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27화
원령 (2)



“여긴가?”

유성이 세 채의 건물 중 한 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병동으로 보이는 건물이었다. 시침은 이 건물을 가리키고 있었다.

조심스레 그 안으로 들어서자 시계의 움직임에 변화가 일어났다.

“응? 뭐야, 불안하게……. 바로 근처인가?”

시침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분침은 정신없이 떨리고 있었다. 시계가 가리키는 무언가와 가까워지긴 한 것 같은데, 이젠 방향을 알 수가 없었다.

1층은 아마 로비인 듯 하나로 탁 트여 있었다. 부서진 TV가 한쪽 벽에 걸려 있고, 그 앞에 늘어선 의자들과 카운터가 있었던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틀만 남고 다 부서진 유리 벽을 사이에 두고 바로 옆에, 아마도 식당인 듯 테이블과 의자들이 잔뜩 있는 널찍한 공간이 있었다.

한 바퀴 둘러보며 살펴봤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위인가?”

유성은 로비에 난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은 무너져 있는 부분도 있어 상당히 위태위태했다.

탁 트여 있던 1층과 달리 좁은 복도가 양옆으로 뻗어 있었다. 복도를 따라 팻말이 붙은 문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유성은 어떤 문 앞에서 손잡이를 돌려 보았다.

덜컹, 덜컹.

“잠겨 있네.”

다른 몇 개의 문도 열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때, 어두운 복도 저편으로 붉은 빛줄기가 흘러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유성은 그 근처로 다가갔다.



209호.



팻말이 걸린 병실의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붉은 빛은 그 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히이이이. 흐으으으.

유성은 마른침을 삼켰다.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 같은데.’

끼익.

유성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붉은 빛이 병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석양이었다. 뭔가 흐느끼는 듯한 이상한 소리는 망가진 창틀 사이로 흘러 들어온 바람이 내는 소리였다.

“귀신이라도 나온 줄 알았네.”

유성이 허탈한 얼굴로 창틀을 퍽 쳤다.

병실 안의 침대는 여섯 개. 대부분 망가지고 더럽혀져서 침대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들이었다.

“응?”

딱 두 개의 침대만이 깨끗했다. 아직 탄력도 살아 있었다.

“뭐야, 이 두 개는 완전 새건데? 거기다 사용감도 있고. 설마 이런 데 사람이 산다고?”

기분 나쁜 상상이었다. 이런 음침한 곳에 살고 있다니, 분명 제대로 된 사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누군가 살고 있으면 싶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어제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것이다. 혹시 이곳에 왔었는지도 모르는 여름밤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좀 더 찾아봐야겠다. 어쩌면 아직 이 건물 안에 있을지도 모르고.”

창밖에는 해가 거의 완전히 지평선 너머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아이고, 해 지네. 30분만 더 둘러보고 가야겠다. 저녁 먹기 전에 들어오라고 한 것도 있고. 또 새벽이 혼자 먹게 하는 것도 미안하니까.”

쿵!

중얼거리던 유성이 흠칫 고개를 들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무언가 발 구르는 듯한 소리였다.

쿠르르릉.

천장이 덜덜 떨리며 분진이 흩날렸다. 끼이이익, 하는 밖에서 들었던 날카로운 소리도 울려 퍼졌다.

“위층에 뭔가 있어.”

유성은 재빨리 병실을 뛰쳐나와 계단을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콰앙!

순간, 엄청난 진동에 유성은 균형을 잃고 휘청였다. 복도 끝 병실에서 막대한 양의 먼지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몸을 일으킨 유성은 재빨리 그곳으로 뛰어갔다.



309호.



바로 위 병실이다. 떨어져 나간 문짝이 복도 쪽으로 내팽개쳐져 있었다. 병실 안을 본 유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이게…….”

바닥이 절반 정도 무너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있던 209호의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가만히 있었으면 깔려 죽을 뻔했네. 너무 낡아서 무너진 건가?”

중얼거리면서도 유성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뭐지, 위에 누군가 있던 것 같았는데. 혹시… 누군가가 일부러? 그럼 병실 문이 하나만 열려 있던 것도…….’

그렇게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유성은 즉시 몸을 돌려 계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래층 계단의 끄트머리로부터 점점 위로 올라오는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사람?”

아니, 사람의 발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고 거칠었다.

순간 유성은 뒤를 돌아보았다. 2층이 그랬듯, 병실 문은 모두 잠겨 있을 것이다. 309호는 문짝이 없다.

머지않아 어둠 속에서 나타난 무언가가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언뜻 보면 그것은 사람과 비슷했다. 하지만 달랐다.

분명 두 다리로 걷고 있지만 두 팔이 땅에 닿을 만큼 길었다. 온몸을 뒤덮고 있는 것은 옷이 아니라 털이었다.

유성은 자연스럽게 고릴라를 떠올렸다. 동물원에서 탈출한 고릴라가 어쩌다 들어온 건가 하는 희망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의 머리를 보는 순간, 유성은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입만이 존재하는 크고 납작한 머리가 그 안에 들어찬 무수한 이빨을 드러내고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게 무슨…….’

유성은 거의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끄그그그끼게게게게에엑!

이내 유성을 발견한 그것이 날카로운 소리로 울부짖었다.

동시에 유성은 뒤돌아 달렸다. 뒤로 땅을 울리며 따라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성은 빛이 들어오고 있는 309호실로 뛰어 들어갔다.

하지만 바닥은 완전히 무너져 있고, 1층 높이라고 해도 맨몸으로 뛰어내리기엔 결코 낮다고는 할 수 없는 높이였다. 문짝이 없어 문을 닫을 수도 없고, 다시 복도로 나가기에도 늦었다. 망설이는 순간에도 땅을 박차는 소리는 시시각각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으아아악!”

결국 유성은 비명을 지르며 무너진 구멍 아래로 뛰어내렸다.

쿵!

머리를 감싸고 웅크린 유성은 아래에 있던 망가진 침대 아래로 무사히 착지했다. 낡은 침대가 폭삭 무너져 내렸지만 덕분에 다치진 않은 듯했다.

그는 재빨리 일어나 복도로 빠져나가 병실 문을 닫았다. 그러자 안쪽에서 무거운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곧이어 무언가 강하게 문에 격돌했다.

콰앙!

“으악!”

충격에 놀란 유성이 뒤로 넘어졌다. 철로 된 문은 쉽사리 부서지지 않았다. 다만 문 주변의 벽에 금이 생기고 있었다.

쾅!

다시 한번 격돌하는 소리. 유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겁지겁 뛰어나갔다.

뒤에서 우지끈, 문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괴물은 뜯겨져 나간 문을 밟고 방에서 걸어나왔다.

끼크기기게그그기겍!

그러고는 소름 끼치는 소리로 울부짖었다. 도저히 동물이 낼 것 같은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듣기만 해도 머리가 시큰거렸다. 유성은 두 귀를 막은 채 전력으로 달렸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멈추어 서야만 했다.

“크앗!”

벽에 부딪히고 만 것이다. 복도의 막다른 지점이었다. 정신없이 뛰어오는 통에 계단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달려와 버린 것이다.

여전히 괴물은 유성을 향해 팔을 휘저으며 달려오고 있었다.

유성은 복도 끝 벽에 기댄 채 일그러진 얼굴로 괴물 쪽을 바라보았다.

끝이다. 이제 다 끝이야.

그 순간, 어디선가 빛이 새어 들어왔다. 분명히 아까까지만 해도 잠겨 있던 병실의 문이 열려 있었다.

― 이리로 들어와. 빨리!

병실 안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작스레 들린 사람의 목소리에 놀랐지만 유성은 재빨리 그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저절로 병실의 문이 닫히고, 잠겼다.

끄게겍! 끼이익!

문이 마구 흔들렸다. 주먹으로 치고 손톱으로 마구 긁는 소리.

방 안에 들어온 유성은 불안한 눈으로 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문은 다른 문들과는 달리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 주변의 벽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참 후, 이내 문 밖이 잠잠해졌다. 문 너머에서 괴물의 기척이 사라지자 다리에 힘이 풀린 유성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 간 건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유성은 열심히 방 안을 둘러보았다.

“뭐야, 아무도 없잖아. 내가 잘못 들은 건가?”

― 안심하기는 아직 일러. 괴물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어디선가 여자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유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등이 문에 닿을 때까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병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봐도 방 안에는 그 혼자뿐이었다.

“누, 누구야? 장난치지 말고 나와!”

유성이 소리쳤다. 그러자 기분 나쁜 웃음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 누가 장난을 친다고 그래? 뒤야 뒤.

“뒤? 무슨… 내 뒤에는 지금 문 밖에 없는데?”

― 그 문에 있다구.

유성은 뒤를 돌아 문을 확인했다. 그저 평범히 철로 된 문이었다.

“아무것도 없잖아.”

문에 손을 가져가자, 문이 반으로 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유성이 깜짝 놀라 펄쩍 뛰어 문에서 물러났다. 괴물이 문을 부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문은 부서지지 않았다. 금은 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문 표면에 부유하고 있었다. 이내 금이 위아래로 크게 벌어지더니 커다란 하나의 눈이 되었다.

“으악! 뭐야, 이거!”

― ‘이거’라니! 지금부터 네 은인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버럭 소리치면서도 커다란 눈은 은근히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 난 헤르미아. 마술사들을 따라서 이곳에 왔어. 그림자에 붙어서 몰래 따라왔지. 내가 원래 있던 곳은 여간 지긋지긋한 게 아니거든.

“마술사라니……. 모자에서 토끼 꺼내는 그런 사람들......?”

― 흐음, 확실히 그중 한 명은 토끼가 열 마리쯤 들어갈 것 같은 모자를 쓰고 있기는 했지.

문짝만큼이나 커다란 눈이 가늘어지더니 유들거리며 말했다.

‘말은 통하는 것 같다.’

불안해하던 유성은 약간 안심했다. 적어도 이 정체 모를 눈이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달려들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 건 됐어. 너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설마 밖에 돌아다니는 거랑 비슷한 건 아니겠지?”

― 궁금한 것도 많네. 나는 말이야, 사람을 먹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고. 네가 나를 괴물이라고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야.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잖아.

“무슨 소리야?”

자신을 헤르미아라고 하는 눈은 문에서 벗어나 떠가듯이 벽면을 타고 옆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문에 붙어 있는 게 아니구나.’

그 모습을 본 유성이 속으로 생각했다.

― 잘 생각해 봐. 방금까지도 너는 괴물한테 쫓기고 있었단 말이야? 만일 내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면 너는 지금쯤 괴물 뱃속에 있겠지. 그런데 말했지, 안심하긴 이르다고. 아직 완전히 안전해진 게 아니야. 아직도 괴물은 이 건물을 돌아다니고 있을 거라구. 여기서 어떻게 나갈 거야?

어딘지 의기양양한 어투로 말하던 헤르미아가 창문 바로 옆에서 멈추어 섰다.

― 뭐, 저 낡아서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침대 시트를 연결해서 창문으로 탈출할 수도 있겠지. 근데 여기는 3층이라고. 밖은 시멘트 바닥이고, 떨어지면 즉사야. 창가에 있던 괴물이 덮칠지도 몰라.

“하고 싶은 얘기가 뭔데?”

유성이 짜증을 내며 물었다. 그러자 눈이 그를 잡아먹을 듯 확 커졌다. 유성은 놀라 어깨를 움찔거렸다.

― 내가 널 구해줄게. 저 괴물을 무찌르고 정문으로 당당히 걸어 나갈 수 있도록 말이야.

“…….”

뜻밖이었다. 물론 한 번 구해줬다는 걸 생각하면 또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솔직히 굉장히 찜찜했다.

―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어.

역시나.

혀를 차자, 벽에 있던 눈이 눈치를 보듯 빙글 움직였다.

“조건이 뭔데?”

헤르미아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 네 안에 들어가게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