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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결전 (1)



“마, 마술사!”

얼굴이 창백해진 나래가 비명처럼 외쳤다. 그녀는 곧바로 자리에서 창가 쪽으로 달려 나갔다. 창문을 깨고 탈출하려는 생각이었다.

“그쪽 분은 너무 순진하시군요.”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가게의 창문들이 전부 와장창 부서져 내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창문 전체가 흙벽으로 막혔다.

나래가 망연한 얼굴로 자리에 멈추어 섰다.

“땅의 마법사인 저에게 이런 밀폐된 장소는 최적의 사냥터입니다. 오늘은 쉽게 도망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말을 마친 바텀이 곧바로 찬비에게 달려들었다. 거대한 망치를 들고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속도. 찬비는 급히 망치를 피해 옆으로 몸을 던졌다. 그가 앉아 있던 의자와 식탁이 형체도 남기지 못하고 으스러졌다.

찬비가 당황한 얼굴로 그것을 돌아보자, 바텀이 피식 웃었다.

“당신 걱정이나 하시죠.”

콰아아악!

그 말과 동시에 찬비가 한쪽 무릎을 대고 앉아 있던 땅이 불쑥 솟구쳤다. 순식간에 천장이 코앞까지 와 있었다.

“큭!”

찬비는 간신히 몸을 굴려 옆으로 피했다. 그러나 그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바텀의 망치였다.

“크아악!”

바텀이 마치 골프를 하듯 떨어지는 찬비를 쳐올렸다. 찬비는 급히 순간적으로 두껍게 한쪽 팔을 변형시켜 방어했다. 하지만 둔탁한 충격이 뼈를 타고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위로 날아간 찬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천장에 몸을 박고,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공중이라서 충격이 덜했나 보군요. 다음 한 방으로 확실히 끝내 드리겠습니다.”

망치를 위로 치켜든 바텀이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하지만 찬비는 아직도 바닥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콰아아앙!

“어?”

가게 바닥을 전부 쪼개 버릴 듯한 소름 끼치는 굉음이 들려왔다.

그러나 그의 몸에는 어떠한 충격도, 진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찬비는 공중에 떠 있었다.

“아슬아슬했네요.”

나래의 목소리가 들렸다. 윙윙 대는 소리가 귓가를 울려 뒤를 돌아보니, 머리엔 더듬이가 있고, 크고 빨간 눈을 한 나래의 모습이 보였다.

“파리예요……. 이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나래가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요정 같다고 생각했는데.

찬비는 새삼스러운 얼굴로 허리를 잡고 있는 나래의 팔을 바라보았다. 검은 털이 난 팔은 꼭 고양이 손 같았다.

바닥에서 망치를 뽑아 든 바텀은 그 모습을 보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이내 바텀이 다시 달려들었지만, 나래는 찬비를 안은 채로도 공중에서 그것을 전부 피해냈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능력이라니 귀찮아졌군요. 굿펠로 님이 계셨다면 순식간에 정리됐을 텐데.”

몇 번 헛스윙이 계속되자, 바텀이 지친 얼굴로 망치로 땅을 짚고는 투덜거렸다.

“마술사라고 해서 겁먹었는데 의외로 별거 아니네요.”

“상성이 안 좋은 것뿐입니다. 땅의 마술사에게 날아다니는 것을 상대하라뇨! 이 음식점은 뭐가 이렇게 커서는!”

바텀은 자존심이 상한 듯 씩씩거렸다. 어쩐지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아 우스웠다.

이제는 충격도 좀 가셨고, 상대는 지쳐 있다. 몰아붙이면 이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싸워 봐요. 각자 따로 움직이면서 시선을 분산시켜요. 그럼 제가 기회를 봐서 공격할게요.”

찬비가 작게 속삭였다.

나래가 바텀과 멀리 떨어진 곳에 내려주자, 찬비는 곧바로 몸을 키우기 시작했다.

머리만큼이나 두꺼워진 목 아래로 쇄골이 불룩하게 튀어나왔다. 어깨는 거의 두 배 이상 넓어지고, 양팔도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찬비가 입고 있던 티셔츠가 목 부분부터 갈라져 찢겨 나갔다. 그 안으로 하얀 털에 뒤덮인 근육들이 보였다.

순식간에 찬비의 키는 거의 바텀과 비슷할 정도가 되었고, 골격과 근육량은 아득히 초월했다. 더 이상 고등학생 찬비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았다.

‘세상에!’

공중에서 그 모습을 본 나래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정도면 아무리 돌 같은 몸을 하고 있더라도 공격이 먹히겠지. 완전히 야수화를 한다면 더 좋겠지만…….’

찬비는 자신의 내면에 집중했다.

‘어쩌면 괴물을 깨울 수도 있어.’

아직 괴물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하지만 찬비는 신중하게 변화를 조절했다. 다시 괴물의 목소리에 조종당하는 건 절대 사양이다.

한편 바텀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빨리……. 역시 이 이상 살려두는 건 위험하겠군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온 바텀이 망치가 휘둘렀다. 예상외의 속도에 찬비는 조금 놀랐다. 하지만 어렵지 않게 옆으로 뛰어 피했다.

바텀은 곧장 다시 방향을 꺾어 찬비에게로 돌진했다.

“끄억!”

하지만 그는 이내 고꾸라지고 말았다. 옆으로 스치듯 날아가며 다리를 잡아 올리는 나래에 당한 것이다.

바텀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망치를 휘둘렀지만, 나래는 한 대도 맞지 않았다. 그사이 뒤에서 찬비가 달려들었다.

“아악!”

힘껏 휘두른 주먹이 바텀의 등에 가 박혔다. 확실히 석화 마술이 걸려 있는지 바텀의 몸은 아주 단단했다. 하지만 충격은 고스란히 들어갔다. 망치를 놓친 바텀은 그대로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가 떨어졌다.

찬비는 기세를 몰아 다시 한번 바텀에게 달려들었다.

“흣!”

그러나 바텀은 옆으로 뛰어 몸을 피했다. 찬비의 주먹이 바닥을 박살 내며 파고 들어갔다.

“순순히 당하진 않습니다.”

바텀이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내뱉듯 말했다.

그대로 땅이 찬비의 주먹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발 또한 마찬가지였다.

찬비가 당혹해하는 사이, 머리 쪽으로 빠르게 망치가 날아왔다. 재빨리 몸을 숙였지만, 등에 맞고 말았다.

“으아아악!”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움직임을 봉하고 때리면 됐을 것을.”

바텀은 다시 한번 찬비의 등을 내리쳤다. 비명을 지르는 찬비의 입으로 피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찬비의 손이 박힌 땅 주위로 무수히 많은 금이 생겨났다.

“크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던 찬비의 눈이 붉어졌다. 순간 금이 간 땅이 비산하며 찬비가 손발을 뽑아냈다. 그러고는 즉시 바텀 쪽으로 손을 뻗었다.

“아니!”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바텀은 찬비의 손에 잡혀 그대로 허공을 날았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텀이 땅 위를 굴렀다. 한편, 찬비는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나래가 날아와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괜찮아요?”

찬비의 등은 살가죽이 완전히 엉망으로 짓이겨져 있었다.

“…괜찮아요. 뼈가 부러지지는 않은 것 같아요.”

찬비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혹시 저거 부술 수 있어요?”

나래가 뒤편의 벽을 가리켰다. 아까 도망치려고 했던 창문이 흙벽에 막혀 있었다.

“솔직히 저는 이대로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거 같지가 않아요. 차라리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 있을 때 벽을 부수고 도망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찬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마술사를 상대하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바텀이 쓰러져 있는 사이, 찬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을 향해 돌진했다.

“으아아아아!”

온 힘을 다해 몇 번 부딪치자, 터져 나가듯 벽이 부서졌다. 몸을 부딪치던 그대로 벽을 뚫고 나간 찬비가 땅을 굴렀고, 나래가 재빨리 뒤를 따라 나왔다.

“몸을 작게 만드세요! 뒤는 저에게 맡기고!”

다급한 나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닥에 쓰러진 찬비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버튼을 누른 것처럼 찬비는 다시 평범한 소년의 몸으로 돌아왔다. 뒤에서 날아오던 나래가 그를 붙들고 급히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반짝이는 도시의 야경이 조그맣게 보이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괜히 밖에서 먹고 싶다는 둥 얘기해서…….”

찬비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미안하긴요. 마술사들은 항상 우리를 쫓고 있어요. 이 일이 아니었어도 언젠가 저는 마술사와 만났을 거예요. 혼자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지만, 다행히 둘이 같이 있던 덕분에 무사할 수 있던 거죠. 그러니까 저는 오히려 고마운데요? 사실 저 엄청 무서웠거든요. 천장에 막혀서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도 없고. 이대로 죽겠구나 싶더라니까요. 찬비 씨랑 있어서 다행이에요.”

나래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몸속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괴물이 된 이후 처음으로 찬비의 얼굴에 진짜 미소가 떠올랐다. 이런 몸이 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이 유대감이, 감정이 너무 그리웠던 것이다.

나래는 곧 신인류가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때가 되면 자신도 이렇게 햇빛 아래에서 웃으면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걸까?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괜찮을까?’

만약 그렇다면 원래 있던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이 세상의 주인이 된다면, 인간들이 전부 죽어야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여름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번엔 피를 쏟아내는 모습이 아니라, 익히 알던 그 모습이었다. 그도 죽게 될 것이다. 유성도, 반 친구들도. 새로운 세상에 그들은 없다.

그런 세상에서 자신은 행복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닐 것 같다.

메인 목소리를 감추며 찬비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고마우시면 이제 슬슬 친구 삼아 주세요. 찬비 ‘씨’가 뭐예요.”

“아하하, 그럴게요. 아니, 그럴게!”

나래의 웃음소리가 공중에 번지는 걸 느끼며 찬비도 따라 웃었다.

그때였다.

“으으, 으아아아!”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찬비를 들고 있는 나래의 몸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제자리에서 원을 그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야? 왜 그래!”

“…….”

하지만 나래는 대답이 없었다.

“별거 아니야. 이 근처의 기류를 조금 바꾼 거지.”

대답한 것은 전혀 다른 사람의 목소리였다.

노란 우비를 입은 소녀가 천천히 위에서 내려왔다.

끔찍한 기억이 떠오르며,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굿펠로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그의 눈앞에서 팔짱을 꼈다.

“질문 하나만 할게. 그날 나랑 헤어진 이후로 한 번이라도 사람을 먹었어?”

“…아니.”

그러자 굿펠로가 재미없다는 듯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뭐, 안심해. 오빠랑 약속도 했으니까 넌 죽이지 않을게.”

그리고 작은 손가락을 들어 그의 뒤에 있는 나래를 가리켰다.

“하지만 쟤는 아냐.”

그 말과 동시에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고속으로 회오리 치는 기류. 그에 휩쓸린 나래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아아악!”

쿵!

뒤이어 울리는 둔탁한 소리.

“나래야!”

찬비는 나래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나래의 비명 소리도, 윙윙거리던 날갯짓 소리도 한순간 멎어버렸다. 찬비가 뒤를 돌아보려던 찰나, 회오리 치던 기류가 잦아들었다. 둘은 실이 끊어진 듯 바닥으로 빠르게 추락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