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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또 다른 마술사 (3)
“일단 마술이 만들어진 배경부터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군요. 여름밤 님은 혹시 마술의 시초가 누군지 아시나요?”
“어… 아니요.”
바텀은 예상했다는 듯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여름밤 님은 마술에 대해 전혀 모르시는 것 같군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막 발견된 적성자라면 이제부터 차차 알아가면 되니까요. 마술은 지금으로부터 5천 년 전, 대마술사 프랜시스 님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아.”
여름밤은 작은 감탄사를 토해냈다.
꿈속에서 마주친, 살아 움직이는 갑옷. 꿈속 세계를 만든 인물. 그 또한 이름이 프랜시스다.
‘설마 동일 인물일까? 그쪽에서도 5천 년 전에 어쨌다는 둥 얘기했고.’
바텀이 고개를 끄덕였다.
“프랜시스 님의 이름은 들어본 적 있으신가 보군요. 지금이야 일반인들은 존재조차 알지 못하지만, 5천 년 전만 하더라도 괴물이 아주 많았습니다. 마술이란 아직 과학이 없던 시대에 연약한 인간이 괴물들과 대적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생각’, ‘관측’, ‘작동’이라는 대마술사 프랜시스 님께서 고안해 내신 기본 원리를 토대로 해서 말이죠.”
“저기, 잠시만요.”
여름밤이 손을 들고 말했다.
“그 괴물이란 건 도대체 정체가 뭔가요? 어디에서 생겨난 거죠?”
바텀은 검지로 콧등을 문지르며 고민하는 듯하다, 곧 입을 열었다.
“괴물이 어디에서 생겨났냐라… 원래 있었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겠군요. 왜, 언제, 어떻게 괴물이 존재하게 되었는가? 그것에 대해 정확히 밝혀진 것은 아직 없습니다. 확실한 건 그것들이 항상 피에 굶주려 있다는 거죠.”
“손톱을 먹고 사람이 된 쥐나, 사람이 되고 싶어서 간을 먹었다는 구미호 얘기 들어본 적 있지? 그거랑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면 돼.”
굿펠로가 바텀의 말에 덧붙여 말했다.
“기본적으로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비할 수 없는 힘과 살육 본능을 가지고 있죠. 굿펠로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먹은 것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흠, 어쨌든 중요한 건 괴물이 아닙니다. 대마술사 프랜시스 님이죠. 프랜시스 님은 인간들을 위해 마술을 창안했지만, 동시에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닫고 계셨습니다. 마술은 특별한 사람, ‘적성자’가 아니면 쓸 수 없습니다. 그 적성자 또한 웬만한 재능을 갖고 태어난 게 아니고서는 상당 기간 수련을 거쳐야 합니다. 때문에 그냥 마술을 개발한 것만으로는 괴물들을 모두 물리칠 수 없었죠. 그래서 프랜시스 님은 당시 존경받던 동양의 마술사, 진과 함께 이 세상에 있는 괴물들을 모두 한꺼번에 소탕할 수 있는 마술을 연구하셨습니다.”
여름밤은 또다시 입을 작게 벌렸다.
아는 이름이 하나 더 나왔다.
진. 현재 여름밤에게 걸려 있는, 꿈속과 현실을 연결하는 마술을 만든 마술사다. 프랜시스는 진에 대해 ‘그의 마술은 늘 말썽이 많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둘은 마술을 완성하게 됩니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그곳으로 모든 괴물들을 이동시켜 버리는 거대한 마술이었습니다. 다만 이 마술을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마술을 발동시키는 마술사 또한 새로운 세계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프랜시스 님은 인간들을 위해 괴물들과 함께 그 세계에 갇히는 길을 택하셨죠. 비록 마술이 완벽하지는 않았는지 역사적으로 가끔씩 괴물이 출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만, 프랜시스 님의 그 마술을 기점으로 괴물들이 대폭 줄어들고, 인간이 비로소 번영하기 시작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분을 일반인들이 전혀 모르고 살아간다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텀이 감격에 젖은 눈빛으로 허공을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꿈속의 그 갑옷이 지금 바텀의 이야기에 나오는 프랜시스가 맞는 것 같다.
그 갑옷이 이렇게나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게 솔직히 의외였다. 잠깐 만났을 뿐이지만 상당히 제멋대로 같았는데. 아직도 마술의 술식이 새겨질 때의 두통이 생생하다.
여름밤은 조용히 이를 갈았다.
“저, 그런데 보호 대상 이야기는 언제 나오는 거죠?”
그가 다시 손을 들고 말했다. 그러자 감격에 젖어 있던 바텀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바텀이 쑥스러운 듯 헛기침을 했다.
“크흠, 지금 막 이야기 하려던 참입니다. 어쨌든, 그런 인간이라기보다는 신에 가까운 능력을 지닌 프랜시스 님에게도 연인이 있었습니다. ‘하야(夏夜)’라고 하는 평범한 여자였죠. 심지어 그녀는 마술사도 아니었습니다.”
하야에 대해 언급하는 바텀의 얼굴에는 왠지 모를 질투심이 묻어났다.
“프랜시스가 다른 세계로 떠나자, 하야는 매우 슬퍼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진이 하야에게 한 가지 마술을 걸어주었죠. 바로 꿈을 통해서 프랜시스 님이 계신 세계로 갈 수 있는 마술입니다. 마술을 통해 하야는 잠을 잘 때마다 그 세계로 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꿈을 통해… 다른 세계로 가는 마술.”
여름밤은 주먹을 꾹 쥐었다.
잠이 들면 다른 세계로 간다니,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 않은가? 괴물과 프랜시스가 있는 세계라는 것도 딱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왜냐하면…….
“하야는 옛날 사람이잖아요. 5천 년 전이라면 벌써 죽어도 500번은 더 죽었을 텐데, 그게 지금 와서 어떤 가치를 갖는다는 거죠?”
그렇다.
그는 그저 한여름밤일 뿐이다. 진이 하야에게 그런 마술을 걸었든 어쨌든, 자신은 하야가 아니다. 5천 년 전에 살았다는 그녀와도, 프랜시스와도, 진과도 전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가 대체 왜 잠들 때마다 꿈속으로 간단 말인가?
하지만 바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야는 살아 있습니다. 아니, 살아났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군요. 하야는 다른 모습으로 현세에 환생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다른 세계와 닿는 마술 또한 살아난 겁니다.”
“그리고 그 환생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보호 대상이야.”
여름밤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럼… 설마 내가 바로 그 보호 대상인가. 내가 그 하야의 환생인 거고… 그래서 매일 밤 꿈을 통해 다른 세계로 가고 있는 거야.’
꿈을 꾸는 이유. 그토록 알고 싶던 것을 드디어 알았는데도 여름밤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5천 년이나 전 인물이 한 일 때문에, 아무 잘못도 없는 자신이 환생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그런 꿈을 꿔야 한다는 게 아닌가. 본 적도 없는 전생의 자신에 대해 분노가 치밀었다.
동시에 여름밤은 쓸쓸히 미소 지었다. 그는 그녀를 동정하고 있었다.
그 말은… 그녀도 자신과 똑같이 매일 밤 괴로워했다는 소리다.
그리고 굿펠로와 바텀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보호 대상과 접촉하면 안 된다고 아까 그랬는데.’
“그런데… 두 분은 그 하야란 사람의 환생을 보호하면서도 접촉하면 안 되는 모양인데, 왜 그런 건가요?”
“마술사들 간의 협약이야.”
무릎 위에 앉아 있던 굿펠로가 고개를 뒤로 젖혀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바텀은 맞은편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하야의 환생은 마술사가 아닌 일반인입니다. 마술사들은 일반인을 마술사의 일에 끌어들여서는 안 됩니다. 때문에 프랜시스 님이 계신 세계에 닿을 수 있는 마술이 있는데도, 섣불리 하야의 환생에게 접근하지 않고 있는 것이죠. 요정왕 오베론 님은 적어도 하야의 환생이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게 예의라고도 하셨습니다. 뭐, 처음에는 동서양 최고의 마술 그룹인 십이지와 저희 마술 협회 간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하야의 환생에 대한 이야기가 새어 나가면서 다른 많은 마술사 그룹들도 동의하게 된 거죠. 하야의 환생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서로 접촉하지 않고 기다리기로요.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괴물의 존재입니다.”
“괴물…….”
드디어 나올 얘기가 나왔다.
꿈속에서 자꾸만 튀어나오는 괴물. 그날 본 호랑이 괴물의 그림자와, 굿펠로를 쫓고 있던 타조 괴물, 그리고 이곳에 쌓여 있던 괴물들의 시체.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괴물들이 이 도시를 어슬렁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진 님의 마술은… 이런 말씀드리긴 뭐합니다만, 항상 말썽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남들은 흉내도 내지 못할 마술을 손쉽게 사용하는 대단한 마술사이신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마술에는 항상 빈틈이나 부작용이 있었죠. 괴물의 출현도 마찬가집니다. 프랜시스 님을 그리워한 하야가 꿈을 통해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것까지는 좋았습니다. 문제는 그녀가 꿈을 꿀 때, 그쪽 세계에 있는 괴물들이 이쪽으로 넘어올 수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역행이 일어난 겁니다.”
“동양 마술사들은 일 처리가 엉망이라니까!”
굿펠로가 새된 목소리로 외치자, 바텀이 눈을 찡그리며 웃었다.
“뭐, 그런 식으로 일반화할 문제는 아닙니다. 중요한 건 그것 때문에 저희들이 이곳에 파견되었다는 거죠. 하야의 환생, 다시 말해 보호 대상의 꿈을 통해 괴물들이 계속 나오니까 말입니다. 그 괴물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말도 안 돼! 보호는 해야 하는데 접촉은 안 된다니! 위에서는 제대로 된 정보도 안 주고, 그것 때문에 얼마나 우리가 고생하고 있는데!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먹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 먹고!”
굿펠로가 볼을 잔뜩 부풀리며 허공에 주먹질을 했다.
무릎 위에서 버둥거리는 그녀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으며, 여름밤은 가슴 한 켠이 더욱 따끔거려 왔다.
그 말은… 굿펠로와 바텀은 자신 때문에 먼 타국에서 한국까지 와서 고생하고 있다는 소리다.
바텀마저도 크게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죠. 2년만 지나면 이제 보호 대상도 성년이니까요.”
“어… 빨리 시간이 갔으면 좋겠네요.”
여름밤이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정말 그렇다는 듯, 바텀과 굿펠로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축 처진 세 명 탓에 폐병원 부지에는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 문득 여름밤이 입을 열며 정적을 깼다.
“그런데… 왜 마술사들은 일반인을 끌어들이는 걸 피하는 거죠? 괴물이니 마술이니, 저는 이때껏 전혀 몰랐어요.”
그러자 바텀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어렸다.
“지금껏 마술과 관련한 일에 일반인을 끌어들여서 좋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괴물이 사라진 이후, 존재가 드러나는 족족… 마술사는 사냥당했습니다. 아마 중세 시대의 마녀사냥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질병, 기근, 재해…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전부 마술사들의 탓으로 덮어씌우고 죽였죠. 마녀사냥도 그런 일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 식으로 죽은 이들은 대부분 그전까지 마술을 이용해서 괴물들에게서 사람들을 지켜주던 사람들이거나, 그 후손들입니다. 이것이 마술사들이 자신들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을 꺼려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도 그건 옛날 얘기잖아요. 요즘 세상에 고작 한 사람 때문에 재해가 일어날 리 없다는 건 다들 안다구요.”
“…그게 일어날 수 있다면요?”
“…….”
설마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만 해도 태풍을 불러올 수 있고, 바텀은 지진을 일으킬 수 있어. 도시 하나 쑥대밭으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야.”
굿펠로가 신난 듯이 입을 열었다.
작은 파괴신을 보는 듯했다. 설마 하니 굿펠로가 정말 태풍을 불러오지는 않겠지만…….
여름밤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괴물이 활개를 치던 옛날에는… 마술사는 괴물을 물리쳐 주는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괴물 다음으로 이질적인 존재일 뿐이죠.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마술사들을 경계할 겁니다. 미지에 대한 공포,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적대하는 것, 그것은 지적 생명체의 본능이니까요. 그러니 이질적인 존재인 우리들은 정체를 숨기고 살아야 하는 겁니다. 표면적으로 협회도, 저희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행동하고 있는 이유죠. 괴물을 잡을 때 또한 일반인의 주의를 끌지 않도록, 가능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괴물과 싸울 때는 가능한 인적이 없는 곳에서 결계를 친 뒤에 싸우고, 싸운 흔적도 지우고, 괴물의 사체도 땅에 묻어서 숨기죠.”
“그런…….”
그런 건 말도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이미 그는 납득하고 있었다.
만일 자신이 꿈속에서 프랜시스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푸른 여인의 모습으로 변하는 마술을 직접 써 보지 않았다면, 매일 이상한 꿈을 꾸는 사람이 아니라면… 지금 이 사람들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을까?
아니, 분명 수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피하려 하고, 무서워했을 것이다.
결국 여름밤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러자 바텀이 눈썹을 들썩이더니 다시 미소 지었다.
“이제 갓 마술에 눈을 뜬 초심자에게는 조금 가혹한 이야기였을까요? 하지만 그렇게 우울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마술사들 중에도 평범하게 일반인들과 어울리며 행복한 삶을 살다 가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반면, 일반인이면서도 평생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지요. 마술사냐, 마술사가 아니냐는 것이 그 사람의 행복을 결정짓지는 않습니다. 전부 스스로 하기 나름이죠.”
그러나 여름밤은 그저 마술사와 일반인 사이에 사라질 수 없는 불신의 골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우울해진 것뿐이었다.
‘…내가 가능한 눈에 띄지 않도록 죽은 듯이 살고 있는 이유랑도 같지.’
그래도 위로가 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을 들으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냥 몇몇 바보 같은 인간들이 서로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을 뿐이야.”
굿펠로가 여름밤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여름밤은 한 손으로 굿펠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굿펠로가 소리 내어 웃었다.
꼭 고양이가 갸릉거리는 것 같다. 이렇게 해맑고 잘 웃는 아이가 무서울 리 없다.
여름밤은 그렇게 애써 생각했다.
“그럼 이쯤 하고 일어날까요?”
바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던 바텀이 얼굴을 찡그리며 옆구리 부근을 짚었다. 그가 처음 걸어올 때도 느꼈지만, 어딘가 조금 불편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어디 다치셨나요?”
“예. 얼마 전에 위험한 녀석을 하나 놓쳤거든요. 슬슬 본래의 업무로 돌아가야겠습니다.”
“그… 보호 대상 주변의 괴물을 잡는 거요?”
여름밤은 문득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시간을 보았다. 저녁 8시 45분. 기숙사 통금까지 15분밖에 남지 않았다.
“아, 저도 슬슬 들어가 봐야…….”
여름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굿펠로는 일어나는 여름밤의 무릎에서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내려왔다.
“오빠, 또 만나.”
굿펠로가 그를 올려다보며 손을 흔들었다. 천진한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여름밤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 또 보자.”
“그럼 안녕히. 가죠, 굿펠로 님.”
바텀의 말이 떨어지자, 굿펠로는 바텀의 곁으로 뛰어갔다. 둘은 여름밤과 굿펠로가 왔던 것처럼 공중을 날아 순식간에 사라졌다.
여름밤은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곤 기숙사 방향으로 빠른 걸음을 옮겼다.
또 다른 마술사 (3)
“일단 마술이 만들어진 배경부터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군요. 여름밤 님은 혹시 마술의 시초가 누군지 아시나요?”
“어… 아니요.”
바텀은 예상했다는 듯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여름밤 님은 마술에 대해 전혀 모르시는 것 같군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막 발견된 적성자라면 이제부터 차차 알아가면 되니까요. 마술은 지금으로부터 5천 년 전, 대마술사 프랜시스 님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아.”
여름밤은 작은 감탄사를 토해냈다.
꿈속에서 마주친, 살아 움직이는 갑옷. 꿈속 세계를 만든 인물. 그 또한 이름이 프랜시스다.
‘설마 동일 인물일까? 그쪽에서도 5천 년 전에 어쨌다는 둥 얘기했고.’
바텀이 고개를 끄덕였다.
“프랜시스 님의 이름은 들어본 적 있으신가 보군요. 지금이야 일반인들은 존재조차 알지 못하지만, 5천 년 전만 하더라도 괴물이 아주 많았습니다. 마술이란 아직 과학이 없던 시대에 연약한 인간이 괴물들과 대적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생각’, ‘관측’, ‘작동’이라는 대마술사 프랜시스 님께서 고안해 내신 기본 원리를 토대로 해서 말이죠.”
“저기, 잠시만요.”
여름밤이 손을 들고 말했다.
“그 괴물이란 건 도대체 정체가 뭔가요? 어디에서 생겨난 거죠?”
바텀은 검지로 콧등을 문지르며 고민하는 듯하다, 곧 입을 열었다.
“괴물이 어디에서 생겨났냐라… 원래 있었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겠군요. 왜, 언제, 어떻게 괴물이 존재하게 되었는가? 그것에 대해 정확히 밝혀진 것은 아직 없습니다. 확실한 건 그것들이 항상 피에 굶주려 있다는 거죠.”
“손톱을 먹고 사람이 된 쥐나, 사람이 되고 싶어서 간을 먹었다는 구미호 얘기 들어본 적 있지? 그거랑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면 돼.”
굿펠로가 바텀의 말에 덧붙여 말했다.
“기본적으로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비할 수 없는 힘과 살육 본능을 가지고 있죠. 굿펠로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먹은 것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흠, 어쨌든 중요한 건 괴물이 아닙니다. 대마술사 프랜시스 님이죠. 프랜시스 님은 인간들을 위해 마술을 창안했지만, 동시에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닫고 계셨습니다. 마술은 특별한 사람, ‘적성자’가 아니면 쓸 수 없습니다. 그 적성자 또한 웬만한 재능을 갖고 태어난 게 아니고서는 상당 기간 수련을 거쳐야 합니다. 때문에 그냥 마술을 개발한 것만으로는 괴물들을 모두 물리칠 수 없었죠. 그래서 프랜시스 님은 당시 존경받던 동양의 마술사, 진과 함께 이 세상에 있는 괴물들을 모두 한꺼번에 소탕할 수 있는 마술을 연구하셨습니다.”
여름밤은 또다시 입을 작게 벌렸다.
아는 이름이 하나 더 나왔다.
진. 현재 여름밤에게 걸려 있는, 꿈속과 현실을 연결하는 마술을 만든 마술사다. 프랜시스는 진에 대해 ‘그의 마술은 늘 말썽이 많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둘은 마술을 완성하게 됩니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그곳으로 모든 괴물들을 이동시켜 버리는 거대한 마술이었습니다. 다만 이 마술을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마술을 발동시키는 마술사 또한 새로운 세계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프랜시스 님은 인간들을 위해 괴물들과 함께 그 세계에 갇히는 길을 택하셨죠. 비록 마술이 완벽하지는 않았는지 역사적으로 가끔씩 괴물이 출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만, 프랜시스 님의 그 마술을 기점으로 괴물들이 대폭 줄어들고, 인간이 비로소 번영하기 시작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분을 일반인들이 전혀 모르고 살아간다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텀이 감격에 젖은 눈빛으로 허공을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꿈속의 그 갑옷이 지금 바텀의 이야기에 나오는 프랜시스가 맞는 것 같다.
그 갑옷이 이렇게나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게 솔직히 의외였다. 잠깐 만났을 뿐이지만 상당히 제멋대로 같았는데. 아직도 마술의 술식이 새겨질 때의 두통이 생생하다.
여름밤은 조용히 이를 갈았다.
“저, 그런데 보호 대상 이야기는 언제 나오는 거죠?”
그가 다시 손을 들고 말했다. 그러자 감격에 젖어 있던 바텀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바텀이 쑥스러운 듯 헛기침을 했다.
“크흠, 지금 막 이야기 하려던 참입니다. 어쨌든, 그런 인간이라기보다는 신에 가까운 능력을 지닌 프랜시스 님에게도 연인이 있었습니다. ‘하야(夏夜)’라고 하는 평범한 여자였죠. 심지어 그녀는 마술사도 아니었습니다.”
하야에 대해 언급하는 바텀의 얼굴에는 왠지 모를 질투심이 묻어났다.
“프랜시스가 다른 세계로 떠나자, 하야는 매우 슬퍼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진이 하야에게 한 가지 마술을 걸어주었죠. 바로 꿈을 통해서 프랜시스 님이 계신 세계로 갈 수 있는 마술입니다. 마술을 통해 하야는 잠을 잘 때마다 그 세계로 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꿈을 통해… 다른 세계로 가는 마술.”
여름밤은 주먹을 꾹 쥐었다.
잠이 들면 다른 세계로 간다니,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 않은가? 괴물과 프랜시스가 있는 세계라는 것도 딱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왜냐하면…….
“하야는 옛날 사람이잖아요. 5천 년 전이라면 벌써 죽어도 500번은 더 죽었을 텐데, 그게 지금 와서 어떤 가치를 갖는다는 거죠?”
그렇다.
그는 그저 한여름밤일 뿐이다. 진이 하야에게 그런 마술을 걸었든 어쨌든, 자신은 하야가 아니다. 5천 년 전에 살았다는 그녀와도, 프랜시스와도, 진과도 전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가 대체 왜 잠들 때마다 꿈속으로 간단 말인가?
하지만 바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야는 살아 있습니다. 아니, 살아났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군요. 하야는 다른 모습으로 현세에 환생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다른 세계와 닿는 마술 또한 살아난 겁니다.”
“그리고 그 환생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보호 대상이야.”
여름밤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럼… 설마 내가 바로 그 보호 대상인가. 내가 그 하야의 환생인 거고… 그래서 매일 밤 꿈을 통해 다른 세계로 가고 있는 거야.’
꿈을 꾸는 이유. 그토록 알고 싶던 것을 드디어 알았는데도 여름밤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5천 년이나 전 인물이 한 일 때문에, 아무 잘못도 없는 자신이 환생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그런 꿈을 꿔야 한다는 게 아닌가. 본 적도 없는 전생의 자신에 대해 분노가 치밀었다.
동시에 여름밤은 쓸쓸히 미소 지었다. 그는 그녀를 동정하고 있었다.
그 말은… 그녀도 자신과 똑같이 매일 밤 괴로워했다는 소리다.
그리고 굿펠로와 바텀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보호 대상과 접촉하면 안 된다고 아까 그랬는데.’
“그런데… 두 분은 그 하야란 사람의 환생을 보호하면서도 접촉하면 안 되는 모양인데, 왜 그런 건가요?”
“마술사들 간의 협약이야.”
무릎 위에 앉아 있던 굿펠로가 고개를 뒤로 젖혀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바텀은 맞은편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하야의 환생은 마술사가 아닌 일반인입니다. 마술사들은 일반인을 마술사의 일에 끌어들여서는 안 됩니다. 때문에 프랜시스 님이 계신 세계에 닿을 수 있는 마술이 있는데도, 섣불리 하야의 환생에게 접근하지 않고 있는 것이죠. 요정왕 오베론 님은 적어도 하야의 환생이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게 예의라고도 하셨습니다. 뭐, 처음에는 동서양 최고의 마술 그룹인 십이지와 저희 마술 협회 간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하야의 환생에 대한 이야기가 새어 나가면서 다른 많은 마술사 그룹들도 동의하게 된 거죠. 하야의 환생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서로 접촉하지 않고 기다리기로요.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괴물의 존재입니다.”
“괴물…….”
드디어 나올 얘기가 나왔다.
꿈속에서 자꾸만 튀어나오는 괴물. 그날 본 호랑이 괴물의 그림자와, 굿펠로를 쫓고 있던 타조 괴물, 그리고 이곳에 쌓여 있던 괴물들의 시체.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괴물들이 이 도시를 어슬렁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진 님의 마술은… 이런 말씀드리긴 뭐합니다만, 항상 말썽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남들은 흉내도 내지 못할 마술을 손쉽게 사용하는 대단한 마술사이신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마술에는 항상 빈틈이나 부작용이 있었죠. 괴물의 출현도 마찬가집니다. 프랜시스 님을 그리워한 하야가 꿈을 통해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것까지는 좋았습니다. 문제는 그녀가 꿈을 꿀 때, 그쪽 세계에 있는 괴물들이 이쪽으로 넘어올 수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역행이 일어난 겁니다.”
“동양 마술사들은 일 처리가 엉망이라니까!”
굿펠로가 새된 목소리로 외치자, 바텀이 눈을 찡그리며 웃었다.
“뭐, 그런 식으로 일반화할 문제는 아닙니다. 중요한 건 그것 때문에 저희들이 이곳에 파견되었다는 거죠. 하야의 환생, 다시 말해 보호 대상의 꿈을 통해 괴물들이 계속 나오니까 말입니다. 그 괴물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말도 안 돼! 보호는 해야 하는데 접촉은 안 된다니! 위에서는 제대로 된 정보도 안 주고, 그것 때문에 얼마나 우리가 고생하고 있는데!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먹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 먹고!”
굿펠로가 볼을 잔뜩 부풀리며 허공에 주먹질을 했다.
무릎 위에서 버둥거리는 그녀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으며, 여름밤은 가슴 한 켠이 더욱 따끔거려 왔다.
그 말은… 굿펠로와 바텀은 자신 때문에 먼 타국에서 한국까지 와서 고생하고 있다는 소리다.
바텀마저도 크게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죠. 2년만 지나면 이제 보호 대상도 성년이니까요.”
“어… 빨리 시간이 갔으면 좋겠네요.”
여름밤이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정말 그렇다는 듯, 바텀과 굿펠로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축 처진 세 명 탓에 폐병원 부지에는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 문득 여름밤이 입을 열며 정적을 깼다.
“그런데… 왜 마술사들은 일반인을 끌어들이는 걸 피하는 거죠? 괴물이니 마술이니, 저는 이때껏 전혀 몰랐어요.”
그러자 바텀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어렸다.
“지금껏 마술과 관련한 일에 일반인을 끌어들여서 좋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괴물이 사라진 이후, 존재가 드러나는 족족… 마술사는 사냥당했습니다. 아마 중세 시대의 마녀사냥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질병, 기근, 재해…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전부 마술사들의 탓으로 덮어씌우고 죽였죠. 마녀사냥도 그런 일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 식으로 죽은 이들은 대부분 그전까지 마술을 이용해서 괴물들에게서 사람들을 지켜주던 사람들이거나, 그 후손들입니다. 이것이 마술사들이 자신들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을 꺼려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도 그건 옛날 얘기잖아요. 요즘 세상에 고작 한 사람 때문에 재해가 일어날 리 없다는 건 다들 안다구요.”
“…그게 일어날 수 있다면요?”
“…….”
설마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만 해도 태풍을 불러올 수 있고, 바텀은 지진을 일으킬 수 있어. 도시 하나 쑥대밭으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야.”
굿펠로가 신난 듯이 입을 열었다.
작은 파괴신을 보는 듯했다. 설마 하니 굿펠로가 정말 태풍을 불러오지는 않겠지만…….
여름밤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괴물이 활개를 치던 옛날에는… 마술사는 괴물을 물리쳐 주는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괴물 다음으로 이질적인 존재일 뿐이죠.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마술사들을 경계할 겁니다. 미지에 대한 공포,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적대하는 것, 그것은 지적 생명체의 본능이니까요. 그러니 이질적인 존재인 우리들은 정체를 숨기고 살아야 하는 겁니다. 표면적으로 협회도, 저희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행동하고 있는 이유죠. 괴물을 잡을 때 또한 일반인의 주의를 끌지 않도록, 가능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괴물과 싸울 때는 가능한 인적이 없는 곳에서 결계를 친 뒤에 싸우고, 싸운 흔적도 지우고, 괴물의 사체도 땅에 묻어서 숨기죠.”
“그런…….”
그런 건 말도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이미 그는 납득하고 있었다.
만일 자신이 꿈속에서 프랜시스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푸른 여인의 모습으로 변하는 마술을 직접 써 보지 않았다면, 매일 이상한 꿈을 꾸는 사람이 아니라면… 지금 이 사람들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을까?
아니, 분명 수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피하려 하고, 무서워했을 것이다.
결국 여름밤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러자 바텀이 눈썹을 들썩이더니 다시 미소 지었다.
“이제 갓 마술에 눈을 뜬 초심자에게는 조금 가혹한 이야기였을까요? 하지만 그렇게 우울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마술사들 중에도 평범하게 일반인들과 어울리며 행복한 삶을 살다 가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반면, 일반인이면서도 평생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지요. 마술사냐, 마술사가 아니냐는 것이 그 사람의 행복을 결정짓지는 않습니다. 전부 스스로 하기 나름이죠.”
그러나 여름밤은 그저 마술사와 일반인 사이에 사라질 수 없는 불신의 골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우울해진 것뿐이었다.
‘…내가 가능한 눈에 띄지 않도록 죽은 듯이 살고 있는 이유랑도 같지.’
그래도 위로가 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을 들으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냥 몇몇 바보 같은 인간들이 서로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을 뿐이야.”
굿펠로가 여름밤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여름밤은 한 손으로 굿펠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굿펠로가 소리 내어 웃었다.
꼭 고양이가 갸릉거리는 것 같다. 이렇게 해맑고 잘 웃는 아이가 무서울 리 없다.
여름밤은 그렇게 애써 생각했다.
“그럼 이쯤 하고 일어날까요?”
바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던 바텀이 얼굴을 찡그리며 옆구리 부근을 짚었다. 그가 처음 걸어올 때도 느꼈지만, 어딘가 조금 불편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어디 다치셨나요?”
“예. 얼마 전에 위험한 녀석을 하나 놓쳤거든요. 슬슬 본래의 업무로 돌아가야겠습니다.”
“그… 보호 대상 주변의 괴물을 잡는 거요?”
여름밤은 문득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시간을 보았다. 저녁 8시 45분. 기숙사 통금까지 15분밖에 남지 않았다.
“아, 저도 슬슬 들어가 봐야…….”
여름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굿펠로는 일어나는 여름밤의 무릎에서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내려왔다.
“오빠, 또 만나.”
굿펠로가 그를 올려다보며 손을 흔들었다. 천진한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여름밤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 또 보자.”
“그럼 안녕히. 가죠, 굿펠로 님.”
바텀의 말이 떨어지자, 굿펠로는 바텀의 곁으로 뛰어갔다. 둘은 여름밤과 굿펠로가 왔던 것처럼 공중을 날아 순식간에 사라졌다.
여름밤은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곤 기숙사 방향으로 빠른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