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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만큼 돌려주기 (2)
경수와 혁진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방금 전 벌어진 일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눈을 비볐다.
조금 전, 천우가 보여준 솜씨는 자신들로서는 따라 하지도 못할 정도로 뛰어난 것이었다. 이건 도저히 일반적인 몸놀림이 아니었다. 흡사 전문적으로 무술을 배운 듯한, 자신들의 막 싸움과는 많이 달랐다.
“씨발, 어쩐지 민우 새끼가 아침부터 전화질을 하더라니. 얼굴도 씹창 나 있고. 너한테 깨졌구만.”
경수는 바닥에 담배를 뱉었다.
치익.
빗물에 담배가 젖으며 빠르게 꺼졌다.
쏴아아아―
비는 여전히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천우는 홀딱 젖었다. 그럼에도 추위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몸속에서 화력발전소가 전력을 다해서 열기를 내뿜고 있는 것 같았다.
천우의 몸에서 허연 김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발밑에서 끙끙거리던 민우를 마치 공을 차듯이 멀리 차버렸다. 민우는 데굴데굴 굴러가서 기름이 뒤섞여 냄새나는 물에 처박혔다.
“이 새끼, 정말로 대갈통에 이상이 생겼나 보네. 살다 살다…… 왕따가 이렇게 변하는 것은 처음 보네.”
경수는 우산을 던져 버렸다. 어차피 반쯤 교복이 젖은 상태였다. 이래로 저래도 젖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폐자재가 있는 곳으로 터덜터덜 걸어가서 각목을 하나 쥐어 들었다. 끝부분에는 녹슨 못이 몇 개쯤 박혀 있었다.
“꽤 오랫동안 맛을 못 봤지? 한 한 달 되나?”
“한 달? 개소리하고 자빠졌네. 보름이다.”
“보름? 이상하네, 내가 알기론 한 달인데. 야, 한 달 아냐?”
경수는 혁진을 보며 물었다. 혁진은 담배를 빗물에 튕기며 말했다.
“한 달.”
“봐, 한 달 맞잖아.”
“…….”
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상하네. 한 달이라고? 천우가 죽은 후, 한 달이나 지났단 말이야? 말이 안 되는데…….
천우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저 새끼들이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일 테지. 그만큼 동생한테 관심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할 테고.
“뭐, 한 달이든, 두 달이든, 보름이든…… 어디서 한 수 배워서 오셨나 봐요? 그죠? 오우, 좀 놀랐다. 병신 민우가 저런 꼴이 돼서 나자빠질 줄이야. 이제 쪽팔려서 저 새끼랑은 같이 못 다니겠다. 왕따한테 뒈지게 맞기나 하고, 참 잘하는 짓이다.”
경수는 개처럼 킁킁거리며 웃었다. 혁수도 웃었다.
천우는 여전히 무심한 표정이다.
뭐가 저렇게 웃긴 건지 하나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다만…… 너희, 짜증 난다.
쏴아아아아―
천우는 큰 걸음으로 걸어 두 사람과의 거리를 빠르게 좁혔다. 놈들의 가슴에 똑같이 담배를 지져 주기 위해서.
아니지. 오늘은 왠지 비가 온 탓인지 기분이 좋다.
마치 쓰레기들을 씻어내라는 하늘의 계시라도 받는 기분이다. 그렇다면 참회하라는 의미로 십자가를 새겨줘야겠지.
정말 교훈적이잖아. 그렇지?
조금 전에 민우가 당한 걸 봤으면서도 혁진과 경수는 전혀 경계심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눈빛을 반짝였다. 입가에는 미소마저 감돈다.
천우가 다가서자 경수는 들고 있던 각목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꽤 효율적으로 배웠어. 그건 인정. 하지만 이런 것도 배웠으려나? 너도 알지? 녹슨 못에 박히면 무슨 병에 걸린다던데. 뒈진다고. 킥킥킥, 그러니까 넌 뒈졌어.”
그 말과 동시에 경수는 천우를 향해서 각목을 그대로 내리찍었다.
병신, 파상풍도 모르나.
천우는 입가에 비웃음을 매달며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경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경수와 혁진이 오판한 것.
천우를 여전히 자신들의 밥이라 여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금의 천우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란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 자체도 바뀌었지만, 되살아나듯 새로 깨어난 천우는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었다.
보통 인간 이상의 힘과 발달된 초감각은 경수와 혁진의 심장박동 소리마저도 잡아내고 있었다.
경수의 각목은 거칠고 강하게 허공에서 휘둘러졌다. 그러는 동안 그의 품에서 천우가 빠르게 회전했다. 180도로 한 바퀴 몸을 돌린 천우의 팔꿈치가 정확히 목을 찔렀다.
빠직.
경수의 목에서 기이한 소리가 났다. 맞는 순간의 모양도 이상했다. 마치 마네킹의 목이 해머에 맞아 튕겨져 나가는 듯한 모습이랄까.
천우는 반쯤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경수의 머리채를 틀어잡았다. 그러고는 경수의 무릎 뒤쪽을 발로 내리찍었다.
자연 다리가 휘청거리며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머리채를 잡힌 채 무릎 꿇려진, 굴욕적인 자세.
천우는 지체 없이 흙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기름에 뒤범벅된 더러운 흙이 경수의 코와 입속으로 파고들었다. 절로 꼬로록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동생이 말했지, 형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하지만 나는 몰랐다. 그 녀석이 그런 지옥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래, 너희의 지옥은 어디일까? 내가 데려다 주지.”
경수의 얼굴이 점점 깊게 바닥으로 파고들었다. 마치 늪 속에 빠져들고 있는 것처럼 팔과 다리가 허우적거린다.
살려 달라는 신호.
하지만 누구한테 신호를 보낸단 말인가. 이곳은 학교 건물 뒤편에 있는 폐자재 창고 앞이다.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봤자 간신히 들릴까 말까 할 정도다.
자, 발악해 봐라. 좀 더.
천우는 경수의 머리통을 쿡쿡 쑤셔 박았다. 이제 경수의 몸에서 경련이 일어나고, 사지가 바들바들 떨렸다.
“이런 개호로새끼가 미쳤나!”
보다 못한 혁진이 천우의 등 뒤에서 각목을 휘둘렀다. 천우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손바닥을 펴 각목을 막아냈다.
퍼억!
완전히 막아내지는 못한 듯하다. 각목에 박힌 못이 천우의 손바닥을 뚫고 나왔다. 살점이 너덜너덜하게 찢어졌다. 찢긴 피부 사이로 상당한 양의 피가 흘러나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는 사이, 혁진은 흙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던 경수를 빼냈다.
“푸아아악, 콜록콜록!”
경수는 무릎을 꿇은 채 심하게 기침을 했다. 그러더니 배 속에 있는 것들을 연신 게워냈다. 대충 씹어 삼킨 듯한 삼각 김밥의 내용물과 바닥에 고인 더러운 기름이 뒤섞여 튀어나왔다.
“너, 너…… 이 개새끼, 뒈졌어!”
경수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천우를 노려봤다. 살쾡이 같은 살기가 천우의 전신을 찌릿찌릿하게 핥았다. 진심으로 천우를 죽이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천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경수와 혁진을 바라보며 그는 손바닥에 꽂힌 각목을 뽑아냈다. 피가 분수처럼 울컥울컥 솟구쳤다.
“카하하하, 너 이 새끼, 넌 끝장이야! 녹슨 못에 찔렸으니…… 넌 끝장이라고.”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경수와 혁진은 배꼽을 잡고 웃는다.
천우는 저놈들의 두개골을 열어서 뇌를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코드가 왜 이렇게 다른 건데? 지금 이 상황이 뭐가 그렇게 웃긴 거지?
천우는 찢긴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의 상처는 빠르게 아물고 있었다.
도대체가 이해 못할 상황.
이내 핏자국만 남기고 상처는 치유됐다. 손바닥을 쥐었다 펴봐도 불편한 점은 없었다.
나, 불사신이라도 된 것일까?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건지 모르겠지만…… 뭐, 나쁘지는 않다. 어지간히 상처를 입지 않고서는 병원에 갈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러지 않아도 앞으로 복수를 해 나가려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달라진 몸 상태는 많은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내가 죽는 게 그렇게 좋아? 내가 너희한테 무슨 몹쓸 짓이라도 했나?”
천우는 못 박힌 각목을 주워 들었다.
쏴아아아―
세찬 빗줄기가 각목에 묻은 피를 모두 씻어냈다.
“씨발, 그럼 지갑 따위가 감히 주인한데 개기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천우는 이마를 긁적거렸다.
그래, 지금까지는 천우가 말 잘 듣는 지갑이었을 테니,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겠지.
하지만 이젠 상황이 바뀌었어. 넌 개고, 내가 주인이다.
내가 짖으라 하면, 넌 짖어야 할 거야.
“오늘은 첫날이니까 봐주지.”
“뭐?”
“내일부터 너희 셋이 합쳐서 삼십만 원씩 가져와. 혹시 못 알아들었을까 봐 자세히 얘기해 주지. 너희 셋이 매일 점심때마다 삼십만 원씩 나한테 가져오는 거야. 왜냐고? 너희는 이제 내 지갑이니까. 기한은 졸업할 때까지야.”
“뭐? 이 미친 새끼가 뭐라는 거야?”
혁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들이 천우에게서 받은 상납금은 일주일에 삼십만 원이었다. 그런데 저 새끼는 한술 더 떠서 매일 삼십만 원씩 가져오라고 한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저 헛소리에 짜증이 왈칵 치밀어 올랐다.
“개소리하지 마, 이 새…… 아아아악!”
혁진은 말을 끝까지 맺지 못했다. 그의 어깨 위로 내려쳐진 각목 때문이다. 문제는 각목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못들.
녹슨 못이 살을 찌르며 깊숙이 파고들었다. 생살을 찢고 들어오는 그 섬뜩한 느낌이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들었다. 미치도록 아픈 통증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밀려왔다. 한두 대 맞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었다.
“겨우 한 대 가지고 엄살은.”
천우는 경수와 혁진을 향해 무자비하게 각목을 휘둘렀다.
푹! 푹! 푹! 푹!
어깨, 발, 허벅지, 옆구리…… 어디 한 군데 가리지 않고 온몸에 못이 찔렸다. 두 사람은 밀려드는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고통을 참지 못해 바닥을 기어서 도망쳤다.
첨벙첨벙.
천우가 둘의 뒤를 쫓으며 등허리에 사정없이 각목을 내리찍었다.
“으아아아악! 잘못했어! 용서해 줘!”
민우는 두 눈을 커다랗게 뜬 채 이 믿기지 않는 장면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한순간도 빠지지 않고 머릿속에 쾅쾅 박혀들었다.
싸움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이건 살인행위였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행동이다.
다시 학교로 나온 천우 놈은 무엇인가가 결여되어 있는 것 같다.
저 멈추지 않는 광기에 집어삼켜진 혁진과 경수는 제대로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묵사발이 났다.
이윽고 천우의 매질이 멈췄다.
경수와 혁진은 숨만 겨우 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둘은 숨을 할딱이며 공포에 젖은 눈빛으로 천우의 눈치를 살폈다.
“삼십만 원. 알았어?”
“…….”
경수와 혁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충격에 벗어나지 못한 것이리라.
지금 자신들이 벌레처럼 바닥을 기며 몽둥이찜질을 당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군다나 매일 삼십만 원이라는 상납금까지 바쳐야 한다는 건…….
“씨발, 개소리하지 마!”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겨난 것인지, 혁진이 벌떡 일어나 천우에게 덤벼들었다. 젖 먹던 힘을 쥐어짜 내 어깨로 천우의 배를 들이받았다. 왕따 새끼한테 삥을 뜯기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의지 같았다.
하지만…….
혁진의 큰 덩치가 천우의 가느다란 팔에 의해서 너무 쉽게 제지당했다.
“어, 어어어어?”
천우는 혁진의 몸을 천천히 들어 올리더니, 가볍게 던져 버렸다. 그의 몸이 빙글빙글 돌아서 폐자재 위로 떨어졌다.
와지끈―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장면이었다. 혁진의 몸이 축 늘어졌다. 완전히 의식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가슴이 들썩거리는 모습으로 보아 숨은 간신히 붙어 있는 듯했다.
“어어어어…….”
민우는 손가락을 덜덜 떨면서 천우를 가리켰다.
“맞아. 너는 악마를 만나게 된 거야. 아니지. 악마를 만들어낸 거지.”
어느새 다가온 천우가 민우의 귓속에 속삭였다.
달콤하게, 느리게, 듣다 보면 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목소리로.
“히이익.”
민우는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났다. 더 이상 이 녀석과 엮이기 싫었다. 혁진과 경수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지성이를 부르자. 지성이와 현태라면 충분히 이 개새끼를 죽여 버릴 수 있을 거야.
민우는 황급히 등을 돌렸다.
하지만 그의 몸은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뒷덜미를 천우에게 잡히고 만 것이다.
“놔! 이 정신병자 새끼야!”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어. 너희는 내 지갑이라고 분명 얘기했을 텐데. 돈 가져와.”
“엿이나 먹어!”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우는 민우의 뒤통수를 잡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와지끈!
민우의 면상이 콘크리트 벽면에 갈린다. 한쪽 얼굴이 맷돌에 갈리는 두부처럼 심하게 긁혔다.
“으아아아아악!”
공포에 물든 민우의 비명이 건물 전체로 퍼져 나갔다. 이대로 둔다면 민우의 얼굴은 완전히 갈리고 말 것이다.
“그만해.”
그때였다.
누군가가 천우의 팔목을 잡은 것은.
경수와 혁진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방금 전 벌어진 일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눈을 비볐다.
조금 전, 천우가 보여준 솜씨는 자신들로서는 따라 하지도 못할 정도로 뛰어난 것이었다. 이건 도저히 일반적인 몸놀림이 아니었다. 흡사 전문적으로 무술을 배운 듯한, 자신들의 막 싸움과는 많이 달랐다.
“씨발, 어쩐지 민우 새끼가 아침부터 전화질을 하더라니. 얼굴도 씹창 나 있고. 너한테 깨졌구만.”
경수는 바닥에 담배를 뱉었다.
치익.
빗물에 담배가 젖으며 빠르게 꺼졌다.
쏴아아아―
비는 여전히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천우는 홀딱 젖었다. 그럼에도 추위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몸속에서 화력발전소가 전력을 다해서 열기를 내뿜고 있는 것 같았다.
천우의 몸에서 허연 김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발밑에서 끙끙거리던 민우를 마치 공을 차듯이 멀리 차버렸다. 민우는 데굴데굴 굴러가서 기름이 뒤섞여 냄새나는 물에 처박혔다.
“이 새끼, 정말로 대갈통에 이상이 생겼나 보네. 살다 살다…… 왕따가 이렇게 변하는 것은 처음 보네.”
경수는 우산을 던져 버렸다. 어차피 반쯤 교복이 젖은 상태였다. 이래로 저래도 젖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폐자재가 있는 곳으로 터덜터덜 걸어가서 각목을 하나 쥐어 들었다. 끝부분에는 녹슨 못이 몇 개쯤 박혀 있었다.
“꽤 오랫동안 맛을 못 봤지? 한 한 달 되나?”
“한 달? 개소리하고 자빠졌네. 보름이다.”
“보름? 이상하네, 내가 알기론 한 달인데. 야, 한 달 아냐?”
경수는 혁진을 보며 물었다. 혁진은 담배를 빗물에 튕기며 말했다.
“한 달.”
“봐, 한 달 맞잖아.”
“…….”
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상하네. 한 달이라고? 천우가 죽은 후, 한 달이나 지났단 말이야? 말이 안 되는데…….
천우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저 새끼들이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일 테지. 그만큼 동생한테 관심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할 테고.
“뭐, 한 달이든, 두 달이든, 보름이든…… 어디서 한 수 배워서 오셨나 봐요? 그죠? 오우, 좀 놀랐다. 병신 민우가 저런 꼴이 돼서 나자빠질 줄이야. 이제 쪽팔려서 저 새끼랑은 같이 못 다니겠다. 왕따한테 뒈지게 맞기나 하고, 참 잘하는 짓이다.”
경수는 개처럼 킁킁거리며 웃었다. 혁수도 웃었다.
천우는 여전히 무심한 표정이다.
뭐가 저렇게 웃긴 건지 하나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다만…… 너희, 짜증 난다.
쏴아아아아―
천우는 큰 걸음으로 걸어 두 사람과의 거리를 빠르게 좁혔다. 놈들의 가슴에 똑같이 담배를 지져 주기 위해서.
아니지. 오늘은 왠지 비가 온 탓인지 기분이 좋다.
마치 쓰레기들을 씻어내라는 하늘의 계시라도 받는 기분이다. 그렇다면 참회하라는 의미로 십자가를 새겨줘야겠지.
정말 교훈적이잖아. 그렇지?
조금 전에 민우가 당한 걸 봤으면서도 혁진과 경수는 전혀 경계심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눈빛을 반짝였다. 입가에는 미소마저 감돈다.
천우가 다가서자 경수는 들고 있던 각목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꽤 효율적으로 배웠어. 그건 인정. 하지만 이런 것도 배웠으려나? 너도 알지? 녹슨 못에 박히면 무슨 병에 걸린다던데. 뒈진다고. 킥킥킥, 그러니까 넌 뒈졌어.”
그 말과 동시에 경수는 천우를 향해서 각목을 그대로 내리찍었다.
병신, 파상풍도 모르나.
천우는 입가에 비웃음을 매달며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경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경수와 혁진이 오판한 것.
천우를 여전히 자신들의 밥이라 여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금의 천우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란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 자체도 바뀌었지만, 되살아나듯 새로 깨어난 천우는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었다.
보통 인간 이상의 힘과 발달된 초감각은 경수와 혁진의 심장박동 소리마저도 잡아내고 있었다.
경수의 각목은 거칠고 강하게 허공에서 휘둘러졌다. 그러는 동안 그의 품에서 천우가 빠르게 회전했다. 180도로 한 바퀴 몸을 돌린 천우의 팔꿈치가 정확히 목을 찔렀다.
빠직.
경수의 목에서 기이한 소리가 났다. 맞는 순간의 모양도 이상했다. 마치 마네킹의 목이 해머에 맞아 튕겨져 나가는 듯한 모습이랄까.
천우는 반쯤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경수의 머리채를 틀어잡았다. 그러고는 경수의 무릎 뒤쪽을 발로 내리찍었다.
자연 다리가 휘청거리며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머리채를 잡힌 채 무릎 꿇려진, 굴욕적인 자세.
천우는 지체 없이 흙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기름에 뒤범벅된 더러운 흙이 경수의 코와 입속으로 파고들었다. 절로 꼬로록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동생이 말했지, 형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하지만 나는 몰랐다. 그 녀석이 그런 지옥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래, 너희의 지옥은 어디일까? 내가 데려다 주지.”
경수의 얼굴이 점점 깊게 바닥으로 파고들었다. 마치 늪 속에 빠져들고 있는 것처럼 팔과 다리가 허우적거린다.
살려 달라는 신호.
하지만 누구한테 신호를 보낸단 말인가. 이곳은 학교 건물 뒤편에 있는 폐자재 창고 앞이다.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봤자 간신히 들릴까 말까 할 정도다.
자, 발악해 봐라. 좀 더.
천우는 경수의 머리통을 쿡쿡 쑤셔 박았다. 이제 경수의 몸에서 경련이 일어나고, 사지가 바들바들 떨렸다.
“이런 개호로새끼가 미쳤나!”
보다 못한 혁진이 천우의 등 뒤에서 각목을 휘둘렀다. 천우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손바닥을 펴 각목을 막아냈다.
퍼억!
완전히 막아내지는 못한 듯하다. 각목에 박힌 못이 천우의 손바닥을 뚫고 나왔다. 살점이 너덜너덜하게 찢어졌다. 찢긴 피부 사이로 상당한 양의 피가 흘러나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는 사이, 혁진은 흙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던 경수를 빼냈다.
“푸아아악, 콜록콜록!”
경수는 무릎을 꿇은 채 심하게 기침을 했다. 그러더니 배 속에 있는 것들을 연신 게워냈다. 대충 씹어 삼킨 듯한 삼각 김밥의 내용물과 바닥에 고인 더러운 기름이 뒤섞여 튀어나왔다.
“너, 너…… 이 개새끼, 뒈졌어!”
경수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천우를 노려봤다. 살쾡이 같은 살기가 천우의 전신을 찌릿찌릿하게 핥았다. 진심으로 천우를 죽이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천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경수와 혁진을 바라보며 그는 손바닥에 꽂힌 각목을 뽑아냈다. 피가 분수처럼 울컥울컥 솟구쳤다.
“카하하하, 너 이 새끼, 넌 끝장이야! 녹슨 못에 찔렸으니…… 넌 끝장이라고.”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경수와 혁진은 배꼽을 잡고 웃는다.
천우는 저놈들의 두개골을 열어서 뇌를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코드가 왜 이렇게 다른 건데? 지금 이 상황이 뭐가 그렇게 웃긴 거지?
천우는 찢긴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의 상처는 빠르게 아물고 있었다.
도대체가 이해 못할 상황.
이내 핏자국만 남기고 상처는 치유됐다. 손바닥을 쥐었다 펴봐도 불편한 점은 없었다.
나, 불사신이라도 된 것일까?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건지 모르겠지만…… 뭐, 나쁘지는 않다. 어지간히 상처를 입지 않고서는 병원에 갈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러지 않아도 앞으로 복수를 해 나가려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달라진 몸 상태는 많은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내가 죽는 게 그렇게 좋아? 내가 너희한테 무슨 몹쓸 짓이라도 했나?”
천우는 못 박힌 각목을 주워 들었다.
쏴아아아―
세찬 빗줄기가 각목에 묻은 피를 모두 씻어냈다.
“씨발, 그럼 지갑 따위가 감히 주인한데 개기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천우는 이마를 긁적거렸다.
그래, 지금까지는 천우가 말 잘 듣는 지갑이었을 테니,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겠지.
하지만 이젠 상황이 바뀌었어. 넌 개고, 내가 주인이다.
내가 짖으라 하면, 넌 짖어야 할 거야.
“오늘은 첫날이니까 봐주지.”
“뭐?”
“내일부터 너희 셋이 합쳐서 삼십만 원씩 가져와. 혹시 못 알아들었을까 봐 자세히 얘기해 주지. 너희 셋이 매일 점심때마다 삼십만 원씩 나한테 가져오는 거야. 왜냐고? 너희는 이제 내 지갑이니까. 기한은 졸업할 때까지야.”
“뭐? 이 미친 새끼가 뭐라는 거야?”
혁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들이 천우에게서 받은 상납금은 일주일에 삼십만 원이었다. 그런데 저 새끼는 한술 더 떠서 매일 삼십만 원씩 가져오라고 한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저 헛소리에 짜증이 왈칵 치밀어 올랐다.
“개소리하지 마, 이 새…… 아아아악!”
혁진은 말을 끝까지 맺지 못했다. 그의 어깨 위로 내려쳐진 각목 때문이다. 문제는 각목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못들.
녹슨 못이 살을 찌르며 깊숙이 파고들었다. 생살을 찢고 들어오는 그 섬뜩한 느낌이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들었다. 미치도록 아픈 통증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밀려왔다. 한두 대 맞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었다.
“겨우 한 대 가지고 엄살은.”
천우는 경수와 혁진을 향해 무자비하게 각목을 휘둘렀다.
푹! 푹! 푹! 푹!
어깨, 발, 허벅지, 옆구리…… 어디 한 군데 가리지 않고 온몸에 못이 찔렸다. 두 사람은 밀려드는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고통을 참지 못해 바닥을 기어서 도망쳤다.
첨벙첨벙.
천우가 둘의 뒤를 쫓으며 등허리에 사정없이 각목을 내리찍었다.
“으아아아악! 잘못했어! 용서해 줘!”
민우는 두 눈을 커다랗게 뜬 채 이 믿기지 않는 장면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한순간도 빠지지 않고 머릿속에 쾅쾅 박혀들었다.
싸움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이건 살인행위였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행동이다.
다시 학교로 나온 천우 놈은 무엇인가가 결여되어 있는 것 같다.
저 멈추지 않는 광기에 집어삼켜진 혁진과 경수는 제대로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묵사발이 났다.
이윽고 천우의 매질이 멈췄다.
경수와 혁진은 숨만 겨우 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둘은 숨을 할딱이며 공포에 젖은 눈빛으로 천우의 눈치를 살폈다.
“삼십만 원. 알았어?”
“…….”
경수와 혁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충격에 벗어나지 못한 것이리라.
지금 자신들이 벌레처럼 바닥을 기며 몽둥이찜질을 당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군다나 매일 삼십만 원이라는 상납금까지 바쳐야 한다는 건…….
“씨발, 개소리하지 마!”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겨난 것인지, 혁진이 벌떡 일어나 천우에게 덤벼들었다. 젖 먹던 힘을 쥐어짜 내 어깨로 천우의 배를 들이받았다. 왕따 새끼한테 삥을 뜯기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의지 같았다.
하지만…….
혁진의 큰 덩치가 천우의 가느다란 팔에 의해서 너무 쉽게 제지당했다.
“어, 어어어어?”
천우는 혁진의 몸을 천천히 들어 올리더니, 가볍게 던져 버렸다. 그의 몸이 빙글빙글 돌아서 폐자재 위로 떨어졌다.
와지끈―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장면이었다. 혁진의 몸이 축 늘어졌다. 완전히 의식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가슴이 들썩거리는 모습으로 보아 숨은 간신히 붙어 있는 듯했다.
“어어어어…….”
민우는 손가락을 덜덜 떨면서 천우를 가리켰다.
“맞아. 너는 악마를 만나게 된 거야. 아니지. 악마를 만들어낸 거지.”
어느새 다가온 천우가 민우의 귓속에 속삭였다.
달콤하게, 느리게, 듣다 보면 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목소리로.
“히이익.”
민우는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났다. 더 이상 이 녀석과 엮이기 싫었다. 혁진과 경수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지성이를 부르자. 지성이와 현태라면 충분히 이 개새끼를 죽여 버릴 수 있을 거야.
민우는 황급히 등을 돌렸다.
하지만 그의 몸은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뒷덜미를 천우에게 잡히고 만 것이다.
“놔! 이 정신병자 새끼야!”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어. 너희는 내 지갑이라고 분명 얘기했을 텐데. 돈 가져와.”
“엿이나 먹어!”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우는 민우의 뒤통수를 잡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와지끈!
민우의 면상이 콘크리트 벽면에 갈린다. 한쪽 얼굴이 맷돌에 갈리는 두부처럼 심하게 긁혔다.
“으아아아아악!”
공포에 물든 민우의 비명이 건물 전체로 퍼져 나갔다. 이대로 둔다면 민우의 얼굴은 완전히 갈리고 말 것이다.
“그만해.”
그때였다.
누군가가 천우의 팔목을 잡은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