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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부활 (2)



천우는 손등을 핥았다.
꼬붕 원, 투, 쓰리의 피가 주먹 가득 묻어 있었다. 간만에 사람을 치려니 힘 조절이 잘 안 된 탓이다.
저런 쓰레기들 쯤이야 예전 학교에서처럼 잽잽, 원투를 날렸다면 놈들의 머리통은 터진 수박이 되어서 여기 어딘가에 굴러다니고 있을 것이다.
아아~ 확실히 그날 이후 무언가가 변한 것 같다. 폭주족 놈의 헬멧을 맞고도 멀쩡하더니, 한 손으로 오토바이를 들어 올리는 힘과 왠지 모르게 솟아오르는 피에 대한 갈망…….
그런데 힘이라는 것이 생기면 이런 게 귀찮아지는구나. 한 대 때릴 때마다 죽지는 않을까 걱정해야 한다니.
아니, 차라리 죽여 버리는 게 편할까?
“으으윽.”
꼬붕 원이 손으로 입을 막고 있다. 손가락 사이로 피가 줄줄 흘러나온다. 그로서는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피를 흘린 적은 없을 것이다. 극심한 충격을 받은 듯 공황 상태에 빠져 있는 놈은 검은 동공이 전기에 맞은 것처럼 마구 떨렸다.
“자자, 나를 봐봐. 너희들이 즐기는 행동이야? 어때? 기분 좋아?”
천우는 페널티킥을 차듯이 꼬붕 원의 머리통을 뻥 내질렀다. 꼬붕 원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저러다 목이 부러지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대개 상황이 이 정도까지 이르면 일진들은 구타를 멈춘다. 자신들의 장난감을 망가트리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우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아직 학교 곳곳에는 수많은 장난감들이 가득 널려 있으니까. 천우의 일기장에 적힌 놈들을 잡아다가 은행 겸 장난감 겸 샌드백으로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천우는 멈칫했다. 그러더니 양쪽 손바닥으로 얼굴을 쓱쓱 문질렀다.
요즘 들어 생긴 버릇이다. 피를 볼라 치면 살의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눈동자까지 붉어진다. 당장에라도 눈앞에 있는 상대의 혈관을 찢어버리고 싶다.
갈기갈기.
그 속마음을 감추기 위해서, 호흡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르는 것이다.
간신히 약간의 이성이 돌아왔다. 이제 이성이 돌아왔으니 적당히 해야 한다.
천우는 얼굴을 잡고 쓰러져 있는 꼬붕 원의 배를 마구 걷어찼다.
퍽! 퍽! 퍽!
꼬붕 원은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양쪽 팔이 축 늘어진다.
어라, 인간의 몸이 이 정도에 부서질 정도로 약했나?
“야, 야, 죽었냐?”
천우는 발등으로 꼬붕 원의 면상을 툭툭, 건드렸다. 하지만 꼬붕 원은 미동도 없었다.
“네가 죽으면…… 다른 놈들도 다 죽어야 돼. 알지?”
천우는 꼬붕 투와 쓰리, 민우를 번갈아가면서 바라봤다. 꼬붕 투와 쓰리, 민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들은 다리가 골절되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천우가 그들의 발목을 짓밟아 부러트린 탓에 고통으로 인해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 답답하네.”
천우는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말을 이었다.
“네가 죽으면 나는 증거 인멸을 해야 하잖아. 그러니까 네 친구들도 죽어야지. 그리고 저기 있는 돼지 새끼한테 다 뒤집어씌울 거라고. 이해돼? 나는 왕따잖아. 너희들을 내가 죽였다는 것을 사람들은 믿어줄까, 아니면 저 돼지 새끼가 죽였다는 것을 믿어줄까? 아무리 미성년자라도 세 명이나 죽였으니…… 한 5년은 받지 않을까? 뭐, 나야 상관없지.”
민우는 두 눈을 껌뻑거렸다. 천우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한 것이다. 아니, 대충 알 것 같긴 하지만 너무 무서워서 되새김질을 하기 싫었다. 자신이 아는 천우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내가 저 세 명을 죽였다는 누명을 쓴다고?
이 자리에 천우와 자신이 남는다. 경찰이 둘을 발견한다. 누가 봐도 자신이 살인을 했을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꼼짝없이 살인 누명을 뒤집어쓰고 만다.
“야! 경수야! 일어나! 일어나라고! 씨발, 여기서 죽을 생각이야? 그럼 안 된다고!”
민우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사지가 풍을 맞은 사람처럼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커다란 덩치에 안 맞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야, 넌 조용히 해. 이 새끼가 죽어야 내 속도 좀 편해지지.”
천우는 꼬붕 원의 뒤통수를 주저 없이 밟아버렸다. 꼬붕 원의 이마가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치며 피를 뿜어냈다.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난다. 바닥은 꼬붕 원이 흘린 피로 가득했다.
천우는 그의 피를 마시고 싶은 심정을 억지로 참아냈다.
양평 근교의 야산에서 깨어난 이후, 확실히 자신은 달라졌다. 폭주족들과의 싸움에서도 그렇고, 체력이나 맷집 등 신체 능력이 전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게다가 힘을 쓸 때마다 알 수 없는 욕망이 꿈틀꿈틀 치솟는 이 기분.
잠시라도 이성의 끈을 놓으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아무리 의식하려 하지 않아도 그날 그 산속에서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게 분명하다.
천우의 생각으로는 앞뒤가 딱딱 맞는 것 같았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그 일이 아니다.
천혁이 가장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이 학교에 용서할 수 없는 새끼들이 가득하다는 것.
동생의 일기장을 읽기 전까지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상황.
동생과 연관된 놈들은…… 단 한 명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미성년자? 학생? 그게 뭐?
이것들은 악마보다 질이 나쁘다.
영안실 속, 비참한 동생의 주검만 떠올리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는 심정이었다.
천우는 양 손바닥으로 벽을 짚고는 그 밑에 쓰러져 있는 꼬붕 원의 배를 마구 걷어찼다.
퍽! 퍽! 퍽!
“꼬붕 새끼야, 좀 뒈져라. 너 죽이고 나서 저 새끼들마저 다 처리하려면 나도 바쁘다. 종 치기 전에 들어가야 하잖아. 나름 학생인데, 학업에 열중해야지.”
살벌한 분위기와는 전혀 맞지 않는 말이었다.
꼬붕 투, 쓰리와 민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들이 보기에 천우는 완벽한 미친놈, 그 자체였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어서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 사람은 일어서려고 애를 썼다. 다행히도 한 발은 움직인다. 그렇다면 얼른 큰길로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지랄들 하고 있네.”
물론 천우는 그들을 마음대로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천우는 바닥에 있던 벽돌을 집어 들고 천천히 다가가 세 사람의 머리를 내려쳤다.
빠각!
세 사람은 필사의 발버둥이 허무할 정도로 힘없이 쓰러졌다.
“너희는 인과응보란 말은 모르냐?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말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말은? 다 모른다고? 그러니까 이런 꼴을 당하는 거다, 병신들아. 공부 좀 해라. 음,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긴 하다만.”
천우는 손에 쥔 벽돌을 바라봤다. 민우의 머리통을 후려갈길 때 반으로 쪼개졌다.
벽돌이 약한 건지, 저놈 대가리가 단단한 건지…….
천우는 반 토막이 되어버린 벽돌을 든 채 꼬붕 원에게 다가갔다.
“하지 마, 하지 말라고!”
꼬붕 투와 쓰리가 애처롭게 외쳤다. 그들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의리가 두터워 친구가 죽지 않기를 바라서?
개 염병할 소리 하고 앉아 있네. 꼬붕 원이 죽으면 다음에는 자신들 차례니까, 그게 무서워서 저렇게 짖는 것이다.
천우는 꼬붕 원의 머리 위로 벽돌을 내려찍으려다가 잠시 멈췄다.
그 순간, 꼬붕 투와 쓰리의 외침도 멈췄다.
“내가…… 왜 너희를 죽여야 하지? 겨우 열여덟 살밖에 안 됐는데, 꼭 살인자가 될 필요가 있을까?”
자조 섞인 말투였다.
“그래, 우리 죽여서 뭐가 남아. 맹세할게. 다시는 너한테, 아니, 선배한테 담배 사 오라고 안 할게요. 아니, 아예 선배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게요. 그러니까 제발…… 화를 푸세요.”
꼬붕 투와 쓰리가 번갈아가며 처절할 정도로 진심을 담아서 외쳤다. 그러더니 구구절절, 자신들이 얼마나 불우한 형편인지를 늘어놓는다.
알콜 중독자 아버지에 자신이 먹여 살려야 할 동생이 세 명이나 있다느니, 3년 전 집 나간 어머니에 할머니는 치매, 아버지는 장애인…….
“아, 너희들…….”
천우는 눈 사이를 꾹 눌렀다. 그러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았다. 그야말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을 만큼 애절한 사연.
이들 역시 자신만큼이나 힘들게 살아왔다. 학교에는 억지로 다니고 있을 테지. 천우는 꼬붕 투와 쓰리 앞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그들의 볼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그런 후, 말했다.
“그래서?”
“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너희들 졸라게 가난하니까 나더러 그만하라고? 그럼 한 번 물어보자. 너희는 나한테 왜 그랬냐?”
“…….”
두 녀석은 순간 합죽이가 된 것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뭔가 변명거리를 찾는 모양이었다, 눈알이 데굴데굴 굴러가는 것을 보면.
“할 말 없지? 그러니까 머리 굴리지 말고, 유언이나 생각해 둬.”
그 말에 꼬붕들의 표정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바로 그때였다.
“나…… 안 죽었어요. 내가 안 죽으면 되는 거죠?”
꼬붕 원, 경수의 입에서 쥐어짜 낸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어라? 안 뒈졌어?”
천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경수에게 다가갔다.
“이제 그만해 주세요. 아무도 안 죽었으니까…….”
“흠…….”
천우는 팔짱을 끼고 경수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경수는 힘겹게 숨을 헐떡거렸지만, 감히 천우의 눈과 마주치지는 못했다.
“뭐, 좋아. 그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우리 즐겁게 등교하자고.”
천우는 손바닥을 짝, 치며 유쾌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민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민우는 아직 수긍하지 못하겠는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천우를 노려봤다. 눈빛이 지글지글 끓고 있는 냄비 같다.
“새끼, 반성이 없네. 너, 점심시간까지 30만 원 가져와. 오늘부터 넌 내 램프의 요정, 지니야. 만약 안 가져오면…… 즐거운 학교생활을 만끽하게 될 거야.”

* * *

천우가 다시 큰길로 나와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다. 아직도 등교하는 아이들이 꽤 됐다.
“이걸 어쩌지?”
얼굴과 옷에 꽤 많은 피가 튀었다. 이러고 다니면 꼼짝없이 신고가 들어갈 만한 상황. 얼른 얼굴이라도 씻어야 할 판이었다.
까톡, 까톡, 까톡.
바로 그 순간, 갑작스럽게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한두 통이 아니었다. 대량의 카톡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뭐야, 이건?
천우는 핸드폰을 열어서 확인했다.
가장 많은 카톡이 온 것은 단체방이었다. 2―A반이라고 적힌.

― 오! 너, 살았다면서? 호규가 너 봤다더라. 깜짝 놀랐대. 좀비네, 좀비.
― 와! 그거 괜찮다. 오늘부터 천우 새끼는 좀비라고 부르면 되겠다.
― 야야! 내기할까? 좀비를 옥상에서 떨어트리면 다시 살아날까, 뒈질까? 난 ‘살아난다’에 만 원을 걸지.
― 그거 괜찮네. 난 ‘불구가 된다’에 만 원.
― 병신들, 걔가 진짜 좀비냐. 차라리 현실적으로 내기를 하자. 뼈가 몇 개 부러져서 죽느냐로.
― 그건 의사가 아닌 이상 확인이 불가능하잖아. 차라리 이건 어때? 목이 뒤로 돌아가느냐, 아니냐.
― 그거 괜찮네. 야, 좀비 보고 있냐? 얼른 와라. 야자 시간에 옥상에서 뛰어내려야겠다. 한 번 뛰어내려 봤으니 두 번째는 더 쉽겠지?

천우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흐린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는 숨을 들이켰다.
천우야, 천우야……. 너는 참 더러운 세상에 살았구나. 도대체 어떻게 버텼니. 이 불쌍한 것.
천우는 동생이 왜 그토록 핸드폰을 보여주기 싫어했는지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핸드폰만 잡으면 경기를 일으키듯이 빼앗아가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뭣도 모르고 투덜거리기만 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씨발, 정말 기분이 더러워진다.
천우는 단체방에 카톡을 남겼다.

―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것 보고 싶어?
― 당근이지.
― 좋아. 그럼 해볼까? 너희들이 원한다면.
― 예이! 니가 드디어 해탈했구나.
― 보고 싶어! 보고 싶어!
― 오늘?
― 와우우우! 축제다, 축제!

천우의 말에 수십 개의 카톡이 미친 듯이 올라왔다. 대체로 신나서 죽겠다는 표정들.
그래, 오늘 밤은 정말 신날 거야.
천우는 다시 한 번 댓글을 올렸다.

― 보고 싶으면 오늘 모두 남아. 축제를 벌일 거야.

피의 축제를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