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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변화 (2)



그날 밤. 새벽이 식사를 마치고 떠나간 뒤, 통금이 훌쩍 넘어 각 방의 불이 꺼졌을 때였다.

여름밤의 방 창문으로부터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푸른 여인의 모습으로 변한 여름밤이었다.

그는 곧장 담장을 넘어 왼쪽으로 뛰어나갔다. 목적지는 폐병원 건물이 있던 공터. 굿펠로가 괴물의 시체를 처리하는 곳이자, 바텀과도 만난 장소. 운이 좋으면 그곳에서 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대로, 공터 한가운데 서 있는 검고 커다란 그림자가 보였다.

“바텀 씨!”

여름밤의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갔다.

“여름밤 님이시군요. 이런 시간에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여전히 정중한 행동과 말투로 바텀이 말했다.

“마술사들은 괴물을 사냥하기 위해서 온 거죠? 그렇다면 괴물을 찾는 방법도 있나요?”

괴물을 찾는 방법.

지난번에 굿펠로는 넓고 한적한 공장 지대 구석이었음에도 절호의 순간에 그의 앞에 나타났다. 무언가 괴물을 추적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게 아닐까, 여름밤은 그렇게 추측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을 이용하면 찬비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름밤을 내려다보는 바텀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사정은 굿펠로 님에게 들었습니다. 괴물이 여름밤 님의 친구 분 모습을 하고 있다구요.”

이미 사정을 알고 있다면 얘기가 편하다.

“예.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조차 알 수 없어서… 괴물을 찾는 방법이 있다면 저한테 좀 알려주세요.”

그러나 바텀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는 모자를 눌러쓰며 얼굴이 보이지 않게 고개를 숙였다.

“여름밤 님. 안타깝지만 친구분은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네?”

“여름밤 님이 보신 건 친구 분의 모습을 한 괴물에 불과하죠. 진짜 친구 분이 아닙니다.”

이어진 말에 여름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순간 이미 찬비를 발견해서 죽인 건가, 생각했다. 다행히 바텀의 말은 굿펠로가 이전에 말했던 것과 똑같은 논리였다.

“그거라면 이미 로빈한테 들었어요. 하지만 제 친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제가 판단해요.”

하지만 바텀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어떻게 굿펠로 님을 설득하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안 통할 겁니다. 이 근방의 괴물들에 관한 건 저와 굿펠로 님의 일입니다. 저는 외부인을 끌어들이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뇨, 이건 저의 일이기도 해요.”

여름밤이 고개를 젓자, 바텀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친구 분이 괴물에게 희생되셨다고요. 하지만 괴물에게 희생당한 사람은 여름밤 님의 친구 분 말고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가족, 혹은 친구들이 저에게 와서 이건 자기의 일이기도 하다고, 괴물이 있는 곳을 알려 달라고 한다면 저는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요?”

“그건…….”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역으로 그 사람들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여름밤이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이자, 바텀은 작게 미소 지었다.

“그렇게 된다면 저희의 임무는 엉망이 될 겁니다. 애초에 저는 굿펠로 님이 처음 여름밤 님을 데려왔을 때도 이 일에 직접 관여시킬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저 여름밤 님이 굿펠로 님의 외로움을 달래주시면 괜찮겠다고 생각했을 뿐.”

즉, 처음부터 굿펠로의 어리광을 받아주기 위한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뜻이었다.

“이 일은 저희에게 맡기시죠.”

바텀이 어깨를 으쓱했다.

여름밤은 그의 눈에서 오만에 가까운 자신감과,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는 우월 의식을 느꼈다.

바텀의 생각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굿펠로를 처음 만났을 때, 마술을 이용해서 괴물을 처음으로 꿈속으로 돌려보냈던 그때, 자신이 느꼈던 것과 비슷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고개를 숙인 여름밤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적어도 자신이 아는 한, 마술사들은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 왜 저를 내버려 두셨어요?”

여름밤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의 눈은 분노로 일렁이고 있었다. 순간 그 눈빛에 놀라 이채를 띠던 바텀이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말입니까?”

“튀어나오는 괴물들은 찾아다니면서 죽이려고 들면서, 왜 처음부터 괴물을 나오지 않게 할 생각은 안 하냐고요.”

잔뜩 눌린 듯한 목소리로 여름밤이 말했다.

그렇다. 애초에 문제는 자신이다. 괴물들은 그의 꿈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마술사들이 해야 할 일은 그가 자고 있는 동안 주변을 돌아다니며 괴물을 잡고 있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협조를 구하는 것이다.

괴물이 튀어나와도 바로 처리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에서 자도록 한다든가, 어떻게든 마술을 이용해서 무슨 수를 써도 진작에 쓸 수 있었겠지.

자신 역시 제어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최대한 조심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최소 찬비 같은 희생자가 발생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술사들은 자신의 존재를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언제 괴물을 데려올지 모르는 위험한 자신을 방치해 두었다.

바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예, 괴물들은 전부 제 꿈속에서 튀어나왔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이건 제 일이기도 해요.”

여름밤이 단호하게 말했다. 동시에 바텀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상황이 복잡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제 친구가 괴물에게 먹힌 것도, 괴물이 되어버린 것도 전부 제 책임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끝까지 책임져야 해요.”

여름밤이 한 걸음 다가서며 이야기했다. 바텀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 대답 없이 뒤로 물러났다.

마술사들 간의 암투. 그 중심에 선 인물이 지금 바로 자신의 앞에 있었다.

괜히 보호 대상과의 접촉을 금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편이 십이지를 견제하는 데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보호 대상과 접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판세는 급변하게 될 것이다. 이건 자신의 선을 벗어난 문제였다. 보호 대상이 성인이 될 때까지 접촉하지 않는다는, 이쪽이 제시한 원칙을 먼저 어겼다는 점은 충분히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다.

“왜 저 같은 걸 이렇게 무방비하게 방치해 둔 거죠?”

더 큰 문제는 여름밤이 그의 존재를 인지했고, 그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바텀은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저번에도 설명했듯이 십이지와의 약속이…….”

“말도 안 되는 변명 하지 마시구요.”

바텀은 여름밤의 시선을 피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이상하잖아요. 성인이 될 때까지 내버려두자고요? 그게 예의라고요? 실상은 전혀 다른 거 아니에요?”

“…….”

“…자신들이 데리고 가서 직접 관리하기에는 위험해, 하지만 다른 마술사들에게는 넘겨주기 싫어. 그래서 자신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적당한 곳에 방치해 두고, 자기들끼리 이상한 협약 같은 걸 맺고, 튀어나오는 괴물들은 몰래 처리한다. 이게 당신들이 말하는 보호인가요? 계산해 가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만큼만 나서는 게? 이런 식의 보호라면 필요 없어요!”

단순히 추측만으로 한 말이었지만, 바텀은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름밤은 직감적으로 아예 틀린 말이 아니란 걸 눈치챘다.

“…관점에 따라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군요.”

자신 없는 목소리였다.

“잘못한 거 맞다, 이거죠?”

기세가 꺾인 것을 알아차린 여름밤은 계속 바텀을 몰아붙였다. 완전히 대화의 주도권이 넘어가고 말았다.

“중요한 건 당신이 저희의 보호대상이라는…….”

“말 돌리지 마시구요!”

이제 바텀은 입만 웃는 표정이 되었다. 더 할 말이 없었는지 가만히 있던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곤란하군요.”

그러자 여름밤의 표정이 더 매서워졌다.

“곤란? 곤란이요? 저 때문에 주변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저는요? 친구를 괴물로 만들어 버린 전 어떻겠냐고요!”

놀란 고양이처럼 어깨를 들썩인 바텀은 시선을 돌렸다가, 간신히 한마디 했다.

“…곤란하시겠군요.”

“…….”

오른 주먹이 허공을 가르고 바텀의 가슴 앞을 지났다. 바텀이 몸을 돌려 피한 것이다.

하지만 여름밤은 순간 할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지막지하던 굿펠로에 비해 바텀은 몸놀림도, 반응 속도도 훨씬 느렸다.

“이런 행동은 매우 어른스럽지 못한 것입니다. 일단 머리를 식히시고 이성적으로 대화를 통해서 해결하는 게…….”

바텀은 말을 채 잇지도 못하고 이어서 내질러지는 여름밤의 주먹을 겨우 피했다. 예상치 못한 속도였는지 당혹감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아직 어른 아닌데요.”

허리 아래에서부터 왼 주먹이 기습적으로 올라왔다. 뒤늦게 그걸 본 바텀은 몸을 틀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주먹은 시원하게 바텀의 아래턱에 꽂혔다.

“크윽!”

2미터가 넘는 바텀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가 땅으로 처박혔다. 쓰러진 그는 양손으로 턱을 부여잡은 채, 고통이 심한지 부들부들 떨었다. 힘들게 몸을 반쯤 일으킨 바텀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여름밤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석화를 풀었지만 다음번에는 여름밤 님의 손이 아작 날 겁니다.”

시답잖은 경고였다. 오히려 여름밤의 표정은 더 무섭게 변했다.

“할 말은 다 끝났죠?”

다시 주먹을 들어 올리는 여름밤을 보고 입을 다문 바텀이 완전히 몸을 일으키고, 옷의 먼지를 탁탁 털었다.

“여름밤 님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

“이해하지 마세요.”

대체 누가 이해한단 말인가. 코웃음이 나왔다.

바텀은 ‘그럼 대체 어쩌라는 거냐’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애초에 제가 원하던 건 하나였어요.”

내뱉듯 말하자, 바텀은 눈을 감고 한숨을 쉬더니 손목에서 무언가를 풀었다.

곧 반짝이는 작은 물건이 여름밤을 향해 날아왔다. 여름밤은 한 손으로 그 물건을 낚아채듯 받았다. 은색 손목시계였다.

“이게 뭔데요?”

“괴물의 위치를 알아내는 방법이 알고 싶다고 하셨잖습니까. 시침은 가장 가까이 있는 괴물이 있는 방향, 분침은 괴물의 위험도를 표시합니다. 그리고 초침은 괴물과의 거리를 표시하는데, 눈금 하나당 100미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최대 반경 6킬로미터 안에 있는 괴물까지는 알 수 있을 겁니다.”

“오…….”

여름밤은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마술을 쓸 수 있는 도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만큼 평범했지만, 그 자체로도 꽤 괜찮은 시계였다.

반면 바텀은 여전히 맞은 턱을 부여잡은 채 울상이었다. 뒤늦게 그를 돌아본 여름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바텀 씨는 필요 없어요?”

그러자 바텀이 여름밤을 째려보았다.

“이제 와서 그런 표정 짓지 마시죠. 저는 필요 없습니다. 감지 마법을 쓰면 되니까요. 체력이 좀 소모되긴 하지만 이쪽이 훨씬 정확도가 높습니다. 애초에 지금 드린 건 보조 도구일 뿐입니다. 저는 거의 의지하지 않죠.”

“그렇군요.”

“비록 굿펠로 님께서는 그 괴물을 죽이는 걸 보류하기로 결정하신 것 같지만 저는 아닙니다. 마술사로서 괴물을 살려둘 수는 없습니다. 만일 제가 먼저 여름밤 님의 친구 분을 발견하게 되면 거두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름밤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까지는 기대하지도 않았어요.”

“친구 분을 찾는 게 쉽지는 않을 겁니다. 저도 계속 추적 중이지만 어디에 숨어 있는 건지 도무지 찾을 수 없었으니까요. 어쩌면 훨씬 먼 곳으로 도망가 버린 건지도 모르죠.”

바텀은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는 듯 말했다.

“…턱은 괜찮아요?”

바텀이 다시 여름밤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 눈빛은 그리 날카롭지 않았다.

“아직도 흔들립니다. 이 정도면 석화를 유지하고 있었어도 충격이 있었겠군요. 보기와는 달리 아주 힘이 장사시네요.”

바텀은 비꼬는 듯 말하더니, 여름밤이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자 몸을 돌렸다.

가만히 있던 여름밤은 문득 뛰어가 그의 뒤를 잡았다.

“잠깐만요.”

“왜 그러시죠?”

“이거… 건전지로 작동하나요?”

바텀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예. 수은전지로 작동되고, 동네 시계방 가서 바꾸시면 됩니다. 한 번 바꾸시면 3년 정도는 그냥 쓸 수 있을 겁니다. 작년에 교체했으니 아직 한참 남았겠군요. 더 궁금하신 점이라도?”

“아뇨.”

“그럼 이제 정말 가보겠습니다.”

바텀은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여름밤은 멀어지는 바텀의 뒷모습을 보며 뒤늦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상 때려서 물건을 빼앗은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는 나중에 사과하자는 생각과 함께 뒤돌아서려던 그때.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순간 바텀의 그림자 위로 커다란 눈 같은 것이 지나가는 걸 본 것 같았다. 잠깐이었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고 지나가는 시선.

“…뭐지?”

하지만 다시 바라본 바텀의 그림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바텀은 도약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