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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사투 (2)



“멈춰! 로빈!”

여름밤이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오빠?”

굿펠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기껏 구해줬더니 왜 다시 이곳까지 온 것일까?

그기기그끄그긱!

“엥?”

피투성이가 된 찬비가 들썩이자, 굿펠로가 놀라 돌아보았다. 아직도 찬비 주변의 기압은 높아진 그대로다.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분명 혈관 속의 피가 전부 굳어버리고 세포 단위로 몸이 파괴되고 있을 터인데.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여 정신이 흐트러진 굿펠로는 무심결에 마술을 해제해 버렸다.

끄기기그그극!

그러자 곧바로 괴물이 몸을 일으켰다.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경이로운 회복력을 보이며.

어느새 굿펠로를 움켜쥔 괴물이 여름밤 쪽을 향해 그녀를 힘껏 내던졌다.

“으아아악!”

여름밤과 굿펠로 모두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부딪히는 일은 없었다. 공중은 공기를 다루는 마술사인 굿펠로의 무대. 세차게 날아오던 굿펠로는 여름밤 바로 앞에서 멈추어 섰다.

“이런, 목만 자르면 끝나는 일이었는데 한눈을 팔다니…….”

굿펠로는 찬비에게 붙잡혀 던져진 사실보다 자신의 실책 자체를 향해 혀를 찼다.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절레절레 흔들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들고는 씨익 웃었다.

“저 녀석 바보 아냐? 조금이라도 승기를 쥐려면 나를 계속 붙들고 있어야지. 공기의 마술사를 공중으로 던지다니, 물고기를 물속에 풀어주는 거랑 다를 게 뭐람.”

굿펠로가 한 손을 멀찍이 도망치고 있는 괴물을 향해 뻗었다.

찬비는 아직도 만신창이인 몸을 이끌고 필사적으로 뛰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불빛이 없는 어두운 골목이었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길 수만 있다면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찬비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아니, 앞으로 걷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뒤로 밀려나듯 굿펠로와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결국 털썩, 바닥에 배를 대고 쓰러진 찬비가 더 빠른 속도로 끌려오기 시작했다.

끼기기긱!

찬비는 발톱으로 땅을 긁으며 어떻게든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

“소용없는 짓이야. 내 눈에 보이는 한 도망칠 수 없어.”

여름밤이 초조한 얼굴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대로라면 찬비가 굿펠로의 손에 죽게 될 것이 분명했다.

‘빨리 뭔가…….’

그때, 무언가 깨달은 여름밤이 급히 굿펠로의 뒤로 다가갔다.

“아앗!”

당황한 굿펠로가 덜컥 움직이자, 찬비를 끌어당기고 있던 풍압이 사라졌다.

여름밤은 손으로 굿펠로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채 끌려오던 찬비는 마술이 풀리자 곧바로 벌떡 몸을 일으켜 다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오빠? 혹시 아까부터 일부러 날 방해하고 있는 거야?”

“끄악!”

여름밤이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굿펠로에게 잡힌 손에서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고작 10살 정도의 여자아이가 낼 수 있는 악력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힘이었다.

“아, 너무 세게 쥐어버렸네. 순간 짜증이 나서.”

굿펠로가 차가운 표정으로 여름밤을 돌아보곤, 다시 도망치던 찬비를 향해 손을 뻗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빠. 나중에 하자. 이 일만 끝내고.”

“그럴 순 없어!”

이를 악문 여름밤은 다시 일어나 굿펠로의 눈을 가렸다.

그러나 애쓴 보람도 없이, 마술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 질질 끌려오던 찬비는 힘이 빠진 것인지 점점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완전히 회복되지도 못한 채 강한 풍압을 맞은 피부는 벌겋게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찬비가 끌려온 땅바닥에는 길게 핏자국이 남았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안 돼!”

여름밤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흐앗!”

굿펠로가 놀라 여름밤을 돌아보았다.

“지금 뭐 하는 거야!”

굿펠로를 번쩍 안아 든 여름밤이 찬비의 반대쪽으로 힘껏 달려 나갔다. 품에서 굿펠로가 마구 버둥거렸지만, 여름밤은 끝까지 굿펠로를 놓지 않았다.

“그만해.”

여름밤이 말했다.

“제발… 찬비를 죽이지 마.”

흔들리는 여름밤의 품 안에서, 얼굴 바로 아래에 있는 굿펠로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이해했다. 이 모든 게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를.

한동안 말이 없던 굿펠로가 한 손을 여름밤에게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둘은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좋은 발상이야, 오빠. 저쪽을 끌고 오는 걸 멈출 수 없다면 이쪽에서 멀어지면 된다는 거. 하지만 틀렸어.”

여름밤은 굿펠로를 안은 그대로 빠르게 찬비를 향해서 되돌아 날아갔다. 아니, 실제로 굿펠로가 날아가고 있을 뿐, 여름밤은 거기에 매달려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굿펠로가 날아가던 것을 멈추자, 여름밤은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큭!”

떨어진 여름밤이 땅 위를 굴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가 부딪친 것은 단단한 아스팔트 바닥이 아니었다. 반쯤 피떡이 되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찬비였다.

“여름…아…….”

어느새 찬비는 제정신으로 돌아와 있었다.

“찬비야! 괜찮아?”

여름밤이 급히 찬비에게 다가갔다. 찬비의 상태는 숨을 쉬는 것이 용해 보일 정도였다.

언짢은 표정의 굿펠로가 천천히 눈앞에 다가와 섰다.

“까맣게 잊고 있었네. 오빠는 이제 막 마술사가 되었지. 그래, 그럼 모를 만도 하지.”

굿펠로는 여름밤의 팔에 기대어 있는 찬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걸 오빠의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오빠, 괴물은 자신이 먹은 걸로 변신할 수 있어. 저 괴물이 오빠 친구 모습을 하고 있는 건 그 친구를 잡아먹었기 때문이야. 이건 친구가 아니라 오빠 친구의 원수인 거라고!”

“원수라고……?”

굿펠로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금이라면 그 괴물, 힘이 많이 빠져 있으니까 오빠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야. 얼른 끝장내 버려. 친구의 원수를 갚아야지.”

여름밤은 힘들게 호흡하고 있는 찬비를 내려다보았다.

날카롭게 세워져 있던 동공은 사라지고, 매일 같이 보던 익숙한 눈동자가 거기에 있었다.

“뭐 해, 오빠! 빨리 죽여!”

굿펠로가 재촉했다. 그러나 여름밤은 찬비를 바라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죽여야 돼! 그건 괴물이야! 살려둘 수 없어! 내버려 두면 저 괴물은 계속 다른 사람들을 죽일 거야! 회복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할 테니까! 살려주는 즉시 누군가를 잡아먹겠지, 당장 옆에 있는 오빠부터!”

크그긱, 끼그그그긱.

그때, 찬비가 움찍거렸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번들거렸다. 괴물의 이빨이 여름밤의 목덜미를 향하고 있었다.

“봐!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잖아. 나는 도와주지 않을 거야. 이건 오빠 스스로 해야 한다고. 가만히 있다가 괴물한테 물려 죽어도 그건 오빠 잘못이니까! 난 분명히 경고했어!”

굿펠로는 팔짱을 낀 채 정말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그를 노려보았다.

여름밤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믿는다.’

그리고 찬비를 흔들림 없이 내려다보았다.

설령 틀린 선택이라고 해도 조금도 후회는 없었다. 죽었든 괴물이 되었든, 지금 이 눈앞에 있는 건 찬비다. 그걸 믿어줘야만 한다.

“흐흑…….”

낮은 흐느낌이 들려왔다.

당장이라도 이를 들이댈 것 같던 찬비는 그의 어깨에 기댄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여름밤은 곧바로 찬비를 끌어안았다.

“무슨……. 이럴 리가 없어…….”

굿펠로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찬비의 눈이 기묘하게 번뜩였다. 바닥에 늘어져 있던 찬비의 손, 손가락 두 개가 굿펠로를 향하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손가락 끝이 날카롭게 번뜩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채 하기도 전에, 여름밤은 몸을 던졌다.

원래라면 굿펠로의 목을 꿰뚫었을 일격. 날카롭게 뻗어나간 찬비의 손톱은 급히 그를 막아선 여름밤의 옆구리에 가 박혔다.

“큭…….”

“여름아! 어째서…….”

놀란 찬비는 급히 손톱을 거두어들였다. 손톱이 뽑혀 나간 자리에서 주르륵, 핏물이 쏟아졌다. 쓰러지는 여름밤의 몸을 얼떨떨한 얼굴로 굿펠로가 받아 들었다. 찬비는 앉은 채로 뒷걸음질 쳐 물러났다.

‘도망쳐!’

머릿속에서 본능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찬비는 튕기듯 일어나 어둠 속을 향해 달려 나갔다.

“저게!”

굿펠로가 도망가는 찬비의 뒷모습을 향해 바로 손을 뻗었다. 아니, 뻗으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굿펠로를 붙든 것은 고통에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여름밤이었다.

“아까… 절대 나서지 않겠다고 했지?”

여름밤이 창백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찬비는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몸으로도 힘껏 달렸다. 골목의 어둠을 따라, 머릿속의 목소리가 잠잠해질 때까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상가의 어느 외진 곳까지 와 있었다.

“으아아악!”

무릎을 꿇고 털썩 주저앉은 찬비가 땅을 주먹으로 수차례 내리쳤다. 분노와 자괴감이 들끓었다.

도망치는 동안 여름밤이 마술사를 막아주리란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여름밤을 끌어안고 울면 마술사가 방심하리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안에 있는 괴물은 지나치게 영리했다. 지금도 머리 한쪽에서 어떻게 하면 여름밤을 잡아먹을 수 있을지 계획하고 있다.

지난 몇 분 동안, 그는 완벽히 목소리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이럴 순 없어…….”

찬비는 엎드린 채 흐느꼈다.



“이성의 불씨는 곧 꺼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되겠죠.”



바텀의 말이 떠올랐다.

찬비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매캐한 매연으로 덮인 하늘에는 별 하나 없었다. 곧 해가 뜰 텐데, 그마저 구름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흐려질 것 또한 없었다.

“…….”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을 주저앉아 있던 찬비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조용히 손바닥을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가슴의 중앙, 거기에서 약간 왼쪽. 가쁘게 고동치고 있는 생명이 불쌍하고, 동시에 혐오감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그래, 차라리…….”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 흉측한 손톱이 기다렸다는 듯 손에서 자라났다.

공포, 안도, 슬픔, 기쁨.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쳤다.

‘그만둬. 그만둬라.’

머릿속에서 경고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그러나 찬비의 표정엔 변함이 없었다.

‘아니.’

마지막이나마 의지대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차라리 자랑스럽다. 그러니까 이게 옳다.

푸욱.

마치 꽃봉오리처럼 다섯 개의 손톱이 솟아났다. 가슴을 지나, 심장을 지나, 등 뒤로 날개처럼 돋아났다.

곧 찬비의 몸이 기울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으로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