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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동족 (1)
“으…….”
정신을 잃었던 찬비는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난생처음 보는 방 안은 썰렁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이 누워 있는 침대가 전부였다.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을 보며, 며칠 새 이런 일을 꽤 자주 겪는다고 자조적으로 생각하던 그는 정신을 잃기 전의 일에 생각이 미쳤다.
‘왜… 살아 있는 거지?’
그제야 찬비는 손을 들어 가슴 부근을 만져 보았다. 분명 손톱에 완전히 관통되었던 심장은 멀쩡히 두근거리며 뛰고 있었다. 가슴이 조금 욱신거릴 뿐, 외상조차 없이 말끔했다. 아직 살아 있다. 허탈함에 그는 손을 내렸다.
그때, 문이 열리며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 일어나셨어요? 좀 어떠세요?”
침대 옆으로 다가온 여자가 물었다. 구불거리는 긴 머리를 하나로 묶었고,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성실하고 선한 이미지의 사람이었다. 안경 너머의 둥글고 끝이 약간 처져 있는 눈에는 자신에 대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
“누구세요?”
“전 민나래라고 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같은 사람이니까요.”
같은 사람?
의아한 표정을 짓자, 나래가 왜 그러는지 안다는 듯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괴물, 아시죠? 사람이 된 괴물, 괴물이 된 사람. 어느 쪽이든 우리는 모두 서로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그러니까… 괴물에게 먹힌 사람이라는 건가.
찬비는 ‘같은 사람’이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어쩐지, 눈앞에 사람이 있는데도 전혀 식욕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래에게 어딘가 동질감마저 느껴졌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그렇게 낯설지 않았다.
‘우리’라는 건, 이 나래라는 사람 말고도 더 있다는 건가.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비현실적인 존재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에 어쩐지 소름이 돋았다.
“그럼 여기는 괴물들이 사는 곳인가요?”
궁금해진 찬비가 물었다. 그러자 나래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라니까요.”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스스로도 괴물이면서, 찬비는 자신들이 ‘사람’이라고 하는 괴물에게 위화감을 느꼈다. 진저리가 나는 일이었다.
“그런데 제가 왜 여기 있는 거죠? 분명히…….”
죽으려고 했는데.
하지만 말을 잇기도 전에 나래가 단호한 얼굴로 설명했다.
“심장을 찌르는 것 정도로 죽지 않아요. 우리의 생명은 그냥 인간들과는 달라요. 몸과 머리를 완전히 분리하지 않는 정도가 아닌 이상… 잘 안 죽죠. 웬만한 상처들은 잘 먹기만 해도 금방 낫구요.”
“하지만…….”
찬비는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람을 죽였다. 결국에는 친구까지 다치게 하고 말았다. 그런 일이 언제 또 생길지 모른다. 자신이 없었다. 살아 있는 한 또 누군가를 죽이게 될 것이 분명했다. 목숨을 건졌지만 그것에 다행스러워할 수가 없는 건 바로 그래서였다.
“알아요.”
나래가 숙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다 그래요. 주변 사람과 친구들, 심지어는 가족들을……. 저도 제 언니도 그래요. 하지만 교주님이 저희들을 받아주셨어요.”
“교주?”
찬비는 뜬금없는 단어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그 반응에도 나래는 별생각 없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교주님은 우리가 신인류라고 하셨어요. 언젠가 인간은 멸종하게 될 거예요. 인간은 탐욕적이죠. 인간은 인간이 아닌 것들을 모두 배척하죠. 나약함 때문에요. 공포가 그들을 그렇게 살게끔 만든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나약하지 않죠. 신인류가 세상을 지배하는 날, 진짜 평화가 찾아올 거예요.”
“…그렇군요.”
엉뚱한 단체에 휘말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찬비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나래가 빙긋 웃었다.
“그냥 저희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다르게 생각하실 수도 있죠. 그런 건 상관없어요. 원하는 만큼 여기 계세요. 사실 저로서는 쭉 여기 머무셨으면 해요. 우리들은 수가 적으니까요.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죠. 게다가 요즘 밖에 마술사들이 돌아다닌다고 하니까요.”
“마술사…….”
떠올랐다. 다짜고짜 자신을 죽이려고 한 사람들. 둘 다 너무 버거운 상대였다. 특히 꼬마 쪽은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했다. 공장 지역에서의 일이 떠올라 찬비는 진저리를 쳤다. 떠올리는 것도 힘든 고통이었다.
“저는 언니가 돌아오지 않아서 찾으러 나갔다가…….”
나래가 말끝을 흐리며 찬비를 빤히 바라보았다. 뒤늦게 그 뜻을 눈치챈 찬비가 침대에서 몸을 완전히 일으켰다.
“강찬비입니다.”
“네. 돌아다니다가 찬비 씨를 발견했어요.”
나래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찬비 ‘씨’라니.
찬비는 또래 여자아이로부터 들은 어색한 호칭에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예,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것도 어색하게 예의를 차린 말이었다. 불편한 건 아닌데, 뭔가 그렇게 말해야 할 것 같다.
나래는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곤 문득 벽에 걸린 달력을 바라보았다.
“하나, 둘… 보름 정도 됐네요. 오래 깨어나지 않으셔서 걱정했는데 다행이에요. 언니는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지만…….”
“아…….”
찬비가 작게 탄식했다. 어쩌면 나래의 언니는 그가 만난 마술사들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
찬비는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래를 바라보았다. 방금 처음 알게 됐지만, 줄곧 언니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나래가 언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뉘앙스로만 봐도 아마 유일한 가족일 것이다. 그는 뭐라 위로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나래가 고개를 젓고는 괜찮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러니까 모쪼록 밖으로는 나가지 마세요. 여기라면 감지 마술이 듣지 않는 결계가 쳐져 있으니까 안전하거든요.”
‘…그렇구나.’
나래에게 있어 자신은 언니 대신 구한 목숨이라는 걸, 찬비는 깨달았다.
“아, 그러고 보니 배고프시겠네요. 잠시만요.”
문을 열고 나간 나래는 금방 다시 들어왔다. 그 뒤로 다섯 명의 사람이 줄지어 들어왔다. 모두 넋이 나간 듯 눈에 초점이 없는 상태였다. 찬비는 어리둥절하여 나래를 바라보았다.
“마음대로 골라 드시면 돼요.”
“이게 무슨……. 어떻게 한 거예요?”
“네?”
“왜 가만히 있는 거죠? 조종도 할 수 있는 것 같고.”
구체적으로 물어보자 그제야 나래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놀라서 물었다.
“정신을 마비시킨 거예요. 설마 하실 줄 모르시나요? 그럼 그동안 어떻게 사냥하셨는데요?”
“…어두운 곳에서 급습했죠.”
찬비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나래가 기겁을 했다.
“세상에, 들키면 어떻게 하려구요! 단번에 죽이지 못하면 난리 난다구요! 어디 찍히기라도 하면 어쩌려구요! 저희 언니 정도라면 모를까, 너무 위험해요!”
‘…처음 사냥할 때 내가 어떻게 잡았더라.’
찬비가 말없이 생각했다.
‘그렇게 어렵진 않았는데.’
어둡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몰고 가는 게 힘들었지, 죽이는 건 정말 하품이 나올 정도였다. 자신에게는 너무도 빠르고 손쉬운 일이었는데, 보통은 그게 힘든 모양이었다.
“저는 다른 괴물을 만나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그냥… 느낌대로 움직였어요.”
말 그대로 그때는 ‘이렇게 하면 되겠다’ 싶은 강한 느낌이 있었다. 어려울 것 같지도 않았고, 혹시나 한 방에 죽이지 못해서 소리를 지르면 어쩌지 같은 불안감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냥 저런 거 잡는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머릿속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대해 설명하자, 나래가 이해한 듯 끄덕였다.
“보통은 정신을 마비시켜서 아무도 없는 곳까지 유인해요.”
확실히 할 수만 있다면 그게 훨씬 편하긴 할 것이다. 자신은 몇 시간씩 돌아다니며 적당한 먹이가 발견되기를 기다려야만 했으니까.
“언니라는 분은 저랑 비슷하게 사냥하시나 보죠?”
문득 묻자, 나래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냥 악취미예요. 먹잇감을 가지고 놀다가 먹는 걸 좋아하거든요. 위험하니까 그런 짓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실수했다는 생각에 흠칫한 찬비가 말을 고르고 있을 때, 언니를 회상하던 나래가 조금 우울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계속 그렇게 사냥하시는 건 너무 위험해요. 어떻게 하는 건지 가르쳐 드릴까요?”
“아, 네.”
나래는 찬비가 있는 침대에 걸터앉아,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어쩐지 나래의 눈은 끝없이 깊고 무서워 보였다.
“이렇게, 먹잇감과 눈을 마주치고 살기를 흘려 넣는 거예요. 정신을 잡아먹는다는 감각으로.”
“정신을 잡아먹는다…….”
나래의 눈 속에 작은 태아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걸 잡아먹는다는 건가?
그것을 향해 찬비는 서서히 다가갔다.
“설마 지금 저한테 하려는 거예요?”
몰입하던 찬비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아니에요. 그냥 생각하고 있었어요.”
나래가 깔깔 웃었다.
“저한테는 하려고 해도 안 통할 거예요. 동족한테는 안 먹히거든요. 그보다 식사 안 하세요?”
“…해야죠.”
찬비는 가만히 늘어서 있는 사람들과 나래를 번갈아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뒤늦게 나래가 알겠다는 듯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누가 옆에 있는 게 불편하시면 저는 나가볼게요. 다 드시면 나오세요. 이 주변을 구경시켜 드릴게요.”
어쩐지 쑥스러워 찬비는 민망한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단순히 식사만 한다면 모를까, 먹을 때마다 정신을 완전히 놓아버리니 같은 괴물이라고 해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다음에는 함께 식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맛있게 드세요.”
나래가 아쉽다는 듯 말하며 나갔다.
찬비는 침대에서 일어나 물끄러미 일렬로 늘어서 있는 사람들, 먹이들을 바라보았다.
가장 왼쪽에 있는 것은 키가 약간 작고 직장인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그 옆은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 교복을 입은 중학생, 등이 조금 굽은 할머니, 잠옷 차림의 남자.
‘먹어도 되는 걸까?’
순간 속으로 중얼거리고, 찬비는 이내 조금 우습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사냥 때도, 두 번째도 먹이를 눈앞에 두기만 하면 정신을 놓고 미친 듯이 먹기만 했는데, 이제 와서 무슨 감상을 하고, 고민을 한단 말인가.
‘내가 신인류고, 이 사람들이 곧 멸종할 나약한 인간들이라면, 그럼 먹어도 괜찮은 걸까?’
찬비의 손이 바로 코앞에서 멈추었다.
고개를 숙인 그는 다시 침대 위로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방 안에는 식욕을 돋구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이상해.’
찬비가 이상한 표정으로 손을 내려다보았다. 대체 왜인지 예전처럼 속이 타오르는 듯한 공복은 느껴지지 않았다. 왜?
“뭔가 달라.”
찬비는 다시 고개를 들고 늘어서 있는 ‘먹이’들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동족 (1)
“으…….”
정신을 잃었던 찬비는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난생처음 보는 방 안은 썰렁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이 누워 있는 침대가 전부였다.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을 보며, 며칠 새 이런 일을 꽤 자주 겪는다고 자조적으로 생각하던 그는 정신을 잃기 전의 일에 생각이 미쳤다.
‘왜… 살아 있는 거지?’
그제야 찬비는 손을 들어 가슴 부근을 만져 보았다. 분명 손톱에 완전히 관통되었던 심장은 멀쩡히 두근거리며 뛰고 있었다. 가슴이 조금 욱신거릴 뿐, 외상조차 없이 말끔했다. 아직 살아 있다. 허탈함에 그는 손을 내렸다.
그때, 문이 열리며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 일어나셨어요? 좀 어떠세요?”
침대 옆으로 다가온 여자가 물었다. 구불거리는 긴 머리를 하나로 묶었고,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성실하고 선한 이미지의 사람이었다. 안경 너머의 둥글고 끝이 약간 처져 있는 눈에는 자신에 대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
“누구세요?”
“전 민나래라고 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같은 사람이니까요.”
같은 사람?
의아한 표정을 짓자, 나래가 왜 그러는지 안다는 듯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괴물, 아시죠? 사람이 된 괴물, 괴물이 된 사람. 어느 쪽이든 우리는 모두 서로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그러니까… 괴물에게 먹힌 사람이라는 건가.
찬비는 ‘같은 사람’이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어쩐지, 눈앞에 사람이 있는데도 전혀 식욕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래에게 어딘가 동질감마저 느껴졌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그렇게 낯설지 않았다.
‘우리’라는 건, 이 나래라는 사람 말고도 더 있다는 건가.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비현실적인 존재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에 어쩐지 소름이 돋았다.
“그럼 여기는 괴물들이 사는 곳인가요?”
궁금해진 찬비가 물었다. 그러자 나래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라니까요.”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스스로도 괴물이면서, 찬비는 자신들이 ‘사람’이라고 하는 괴물에게 위화감을 느꼈다. 진저리가 나는 일이었다.
“그런데 제가 왜 여기 있는 거죠? 분명히…….”
죽으려고 했는데.
하지만 말을 잇기도 전에 나래가 단호한 얼굴로 설명했다.
“심장을 찌르는 것 정도로 죽지 않아요. 우리의 생명은 그냥 인간들과는 달라요. 몸과 머리를 완전히 분리하지 않는 정도가 아닌 이상… 잘 안 죽죠. 웬만한 상처들은 잘 먹기만 해도 금방 낫구요.”
“하지만…….”
찬비는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람을 죽였다. 결국에는 친구까지 다치게 하고 말았다. 그런 일이 언제 또 생길지 모른다. 자신이 없었다. 살아 있는 한 또 누군가를 죽이게 될 것이 분명했다. 목숨을 건졌지만 그것에 다행스러워할 수가 없는 건 바로 그래서였다.
“알아요.”
나래가 숙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다 그래요. 주변 사람과 친구들, 심지어는 가족들을……. 저도 제 언니도 그래요. 하지만 교주님이 저희들을 받아주셨어요.”
“교주?”
찬비는 뜬금없는 단어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그 반응에도 나래는 별생각 없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교주님은 우리가 신인류라고 하셨어요. 언젠가 인간은 멸종하게 될 거예요. 인간은 탐욕적이죠. 인간은 인간이 아닌 것들을 모두 배척하죠. 나약함 때문에요. 공포가 그들을 그렇게 살게끔 만든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나약하지 않죠. 신인류가 세상을 지배하는 날, 진짜 평화가 찾아올 거예요.”
“…그렇군요.”
엉뚱한 단체에 휘말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찬비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나래가 빙긋 웃었다.
“그냥 저희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다르게 생각하실 수도 있죠. 그런 건 상관없어요. 원하는 만큼 여기 계세요. 사실 저로서는 쭉 여기 머무셨으면 해요. 우리들은 수가 적으니까요.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죠. 게다가 요즘 밖에 마술사들이 돌아다닌다고 하니까요.”
“마술사…….”
떠올랐다. 다짜고짜 자신을 죽이려고 한 사람들. 둘 다 너무 버거운 상대였다. 특히 꼬마 쪽은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했다. 공장 지역에서의 일이 떠올라 찬비는 진저리를 쳤다. 떠올리는 것도 힘든 고통이었다.
“저는 언니가 돌아오지 않아서 찾으러 나갔다가…….”
나래가 말끝을 흐리며 찬비를 빤히 바라보았다. 뒤늦게 그 뜻을 눈치챈 찬비가 침대에서 몸을 완전히 일으켰다.
“강찬비입니다.”
“네. 돌아다니다가 찬비 씨를 발견했어요.”
나래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찬비 ‘씨’라니.
찬비는 또래 여자아이로부터 들은 어색한 호칭에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예,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것도 어색하게 예의를 차린 말이었다. 불편한 건 아닌데, 뭔가 그렇게 말해야 할 것 같다.
나래는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곤 문득 벽에 걸린 달력을 바라보았다.
“하나, 둘… 보름 정도 됐네요. 오래 깨어나지 않으셔서 걱정했는데 다행이에요. 언니는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지만…….”
“아…….”
찬비가 작게 탄식했다. 어쩌면 나래의 언니는 그가 만난 마술사들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
찬비는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래를 바라보았다. 방금 처음 알게 됐지만, 줄곧 언니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나래가 언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뉘앙스로만 봐도 아마 유일한 가족일 것이다. 그는 뭐라 위로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나래가 고개를 젓고는 괜찮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러니까 모쪼록 밖으로는 나가지 마세요. 여기라면 감지 마술이 듣지 않는 결계가 쳐져 있으니까 안전하거든요.”
‘…그렇구나.’
나래에게 있어 자신은 언니 대신 구한 목숨이라는 걸, 찬비는 깨달았다.
“아, 그러고 보니 배고프시겠네요. 잠시만요.”
문을 열고 나간 나래는 금방 다시 들어왔다. 그 뒤로 다섯 명의 사람이 줄지어 들어왔다. 모두 넋이 나간 듯 눈에 초점이 없는 상태였다. 찬비는 어리둥절하여 나래를 바라보았다.
“마음대로 골라 드시면 돼요.”
“이게 무슨……. 어떻게 한 거예요?”
“네?”
“왜 가만히 있는 거죠? 조종도 할 수 있는 것 같고.”
구체적으로 물어보자 그제야 나래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놀라서 물었다.
“정신을 마비시킨 거예요. 설마 하실 줄 모르시나요? 그럼 그동안 어떻게 사냥하셨는데요?”
“…어두운 곳에서 급습했죠.”
찬비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나래가 기겁을 했다.
“세상에, 들키면 어떻게 하려구요! 단번에 죽이지 못하면 난리 난다구요! 어디 찍히기라도 하면 어쩌려구요! 저희 언니 정도라면 모를까, 너무 위험해요!”
‘…처음 사냥할 때 내가 어떻게 잡았더라.’
찬비가 말없이 생각했다.
‘그렇게 어렵진 않았는데.’
어둡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몰고 가는 게 힘들었지, 죽이는 건 정말 하품이 나올 정도였다. 자신에게는 너무도 빠르고 손쉬운 일이었는데, 보통은 그게 힘든 모양이었다.
“저는 다른 괴물을 만나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그냥… 느낌대로 움직였어요.”
말 그대로 그때는 ‘이렇게 하면 되겠다’ 싶은 강한 느낌이 있었다. 어려울 것 같지도 않았고, 혹시나 한 방에 죽이지 못해서 소리를 지르면 어쩌지 같은 불안감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냥 저런 거 잡는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머릿속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대해 설명하자, 나래가 이해한 듯 끄덕였다.
“보통은 정신을 마비시켜서 아무도 없는 곳까지 유인해요.”
확실히 할 수만 있다면 그게 훨씬 편하긴 할 것이다. 자신은 몇 시간씩 돌아다니며 적당한 먹이가 발견되기를 기다려야만 했으니까.
“언니라는 분은 저랑 비슷하게 사냥하시나 보죠?”
문득 묻자, 나래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냥 악취미예요. 먹잇감을 가지고 놀다가 먹는 걸 좋아하거든요. 위험하니까 그런 짓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실수했다는 생각에 흠칫한 찬비가 말을 고르고 있을 때, 언니를 회상하던 나래가 조금 우울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계속 그렇게 사냥하시는 건 너무 위험해요. 어떻게 하는 건지 가르쳐 드릴까요?”
“아, 네.”
나래는 찬비가 있는 침대에 걸터앉아,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어쩐지 나래의 눈은 끝없이 깊고 무서워 보였다.
“이렇게, 먹잇감과 눈을 마주치고 살기를 흘려 넣는 거예요. 정신을 잡아먹는다는 감각으로.”
“정신을 잡아먹는다…….”
나래의 눈 속에 작은 태아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걸 잡아먹는다는 건가?
그것을 향해 찬비는 서서히 다가갔다.
“설마 지금 저한테 하려는 거예요?”
몰입하던 찬비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아니에요. 그냥 생각하고 있었어요.”
나래가 깔깔 웃었다.
“저한테는 하려고 해도 안 통할 거예요. 동족한테는 안 먹히거든요. 그보다 식사 안 하세요?”
“…해야죠.”
찬비는 가만히 늘어서 있는 사람들과 나래를 번갈아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뒤늦게 나래가 알겠다는 듯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누가 옆에 있는 게 불편하시면 저는 나가볼게요. 다 드시면 나오세요. 이 주변을 구경시켜 드릴게요.”
어쩐지 쑥스러워 찬비는 민망한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단순히 식사만 한다면 모를까, 먹을 때마다 정신을 완전히 놓아버리니 같은 괴물이라고 해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다음에는 함께 식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맛있게 드세요.”
나래가 아쉽다는 듯 말하며 나갔다.
찬비는 침대에서 일어나 물끄러미 일렬로 늘어서 있는 사람들, 먹이들을 바라보았다.
가장 왼쪽에 있는 것은 키가 약간 작고 직장인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그 옆은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 교복을 입은 중학생, 등이 조금 굽은 할머니, 잠옷 차림의 남자.
‘먹어도 되는 걸까?’
순간 속으로 중얼거리고, 찬비는 이내 조금 우습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사냥 때도, 두 번째도 먹이를 눈앞에 두기만 하면 정신을 놓고 미친 듯이 먹기만 했는데, 이제 와서 무슨 감상을 하고, 고민을 한단 말인가.
‘내가 신인류고, 이 사람들이 곧 멸종할 나약한 인간들이라면, 그럼 먹어도 괜찮은 걸까?’
찬비의 손이 바로 코앞에서 멈추었다.
고개를 숙인 그는 다시 침대 위로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방 안에는 식욕을 돋구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이상해.’
찬비가 이상한 표정으로 손을 내려다보았다. 대체 왜인지 예전처럼 속이 타오르는 듯한 공복은 느껴지지 않았다. 왜?
“뭔가 달라.”
찬비는 다시 고개를 들고 늘어서 있는 ‘먹이’들을 바라보았다.
“어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