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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만큼 돌려주기 (1)



천우 역시 마침 민우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이놈이 어디로 도망쳤는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까지 돌아다녔는데.
사실 학교 구조를 잘 몰라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몇몇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무슨 벌레라도 보는 것처럼 쳐다본다. 감히 말을 붙인다는 표정이랄까.
기가 막혔다.
붙잡고 이유를 묻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았다. 아이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천우를 지나쳐 갔다.
저들의 이름은 일기장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이런 개 같은 취급을 당했는데도…… 동생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었던 것이다.
전교 1등에 꽤 잘생긴 외모, 깨끗한 피부, 천혁 자신과는 다르게 부드러운 분위기는 누가 봐도 훈남이라 여길 만했다.
그런 동생이 왜 그토록 끈질긴 왕따를 당했는지 아직도 알지 못하겠다.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천우가 민우의 반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린 이유는 층이 달랐기 때문이다. 놈의 반은 한 층 위에 있었다. 그는 계단을 올랐다.
놈을 찾아갈수록 다시금 살의가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분명 경고를 했는데, 놈은 무시했다. 그러니 이후의 일은 전적으로 놈이 책임을 져야 한다.
천우는 입술을 뒤틀며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안 봐도 빤하다. 지금쯤 친한 아이들을 모아서 나를 칠 생각을 하고 있겠지. 그런 놈들이 생각하는 것은 눈을 감고도 예측을 할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느냐.
그건 싫다. 성격에도 안 맞고.
동생과 나는 이제 한 몸이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 예의겠지.
그것이 세상 살아가는 이치다. 도리이기도 하고.
남에게 피해를 줬으면 자신은 두 배로 돌려받아야 한다.
우연히 창문 밖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교문 근처에서 민우를 발견했다.
야산에서 깨어난 후, 시력이 상상 이상으로 좋아졌다. 보통 사람은 보지 못하는 곳까지 샅샅이 살펴볼 수 있을 정도는 된다. 막말로 민우가 서 있는 곳의 담벼락에 붙어 있는 개미도 보일 정도였다.
새끼, 거기 숨어 있었냐.
천우는 활짝 웃으며 놈이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민우가 몸을 숨기고 있는 건물의 공터로 들어섰다.
건물을 짓고 남은 폐자재들이 잔뜩 남아 있는 이곳은 기름 냄새가 진동을 한다. 기름이 묻은 나무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바닥에 둥둥 떠다녔다.
“어이! 지갑! 이게 얼마 만이야?”
지갑?
천우는 자신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는, 멀쩡하게 생긴 아이를 보았다. 눈빛이 게슴츠레하다. 마치 술이라도 진탕 마신 것처럼. 동공이 좌우로 마구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명찰에는 경수라고 적혀 있었다. 일기장에 적혀 있는 이름이다.
민우, 혁진, 경수…… 이 세 명은 시간이 날 때마다 천우의 주머니를 털어간 놈들이다. 그런 일들이 얼마나 되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사실 돈은 문제가 아니다.
이들은 특이한 방법으로 동생을 괴롭혔다.
동생의 앞가슴과 등에 특이한 화상이 있었다. 모두 합쳐 스무 개 정도 되는 그것은 모두 담배로 지진 흔적이었다.
어릴 적에는 자주 목욕을 했는데,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난 이후로는 같이 씻은 적이 없었다. 하다못해 공중목욕탕도 같이 가지 않았다. 머리가 커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저놈들이 그런 것이다.

놈들에게 나는 지갑이다.
아니, 전교생의 지갑이겠지.
그나마 다른 반 아이들은 자주 얼굴을 보지 못해서 괴롭힘이 덜하다. 하지만 같은 반 아이들은 나를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인 것 같았다.
반장부터 꼴찌까지…… 모두가 예외 없이 나를 때린다.
나는 점점 겁이 난다. 이제 맞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 오히려 맞지 않으면 언제 맞을까, 두려울 정도였다.
이런 내가 싫다.
맞는 것이 익숙한 내가 싫다.
이제는 남의 물건에 손을 댄다. 며칠 전에는 대학교 도서관에 들어가서 노트북 다섯 대를 훔쳤다. 그것을 인터넷에 싸게 올려서 팔았다. 다섯 대를 팔고 받은 돈은 백만 원. 그것 모두 애들의 주머니를 채워주었다. 내가 남긴 돈은 한 푼도 없다.
나는 미쳐 가고 있는 듯하다. 양심의 가책도 없었다. 그저 놈들의 폭력에서 벗어났다는 사실만이 나를 기쁘게 했다.
오늘도 무사히 넘겼구나.

언제부터인가 경수가 나한테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웃통을 까보라며 옷을 벗기는 것이었다.
나는 차마 그 말에 저항하지 못했다.
경수는 내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다며 욕을 했다. 심지어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가축 취급을 하며 날 몰아붙였다.
난 억울했지만 이번에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놈은 내 비굴한 모습이 맘에 들었는지, 벌을 받아야 한다고 떠들어 댔다.
언제까지 나는 이렇게 당하고만 살아야 할까.
나는 그렇게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 미친놈한테 대꾸라도 하는 날이면 머리통이 깨지고 만다. 놈은 손에 잡히는 대로 나를 때린다. 저번에는 부러진 녹슨 부엌칼로 나를 찌르려고 한 적도 있었다. 혁진이 말려서 간신히 살았다.
경수는 벌을 주겠답시고 나의 젖꼭지를 잡고 마구 흔들었다.
치욕이다.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고 싶었다. 그럴 용기가 없는 내가 너무 싫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경수는 피우고 있던 담배로 나의 가슴을 지졌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머리로 치달았다.
살이 타며 지울 수 없는 흉터가 가슴에 새겨졌다.
그럼에도 경수는 멈추지 않았다.
하나, 둘…… 나의 가슴에는 흉측한 상처가 늘어갔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진심으로…… 죽고 싶다.

경수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천우에게 다가왔다, 여느 때와 같이 입에는 담배를 물고서.
“네가 경수?”
“뭔 소리여? 그럼 내가 경수지, 쟤가 경수겠냐?”
경수는 민우를 가리키면서 웃었다.
“본드를 하도 불어서 머리에 구멍이 생겼다고 하더니, 진짠가 보네.”
“뭐여? 누가 그래? 야, 니가 그랬어?”
경수가 사나운 눈빛으로 바라보자 민우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럼 니는?”
이번에는 혁진을 바라본다.
“개 잡소리 좀 그만해. 자꾸 그러니까 저 새끼 말처럼 뇌에 구멍이 난 것처럼 보이잖아.”
혁진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래? 씨벌, 그러니까…….”
경수는 천우에게 고개를 돌렸다.
“니가 헛소문을 맨들고 다닌다, 이거제? 요고요고, 며칠 안 보는 사이에 많이 컸네. 그래, 머리는 괜찮냐? 대갈빡 안 부서졌어? 저기 옥상에서 툭 하고 떨어졌다문서?”
“너랑 말을 섞으니 내 머리도 썩는 것 같다. 야, 너.”
천우는 민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민우가 흠칫 놀란다. 아직 아침에 당한 충격이 남아 있는 모양인지 자신도 모르게 천우와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
천우는 피식 웃었다.
저 자식의 대갈통은 깨질 뻔했다. 사실 깨져도 좋다는 생각으로 내려쳤다. 하여간 사람의 목숨이란 꽤 질겨. 그렇게 내리쳐도 단단한 두개골은 좀체 박살나지 않는다.
이번에는 진짜로 네 손으로 뇌수를 만지게 해줄게.
“야, 안 들려?”
천우가 민우를 다시 불렀다.
“왜, 이 새꺄!”
민우는 거칠게 소리쳤다. 아침에 벌어진 일을 떨쳐 내려는 듯이.
천우는 손바닥을 내밀며 흔들었다.
“뭐야, 저게?”
혁진과 경수는 천우의 손바닥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천우가 무슨 행동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설마 지금 민우한테 돈을 달라는 것은 아니겠지?
그것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양이 늑대를 잡아먹는 행위이고, 쥐가 고양이를 무는 짓이었다. 4살짜리 아이가 UFC 선수를 KO로 이긴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한마디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 천우가 하는 행동은 딱 그것이었다.
뭐지, 이건?
“안 보여?”
천우가 다시 말했다.
“그게 뭔데?”
“너는 귓구멍이 막혔냐? 사람 말이 말 같지가 않나 봐. 그지?”
천우는 민우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야, 지갑. 뭐하는 거야?”
경수가 천우를 불렀다. 천우는 귀찮다는 듯이 경수를 보며 말했다.
“너랑은 조금 있다 얘기할 테니까, 거기 자빠져서 쉬고 있어.”
“뭐? 이런 좆만 한 새끼가.”
경수가 나서려고 하자 혁진이 잡았다.
“냅 둬. 옥상에서 뛰어내리더니 머리통이 다쳤나 봐. 민우한테 대차게 깨져 봐야 정신을 차리지.”
“그럴까?”
경수는 바닥에 침을 퉤, 뱉고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러고는 불을 붙이고 길게 내뿜는다.
이 담배를 다 피울 때쯤이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것은 왕따 새끼일 것이다. 그럼 웃통을 까고 다시 한 번 교훈을 새겨주지.
그래, 아예 상의를 찢어버리자. 그럼 얼마나 재밌을까. 상의를 벗은 채 학교로 돌아갈까, 아니면 집으로 갈까? 어디로 가든지 뒤쫓아가면서 실시간으로 동영상을 찍어야겠다.
‘개변태의 오전 일과’라고 올려야지.
그런데…….
“어라?”
상황은 경수와 혁진의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민우는 천우를 향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천우를 어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휘두른 주먹이 아니다. 경수와 혁진이 보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액션만 취한 것이다.
그런 주먹에 제대로 된 힘이 실릴 리가 만무했다.
주먹은 너무도 쉽게 허공을 갈랐다.
그러는 사이, 천우는 민우의 품으로 뛰어 들어가 정확하게 명치를 가격했다.
민우의 두 눈이 동그랗게 뜨여졌다. 입이 벌어졌다. 침도 튀어나왔다. 제대로 맞은 모양이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표정이 급격하게 일그러졌다.
민우는 가슴을 부여잡고 고개를 숙였다.
동시에 천우의 팔꿈치가 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정면을 후려쳤다.
덜컥!
비록 소리는 크지 않지만, 꽤 큰 충격이 전달될 법한 타격이었다.
민우의 고개가 뒤로 휙 젖혀졌다. 그의 턱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아졌다. 조금 전의 팔꿈치 휘두르기가 민우의 턱을 박살낸 것이다.
“크흡.”
민우는 무릎을 꿇으며 턱을 감싸고 고개를 숙였다.
그의 입에서 진위를 알 수 없는 흐느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 민우의 뒤통수를 인정사정없이 밟아버리는 천우.
빠각―
둔탁한 소리와 함께 민우의 이마가 바닥에 찍혔다.
천우는 운동화로 민우의 턱을 들어 올렸다. 그의 턱과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천우의 운동화를 적셨다.
“닦아.”
“…….”
“셋 셀 동안 닦지 않으면 다시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주지.”
“좆 까, 씨발 새끼야.”
민우는 전혀 반성이 없는 눈빛이다. 여전히 왜 자신이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민우의 눈빛은 경수와 혁진에게로 향했다.
끝까지……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
이제 너희들이 어떤 놈들인지 알겠다.
어중간하게 대하지 않도록 하지.
모두 똑같이…… 대우를 해주겠다.
천우는 피가 묻은 운동화로 민우의 면상을 짓이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