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8화
변화 (1)



삼 일. 여름밤이 기숙사에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삼 일이나 지난 후였다. 여름밤은 찬비의 손톱이 파고들었던 옆구리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줄곧 입원해 있었다. 다행히 굿펠로의 응급처치 덕에,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쯤에는 피가 멎어 있었다.

칼에 찔렸다, 여름밤은 사건을 조사하러 나온 경찰에게 그렇게 말했다. 친구가 괴물이 되었다고, 괴물의 손톱에 옆구리를 찔린 거라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새벽에 깼는데… 찬비가, 룸메이트가 어디 갔는지 없더라구요. 기다려도 안 오기에 걱정이 되어서 찾으러 밖에 나왔고……. 어쩌다가 공장 지역까지 가게 됐는데, 그때 갑자기 누가 달려들어서 찔렀어요. 어둡고 정신이 없어서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기억 안 나요.”



스스로 생각해도 어설픈 변명 같아 조금 불안했지만, 세상이 워낙 흉흉해서인지 경찰은 별다른 의심 없이 그의 말을 믿어주었다. 의사는 묘한 모양의 자창이지만 그리 깊지 않고, 내장을 스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했을 뿐이었다.

문제는 찬비였다.

찬비는 그 뒤로 기숙사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겠지라고 생각은 했다. 찬비는 강하지만 섬세한 성격이었다. 괴물이 된 채로, 괴물이 되었다는 것을 자신에게 들킨 채로 돌아올 리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굿펠로에게 더 이상 찬비를 쫓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다만.



“하지만 오빠 친구가 혹시라도 사람을 공격하는 모습이 보이게 된다면, 그때에는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



그렇게 조건이 달렸다. 불안했지만 마술사로서의 본분이 있는 굿펠로에게 그러지 말라고 할 수도 없어서, 여름밤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퇴원 수속은 저녁이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경찰이 찾아와 사건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기 때문이었다. 근처에 있던 CCTV에 찬비로 보이는 어떤 사람이 찍혔던 모양인데, 무엇 하나 제대로 대답할 수 없어 그는 그저 모른다고 답했다.

이미 수업은 전부 끝났을 시간. 기숙사 주변은 하교하는 학생들로 바글바글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던 여름밤은 문득 무서워졌다. 고작 며칠간 오지 못했을 뿐인데 기숙사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지난 며칠간의 일을 떠올리면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한 모습이었다. 1년 이상 지낸 기숙사에 기묘한 괴리감마저 들었다.

결국 고개를 떨어트리고 땅만 보며 기숙사로 돌아가고 있던 그때, 누군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여름밤은 깜짝 놀라서 어깨를 들썩이며 급히 뒤돌았다. 갑자기 움직이니 붕대로 둘둘 감아놓은 옆구리가 쑤셨다.

“어이쿠. 밤, 뭐 죄 지은 거 있냐? 왜 그렇게 놀라?”

유성이었다. 여름밤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오, 갑자기 건드리니까 그렇지. 무슨 일이야?”

“새끼, 꼭 무슨 일이 있어야 말 걸 수 있냐? 그냥, 퇴원 축하한다고. 내일부터 다시 수업 들어가는 거지?”

“그렇지. 별로 크게 다친 것도 아니었으니까…….”

말끝이 뭉개졌다. 제 몸이 다쳤던 것은 이제 와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진다.

가장 무섭고 힘든 것은 지금도 어디에선가 찬비가 홀로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자신 때문에.

그런 주제에, 나 혼자 이곳으로 돌아와도 되는 걸까.

표정이 일그러져 여름밤은 유성의 눈에 띄지 않도록 고개를 숙였다.

“허, 크게 다친 게 아니라는 애가 표정이 왜 그러냐?”

유성이 웃으며 손바닥으로 여름밤의 어깨를 내려쳤다. 그러나 여름밤은 그저 내려치는 대로 흔들릴 뿐,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야, 보고 있는 사람도 기운 빠지겠다. 누가 죽었냐? 이럴 때일수록 웃어야 뭔가를 할 힘이라도 나지. 찬비 걱정은 하지 마. 어디 있어도 괜찮을 놈이잖아.”

여름밤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 문제는… 유성이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이런 말을 듣는 건 정말 달갑지 않다.

“네가 뭘 알아?”

여름밤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러자 유성의 표정도 조금 굳었다.

“뭐냐, 왜 그렇게 까칠하게 나와? 나도 걱정 많이 했다고. 갑자기 찬비는 사라졌지, 너는 다쳐서 병원에 있다지. 학교가 완전히 발칵 뒤집혔다니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여름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뭔가 있긴 있는 거냐?”

여름밤이 머뭇거리자, 유성이 날카롭게 파고들어 왔다. 그는 고개를 돌려 유성의 시선을 아주 피해 버렸다.

“네가 무슨 상관이야.”

“무슨 상관이냐니, 뭘 알아야 도와줄 거 아냐. 야, 밤. 이쪽 좀 보면서 얘기해.”

“필요 없어.”

어깨를 잡는 유성의 손을 뿌리치며 여름밤이 말했다. 냉랭한 공기가 흘렀다.

그때, 아래쪽에서 아직 변성기가 오지 않는 억양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름밤, 힘든 건 알겠지만 다른 사람들한테 까칠하게 대하지는 마. 네 마음만 더 안 좋아질 뿐이야.”

그곳에는 새벽이 서 있었다.

“미안. 작아서 온 줄 몰랐네.”

여름밤이 일부러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그러나 새벽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여름밤은 이내 할 말을 잃었다.

“유성이는 오늘 네 퇴원이라길래 보려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던 거고, 나는 저녁 같이 먹자고 하려고 온 거야. 너한테 시비 걸 생각은 조금도 없었어.”

여름밤은 고개를 숙였다. 잘못하고 있다는 건 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음을 뜻대로 통제할 수 없었다.

“…미안하다. 그냥 내버려 둬.”

여름밤은 유성과 새벽을 뒤로하고 돌아섰다.

“조금 이따 찾아갈게.”

뒤에서 새벽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약 30분 뒤, 새벽이 여름밤의 방으로 찾아왔다. 여름밤은 문을 열어주었지만,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누구랑 얘기할 기분이 아니었다. 요 며칠 있었던 일들과 찬비에 대한 생각으로 그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왜?”

“저번에 한 약속. 잊지는 않았겠지?”

“약속?”

그러자 새벽은 잊었을 줄 알았다는 듯 길게 덧붙였다.

“치키이이이이이이인.”

그제야 여름밤은 새벽에게 치킨을 사 주기로 약속했다는 것이 기억났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여름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상황 좀 봐가면서 말해줘라. 나 지금 기분도 별로고, 뭔가 먹고 싶지도 않아.”

“여름밤. 너는 지금 한 사람의 기대를 배반한 거야. 나는 네가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이 자기 입으로 내뱉은 말도 쉽게 바꾸는 사람인 줄 알지 못했어. 어쨌든 이건 약속이었잖아?”

“후…….”

여름밤은 이마를 붙잡고 신음했다. 차라리 빨리 먹이고 보내는 게 나을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상대가 막무가내일수록 약하다.

투덜거리던 여름밤이 결국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휴대폰을 집었다. 그리고 서랍을 뒤적여 전단지 하나를 찾아 들었다.

“여보세요. 여기 청월고 기숙사 304혼데요.”

“간장 맛! 간장 맛!”

여름밤의 옆에서 새벽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프라이드 한 마리만 갖다 주세요.”

“…….”

일순 새벽이 정지 화면처럼 멈춰 섰다. 아무렇지도 않게 통화를 종료한 여름밤이 책상 위에 폰을 던져 놓았다.

“여름밤. 너는 약속은 지켰을지 모르지만 한 사람의 즐거움을 망쳤어.”

“사줄 때 그냥 먹어라.”

뾰로통해진 새벽이 찬비의 침대 위에 털썩 누웠다. 그리고 마치 시트 밑으로 파고 들어갈 기세로 몸부림쳤다.

“그러지 마. 이제 정리할 사람도 없는 자리니까.”

그것을 바라보던 여름밤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새벽이 벌떡 일어섰다.

“여름밤, 내가 왜 여기에 온 건지 알아?”

생뚱맞은 물음이었다. 여름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녁 얻어먹으려고.”

그러나 그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새벽은 이미 고개를 젓고 있었다.

“그것도 맞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어.”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서?”

“그것도 맞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어.”

여름밤은 잠시 허공을 보며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마땅한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계속 아무 말도 없이 있자, 새벽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너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무슨 얘기?”

“유성이랑 너, 그리고 찬비에 관한 이야기.”

그 말과 함께 새벽이 다시 찬비의 침대 위에 앉았다. 여름밤도 책상 앞에 앉은 채 새벽을 쳐다보았다.

“유성이가 경찰에 지인이 있는 모양이야. 네가 없는 동안 찬비를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어. 이전에도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있나 봐. 가출 청소년 찾기 같은 거. 아직까지 별로 성과는 없는 것 같지만.”

“그런데?”

여름밤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유성이는 찬비를 찾는 게 너한테 도움이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나도 너를 돕고 싶고.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네가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을 해줘야 해.”

새벽이 여름밤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

솔직히 흔들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다 털어놓고 가벼워지고 싶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새벽이나 유성은 이미 마술과 괴물이라는 비상식적이고 비일상적인 세계에 있는 여름밤에게 외부인이나 다름없었다. 알아듣도록 설명할 자신도 없을 뿐더러, 끌어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너네한테 말해서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은 일이었으면 벌써 말했어. 이 일은… 너무 복잡해.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그러나 새벽은 고개를 젓더니 입을 열었다.

“여름밤. 저번에 네가 그랬지. 도왔다는 사실 자체로도 무언가 남는 게 있을 거라고. 그런데 이 일을 혼자서만 감당하려고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

그런 말도 했었지.

확실히 지금 이런 행동은 이중적이었다.

하지만 이건 그런 게 아니다. 차라리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반적인 일이었다면.

“그때는 내가 잘못 말했어. 상황에 따라 다른 거야. 이건 너희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럼 지금 이 상황에서 유성이나 나 말고 누가 널 이해해 주고, 돕겠다고 나설 건데? 그런 사람이 있어?”

마치 자신을 전부 이해할 수 있다는 듯한 새벽의 말에 그는 약간 불쾌했다. 한편으로는 오기가 생겨, 필사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잠시 고민하던 여름밤이 문득 말했다.

“…있어. 그런 사람.”

“…….”

예상 밖의 대답에 새벽은 할 말을 잃은 듯했다. 그러나 곧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여름밤. 어제 내가 너한테 말했지? 나는 무심코 무언가를 알아버리곤 한다고. 사실 나는…….”

그때, 책상 위에 던져 둔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치킨 왔나 보네. 배부터 채우자.”

여름밤은 새벽이 따라오는지는 보지도 않고, 폰을 집어 들고 문밖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