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5화
먹고 먹히다 (3)
“배고파.”
찬비가 중얼거렸다. 속이 타들어가는 듯하다.
넋을 놓은 얼굴은 이제 사람이라기보다 짐승의 얼굴에 더 가까웠다. 날카로운 이빨들이 입안에 가지런히 맞물려 있고, 동공은 찢어질 듯 날카로웠다. 어둠 속이 대낮 같이 훤히 보였다.
그때, 찬비가 휙 고개를 돌려 한쪽을 바라보았다. 달콤하면서도 짭짤한 냄새. 어디에선가 인간의 냄새가 바람에 실려오고 있었다.
찬비의 얼굴에 섬뜩한 미소가 떠올랐다.
냄새가 하나다.
그 말은 곧 혼자 있는 사냥감이라는 이야기다.
‘무리에서 떨어진 것은 최적의 사냥감이다. 뒤를 밟아 기습한다. 소리칠 틈을 주면 안 된다. 죽었다고 느끼기도 전에 삼켜 버리자.’
찬비가 또 중얼거리듯 생각했다.
이제는 그 목소리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목소리가 곧 자신의 몸이자, 자신의 정신이다.
모든 걸 내맡기고 본능에 지배되는 감각은 소름 끼치도록 좋았다.
욕구의 목소리, 진솔한 목소리. 아무것도 숨기지도 억누르지도 않은 채 본능에 충실한 감각. 충만감, 자유, 해방감. 기분이 더욱 고조되었다.
‘먹이가 필요해.’
찬비는 발소리를 죽이고 빠르게 달렸다. 붉은 빛을 내던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잔상을 남기고 사라졌다.
찬비는 자신의 신체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시야가 높아졌다. 온몸의 골격이 두꺼워지며 키가, 덩치가 잔뜩 자라났다.
어느새 그는 짐승이 되어 있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길고 굵은 짐승의 발이 더없이 빠른 속도로 번갈아 움직이며, 공기가 기분 좋게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바람을 가르고 나간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사냥을 나가는 짐승은 즐거움에 미소 지었다.
빠르게 대기를 헤치며 나가는 와중에도 그는 먹이의 냄새를 놓치지 않았다. 찬비의 발길은 정확히 한 남자가 홀로 걷고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윽고 목적지에 가까워졌다. 속도를 늦추고, 숨을 죽였다.
큰길로 통하는 어느 어둡고 좁은 골목에 멈춰 선 찬비가 조용히 벽에 등을 대고 멈추어 섰다.
골목 밖에는 주택단지 앞의 큰길을 술에 취한 남자 하나가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는 먹잇감을 반짝이는 눈으로 살피기 시작했다.
3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 행색을 보아 회사원 같지는 않다. 위아래로 후줄근한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싸구려 술집에서 기분 좋게 한잔하고 들어가는 백수일까.
조용히 뒤를 밟았다.
사실 당장이라도 한입에 삼켜 버리고 싶지만 여기에서 그럴 수는 없다. 가로등이 있었다. 너무 밝다. 게다가 이곳은 주택단지. 누군가에게 보이거나, 어딘가에 찍히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좀 더 어둡고, 주차된 자동차 같은 것도 없는, 주거지역이 아닌 곳. 그래야 안심하고 식사를 즐길 수 있다.
‘그런 곳이 어디 있더라?’
생각해 보았지만 당장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내일 학교를 마치면 앞으로 식사를 즐기기에 적당한 장소를 물색해야겠다.
찬비는 식사에 대한 기대심으로 한껏 들뜬 얼굴을 한 채, 먹잇감이 양옆에 늘어선 주택 중 하나로 들어가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며 뒤를 밟았다.
찬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남자는 마침내 주택단지를 통과하여 사람들이 싹 빠져나간 공장들이 밀집된 지역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공장에 사는 것은 아닐 테니 적어도 남자의 집은 이 지역 건너편에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근처가 식사하기 적당한 곳이라는 사실을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앞으로 유용하게 쓰일 장소 같다. 조금 신경 쓰이는 건 CCTV 정도. 뭐, 좁은 골목에까지 CCTV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찬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로변도 꽤 어둡지만, 주변에 그늘진 좁은 골목이 아주 많았다.
어떻게든 저런 골목 중 하나로 유인하기만 하면, 그 다음은 아주 간단하다.
‘어떻게 유인하지? 말을 걸어야 하나?’
그러나 찬비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함부로 먹잇감에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 어쩌면 같이 있는 모습이 어딘가에 발견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돌연 남자가 발길을 멈추었다. 바로 따라 멈춰 선 찬비는 전봇대 뒤에 몸을 바짝 붙이고, 곁눈으로 남자를 살폈다.
“나비야, 이리 온∼”
고양이 한 마리가 차 밑에서 꼬리를 살랑이고 있었다. 남자는 허리를 숙이고 고양이에게 손짓했다.
고양이는 남자를 쳐다보는가 싶더니, 남자가 한 발짝 다가오자 이내 좁은 골목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남자는 고양이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섰다. 찬비는 바로 따라갈 준비를 했다.
‘좋아, 조금만 더 안으로…….’
그런데 그의 생각이 들린 것일까?
남자는 좁은 골목 바로 앞에서 멈추어 서더니, 다시 큰길로 발길을 돌렸다. 포기한 모양이었다.
‘아… 그냥 확 덮쳐 버릴까, 복잡하게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는 먹이가 손아귀에서 빠져나간다.
찬비는 실망감과 짜증으로 인상을 쓰고 그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야옹.
갑자기 들린 소리에 흠칫 내려다보니, 아까 그 고양이가 있었다. 골목에서 다시 나온 모양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알고 있다.
그는 씩, 거대한 입의 양쪽 끝을 늘리며 웃었다.
길쭉한 팔이 순식간에 고양이를 낚아챘다. 동시에 날카로운 손톱이 목을 떼어냈다.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한 절단면. 고양이는 소리도 없이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졌다. 잘라낸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게 손에 들어온 고양이의 몸뚱이를, 찬비가 그대로 집어삼켰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입을 크게 벌리고 집어넣었다. 마치 뱀이 쥐를 통째로 집어삼키는 것처럼 그의 목이 크게 팽창했다. 팔뚝만 한 고양이가 거짓말처럼 찬비의 입속으로 사라져 갔다.
금세 고양이 한 마리를 해치운 찬비는 입가의 핏기를 닦으며 미소지었다. 아직도 뱃속에서 그윽하게 밀려 올라오는 좋은 향기.
지금껏 먹어본 음식들 중 최고였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양이 너무 적다.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다.
그는 입맛을 다시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래, 이건 애피타이저다.
‘먹잇감의 모습을 취했다.’
찬비는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곧이어 온몸에 회색의 털이 나고, 눈은 노랗게 변했다. 입 밖으로 가르릉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시 후, 골목 안에 있던 찬비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직도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고양이 머리통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얼굴의 고양이만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찬비가 원래부터 고양이였던 양 태연하게, 저 멀리서 여전히 비틀거리며 걷고 있는 남자에게 경쾌한 걸음으로 통통, 다가갔다.
야옹.
남자의 옆에 도착한 회색 고양이가 귀여운 소리로 울었다. 턱에 살이 뒤룩뒤룩 붙은 남자는 화색이 되어 멈추어 서서, 고양이에게 손을 뻗었다. 놀랍게도 아까 전과는 달리 회색 고양이는 남자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고, 손가락을 핥기까지 했다. 남자가 연신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얼빠진 얼굴로 웃었다.
이내 짧은 서비스가 끝나고, 고양이가 남자의 손길을 벗어나 어두운 골목 쪽으로 사뿐사뿐 걸어가기 시작했다. 남자는 여전히 헤죽거리며 그 뒤를 쫓았다.
회색 고양이는 이따금 그를 돌아보며 뒤따라오는지 확인하고는 거리가 멀어질 때마다 남자를 재촉하듯 아양 떠는 소리로 한 번씩 울었다.
이윽고, 그들은 검은 골목 안쪽으로 들어섰다.
골목에는 정적이 흘렀다. 고양이의 울음도, 남자의 바보 같은 웃음도 들리지 않았다.
날카로운 손톱 두 개가 남자의 목을 관통하고 있었다. 정확히 성대가 있는 곳이었다. 남자는 아직도 실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미처 고통을 깨닫기도 전에, 찬비가 손톱 사이를 벌렸다.
그러자 목이 깔끔하게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잘린 목에서 피가 솟구쳐 오른다. 그러나 한 방울도 바닥에는 떨어지지 않았다. 곧바로 찬비가 괴물의 것처럼 거대해진 입을 벌려 그 부분을 틀어막았기 때문이었다.
저절로 목구멍 뒤까지 쏟아져 들어오는 피의 줄기.
마치 연인의 키스처럼 달콤했다. 아직 키스를 해본 적은 없지만 분명 그럴 것이다, 찬비는 그렇게 생각했다.
믿기지 않는 청량감이 텅 비어 있던 몸을 채웠다. 차오르는 충만감이 전율이 되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듯하다. 지금껏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황홀감이었다.
찬비의 동공이 풀렸다. 감동에 눈에서는 눈물마저 흐르고 있었다.
‘아, 피로 된 바다에 빠져 살았으면 좋겠다.’
찬비는 남자의 몸을 거꾸로 들어, 떨어지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받아 마셨다. 뒤이어 입을 대고 더 이상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때까지 빨아먹었다. 하지만 식사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나머지는 어떤 맛일까?’
찬비는 손에 들고 있는 그대로 남자의 말라비틀어진 몸을 자신의 입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발끝까지 삼켜 버리는 건 정말 순식간이었다. 바닥에는 먹으면서 도중에 뱉어낸 옷가지와 처음부터 먹지 않은 머리만 남았다.
찬비는 정말 행복했다. 태어나서 최고로 충만한 기분. 정말이지 즐거운 식사였다.
정말 그랬다, 딱 몇 초 동안은.
사람을 죽였다. 연고도 없는, 그저 지나가던 무고한 사람을.
심지어 잡아먹기까지 했다. 마구 뜯어먹었다. 즐겁게, 행복하게…….
찬비의 팔 길이가 짧아지고, 길게 자랐던 날카로운 손톱과 발톱이 사라졌다. 다리는 가늘어졌고, 몸의 골격도 호리호리하게 돌아왔다. 세로로 길게 찢어져 있던 동공도 다시 동그랗게 오므라들었다. 눈 또한 더 이상 붉게 빛나지 않았다.
어느새 그는 ‘찬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
“…무슨 소리야?”
완전히 사람 같은 모습이 된 찬비가 마치 남에게 얘기하듯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잠시 후, 창백한 얼굴에 억지 미소가 가득 떠올랐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허공에 가만히 웃음소리가 울렸다.
“하하, 아니야, 이건. 그러니까, 전부 없었던 일이라고. 거짓말이야.”
찬비는 자신의 볼을 더듬었다. 따뜻하고 말랑한 살의 감촉, 이 감촉이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해주고 있다.
그래, 그럴 리가 없잖아. 봐, 이렇게 그대로잖아. 사람이잖아.
찬비는 바로 눈앞에 있는 남자의 머리를 애써 외면한 채 뒤돌아섰다.
그때였다.
“당신은 인간이 아닙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낮으면서도 힘 있는 남성의 목소리.
찬비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잘린 머리만이 남아 있던 그곳에 장소와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괴상한 인물이 서 있었다.
붉은색과 초록색이 큼지막하게 교차된 체크무늬의 코트를 입고 같은 무늬의 높다란 모자를 쓴, 금발에 파란색 눈을 가진 외국인이었다. 모자가 높아서 그런지 키가 거의 2미터는 되어 보였다.
‘봤을까?’
찬비의 눈동자가 음산해졌다.
“누구세요?”
남자는 발소리를 내며 천천히 찬비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몇 걸음쯤 떨어진 곳에 멈춰 서, 모자를 벗고 정중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저는 마술사 닉 바텀. 마술 협회 21장 중 0번째, 광대입니다.”
마술사라니, 웬 미친놈인가 싶지만 저 정중한 태도는 어딘지 찜찜한 데가 있다. 찬비는 더욱 경계하는 태세를 취했다.
그걸 본 자칭 마술사, 바텀이 얼굴에 은근한 미소를 띠었다.
“괴물을 사냥하라는 임무를 받고 왔습니다.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군요.”
“…괴물이라고?”
허리를 든 그는 우스꽝스러우리만큼 커다란 모자를 다시 머리 위에 얹었다. 챙 아래에서 찬비를 바라보는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먹고 먹히다 (3)
“배고파.”
찬비가 중얼거렸다. 속이 타들어가는 듯하다.
넋을 놓은 얼굴은 이제 사람이라기보다 짐승의 얼굴에 더 가까웠다. 날카로운 이빨들이 입안에 가지런히 맞물려 있고, 동공은 찢어질 듯 날카로웠다. 어둠 속이 대낮 같이 훤히 보였다.
그때, 찬비가 휙 고개를 돌려 한쪽을 바라보았다. 달콤하면서도 짭짤한 냄새. 어디에선가 인간의 냄새가 바람에 실려오고 있었다.
찬비의 얼굴에 섬뜩한 미소가 떠올랐다.
냄새가 하나다.
그 말은 곧 혼자 있는 사냥감이라는 이야기다.
‘무리에서 떨어진 것은 최적의 사냥감이다. 뒤를 밟아 기습한다. 소리칠 틈을 주면 안 된다. 죽었다고 느끼기도 전에 삼켜 버리자.’
찬비가 또 중얼거리듯 생각했다.
이제는 그 목소리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목소리가 곧 자신의 몸이자, 자신의 정신이다.
모든 걸 내맡기고 본능에 지배되는 감각은 소름 끼치도록 좋았다.
욕구의 목소리, 진솔한 목소리. 아무것도 숨기지도 억누르지도 않은 채 본능에 충실한 감각. 충만감, 자유, 해방감. 기분이 더욱 고조되었다.
‘먹이가 필요해.’
찬비는 발소리를 죽이고 빠르게 달렸다. 붉은 빛을 내던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잔상을 남기고 사라졌다.
찬비는 자신의 신체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시야가 높아졌다. 온몸의 골격이 두꺼워지며 키가, 덩치가 잔뜩 자라났다.
어느새 그는 짐승이 되어 있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길고 굵은 짐승의 발이 더없이 빠른 속도로 번갈아 움직이며, 공기가 기분 좋게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바람을 가르고 나간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사냥을 나가는 짐승은 즐거움에 미소 지었다.
빠르게 대기를 헤치며 나가는 와중에도 그는 먹이의 냄새를 놓치지 않았다. 찬비의 발길은 정확히 한 남자가 홀로 걷고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윽고 목적지에 가까워졌다. 속도를 늦추고, 숨을 죽였다.
큰길로 통하는 어느 어둡고 좁은 골목에 멈춰 선 찬비가 조용히 벽에 등을 대고 멈추어 섰다.
골목 밖에는 주택단지 앞의 큰길을 술에 취한 남자 하나가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는 먹잇감을 반짝이는 눈으로 살피기 시작했다.
3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 행색을 보아 회사원 같지는 않다. 위아래로 후줄근한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싸구려 술집에서 기분 좋게 한잔하고 들어가는 백수일까.
조용히 뒤를 밟았다.
사실 당장이라도 한입에 삼켜 버리고 싶지만 여기에서 그럴 수는 없다. 가로등이 있었다. 너무 밝다. 게다가 이곳은 주택단지. 누군가에게 보이거나, 어딘가에 찍히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좀 더 어둡고, 주차된 자동차 같은 것도 없는, 주거지역이 아닌 곳. 그래야 안심하고 식사를 즐길 수 있다.
‘그런 곳이 어디 있더라?’
생각해 보았지만 당장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내일 학교를 마치면 앞으로 식사를 즐기기에 적당한 장소를 물색해야겠다.
찬비는 식사에 대한 기대심으로 한껏 들뜬 얼굴을 한 채, 먹잇감이 양옆에 늘어선 주택 중 하나로 들어가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며 뒤를 밟았다.
찬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남자는 마침내 주택단지를 통과하여 사람들이 싹 빠져나간 공장들이 밀집된 지역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공장에 사는 것은 아닐 테니 적어도 남자의 집은 이 지역 건너편에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근처가 식사하기 적당한 곳이라는 사실을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앞으로 유용하게 쓰일 장소 같다. 조금 신경 쓰이는 건 CCTV 정도. 뭐, 좁은 골목에까지 CCTV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찬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로변도 꽤 어둡지만, 주변에 그늘진 좁은 골목이 아주 많았다.
어떻게든 저런 골목 중 하나로 유인하기만 하면, 그 다음은 아주 간단하다.
‘어떻게 유인하지? 말을 걸어야 하나?’
그러나 찬비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함부로 먹잇감에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 어쩌면 같이 있는 모습이 어딘가에 발견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돌연 남자가 발길을 멈추었다. 바로 따라 멈춰 선 찬비는 전봇대 뒤에 몸을 바짝 붙이고, 곁눈으로 남자를 살폈다.
“나비야, 이리 온∼”
고양이 한 마리가 차 밑에서 꼬리를 살랑이고 있었다. 남자는 허리를 숙이고 고양이에게 손짓했다.
고양이는 남자를 쳐다보는가 싶더니, 남자가 한 발짝 다가오자 이내 좁은 골목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남자는 고양이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섰다. 찬비는 바로 따라갈 준비를 했다.
‘좋아, 조금만 더 안으로…….’
그런데 그의 생각이 들린 것일까?
남자는 좁은 골목 바로 앞에서 멈추어 서더니, 다시 큰길로 발길을 돌렸다. 포기한 모양이었다.
‘아… 그냥 확 덮쳐 버릴까, 복잡하게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는 먹이가 손아귀에서 빠져나간다.
찬비는 실망감과 짜증으로 인상을 쓰고 그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야옹.
갑자기 들린 소리에 흠칫 내려다보니, 아까 그 고양이가 있었다. 골목에서 다시 나온 모양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알고 있다.
그는 씩, 거대한 입의 양쪽 끝을 늘리며 웃었다.
길쭉한 팔이 순식간에 고양이를 낚아챘다. 동시에 날카로운 손톱이 목을 떼어냈다.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한 절단면. 고양이는 소리도 없이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졌다. 잘라낸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게 손에 들어온 고양이의 몸뚱이를, 찬비가 그대로 집어삼켰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입을 크게 벌리고 집어넣었다. 마치 뱀이 쥐를 통째로 집어삼키는 것처럼 그의 목이 크게 팽창했다. 팔뚝만 한 고양이가 거짓말처럼 찬비의 입속으로 사라져 갔다.
금세 고양이 한 마리를 해치운 찬비는 입가의 핏기를 닦으며 미소지었다. 아직도 뱃속에서 그윽하게 밀려 올라오는 좋은 향기.
지금껏 먹어본 음식들 중 최고였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양이 너무 적다.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다.
그는 입맛을 다시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래, 이건 애피타이저다.
‘먹잇감의 모습을 취했다.’
찬비는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곧이어 온몸에 회색의 털이 나고, 눈은 노랗게 변했다. 입 밖으로 가르릉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시 후, 골목 안에 있던 찬비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직도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고양이 머리통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얼굴의 고양이만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찬비가 원래부터 고양이였던 양 태연하게, 저 멀리서 여전히 비틀거리며 걷고 있는 남자에게 경쾌한 걸음으로 통통, 다가갔다.
야옹.
남자의 옆에 도착한 회색 고양이가 귀여운 소리로 울었다. 턱에 살이 뒤룩뒤룩 붙은 남자는 화색이 되어 멈추어 서서, 고양이에게 손을 뻗었다. 놀랍게도 아까 전과는 달리 회색 고양이는 남자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고, 손가락을 핥기까지 했다. 남자가 연신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얼빠진 얼굴로 웃었다.
이내 짧은 서비스가 끝나고, 고양이가 남자의 손길을 벗어나 어두운 골목 쪽으로 사뿐사뿐 걸어가기 시작했다. 남자는 여전히 헤죽거리며 그 뒤를 쫓았다.
회색 고양이는 이따금 그를 돌아보며 뒤따라오는지 확인하고는 거리가 멀어질 때마다 남자를 재촉하듯 아양 떠는 소리로 한 번씩 울었다.
이윽고, 그들은 검은 골목 안쪽으로 들어섰다.
골목에는 정적이 흘렀다. 고양이의 울음도, 남자의 바보 같은 웃음도 들리지 않았다.
날카로운 손톱 두 개가 남자의 목을 관통하고 있었다. 정확히 성대가 있는 곳이었다. 남자는 아직도 실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미처 고통을 깨닫기도 전에, 찬비가 손톱 사이를 벌렸다.
그러자 목이 깔끔하게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잘린 목에서 피가 솟구쳐 오른다. 그러나 한 방울도 바닥에는 떨어지지 않았다. 곧바로 찬비가 괴물의 것처럼 거대해진 입을 벌려 그 부분을 틀어막았기 때문이었다.
저절로 목구멍 뒤까지 쏟아져 들어오는 피의 줄기.
마치 연인의 키스처럼 달콤했다. 아직 키스를 해본 적은 없지만 분명 그럴 것이다, 찬비는 그렇게 생각했다.
믿기지 않는 청량감이 텅 비어 있던 몸을 채웠다. 차오르는 충만감이 전율이 되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듯하다. 지금껏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황홀감이었다.
찬비의 동공이 풀렸다. 감동에 눈에서는 눈물마저 흐르고 있었다.
‘아, 피로 된 바다에 빠져 살았으면 좋겠다.’
찬비는 남자의 몸을 거꾸로 들어, 떨어지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받아 마셨다. 뒤이어 입을 대고 더 이상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때까지 빨아먹었다. 하지만 식사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나머지는 어떤 맛일까?’
찬비는 손에 들고 있는 그대로 남자의 말라비틀어진 몸을 자신의 입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발끝까지 삼켜 버리는 건 정말 순식간이었다. 바닥에는 먹으면서 도중에 뱉어낸 옷가지와 처음부터 먹지 않은 머리만 남았다.
찬비는 정말 행복했다. 태어나서 최고로 충만한 기분. 정말이지 즐거운 식사였다.
정말 그랬다, 딱 몇 초 동안은.
사람을 죽였다. 연고도 없는, 그저 지나가던 무고한 사람을.
심지어 잡아먹기까지 했다. 마구 뜯어먹었다. 즐겁게, 행복하게…….
찬비의 팔 길이가 짧아지고, 길게 자랐던 날카로운 손톱과 발톱이 사라졌다. 다리는 가늘어졌고, 몸의 골격도 호리호리하게 돌아왔다. 세로로 길게 찢어져 있던 동공도 다시 동그랗게 오므라들었다. 눈 또한 더 이상 붉게 빛나지 않았다.
어느새 그는 ‘찬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
“…무슨 소리야?”
완전히 사람 같은 모습이 된 찬비가 마치 남에게 얘기하듯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잠시 후, 창백한 얼굴에 억지 미소가 가득 떠올랐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허공에 가만히 웃음소리가 울렸다.
“하하, 아니야, 이건. 그러니까, 전부 없었던 일이라고. 거짓말이야.”
찬비는 자신의 볼을 더듬었다. 따뜻하고 말랑한 살의 감촉, 이 감촉이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해주고 있다.
그래, 그럴 리가 없잖아. 봐, 이렇게 그대로잖아. 사람이잖아.
찬비는 바로 눈앞에 있는 남자의 머리를 애써 외면한 채 뒤돌아섰다.
그때였다.
“당신은 인간이 아닙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낮으면서도 힘 있는 남성의 목소리.
찬비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잘린 머리만이 남아 있던 그곳에 장소와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괴상한 인물이 서 있었다.
붉은색과 초록색이 큼지막하게 교차된 체크무늬의 코트를 입고 같은 무늬의 높다란 모자를 쓴, 금발에 파란색 눈을 가진 외국인이었다. 모자가 높아서 그런지 키가 거의 2미터는 되어 보였다.
‘봤을까?’
찬비의 눈동자가 음산해졌다.
“누구세요?”
남자는 발소리를 내며 천천히 찬비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몇 걸음쯤 떨어진 곳에 멈춰 서, 모자를 벗고 정중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저는 마술사 닉 바텀. 마술 협회 21장 중 0번째, 광대입니다.”
마술사라니, 웬 미친놈인가 싶지만 저 정중한 태도는 어딘지 찜찜한 데가 있다. 찬비는 더욱 경계하는 태세를 취했다.
그걸 본 자칭 마술사, 바텀이 얼굴에 은근한 미소를 띠었다.
“괴물을 사냥하라는 임무를 받고 왔습니다.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군요.”
“…괴물이라고?”
허리를 든 그는 우스꽝스러우리만큼 커다란 모자를 다시 머리 위에 얹었다. 챙 아래에서 찬비를 바라보는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