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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결전 (2)



찬비를 붙잡고 있던 나래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그는 추락하면서도 힘겹게 나래를 다시 붙들었다.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코와 귀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찬비는 나래를 힘껏 끌어안았다. 동시에 풍선에 바람을 넣는 것처럼 찬비의 몸이 부풀기 시작했다. 이전에 바텀과 싸울 때보다 훨씬 컸다.

“쓸데없는 짓인데.”

같은 속도로 하강하던 굿펠로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눈 깜짝할 새 지면에 다다랐다. 굿펠로는 속도를 늦추며 아슬아슬하게 허공에 멈춰 섰다. 하지만 찬비는 나래를 껴안은 채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크아아아악!”

떨어진 아스팔트 바닥이 박살 나며 지면이 드러났다.

척추를 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통이 전해져 왔다. 찬비의 허리가 기이한 각도로 뒤틀려 있었다.

“큭…그르르륵.”

피거품이 찬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굿펠로는 감탄하며 그것을 지켜보았다.

“거참, 언제 봐도 신기하네. 저 정도로 끝나다니, 진짜 튼튼한 몸이야. 괴롭히고 싶어지잖아. 심지어 척추가 완전히 아작이 났는데 벌써 붙었네. 무슨 회복력이야, 저게?”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경련은 멈췄다. 고통은 여전했지만, 이대로 계속 누워 있을 수는 없다. 찬비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옆에는 바닥에 떨어지면서 튕겨 나간 나래가 있었다.

“괜찮아?”

그러나 나래는 축 늘어진 채 아무 대답이 없었다.

“다 나았네. 벌써 움직일 수가 있나? 근데 그 파리는 순두부 수준이네. 위에서 한 대 툭 쳤다고 뇌진탕이나 일으키고 말이야.”

악의 없이 말을 내뱉는 굿펠로를, 찬비는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속이 타오르는 것 같은 감각이 느껴졌다.

“죽여 버린다.”

그 말에 굿펠로가 웃으며 몸을 떠는 시늉을 했다.

“무섭네. 저 괴물 때문에 그러는 거야? 저 괴물 아직 죽지도 않았다고. 곧 회복될 거야. 인간형 괴물은 질기니까.”

찬비는 다시 나래를 내려다보았다.

확실히 아직 숨은 붙어 있었다. 이전에 나래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몸에서 머리가 분리되지 않는 한 잘 죽지 않는다는 말.

“거 봐, 살아 있잖아. 이 정도는 해야 죽지!”

굿펠로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콰아아악!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찬비를 스치고 지나갔다. 음속에 가까운 속도.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뜨겁고 끈적한 액체가 얼굴에 확 튀었다.

“안 돼…….”

찬비는 망연한 얼굴로 ‘나래였던 것’을 바라보았다.

공중으로 튀어 오른 나래가 털썩, 털썩 바닥에 처박혔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찬비의 표정이 망연했다. 수갈래로 찢어진 그녀의 몸은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끝났네∼”

콧노래를 부르며 굿펠로가 고개를 끄덕이곤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어째서… 이런…….”

“그 괴물 며칠 전에서부터 사람을 엄청 납치해 갔다고. 그냥 두고 볼 수 없잖아,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니까. 자업자득이지.”

당연하다는 듯이 굿펠로가 말했다.

그 모습에 찬비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머리끝까지 핏대가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건지 그가 갑자기 얼굴에 미소를 머금었다. 양옆으로 길게 찢어진 입 안에 번들거리는 이빨이 드러났다.

“그럼 나도 널 죽여야겠네. 네가 우리에게 해악을 끼쳤으니까.”

“할 수 있으면 해보든가.”

찬비가 붉은 안광을 흘리며 다가오자, 굿펠로는 코웃음을 쳤다.

“오빠한테 죽이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럼 죽지 않을 정도로만 놀아줄까?”

그러고는 하늘 높이 손을 들어 올렸다.

“크앗!”

찬비가 갑자기 늘어난 기압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서 버티지만, 점점 지면에 가까워졌다. 결국 바닥에 머리가 닿는가 싶더니, 바닥에 완전히 늘어졌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뿐이었다.

“크…으으아아악!”

곧 소리를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더 크게 불어난 몸으로 자리에서 일어선 찬비는 느리지만 조금씩 굿펠로를 향해 걸어갔다.

“제법이네. 저번보다 강하게 했는데. 그럼 이건 어때?”

굿펠로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웃고는, 치켜든 검지를 빙글빙글 젓기 시작했다.

주변의 소리가 순식간에 멎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어지러웠다. 속이 울렁거려 균형을 잡을 수가 없었다. 온몸의 피가 다 얼어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어느새 찬비의 귀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제자리에 서 있는데도 사방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크…….”

벌어진 입에서 나온 것은 고통에 찬 비명이 아니라 핏물이었다.

“잠깐 동안 기압을 마구잡이로 올렸다 내렸다 했어. 아, 이미 귀가 정상이 아니겠구나. 원래라면 몸속이 엉망 되어서 벌써 죽었겠지만, 역시 튼튼하네.”

굿펠로가 치켜들었던 손을 내리자, 찬비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죽이지는 않을게. 오빠랑 약속한 게 있으니까.”

굿펠로가 미소를 지으며 쓰러져 있는 찬비에게 다가가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정신을 장악하는 거야. 죽이는 건 아니잖아? 그러면 언제까지고 네가 사람을 잡아먹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고, 너도 나랑 싸우지 않아도 되잖아. 이 정도는 오빠도 이해해 주겠지. 이전의 기억이 싹 다 날아가 버릴 수도 있지만, 그 정도는 나한테 덤빈 벌이라고 생각해.”

굿펠로는 피에 젖은 찬비의 이마에 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조용한 목소리로 어떤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그 언어는 신비한 기운을 뿜어내며, 은은하고 고르게 주위에 있는 모든 사물들을 울리기 시작했다.

찬비가 정신을 차린 것은 그때쯤이었다. 눈앞에 있는 굿펠로가 무슨 짓을 하려는 것 같았지만, 온몸이 꽁꽁 묶여 있는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잠시 후 머리가 갈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기묘하게도 고통은 없었다. 꽃이 개화하듯 부드럽게 열렸다. 부드러운 속살을 내보이자, 그 안으로 바람이 흘러 들어왔다. 처음에는 봄바람처럼 살랑거리며 들어온 바람은 곧 거세지며 머릿속을 마음대로 휘젓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악!’

비명조차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 상황을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그때, 찬비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저건…….’

굿펠로의 눈동자 속, 깊은 눈동자 안에 태아처럼 떠 있는 그것.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찬비는 그것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유체 이탈하여 굿펠로에게 다가가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난 아가리를 벌리고 천천히, 숨을 죽이며 다가간 찬비가 그것을 찢어발겼다.

순간, 굿펠로가 탁해진 눈으로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찬비는 머릿속에 무섭게 몰아치던 바람이 그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쓰러진 굿펠로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히히히히히히. 뭐야, 이거. 이게 정신 장악이라는 건가?”

몸을 일으킨 찬비가 즐거워하며 웃었다. 그는 쓰러져 있는 굿펠로를 한 손으로 주워 들었다.

“역시 잡아 죽이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아.”

찬비는 굿펠로를 손에 든 채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분노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어떤 식으로 죽여야 되지? 가능한 고통스럽게 죽여 버리고 싶은데, 이런 상태면 자기가 죽는지도 모르고 죽을 거 아냐. 그렇게 편하게 보내줄 수는 없는데.’

그때, 그의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먹어라.’

순간 입 안에 침이 고이며 식욕이 돌기 시작했다. 손에 쥐여 축 늘어진 꼬마에게서 향긋한 냄새가 났다. 막 오븐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빵 같은 고소한 냄새.

“맛있겠다.”

찬비는 기대심에 한껏 미소를 지으며 굿펠로의 목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콰앙!

별안간 땅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바닥에서 뾰족한 돌기둥이 솟아올라 찬비를 덮쳤다.

“크아악!”

돌기둥은 정확히 찬비의 명치를 가격했다. 충격에 그는 들고 있던 굿펠로를 놓쳤다.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노란 우비를 펄럭이며 땅으로 떨어지는 굿펠로를 누군가 받아 들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군요. 괜찮으십니까, 굿펠로 님.”

바텀이었다.

하지만 굿펠로는 여전히 의식을 잃은 채였다. 바텀이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럽게 그녀를 땅에 내려놓았다. 아직 숨도 붙어 있고 별다른 외상도 보이지 않는다.

튕겨져 나간 찬비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히히히히. 또 만났네? 덕분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너도 똑같은 상태로 만들어뒀다가 저 여자애가 깨어나면 그 앞에서 토막 내서 죽여줄게.”

기가 막힌 생각이라는 듯 찬비가 웃었다. 묵묵히 그 얼굴을 노려보던 바텀이 말했다.

“굿펠로 님한테 무슨 짓을 한 건진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하군요. 당신은 얕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 설마 괴물 하나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제부터는 전력을 다해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도망치지 않은 것을 후회하십시오.”

쿠르르릉.

일대의 땅 전체가 화답하듯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