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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부활 (1)
일류 대학에 많은 학생을 보내기로 유명한 대성 고등학교.
이곳은 8학군에서도 특히나 유명했다.
단지 뛰어난 진학률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정치인들이 상당수는 이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법조인이나 연예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국가기관뿐 아니라 각 대기업마다 대성고 졸업생 모임이 따로 있을 정도니까 족보를 따지고 들어가면 대성 고등학교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대성고의 졸업생이라는 명분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대성고를 나왔다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큰 메리트가 되는 것이다.
천우는 그런 학교의 2학년생이었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학교 정문을 바라봤다. 입구에는 책을 들고 있는 서 있는 석상이 있었다. 석상 밑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가장 유능한 사람은 가장 배움에 힘쓰는 사람이다.
천우는 피식 웃었다.
지랄.
“나 같으면 이렇게 쓰겠다. ‘가장 파렴치한 곳은 가장 배움에 힘쓰는 대성 고등학교다’라고.”
천우는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뭔가 이상함을 느낀 그는 잠시 멈추고 주변을 바라봤다. 아이들인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마치 귀신을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빤하다. 당연히 죽었으리라 여긴 사람이 살아왔으니까.
표정들 하곤. 죽다가 살아난 사람 처음 보냐, 개새끼들아.
“뭘 보냐?”
“…….”
아이들이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몇몇은 아예 천우를 못 본 척하고 교문을 향해서 서둘러 움직였다.
다른 몇몇은 천우와 친분이 있는 듯했다. 그들은 뭔가 말을 걸려고 입을 우물우물거렸다. 하지만 이내 뒤에서 다가오는 누군가를 보고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천우는 입매를 뒤틀었다. 본래 그가 다니던 학교는 골통 집합소로 유명했다. 하루라도 싸움이 벌어지지 않으면 학교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맺고 끊음이 확실했다.
뭐랄까, 시원한 느낌이 드는 학교랄까. 집단 괴롭힘이나 왕따 같은 것은 일절 없었다. 오로지 누가 더 ‘강한가’에만 관심이 있는 특이한 학교였으니까.
하지만 이곳은 겉만 평화롭다. 속을 들여다보면 시궁창 냄새가 물씬 난다. 음울하기 짝이 없었다.
“어라, 이게 뉘기야?”
아이들이 기피하던 인물. 키는 대략 180센티가 넘는다. 어깨가 넓고 얼굴선이 시원시원하다. 코가 오뚝해서 입체적으로 보이는 인상. 쉽게 말해서 호감형이다.
하지만 행동거지를 보니 호인은 아닌 듯했다. 바닥에 가래침을 탁, 내뱉은 그가 천우를 향해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천우의 어깨에 팔을 휘감았다.
“와! 뒈졌다고 하더니, 멀쩡하네? 너 좀비냐? 분명 옥상에서 떨어진 것을 봤는데. 대단하다.”
천우는 그 자식의 명찰을 확인했다.
이민우.
뇌리에 박힌 일기장을 뒤졌다.
이 새끼에 대한 이름은 세 번 나온다.
첫 번째.
공부를 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서 수학 점수가 떨어졌다. 그 자식들은 나의 성적을 떨어트리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는 듯했다.
내가 비록 그들보다 힘은 약하지만, 공부로는 이길 수 있다. 결코 포기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도 놈들의 괴롭힘은 멈추지 않았다.
갑작스런 뒷머리의 충격과 함께 이마가 책상에 부딪쳤다. 코피가 난다. 코를 막고 뒤돌아보니 민우가 싱글싱글 웃으며 서 있었다.
소름이 끼친다. 욕을 하면서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민우는 그런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겠지.
결국 머리채를 잡힌 채 화장실로 끌려갔다. 거기서 나는 오줌이 가득 담긴 변기의 물을 마셨다. 몇 번이나 토했지만, 민우는 그런 나를 절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두 번째.
등교를 하고 보니 책상이 없었다. 주변을 돌아봤다. 의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앞에 있는 진구에게 물어봤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거친 욕설뿐.
내가 욕먹을 짓을 했나? 그냥 물어본 것뿐인데.
교실 밖에서 민우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리 오라 손짓을 한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나름 반항인 셈이다. 역시나 그는 내 머리채를 잡고 화장실로 끌고 갔다. 그곳에 내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나는 하루 종일 화장실에 앉아 있었다. 민우가 점심을 가져와 화장실에서 먹으라고 한다. 손으로 치워 버렸다. 민우는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내 입속에 욱여넣었다.
세 번째.
참다못해 담임에게 가서 지금껏 당한 일을 모두 얘기했다. 물론 아이들의 일은 아이들끼리 해결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웃기는 개소리다.
그거야 일진들에게나 통하는 소리고, 나 같은 약자에게는 그런 말은 지옥에서 닥치고 살아가라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근본적인 해결은 못 되더라도 최소한 보호는 해줄 줄 알았다. 담임은 귀찮은 모양이었다. 왜 쓸데없이 분란을 일으키냐고 말한다. 나는 당한 증거도 많다고 대답했다.
담임은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니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고 그런다. 여기가 무슨 학교인지 아느냐고, 얼마나 대단한 학부모들이 있는 곳인지 아느냐고 몇 번이나 얘기한다. 넌 공부 잘하니까 좋은 대학 가서 나중에 그런 부모가 되라는 말까지.
담임은 종례 시간에 뒤통수를 쳤다.
요즘 왕따가 반에서 일어나는 모양이야. 모두 사이좋게 지내. 특히 천우는 괴롭히지 마라. 열심히 하잖아.
그것으로 내 인생은 끝났다. 나는 자율학습 시간에 발가벗겨진 채 여자 일진들이 보는 앞에서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짓거리를 당해야 했다.
복수하고 싶다.
나를 괴롭힌 놈, 같이 웃은 놈, 비열한 선생 놈…….
하나 빠짐없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런데 내겐…… 힘이 없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난 그 지렁이만도 못하다.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데…….
……형, 미안해.
동생의 일기 속 내용들이 떠올랐다. 그러자 머리가 빙하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반면에 가슴은 용암처럼 지글지글 끓어오른다.
네가 민우구나.
어쩐지……
낯선 느낌이 들지 않더라니.
정말 반갑다, 씨발아.
“내가 멀쩡해서 기뻐?”
천우는 방긋 웃으며 물었다. 진심으로 반가웠다. 이렇게 쉽게 만날 수가 있다니. 기뻐서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럼 졸라 기쁘지. 우리 학교 공식 샌드백이 없어지면 너어~무 서운하잖아.”
“내가 샌드백이야?”
“그럼 대성고 공식 샌드백이잖아. 까먹었어? 한 번 뛰어내리더니, 머리 다쳤냐?”
“흐음…….”
샌드백이란 말을 듣는 순간, 천우의 뒷덜미가 빳빳하게 굳어졌다.
호오, 이 새끼. 사람 열 받게 할 줄 아네.
“새끼 봐라? 표정이 왜 이렇게 편안해?”
“그렇게 보여?”
“야, 야, 야. 이제 슬슬 시작해야지. 니가 병원에서 자빠져 있느라 가져오지 않은 내 돈, 삼십만 원. 이제 줘야지?”
민우는 천우의 턱을 손등으로 툭툭, 건드렸다. 천우의 고개가 좌우로 흔들렸다. 목이 잡힌 상태에서 이런 식으로 당하면 압박감이 상당하다.
매일 아침마다 천우가 이런 꼴을 당했다고?
우선 분위기나 알아보려고 했는데, 벌써부터 참지 못하게 만드네.
“뭔 삼십만 원?”
“떨어질 때 대갈통부터 박았니? 왜 모른 척을 하고 그래. 내가 언제든지 꺼낼 수 있는 돈. 너는 나만의 램프의 요정, 지니잖아.”
민우는 계속해서 천우의 턱을 툭툭, 건드렸다.
“네가 나한테 돈을 맡겼어?”
“오늘따라 진짜 왜 이래? 월말이 되면 네 주머니에서 뿅! 하고 나오잖아, 내 돈.”
“아하, 그래서 램프의 요정 지니구나? 내 주머니를 열어서 돈을 가져간다고 해서.”
“정말 머리 다쳤나 보네. 어디 보자, 대갈통이 부서졌나.”
민우는 천우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아오, 씨발. 머리 좀 감고 다녀. 비듬 봐라.”
“아침에 머리 감았는데……. 그리고 비듬은 내가 아니라 네 거야. 교복 어깨 봐라. 아씨, 더러워. 나한테 이 옮겠다.”
“뭐?”
“이 옳을 것 같으니까 이것 좀 놔주면 안 되겠냐?”
민우가 멈칫거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천우와 눈을 맞췄다. 빤히 쳐다본다. 이 새끼가 아침부터 뭘 잘못 먹었나 싶은 눈초리였다.
“머리가 다친 것 같으니까, 내가 고쳐 줄게. 다시 제대로 맞으면 원래대로 돌아갈 거야.”
말과 함께 민우는 점점 강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천우의 턱이 덜그럭 소리를 낼 정도의 강도였다.
“한 번만 더 치면…… 뒈진다, 너.”
천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
“뒈진다고.”
“…….”
어이가 없는 모양인지, 민우는 헛기침을 몇 번이나 한다. 그러고는 혼자서 한참을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긴지는 모르겠지만.
이내 정색한 그는 천우의 목을 더 세게 졸랐다. 아니, 조르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은 민우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갔다. 천우가 그의 팔목을 잡고 뒤로 돌린 것이다. 민우의 팔꿈치가 기형적으로 뒤틀리며 팔목이 뒤로 꺾였다. 그의 입에서 애처로운 비명이 튀어나왔다.
그 상태 그대로 천우가 민우의 목을 휘감았다. 완전히 둘의 자세가 뒤바뀐 것이다. 천우가 팔을 당기자 얇은 팔뚝이 민우의 목젖을 짓눌렀다. 민우의 얼굴이 금방 새빨갛게 변했다.
“야, 야, 야.”
천우는 민우의 턱을 툭툭, 건드렸다.
“입장이 바뀌었어. 오늘부터 너, 삼십만 원 가지고 와. 점심시간까지 안 가져오면 어깨를 뽑아버릴 거야.”
“씨벌…… 놈이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민우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연신 욕설을 내뱉었다.
천우는 입술을 비틀며 주위를 돌아봤다. 아무래도 등굣길이라 그런지 지켜보는 시선들이 많았다. 굳이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것은 없었다.
천우는 민우의 목을 잡은 채 건물 뒤로 돌아갔다. 남들이 보기에는 사이좋은 모습으로만 보였다. 물론 천우와 민우의 관계를 아는 아이들은 ‘또 천우가 크게 당하겠구나’ 여겼다. 그렇다고 도움을 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지만.
천우는 본래 당하는 컨셉이니까. 그러니 졸업 때까지 저렇게 살 것이다. 출신도 비루한 게 공부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이 씨발, 이거 안 놔? 넌 뒈졌어, 개새끼야.”
185센티, 110킬로그램의 민우가 훨씬 작은 천우의 품 안에서 발버둥을 쳤다. 그는 두꺼운 주먹으로 천우의 옆구리를 마구 때렸다.
퍽퍽퍽!
그러나 천우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민우는 당황했다. 주먹에서 아무런 반응이 느껴지지 않은 탓이다. 마치 스펀지를 힘껏 친 것처럼 허무한 느낌이었다.
“가만히 있어. 금방 놔줄 테니. 어라?”
마침 건물 뒤에는 세 명의 남학생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셋 모두 머리 색이 노랗다. 키도 비슷하다. 생긴 것도 비슷하고, 귀에 피어싱을 한 것도 똑같았다. 그렇다고 얼굴까지 닮은 것은 아니었다. 분위기가 비슷해서 형제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확실히 똑같지는 않다.
참, 개성 없는 새끼들이군.
그들은 민우를 보자, 담배를 등 뒤로 숨기며 90도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천우는 실소했다.
이 병신들은 지금 상황이 안 보이나? 인사를 할 때와 안 할 때 구별도 못하나 보네. 아주 끼리끼리 노는군.
“닥치고 당장 이 새끼부터 죽여 버려! 어서!”
민우가 악에 받쳐서 소리쳤다.
“천우, 이 개새끼. 이것만 풀려봐. 넌 그냥 맞는 걸로 끝나지 않을 거야!”
아아! 정말 달콤한 말이야. 맞아, 그냥 맞는 정도로 끝나면 안 되지.
천우는 자신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는 꼬붕 원, 투, 쓰리를 보며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일류 대학에 많은 학생을 보내기로 유명한 대성 고등학교.
이곳은 8학군에서도 특히나 유명했다.
단지 뛰어난 진학률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정치인들이 상당수는 이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법조인이나 연예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국가기관뿐 아니라 각 대기업마다 대성고 졸업생 모임이 따로 있을 정도니까 족보를 따지고 들어가면 대성 고등학교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대성고의 졸업생이라는 명분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대성고를 나왔다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큰 메리트가 되는 것이다.
천우는 그런 학교의 2학년생이었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학교 정문을 바라봤다. 입구에는 책을 들고 있는 서 있는 석상이 있었다. 석상 밑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가장 유능한 사람은 가장 배움에 힘쓰는 사람이다.
천우는 피식 웃었다.
지랄.
“나 같으면 이렇게 쓰겠다. ‘가장 파렴치한 곳은 가장 배움에 힘쓰는 대성 고등학교다’라고.”
천우는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뭔가 이상함을 느낀 그는 잠시 멈추고 주변을 바라봤다. 아이들인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마치 귀신을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빤하다. 당연히 죽었으리라 여긴 사람이 살아왔으니까.
표정들 하곤. 죽다가 살아난 사람 처음 보냐, 개새끼들아.
“뭘 보냐?”
“…….”
아이들이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몇몇은 아예 천우를 못 본 척하고 교문을 향해서 서둘러 움직였다.
다른 몇몇은 천우와 친분이 있는 듯했다. 그들은 뭔가 말을 걸려고 입을 우물우물거렸다. 하지만 이내 뒤에서 다가오는 누군가를 보고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천우는 입매를 뒤틀었다. 본래 그가 다니던 학교는 골통 집합소로 유명했다. 하루라도 싸움이 벌어지지 않으면 학교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맺고 끊음이 확실했다.
뭐랄까, 시원한 느낌이 드는 학교랄까. 집단 괴롭힘이나 왕따 같은 것은 일절 없었다. 오로지 누가 더 ‘강한가’에만 관심이 있는 특이한 학교였으니까.
하지만 이곳은 겉만 평화롭다. 속을 들여다보면 시궁창 냄새가 물씬 난다. 음울하기 짝이 없었다.
“어라, 이게 뉘기야?”
아이들이 기피하던 인물. 키는 대략 180센티가 넘는다. 어깨가 넓고 얼굴선이 시원시원하다. 코가 오뚝해서 입체적으로 보이는 인상. 쉽게 말해서 호감형이다.
하지만 행동거지를 보니 호인은 아닌 듯했다. 바닥에 가래침을 탁, 내뱉은 그가 천우를 향해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천우의 어깨에 팔을 휘감았다.
“와! 뒈졌다고 하더니, 멀쩡하네? 너 좀비냐? 분명 옥상에서 떨어진 것을 봤는데. 대단하다.”
천우는 그 자식의 명찰을 확인했다.
이민우.
뇌리에 박힌 일기장을 뒤졌다.
이 새끼에 대한 이름은 세 번 나온다.
첫 번째.
공부를 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서 수학 점수가 떨어졌다. 그 자식들은 나의 성적을 떨어트리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는 듯했다.
내가 비록 그들보다 힘은 약하지만, 공부로는 이길 수 있다. 결코 포기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도 놈들의 괴롭힘은 멈추지 않았다.
갑작스런 뒷머리의 충격과 함께 이마가 책상에 부딪쳤다. 코피가 난다. 코를 막고 뒤돌아보니 민우가 싱글싱글 웃으며 서 있었다.
소름이 끼친다. 욕을 하면서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민우는 그런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겠지.
결국 머리채를 잡힌 채 화장실로 끌려갔다. 거기서 나는 오줌이 가득 담긴 변기의 물을 마셨다. 몇 번이나 토했지만, 민우는 그런 나를 절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두 번째.
등교를 하고 보니 책상이 없었다. 주변을 돌아봤다. 의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앞에 있는 진구에게 물어봤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거친 욕설뿐.
내가 욕먹을 짓을 했나? 그냥 물어본 것뿐인데.
교실 밖에서 민우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리 오라 손짓을 한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나름 반항인 셈이다. 역시나 그는 내 머리채를 잡고 화장실로 끌고 갔다. 그곳에 내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나는 하루 종일 화장실에 앉아 있었다. 민우가 점심을 가져와 화장실에서 먹으라고 한다. 손으로 치워 버렸다. 민우는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내 입속에 욱여넣었다.
세 번째.
참다못해 담임에게 가서 지금껏 당한 일을 모두 얘기했다. 물론 아이들의 일은 아이들끼리 해결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웃기는 개소리다.
그거야 일진들에게나 통하는 소리고, 나 같은 약자에게는 그런 말은 지옥에서 닥치고 살아가라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근본적인 해결은 못 되더라도 최소한 보호는 해줄 줄 알았다. 담임은 귀찮은 모양이었다. 왜 쓸데없이 분란을 일으키냐고 말한다. 나는 당한 증거도 많다고 대답했다.
담임은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니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고 그런다. 여기가 무슨 학교인지 아느냐고, 얼마나 대단한 학부모들이 있는 곳인지 아느냐고 몇 번이나 얘기한다. 넌 공부 잘하니까 좋은 대학 가서 나중에 그런 부모가 되라는 말까지.
담임은 종례 시간에 뒤통수를 쳤다.
요즘 왕따가 반에서 일어나는 모양이야. 모두 사이좋게 지내. 특히 천우는 괴롭히지 마라. 열심히 하잖아.
그것으로 내 인생은 끝났다. 나는 자율학습 시간에 발가벗겨진 채 여자 일진들이 보는 앞에서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짓거리를 당해야 했다.
복수하고 싶다.
나를 괴롭힌 놈, 같이 웃은 놈, 비열한 선생 놈…….
하나 빠짐없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런데 내겐…… 힘이 없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난 그 지렁이만도 못하다.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데…….
……형, 미안해.
동생의 일기 속 내용들이 떠올랐다. 그러자 머리가 빙하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반면에 가슴은 용암처럼 지글지글 끓어오른다.
네가 민우구나.
어쩐지……
낯선 느낌이 들지 않더라니.
정말 반갑다, 씨발아.
“내가 멀쩡해서 기뻐?”
천우는 방긋 웃으며 물었다. 진심으로 반가웠다. 이렇게 쉽게 만날 수가 있다니. 기뻐서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럼 졸라 기쁘지. 우리 학교 공식 샌드백이 없어지면 너어~무 서운하잖아.”
“내가 샌드백이야?”
“그럼 대성고 공식 샌드백이잖아. 까먹었어? 한 번 뛰어내리더니, 머리 다쳤냐?”
“흐음…….”
샌드백이란 말을 듣는 순간, 천우의 뒷덜미가 빳빳하게 굳어졌다.
호오, 이 새끼. 사람 열 받게 할 줄 아네.
“새끼 봐라? 표정이 왜 이렇게 편안해?”
“그렇게 보여?”
“야, 야, 야. 이제 슬슬 시작해야지. 니가 병원에서 자빠져 있느라 가져오지 않은 내 돈, 삼십만 원. 이제 줘야지?”
민우는 천우의 턱을 손등으로 툭툭, 건드렸다. 천우의 고개가 좌우로 흔들렸다. 목이 잡힌 상태에서 이런 식으로 당하면 압박감이 상당하다.
매일 아침마다 천우가 이런 꼴을 당했다고?
우선 분위기나 알아보려고 했는데, 벌써부터 참지 못하게 만드네.
“뭔 삼십만 원?”
“떨어질 때 대갈통부터 박았니? 왜 모른 척을 하고 그래. 내가 언제든지 꺼낼 수 있는 돈. 너는 나만의 램프의 요정, 지니잖아.”
민우는 계속해서 천우의 턱을 툭툭, 건드렸다.
“네가 나한테 돈을 맡겼어?”
“오늘따라 진짜 왜 이래? 월말이 되면 네 주머니에서 뿅! 하고 나오잖아, 내 돈.”
“아하, 그래서 램프의 요정 지니구나? 내 주머니를 열어서 돈을 가져간다고 해서.”
“정말 머리 다쳤나 보네. 어디 보자, 대갈통이 부서졌나.”
민우는 천우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아오, 씨발. 머리 좀 감고 다녀. 비듬 봐라.”
“아침에 머리 감았는데……. 그리고 비듬은 내가 아니라 네 거야. 교복 어깨 봐라. 아씨, 더러워. 나한테 이 옮겠다.”
“뭐?”
“이 옳을 것 같으니까 이것 좀 놔주면 안 되겠냐?”
민우가 멈칫거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천우와 눈을 맞췄다. 빤히 쳐다본다. 이 새끼가 아침부터 뭘 잘못 먹었나 싶은 눈초리였다.
“머리가 다친 것 같으니까, 내가 고쳐 줄게. 다시 제대로 맞으면 원래대로 돌아갈 거야.”
말과 함께 민우는 점점 강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천우의 턱이 덜그럭 소리를 낼 정도의 강도였다.
“한 번만 더 치면…… 뒈진다, 너.”
천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
“뒈진다고.”
“…….”
어이가 없는 모양인지, 민우는 헛기침을 몇 번이나 한다. 그러고는 혼자서 한참을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긴지는 모르겠지만.
이내 정색한 그는 천우의 목을 더 세게 졸랐다. 아니, 조르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은 민우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갔다. 천우가 그의 팔목을 잡고 뒤로 돌린 것이다. 민우의 팔꿈치가 기형적으로 뒤틀리며 팔목이 뒤로 꺾였다. 그의 입에서 애처로운 비명이 튀어나왔다.
그 상태 그대로 천우가 민우의 목을 휘감았다. 완전히 둘의 자세가 뒤바뀐 것이다. 천우가 팔을 당기자 얇은 팔뚝이 민우의 목젖을 짓눌렀다. 민우의 얼굴이 금방 새빨갛게 변했다.
“야, 야, 야.”
천우는 민우의 턱을 툭툭, 건드렸다.
“입장이 바뀌었어. 오늘부터 너, 삼십만 원 가지고 와. 점심시간까지 안 가져오면 어깨를 뽑아버릴 거야.”
“씨벌…… 놈이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민우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연신 욕설을 내뱉었다.
천우는 입술을 비틀며 주위를 돌아봤다. 아무래도 등굣길이라 그런지 지켜보는 시선들이 많았다. 굳이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것은 없었다.
천우는 민우의 목을 잡은 채 건물 뒤로 돌아갔다. 남들이 보기에는 사이좋은 모습으로만 보였다. 물론 천우와 민우의 관계를 아는 아이들은 ‘또 천우가 크게 당하겠구나’ 여겼다. 그렇다고 도움을 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지만.
천우는 본래 당하는 컨셉이니까. 그러니 졸업 때까지 저렇게 살 것이다. 출신도 비루한 게 공부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이 씨발, 이거 안 놔? 넌 뒈졌어, 개새끼야.”
185센티, 110킬로그램의 민우가 훨씬 작은 천우의 품 안에서 발버둥을 쳤다. 그는 두꺼운 주먹으로 천우의 옆구리를 마구 때렸다.
퍽퍽퍽!
그러나 천우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민우는 당황했다. 주먹에서 아무런 반응이 느껴지지 않은 탓이다. 마치 스펀지를 힘껏 친 것처럼 허무한 느낌이었다.
“가만히 있어. 금방 놔줄 테니. 어라?”
마침 건물 뒤에는 세 명의 남학생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셋 모두 머리 색이 노랗다. 키도 비슷하다. 생긴 것도 비슷하고, 귀에 피어싱을 한 것도 똑같았다. 그렇다고 얼굴까지 닮은 것은 아니었다. 분위기가 비슷해서 형제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확실히 똑같지는 않다.
참, 개성 없는 새끼들이군.
그들은 민우를 보자, 담배를 등 뒤로 숨기며 90도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천우는 실소했다.
이 병신들은 지금 상황이 안 보이나? 인사를 할 때와 안 할 때 구별도 못하나 보네. 아주 끼리끼리 노는군.
“닥치고 당장 이 새끼부터 죽여 버려! 어서!”
민우가 악에 받쳐서 소리쳤다.
“천우, 이 개새끼. 이것만 풀려봐. 넌 그냥 맞는 걸로 끝나지 않을 거야!”
아아! 정말 달콤한 말이야. 맞아, 그냥 맞는 정도로 끝나면 안 되지.
천우는 자신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는 꼬붕 원, 투, 쓰리를 보며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