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26화
원령 (1)



“아이고, 세이프다! 세이프!”

허겁지겁 교실로 뛰어 들어온 유성이 자리에 책가방을 내려놓았다. 그걸 본 다른 친구들은 낄낄거리며 웃었다. 기숙사에 살면서도 아침잠이 많아 종종 늦곤 하는 유성이었다. 다행히도 오늘은 아슬아슬하게 지각은 면한 모양이다.

자리에 도착한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습관처럼 교실을 쭉 훑어보았다. 아직 안 온 사람이 있는지 세어보는 것이다. 으레 사람의 심리란 자신이 뒤에서 몇 번째인지 정도는 알고 싶은 법. 자신보다 늦는 사람이 다섯 명이 넘어갈 때는 은근한 쾌감과 뿌듯함마저 느끼는 유성이었다.

언제나처럼 손가락을 꼽아가며 비어 있는 자리를 세는 유성. 그런데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비어 있는 자리 중 몇 개가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하나는 얼마 전에 실종된 찬비의 자리, 그리고 또 하나는 여름밤의 자리.

이상한 일이었다. 악몽 때문에 잠을 잘 못 자는 여름밤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지각한 일이 없다. 유성은 찬비가 사라진 이후로 늘 울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여름밤의 모습을 떠올렸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걱정스러워하던 그때, 교실 한쪽에 있던 아이들이 뭘 하고 있는지 한데 모여 웅성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뭘 그렇게 재밌게 하냐?”

궁금증을 참지 못한 유성이 아이들의 어깨를 잡고 그 사이로 고개를 비집어 넣었다. 그러자 유성을 돌아본 그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몰랐냐? 어젯밤에 이상한 소리 났잖아. 땅도 막 흔들리고.”

“맞아. 난 지진이라도 난 줄 알았다니까. 기숙사 애들 전부 다 깨서 난리였는데 너 아무것도 못 느꼈어?”

유성은 멋쩍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야 뭐, 한번 잠들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르니까. 나중에 새벽이한테나 물어봐야겠네.”

그때, 한 아이가 휴대폰을 보며 외쳤다.

“야. 찾았다, 찾았어. 이것 좀 봐.”

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건 어떤 뉴스 기사였다.

“어제 새벽 청월시 xx동 xx 병원 부지에서 원인 불명의 싱크홀 발생. 대박, 이것 때문이었나 봐.”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그 기사를 보려고 휴대폰 가까이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헐, 지름이 56미터나 된대. 깊이는 측정 불가?”

“간밤에 외계인이 와서 뚫은 거 아냐? 왜, 그런 거 있잖아. 미스터리 서클.”

“인마,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세상에 외계인 같은 게 어디 있다고.”

“하지만 이런 구멍이 저절로 생겼을 리도 없잖아? 이런 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고.”

“지랄,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고 있네. 그러니까 세상에 외계인이 어디 있냐고.”

“야, 그럼 이런 게 저절로 생겼겠냐? 외계인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니까.”

“겁나 큰 지렁이 아냐?”

기사의 내용을 읽은 아이들이 아무 말이나 던지기 시작하자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묵묵히 있던 유성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찬비가 사라진 지도 벌써 여러 날이 지났다. 그리고 그 이후로 정신이 어딘가 딴 데 가 있는 거 같던 여름밤은 웬일로 지각.

‘원래도 영 종잡을 수 없는 동네지만.’

청월시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실종 사건이 그동안 몇 번이나 있었다. 처음 사건이 연달아 터졌을 땐 온 도시의 분위기가 다 뒤숭숭해졌지만, 이제는 인터넷에 사건 기사가 떠도 ‘또 실종이냐’ 같은 댓글도 달리지 않았다.

‘실종 사건도 벌써 1년 이상 계속 있었던 거 같은데. 그럼 대체 몇 명이나 사라진 거야?’

곰곰이 생각하던 유성이 찜찜한 얼굴로 말했다.

“야, 그 실종 사건 있잖아. 그거랑 뭔가 관련 있는 거 아냐?”

“오, 그럼 역시 외계인 아니냐? 외계인이 사람을 납치하고 있는 거지. 세계적으로도 많잖아.”

“아냐, 지하에 잠들어 있던 괴물이 깨어나서 사람들을 잡아먹고 있는 거라고.”

유성의 말에 아이들은 더 신나게 떠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화는 길지 않았다. 곧 담임 선생님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다들 자리에 가서 앉아라. 조례 시작한다.”

한 손에 든 출석부를 흔들며 들어온 선생님이 교탁 앞에 섰다.

“…한여름밤. 한여름밤?”

그런데 여름밤의 차례에서 대답이 없었다. 선생님은 고개를 들어 여름밤의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어쩐 일이지, 성실한 애가.”

한쪽 눈썹을 찡그리던 선생님은 잠시 고민하다 유성을 향해 말했다.

“전유성. 너 여름밤이랑 친하지? 전화 좀 해 봐라.”

“네.”

유성이 바로 여름밤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몇 번 전화를 걸어도 계속 신호만 흐를 뿐이었다.

“안 받는데요? 기숙사에 가서 보고 올까요?”

“그래, 그렇게 해라. 반장, 1교시에 들어오시는 선생님한테 유성이 늦잠 자는 친구 데리고 오느라고 좀 늦는다고 해라.”

‘아싸, 이걸로 1교시 앞부분은 패스.’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은 유성이 신난 발걸음으로 교실을 나섰다.


* * *


“어이, 밤. 나야, 유성. 안에 있냐?”

기숙사에 도착한 유성이 305호의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나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문고리를 당겨봤지만 굳게 잠겨서 열리지 않았다.

‘아직 자나?’

유성은 더욱 힘주어 문을 부서질듯 두들겼다.

“야, 여름밤! 눈 떠! 지금부터 준비해도 1교시 날려!”

그러나 요란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도 안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뭐야? 무슨 일 있나?’

“야! 밤! 안에 있어?”

유성은 몇 차례 더 여름밤을 불러보았다. 그러나 대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유성은 결국 수위실로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설명하고 마스터키로 방문을 열었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휑한 방 안이었다.

“뭐야, 없네. 창문도 열어놓고 대체 어디 간 거야?”

열린 창문으로 아직 싸늘한 공기가 들어오고 있었다. 밤새 열려 있었는지 방 안은 꽤 추웠다.

“에이, 씨.”

헛걸음한 유성은 구시렁거리며 창문을 소리 나게 닫았다.



결국 유성은 그대로 혼자서 교실에 돌아왔다. 2교시 이동 수업을 준비하던 애들이 유성에게 몰려들었다.

“뭐야, 같이 안 왔어?”

“어. 가봤는데 안에 없더라고.”

아이들은 딱히 대답을 바란 것도 아닌 듯, 저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가출한 거 아냐? 걔 뭔가 좀 못 섞이니까.”

“뭐래, 기숙사 나간 건데 가출이냐?”

“말이 그렇단 거지.”

“찬비처럼 실종된 거 아냐?”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였다.

“우리 학교 끝나고 싱크홀 가보자. 여기에서 별로 멀지도 않대.”

그러고는 바로 다음 화제로 넘어간다.

유성은 살짝 충격을 받았다. 주변에서 사람 몇 명이 사라지는 것 따위, 이제 이들에게는 익숙한 것이다. 오로지 흥미와 호기심만이 담긴 대화였다.

“어때, 유성? 너도 같이 갈래?”

아니, 나는 됐어.

그렇게 말하려다 유성은 멈칫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아야겠어.’

정말로 사람들의 실종과 싱크홀이 연관되어 있다면 직접 눈으로 보아두고 싶었다.

“그래. 한번 가보지 뭐.”

교과서를 챙겨 든 그들은 교실을 나섰다. 복도로 나오니 마침 앞문으로 새벽이 나오고 있었다.

새벽도 실종 사건이나 싱크홀에 대해 다른 애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있을까?

“새벽아.”

유성이 그에게 다가갔다.

“왜?”

“싱크홀 생겼대서 이따 구경하러 갈 건데 너도 같이 갈래?”

유성의 질문에 새벽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뭐야, 왜 그래?”

“…아무것도 아냐. 나는 그냥 일찍 가서 쉬어야겠어.”

“그래? 어디 아프냐? 보건실 갈래?”

새벽이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아냐, 딱히 아픈 건 아니고……. 빨리 돌아와야 돼. 요즘 좀 위험한 모양이니까, 적어도 저녁 먹기 전에는 돌아와.”

“그래.”

새벽은 축 처진 채 느린 걸음으로 사라졌다.


* * *


방과 후.

유성은 약속했던 대로 반 친구들과 함께 싱크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장소는 폐병원 부지. 학교로부터 약 1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정문에서 그쪽까지 가는 버스가 있었기에 모두 우르르 버스에 탔다. 하교하는 애들로 버스 안은 인산인해였다.

“56미터면 어느 정도 크기냐?”

“우리 반 교실의 한 다섯 배쯤?”

“뭐야, 생각보다 작네.”

“뭔 소리야, 엔간한 집 크기일 텐데. 거기 네가 빠진다고 생각해 봐라. 물 없는 호수 같은 거라고.”

버스 안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떠들었다. 유성은 분위기에 맞추어 이따금 따라 웃을 뿐 별말은 하지 않았다.

얼마 가지 않아 ‘xx 병원 입구’라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xx 병원은 몇 해 전인가 망해서 지금은 반쯤 철거된 건물 껍데기만 남아 있는데, 워낙 큰 병원이어서인지 아직도 정류장 이름으로 쓰이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걷자, 병원 부지 입구가 금방 나타났다.

“에이, 이게 뭐야.”

누군가 실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주차장으로 보이는 곳 한복판에 3미터는 되어 보이는 벽이 세워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통행 금지’라는 안내 문구가 걸려 있었다. 싱크홀 쪽으로의 통행을 막기 위해 설치된 듯했다.

“공무원들 딴 건 제대로 못하면서 이런 일 처리는 엄청 빠르네.”

“이제 어쩌지? 모처럼 여기까지 왔는데.”

“좀만 더 가면 상가 쪽이니까 거기로 가서 놀다 가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들은 발길을 돌렸다.

유성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문득 저 멀리 주차장 한쪽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뭐지? 유리 조각인가?’

멀어서 잘 보이지 않지만, 어쩐지 찜찜한 마음에 그는 자리에 멈춰 섰다.

“뭐 하냐, 가자.”

잠시 망설이던 유성이 벌써 몇 걸음 떨어진 그들을 향해 말했다.

“야, 나 좀 더 여기 둘러보다 갈 테니까 먼저 가라.”

“뭐야, 또 실종자 찾기냐? 적당히 좀 해라.”

“됐어, 마음대로 하게 놔둬라. 유성이 쟤도 가끔 좀 특이하잖냐. 그럼 내일 학교에서 보자.”

그들은 질린다는 듯 말하며 멀어져 갔다.

유성은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반짝이는 물건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깔린 아스팔트는 공사 이후 별로 사용된 적이 없는 듯 겉만은 멀끔했다. 그 시커먼 바닥에 무언가 떨어져 있었다.

“시계잖아?”

유성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특별할 것 없는 은색의 손목시계였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시간이 맞지 않는다는 정도.

그것을 들여다보던 유성은 시계를 손목에 차보았다. 차놓고 보니 어디에선가 본 것도 같았다.

“아!”

고개를 갸웃거리던 유성이 다시 시계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요새 밤이 차고 다니던 시계네.’

별것 아닌 일이지만 며칠 전엔가 여름밤이 이것과 똑같은 시계를 차고 있는 걸 보고, 시간도 안 맞는 걸 왜 차고 다니나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럼 이게 여름밤의 시계라는 건데.

“이게 왜 여기 떨어져 있는 거지?”

유성이 다시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뭔가 알아낼 것만 같았는데 다시 막혀 버렸다.

시계를 이리저리 둘러보던 유성이 문득 똑바로 섰다.

“뭐야, 이거 시계가 아닌가?”

움직일 때마다 마치 나침반의 바늘처럼 시침이 계속 움직이며 특정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유성은 시침이 가리키는 방향 쪽을 바라보았다.

“저긴 북쪽이 아닌데?”

철거되다 만 건물들이 있는 방향이었다. 원리는 모르겠으나, 시침이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여름밤은 이런 시계를 왜 차고 다녔던 걸까?

그때였다.

끼기기기끼기기기이익!

폐병원 건물들이 있는 방향에서 소름 끼치도록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날카로운 금속과 금속이 마찰하는 듯한 소리. 유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두 귀를 막았다. 동시에 한 가지 확신할 수 있었다.

폐병원 건물에 무언가 있다.

귀에서 손을 뗀 그는 시계를 주시하며 천천히 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했다. 시계의 분침이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