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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란의 밤 (1)
아주 짧은 시간, 그나마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 있다. 화장실을 갔을 때. 놈들도 화장실에서만큼은 나를 내버려 둔다. 하지만 그 짧은 행복조차 깨는 놈들이 있다. 진천과 수만이 바로 그랬다.
그들은 진성의 꼬붕이다. 따지고 보면 나와 같은 처지가 아닌가.
하지만 그놈들이 가장 악랄하다. 둘은 틈만 나면 화장실로 쫓아와 나를 괴롭혔다. 그들은 나를 때릴 때마다 돈을 준다. 정말로 악랄한 수법이지만, 모두 진성한테 배운 것이다. 때리고 돈을 주고 무마를 해버린다.
이놈들은 그 짓을 나한테도 똑같이 써먹었다. 죽을 만큼 때리고…… 내 입속에 천 원짜리 한 장을 쑤셔 넣는다. 밥값이라도 하라며.
나는 놈들이 주는 돈을 씹어서 먹어버렸다.
놈들을 저주하면서.
세상에 신이란 존재가 있다면, 그놈들을 불태워 죽이는 게 당연할 텐데…….
역시 신은 없는 듯하다.
진천과 수만에 대해서 서술된 글귀가 떠올랐다.
과거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놈들보다 앞잡이 노릇을 하는 이들이 더 악랄했다고도 들었는데, 저 자식들이 딱 그런 꼴이다.
“옆에 새끼를 쳐.”
천우가 말했다.
“뭐?”
진천과 수만은 가까스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너희 옆에 있는 새끼를 때리라고.”
“그, 그게 무슨…….”
현재 진천과 수만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은 진성이다.
즉, 개에게 주인을 물어뜯으라고 명령을 내린 셈이었다.
“너희가 살고 싶으면 하라는 대로 해. 싫으면 말고.”
“하기만 해봐! 날 때리면 너희 부모들 다 실업자 될 줄 알아! 너희 가족들 모두 내쫓아 버릴 거라고!”
당황한 진성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싫어?”
천우는 가장 좌측에 있던 진천의 등을 발로 슬쩍 밀었다.
“으아아아악!”
진천은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해 난간을 붙잡았다. 겁에 질린 그의 바지에서 노란 액체가 줄줄 흘러나왔다. 얼마나 놀랐는지 눈동자가 휙 돌아간다. 동공이 커졌다 작아졌다는 쉴 새 없이 반복한다.
“셋 센다. 이놈을 때리든지 함께 떨어지든지. 너희가 선택해.”
진천과 수만은 주저했다. 그들은 피할 수 없는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셈이었다. 어디를 선택하든 지옥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성을 때리면 가족은 끝장이 난다.
그러지 않으면 모두가 함께 끝장이 난다.
둘 중에 하나를 반드시 골라야 한다.
“셋.”
카운트다운이 시작했다.
진천과 수만이 살아온 18년의 인생에서 가장 많은 생각을 거듭한 순간. 그 짧은 시간 동안 과거의 모든 일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쳤다.
“둘.”
“잠깐만, 말로 하자고.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우리가 몇 대 때린 것 때문에 그래? 그럼 사과할게. 사과할 테니까, 제발 우리 좀 풀어줘. 어어엉!”
끝내 수만이 울음을 터트렸다.
좆 까는 소리 하고 앉아 있네.
“……하나. 잘 가라.”
퍽―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울어 대던 수만이 진성의 면상을 때렸다. 한 손으로 난간을 잡고 있기에 그렇게 큰 힘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때렸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퍽―
진천도 진성의 뒤통수를 갈겼다.
“너, 너, 너희들!”
진성은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눈동자가 흔들렸다. 떨리는 다리는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그래, 꽤 아플 테지. 충견한테 물어 뜯겼으니.
천우는 잔인하게 웃으며 그들을 더욱 부추겼다.
“좋아, 이제 되돌릴 수 없겠지. 여기서 너희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주지. 그 새끼를 떨어트려. 그럼 너희 부모는 회사에서 안 잘려도 돼. 저 새끼가 왜 떨어졌는지 아무도 모를 테니까.”
“그, 그건…… 하, 할 수 없어.”
진천과 수만은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공포에 질린 표정이다. 지금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은 표정이기도 했다.
그들은 낭떠러지 앞에서 멈추지 못했다. 그대로 뛰어내리고 만 것이다. 이제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 진성이 반드시 보복을 할 테니까.
“때려! 밀어! 그러면 너희는 살 수 있대도.”
천우가 달콤하게 속삭였다.
“그 손을 슬쩍 밀면 돼. 어렵지 않아. 이곳에 있는 모두가 입을 다물 거야. 아무도 모를 거야. 아무도. 죽은 자는 말이 없어. 어서 밀어!”
“으아아악!”
그래, 저 새끼를 떨어트리면…… 저 새끼만 떨어지면 우리는 살 수 있어.
진천과 수만이 떨리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천우의 유혹에 살길을 찾았다는 듯이. 둘은 모종의 결심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천이 진성에게 덜덜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진성이 먼저 손을 쓰고 말았다. 그가 진천의 팔목을 잡아 안쪽으로 당긴 것이다. 중심을 잃은 진천이 휘청거렸다.
“씨발, 날 때려? 날 떨어트려 죽이려고? 이 개새끼들…… 너희는 끝장이야. 너희 부모까지 한꺼번에 묶어서 끝장을 내버릴 거야.”
진성의 두 눈동자는 시퍼렇게 빛이 날 정도로 살벌했다. 악에 받친 그는 정말로 진천과 수만의 인생을 끝내 버릴 작정인 듯했다.
“으아아악!”
그러는 사이, 끝내 진천은 난간에서 손을 놓치고 말았다. 그의 중심이 좌우로 마구 흔들리더니, 이내 밑으로 추락한다.
덜컥.
“하악하악…….”
하늘이 도왔을까, 진천은 진성의 다리를 겨우 붙잡고 매달렸다.
“놔! 이 새끼야! 놓으라고! 이 쓰레기 같은 놈, 나까지 떨어진단 말이다!”
진성은 몸을 마구 흔들었다. 그러나 진천은 끝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아니, 왜들 그런데? 밧줄이 발목에 걸려 있잖아. 그냥 시원하게 뛰어내려. 왜? 혹시 그냥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힐까 봐? 어차피 너희들이 묶어놓은 거 아냐?”
천우가 이죽거렸다. 만약 제대로 묶어놨다면 저렇게 공포에 떨지는 않았겠지. 사람 목숨을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보다도 못하게 여기는 새끼들이다.
하지만 진성, 수만, 진천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서로의 욕설이 한데 뒤섞여 메아리친다. 자기들끼리 끊임없이 다툰다.
“우린…… 이만 갈래.”
그때, 천우의 뒤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익숙하면서…… 짜증나는 목소리.
재미 삼아 동생의 등에 컴퍼스를 찍던 년들. 순전히 재미로. ‘남들이 하니까 우리도 해도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동생을 괴롭힌 년들이다.
채연과 희라.
그녀들은 꽤 놀란 모양이다. 아닌 척 내색하지는 않지만, 눈빛에 두려움이 가득 맺혀 있었다.
“왜? 더 놀다 가지? 처음부터 이렇게 놀려고 온 거 아냐?”
천우는 방긋 웃으며 물었다.
“싫어.”
채연은 희라의 손을 잡고 천우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바보들이네. 문의 손잡이가 망가진 것을 못 봤나?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는 그녀들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천우는 두 아이를 잡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채연과 희라는 겨우 출입문까지 다가가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덜컹덜컹.
당연하게도 휘어진 손잡이는 그녀들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열어줘!”
채연이 천우를 돌아보며 애원하듯 말했다.
“까는 소리 하고 앉아 있네.”
천우는 채연에게 다가가 그녀의 턱을 움켜잡았다.
“너 설마…… 여, 여자를 때릴 생각이야?”
“응.”
배가 고프다. 점심을 먹지 못했다. 현태가 새벽부터 전화를 해서 아침도 먹지 못하고 나왔다. 하루 종일 굶었다.
점심때는 민우와 혁진, 경수에게 시달렸다. 오늘도 가슴에 담배 자국이 생겼다. 쓰라리고 아프다. 하지만 약 살 돈도 없다. 약을 살 돈까지 모두 뺏겼다.
몸에서 열이 난다.
조금만 누워서 쉬고 싶다.
겨우 의자에 앉아 억지로 버티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찔렀다.
아프다. 돌아보니 현미와 어울려 다니는 채연과 희라였다.
채연의 손에는 보기만 해도 날카로워 보이는 컴퍼스가 들려 있다.
얘들은 또 왜 날 괴롭히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이유를 물어도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비웃음뿐이다.
사람을 컴퍼스로 찌르고는 그걸 좋다고 웃다니…… 제정신인가.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대할 때면 주눅이 든다. 누구와 말을 해도 내가 피해자가 된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것 같아서.
채연과 희라는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나의 등을 컴퍼스로 찍었다. 그녀들이 하는 행동에는 어떤 자의식이 없었다. 그냥 내가 앞에 있으니까 찌르는 거다.
나는 사람이라고.
무생물도 이따위로 취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빌어먹을 년들아!
천우는 채연을 보며 방긋 웃었다. 그 모습만으로는 누군가에게 전혀 해를 끼칠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채연의 턱을 잡은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아예 턱을 부숴 버리고 싶은 욕구를 억지로 참아내는 천우였다.
“여, 여자를 때리는 남자는 최악이야. 놔줘.”
채연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말했다.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걸 직감적으로 눈치챈 듯했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안 좋았다.
“컴퍼스로 사람을 찌르는 여자는 더 최악이야. 뭐, 그래도 놔달라고 하니 그 말은 들어줄게.”
천우는 채연의 배를 걷어찼다. 그녀의 몸이 붕 뜨더니 몇 미터나 날아가서 바닥을 굴렀다. 치마가 훌떡 뒤집어져 앙증맞은 속옷까지 모두 드러났다. 참으로 굴욕적인 자세였다.
쏴아아아―
그런 채연의 몸 위로 세찬 빗줄기가 쏟아졌다.
희라는 금붕어처럼 입만 뻥긋거렸다. 설마 여자를 이렇게 무자비하게 걷어찰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표정이다. 그녀의 시선이 채연에게 가닿았다.
겨우 옷매무새를 추스른 채연은 배를 잡고서 끙끙거렸다. 도저히 일어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희라를 바라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제발 도와달라고.
도와줘? 뭘 어떻게?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희라의 어깨에 천우가 팔을 둘렀다. 순간, 희라는 천우의 품속에 폭 들어가며 아무 생각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저 고양이 입속에 들어간 생쥐처럼 심하게 몸을 떨 뿐이었다.
“처, 천우야…… 사, 살려줘.”
“뭐래? 누가 죽인대? 정말 실망이야. 나를 어떻게 보고. 나는 너희와 달라. 야! 너희들, 그만 싸우고 빨리 뛰어내려!”
달래듯 부드럽게 말을 하던 천우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서 아등바등 버티고 있는 진성과 진천, 수만에게 외쳤다.
상태는 그들에게 휩쓸려 같이 떨어질까 봐 최대한 멀어지려 애를 쓰고 있는 중이었다.
진성의 다리에 매달려 있는 진천은 떨어지기 일보직전이다. 그의 얼굴은 경악과 공포로 가득했다.
“떨어져! 떨어지란 말이다!”
하지만 진성은 추호도 그를 잡아서 올려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웃기는 놈들이야. 남을 괴롭힐 때는 그렇게 신나 하다가 자신들이 당하니까 저런 꼴이라니, 그렇지 않아?”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어.”
“그런데?”
“뭐든 할 테니까…… 제발 나는 봐줘.”
“그래?”
“응.”
천우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나도 미친놈이지만, 너도 어지간히 미쳤다. 지금 그게 친구들을 앞에 두고 할 소린가.
“좋아, 그럼 쟤부터 밑으로 던져 버려. 그럼 너는 내려보내 줄게.”
천우는 채연을 가리키며 마치 악마가 속삭이듯 희라에게 제안했다.
그 말을 들은 채연의 두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야, 너는 내 친구야. 설마…… 저 사이코패스의 말을 듣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지?
하지만 애타는 채연의 마음과 달리 희라는 결심을 굳힌 듯 태연스레 되물었다.
“쟤만 던지면 돼?”
“그럼. 나는 허튼소리는 안 해. 약속은 지킨다고.”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희라가 배를 잡고 쓰러져 있는 채연에게 다가갔다.
“희라야,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야. 설마…… 아니지? 아닐 거야. 그렇지?”
“미안…….”
전혀 미안하지 않은 목소리로 희라는 채연의 발목을 잡고 질질 끌었다. 마침 바닥에 물이 고여 있어 당기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야! 미친년아! 놔! 놓으라고!”
아주 짧은 시간, 그나마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 있다. 화장실을 갔을 때. 놈들도 화장실에서만큼은 나를 내버려 둔다. 하지만 그 짧은 행복조차 깨는 놈들이 있다. 진천과 수만이 바로 그랬다.
그들은 진성의 꼬붕이다. 따지고 보면 나와 같은 처지가 아닌가.
하지만 그놈들이 가장 악랄하다. 둘은 틈만 나면 화장실로 쫓아와 나를 괴롭혔다. 그들은 나를 때릴 때마다 돈을 준다. 정말로 악랄한 수법이지만, 모두 진성한테 배운 것이다. 때리고 돈을 주고 무마를 해버린다.
이놈들은 그 짓을 나한테도 똑같이 써먹었다. 죽을 만큼 때리고…… 내 입속에 천 원짜리 한 장을 쑤셔 넣는다. 밥값이라도 하라며.
나는 놈들이 주는 돈을 씹어서 먹어버렸다.
놈들을 저주하면서.
세상에 신이란 존재가 있다면, 그놈들을 불태워 죽이는 게 당연할 텐데…….
역시 신은 없는 듯하다.
진천과 수만에 대해서 서술된 글귀가 떠올랐다.
과거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놈들보다 앞잡이 노릇을 하는 이들이 더 악랄했다고도 들었는데, 저 자식들이 딱 그런 꼴이다.
“옆에 새끼를 쳐.”
천우가 말했다.
“뭐?”
진천과 수만은 가까스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너희 옆에 있는 새끼를 때리라고.”
“그, 그게 무슨…….”
현재 진천과 수만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은 진성이다.
즉, 개에게 주인을 물어뜯으라고 명령을 내린 셈이었다.
“너희가 살고 싶으면 하라는 대로 해. 싫으면 말고.”
“하기만 해봐! 날 때리면 너희 부모들 다 실업자 될 줄 알아! 너희 가족들 모두 내쫓아 버릴 거라고!”
당황한 진성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싫어?”
천우는 가장 좌측에 있던 진천의 등을 발로 슬쩍 밀었다.
“으아아아악!”
진천은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해 난간을 붙잡았다. 겁에 질린 그의 바지에서 노란 액체가 줄줄 흘러나왔다. 얼마나 놀랐는지 눈동자가 휙 돌아간다. 동공이 커졌다 작아졌다는 쉴 새 없이 반복한다.
“셋 센다. 이놈을 때리든지 함께 떨어지든지. 너희가 선택해.”
진천과 수만은 주저했다. 그들은 피할 수 없는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셈이었다. 어디를 선택하든 지옥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성을 때리면 가족은 끝장이 난다.
그러지 않으면 모두가 함께 끝장이 난다.
둘 중에 하나를 반드시 골라야 한다.
“셋.”
카운트다운이 시작했다.
진천과 수만이 살아온 18년의 인생에서 가장 많은 생각을 거듭한 순간. 그 짧은 시간 동안 과거의 모든 일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쳤다.
“둘.”
“잠깐만, 말로 하자고.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우리가 몇 대 때린 것 때문에 그래? 그럼 사과할게. 사과할 테니까, 제발 우리 좀 풀어줘. 어어엉!”
끝내 수만이 울음을 터트렸다.
좆 까는 소리 하고 앉아 있네.
“……하나. 잘 가라.”
퍽―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울어 대던 수만이 진성의 면상을 때렸다. 한 손으로 난간을 잡고 있기에 그렇게 큰 힘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때렸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퍽―
진천도 진성의 뒤통수를 갈겼다.
“너, 너, 너희들!”
진성은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눈동자가 흔들렸다. 떨리는 다리는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그래, 꽤 아플 테지. 충견한테 물어 뜯겼으니.
천우는 잔인하게 웃으며 그들을 더욱 부추겼다.
“좋아, 이제 되돌릴 수 없겠지. 여기서 너희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주지. 그 새끼를 떨어트려. 그럼 너희 부모는 회사에서 안 잘려도 돼. 저 새끼가 왜 떨어졌는지 아무도 모를 테니까.”
“그, 그건…… 하, 할 수 없어.”
진천과 수만은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공포에 질린 표정이다. 지금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은 표정이기도 했다.
그들은 낭떠러지 앞에서 멈추지 못했다. 그대로 뛰어내리고 만 것이다. 이제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 진성이 반드시 보복을 할 테니까.
“때려! 밀어! 그러면 너희는 살 수 있대도.”
천우가 달콤하게 속삭였다.
“그 손을 슬쩍 밀면 돼. 어렵지 않아. 이곳에 있는 모두가 입을 다물 거야. 아무도 모를 거야. 아무도. 죽은 자는 말이 없어. 어서 밀어!”
“으아아악!”
그래, 저 새끼를 떨어트리면…… 저 새끼만 떨어지면 우리는 살 수 있어.
진천과 수만이 떨리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천우의 유혹에 살길을 찾았다는 듯이. 둘은 모종의 결심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천이 진성에게 덜덜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진성이 먼저 손을 쓰고 말았다. 그가 진천의 팔목을 잡아 안쪽으로 당긴 것이다. 중심을 잃은 진천이 휘청거렸다.
“씨발, 날 때려? 날 떨어트려 죽이려고? 이 개새끼들…… 너희는 끝장이야. 너희 부모까지 한꺼번에 묶어서 끝장을 내버릴 거야.”
진성의 두 눈동자는 시퍼렇게 빛이 날 정도로 살벌했다. 악에 받친 그는 정말로 진천과 수만의 인생을 끝내 버릴 작정인 듯했다.
“으아아악!”
그러는 사이, 끝내 진천은 난간에서 손을 놓치고 말았다. 그의 중심이 좌우로 마구 흔들리더니, 이내 밑으로 추락한다.
덜컥.
“하악하악…….”
하늘이 도왔을까, 진천은 진성의 다리를 겨우 붙잡고 매달렸다.
“놔! 이 새끼야! 놓으라고! 이 쓰레기 같은 놈, 나까지 떨어진단 말이다!”
진성은 몸을 마구 흔들었다. 그러나 진천은 끝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아니, 왜들 그런데? 밧줄이 발목에 걸려 있잖아. 그냥 시원하게 뛰어내려. 왜? 혹시 그냥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힐까 봐? 어차피 너희들이 묶어놓은 거 아냐?”
천우가 이죽거렸다. 만약 제대로 묶어놨다면 저렇게 공포에 떨지는 않았겠지. 사람 목숨을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보다도 못하게 여기는 새끼들이다.
하지만 진성, 수만, 진천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서로의 욕설이 한데 뒤섞여 메아리친다. 자기들끼리 끊임없이 다툰다.
“우린…… 이만 갈래.”
그때, 천우의 뒤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익숙하면서…… 짜증나는 목소리.
재미 삼아 동생의 등에 컴퍼스를 찍던 년들. 순전히 재미로. ‘남들이 하니까 우리도 해도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동생을 괴롭힌 년들이다.
채연과 희라.
그녀들은 꽤 놀란 모양이다. 아닌 척 내색하지는 않지만, 눈빛에 두려움이 가득 맺혀 있었다.
“왜? 더 놀다 가지? 처음부터 이렇게 놀려고 온 거 아냐?”
천우는 방긋 웃으며 물었다.
“싫어.”
채연은 희라의 손을 잡고 천우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바보들이네. 문의 손잡이가 망가진 것을 못 봤나?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는 그녀들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천우는 두 아이를 잡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채연과 희라는 겨우 출입문까지 다가가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덜컹덜컹.
당연하게도 휘어진 손잡이는 그녀들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열어줘!”
채연이 천우를 돌아보며 애원하듯 말했다.
“까는 소리 하고 앉아 있네.”
천우는 채연에게 다가가 그녀의 턱을 움켜잡았다.
“너 설마…… 여, 여자를 때릴 생각이야?”
“응.”
배가 고프다. 점심을 먹지 못했다. 현태가 새벽부터 전화를 해서 아침도 먹지 못하고 나왔다. 하루 종일 굶었다.
점심때는 민우와 혁진, 경수에게 시달렸다. 오늘도 가슴에 담배 자국이 생겼다. 쓰라리고 아프다. 하지만 약 살 돈도 없다. 약을 살 돈까지 모두 뺏겼다.
몸에서 열이 난다.
조금만 누워서 쉬고 싶다.
겨우 의자에 앉아 억지로 버티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찔렀다.
아프다. 돌아보니 현미와 어울려 다니는 채연과 희라였다.
채연의 손에는 보기만 해도 날카로워 보이는 컴퍼스가 들려 있다.
얘들은 또 왜 날 괴롭히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이유를 물어도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비웃음뿐이다.
사람을 컴퍼스로 찌르고는 그걸 좋다고 웃다니…… 제정신인가.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대할 때면 주눅이 든다. 누구와 말을 해도 내가 피해자가 된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것 같아서.
채연과 희라는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나의 등을 컴퍼스로 찍었다. 그녀들이 하는 행동에는 어떤 자의식이 없었다. 그냥 내가 앞에 있으니까 찌르는 거다.
나는 사람이라고.
무생물도 이따위로 취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빌어먹을 년들아!
천우는 채연을 보며 방긋 웃었다. 그 모습만으로는 누군가에게 전혀 해를 끼칠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채연의 턱을 잡은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아예 턱을 부숴 버리고 싶은 욕구를 억지로 참아내는 천우였다.
“여, 여자를 때리는 남자는 최악이야. 놔줘.”
채연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말했다.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걸 직감적으로 눈치챈 듯했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안 좋았다.
“컴퍼스로 사람을 찌르는 여자는 더 최악이야. 뭐, 그래도 놔달라고 하니 그 말은 들어줄게.”
천우는 채연의 배를 걷어찼다. 그녀의 몸이 붕 뜨더니 몇 미터나 날아가서 바닥을 굴렀다. 치마가 훌떡 뒤집어져 앙증맞은 속옷까지 모두 드러났다. 참으로 굴욕적인 자세였다.
쏴아아아―
그런 채연의 몸 위로 세찬 빗줄기가 쏟아졌다.
희라는 금붕어처럼 입만 뻥긋거렸다. 설마 여자를 이렇게 무자비하게 걷어찰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표정이다. 그녀의 시선이 채연에게 가닿았다.
겨우 옷매무새를 추스른 채연은 배를 잡고서 끙끙거렸다. 도저히 일어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희라를 바라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제발 도와달라고.
도와줘? 뭘 어떻게?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희라의 어깨에 천우가 팔을 둘렀다. 순간, 희라는 천우의 품속에 폭 들어가며 아무 생각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저 고양이 입속에 들어간 생쥐처럼 심하게 몸을 떨 뿐이었다.
“처, 천우야…… 사, 살려줘.”
“뭐래? 누가 죽인대? 정말 실망이야. 나를 어떻게 보고. 나는 너희와 달라. 야! 너희들, 그만 싸우고 빨리 뛰어내려!”
달래듯 부드럽게 말을 하던 천우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서 아등바등 버티고 있는 진성과 진천, 수만에게 외쳤다.
상태는 그들에게 휩쓸려 같이 떨어질까 봐 최대한 멀어지려 애를 쓰고 있는 중이었다.
진성의 다리에 매달려 있는 진천은 떨어지기 일보직전이다. 그의 얼굴은 경악과 공포로 가득했다.
“떨어져! 떨어지란 말이다!”
하지만 진성은 추호도 그를 잡아서 올려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웃기는 놈들이야. 남을 괴롭힐 때는 그렇게 신나 하다가 자신들이 당하니까 저런 꼴이라니, 그렇지 않아?”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어.”
“그런데?”
“뭐든 할 테니까…… 제발 나는 봐줘.”
“그래?”
“응.”
천우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나도 미친놈이지만, 너도 어지간히 미쳤다. 지금 그게 친구들을 앞에 두고 할 소린가.
“좋아, 그럼 쟤부터 밑으로 던져 버려. 그럼 너는 내려보내 줄게.”
천우는 채연을 가리키며 마치 악마가 속삭이듯 희라에게 제안했다.
그 말을 들은 채연의 두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야, 너는 내 친구야. 설마…… 저 사이코패스의 말을 듣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지?
하지만 애타는 채연의 마음과 달리 희라는 결심을 굳힌 듯 태연스레 되물었다.
“쟤만 던지면 돼?”
“그럼. 나는 허튼소리는 안 해. 약속은 지킨다고.”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희라가 배를 잡고 쓰러져 있는 채연에게 다가갔다.
“희라야,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야. 설마…… 아니지? 아닐 거야. 그렇지?”
“미안…….”
전혀 미안하지 않은 목소리로 희라는 채연의 발목을 잡고 질질 끌었다. 마침 바닥에 물이 고여 있어 당기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야! 미친년아! 놔! 놓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