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3화
의심 (2)
그렇게 방안을 서성인 지 얼마나 지났을까?
여전히 찬비는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여름밤은 점점 마음이 불안해졌다.
결국 그는 옥상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밤중에 바람을 쐬러 나간다면 옥상뿐이었다. 원칙적으로 통금 시간 이후 기숙사 건물 밖으로 나가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으니까.
옥상 정원은 새벽에도 학생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여름이 되면 열대야로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공부를 하다 옥상으로 쉬러 나오는 애들이 종종 있었다.
찬비는 요즘 홀로 무언가 고민하고 있는 듯했으니, 잠이 잘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바람을 쐬러 옥상 정원에 나갔을 것이다.
여름밤은 부지런히 계단을 올랐다.
“…아무도 없잖아.”
그러나 여름밤의 기대와는 달리 옥상 정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행여나 학생들이 떨어질까 옥상 모서리에 높게 쳐진 펜스, 그리고 그 아래 낮게 자란 관상목들과 장식품들의 그림자만이 스산하게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그림자 사이, 무언가가 그 가운데 흔들리지 않고 꼿꼿이 서 있었다.
“뭐지?”
사람 그림자? 작은 동상 같기도 했다.
악몽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해, 하루가 멀다 하고 옥상을 드나들곤 하는 여름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알기로 옥상에 이런 구조물은 없었다.
‘새로 갖다 놨나?’
여름밤은 꼿꼿이 서 있는 그 실루엣 쪽으로 움직였다.
서너 걸음쯤 거리를 두었을 때, 갑자기 그것이 움직이며 이쪽을 돌아보았다. 여름밤은 어깨를 들썩이며 깜짝 놀랐다.
“안녕, 여름밤.”
익숙한 목소리가 여름밤의 귀에 들렸다. 눈동자만 있는 검은 그림자가 이쪽으로 다가오며 말을 하고 있었다. 어깨쯤에나 올 듯한 키였다.
이윽고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바가지 머리에 반쯤 뜬 것 같은 눈이 보였다. 위아래 모두 검은 옷을 입은 새벽의 얼굴에 달빛으로 그늘이 져 있었다. 순간 뭔가 싶어 겁을 먹었던 여름밤이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는 잘도 나를 버려두고 사라졌구나.”
…그랬지.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새벽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동상이라고 착각한 탓일까. 사실 새벽이었다는 걸 안 시점에서 더 이상 겁먹을 이유가 없을 텐데도, 어쩐지 그 얼굴은 조각상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새벽이 자신의 바로 앞까지 다가오자 겁을 먹은 여름밤이 슬슬 뒷걸음질 쳤다.
“아, 아까 일이라면 미안. 그…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그는 말을 더듬으며 황급히 사과했다. 하지만 여전히 새벽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대신 미동도 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화나지 않았어. 네가 다음번에 치킨을 산다면 그걸로 됐어.”
억양 없는 목소리가 오히려 더 화난 것처럼 들렸다. 하긴, 그야 좀 친해지나 싶은 사이에 말도 없이 사라지면 많이 서운할 것이다.
“알았어. 사 준다.”
“약속.”
새벽이 여름밤의 얼굴 앞에 새끼손가락을 내밀어왔다. 여름밤은 처음에 뭔지 몰라 멍하니 있다가, 한참 후에야 새끼손가락을 마주 걸었다. 도장을 찍고 복사까지 완벽히 마쳤다.
남고생 둘이서 이게 뭐하는 짓인지. 여름밤은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상황만 보면 웃기고 창피하기까지 하지만, 새벽은 빚어놓은 것처럼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이런 곳에서 혼자 뭐하고 있냐?”
그러자 그를 빤히 보던 새벽이 펜스 쪽으로 걸어가,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켰다.
“저 아래.”
여름밤은 새벽의 옆으로 다가갔다. 높게 세워진 녹색 철제 펜스 너머로 아직도 몇몇 불이 들어와 있는 건물들의 그림자가 보였다. 건물들도,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도 아주 정적이고 작아 보였다. 어두워서 윤곽만이 보이는지라 몇 개는 이쪽을 향해 서 있는 무언가처럼 보였다.
“여름밤. 너는 이걸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어?”
여름밤은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당황했다.
“생각…이랄 게 있을까, 그냥 내려다보는 건데. 어둡구나, 다들 잠들었겠구나 정도?”
여름밤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새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 아래는 어두워.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는 저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 어려워. 하지만 나는 아주 가끔씩, 무심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런 것들을 깨닫게 돼.”
그의 눈은 주변의 어둠과 동화된 것처럼 한층 어두워 보였다. 처음부터 밝은 느낌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보니 귀신 얼굴보다도 더 으스스했다. 여름밤은 그 빨려들 듯한 눈을 마주한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새벽은 마치 죽은 것 같은 눈동자로 여름밤을 보고 있었다.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여름밤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갑자기 좀 추워진 듯한 기분이 든다.
눈을 돌린 새벽이 앞으로 걸어가며 펜스 위에 손을 얹었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순간 야경도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런 것들을 알고 나면 내가 함부로 거기에 끼어들어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어. 내가 손을 쓰면 상황이 더 나아질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고향에서는 어른들이 말씀하셨어. 그 사람의 일은 그 사람이 해결하게 두라고. 함부로 간섭하지 말라고. 그게 맞는 거라고. 하지만 지켜보기만 하는 건 괴로운 일이라고 생각해.”
여름밤은 말없이 새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유성이랑 무슨 일 있나?’
잠시 생각하던 여름밤이 우물거리다 말했다.
“어……. 나도 그런 적 있어. 그런 거 있잖아, 우연히 친구의 비밀을 알아버렸다든가. 그러면 진짜 좀 그렇지. 이걸 모른 척해야 하나, 아니면 알고 있다고 먼저 말해줘야 하나 고민도 되고.”
“그럼 어느 쪽이 맞다고 생각해?”
새벽이 여름밤을 돌아보았다.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네 말대로 스스로 해결하도록 놓아둘 수도 있는 일이지만,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도와주는 편이 좋은 게 아닐까.”
“좋다는 건 결과가 좋을 거란 거야, 아니면 동기가 좋다는 거야?”
“어…….”
거기까지는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머뭇거리던 여름밤은 뒷머리를 긁적이다, 곧 어색하게 웃었다.
“어느 쪽이든. 좋은 게 좋은 거잖아. 도왔다는 사실 자체로도 무언가 남는 게 있겠지.”
그러자 새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막연한 이야기구나.”
‘뭔가 잘못 말했나?’
여름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 더 구체적인 답을 바라고 물어본 걸까? 아무래도 새벽이 원한 대답은 이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나 우려와는 달리, 다음 순간 새벽은 미소 짓고 있었다. 언제나 무표정한 그의 미소는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그런 막연함이 사람다운 거라고 생각해. 참 다행이야.”
“다행이라니, 무슨 소리야?”
새벽은 손가락을 뻗어 앞쪽을 가리켰다. 인공적인 불빛이 솟아 있는 텅 빈 어둠 속을.
“내가 처음 이 도시에 왔을 때는 이곳 사람들이 많이 야박해 보였어. 모두가 확실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고, 득이나 해가 되는 일이 아니라면 신경 쓰지 않아. 나는 산골에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그런 작은 마을에서 왔으니까, 이 정도로 스스로에게만 고립된 사람들은 처음 봤거든. 혹시 너도 그런 사람들과 같으면 어쩌지, 걱정했어.”
“그게 뭐야? 그래서, 안 그런 놈이라 다행이냐?”
여름밤은 싱겁다는 듯이 웃었다.
“그냥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
새벽이 옆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여름밤은 물끄러미 새벽을 마주 보았다.
‘…그런데 내가 여기 뭐하러 왔더라?’
순간 떠오른 의문에 여름밤이 흠칫 소리쳤다.
“아! 찬비! 새벽아, 혹시 찬비 여기 안 왔어?”
“내가 여기 온 이후로 올라온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여름밤.”
“그래? 이놈은 도대체 어딜 간 거야.”
“왜? 찬비한테 무슨 일 있어?”
여름밤은 볼을 긁적였다.
“아니, 무슨 일은 아니고. 자다가 일어나 보니까 없어서. 평소 같았으면 그냥 잠깐 어디 갔으려니 하고 다시 잤을 텐데, 어제오늘 그놈 좀 이상했거든. 기분도 안 좋은 거 같고, 나 피해 다니고, 거짓말도 하는 것 같고. …이런 말 했다고 얘기하지는 마라.”
“흠, 어쨌든 이리로는 안 왔어.”
“옥상 말고 또 갈 데가 어디 있지?”
새벽은 허공을 보며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유성이는 가끔 새벽에 남의 방에 가거든. 교칙 위반이지만… 지금까지 걸린 적은 없어. 찬비도 그런 거 아냐?”
그러나 여름밤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찬비는… 알게 모르게 다른 애들이랑 거리를 두려는 게 있잖아. 다른 방에 간 건 아닐 거 같아. 그런 거였으면 나한테 먼저 말했을 거고. 이건 솔직히 감인데, 뭔가 나한테 말 못할 일이 생긴 것 같아. 대체 어디 간 거지? 혹시… 밖으로 나갔다든가?”
여름밤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자 새벽도 따라서 미간을 찌푸렸다.
“나갔다고 하니 생각났는데, 나 아까 여기서 무언가 봤어.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는데… 무언가가 기숙사 건물에서 빠져나와서 후문 쪽 담을 넘어서 나갔어.”
여름밤은 두 눈을 크게 떴다.
“혹시 어디로 가는지도 봤어?”
“공장 지대 쪽인 거 같았어.”
새벽이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그럼 네가 봤다는 게 찬비인가 보다. 나도 가봐야겠다.”
“잠깐만, 여름밤.”
곧바로 뒤로 돌아 계단으로 향하던 그때, 새벽이 여름밤을 불러 세웠다.
“…내가 봤다는 그 ‘무언가’, 사람 같지는 않았어. 아마 찬비는 아닐 거야.”
하지만 여름밤은 고개를 저었다.
“어두웠다며. 다른 갈 만한 데도 없으니까 아마 그게 찬비 맞을 거 같다.”
“그냥 방에서 기다리는 게 낫지 않아? 금방 다시 돌아올 수도 있잖아.”
그 말에 조금 생각하던 여름밤이 다시 고개를 저었다.
“말도 못하고 나간 거면 뭔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일 수도 있잖아. 그렇게 생각하면 가만히 있기도 좀 그러니까.”
마냥 기다리기에는 찬비의 어두운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원래 문제가 있다고 친구를 피할 성격이 아니다. 그런데도 자신을 피하고 말없이 어디론가 간 걸 보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게 분명했다.
‘무슨 일인지 알아야 도와주지.’
여름밤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교칙을 어기면서까지 가는 건 좀 아니지 않아? 걸리면 징계야.”
새벽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들키기 전에 금방 한 바퀴 돌고 올게. 요즘 나 달리기가 많이 빨라졌거든.”
여름밤은 새벽이 다시 말을 붙이기 전에 잽싸게 계단을 내려가 사라졌다.
“…저렇게 두는 게 맞는 걸까?”
중얼거리는 새벽의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초조함이 묻어났다.
의심 (2)
그렇게 방안을 서성인 지 얼마나 지났을까?
여전히 찬비는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여름밤은 점점 마음이 불안해졌다.
결국 그는 옥상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밤중에 바람을 쐬러 나간다면 옥상뿐이었다. 원칙적으로 통금 시간 이후 기숙사 건물 밖으로 나가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으니까.
옥상 정원은 새벽에도 학생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여름이 되면 열대야로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공부를 하다 옥상으로 쉬러 나오는 애들이 종종 있었다.
찬비는 요즘 홀로 무언가 고민하고 있는 듯했으니, 잠이 잘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바람을 쐬러 옥상 정원에 나갔을 것이다.
여름밤은 부지런히 계단을 올랐다.
“…아무도 없잖아.”
그러나 여름밤의 기대와는 달리 옥상 정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행여나 학생들이 떨어질까 옥상 모서리에 높게 쳐진 펜스, 그리고 그 아래 낮게 자란 관상목들과 장식품들의 그림자만이 스산하게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그림자 사이, 무언가가 그 가운데 흔들리지 않고 꼿꼿이 서 있었다.
“뭐지?”
사람 그림자? 작은 동상 같기도 했다.
악몽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해, 하루가 멀다 하고 옥상을 드나들곤 하는 여름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알기로 옥상에 이런 구조물은 없었다.
‘새로 갖다 놨나?’
여름밤은 꼿꼿이 서 있는 그 실루엣 쪽으로 움직였다.
서너 걸음쯤 거리를 두었을 때, 갑자기 그것이 움직이며 이쪽을 돌아보았다. 여름밤은 어깨를 들썩이며 깜짝 놀랐다.
“안녕, 여름밤.”
익숙한 목소리가 여름밤의 귀에 들렸다. 눈동자만 있는 검은 그림자가 이쪽으로 다가오며 말을 하고 있었다. 어깨쯤에나 올 듯한 키였다.
이윽고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바가지 머리에 반쯤 뜬 것 같은 눈이 보였다. 위아래 모두 검은 옷을 입은 새벽의 얼굴에 달빛으로 그늘이 져 있었다. 순간 뭔가 싶어 겁을 먹었던 여름밤이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는 잘도 나를 버려두고 사라졌구나.”
…그랬지.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새벽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동상이라고 착각한 탓일까. 사실 새벽이었다는 걸 안 시점에서 더 이상 겁먹을 이유가 없을 텐데도, 어쩐지 그 얼굴은 조각상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새벽이 자신의 바로 앞까지 다가오자 겁을 먹은 여름밤이 슬슬 뒷걸음질 쳤다.
“아, 아까 일이라면 미안. 그…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그는 말을 더듬으며 황급히 사과했다. 하지만 여전히 새벽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대신 미동도 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화나지 않았어. 네가 다음번에 치킨을 산다면 그걸로 됐어.”
억양 없는 목소리가 오히려 더 화난 것처럼 들렸다. 하긴, 그야 좀 친해지나 싶은 사이에 말도 없이 사라지면 많이 서운할 것이다.
“알았어. 사 준다.”
“약속.”
새벽이 여름밤의 얼굴 앞에 새끼손가락을 내밀어왔다. 여름밤은 처음에 뭔지 몰라 멍하니 있다가, 한참 후에야 새끼손가락을 마주 걸었다. 도장을 찍고 복사까지 완벽히 마쳤다.
남고생 둘이서 이게 뭐하는 짓인지. 여름밤은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상황만 보면 웃기고 창피하기까지 하지만, 새벽은 빚어놓은 것처럼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이런 곳에서 혼자 뭐하고 있냐?”
그러자 그를 빤히 보던 새벽이 펜스 쪽으로 걸어가,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켰다.
“저 아래.”
여름밤은 새벽의 옆으로 다가갔다. 높게 세워진 녹색 철제 펜스 너머로 아직도 몇몇 불이 들어와 있는 건물들의 그림자가 보였다. 건물들도,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도 아주 정적이고 작아 보였다. 어두워서 윤곽만이 보이는지라 몇 개는 이쪽을 향해 서 있는 무언가처럼 보였다.
“여름밤. 너는 이걸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어?”
여름밤은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당황했다.
“생각…이랄 게 있을까, 그냥 내려다보는 건데. 어둡구나, 다들 잠들었겠구나 정도?”
여름밤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새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 아래는 어두워.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는 저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 어려워. 하지만 나는 아주 가끔씩, 무심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런 것들을 깨닫게 돼.”
그의 눈은 주변의 어둠과 동화된 것처럼 한층 어두워 보였다. 처음부터 밝은 느낌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보니 귀신 얼굴보다도 더 으스스했다. 여름밤은 그 빨려들 듯한 눈을 마주한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새벽은 마치 죽은 것 같은 눈동자로 여름밤을 보고 있었다.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여름밤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갑자기 좀 추워진 듯한 기분이 든다.
눈을 돌린 새벽이 앞으로 걸어가며 펜스 위에 손을 얹었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순간 야경도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런 것들을 알고 나면 내가 함부로 거기에 끼어들어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어. 내가 손을 쓰면 상황이 더 나아질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고향에서는 어른들이 말씀하셨어. 그 사람의 일은 그 사람이 해결하게 두라고. 함부로 간섭하지 말라고. 그게 맞는 거라고. 하지만 지켜보기만 하는 건 괴로운 일이라고 생각해.”
여름밤은 말없이 새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유성이랑 무슨 일 있나?’
잠시 생각하던 여름밤이 우물거리다 말했다.
“어……. 나도 그런 적 있어. 그런 거 있잖아, 우연히 친구의 비밀을 알아버렸다든가. 그러면 진짜 좀 그렇지. 이걸 모른 척해야 하나, 아니면 알고 있다고 먼저 말해줘야 하나 고민도 되고.”
“그럼 어느 쪽이 맞다고 생각해?”
새벽이 여름밤을 돌아보았다.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네 말대로 스스로 해결하도록 놓아둘 수도 있는 일이지만,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도와주는 편이 좋은 게 아닐까.”
“좋다는 건 결과가 좋을 거란 거야, 아니면 동기가 좋다는 거야?”
“어…….”
거기까지는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머뭇거리던 여름밤은 뒷머리를 긁적이다, 곧 어색하게 웃었다.
“어느 쪽이든. 좋은 게 좋은 거잖아. 도왔다는 사실 자체로도 무언가 남는 게 있겠지.”
그러자 새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막연한 이야기구나.”
‘뭔가 잘못 말했나?’
여름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 더 구체적인 답을 바라고 물어본 걸까? 아무래도 새벽이 원한 대답은 이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나 우려와는 달리, 다음 순간 새벽은 미소 짓고 있었다. 언제나 무표정한 그의 미소는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그런 막연함이 사람다운 거라고 생각해. 참 다행이야.”
“다행이라니, 무슨 소리야?”
새벽은 손가락을 뻗어 앞쪽을 가리켰다. 인공적인 불빛이 솟아 있는 텅 빈 어둠 속을.
“내가 처음 이 도시에 왔을 때는 이곳 사람들이 많이 야박해 보였어. 모두가 확실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고, 득이나 해가 되는 일이 아니라면 신경 쓰지 않아. 나는 산골에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그런 작은 마을에서 왔으니까, 이 정도로 스스로에게만 고립된 사람들은 처음 봤거든. 혹시 너도 그런 사람들과 같으면 어쩌지, 걱정했어.”
“그게 뭐야? 그래서, 안 그런 놈이라 다행이냐?”
여름밤은 싱겁다는 듯이 웃었다.
“그냥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
새벽이 옆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여름밤은 물끄러미 새벽을 마주 보았다.
‘…그런데 내가 여기 뭐하러 왔더라?’
순간 떠오른 의문에 여름밤이 흠칫 소리쳤다.
“아! 찬비! 새벽아, 혹시 찬비 여기 안 왔어?”
“내가 여기 온 이후로 올라온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여름밤.”
“그래? 이놈은 도대체 어딜 간 거야.”
“왜? 찬비한테 무슨 일 있어?”
여름밤은 볼을 긁적였다.
“아니, 무슨 일은 아니고. 자다가 일어나 보니까 없어서. 평소 같았으면 그냥 잠깐 어디 갔으려니 하고 다시 잤을 텐데, 어제오늘 그놈 좀 이상했거든. 기분도 안 좋은 거 같고, 나 피해 다니고, 거짓말도 하는 것 같고. …이런 말 했다고 얘기하지는 마라.”
“흠, 어쨌든 이리로는 안 왔어.”
“옥상 말고 또 갈 데가 어디 있지?”
새벽은 허공을 보며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유성이는 가끔 새벽에 남의 방에 가거든. 교칙 위반이지만… 지금까지 걸린 적은 없어. 찬비도 그런 거 아냐?”
그러나 여름밤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찬비는… 알게 모르게 다른 애들이랑 거리를 두려는 게 있잖아. 다른 방에 간 건 아닐 거 같아. 그런 거였으면 나한테 먼저 말했을 거고. 이건 솔직히 감인데, 뭔가 나한테 말 못할 일이 생긴 것 같아. 대체 어디 간 거지? 혹시… 밖으로 나갔다든가?”
여름밤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자 새벽도 따라서 미간을 찌푸렸다.
“나갔다고 하니 생각났는데, 나 아까 여기서 무언가 봤어.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는데… 무언가가 기숙사 건물에서 빠져나와서 후문 쪽 담을 넘어서 나갔어.”
여름밤은 두 눈을 크게 떴다.
“혹시 어디로 가는지도 봤어?”
“공장 지대 쪽인 거 같았어.”
새벽이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그럼 네가 봤다는 게 찬비인가 보다. 나도 가봐야겠다.”
“잠깐만, 여름밤.”
곧바로 뒤로 돌아 계단으로 향하던 그때, 새벽이 여름밤을 불러 세웠다.
“…내가 봤다는 그 ‘무언가’, 사람 같지는 않았어. 아마 찬비는 아닐 거야.”
하지만 여름밤은 고개를 저었다.
“어두웠다며. 다른 갈 만한 데도 없으니까 아마 그게 찬비 맞을 거 같다.”
“그냥 방에서 기다리는 게 낫지 않아? 금방 다시 돌아올 수도 있잖아.”
그 말에 조금 생각하던 여름밤이 다시 고개를 저었다.
“말도 못하고 나간 거면 뭔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일 수도 있잖아. 그렇게 생각하면 가만히 있기도 좀 그러니까.”
마냥 기다리기에는 찬비의 어두운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원래 문제가 있다고 친구를 피할 성격이 아니다. 그런데도 자신을 피하고 말없이 어디론가 간 걸 보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게 분명했다.
‘무슨 일인지 알아야 도와주지.’
여름밤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교칙을 어기면서까지 가는 건 좀 아니지 않아? 걸리면 징계야.”
새벽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들키기 전에 금방 한 바퀴 돌고 올게. 요즘 나 달리기가 많이 빨라졌거든.”
여름밤은 새벽이 다시 말을 붙이기 전에 잽싸게 계단을 내려가 사라졌다.
“…저렇게 두는 게 맞는 걸까?”
중얼거리는 새벽의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초조함이 묻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