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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학교 (2)



채연과 희라는 동생과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막말로 어깨도 한 번 부딪쳐 보지 못한 사이다. 그런데도 그녀들이 악착같이 동생을 괴롭힌 이유는 단순한 재미 때문이다.
그저 현미가 동생을 가지고 노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것이다. 한마디로 씨발 년들. 나도 한 번 재미로 너희들을 죽여봐야겠다.
한편, 진성은 반장이다. 전교 3등. 단 한 번도 동생을 이겨보지 못한 놈이다. 쉽게 말해서 동생에 대한 질투로 인해 왕따에 동참한, 못난 새끼였다. 그렇게라도 하면 동생을 한 번 꺾어볼까 해서.
진천과 수만은 그 진성의 똘마니. 진성이네 부모님이 엄청난 부자라나 뭐라나. 진천과 수만의 부모님은 그런 진성이네 부모님의 회사의 직원들이었다.
대를 이어 엉덩이를 흔들고 있는 딸랑이인 셈이다.
“야~ 우리가 친절하게 줄도 묶어놨다.”
상태는 옥상 난간에 아무렇게나 긴 밧줄을 묶어놓고는 자랑하듯 떠들어 댔다. 딱 봐도 성의 없이 대충. 더군다나 난간이라니. 저런 곳에서 번지점프를 뛰었다가 난간과 함께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 딱 좋았다.
“뭐야? 표정이 왜 그래? 설마 이제 와서 하기 싫다는 것은 아니지?”
“아, 하지. 그럼 돈은?”
천우는 손을 내밀었다.
“야이, 개새끼야! 돈 같은 소리 하네. 내 입술을 이따위로 만들어놓고 돈 얘기가 나와? 당장 뛰어, 씨발 놈아! 빨리 뛰어서 목이나 부러져 뒈지란 말이야!”
고현미가 앞으로 튀어나오며 서슬 퍼렇게 외쳤다. 그녀의 눈빛은 금방이라도 천우를 잡아먹을 것 같이 사나웠다.
“하아…….”
천우는 비에 젖은 긴 머리를 손바닥으로 쓸어 올렸다.
“이것들이…… 정말 말로 해서 안 되겠네. 돈도 없이 저딴 허술한 밧줄로 나한테 번지점프를 시키려고 해?”
“닥치고 뛰라고! 이 새끼야!”
현미의 앙칼진 목소리가 빗소리에 뚫고 터져 나왔다. 손에 칼이라도 들려 있으면 당장 천우에게 덤벼들 기세였다.
천우의 시선이 현상태에게 꽂혔다.
“돈 없지?”
현상태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니미, 돈은. 야, 아직도 사태 파악이 안 돼? 우리가 묶어서 던져 줄까? 유서도 작성해 놨어. 자, 읽어줄게.”
현상태는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빗물이 묻자 대충 털어내고는 종이를 펴서 한 자씩 또박또박 읽기 시작했다.
“저는 천우라고 합니다. 삶이 너무 힘들고 팍팍해서 이만 멈추려고 합니다. 엄마, 아빠, 미안해. 내가 죽으면 양지 바른 곳에 묻어줘. 어때? 간결하고 좋지?”
상태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유서를 흔들었다.
“야, 나 고아다. 엄마, 아빠는 무슨.”
“뭐?”
“그렇게 쓰면 경찰이 의심해요. 다시 써와.”
“…….”
상태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정도 했으면 겁을 먹고 눈물 콧물을 질질 짜야 정상인데…… 아직까지도 저렇게 뻗대는 이유가 무엇일까.
“정말로 머리를 다쳤나?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아.”
“그거야 니들이 알 것 없고. 상태는 거기 쭈그리고 앉아서 유서나 다시 써. 이번에는 나 말고 너희들 일곱 명 걸로 다시 썼으면 좋겠어. 이렇게 써. ‘엄마, 아빠, 미안해. 난 왕따를 괴롭힌 것이 너무 마음에 걸려. 양심 고백이야. 죄책감 때문에 안 되겠어. 이만 뒈질게’라고.”
“이런 미친 새끼.”
“미친 새끼는 너고.”
천우는 옥상 철문을 바라봤다. 문을 닫고 손잡이를 잡았다.
뿌드드득―
문고리가 비틀렸다. 아이들의 힘으로는 이제 죽었다 깨어나도 열지 못한다. 흡사 자신이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저 녀석들의 힘으로는 열지 못한다.
최소한 누군가가 저들을 발견해 줄 때까지.
천우는 부러트린 문고리를 휙 던져 버렸다.
“자, 어쩔래? 이제 너희는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다.”
“무슨 개소리야! 이 새꺄! 빨리 뛰어내리라고!”
현미는 여전히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지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 댔다.
동생이 왜 이런 애한테 빠졌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하긴 그토록 힘든 상황에서 어쩌면 네가 내민 손이 구원과 같았을지도.
하지만 다시 생각해 봐도 넌 빌어먹을 년이다. 맷돌로 갈아 돼지 먹이로 줘도 시원찮을 년.
“아니, 선후 관계가 잘못 됐어. 돈이 먼저고, 뛰어내리는 것은 나중이야. 한데 너희는 약속을 깼어. 그러니 너희가 대신 뛰어내려야겠어.”
“뭐? 미친 새끼, 여기에 우리가 몇 명이나 있는 줄 알아?”
천우는 고개를 들어 싸늘한 눈빛으로 현미를 바라봤다.
“몇 명이 있든 무슨 상관인데? 어차피 너희는 여기서 단체로 뛰어내려서 자살을 할 건데.”
“…….”
현미는 기가 차다는 듯이 아이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자신이 있나 봐?”
상태는 우산을 접으며 느긋하게 말했다.
“글쎄다. 그런 것까지는 생각을 안 해봐서 말이야. 그나저나 일곱 장이나 되는 유서를 쓰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아. 귀찮은데…… 너희가 대신 써주면 안 되겠니? 그럼 선착순으로 여기서 떠밀어줄 테니까.”
천우는 비릿하게 웃었다.
“미친 새끼.”
상태는 허리춤에 있던 커터칼을 빼내 들었다.
드르륵―
“찔러! 저 새끼를 찌르라고! 그래, 입술부터 반으로 갈라 버려!”
현미가 천우를 향해서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넌 좀 조용히 해! 정신 사나워!”
상태가 현미에게 고개를 돌리며 외치는 순간!
콰르르르릉!
천둥번개가 그들의 머리 위로 내리쳤다. 얼마나 가까운지 귀가 멍멍할 정도였다.
그리고 상태의 앞에는 어느새 천우가 다가와 있었다. 천우의 손은 상태의 팔목을 움켜쥔 채였다.
“위험한 물건 가지고 뭐해? 이걸로 내 얼굴을 확 그어버리게? 아니면 내 배를 갈라 버리게?”
“씨발, 좋은 말 할 때 이 손 놔라.”
“싫은데.”
천우는 손아귀에 힘을 줬다. 그의 완력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문의 손잡이를 쉽게 우그러트릴 수 있는 수준이다. 아직 제대로 여물지도 않은 인간의 뼈 따위는 수수깡 부러트리듯이 꺾어버릴 수가 있었다.
뚝―
둔탁한 무언가가 쪼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바닥으로 커터칼이 떨어졌다.
순간, 상태는 팔목을 잡고서는 부들부들 떨었다. 자신의 팔을 바라본다. 거리 위에 세워진 풍선 인형처럼 흔들흔들거린다. 곧이어 쓰나미처럼 고통이 그의 척추를 타고 올라 뇌리를 강타했다.
“아아아아악!”
비명이 터졌다.
천우는 싸늘하게 웃었다.
주먹질을 조금이나마 할 줄 아는 놈은 상태 한 명뿐이다. 이놈만 아작내 두면 다른 놈들은 기세로 억누를 수가 있었다.
자, 이제 한 놈씩 뛰어내릴 준비를 해야지.
천우는 절규하는 상태의 뒷덜미를 잡고 바닥에 내리찍었다. 그의 이미가 옥상 콘크리트 바닥에 처박혔다. 찢어진 이마에서는 쉴 새 없이 피가 흘러내렸다.
한 방에 상태의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충격이 꽤 큰지 눈빛이 풀렸다.
“야! 병신아! 너 지금 뭐하는 거야!”
겁에 질린 현미가 외쳤지만, 들리지 않는 듯했다.
천우는 그런 현미에게 입술을 가리켰다.
쉿, 조용히 해. 그러다가 입술 찢어져.
“이, 이, 이, 미친 새끼가…….”
현미는 작은 두 손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천우는 허리를 숙이고 있는 상태의 등짝을 발로 걷어찼다. 상태가 쭉 밀려 나가며 바닥에 철푸덕 쓰러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상태는 팔목을 부여잡고는 연신 비명을 질러 댔다.
“자, 나는 너희들과 달라. 선택권을 주지.”
“뭐?”
이제껏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진성이 앞으로 나섰다. 이제 자신이 나설 차례라고 말을 하는 것처럼.
“한 명씩 뛸래? 같이 뛸래?”
“꼭 그래야만 하겠어?”
진성이 안경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여전히 자신은 이성적이라는 듯 설득을 시도하려 든다. 꼭 지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일기장에 적힌 대로였다.
권위의식이 하늘에 닿은 놈. 웃기는 새끼다. 지가 뭔데.
“네가 자격지심이 많은 것은 알아. 공부는 좀 하지만 뭐든 친구들한테 뒤처지지. 하지만 꼭 이럴 필요까지 있는가 싶다. 차라리 나한테 얘기를 하지그랬어. 내가 반장이잖아. 나라면 너의 고충을 들어줄 수 있었을 텐데.”
천우는 멍하니 진성을 바라봤다.
저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지? 제정신으로 씨부리는 건가?
“누가 누구 고충을 들어줘?”
“내가.”
“니가 나의?”
“그래.”
천우는 콧방귀를 뀌었다. 이게 바로 위에 서 있는 자들의 눈높이구나. 이놈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도 자신이 이 상황을 수습할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다.
모두 다.
깨부숴 버릴 테다.
“정했다.”
“뭘?”
“이곳에서 첫 번째로 뛰어내릴 새끼는…… 너다.”
천우는 진성을 향해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진성은 안 되겠다는 듯이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격투기 자세를 잡는다. 어디선가 무술 좀 배웠다는 냄새를 물씬 풍긴다.
“내가 말 안 했던가? 사실 난 꽤 오랫동안 격투기를 배워왔지. 상태 같은 조무래기들과는 달라. 난 진짜 실력파야. 딱 거기서 멈춰. 당장 무릎 꿇고 빌면 오늘은 그만해 줄 용의가 있어.”
“미친 새끼.”
천우의 발차기가 허공을 날았다.
퍼억!
그의 발등이 정확히 진성의 목을 강타했다. 막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진성은 아예 천우의 발차기를 보지도 못했다. 눈앞에서 뭔가 휙 날아들자 게임은 이미 끝났다.
바닥에 쓰러진 진성은 입에서 거품을 물었다.
“너 같은 새끼가 제일 재수 없어. 알랑가 몰라.”
천우는 쓰러진 진성의 머리채를 잡아 질질 끌며 난간으로 다가갔다.
콰르르릉―
천둥번개가 쉴 새 없이 그들의 머리 위로 내리치고 있었다.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싸움이랄 것도 없었다.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천우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최소한 옥상 안에서는 없었다.
천우는 쓰러진 진성과 상태, 진천, 수만의 발목에 차례차례 밧줄을 걸었다. 그러고는 그들을 난간에 일렬로 세웠다.
“야,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여기다 세우기만 해봐! 씨발 새끼야! 죽여 버린다!”
아이들이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 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천우는 어디서 개가 짖느냐는 표정으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겨우 발바닥 하나만큼 디딜 수 있는 난간의 바깥쪽. 난간을 잡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몸을 지탱할 수가 없다. 손에 힘이 풀리거나 자칫 잘못 발을 디디면 곧바로 추락한다.
그들은 그렇게 난간에 서고 말았다.
“으아아아!”
네 아이의 이빨이 위아래로 딱딱 부딪쳤다. 세찬 비바람이 그들의 전신을 몰아치자 순식간에 속옷까지 젖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추위를 느낄 수조차 없었다. 밑을 바라보지도 못했다. 손가락에 힘을 빼면 저승사자와 대면하게 된다.
“야, 야…… 우리가 무슨 원수라도 돼? 왜 이러는 건데? 우리한테 이래서 너한테 무슨 이득이 된다고. 제발 우리 좀 올려줘.”
진성의 꼬붕인 진천과 수만이 애걸복걸한다.
웃기는 놈들이네. 너희도 똑같은 새끼들인 것을.
내가 모를 줄 아나 보지?
천우는 두 사람을 싸늘한 눈초리로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