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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란의 밤 (2)



절규와 공포가 뒤섞인 목소리가 채연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다급함으로 인해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댔다. 이미 천우에게 걷어차인 고통은 잊은 지 오래였다.
조금 전까지 창자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전신을 지배했지만, 지금은 친구에 대한 배신이 더 충격적인 듯했다. 그녀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희라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이거 놔!”
“네가 놔! 씨발, 나를 배신해?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닥쳐! 나라도 살아야 할 것 아니야! 나 고소공포증 있는 것 알지? 부탁이니까…… 그냥 떨어져 주라.”
“이 미친년! 너나 떨어져!”
둘은 서로 부둥켜안은 채 젖은 바닥을 이리저리 굴렀다. 목숨이 달린 문제였다. 일반적으로 치고받고 하는 수준의 싸움이 아니었다.
둘은 반드시 죽이겠다는 일념하에 상대의 목줄을 노렸다. 손톱으로 상대의 얼굴을 할퀴고, 귀를 물어뜯었다. 그녀들의 고운 얼굴이 점점 흉측하게 변해갔다.
천우는 여자들의 싸움이 이토록 치열하고 잔인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악마 새끼.”
그때까지 한 켠에 버려지듯 자리하고 있던 현미가 두 손을 꽉 쥐고 매서운 눈으로 천우를 노려보았다. 비에 홀딱 젖어 상의 속옷이 모두 비치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천우는 냉정한 눈빛으로 현미를 마주 봤다.
“내가 악마라고?”
“그래, 너는 악마야.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것은 악마밖에 없어.”
“개소리하고 앉아 있네.”
끝까지…… 자신들의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는 정신 상태를 한 번 파헤쳐 보고 싶은 천우였다.
하지만 현미도 결코 만만한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바락바락 악을 쓰며 천우를 질타한다.
“당장 저애들을 본래대로 돌려놔! 이건 살인자나 할 짓이라고!”
“그럼 너희가 나한테 하려고 했던 짓은?”
“몰라서 물어?”
“몰라서 묻는다.”
“장난이잖아!”
“장난이라고?”
“그래! 겨우 장난 가지고 너무 심하잖아!”
천우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갑자기 두통이 몰려온다.
장난이라고? 지금까지 했던 모든 것이 장난이라고?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 장난이라고!
천우의 눈빛이 점점 까맣게 죽어간다. 맹렬한 증오가 그의 전신을 태우는 듯했다.
“나도…… 장난이야.”
천우의 낮은 목소리가 세찬 빗줄기를 뚫고 현미의 귀에 전달됐다.
“뭐라고?”
“나도 지금 장난치고 있는 거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이게 어딜 봐서 장난이란 거야!”
천우의 몸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현미의 눈앞에서 불쑥 나타났다. 깜짝 놀란 현미는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천우는 손이 좀 더 빨랐다. 머리채를 틀어쥔 천우가 앞으로 당겨 현미의 얼굴을 자신의 눈앞으로 가져다 댔다.
“크으윽.”
현미는 중심을 잃었지만 천우의 억센 아귀힘으로 인해서 넘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머리채를 강하게 잡고 있고 있기에 고통은 가중된다.
“장난이라고? 그래, 좋아. 나도 장난이니까…… 헛소리하지 말고 너도 뛰어내릴 준비나 해. 뭘 하든 친구들과 함께해야지. 안 그래?”
천우는 현미의 머리채를 잡은 채 그대로 난간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철퍽철퍽.
현미는 미친 여자처럼 소리를 질렀다.
“놔! 이 개새끼야! 놓으라고! 넌 뒈졌어! 내가 널 끝장낼 거라고! 우리 엄마한테 다 이를 거야! 내가 장담할게. 내일이면 넌 콩밥을 먹게 될 거야!”
천우는 묵묵히 현미의 발목에 밧줄을 묶었다.
“안 돼!”
현미가 몸부림을 쳤지만, 천우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천우야,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으니까 제발 용서해 줘. 조금 전에 한 말, 다 거짓말이야. 절대 안 그럴 테니까, 한 번만 용서해 줘.”
그토록 악에 받쳐서 발버둥을 치던 현미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코앞에서 지상을 보자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천우의 태도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현미가 다급하게 말을 바꿨다.
“너, 너, 너…… 나 사랑했잖아. 그래, 줄게. 너한테 날 줄게. 그러니까…… 하지 마. 제발 멈추라고.”
애타는 애원에도 천우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현미의 목을 잡아서 난간 밖으로 넘겼다. 그러고는 손을 놨다.
“꺄아아아악!”
현미는 무의식적으로 난간을 붙잡았다.
쏴아아아―
마침 비바람이 더욱 거세지며 치미가 뒤집혔지만, 그에 대해선 신경을 쓸 겨를도 없었다. 그녀는 밑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평상시에는 별게 아니었는데…… 지금은 끔찍할 정도로 높아 보였다. 평소 도도한 모습과 달리 지금 현미의 몰골은 정말 말이 아니었다.
공포를 참지 못해 오줌을 지린 듯 새하얀 다리를 타고 누런 액체가 흘러내린다.
바로 그 순간,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누군가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이천만 원…… 갖다 줄게.”
상태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의 얼굴은 돌덩이가 되어서 딱딱하게 굳어 있다.
점점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 반쯤 장난으로 시작한 일이 지금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로 번졌다.
어차피 천우는 왕따다. 아무도 그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는다. 1학년들조차 담배 셔틀을 시킨다.
선생님들도 상황은 마찬가지. 공부를 잘하든 말든, 그것은 하등 학교 운영과 관계가 없었다. 그보다는 기부금을 듬뿍듬뿍 내는 전교 2~3등의 학생들이 훨씬 더 소중했다.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대성 고등학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문이다.
애초에 저런 가난뱅이 쓰레기 자식이 이곳에 다녀서는 안 됐다.
공부 좀 한다고 해서 미래가 달라질 건 없다.
어차피 자신들처럼 선택받은 존재들을 위해 좀 더 열심히 일을 하게 될 뿐이니까.
그런 놈이 주제도 모르고 함께 어울리려 한 것이 큰 잘못이다.
진정한 실력은 혈통이다.
흙수저는 죽었다 깨어나더라도 찬란한 금수저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상태는 자신이 난간 끝에 매달려 서 있는 이유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 어쨌거나 당장 위기에 처한 것만은 분명하다. 일단은 이곳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상태는 천우에게 미끼를 던졌다.
악다구니를 쓰며 싸우다 지쳐 숨을 헐떡이던 채연과 희라의 발목까지 모두 밧줄로 묶어버린 천우는 잠시 멈칫거렸다.
“2천 만 원?”
“그래, 2천만 원. 원래 주기로 한 돈.”
“지갑 까봐.”
“여기에 없어. 은행에 가야 있어. 통장에 있단 말이야.”
“이게 어기서 개수작을 부리고 있어? 없으면 말아. 자, 모두 자세 잡아. 마지막이니까 기념으로 사진 찍어줄게.”
천우가 핸드폰을 그들의 면상에 들이밀었다.
“자, 잠깐만! 내가 진짜 2천만 원 준다고!”
상태는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악착같이 외쳤다.
천우가 잠시 멈칫거렸다.
그 모습에 다른 아이들 역시 무언가를 느낀 모양이다.
“나, 나는 3천만 원 줄 수 있어! 정말이야. 우리 엄마가 나 급할 때 쓰라고 1억을 넣어줬거든. 거기서 3천만 원 뽑아다 줄게.”
현미가 다급하게 외쳤다.
“나는 4천만 원 줄게! 진짜야! 우리 아빠가 우진 기업 사장인 거 알지? 아니다. 5천 준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한테 집도 사 줄 수 있어.”
이번에는 진성이 끼어들었다.
그들만큼의 재력이 되지 않는 듯, 채연과 희라, 수만은 입을 꾹 다물었다. 간신히 기어 올라온 진천은 말을 기운도 없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2천이든 5천이든 가지고 오면 다 보내준다. 누가 갈래?”
천우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그 말에 아이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나, 나! 내가 갈게. 내가 금방 갔다 올게. 저 새끼들은 사람 뒤통수치는 게 일이야. 그러니 나를 믿어.”
상태가 손을 들었다.
“아니야. 내가 갈게. 정말이야. 나를 딱 한 번만 믿어봐!”
현미가 소리쳤다.
“난 돈이라면 썩을 정도로 많아. 그냥 막 버려도 돼. 그러니까 나를 보내줘. 저년하고 저 새끼하고 붙어먹는 것을 내가 봤어. 저것들을 믿으면…… 내가 장담하는데, 절대 안 돌아와. 그러니까 돈을 받고 싶으면 나를 보내줘.”
“씨발, 개새끼야. 내가 저 새끼랑 붙어먹는 것 봤어? 봤냐고!”
“닥쳐! 그걸 꼭 봐야 아냐! 걸레 같은 것들은 내 옆에서 숨도 쉬지 마! 냄새 나니까.”
이제는 서로 물어뜯는다.
천우는 피식 웃었다.
독충들은 한곳에 모아두면 한 마리가 남을 때까지 서로를 잡아먹는다고 하더니…… 딱 그 짝이었다.
내가 갈게! 내가 갈게!
넌 저리 꺼져!
씨발. 너희나 꺼져.
지갑 내놔. 너희는 다 죽어도 나는 살아야겠어.
내가 종이야? 왜 네 말만 들어야 하는데.
우리 부모님 건들기만 해봐. 씨발, 다 죽여 버릴 거야.
천우의 눈빛이 더욱 깊게 가라앉았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현장이다. 가만히 두고 보면 끝이 날 것 같지가 않다.
“야, 정했냐? 한 명은 보내준다니까. 그냥 돈만 가져와. 그럼 다 풀어줄게.”
“내가 간다고!”
현미가 몸을 비틀었다.
“야, 이년아! 이번에는 네가 양보해.”
희라가 외쳤다.
“지랄, 돈도 없는 년이 어디서 자꾸 톡톡 끼어들어? 거지 년은 저리 빠져.”
“네가 봤어? 우리가 거지처럼 사는 것 봤냐고!”
“꼭 봐야 아냐. 니 얼굴을 봐라. 거지라고 써놓고 다니잖아.”
“이런 쌍년이!”
“쌍년? 어서 떨어지기나 해. 난 살아야 하니까.”
“씨발, 죽어도 너만큼은 가만 안 둔다.”
악에 받친 희라가 현미의 옆구리를 밀쳤다. 현미가 휘청거리며 뒤로 밀려나자 채연과 상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끼리 싸워! 나한테 피해주지 말고!”
이것들은 보내준다고 해도 난리다. 누군가 나서서 희생을 한다면 큰마음 먹고 보내주려고 했는데, 스스로 굴러온 복을 차버린다.
극도의 이기심이 자신들의 목줄을 옭아매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양보란 것을 전혀 모르고 살아왔을 테니, 누구를 탓할 것도 없다.
“마지막 기회야. 딱 셋을 세지. 누군지 정해. 하나…….”
“나야! 나라고!”
“보면 몰라? 내가 가장 부자잖아!”
“우리 집이 어떤 집안인지 알지? 제발 보내만 줘!”
아이들은 지옥에서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추악하고 역겨웠다.
“둘…….”
“나야! 나라고! 씨발, 떠밀기만 해봐. 지옥까지 쫓아가서 너를 죽여 버릴 거야.”
“한 번만 봐줘. 다 준다니까. 여기서 할래? 당장 벗을까?”
“……하나. 너희들은 정말 안 되겠다.”
천우는 난간으로 점점 다가갔다. 하지만 아이들은 뒤로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천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서 빨리 구해 달라는 듯이.
그 순간.
와드드득―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난간이 바깥쪽으로 휘어지고 말았다. 볼트와 너트가 사방으로 튕겨졌다.
끼이익.
쇠 마찰음과 함께 난간은 순식간에 한쪽으로 기울었다.
“으아아아악!”
일곱 명의 아이가 주르륵 난간에 매달렸다. 발을 허우적거리지만, 디딜 곳은 없었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극도의 공포가 맺혀 있었다.
마치 지금의 상황이 현실일 리가 없다고 말을 하는 것처럼.
안됐지만, 이건 어김없는 현실이다.
천우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핸드폰을 주웠다. 핸드폰 끝에 귀여운 캐릭터가 달려 있는 곳으로 보아 여자애들 것 중에 하나였다.
“이거 누구 거야?”
천우의 물음에도 아이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들려오는 건 욕설뿐이다.
“씨발, 아아아아! 팔의 힘이 빠져. 이거 어떡해! 정말이야, 손가락의 힘이 빠지고 있어!”
채연이 눈물을 줄줄 흘렸다.
뭐, 어쩌라고?
천우는 핸드폰을 켰다. 잠금 패턴은 없었다.
누가 봐도 상관이 없다는 건가?
핸드폰을 열어서 사진을 확인했다. 현미의 것이다. 친구들과 찍은 사진들이 반, 가족과 찍은 사진이 수십 장이었다. 개도 키우는 모양이다. 개를 얼마나 알뜰살뜰하게 키우는지…… 사진을 보는 내내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수십 장의 사진이 더 있다.
동생이 찍힌 사진이었다.
화장실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사진, 교실에서 바지를 벗기는 사진, 아이들이 휴지를 뭉쳐서 동생에게 던지는 사진, 화장실의 오물을 머리에 붓는 사진, 콜라를 강제로 먹이다가 토하는 사진…….
다시금 머릿속에 하얗게 변한다. 일기장으로 본 것만으로도 저것들은 죽어 마땅하다. 법이 해결해 주지 못하니 직접 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그가 단숨에 목숨을 끊어놓지 못한 이유는… 일말의 희망 때문이었다.
혹시나 죄를 반성하고 잘못을 뉘우치지는 않을까 하는, 그야말로 한 줌의 양심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하지만…….
실수였다.
인정한다.
저것들은 절대 뉘우치지 않는다는 것을. 차라리 죽을 때까지 두려움과 공포를 줘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이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
저들에게 아량 따윈 필요 없다. 이 믿지 못할 세상에 법적으로 처벌을 받게 한다는 것도 우스운 소리였다.
그저 받은 대로 되돌려 주면 된다.
“자, 웃어.”
천우는 매달려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향해 버튼을 눌렀다. 플래시가 팍팍 터진다. 아이들은 비명을 질러 댔다.
“웃으면서 가라. 내 동생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공포에 질려 정신이 나가 버린 아이들은 천우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귀담아듣지 못했다.
그와 동시에…….
와지끈―
난간이 부러졌다.
아이들이 한꺼번에 떨어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