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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먹고 먹히다 (2)
눈을 몇 차례 깜박인 찬비는 얼굴을 찌푸렸다. 익히 잘 아는 흰색 벽지와 형광등의 모습이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괜찮아?”
찬비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여름밤의 동그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미소 짓고 있지만 어딘지 어두운 눈빛.
그 잘 아는 목소리, 잘 아는 얼굴이… 낯설다. 언제나와 똑같은 침대는 괜히 불편하다.
그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기묘한 위화감에 인상이 펴지질 않았다.
“…뭐지?”
“너 아까 쓰러졌어. 체육 쌤이 운동장에서 기숙사까지 옮겨주셨고. 괜찮아?”
‘그런 의미로 물은 게 아니었는데.’
하지만 찬비는 이불을 걷고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멀쩡한 모습으로, 있어야 할 곳에 붙어 있다.
“괜찮은 것 같네.”
“아, 다행이다.”
그제야 여름밤은 눈까지 활짝 웃어 보였다.
아, 생각났다. 저 미덥지 못한 얼굴은 잘 알고 있다. 여름밤, 자신의 룸메이트, 친구.
낮은 한숨을 내쉬는 것이 보였다. 어지간히 걱정하고 있던 모양이다. 가슴이 찡했지만 그래도 겉으로는 표시를 내지 않았다.
그는 침대에서 내려오며 기지개를 쭉 켰다.
“멀쩡해, 걱정할 필요 없어.”
그러고는 이리저리 팔을 휘저으며 말했다. 실제로도 몸은 멀쩡한 듯했다. 가볍게 점프해 보았지만 다리가 아프거나 하지도 않다.
여름밤이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멀쩡해 보인다. 그런데 도대체 뭐야? 유성이 얘기 들어보니까 공 찾으러 가서는 안 왔다고 하던데. 애들 데리고 내내 너 찾아다녔대.”
찬비는 할 말을 잃었다.
깜빡깜빡, 명멸하는 신호등처럼 어렴풋이는 기억이 난다. 몇 시간 전 일어난, 현실감이라곤 전혀 없는 일이.
그때, 분명 그는…….
‘이걸 말해도 되는 걸까? 직접 겪은 나도 믿기 힘든데, 이 일을 믿어주기나 할까?’
아니, 사실 직접 겪은 일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분명히 물려서 다리가 너덜너덜했는데, 그때 느낀 고통이 거짓말인 것처럼 멀쩡히 잘 붙어 있다.
그것은 꿈이었을까? 환상이었을까?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가짜고, 어디까지가 진짜일까?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여름밤이 그런 자신을 빤히 바라보았다.
“말하기 힘들면 안 해도 돼. 나중에 말해줘. 내가 뭐라도 도와줄 테니까.”
찬비는 여름밤을 응시했다. 꿰뚫는 듯한 말을 해놓고도 여름밤은 멋쩍게 웃고 있었다.
항상 자신에게 위로받던 여름밤이 그를 위로하고 있다.
돕고 싶다니, 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
그렇지만 그 어설픈 모습이 어딘가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괜스레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어 찬비는 웃음이 나왔다.
그러자 여름밤이 구시렁거렸다.
“뭐야, 왜 웃어. 사람이 진지하게 얘기하는데.”
“아무것도 아냐. 아까는… 그게, 말하기 곤란한 건 아닌데… 솔직히 나도 지금 이게 뭔지 잘 모르겠어.”
“뭔 소리야, 그게?”
“그냥 좀 이상한 꿈을 꾼 것 같아. 왜, 너 꾸는 꿈처럼 이상한 거에 쫓기는 꿈인데……. 아니지, 내가 쫓는 꿈이었나? …나 뭐래냐?”
순간, 여름밤의 표정이 괴상해졌다.
“혹시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해?”
“커다란 호랑이인데 눈, 코는 없고, 입이 이만한? 지금 생각하니 좀 웃기기도 하고. 별 이상하게 생긴 괴물이 다 있네.”
찬비는 별것 아닌 듯 웃으며 얘기했지만, 여름밤은 그를 따라 웃지 않았다. 경직되고 혼란스러운 얼굴로 마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고는 이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 내 꿈에 나온 것도 그렇게 생긴 괴물이었어.”
여름밤은 간밤에 기숙사 정원에 있던 커다란 그림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확인해 보았을 때, 기숙사 정원은 무언가에 의해 엉망으로 짓밟혀 있는 상태였다. 그걸 보고도 여름밤은 애써 그저 우연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자신의 악몽 속에만 있는, 악몽 속에나 있을 법한 생물이다. 그냥 상상으로 그 정도까지 정확히 말할 수 있을 리 없다.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설마, 그럴 리가 없는데.’
“아, 그럼 내가 똑같은 꿈을 꿨나 보네, 네 얘기 듣고서. 그런데 진심 무섭긴 하더라. 이 정도면 너 울던 것도 이해가 가. 솔직히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다.”
여름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찬비의 얼굴이 확 펴졌다. 뭔가 안심했다는 표정이다. 심지어 조금 기뻐 보이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내가 한 걱정은 대체 뭐였지?’
그래도 어쨌든 찬비가 무사하니 다행인 것이다. 여름밤은 한숨을 푹 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따라 웃었다.
“배고프다.”
그때, 시계를 보던 찬비가 갑자기 자신의 배를 문지르며 말했다.
생각해 보니 점심도 못 먹고 축구하러 끌려 나왔는데, 결국 그때 기절한 거였는지 잠든 거였는지 모르겠지만 줄곧 굶은 채다. 저녁 식사 시간도 이미 지났다.
“오늘 너 먹은 게… 아침에 먹은 시리얼뿐인가? 배고플 만하네.”
여름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때, 찬비가 코를 킁킁거렸다.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어디지?
눈앞이 핑핑 돈다.
냄새는… 앞에 서 있는 여름밤에게서부터 나고 있었다.
정말 맛있는 냄새였다. 일반적인 음식의 냄새가 아닌, 코로 들이마시자마자 바로 심장으로 달려가는, 온몸을 찌릿하게 만드는 냄새였다.
“뭐지? 여름아, 너 혹시 뭐 먹을 거 갖고 있냐?”
“아니, 없는데. 왜?”
찬비가 여름밤을 빤히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여름밤은 왠지 꺼림칙함을 느꼈다. 주춤하고 뒤로 몸을 빼자, 침대에 앉아 있던 찬비가 어느새 몸을 일으키더니 가까이 다가왔다. 아주 가까이.
여름밤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뻥치지 마. 너한테서 엄청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아니, 무슨… 안 갖고 있다니까?”
마치 굶주린 짐승의 눈 같았다. 자신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파괴할 준비가 된 눈. 방금 전까지 웃고 있던 것이 믿겨지지 않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얼굴이었다.
“야, 갑자기 왜 그래? 무섭게… 우왁!”
뒷걸음질 치던 여름밤이 그만 뒤로 고꾸라졌다.
그러나 넘어지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찬비가 바닥에 쓰러진 그의 어깨를 꽉 붙들었다. 흠칫, 어깨를 움츠린 여름밤이 거의 본능적으로 얼굴 앞으로 팔을 들어 올렸다.
“한입만 먹자.”
찬비의 입이 사람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크게 벌어졌다. 그대로 여름밤을 전부 삼켜버릴 듯이.
이미 겁을 먹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여름밤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막 입이 닫히려는 그때.
“야, 씨… 자, 장난치지 마!”
퍽.
여름밤이 뿌리치듯 휘두른 주먹이 찬비의 왼쪽 광대에 직격했다.
얼굴을 한 대 맞은 찬비는 정신이 멍해졌다.
‘방금 뭐였지?’
그가 가만히 있는 사이, 여름밤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나, 나 뭐라도 사 올게.”
“…어?”
쾅.
방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와 함께 여름밤이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제야 찬비는 지금까지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무언가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방금, 여름밤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뼈까지 남김없이 전부 뜯어 먹어버리고 싶었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면서도 자신의 의지였다.
냄새.
허기를 자각하자마자, 생전 처음 맡아보는 황홀한 그 냄새를 맡자마자, 정신이 몽롱해지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 냄새는 지금도 방 안 곳곳에서 나고 있었다.
가장 강하게 냄새가 배어 있는 것은 지금 입고 있는 여름밤의 체육복.
찬비는 체육복 소매를 끌어다 코에 대고 숨을 크게 들이마셔 보았다.
찬비의 눈이 잠시 초점을 잃었다가 되돌아왔다. 입은 반쯤 벌어졌다.
‘미친, 말도 안 돼.’
침이 입 안 가득 고였다. 위장이 꼬이는 듯했다.
그건 식욕 이전에 마치 머릿속을 찔러 올리는 듯한, 전부 다져 버리는 듯한 냄새였다. 그는 한참을 소매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그러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 아니야! 이게 뭐야!”
찬비는 체육복을 벗어 멀찍이 내던졌다. 옷은 날아가 화장실 문 앞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 냄새는 마치 눈에 보이는 듯했다. 어디서 나고 있는지 너무도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그 냄새가 강하게 나는 곳은… 여름밤의 침대다.
찬비는 그 침대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구석으로 갔다. 그러고는 웅크려 앉아서 코를 틀어막았다.
여름밤의 냄새에서 식욕을 느끼고 있다.
이게 무슨, 미친 게 분명하다.
하지만 굳이 해보지 않더라도 다시 저 냄새를 맡는다면 그 순간, 미친 소리지만 여름밤을 자근자근 씹어 삼키는 상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욱 미친 소리지만, 그렇게만 하면 정말 정신이 나갈 만큼 맛있고 행복할 것 같다.
그것이 더 무서웠다. 이대로라면 정말 그렇게 해버릴지도 모른다. 정말로 여름밤을, 친구를, 사람을 뜯어 먹어버릴지도 모른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아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상한 것은… 그래, 정신을 잃고 깨어나서부터다.
‘설마 그게 꿈이 아니었나? 그 괴물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 아냐?’
찬비는 괴물에게 잡아먹힌 순간을 떠올렸다.
‘그래, 맛있게 베어 먹었지. 그런데 그만 머리를 먹어버려서…….’
아니지, 베어 먹었다니? 먹어버렸다니? 자신은 먹힌 쪽이지 먹은 쪽이 아니다.
생각할수록 무언가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은 채, 더욱 혼란스럽기만 했다. 찬비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여름밤이 들어왔다. 손에는 갖가지 먹거리가 담긴 편의점 봉투가 들려 있었다.
“구석에서 뭐해?”
여름밤은 웃통을 벗고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는 그를 보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이쪽으로 오지 마!”
찬비가 빽, 소리쳤다. 그는 손으로 코를 꽉 부여잡고 있었다. 이내 고개까지 돌린다.
멈칫하던 여름밤이 한 발짝 더 다가섰다.
“혹시 아까 코에 맞았어?”
“그런 거 아냐. 이리로 오지 말라고.”
“미안, 그냥 좀 놀라서.”
“아니라고. 그냥 지금 조금… 멈춰! 가까이 오지 마.”
어리둥절한 얼굴로 여름밤이 쭈뼛거리며 한 걸음 물러섰다. 편의점 봉투를 들어 올려 보인다.
“너 배고프다며. 뭐 좀 사왔는데, 어떡할래?”
“책상 위에 둬, 내가 알아서 먹을게. 고마워.”
“…….”
여름밤은 찬비로부터 떨어져 말없이 편의점 봉투를 찬비의 책상 위에 올려다 놓았다.
이상하다는, 걱정스러운 얼굴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전 그에게 한 ‘말하기 힘들면 안 해도 된다’는 말처럼.
여름밤이 화장실에 들어가고 나서야, 찬비는 책상 위로 다가가 봉지 안에 든 내용물을 꺼냈다.
안에는 편의점 도시락과 우유가 들어 있었다.
허겁지겁 도시락을 먹는데, 입으로는 밥을 넘기고 있는데도 전혀 무언가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김치도 고기도 감자조림도… 목 뒤로 넘어가면 그냥 사라져 버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가짜 음식처럼, 배에 구멍이 난 것처럼.
‘이게 무슨…….’
우유를 집어 들었다.
바나나맛 우유. 말한 적도 없는데, 이걸 좋아하는 줄은 어떻게 알고 사다준 건지.
그러나 목구멍으로 꿀꺽꿀꺽 우유를 넘기고 있는데도 조금도, 정말 조금도 배가 차지 않는다. 바나나 향이 나는 그 익히 아는 단맛에서 낯선 위화감만이 느껴질 뿐.
봉투에 들어 있던 것들을 전부 먹었지만, 배에서는 끊임없이 허기가 느껴졌다.
그때, 화장실에서 여름밤이 걸어 나왔다.
“벌써 다 먹었네. 그렇게 배고팠어?”
“오지 마!”
“…….”
순간 뚝, 멈춘 여름밤의 표정은 조금 굳어 있었다.
찬비는 가슴에 돌을 올려놓은 듯했다. 그러나 지금은 여름밤 옆에 가서는 안 된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미안, 절대로 뭐 화나거나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조금, 지금 사정이 있어서 그래. 미안해. 제발, 아무것도 묻지 말고 넘어가 줘. 진짜 부탁할게.”
“…알았어.”
여름밤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다시 찬비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날 밤, 여름밤이 침대에 가서 누운 뒤에야 찬비는 화장실로 향했다. 찬물을 한 번 끼얹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며.
그러나 찬물을 한참 맞고 있어도 몸속을 박박 긁어내리는 듯한 허기와 식욕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름밤을 전부 씹어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라는 생각도.
비척비척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이미 여름밤은 불을 끄고 잠들어 있었다.
‘잠들어 있으면 아주 손쉽게 사냥할 수 있다. 특히 어둠 속에 잠겨 있을 때는.’
멀찍이 서서 잠든 여름밤을 바라보던 찬비가 생각했다.
‘기척을 숨기고 접근해. 단번에 숨통을 끊은 다음, 천천히 식사를 즐기는 거다.’
‘아냐, 식사는 무슨. 여름이는 음식이 아니라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미쳐 버릴 것만 같다. 생각하는 것을 그만둘 수가 없다. 너무나 배가 고팠다. 여름밤이든 뭐든, 당장 뭔가 먹지 않으면 굶어 죽어버릴 것이다.
그는 달려가 창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었다.
차가운 공기를 쐬자 한순간이지만, 한결 기분이 나아지는 듯했다.
힘을 잃은 듯 찬비의 몸이 소리도 없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착지는 앞발부터 비스듬하게. 뒷발이 땅에 닿을 때는 가볍게 땅을 차서 낙하하던 힘의 방향을 앞쪽으로 바꾸는 거다.’
또다시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음 순간, 찬비는 경악했다. 어느새 그는 창밖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쏘아지듯 바닥이 가까워져 오는데도 전혀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는 능숙하게 양손으로 먼저 땅을 짚고, 차듯이 발을 내려놓으며 고양이처럼 사뿐히 착지했다. 일어선 찬비는 스스로의 몸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둠 속에 녹아들자. 그러면 먹잇감은 내가 거기 있는지도 모르게 된다.’
급격한 허기에 정신을 반쯤 놓자, 몸이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찬비는 기숙사의 담장을 가뿐히 뛰어넘어, 불빛 없는 골목으로 사라져 갔다.
먹고 먹히다 (2)
눈을 몇 차례 깜박인 찬비는 얼굴을 찌푸렸다. 익히 잘 아는 흰색 벽지와 형광등의 모습이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괜찮아?”
찬비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여름밤의 동그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미소 짓고 있지만 어딘지 어두운 눈빛.
그 잘 아는 목소리, 잘 아는 얼굴이… 낯설다. 언제나와 똑같은 침대는 괜히 불편하다.
그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기묘한 위화감에 인상이 펴지질 않았다.
“…뭐지?”
“너 아까 쓰러졌어. 체육 쌤이 운동장에서 기숙사까지 옮겨주셨고. 괜찮아?”
‘그런 의미로 물은 게 아니었는데.’
하지만 찬비는 이불을 걷고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멀쩡한 모습으로, 있어야 할 곳에 붙어 있다.
“괜찮은 것 같네.”
“아, 다행이다.”
그제야 여름밤은 눈까지 활짝 웃어 보였다.
아, 생각났다. 저 미덥지 못한 얼굴은 잘 알고 있다. 여름밤, 자신의 룸메이트, 친구.
낮은 한숨을 내쉬는 것이 보였다. 어지간히 걱정하고 있던 모양이다. 가슴이 찡했지만 그래도 겉으로는 표시를 내지 않았다.
그는 침대에서 내려오며 기지개를 쭉 켰다.
“멀쩡해, 걱정할 필요 없어.”
그러고는 이리저리 팔을 휘저으며 말했다. 실제로도 몸은 멀쩡한 듯했다. 가볍게 점프해 보았지만 다리가 아프거나 하지도 않다.
여름밤이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멀쩡해 보인다. 그런데 도대체 뭐야? 유성이 얘기 들어보니까 공 찾으러 가서는 안 왔다고 하던데. 애들 데리고 내내 너 찾아다녔대.”
찬비는 할 말을 잃었다.
깜빡깜빡, 명멸하는 신호등처럼 어렴풋이는 기억이 난다. 몇 시간 전 일어난, 현실감이라곤 전혀 없는 일이.
그때, 분명 그는…….
‘이걸 말해도 되는 걸까? 직접 겪은 나도 믿기 힘든데, 이 일을 믿어주기나 할까?’
아니, 사실 직접 겪은 일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분명히 물려서 다리가 너덜너덜했는데, 그때 느낀 고통이 거짓말인 것처럼 멀쩡히 잘 붙어 있다.
그것은 꿈이었을까? 환상이었을까?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가짜고, 어디까지가 진짜일까?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여름밤이 그런 자신을 빤히 바라보았다.
“말하기 힘들면 안 해도 돼. 나중에 말해줘. 내가 뭐라도 도와줄 테니까.”
찬비는 여름밤을 응시했다. 꿰뚫는 듯한 말을 해놓고도 여름밤은 멋쩍게 웃고 있었다.
항상 자신에게 위로받던 여름밤이 그를 위로하고 있다.
돕고 싶다니, 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
그렇지만 그 어설픈 모습이 어딘가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괜스레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어 찬비는 웃음이 나왔다.
그러자 여름밤이 구시렁거렸다.
“뭐야, 왜 웃어. 사람이 진지하게 얘기하는데.”
“아무것도 아냐. 아까는… 그게, 말하기 곤란한 건 아닌데… 솔직히 나도 지금 이게 뭔지 잘 모르겠어.”
“뭔 소리야, 그게?”
“그냥 좀 이상한 꿈을 꾼 것 같아. 왜, 너 꾸는 꿈처럼 이상한 거에 쫓기는 꿈인데……. 아니지, 내가 쫓는 꿈이었나? …나 뭐래냐?”
순간, 여름밤의 표정이 괴상해졌다.
“혹시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해?”
“커다란 호랑이인데 눈, 코는 없고, 입이 이만한? 지금 생각하니 좀 웃기기도 하고. 별 이상하게 생긴 괴물이 다 있네.”
찬비는 별것 아닌 듯 웃으며 얘기했지만, 여름밤은 그를 따라 웃지 않았다. 경직되고 혼란스러운 얼굴로 마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고는 이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 내 꿈에 나온 것도 그렇게 생긴 괴물이었어.”
여름밤은 간밤에 기숙사 정원에 있던 커다란 그림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확인해 보았을 때, 기숙사 정원은 무언가에 의해 엉망으로 짓밟혀 있는 상태였다. 그걸 보고도 여름밤은 애써 그저 우연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자신의 악몽 속에만 있는, 악몽 속에나 있을 법한 생물이다. 그냥 상상으로 그 정도까지 정확히 말할 수 있을 리 없다.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설마, 그럴 리가 없는데.’
“아, 그럼 내가 똑같은 꿈을 꿨나 보네, 네 얘기 듣고서. 그런데 진심 무섭긴 하더라. 이 정도면 너 울던 것도 이해가 가. 솔직히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다.”
여름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찬비의 얼굴이 확 펴졌다. 뭔가 안심했다는 표정이다. 심지어 조금 기뻐 보이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내가 한 걱정은 대체 뭐였지?’
그래도 어쨌든 찬비가 무사하니 다행인 것이다. 여름밤은 한숨을 푹 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따라 웃었다.
“배고프다.”
그때, 시계를 보던 찬비가 갑자기 자신의 배를 문지르며 말했다.
생각해 보니 점심도 못 먹고 축구하러 끌려 나왔는데, 결국 그때 기절한 거였는지 잠든 거였는지 모르겠지만 줄곧 굶은 채다. 저녁 식사 시간도 이미 지났다.
“오늘 너 먹은 게… 아침에 먹은 시리얼뿐인가? 배고플 만하네.”
여름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때, 찬비가 코를 킁킁거렸다.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어디지?
눈앞이 핑핑 돈다.
냄새는… 앞에 서 있는 여름밤에게서부터 나고 있었다.
정말 맛있는 냄새였다. 일반적인 음식의 냄새가 아닌, 코로 들이마시자마자 바로 심장으로 달려가는, 온몸을 찌릿하게 만드는 냄새였다.
“뭐지? 여름아, 너 혹시 뭐 먹을 거 갖고 있냐?”
“아니, 없는데. 왜?”
찬비가 여름밤을 빤히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여름밤은 왠지 꺼림칙함을 느꼈다. 주춤하고 뒤로 몸을 빼자, 침대에 앉아 있던 찬비가 어느새 몸을 일으키더니 가까이 다가왔다. 아주 가까이.
여름밤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뻥치지 마. 너한테서 엄청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아니, 무슨… 안 갖고 있다니까?”
마치 굶주린 짐승의 눈 같았다. 자신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파괴할 준비가 된 눈. 방금 전까지 웃고 있던 것이 믿겨지지 않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얼굴이었다.
“야, 갑자기 왜 그래? 무섭게… 우왁!”
뒷걸음질 치던 여름밤이 그만 뒤로 고꾸라졌다.
그러나 넘어지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찬비가 바닥에 쓰러진 그의 어깨를 꽉 붙들었다. 흠칫, 어깨를 움츠린 여름밤이 거의 본능적으로 얼굴 앞으로 팔을 들어 올렸다.
“한입만 먹자.”
찬비의 입이 사람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크게 벌어졌다. 그대로 여름밤을 전부 삼켜버릴 듯이.
이미 겁을 먹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여름밤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막 입이 닫히려는 그때.
“야, 씨… 자, 장난치지 마!”
퍽.
여름밤이 뿌리치듯 휘두른 주먹이 찬비의 왼쪽 광대에 직격했다.
얼굴을 한 대 맞은 찬비는 정신이 멍해졌다.
‘방금 뭐였지?’
그가 가만히 있는 사이, 여름밤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나, 나 뭐라도 사 올게.”
“…어?”
쾅.
방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와 함께 여름밤이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제야 찬비는 지금까지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무언가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방금, 여름밤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뼈까지 남김없이 전부 뜯어 먹어버리고 싶었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면서도 자신의 의지였다.
냄새.
허기를 자각하자마자, 생전 처음 맡아보는 황홀한 그 냄새를 맡자마자, 정신이 몽롱해지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 냄새는 지금도 방 안 곳곳에서 나고 있었다.
가장 강하게 냄새가 배어 있는 것은 지금 입고 있는 여름밤의 체육복.
찬비는 체육복 소매를 끌어다 코에 대고 숨을 크게 들이마셔 보았다.
찬비의 눈이 잠시 초점을 잃었다가 되돌아왔다. 입은 반쯤 벌어졌다.
‘미친, 말도 안 돼.’
침이 입 안 가득 고였다. 위장이 꼬이는 듯했다.
그건 식욕 이전에 마치 머릿속을 찔러 올리는 듯한, 전부 다져 버리는 듯한 냄새였다. 그는 한참을 소매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그러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 아니야! 이게 뭐야!”
찬비는 체육복을 벗어 멀찍이 내던졌다. 옷은 날아가 화장실 문 앞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 냄새는 마치 눈에 보이는 듯했다. 어디서 나고 있는지 너무도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그 냄새가 강하게 나는 곳은… 여름밤의 침대다.
찬비는 그 침대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구석으로 갔다. 그러고는 웅크려 앉아서 코를 틀어막았다.
여름밤의 냄새에서 식욕을 느끼고 있다.
이게 무슨, 미친 게 분명하다.
하지만 굳이 해보지 않더라도 다시 저 냄새를 맡는다면 그 순간, 미친 소리지만 여름밤을 자근자근 씹어 삼키는 상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욱 미친 소리지만, 그렇게만 하면 정말 정신이 나갈 만큼 맛있고 행복할 것 같다.
그것이 더 무서웠다. 이대로라면 정말 그렇게 해버릴지도 모른다. 정말로 여름밤을, 친구를, 사람을 뜯어 먹어버릴지도 모른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아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상한 것은… 그래, 정신을 잃고 깨어나서부터다.
‘설마 그게 꿈이 아니었나? 그 괴물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 아냐?’
찬비는 괴물에게 잡아먹힌 순간을 떠올렸다.
‘그래, 맛있게 베어 먹었지. 그런데 그만 머리를 먹어버려서…….’
아니지, 베어 먹었다니? 먹어버렸다니? 자신은 먹힌 쪽이지 먹은 쪽이 아니다.
생각할수록 무언가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은 채, 더욱 혼란스럽기만 했다. 찬비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여름밤이 들어왔다. 손에는 갖가지 먹거리가 담긴 편의점 봉투가 들려 있었다.
“구석에서 뭐해?”
여름밤은 웃통을 벗고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는 그를 보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이쪽으로 오지 마!”
찬비가 빽, 소리쳤다. 그는 손으로 코를 꽉 부여잡고 있었다. 이내 고개까지 돌린다.
멈칫하던 여름밤이 한 발짝 더 다가섰다.
“혹시 아까 코에 맞았어?”
“그런 거 아냐. 이리로 오지 말라고.”
“미안, 그냥 좀 놀라서.”
“아니라고. 그냥 지금 조금… 멈춰! 가까이 오지 마.”
어리둥절한 얼굴로 여름밤이 쭈뼛거리며 한 걸음 물러섰다. 편의점 봉투를 들어 올려 보인다.
“너 배고프다며. 뭐 좀 사왔는데, 어떡할래?”
“책상 위에 둬, 내가 알아서 먹을게. 고마워.”
“…….”
여름밤은 찬비로부터 떨어져 말없이 편의점 봉투를 찬비의 책상 위에 올려다 놓았다.
이상하다는, 걱정스러운 얼굴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전 그에게 한 ‘말하기 힘들면 안 해도 된다’는 말처럼.
여름밤이 화장실에 들어가고 나서야, 찬비는 책상 위로 다가가 봉지 안에 든 내용물을 꺼냈다.
안에는 편의점 도시락과 우유가 들어 있었다.
허겁지겁 도시락을 먹는데, 입으로는 밥을 넘기고 있는데도 전혀 무언가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김치도 고기도 감자조림도… 목 뒤로 넘어가면 그냥 사라져 버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가짜 음식처럼, 배에 구멍이 난 것처럼.
‘이게 무슨…….’
우유를 집어 들었다.
바나나맛 우유. 말한 적도 없는데, 이걸 좋아하는 줄은 어떻게 알고 사다준 건지.
그러나 목구멍으로 꿀꺽꿀꺽 우유를 넘기고 있는데도 조금도, 정말 조금도 배가 차지 않는다. 바나나 향이 나는 그 익히 아는 단맛에서 낯선 위화감만이 느껴질 뿐.
봉투에 들어 있던 것들을 전부 먹었지만, 배에서는 끊임없이 허기가 느껴졌다.
그때, 화장실에서 여름밤이 걸어 나왔다.
“벌써 다 먹었네. 그렇게 배고팠어?”
“오지 마!”
“…….”
순간 뚝, 멈춘 여름밤의 표정은 조금 굳어 있었다.
찬비는 가슴에 돌을 올려놓은 듯했다. 그러나 지금은 여름밤 옆에 가서는 안 된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미안, 절대로 뭐 화나거나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조금, 지금 사정이 있어서 그래. 미안해. 제발, 아무것도 묻지 말고 넘어가 줘. 진짜 부탁할게.”
“…알았어.”
여름밤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다시 찬비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날 밤, 여름밤이 침대에 가서 누운 뒤에야 찬비는 화장실로 향했다. 찬물을 한 번 끼얹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며.
그러나 찬물을 한참 맞고 있어도 몸속을 박박 긁어내리는 듯한 허기와 식욕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름밤을 전부 씹어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라는 생각도.
비척비척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이미 여름밤은 불을 끄고 잠들어 있었다.
‘잠들어 있으면 아주 손쉽게 사냥할 수 있다. 특히 어둠 속에 잠겨 있을 때는.’
멀찍이 서서 잠든 여름밤을 바라보던 찬비가 생각했다.
‘기척을 숨기고 접근해. 단번에 숨통을 끊은 다음, 천천히 식사를 즐기는 거다.’
‘아냐, 식사는 무슨. 여름이는 음식이 아니라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미쳐 버릴 것만 같다. 생각하는 것을 그만둘 수가 없다. 너무나 배가 고팠다. 여름밤이든 뭐든, 당장 뭔가 먹지 않으면 굶어 죽어버릴 것이다.
그는 달려가 창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었다.
차가운 공기를 쐬자 한순간이지만, 한결 기분이 나아지는 듯했다.
힘을 잃은 듯 찬비의 몸이 소리도 없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착지는 앞발부터 비스듬하게. 뒷발이 땅에 닿을 때는 가볍게 땅을 차서 낙하하던 힘의 방향을 앞쪽으로 바꾸는 거다.’
또다시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음 순간, 찬비는 경악했다. 어느새 그는 창밖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쏘아지듯 바닥이 가까워져 오는데도 전혀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는 능숙하게 양손으로 먼저 땅을 짚고, 차듯이 발을 내려놓으며 고양이처럼 사뿐히 착지했다. 일어선 찬비는 스스로의 몸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둠 속에 녹아들자. 그러면 먹잇감은 내가 거기 있는지도 모르게 된다.’
급격한 허기에 정신을 반쯤 놓자, 몸이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찬비는 기숙사의 담장을 가뿐히 뛰어넘어, 불빛 없는 골목으로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