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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꿈의 관리인 (2)
프랭클린은 금세 숲을 빠져나갔다. 숲 너머에는 놀랍게도 에메랄드처럼 푸르고 투명한 바다가 있었다. 짠 내음이 훅 풍기며 청량한 공기가 머리카락을 날리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보는 바다다.
“바다다!”
“바다가 좋은가? 나도 바다를 좋아하지. 바다에서는 빠르게 헤엄칠 수 있거든.”
프랭클린은 천천히 바다 안으로 걸어 들어가, 곧 바다 위에 떠 있는 하나의 섬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그러고는 방금 한 말처럼 빠른 속도로 물살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마구 스쳐 지나간다.
“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커다란 거북이의 등에 탄 채 바다 위에 떠 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자꾸 웃음이 나왔다. 10년이 넘게 매일매일 꿈을 꿔 왔지만, 이런 꿈은 처음이다.
끼이기익!
그때, 머리 위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든 여름밤의 눈에 갈매기들이 들어왔다.
호랑이나 늑대에 비해 팔뚝만 한 갈매기는 빼곡한 이빨이 있는 아가리만 제외하면 그리 위협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수가 아주 많았다.
끼이익! 끼이익!
시끄러운 소리에 여름밤은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나 문제는 소리뿐이 아니었다.
갈매기들이 마구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으악, 저리 가!”
갈매기 떼에 둘러싸인 그는 허공에 마구 손을 휘저었다. 몇 마리는 여름밤의 손에 맞고 멀리 날아갔지만, 대다수는 아랑곳 않고 위협적인 아가리를 벌리며 달려들었다.
“으앗! 이게!”
한 마리에게 팔을 물린 여름밤이 주먹으로 갈매기의 머리를 찍어 내렸다. 그러자 기절이라도 한 건지, 갈매기가 휘청이며 바다로 떨어졌다.
“인간이여, 약한 괴물들을 괴롭히지 말게나.”
갈매기가 떨어지는 것을 본 프랭클린이 말했다. 여름밤은 억울함에 손을 휘두르는 것도 잊고 외쳤다.
“아니, 반대예요, 프랭클린 씨! 지금 이것들이 절 물려고 달려들고 있다구요!”
“이런.”
크어어어엉!
프랭클린이 고개를 더 높게 쳐들고는 뱃고동 같은 소리를 내면서 울부짖었다. 귀가 얼얼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소리였다.
그러자 갈매기들은 모두 기겁을 하고 도망갔다.
“아, 고맙습니다.”
“고맙기는, 너무 늦게 알아차려서 미안하네. 평소에는 얌전한 애들이거든. 왜 돌연 달려드는지 모르겠구만. 어디 다친 곳은 없나?”
아까 갈매기에게 물린 팔을 바라보았다. 붉은 피가 이빨 자국에서 배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별로 깊은 상처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한 번 물리기는 했는데, 괜찮은 것 같아요.”
“그런가, 다행이군. 조금만 더 기다리게나. 이제 거의 다 도착했다네.”
도착한 곳은 프랭클린을 꼭 닮은 어느 섬이었다. 그 옆에 프랭클린이 있으니 꼭 쌍둥이 섬 두 개가 나란히 있는 것 같았다.
“이제 가 보게나.”
프랭클린이 머리를 뻗어 땅 위에 내려놓았다. 여름밤은 가볍게 뛰어내려 땅에 착지했다.
프랭클린이 내려준 곳은 섬으로부터 완만하게 튀어나온 절벽 같은 곳이었다. 맞은편엔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었다.
‘도무지 사람 사는 곳 같진 않은데. 이런 무인도 같은 데서 혼자 사는 건가.’
“저, 그런데 그 프랜시스라는 분은 이 섬 어디에 사시나요?”
“이 섬의 주민들이 안내해 줄 걸세.”
프랭클린이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어디에선가 후다닥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그쪽으로 돌린 순간, 무언가 얼굴을 덮쳐 와 자리에 쓰러졌다. 배와 다리 위에도 무언가 덥석덥석 올라타고 있었다.
“읍읍!”
소리치고 싶은데 얼굴에 딱 달라붙은 무언가가 입을 막고 있어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무례하게 굴지 마라. 이분은 프랜시스 님의 귀중한 손님이시다.”
프랭클린이 말했다. 그제야 얼굴에 들러붙어 있던 것들이 떨어지고, 다시 빛을 볼 수 있었다.
광명을 찾은 여름밤의 눈앞에 있는 것들은 다름 아닌 원숭이들이었다. 그 뒤에서도 전면에 있는 숲으로부터 계속해서 원숭이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오오, 프랜시스 님의 손님?”
“인간이다, 인간!”
“…엑?”
원숭이들은 마구 달려들더니, 아래로 파고들어 여럿이서 그를 들어 올렸다.
‘뭐지? 환영 인사? 헹가래?’
그때, 원숭이들이 미처 저지할 새도 없이 엄청난 속도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프랭클린 씨이이!!”
비명 소리와 함께 여름밤이 울창한 산림 속으로 사라져 갔다.
원숭이들이 발을 멈출 즈음, 여름밤은 괴물에게 쫓길 때와는 다른 의미로 녹초가 되어 있었다. 땅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그는 움찔거리며 간신히 몸을 뒤집었다.
토할 것 같다.
“힘쓴 건 우린데 왜 저래?”
“그러게. 약해빠졌네.”
“뭐, 우리는 할 일 다했으니 이쯤에서 빠지자고.”
원숭이들은 저들끼리 떠들며 숲 안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여름밤은 어리둥절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야, 숲속?”
다소 실망스러울 만큼 평범한 숲의 모습이었다.
물론 울창하긴 했지만, 엄청나게 큰 거북이, 눈부신 바다, 그런 환상적인 모습 이후 나온 것이 숲이라니.
그러나 뒤를 돌아봤을 때, 입을 쩍 벌려야 했다.
그곳에는 나무로 지어진 탑이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꼭대기는 구름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는 팔각형의 탑.
‘대체 몇 층인 거야. 보아하니 엘리베이터가 있을 거 같진 않고……. 아, 계단을 오르기는 싫은데.’
이곳까지 오면서 한 점 의심도 가지지 않았다.
정말 해괴하고 알 수 없는, 꿈속에나 나올 법한 것들로 넘쳐나는 세계지만… 마냥 꿈이 아닐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믿음이 어디서부터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조금 혼란스러운 얼굴로 여름밤이 격자문에 손을 올렸다.
그때, 문이 스르르 열렸다.
“왜 이렇게 소란스러운 거야?”
빛을 받아 반짝이는 은백색의 갑옷이 눈에 들어왔다. 여름밤은 문득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으아악!”
여름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갑옷은 안면까지 가리는 중갑이지만, 투구에는 앞을 볼 수 있도록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이 까만 어둠만 있을 뿐이었다.
텅 빈 갑옷이 혼자 철커덕거리며 말을 하고 있었다.
‘나 이런 거 약하단 말이야…….’
허구한 날 악몽을 꾸는지라 괴물에는 익숙하지만, 애초에 여름밤은 유독 겁이 많았다. 특히 귀신 쪽엔 더더욱 약하다.
그는 입을 벌린 채로 덜덜 떨었다. 물끄러미 그것을 응시하던 갑옷이 말했다.
“너는…….”
마치 이전부터 자신을 알고 있던 것 같은 반응이었다.
갑옷은 여름밤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여름밤은 탑을 봤을 때의 두 배 정도로 입을 벌린 채, 그에 맞추어 뒷걸음질했다.
그때, 투구의 안면 가리개가 달칵 하고 완전히 열렸다.
“왜 그래? 나야, 나. 프랜시스. 무서워할 필요 없어.”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한, 나긋하고 어쩔 줄 모르는 목소리였다.
“어, 얼굴이 왜, 왜 없어요?”
“예전에 말해주지 않았나? 이 세계를 창조하는 데 내 육신을 전부 소모해 버렸어. 그래서 이런 껍데기만 남았지.”
이 세계를 창조했다? 그제야 여름밤은 거북이 프랭클린의 말을 떠올렸다.
‘그럼… 이 사람이 프랜시스구나.’
여름밤은 입을 다시 다물고 눈치를 살폈다.
눈앞에 있는 것은 이 세계의 창조자라는 프랜시스다. 5천 년 이상 살았다는 거북이 프랭클린 씨가 ‘프랜시스 님’이라고 부르는, 이 탑의 주인.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먼저 내 소개를 해? …꿈속에 있는 사람한테? 존댓말을 해야 하나? …갑옷한테?’
여름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머릿속으로 조심스럽게 할 말을 골랐다. 프랜시스는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돌연 프랜시스의 안면 가리개가 다시 탁, 닫혔다.
“당신은… 다른 사람이군.”
프랜시스는 홱 뒤로 돌더니 철컹철컹, 쇠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뭐지? 들어오라는 건가?’
여름밤은 주춤대다가 결국 프랜시스를 따라 탑 안으로 들어갔다.
그 거대한 탑 안에 있는 것은 허무하게도 나무 의자 두 개와 테이블, 침대가 다였다. 어쩐지 김이 팍 샜다.
“편한 데 앉아.”
여름밤은 문득 침대 위에 앉으려다가, 실례일 것 같아서 나무 의자에 가 앉았다. 프랜시스라는 갑옷 또한 맞은편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오늘 정말 많이도 놀란다. 원래 겁이 많긴 하지만 수명이 좀 줄어든 기분이었다.
‘이젠 진짜 무슨 일이 생겨도 놀라지 말자.’
여름밤은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설명을 좀 들어볼까? 어떻게 여기에 왔지? 그리고 왜 그 모습이지?”
방금 전의 태도는 어디 갔는지, 프랜시스는 조금 언짢은 듯한 목소리였다.
“거북이 프랭클린 씨가 데려다 줬는데요. 왜 이런 모습인지는 모르겠고…….”
여름밤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잘그락, 프랜시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야. 이 세계는 인간이 들어올 수 없는 세계다. 괴물들을 인간들로부터 격리하기 위해 만든 거지.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 묻고 있는 거다.”
“그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여름밤은 망설였다.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프랜시스에게서 설명을 들을 수 있을 줄 알고 온 건데.
얼굴이 없으니 목소리로만 판단해야 하긴 하지만, 프랜시스는 여름밤의 존재가 언짢은 동시에 당황스러운 것 같았다.
결국 여름밤이 할 말은 한마디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여기는 제 꿈이에요.”
“…뭐?”
프랜시스는 놀란 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가만히 그를 보다가, 갑주가 덮인 손으로 있지도 않은 턱을 짚은 채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꿈이라니……. 진의 마술이 아직도 건재한 건가? 꿈을 통해 세상을 잇는… 하지만 5천 년 전에 그녀가 죽으면서 분명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지금…….”
설명을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꿈 주제에 꿈 주인한테 너무 불친절한 꿈이다.
여름밤은 꿈을 꿀 때마다 항상 하는 생각을 하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건가요?”
“마술 탓이야. 진의 마술이 착오를 일으켜서 원래 이 세계에 와야 할 사람 대신 다른 사람을 이 세계로 데리고 온 거지. 예전에도 너처럼 꿈을 통해서 이 세계로 오려고 한 사람이 있었거든. 한참 전에 죽었지만. 5천 년쯤 전에 말이야.”
“마술이요?”
여름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술은 모자에서 비둘기를 꺼내거나, 사람 분리하거나 그런 거 아닌가?’
어리둥절하고 있자 프랜시스의 투구 속에서 긴 한숨이 들려왔다.
“그래.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그 마술이 그동안 정지된 채 남아 있다가 이제 와서 오작동을 일으킨 모양이야. 하, 이제 와서… 정말이지, 진의 마술은 말썽이 많다니까. 그러고 보니 그때도 이것 때문에 고생했던 것 같은데…….”
프랜시스는 손으로 있지도 않은 턱을 짚은 채 걷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허공으로 검지를 세웠다.
“그래, 맞아. 그때도 꿈을 꾸는 동안에 괴물이 인간계로 흘러가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 혹시 주변에서 머리만 남은 시체가 나온다거나 하지 않았나?”
“어… 잘 모르겠어요.”
기숙사 안에만 박혀 있느라 평소 바깥소식에 깜깜한 여름밤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 무언가 머릿속에 스쳐가는 장면이 있었다. 기숙사 정원에서 보았던 거대한 그림자. 다음 날, 살펴본 정원은 짐승에 밟힌 듯 망가져 있었다.
‘그럼 정말로… 꿈속의 그것들이……?’
등골이 서늘해졌다.
여름밤이 고개를 퍼뜩 들었다.
“그것들이 꿈 밖으로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그것들이 아니라 ‘괴물’이다. 막연한 명칭이긴 하지만 그렇게 부르고 있지. 보아하니 뭔가 짐작 가는 일이 있는 모양이군. 뭐, 간단해. 지금 걸려 있는 마술을 뒤집으면 그만이지. 너를 통해 저쪽으로 나가는 것처럼, 너를 통해 이쪽으로 되돌아오도록. 그러면 괴물은 너한테 닿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다시 이 세계로 넘어올 거다.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오는 거지.”
그 말과 함께 프랜시스는 여름밤의 이마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여름밤은 갑작스러운 접촉에 흠칫 놀랐으나, 몸이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완전히 굳어버려서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보통 마술은 적성자밖에 쓰지 못하지만, 직접 주문을 머리에 새기면 쓸 수 있겠지. 이 마술 하나밖에 못 쓰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가 갈라지는 것 같은 두통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갈라진 틈으로 무언가가 쏟아져 들어오는 듯했다.
“아, 정신에 부담이 좀 갈 수도 있어. 그래도 원래 네 몸속에 있던 주문을 건드리는 것뿐이니까 그리 심하지는 않을 거야.”
프랜시스가 뒤늦게 덧붙였다.
지금껏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종류의 언어가 쏟아졌다.
붉은색. 마치 용광로에 흐르는 쇳물 같다. 뜨겁고 무거운 것이 뇌 위로 쏟아 부어져, 안에 든 모든 것을 녹이는 것만 같다.
고통으로 정신이 조금씩 아득해져 갔다. 시야가 어두워지고 까무러치기 직전이 되었을 때.
“잘 참았어.”
어린애에게 주사를 놓은 의사 선생님 같은 말을 하며, 프랜시스가 머리에서 손을 떼었다.
여름밤은 다리를 부들거리며 의자에서 내려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오늘은 여느 때와 달리 꿈속에서 좀 즐겁나 했는데, 새롭고 험한 일을 참 많이 겪고 있었다. 입가에 경련이 일며, 저절로 웃는지 우는지 모를 표정이 떠올랐다.
“생각보다 정신력이 많이 약한 모양이군. 하루 정도 쉬면 회복될 거다.”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고통 속에 프랜시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간신히 고개를 들어 프랜시스를 바라보았다. 왜인지 그의 손이 파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으…….”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혀가 풀려 버린 덕에 입에서는 문장이 되지 못한 신음 소리만 흘러 나왔다.
프랜시스가 다시 한번 머리에 손을 대자, 푸른 섬광이 시야를 덮쳐 왔다.
꿈의 관리인 (2)
프랭클린은 금세 숲을 빠져나갔다. 숲 너머에는 놀랍게도 에메랄드처럼 푸르고 투명한 바다가 있었다. 짠 내음이 훅 풍기며 청량한 공기가 머리카락을 날리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보는 바다다.
“바다다!”
“바다가 좋은가? 나도 바다를 좋아하지. 바다에서는 빠르게 헤엄칠 수 있거든.”
프랭클린은 천천히 바다 안으로 걸어 들어가, 곧 바다 위에 떠 있는 하나의 섬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그러고는 방금 한 말처럼 빠른 속도로 물살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마구 스쳐 지나간다.
“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커다란 거북이의 등에 탄 채 바다 위에 떠 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자꾸 웃음이 나왔다. 10년이 넘게 매일매일 꿈을 꿔 왔지만, 이런 꿈은 처음이다.
끼이기익!
그때, 머리 위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든 여름밤의 눈에 갈매기들이 들어왔다.
호랑이나 늑대에 비해 팔뚝만 한 갈매기는 빼곡한 이빨이 있는 아가리만 제외하면 그리 위협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수가 아주 많았다.
끼이익! 끼이익!
시끄러운 소리에 여름밤은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나 문제는 소리뿐이 아니었다.
갈매기들이 마구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으악, 저리 가!”
갈매기 떼에 둘러싸인 그는 허공에 마구 손을 휘저었다. 몇 마리는 여름밤의 손에 맞고 멀리 날아갔지만, 대다수는 아랑곳 않고 위협적인 아가리를 벌리며 달려들었다.
“으앗! 이게!”
한 마리에게 팔을 물린 여름밤이 주먹으로 갈매기의 머리를 찍어 내렸다. 그러자 기절이라도 한 건지, 갈매기가 휘청이며 바다로 떨어졌다.
“인간이여, 약한 괴물들을 괴롭히지 말게나.”
갈매기가 떨어지는 것을 본 프랭클린이 말했다. 여름밤은 억울함에 손을 휘두르는 것도 잊고 외쳤다.
“아니, 반대예요, 프랭클린 씨! 지금 이것들이 절 물려고 달려들고 있다구요!”
“이런.”
크어어어엉!
프랭클린이 고개를 더 높게 쳐들고는 뱃고동 같은 소리를 내면서 울부짖었다. 귀가 얼얼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소리였다.
그러자 갈매기들은 모두 기겁을 하고 도망갔다.
“아, 고맙습니다.”
“고맙기는, 너무 늦게 알아차려서 미안하네. 평소에는 얌전한 애들이거든. 왜 돌연 달려드는지 모르겠구만. 어디 다친 곳은 없나?”
아까 갈매기에게 물린 팔을 바라보았다. 붉은 피가 이빨 자국에서 배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별로 깊은 상처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한 번 물리기는 했는데, 괜찮은 것 같아요.”
“그런가, 다행이군. 조금만 더 기다리게나. 이제 거의 다 도착했다네.”
도착한 곳은 프랭클린을 꼭 닮은 어느 섬이었다. 그 옆에 프랭클린이 있으니 꼭 쌍둥이 섬 두 개가 나란히 있는 것 같았다.
“이제 가 보게나.”
프랭클린이 머리를 뻗어 땅 위에 내려놓았다. 여름밤은 가볍게 뛰어내려 땅에 착지했다.
프랭클린이 내려준 곳은 섬으로부터 완만하게 튀어나온 절벽 같은 곳이었다. 맞은편엔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었다.
‘도무지 사람 사는 곳 같진 않은데. 이런 무인도 같은 데서 혼자 사는 건가.’
“저, 그런데 그 프랜시스라는 분은 이 섬 어디에 사시나요?”
“이 섬의 주민들이 안내해 줄 걸세.”
프랭클린이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어디에선가 후다닥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그쪽으로 돌린 순간, 무언가 얼굴을 덮쳐 와 자리에 쓰러졌다. 배와 다리 위에도 무언가 덥석덥석 올라타고 있었다.
“읍읍!”
소리치고 싶은데 얼굴에 딱 달라붙은 무언가가 입을 막고 있어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무례하게 굴지 마라. 이분은 프랜시스 님의 귀중한 손님이시다.”
프랭클린이 말했다. 그제야 얼굴에 들러붙어 있던 것들이 떨어지고, 다시 빛을 볼 수 있었다.
광명을 찾은 여름밤의 눈앞에 있는 것들은 다름 아닌 원숭이들이었다. 그 뒤에서도 전면에 있는 숲으로부터 계속해서 원숭이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오오, 프랜시스 님의 손님?”
“인간이다, 인간!”
“…엑?”
원숭이들은 마구 달려들더니, 아래로 파고들어 여럿이서 그를 들어 올렸다.
‘뭐지? 환영 인사? 헹가래?’
그때, 원숭이들이 미처 저지할 새도 없이 엄청난 속도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프랭클린 씨이이!!”
비명 소리와 함께 여름밤이 울창한 산림 속으로 사라져 갔다.
원숭이들이 발을 멈출 즈음, 여름밤은 괴물에게 쫓길 때와는 다른 의미로 녹초가 되어 있었다. 땅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그는 움찔거리며 간신히 몸을 뒤집었다.
토할 것 같다.
“힘쓴 건 우린데 왜 저래?”
“그러게. 약해빠졌네.”
“뭐, 우리는 할 일 다했으니 이쯤에서 빠지자고.”
원숭이들은 저들끼리 떠들며 숲 안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여름밤은 어리둥절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야, 숲속?”
다소 실망스러울 만큼 평범한 숲의 모습이었다.
물론 울창하긴 했지만, 엄청나게 큰 거북이, 눈부신 바다, 그런 환상적인 모습 이후 나온 것이 숲이라니.
그러나 뒤를 돌아봤을 때, 입을 쩍 벌려야 했다.
그곳에는 나무로 지어진 탑이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꼭대기는 구름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는 팔각형의 탑.
‘대체 몇 층인 거야. 보아하니 엘리베이터가 있을 거 같진 않고……. 아, 계단을 오르기는 싫은데.’
이곳까지 오면서 한 점 의심도 가지지 않았다.
정말 해괴하고 알 수 없는, 꿈속에나 나올 법한 것들로 넘쳐나는 세계지만… 마냥 꿈이 아닐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믿음이 어디서부터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조금 혼란스러운 얼굴로 여름밤이 격자문에 손을 올렸다.
그때, 문이 스르르 열렸다.
“왜 이렇게 소란스러운 거야?”
빛을 받아 반짝이는 은백색의 갑옷이 눈에 들어왔다. 여름밤은 문득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으아악!”
여름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갑옷은 안면까지 가리는 중갑이지만, 투구에는 앞을 볼 수 있도록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이 까만 어둠만 있을 뿐이었다.
텅 빈 갑옷이 혼자 철커덕거리며 말을 하고 있었다.
‘나 이런 거 약하단 말이야…….’
허구한 날 악몽을 꾸는지라 괴물에는 익숙하지만, 애초에 여름밤은 유독 겁이 많았다. 특히 귀신 쪽엔 더더욱 약하다.
그는 입을 벌린 채로 덜덜 떨었다. 물끄러미 그것을 응시하던 갑옷이 말했다.
“너는…….”
마치 이전부터 자신을 알고 있던 것 같은 반응이었다.
갑옷은 여름밤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여름밤은 탑을 봤을 때의 두 배 정도로 입을 벌린 채, 그에 맞추어 뒷걸음질했다.
그때, 투구의 안면 가리개가 달칵 하고 완전히 열렸다.
“왜 그래? 나야, 나. 프랜시스. 무서워할 필요 없어.”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한, 나긋하고 어쩔 줄 모르는 목소리였다.
“어, 얼굴이 왜, 왜 없어요?”
“예전에 말해주지 않았나? 이 세계를 창조하는 데 내 육신을 전부 소모해 버렸어. 그래서 이런 껍데기만 남았지.”
이 세계를 창조했다? 그제야 여름밤은 거북이 프랭클린의 말을 떠올렸다.
‘그럼… 이 사람이 프랜시스구나.’
여름밤은 입을 다시 다물고 눈치를 살폈다.
눈앞에 있는 것은 이 세계의 창조자라는 프랜시스다. 5천 년 이상 살았다는 거북이 프랭클린 씨가 ‘프랜시스 님’이라고 부르는, 이 탑의 주인.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먼저 내 소개를 해? …꿈속에 있는 사람한테? 존댓말을 해야 하나? …갑옷한테?’
여름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머릿속으로 조심스럽게 할 말을 골랐다. 프랜시스는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돌연 프랜시스의 안면 가리개가 다시 탁, 닫혔다.
“당신은… 다른 사람이군.”
프랜시스는 홱 뒤로 돌더니 철컹철컹, 쇠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뭐지? 들어오라는 건가?’
여름밤은 주춤대다가 결국 프랜시스를 따라 탑 안으로 들어갔다.
그 거대한 탑 안에 있는 것은 허무하게도 나무 의자 두 개와 테이블, 침대가 다였다. 어쩐지 김이 팍 샜다.
“편한 데 앉아.”
여름밤은 문득 침대 위에 앉으려다가, 실례일 것 같아서 나무 의자에 가 앉았다. 프랜시스라는 갑옷 또한 맞은편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오늘 정말 많이도 놀란다. 원래 겁이 많긴 하지만 수명이 좀 줄어든 기분이었다.
‘이젠 진짜 무슨 일이 생겨도 놀라지 말자.’
여름밤은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설명을 좀 들어볼까? 어떻게 여기에 왔지? 그리고 왜 그 모습이지?”
방금 전의 태도는 어디 갔는지, 프랜시스는 조금 언짢은 듯한 목소리였다.
“거북이 프랭클린 씨가 데려다 줬는데요. 왜 이런 모습인지는 모르겠고…….”
여름밤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잘그락, 프랜시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야. 이 세계는 인간이 들어올 수 없는 세계다. 괴물들을 인간들로부터 격리하기 위해 만든 거지.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 묻고 있는 거다.”
“그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여름밤은 망설였다.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프랜시스에게서 설명을 들을 수 있을 줄 알고 온 건데.
얼굴이 없으니 목소리로만 판단해야 하긴 하지만, 프랜시스는 여름밤의 존재가 언짢은 동시에 당황스러운 것 같았다.
결국 여름밤이 할 말은 한마디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여기는 제 꿈이에요.”
“…뭐?”
프랜시스는 놀란 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가만히 그를 보다가, 갑주가 덮인 손으로 있지도 않은 턱을 짚은 채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꿈이라니……. 진의 마술이 아직도 건재한 건가? 꿈을 통해 세상을 잇는… 하지만 5천 년 전에 그녀가 죽으면서 분명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지금…….”
설명을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꿈 주제에 꿈 주인한테 너무 불친절한 꿈이다.
여름밤은 꿈을 꿀 때마다 항상 하는 생각을 하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건가요?”
“마술 탓이야. 진의 마술이 착오를 일으켜서 원래 이 세계에 와야 할 사람 대신 다른 사람을 이 세계로 데리고 온 거지. 예전에도 너처럼 꿈을 통해서 이 세계로 오려고 한 사람이 있었거든. 한참 전에 죽었지만. 5천 년쯤 전에 말이야.”
“마술이요?”
여름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술은 모자에서 비둘기를 꺼내거나, 사람 분리하거나 그런 거 아닌가?’
어리둥절하고 있자 프랜시스의 투구 속에서 긴 한숨이 들려왔다.
“그래.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그 마술이 그동안 정지된 채 남아 있다가 이제 와서 오작동을 일으킨 모양이야. 하, 이제 와서… 정말이지, 진의 마술은 말썽이 많다니까. 그러고 보니 그때도 이것 때문에 고생했던 것 같은데…….”
프랜시스는 손으로 있지도 않은 턱을 짚은 채 걷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허공으로 검지를 세웠다.
“그래, 맞아. 그때도 꿈을 꾸는 동안에 괴물이 인간계로 흘러가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 혹시 주변에서 머리만 남은 시체가 나온다거나 하지 않았나?”
“어… 잘 모르겠어요.”
기숙사 안에만 박혀 있느라 평소 바깥소식에 깜깜한 여름밤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 무언가 머릿속에 스쳐가는 장면이 있었다. 기숙사 정원에서 보았던 거대한 그림자. 다음 날, 살펴본 정원은 짐승에 밟힌 듯 망가져 있었다.
‘그럼 정말로… 꿈속의 그것들이……?’
등골이 서늘해졌다.
여름밤이 고개를 퍼뜩 들었다.
“그것들이 꿈 밖으로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그것들이 아니라 ‘괴물’이다. 막연한 명칭이긴 하지만 그렇게 부르고 있지. 보아하니 뭔가 짐작 가는 일이 있는 모양이군. 뭐, 간단해. 지금 걸려 있는 마술을 뒤집으면 그만이지. 너를 통해 저쪽으로 나가는 것처럼, 너를 통해 이쪽으로 되돌아오도록. 그러면 괴물은 너한테 닿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다시 이 세계로 넘어올 거다.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오는 거지.”
그 말과 함께 프랜시스는 여름밤의 이마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여름밤은 갑작스러운 접촉에 흠칫 놀랐으나, 몸이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완전히 굳어버려서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보통 마술은 적성자밖에 쓰지 못하지만, 직접 주문을 머리에 새기면 쓸 수 있겠지. 이 마술 하나밖에 못 쓰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가 갈라지는 것 같은 두통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갈라진 틈으로 무언가가 쏟아져 들어오는 듯했다.
“아, 정신에 부담이 좀 갈 수도 있어. 그래도 원래 네 몸속에 있던 주문을 건드리는 것뿐이니까 그리 심하지는 않을 거야.”
프랜시스가 뒤늦게 덧붙였다.
지금껏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종류의 언어가 쏟아졌다.
붉은색. 마치 용광로에 흐르는 쇳물 같다. 뜨겁고 무거운 것이 뇌 위로 쏟아 부어져, 안에 든 모든 것을 녹이는 것만 같다.
고통으로 정신이 조금씩 아득해져 갔다. 시야가 어두워지고 까무러치기 직전이 되었을 때.
“잘 참았어.”
어린애에게 주사를 놓은 의사 선생님 같은 말을 하며, 프랜시스가 머리에서 손을 떼었다.
여름밤은 다리를 부들거리며 의자에서 내려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오늘은 여느 때와 달리 꿈속에서 좀 즐겁나 했는데, 새롭고 험한 일을 참 많이 겪고 있었다. 입가에 경련이 일며, 저절로 웃는지 우는지 모를 표정이 떠올랐다.
“생각보다 정신력이 많이 약한 모양이군. 하루 정도 쉬면 회복될 거다.”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고통 속에 프랜시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간신히 고개를 들어 프랜시스를 바라보았다. 왜인지 그의 손이 파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으…….”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혀가 풀려 버린 덕에 입에서는 문장이 되지 못한 신음 소리만 흘러 나왔다.
프랜시스가 다시 한번 머리에 손을 대자, 푸른 섬광이 시야를 덮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