다고.’
그의 주머니에서 녹음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아이들은 바들바들 떨기만 할 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눈이 뒤집힌 상태에서 집에 가고 싶다는 말만 반복했다.
멍청한 것들. 왜 감당하지도 못하면서 옥상에서 뛰어내린단 말인가. 구조대원의 말대로라면 발목에 밧줄을 맸다고 한다. 덕분에 모두 살았다나, 뭐라나.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죽으려면 깔끔하게 죽지. 저게 대체 뭐하는 짓이람.
하여간 요즘 학생들의 덜 떨어진 생각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가 없는 엄형태였다.
“안녕하십니까.”
그 순간, 두 명의 남자가 엄형태 선생에게 다가왔다. 둘 모두 가벼운 잠바를 입고 있다. 청바지에 운동화, 짧은 머리 스타일이 딱 ‘나 형사요’라고 말을 하는 듯하다.
“네.”
엄형태는 그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상대는 형사니까.
“잠깐 자리 좀 옮기시죠. 물어볼 것들이 있어서.”
“얼마든지요.”
엄형태 선생은 기꺼이 협조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최선을 다해서 제 할 일 했다는 것을 형사에게 어필해야 하니까.

* * *

쏴아아아―
학교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의 놀이터. 평상시에는 애기 엄마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지만, 지금은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아무도 없었다.
다만, 두 사람.
천우과 희연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아, 축축해.”
희연은 비에 젖어 짝 달라붙은 블라우스를 앞으로 당겼다. 정장 상의를 입고 있음에도 비 때문인지 속옷이 거의 비친다.
뭐지? 이 여자는?
“어쩔 생각이지?”
천우는 물었다.
조금 전, B동 옥상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아이들이 떨어지는 순간, 그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그냥 내버려 둘까? 그럼 속이 시원해질까?
아니다. 원수를 죽여야만 꼭 속이 시원해지는 것은 아니다. 허무함이 남을 수도 있으니까. 그것은 자신에게 마이너스가 된다. 왜 복수를 마친 자신이 미련을 남겨야 하는가.
결코 그렇게 놔둘 수는 없다는 생각에 천우는 마음을 정했다.
이대로 자비로운 죽음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동생에게 저지른 짓들을 모두에게 되돌려 줄 것이다.
학생도, 선생도…….
모조리 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직 죽는 사람이 나와서 안 된다.
죽이는 것은 나중에.
한꺼번에 처리할 생각이다.
놈들에게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새겨준 후에.
그런 생각이 들자, 천우는 떨어져 내리는 밧줄을 손으로 잡았다.
지지직―
일곱 명이나 매달려 있어서 그런지, 무게가 엄청났다. 아래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로 봐서는 곧 지상에 추락한다.
만약 저 자식들이 애초에 밧줄을 제대로 묶어놨다면 중간에 멈춰 설 테지만…… 그럴 확률이 있을까?
장담하지만, 밧줄은 바닥까지의 높이보다 훨씬 길다. 떨어지면 머리부터 박살이 난다.
저 자식들은 원래 그런 놈들이다.
자신만 아니라면 다른 이가 어떤 고통을 겪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이코패스.
“으읍.”
천우의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손바닥이 뜨거웠다. 금방 살이 찢어지고 피가 튄다. 그럼에도 천우는 손을 놓지 않았다. 허리에 힘을 주고 단단히 버텼다.
결국 부러진 난간이 있는 곳까지 가서야 천우는 걸음을 멈출 수 있었다.
“후욱후욱…….”
천우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손바닥을 쫙 펴서 확인해 보니 찢어진 살점에서 피가 급격하게 응고된다. 원인 모를 연기가 피어나더니, 동사에 피부가 재생했다.
“야!”
그때,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미 한 번 들어본 목소리. 통통 튀는 듯한 귀여움이 가득한 영어 선생의 목소리. 그러나 지금은 어조가 매우 딱딱하다. 아이들이 추락하는 것을 봤다면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천우는 등을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으음.”
그의 입에서 얕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뭐지, 저건? 진짜 총? 에이, 설마…….
천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한민국에서 총을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일반인은 없다.
“왜 죽였지? 그렇게 애들이 미웠나?”
희연은 딱딱하게 굳은 어조로 물었다. 한쪽 손바닥으로 얼굴이 묻은 빗줄기를 닦아내면서.
“죽이다니요? 무슨 그런 험한 말씀을.”
“다 봤어. 그래, 네 입장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얼마나 원통했을까.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안 죽였습니다.”
“다 봤어.”
“봤으면 알겠네요, 안 죽은 걸.”
“개수작하지 마. 내가 너 같은 부활자를 한두 번 본 줄 알아?”
“…….”
‘부활자’라는 단어에 천우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역시…… 저 여자는 왜 자신이 되살아났는지 알고 있다. 부활자라고? 그런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나와 같은 존재가 또 있단 말이겠지? 그거 재미있겠는데.
천우는 자신도 모르게 긴 혀를 내밀어 피처럼 붉은 입술을 핥았다.
태연스레 반응하는 천우를 보며 희연은 오싹오싹한 감정이 새삼 피어났다.
아무리 고등학생이라지만…… 역시 위험하다.
젠장, 진작 상부에 보고를 할 걸 그랬다. 완전히 망했네.
“움직이지 마! 한 발이라도 움직이면 쏜다.”
어쩌지? 제압할까?
지금 드러난 천우의 눈빛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상대를 공포로 몰아넣는다.
희연으로서는 과연 천우를 제압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가 없었다.
부활자.
선배들과 달리 자신의 능력으로는 부활자를 어찌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상부에서도 그것을 알기에 그녀에게 ‘관찰과 정탐’이라는 임무를 맡겼다. 부활자와 싸우라는 것이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전투 능력이 떨어지는 희연은 제대로 임무도 완수하지 못하고 죽는다.
하지만……
천우는 이제껏 봐온 부활자와는 조금 달랐다.
“왜 자꾸 저한테 이러시는지 모르겠네요. 전 그냥 목격자예요.”
“목격자?”
“네. 쟤들이 뛰어내리는 것을 본 목격자.”
“하!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녀는 천우가 옥상에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분명히 봤다. 사실 문을 잠그는 순간부터 주도권은 천우가 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자비한 폭력과 교묘한 이간질로 아이들을 철저히 농락한다.
“아, 그냥 목격자는 아니겠네요. 전 저 아이들의 생명의 은인이죠.”
“뭐?”
“간신히 잡았다고요.”
천우는 손바닥을 보여주었다.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아서 피부가 벗겨진 손바닥.
희연은 재빨리 무너진 난간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아이들의 상태를 한눈에 확인할 수가 있었다. 천우의 말마따나 아이들은 크게 다친 곳이 없어 보인다. 다만, 정신을 잃었는지 바닥에 쓰러져서 신음을 흘리고 있다.
부활자가 사람을 살렸다고? 말도 안 돼!
부활자는 원한에 의해서 생겨난다. 교단에서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에서 절대로 상대방을 살려두지 않는다.
그들의 살해 현장을 보게 되면 잔인하다 못해서 너무 끔찍했다. 사람을 회처럼 수백 조각으로 토막 내는 것은 귀여운 축에 속했다. 그만큼 상대에 대한 원한이 깊다는 말이기도 했다.
사정이 그러다 보니 이제껏 부활자가 원한의 상대를 살려뒀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뭐하고 계세요? 119에 신고 안 해요?”
“해, 해야지.”
희연은 허둥댔다.
그런 희연을 보며 천우는 피식 웃고는 걸음을 옮겼다. 생긴 것만큼이나 귀여운 면이 있는 선생님이다.
저 총…… 가스총이겠지? 하긴 요즘 들어서 여자들이 많이 가지고 다닌다고 하던데.
천우는 옥상의 문에 다가갔다.
그런데 분명 이 문은 누구도 열 수 없게 휘어놨는데…… 누가 이걸 정상으로 만들었다. 아이들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한 명뿐이다.
천우는 다시 희연에게 고개를 돌렸다. 처음부터 의심스러웠다. 자신에 대해서 아주 잘 아는 듯한 눈초리, 부활자라는 단어.
아무래도…… 입을 열게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당신, 누구지?”
천우는 물었다.
119와 112에 연달아 전화를 한 희연도 마침 천우에게 고개를 돌리는 중이었다.
그녀의 담담한 눈빛은 천우의 머리카락 하나까지 스캔하여 분석하는 듯했다.
“아무래도 자리를 옮겨야겠지?”
“왜?”
“끝이 이렇게 흐지부지한 게 좋아? 너도 궁금한 점이 많을 것 아냐.”
“아무리 선생이라도… 허튼소리를 하면 죽여 버릴 거야.”
“그래, 역시 그래야 부활자지. 한 번 해볼까, 그 데스 메치?”

“그런데 너…… 아까부터 반말이다?”
옥상에서부터 천우는 반말, 존댓말을 섞어서 하더니, 이제는 아예 반말이다.
“당신의 정체를 알 수 없으니까.”
“딱 보면 몰라? 선생이잖아.”
“선생이라고 넘기기에는 너무 의심스럽지.”
“이야, 머리 좋네? 하긴 전교 1등의 비상한 머리였으니…… 부활자가 되었다고 해서 어디 가겠어.”
사람이 바뀌었다는 사실은 모르는 것 같군. 나는 전교 1등이 아니야. 내 동생이 전교 1등이지. 뭐,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만.
“됐고, 부활자가 뭐지?”
“부활자가 부활자지, 뭐긴 뭐야.”
“말장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좋아. 가르쳐 줄게, 부활자가 뭔지. 대신 너도 나한테 가르쳐 줘야 할 것이 있어. 서로 오가는 것이 있어야 정당한 거래지. 어리지만 그런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싫으면 한판 뜨고. 이긴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하기로 하고.”
“거래라…….”
“그래. 너도 궁금한 것이 많을 거야.”
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다. 자신이 멀쩡히 살아 있는 것도 황당한데…… 이런 말도 안 되는 능력이라니.
“나는 아는 게 없어. 그래도 거래가 가능한가?”
“돼. 충분히.”
“그럼 거래를 하지.”
“좋아. 그럼 선공을 양보할게. 네가 궁금한 것은 뭐지?”
“부활자란 게 뭐지?”
“뭐긴, 죽었다가 되살아난 사람을 얘기하는 거지.”
“뭐?”
“못 들었어? 지금 너는 언데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