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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먹고 먹히다 (4)


위험하다.

찬비는 상대가 녹록지 않으리란 걸 그 눈빛에서 직감했다. 흘러내린 식은땀이 턱선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왜 자신이 이토록 불안해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방금 전 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만으로 손쉽게 먹이를 처리했다.

저 바텀이라는 자 또한 인간인 이상 먹잇감에 불과할 텐데, 왜?

‘싸울까?’

그러나 도무지 바텀에게는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사람을 씹어 먹는 자신의 모습을 봐 놓고도 저 여유만만한 태도.

머뭇거리는 와중에도 저 안 깊은 곳에서 본능이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려 대고 있다.

불안했다. 자신의 공격쯤은 쉽게 막아낼 수 있는 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조차 알 수 없지만, 그게 당연한 사실처럼 느껴졌다.

‘역시 도망치는 편이 좋겠어.’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버튼을 누른 것처럼 다리가 순식간에 다시 굵어졌고, 동시에 찬비가 눈부신 속도로 박차고 뒤로 뛰쳐나갔다.

“그쪽은 막다른 길입니다.”

바텀이 중얼거렸다.

‘무슨 소릴 하는 거지?’

그는 이미 달리고 있다. 앞은 뻥 뚫려 있다. 골목 밖 큰길 쪽을 향해 왔던 길 그대로, 이대로 쭉 가기만 하면 주거 단지를 거쳐 학교로 가게 된다.

그때, 땅이 심하게 흔들렸다. 갑작스러운 격렬한 진동.

순간, 뒷머리를 스쳐가는 서늘한 감각에 찬비가 뚝 자리에 멈추어 섰다.

콰아아악!

그러자마자 밑에서 땅이 불쑥 솟구쳐 올랐다.

넓은 길을 가로막은 거대한 흙벽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생겨났다.

멈춰 서 있던 찬비는 마른침을 삼켰다.

한 발짝만 더 나아갔어도 솟구친 땅에 얻어맞아 공중으로 곤두박질쳤을 것이다. 차에 치인 것처럼. 그게 아니라면 달리던 속도 그대로 벽에 격돌했겠지.

흙벽이 솟구친 속도는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이것이 저의 힘, 땅의 마술입니다.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한 저에게서 도망갈 수는 없습니다.”

뒤에서 여유롭게 걸어오며 바텀이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찬비가 이를 꾹 물었다.

“그럼 안 붙이면 되겠네.”

찬비가 두꺼워진 다리로 지면을 힘껏 박차며 위로 도약했다.

흙벽은 아까 뛰어넘은 기숙사 담장과는 비교도 안 되는, 어지간한 2층 건물만 한 높이다. 하지만 그는 그보다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다.

‘좋아, 됐어!’

그는 얼른 손을 뻗어 벽을 짚으려 했다.

“소용없습니다.”

순간, 바텀이 손을 높게 쳐들었다.

그러자 눈앞의 흙벽이 뛰어오른 찬비보다도 빠른 속도로 더 높게 불쑥 치솟았다. 벽을 넘으려던 찬비는 그대로 솟아오른 벽에 부딪혀 다시 땅에 떨어졌다.

“크앗!”

미처 대비하지 못한 추락.

벽에 튕겨진 찬비는 기숙사 창문으로 떨어질 때처럼 착지 준비를 할 틈도 없이, 팽개쳐지듯 땅에 떨어졌다. 중력은 정확히 그가 뛰어오른 높이만큼의 통증을 가져왔다. 지면에 처박힌 등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윽… 이게 무슨…….”

“말씀드렸죠? 마술사라고.”

바텀은 평온한 얼굴로 계속 다가오고 있었다.

찬비는 억지로 흙벽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손에 닿은 벽은 마치 지면을 잘라서 그대로 뽑아 올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얼마나 단단한지, 손으로 후려쳐도 돌가루조차 떨어지지 않는다.

똑바로 서 있기가 힘들었다. 떨어지면서 어딘가 다친 모양이었다. 이 상태로는 아까처럼 공격해 오면 피할 도리가 없다.

‘회복해야 해. 시간을 끌자.’

흙벽에 기댄 찬비가 발악하듯 외쳤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그러자 바텀이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하. 왜 그러냐고요? 그러면 당신은 왜 사람을 죽였습니까?”

“…….”

왜? 왜냐고?

찬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그 순간에는 죽이지 않으면, 먹지 않으면 당장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그러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왠지 모를 분노와 억울함으로 몸이 떨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어. 어쩔 수가 없었다고.

“어차피 딱히 이유는 없었겠죠. 본능이었을 테니까. 왜 그러냐고 물으셨죠. 당신과 다르게 저는 제대로 된 이유가 있습니다.”

바텀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다.

“임무라고 말했죠? 그 탐욕스러운 식욕밖에 없는, 당신 같은 것들로부터 보호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정확히 그게 누구인지는 저도 모르지만, 그 사람은 이 근처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 같은 게 버젓이 길거리에 돌아다니도록 둘 순 없겠죠.”

“…나 같은 거?”

바텀이 대답 대신 옆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 아래에서 또다시 땅이 순식간에 솟아올랐다. 이번엔 벽이 아닌, 기다란 막대 모양이었다.

바텀이 막대를 잡고 쑥 뽑아 올렸다.

뽑아 올린 막대는 기괴하리만치 거대한, 돌과 흙으로 이루어진 망치의 자루였다. 바텀은 제 몸보다 훨씬 큰 그것을 한 손으로 그리 어렵지 않게 들고 있었다.

“솔직히 동정은 합니다. 원래는 인간이었겠지요, 그리고 지금도 자기가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내가… 인간이 아니라고?”

“당신은 괴물입니다. 인간인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 어떻게 죽었는지는 아직 기억하고 계시겠죠?”

찬비는 자신이 머리를 덥썩 물었던 때를 떠올렸다.

‘아니, 물었다? 물렸던 게 아니었나? 내가 아니라…….’

그 기억은 자신의 시점이 아닌, 괴물 시점에서의 기억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찬비의 눈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텀은 망치를 어깨에 걸친 채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혼란스러우신가 보군요. 괴물은 먹은 것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뭘 먹더라도 머리는 먹지 않습니다. 머리에는 정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함부로 머리를 먹었다간, 잡아먹은 먹잇감의 정신에 역으로 잠식당해서 자기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뭐, 아주 드문 케이스입니다만… 당신이 바로 그 경우인 것 같군요.”

말을 하다 말고, 바텀이 망치를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찬비는 급히 옆쪽으로 뛰었다. 아직 다 낫지 못한 등이 저려왔지만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콰앙!

망치가 떨어진 지면은 한 뼘이 넘도록 움푹 파였다.

“이런 미친…….”

찬비는 기가 찼다. 저런 것에 한 대라도 맞았다가는 뭉개져 버리고 말 것이다. 힘도 힘이지만, 휘두르는 속도 또한 장난 아니었다.

뛰어오른 찬비는 공중에서 벽을 박차고 바텀의 등 뒤로 이동했다.

그런데도 수상한 마술사는 별생각 없는 듯 무심히 정면을 바라볼 뿐, 찬비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이를 악문 찬비가 손톱을 바텀의 뒷목에 꽂아 넣었다.

카각.

그러나 칼로 두부를 찌르듯 손쉽게 들어가리라 믿은 손톱은 완전히 부러져 나가고 말았다. 바텀의 몸은 마치 돌처럼 딱딱했다.

“아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땅의 마술사, 몸을 지면처럼 단단하게 만드는 건 제게는 숨 쉬는 것보다 쉬운 일입니다.”

부러진 손톱을 도로 집어넣은 찬비는 도약하여 물러났다.

그제서야 바텀은 천천히 찬비를 향해 뒤돌아섰다.

“그런 모습으로, 사람까지 잡아먹은 주제에 잘도 자기가 인간이라고 착각하시는군요.”

바텀이 망치를 땅에 질질 끌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거대한 낫을 끌고 오는 사신 같았다.

알 수 없던 불안감이 눈앞의 공포로 변모했다.

찬비는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아니… 머리를 먹을 때도 이렇게 무서워했던 거 같기도 하다.

그는 조금씩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뭐, 이미 돌아가신 분께 죄송하지만 한 번만 더 죽어주셔야겠습니다.”

바텀의 말이 선고처럼 떨어졌다.

순간, 찬비는 물러나던 것도 잊고 멈춰 서서 바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누가… 누가 죽었다는 거야.”

“…….”

눈앞이 어지러워졌다. 머리에서 윙,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지독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바텀은 대답하지 않았다. 계속 찬비를 향해서 걸어올 뿐이었다.

찬비가 이를 부득 물었다.

“난 여기 있어! 안 죽었어, 아직 살아 있다고! 난 괴물이 아냐! 너한테 괴물 취급 받으며 죽어야 할 이유는 없어!”

“그럴지도 모르죠. 어쩌면 지금 저랑 대화하고 있는 당신은 인간일 수도 있습니다. 살아서 괴물의 몸속에서 외치고 있는지도요.”

수긍하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바텀의 눈은 지독하게 차가웠다.

“그런데… 방금 저 사람을 죽이고 있을 때도 인간이셨습니까?”

바텀이 손가락을 들어 한쪽에 굴러다니던 남자의 머리통을 가리켰다.

분노로 이글거리던 찬비의 눈동자가 떨렸다.

“조금도 죄책감은 없었죠? 이성의 불씨는 곧 꺼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되겠죠. 당신의 이웃, 친구, 가족… 스스로 원해서 그들을 죽이게 될 겁니다. 그런 걸 원하십니까?”

“…….”

찬비는 순간적으로 여름밤을 잡아먹는 자신을 상상하고 말았다.

상상만으로도 날아갈 듯 행복하다. 그냥 인간을 먹고는 채울 수 없는, 저 깊은 곳에 있는 갈증을 여름밤이라면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그리고 눈이 뜨거워졌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행복하고, 동시에 너무나 괴로워서 찬비는 온몸이 저려오는 듯했다.

웃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찬비를 미묘한 표정으로 내려다본 바텀이 팔을 들어 올렸다.

“그렇게 될 순 없다, 아직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스스로 죽음을 택해주십시오. 이제 그만 제 죄책감을 줄여주시길.”

콰앙!

머리 위로 떨어진 망치가 다시 굉음을 냈다.

망치가 부딪친 곳은 지면이었다. 찬비는 몸을 옆으로 날려 가까스로 그것을 피했다.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재차 이어지는 스윙. 팔로 받아냈지만 찬비는 그대로 날아가 좁은 골목 안쪽으로 처박혔다.

“크어억, 으으…….”

땅바닥에 떨어져 구르자 극심한 고통으로 숨이 막혔다.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망치에 부딪친 순간, 양팔의 뼈가 완전히 가루가 된 것이다. 팔이 고무장갑처럼 흐물거렸다.

그런데 바텀이 그가 날아간 골목으로 채 들어오기도 전에, 놀랍게도 기다란 풍선에 바람이 들어가는 것처럼 팔은 다시 빳빳해졌다.

찬비는 순식간에 멀쩡해진 자신의 팔을 신기해할 새도 없이 곧바로 바텀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둠 속으로 숨어들어야 한다. 숨어서 기척을 숨겨야만 한다. 그렇게 해서 저자가 자신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치게 해야만 한다. 이대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는 죽을힘을 다해 땅을 박찼다. 빛살 같이 주변 광경이 스쳐 지나갔다.

“소용없다고 했습니다.”

찬비의 앞에 다시 벽이 치솟으며 앞을 막았다.

다행히 좁은 길목은 거미줄처럼 다른 여러 개의 길과 꼬불꼬불 연결되어 있었다. 찬비는 곧바로 다른 길로 도망쳤다.

그러나 눈부신 속도로 달리며 아무리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방향을 틀어도 뒤에서 쫓아오는 바텀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아무래도 이건 버려야겠군요.”

바텀은 망치를 땅에 버렸다. 그러자 망치가 땅에 빨려들듯 사라졌다.

찬비는 뒤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미친 듯이 질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리는 전혀 벌어지지 않고 있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바쁘게 땅을 차는 연속적인 찬비의 발소리 사이로 바텀의 작은 발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왔다. 뒤에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를 쫓아오는 바텀은 그냥 조금 빨리 걷고 있을 뿐이었다.

뒤에서 바텀이 손을 움직일 때마다 계속해서 앞쪽에서 땅이 불쑥불쑥 솟구치며 진로를 방해했다. 그래도 자신을 쫓아오느라 그런지, 이전처럼 거대한 벽이 아니라 바위가 솟아오른 듯한 모습이었다.

찬비는 도망치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왠지 예전에 이보다 더 큰 바위들이 마구 솟아올라 있는 곳에서 달려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그때 자신은 푸른빛을 띠고 있는 먹음직한 인간을 쫓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입속에 침이 고이며,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일단 빨리 도망쳐야 해.’

찬비는 조금 더 속도를 냈다.



얼마나 뛰었을까.

더 이상 뒤에서 바텀이 쫓아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자, 찬비는 헐떡이며 자리에 멈추어 섰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땀이 뚝뚝 떨어졌다.

“따돌렸나? 후…….”

숨을 돌리며 잠시 서 있었지만 바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찬비는 안심하고 어깨를 늘어뜨렸다.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네.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한 도망갈 수 없습니다’라더니.”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발밑이다.

찬비는 귀를 의심하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지면에 바위처럼 솟아오른 바텀의 얼굴이 보였다. 마치 물속에서 얼굴을 내민 것처럼, 길에 떨어진 가면처럼. 찬비는 뛰어오르려고 얼른 무릎을 굽혔다.

“어림없습니다.”

그러나 땅에서 튀어나온 바텀의 손이 얼마쯤 뛰어오른 그의 발목을 잡아채 끌어당겼다. 찬비는 무릎까지 땅속에 박혀 버렸다.

“큭…….”

찬비는 안간힘을 쓰며 박힌 다리를 빼 보려고 했지만, 꿈쩍도 할 수 없었다. 혹시 몰라 다리를 가늘게 만들어봤지만, 땅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다리에 맞추어 조여왔다.

“저는 땅의 마술사. 땅속으로 이동하는 일 또한 아무것도 아닙니다.”

바텀이 누가 밑에서 밀어 올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땅 밖으로 서서히 올라왔다. 그러고는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한 차례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이제 추격전은 끝입니다. 잠시 동안이지만 즐거웠습니다.”

콰아아악!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찬비의 사방에서 벽이 솟구쳤다. 솟구치는 동안 더욱 커진 벽은 공중에서 휘어지더니, 서로 붙고 연결되어 하나의 좁은 방이 되었다. 찬비는 순식간에 흙으로 된 방 안에 갇혔다.

“뭐하는 거야!”

“이른바 생매장이라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피 보는 것을 싫어해서 애용하는 방법입니다만, 조금 고통스러우실 겁니다. 죄송합니다.”

바텀이 말을 마치자, 찬비를 가둔 방이 땅속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동시에 벽 사이는 점차 좁아져 갔다.

찬비는 주먹으로 벽을 후려쳤다. 그러나 벽은 쇳덩이처럼 단단했다.

“꺼내줘!”

바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어둠과 침묵 속에서 벽이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생매장이야! 그냥 눌러 죽이는 거잖아!”

천장이 머리 위까지 내려오자, 찬비는 그것을 손으로 받치고 버텼다.

그러나 천장은 찬비와 상관없이 점점 더 내려앉았고, 이내 정수리에 닿았다. 몰리고 몰려 몸을 웅크릴 수 있는 만큼 웅크린 뒤부터는 척추가 부서질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고통으로 눈이 터질 듯했다.

그때, 머릿속으로 찬비가 문득 중얼거렸다.

‘본능에 몸을 맡기자.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크다.’

온몸이 갑자기 불타오르는 것처럼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이걸로 끝이려나요?”

다시 손목시계를 내려다본 바텀이 중얼거렸다.

괴물이 갇힌 벽은 이제 자신의 허리보다도 낮게 내려앉았다. 흔적도 남지 않을 것이다. 무미건조한 눈으로 내려앉는 벽을 보던 그는 이내 뒤돌아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끄그그끄끼이기기이!

듣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소리가 벽 너머에서 들려왔다. 강하게 마찰하는 금속성.

급히 다시 돌아선 바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벽이 들썩거리며 위로 밀려 올라오고 있었다.

“이런!”

바텀은 급히 손을 들어 올렸다. 땅에서 또 다른 벽이 솟구쳤다. 그러는 동안에도 밀려 올라오던 벽은 계속해서 들썩였다.

바텀이 주먹을 꾹 쥐며 팔을 내리자, 새로 솟구친 벽이 그 위를 덮었다.

그러나 잠시 주춤했을 뿐, 벽은 계속해서 위로, 위로 치솟았다.

바텀의 목덜미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쪽 팔도 들어 올렸다. 더 크고 두꺼운 벽이 생겨나 위를 덮어갔다.

까드드득.

밀려 올라오는 벽 밑에서 사나운 소리가 났다. 바텀의 눈에 서린 경악은 이내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그는 지금 온 힘을 다해 팔에 힘을 주고 있었다. 주먹이 새하얗게 되어 있었다.

콰아아아아악!

압력을 견디지 못한 벽이 부서지며 폭발하듯 비산했다. 부서진 돌의 파편들 중 하나가 바텀을 향해 날아왔다.

“크헉!”

겨우 팔로 막아냈지만, 파편에 얻어맞은 바텀은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미처 몸을 일으키지도 못한 그 위에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뛰어들었다. 거대한 호랑이의 발이 그대로 바텀의 배 위로 내리꽂혔다.

“아아악!”

비명과 함께 바텀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의 등 뒤에 있던 땅이 움푹 파여 있었다. 아무리 몸을 돌처럼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내장이 터져 나갈 듯한 힘이었다. 바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끼기기기이끽!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한 아가리가 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바텀의 눈동자에는 두려움은 있었으되, 절망은 없었다.

호랑이의 이빨이 채 닿기도 전에, 바텀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 그대로 호랑이의 발밑에서 녹아들 듯, 땅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