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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사투 (1)
콰득!
목덜미에서 무언가 으깨지는 살 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깨를 타고서 뜨겁고 축축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이게 무슨…….”
여름밤이 놀라 찬비를 바라보았다.
찬비는 제 팔목을 물어뜯고 있었다. 톱날 같은 이빨에 걸레짝이 된 팔을 덜덜 떨면서.
“찬비야!”
“크아아아아악!”
찬비가 여름밤을 강하게 밀치며 막다른 벽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처박듯 벽에 몸을 기대어 벽을 부드득, 긁었다. 콘크리트 벽에 건조하게 핏자국이 났다.
그것도 잠시, 서서히 몸집이 비대해지더니 찬비의 골격 자체가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손가락은 마침내 거의 팔뚝만큼 두꺼워져 벽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제발! 먹고 싶지 않아……. 그만……. 지금 당장… 도망쳐!”
찬비가 벽에 대고 있던 머리를 일순 이쪽으로 향했다가, 다시 돌렸다. 크르륵, 금속성이 들렸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여름밤은 세로로 날카롭게 찢어진 눈동자, 긴 눈썹, 번들거리는 이빨, 입 주위로 나 있는 흰 털까지 모두 볼 수 있었다. 팽창을 이기지 못하고 찢어진 옷 안으로는 노란 털과 검은 줄무늬가 보였다.
“…….”
그 안에서 찬비의 흔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한 채 서 있던 여름밤은 온몸의 털이 다 곤두서는 듯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건 얼마 전 꿈속에서 보았던 호랑이 괴물이다. 기숙사 정원에 있던 거대한 실루엣은 착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날, 체육 선생에 업혀 기숙사로 돌아온 찬비는 분명히 호랑이 모습을 한 괴물에 쫓겼다고 했다.
어째서 좀 더 빨리 알아차리지 못한 걸까.
“나는… 더 이상… 생각… 여기서… 그만… 할 수가…….”
이제는 목소리 전체가 금속성에 가깝게 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여름밤은 고개를 저었다.
“난 널 찾으러 나온 거야. 그러니까 널 데리고 돌아갈 거야.”
이제 와서 모든 걸 알아놓고, 모르는 척 되돌아갈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런 무책임한 선택을 할 수는 없었다. 찬비를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그…만…….”
잠시 후, 바닥에 무너져 있던 찬비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제는 찬비라고 하기도 어려운 모습이다. 금속처럼 번들거리고 거무스름한 이빨, 턱 밑의 흰 털에는 잔뜩 고인 침이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붉은 빛을 내는 눈가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거대한 괴물의 손이 여름밤을 움켜쥐었다.
여름밤은 그 열기를, 굶주림에 아우성치는 피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싸늘하지만 뜨거운 감각이 온몸을 덮쳐 왔다.
“너는 찬비야. 아무리 괴물이 됐어도 내 친구라는 건 변함없어.”
“…아니야.”
힘없이 낮게 깔린 음성이 귀 옆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이미 죽었어. 괴물에게 먹혔어. 찬비라는 사람은 이제 없어. 여기 남은 건… 나는 파편이나 흔적 같은 것에 불과해. 너를 먹고 나면……. 널 먹으라고 아우성치는 목소리가 말하고 있어. 난 더 이상 필요가 없어져. 완전히 사라져. 하지만… 평생 괴물로 살아갈 바에는…….”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정신 차려! 넌 여기 살아 있잖아!”
그러나 더 이상 여름밤의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버티고, 싸우고, 믿고, 기다린다.
항상 그래왔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너무 지쳤다. 너무 힘겨웠다.
찬비는 본성에 몸을 맡겼다. 지금 그를 지배하는 건 먹고 싶다는 욕망, 힘을 얻고 싶다는 욕망, 그뿐이었다.
흑, 흐느끼는 듯한 작은 소리를 마지막으로 찬비의 입이 여름밤을 통째로 삼켜 버릴 듯 벌어졌다.
찬비를 붙들고 있던 여름밤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자업자득이지.’
괴물을 불러오는 통로나 다름없는 자신이 죽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 편이 훨씬 편하고 안전한 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찬비는, 다른 사람들은…….
그때였다.
화아아악!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여름밤이 저 멀리 날아갔다. 강한 풍압이 그를 허공으로 밀어냈고, 이내 여름밤은 중력에 이끌려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건…….’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그때 그는 여유롭게 공중제비를 돌아 착지했다. 그건 처음으로 굿펠로를 만났을 때, 그러니까 푸른 여인의 모습일 때다.
하지만 이미 바닥은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이제 와서 변신을 하기도 너무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여름밤은 땅에서 겨우 한 뼘 정도의 높이에서 매달린 것처럼 뚝 멈췄다.
허공에 거꾸로 매달린 여름밤의 눈앞에 누군가의 다리가 보였다. 노란 우비를 입고 있는 작은 소녀. 괴물을 사냥하는 마술사, 굿펠로가 그곳에 서 있었다.
“내가 너무 빨리 왔나 보네. 그런데 오빤 거기 거꾸로 매달려서 뭐하는 거야?”
굿펠로가 장난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너야말로 사람 거꾸로 들고서 뭐하는 거야…….”
굿펠로가 킬킬 웃자, 공중에 떠 있던 여름밤의 몸이 그에 맞춰 탈탈탈 흔들렸다. 입고 있던 잠옷이 뒤집어지며 여름밤의 얼굴을 가렸다.
“그게 지금 자기 목숨을 구해준 사람한테 할 말이야? 일단 고맙다고 해야지!”
“고…마…….”
옷에 파묻힌 여름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굿펠로는 순순히 여름밤을 다시 세워서 땅 위에 내려놓았다.
“뭐, 굳이 고맙다고 하라는 건 아니고. 이제 내가 왔으니까 안심해!”
안심이라…….
여름밤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분명 굿펠로는 든든한 아군임에 틀림없었다. 다른 괴물에게 습격받을 때 굿펠로가 왔었다면, 가령 아까 전 망치를 든 여자의 습격을 받을 때 왔다면 말이다. 마술사인 굿펠로는 확실하게 괴물을 제압하고 그를 구해줄 테니까.
그러나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찬비다. 굿펠로는 분명 마술사로서의 소명을 다할 것이다.
순간, 폐병원 부지에 있던 시체들의 모습이 떠올라 여름밤은 몸서리를 쳤다.
“오빠, 왜 그래? 이제 다 끝났대두. 오빠는 멀리 떨어져서 구경만 하고 있어!”
“잠깐…….”
말릴 틈도 없이 굿펠로가 찬비를 향해 날아갔다.
아까 전 그것은 여름밤을 순식간에 공중으로 날려 보낼 만큼의 강풍이었다. 하지만 찬비는 그런 강풍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괴물이 되어 있었다.
후우우우욱!
굿펠로가 가볍게 내려앉자,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굉음이 터지며 호랑이 괴물이 하늘 높이 날아갔다. 그리고 그 순간, 착지했던 굿펠로가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그 머리를 발로 걷어찼다.
끼기기기기긱!
기분 나쁜 울음소리를 내며 괴물이 막다른 골목의 벽 너머로 날아갔다. 여름밤은 다리가 후들거렸다. 곧 땅을 뒤흔드는 굉음이 발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굿펠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움닫기도 없이 가볍게 벽을 넘어 날아갔다.
끄기기끄그긱! 기기기극!
벽 너머에서 연신 금속음이 섞인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굿펠로가 괴물을 제압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찬비야!”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여름밤이 애타게 소리쳤다.
벽 너머로 괴물을, 찬비를 날려 버린 것은 아마 굿펠로 나름의 배려였을 것이다. 아직 일반인인 여름밤이 싸움에 휘말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그녀는 엄연히 마술 협회의 일원. 실력도, 상황을 이끌어가는 능력도 프로다웠다.
‘안 돼!’
굿펠로와 찬비, 둘 중 누구도 다쳐서는 안 된다. 둘이 싸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름밤은 급히 달렸다. 굿펠로와 찬비가 있을 벽 너머를 향해서. 이 싸움을 멈추어야 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했다.
푸른 여인으로 변해서 단번에 벽을 뛰어 넘어가면 간단하겠지만, 거기까지 생각하지도 못했다. 이 싸움을 멈추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벽을 끼고 공장 안을 뛰는 동안에도 쇳소리 섞인 괴물의 비명은 끊이지 않았다. 두려움에 온몸이 저려왔다.
꿈속에서 늘 자신을 쫓던 괴물이 내던 그 소리, 하지만 지금 그것은 찬비가 내는 비명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비명 소리가 뚝 끊겼다. 더 이상 땅의 흔들림도 없었다.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다는 듯이. 둘 중 하나는 끝났다는 듯이.
아니, 그럴 리 없어.
마침내 모퉁이를 돌아 여름밤은 벽 너머에 도착했다.
노란 우비를 입은 작은 마술사는 검지를 세운 손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서 있었다. 발밑에 쓰러진 괴물이 죽어가는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며.
“지금 대체 네가 왜 이런 건지 설명해 줄까? 기압을 높인 거야. 공기는 원래 되게 무겁거든. 그리고 어디에나 있어. 너무 익숙하니까 평소에는 미처 생각 못하는 것뿐이지. 이렇게 무게를 더하면…….”
찬비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입을 벌릴 수 없을 만큼 턱과 머리가 무거웠다. 지독한 고통, 몸속에 있던 숨조차 무거워 내뱉을 수 없다.
그의 몸은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것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미 몇몇 곳에서는 피부가 갈라지며 조금씩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나마 그의 탁월한 재생력 덕분에 큰 상처 없이 아슬아슬하게 버틸 수 있었다.
굿펠로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몸이 터져 나가 버리지. 원래는 그러는데, 꽤 잘 버티네. 다른 괴물들이라면 벌써 걸레짝이 되었을 텐데.”
굿펠로가 한 번 더 허공중에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몸이, 공기가, 모든 것의 무게가 조금씩 더 무거워진다.
“커억!”
이윽고 무언가가 부서지며 내려앉는 소리가 나더니, 그는 입에서 신음과 함께 피를 토해냈다. 마지막으로 경련을 일으키듯 한껏 꿈틀대던 그의 몸이 마침내 힘없이 축 늘어졌다.
사투 (1)
콰득!
목덜미에서 무언가 으깨지는 살 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깨를 타고서 뜨겁고 축축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이게 무슨…….”
여름밤이 놀라 찬비를 바라보았다.
찬비는 제 팔목을 물어뜯고 있었다. 톱날 같은 이빨에 걸레짝이 된 팔을 덜덜 떨면서.
“찬비야!”
“크아아아아악!”
찬비가 여름밤을 강하게 밀치며 막다른 벽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처박듯 벽에 몸을 기대어 벽을 부드득, 긁었다. 콘크리트 벽에 건조하게 핏자국이 났다.
그것도 잠시, 서서히 몸집이 비대해지더니 찬비의 골격 자체가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손가락은 마침내 거의 팔뚝만큼 두꺼워져 벽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제발! 먹고 싶지 않아……. 그만……. 지금 당장… 도망쳐!”
찬비가 벽에 대고 있던 머리를 일순 이쪽으로 향했다가, 다시 돌렸다. 크르륵, 금속성이 들렸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여름밤은 세로로 날카롭게 찢어진 눈동자, 긴 눈썹, 번들거리는 이빨, 입 주위로 나 있는 흰 털까지 모두 볼 수 있었다. 팽창을 이기지 못하고 찢어진 옷 안으로는 노란 털과 검은 줄무늬가 보였다.
“…….”
그 안에서 찬비의 흔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한 채 서 있던 여름밤은 온몸의 털이 다 곤두서는 듯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건 얼마 전 꿈속에서 보았던 호랑이 괴물이다. 기숙사 정원에 있던 거대한 실루엣은 착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날, 체육 선생에 업혀 기숙사로 돌아온 찬비는 분명히 호랑이 모습을 한 괴물에 쫓겼다고 했다.
어째서 좀 더 빨리 알아차리지 못한 걸까.
“나는… 더 이상… 생각… 여기서… 그만… 할 수가…….”
이제는 목소리 전체가 금속성에 가깝게 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여름밤은 고개를 저었다.
“난 널 찾으러 나온 거야. 그러니까 널 데리고 돌아갈 거야.”
이제 와서 모든 걸 알아놓고, 모르는 척 되돌아갈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런 무책임한 선택을 할 수는 없었다. 찬비를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그…만…….”
잠시 후, 바닥에 무너져 있던 찬비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제는 찬비라고 하기도 어려운 모습이다. 금속처럼 번들거리고 거무스름한 이빨, 턱 밑의 흰 털에는 잔뜩 고인 침이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붉은 빛을 내는 눈가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거대한 괴물의 손이 여름밤을 움켜쥐었다.
여름밤은 그 열기를, 굶주림에 아우성치는 피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싸늘하지만 뜨거운 감각이 온몸을 덮쳐 왔다.
“너는 찬비야. 아무리 괴물이 됐어도 내 친구라는 건 변함없어.”
“…아니야.”
힘없이 낮게 깔린 음성이 귀 옆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이미 죽었어. 괴물에게 먹혔어. 찬비라는 사람은 이제 없어. 여기 남은 건… 나는 파편이나 흔적 같은 것에 불과해. 너를 먹고 나면……. 널 먹으라고 아우성치는 목소리가 말하고 있어. 난 더 이상 필요가 없어져. 완전히 사라져. 하지만… 평생 괴물로 살아갈 바에는…….”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정신 차려! 넌 여기 살아 있잖아!”
그러나 더 이상 여름밤의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버티고, 싸우고, 믿고, 기다린다.
항상 그래왔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너무 지쳤다. 너무 힘겨웠다.
찬비는 본성에 몸을 맡겼다. 지금 그를 지배하는 건 먹고 싶다는 욕망, 힘을 얻고 싶다는 욕망, 그뿐이었다.
흑, 흐느끼는 듯한 작은 소리를 마지막으로 찬비의 입이 여름밤을 통째로 삼켜 버릴 듯 벌어졌다.
찬비를 붙들고 있던 여름밤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자업자득이지.’
괴물을 불러오는 통로나 다름없는 자신이 죽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 편이 훨씬 편하고 안전한 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찬비는, 다른 사람들은…….
그때였다.
화아아악!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여름밤이 저 멀리 날아갔다. 강한 풍압이 그를 허공으로 밀어냈고, 이내 여름밤은 중력에 이끌려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건…….’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그때 그는 여유롭게 공중제비를 돌아 착지했다. 그건 처음으로 굿펠로를 만났을 때, 그러니까 푸른 여인의 모습일 때다.
하지만 이미 바닥은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이제 와서 변신을 하기도 너무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여름밤은 땅에서 겨우 한 뼘 정도의 높이에서 매달린 것처럼 뚝 멈췄다.
허공에 거꾸로 매달린 여름밤의 눈앞에 누군가의 다리가 보였다. 노란 우비를 입고 있는 작은 소녀. 괴물을 사냥하는 마술사, 굿펠로가 그곳에 서 있었다.
“내가 너무 빨리 왔나 보네. 그런데 오빤 거기 거꾸로 매달려서 뭐하는 거야?”
굿펠로가 장난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너야말로 사람 거꾸로 들고서 뭐하는 거야…….”
굿펠로가 킬킬 웃자, 공중에 떠 있던 여름밤의 몸이 그에 맞춰 탈탈탈 흔들렸다. 입고 있던 잠옷이 뒤집어지며 여름밤의 얼굴을 가렸다.
“그게 지금 자기 목숨을 구해준 사람한테 할 말이야? 일단 고맙다고 해야지!”
“고…마…….”
옷에 파묻힌 여름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굿펠로는 순순히 여름밤을 다시 세워서 땅 위에 내려놓았다.
“뭐, 굳이 고맙다고 하라는 건 아니고. 이제 내가 왔으니까 안심해!”
안심이라…….
여름밤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분명 굿펠로는 든든한 아군임에 틀림없었다. 다른 괴물에게 습격받을 때 굿펠로가 왔었다면, 가령 아까 전 망치를 든 여자의 습격을 받을 때 왔다면 말이다. 마술사인 굿펠로는 확실하게 괴물을 제압하고 그를 구해줄 테니까.
그러나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찬비다. 굿펠로는 분명 마술사로서의 소명을 다할 것이다.
순간, 폐병원 부지에 있던 시체들의 모습이 떠올라 여름밤은 몸서리를 쳤다.
“오빠, 왜 그래? 이제 다 끝났대두. 오빠는 멀리 떨어져서 구경만 하고 있어!”
“잠깐…….”
말릴 틈도 없이 굿펠로가 찬비를 향해 날아갔다.
아까 전 그것은 여름밤을 순식간에 공중으로 날려 보낼 만큼의 강풍이었다. 하지만 찬비는 그런 강풍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괴물이 되어 있었다.
후우우우욱!
굿펠로가 가볍게 내려앉자,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굉음이 터지며 호랑이 괴물이 하늘 높이 날아갔다. 그리고 그 순간, 착지했던 굿펠로가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그 머리를 발로 걷어찼다.
끼기기기기긱!
기분 나쁜 울음소리를 내며 괴물이 막다른 골목의 벽 너머로 날아갔다. 여름밤은 다리가 후들거렸다. 곧 땅을 뒤흔드는 굉음이 발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굿펠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움닫기도 없이 가볍게 벽을 넘어 날아갔다.
끄기기끄그긱! 기기기극!
벽 너머에서 연신 금속음이 섞인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굿펠로가 괴물을 제압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찬비야!”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여름밤이 애타게 소리쳤다.
벽 너머로 괴물을, 찬비를 날려 버린 것은 아마 굿펠로 나름의 배려였을 것이다. 아직 일반인인 여름밤이 싸움에 휘말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그녀는 엄연히 마술 협회의 일원. 실력도, 상황을 이끌어가는 능력도 프로다웠다.
‘안 돼!’
굿펠로와 찬비, 둘 중 누구도 다쳐서는 안 된다. 둘이 싸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름밤은 급히 달렸다. 굿펠로와 찬비가 있을 벽 너머를 향해서. 이 싸움을 멈추어야 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했다.
푸른 여인으로 변해서 단번에 벽을 뛰어 넘어가면 간단하겠지만, 거기까지 생각하지도 못했다. 이 싸움을 멈추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벽을 끼고 공장 안을 뛰는 동안에도 쇳소리 섞인 괴물의 비명은 끊이지 않았다. 두려움에 온몸이 저려왔다.
꿈속에서 늘 자신을 쫓던 괴물이 내던 그 소리, 하지만 지금 그것은 찬비가 내는 비명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비명 소리가 뚝 끊겼다. 더 이상 땅의 흔들림도 없었다.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다는 듯이. 둘 중 하나는 끝났다는 듯이.
아니, 그럴 리 없어.
마침내 모퉁이를 돌아 여름밤은 벽 너머에 도착했다.
노란 우비를 입은 작은 마술사는 검지를 세운 손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서 있었다. 발밑에 쓰러진 괴물이 죽어가는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며.
“지금 대체 네가 왜 이런 건지 설명해 줄까? 기압을 높인 거야. 공기는 원래 되게 무겁거든. 그리고 어디에나 있어. 너무 익숙하니까 평소에는 미처 생각 못하는 것뿐이지. 이렇게 무게를 더하면…….”
찬비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입을 벌릴 수 없을 만큼 턱과 머리가 무거웠다. 지독한 고통, 몸속에 있던 숨조차 무거워 내뱉을 수 없다.
그의 몸은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것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미 몇몇 곳에서는 피부가 갈라지며 조금씩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나마 그의 탁월한 재생력 덕분에 큰 상처 없이 아슬아슬하게 버틸 수 있었다.
굿펠로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몸이 터져 나가 버리지. 원래는 그러는데, 꽤 잘 버티네. 다른 괴물들이라면 벌써 걸레짝이 되었을 텐데.”
굿펠로가 한 번 더 허공중에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몸이, 공기가, 모든 것의 무게가 조금씩 더 무거워진다.
“커억!”
이윽고 무언가가 부서지며 내려앉는 소리가 나더니, 그는 입에서 신음과 함께 피를 토해냈다. 마지막으로 경련을 일으키듯 한껏 꿈틀대던 그의 몸이 마침내 힘없이 축 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