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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먹고 먹히다 (1)
끄그그끄그그끼기기기기끼기까가가가까가각.
여태껏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로 호랑이가 울부짖었다. 그것은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 같기도 했고, 고속으로 달리던 자동차에 급제동을 거는 소리 같기도 했다. 두 번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을 만큼 기분 나쁜 소리였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먹잇감을 발견했다는 환희의 외침일까? 아니면 위험하다는 경고의 울음일까? 어느 쪽이든 전혀 달갑지 않은 소리였다.
울부짖은 호랑이가 이내 찬비 쪽을 보며 몸을 잔뜩 움츠렸다.
덮쳐 올 것이다.
깨달은 순간, 찬비는 급히 자신이 왔던 모퉁이 쪽으로 몸을 피했다. 그 즉시 뒤에서 묵직한 것이 벽에 충돌하는, 교통사고라도 난 듯한 굉음이 들렸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전력으로 달렸다.
크게 충돌하고도 호랑이는 전혀 다치지 않은 듯, 뒤에서 곧바로 자신을 쫓아오는 네발짐승의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래가 끓는 듯한 거친 숨소리, 시멘트로 된 바닥을 깨뜨리며 거칠게 디디는 소리, 충돌음과 함께 무언가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호랑이의 몸뚱이에 부딪친 주변 사물들의 파편들이 뒤에서 마구 튀며 소리를 냈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어떤 모습으로 자신의 뒤를 쫓고 있을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매우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따라잡히겠어!’
찬비의 속도는 호랑이에 비해 턱도 없이 느렸다. 때때로 나무 따위를 끼고 방향을 틀었지만, 호랑이는 그대로 몸을 부딪쳐 부서뜨리며 따라왔다. 속도조차 거의 줄지 않는다.
‘어떻게 하지? …아!’
정면에 한 건물의 입구가 보였다. 공사가 중단된 오래된 빌라 건물. 현관문조차 달려 있지 않았으나, 입구에 출입 금지 표시와 함께 철망으로 된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다.
그는 죽을힘을 다해 그쪽으로 뛰었다.
‘좁은 곳으로 들어가야 해!’
거대한 호랑이는 통과할 수 없을 크기의 입구다. 몸을 부딪쳐 부수고 들어온다 해도 내부는 더욱 좁을 것이다. 들어가기만 한다면 더는 쫓아오지 못하리라.
호랑이와의 거리는 이제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마음만 먹는다면 달리고 있는 그의 몸 어느 부위든지 단번에 낚아챌 수 있을 듯했다.
끄그그기가가가가각.
아니나 다를까, 호랑이가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를 내며 목을 쭉 뻗고 덮쳐 왔다. 이빨로 가득한 입이 그를 한 번에 삼킬 수 있을 만큼 벌어졌다.
드디어 호랑이가 입을 닫으려는 순간, 찬비는 달리던 그대로 펄쩍 건물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우당탕!
“으윽!”
몸을 던져 바리케이드 사이를 통과한 찬비가 바닥에 엎어져 굴렀다. 그 통에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던 건축자재들이 마구 떨어져 내렸다. 정리조차 되어 있지 않은 바닥을 힘껏 구른 탓에 온몸이 욱신거렸다.
그러나 아파하고 있을 새도 없이, 급히 콘크리트 바닥을 짚고 반쯤 기다시피 입구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졌다.
입구에서는 금속이 부딪치는 듯한 깡깡, 소리가 들렸다. 호랑이가 입구에서 몇 번이고 아가리를 벌렸다, 오므렸다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건물째로 씹어 삼켜 버릴 기세로 부딪치며 밀고 들어오려고 했다. 그때마다 바리케이드 끼익거리고, 벽에서 콘크리트 가루들이 떨어져 내렸다.
호랑이의 이빨이 닿자, 그리 두껍지 않은 벽 속에서 허연 단열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애초에 그리 튼튼한 건물은 아닌 듯하나, 그래도 저 호랑이를 막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헉… 헉…….”
찬비는 안전하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다.
심장이 튀어나올 듯 뛰고 있었다. 뒤늦게 갈비뼈 있는 데가 아려왔다. 뛸 때는 알지 못했는데 온몸이 후들거렸다. 한숨을 돌리고 나니 울분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때, 벽에서 떨어진 돌조각이 눈에 띄었다. 찬비는 다리에 힘을 주어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돌을 집어 들어 호랑이 쪽으로 힘껏 내던졌다.
“얌마! 이거나 먹어라!”
돌이 호랑이의 이빨에 부딪치며 카랑한 금속성을 냈다.
그러자 호랑이가 갑자기 뚝 멈췄다. 다른 돌을 주워 들어 이어 던지려던 찬비도 당황하며 움직임을 멈추고 쳐다보았다.
“뭐, 뭐야?”
듣기 싫은 그 울음소리조차 없이, 마치 굳어버린 것처럼 한동안 잠잠히 있던 호랑이는 벌리고 있던 아가리를 천천히 오므리고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찬비는 숨을 죽인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 * *
호랑이가 완전히 사라지고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찬비는 누군가 자신을 찾으러 오거나, 하다못해 차 한 대라도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인적이 드문 외곽 지역에서도 더 안쪽으로 도망친 탓에 주변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갔나?”
밖은 기분 나쁠 만큼 고요했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로 보아, 적어도 호랑이는 이 주변에 없는 듯하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살펴봐도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여기서는.
찬비는 조심스럽게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다, 이내 멈춰 섰다.
‘설마 기다리고 있다가 덮친다던가? 그 정도의 머리를 쓸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걸음을 옮겨 입구로부터 대여섯 걸음 정도 떨어진 곳까지 다가갔다. 그러곤 다시 멈췄다.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찬비는 신고 있던 신발을 한 짝 벗어 들어 밖으로 슬쩍 던졌다.
그러나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신발은 소리도 없이 나타난 선홍색 아가리 속으로 빨려들 듯 사라졌다. 그러고는 철컹거리는 금속성과 함께, 믹서에라도 갈리는 듯한 마구 터지는 소리를 내며 요란스럽게 씹혔다.
“으아악!”
찬비는 비명을 지르며 후닥닥 물러나, 계단까지 올라갔다.
호랑이의 아가리가 다시 자신의 신발을 뱉어냈다. 바닥에 떨어진 신발은 다져진 것처럼 찢기고 구멍이 뚫려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찬비는 신발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완전히 갈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여차하면 내일까지도 기다릴 셈이었다. 살 수 있다면 노숙쯤은 못 할 것도 없다. 다음엔 자기가 저렇게 씹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오금이 저렸다.
호랑이가 자신을 포기하거나 잊어버리도록, 가능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찬비는 더욱 물러나 계단을 오르기로 했다. 반쯤 층계를 올라갔다.
그러다 문득 아가리가 열리고 닫히는 철컹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지?’
돌아본 곳에는 호랑이가 입을 쩍 벌려 혀를 내밀고 있었다.
긴 혀가 살아 움직이는 뱀처럼 그를 향해 뻗어오고 있었다. 더듬이처럼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다행히 혀가 움직이는 속도는 아주 느렸다. 그러나 닿는 순간, 카멜레온이 파리를 낚아채듯 끔찍한 아가리로 그를 끌고 들어갈 것이다.
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도 이를 악물었다.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도 거의 주저앉은 상태로도 찬비는 계속해서 위층으로, 위층으로 계단을 기어오르며 물러섰다. 짓다가 만 빌라 건물은 위로 갈수록 휑했고, 마감도 되지 않아 철근이 그대로 들여다보였다.
5층.
마지막 계단이 끝나고, 찬비는 복도 끝까지 물러섰다. 그러나 혀는 아직도 뻗어오고 있었다.
‘도망칠 곳이 없어.’
절망하던 그때, 햇빛이 들지 않아 어둑한 복도 구석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초록색 비상구 표시를 보았다.
찬비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급히 문을 찾아 밀었다. 문은 다행히 잠겨 있지 않았다.
그러나 도망칠 곳을 찾고 있는 동안 더욱 가까워져 있던 혀가 미처 문을 닫기도 전에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으아아악! 꺼져!”
찬비는 비명을 지르며 문을 밀어 닫으려고 했다. 문에 끼인 혓바닥은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발악하듯 몸부림치며 빠져나갔다. 그사이 재빨리 문을 닫고 잠그려고 했으나, 바깥쪽에는 잠금장치가 없었다.
쿵!
문이 당장이라도 문짝째 떨어져 나갈 듯 들썩거렸다. 거칠게 부딪쳐 오기라도 한 듯, 험악한 소리를 내며 문이 조금씩 찌그러졌다. 찬비는 문에 등을 대고 있는 힘껏 막고 서 있었다.
두어 번 더 돌진해 오던 혀는 문고리를 잡고 몇 번 흔드는 듯하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찬비는 서 있던 그대로 너덜너덜한 문 앞에 허물어졌다.
그러나 곧바로 다시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자신을 포기했을 리 없다.
이번에는 또 무엇을 하려고 할까?
분명히 무언가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찬비는 필사적으로 생각해 내려고 애썼다.
그때였다.
쿠웅!
그는 갑작스러운 진동에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지진이 난 듯 건물 전체가 흔들리며 불길한 흔들림이 느껴졌다.
“뭐, 뭐야!”
비명처럼 외쳤다. 그러나 허공에 흩어지는 것은 억눌린 채 간신히 새어 나오는 듯한 목소리일 뿐이었다. 숨이 가쁘고, 눈 주위가 곧 터질 것처럼 열이 올랐다.
쿠웅! 쿠웅!
진동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끄그그끄끼이기긱!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가 다시 한번 울렸다. 아주 가까이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그의 발밑, 옥상 끄트머리였다.
찬비는 허겁지겁 뒷걸음질 쳐 멀어졌다. 벗어나자마자 그가 서 있던 자리에 호랑이의 앞발이 쑥 올라와 쿵, 옥상 바닥에 실금을 만들며 박혔다. 뒤이어 건물째 휘청이는 진동과 함께 호랑이의 머리가 따라 올라왔다.
비명을 지르고 싶은데, 목이 졸린 듯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물러선 찬비는 옥상 문에 다다랐다.
그러나 아까 전 마구 들썩거리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아무리 쥐고 흔들어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문이… 안에서 잠겨 있다.
그사이 호랑이가 앞다리를 이용해 상체를 옥상 위로 끌어 올렸다.
“살려줘…….”
간신히 잔뜩 쉰 신음이 한 줄기 흘러나왔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상체를 완전히 끌어 올린 호랑이가 단번에 힘을 주어 옥상 위로 올라섰다. 그러고는 아주 천천히 다가왔다.
‘꿈이지, 이거? 나도 여름이처럼 악몽을 꾸는 거지?’
급기야 찬비는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온몸을 타고 오르는 전율이, 눈앞에서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위압감이, 이것이 꿈이 아니란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는 다시 뒷걸음질 쳤다. 도망갈 곳은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물러났다. 피로와 공포로 다리는 이미 한계였다.
발뒤꿈치에 옥상의 턱이 걸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남은 것은 5층 높이의 낭떠러지뿐이었다. 등 뒤에서 서늘한 바람이 그를 떠밀듯 불어왔다.
선택해야 한다. 떨어질 것인지, 이대로 먹힐 것인지…….
아마 뛰어내리는 쪽이 나을 것이다. 씹어 먹히는 것보다는 살 확률이 높을 테니까.
그런데 만일 살았다고 해도, 그 뒤엔 어떻게 해야 할까. 뛰어내린 후에도 계속 쫓아온다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 뛰어내리면… 적어도 계속 도망칠 수는 있어.’
결국 그는 뒤로 돌았다. 호랑이가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었다.
지체할 새도 없이 찬비는 옥상 아래로 뛰어내렸다. 등줄기를 찔러 올리듯 아찔한 느낌. 찬비는 그것이 추락의 공포 탓이라고 생각했다.
“아아아악!”
소리가 나지 않던 목에서 찢어질 듯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끔찍한 격통이 느껴졌다.
질끈 감고 있던 눈을 뜨자 회색 건물 벽이 흐릿하게 아른거렸다.
그는 공중에 거꾸로 매달린 채 시계추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뛰어내린 옥상 끄트머리에서, 호랑이가 고개를 내밀고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꽉 물고 있었다.
“끄아아아악!”
이어 찬비는 위로 내던져지듯 끌어 올려졌다. 낙하하여 바닥을 구르고 나서야, 뒤늦게 소름 끼치는 부양감의 잔상이 느껴졌다.
옥상 위로 되돌아와 있었다. 지독한 아픔에 공포조차 잊힐 듯하다. 내려다본 다리는 이미 한 번 물린 것만으로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무릎 아래가 고기 조각이 되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도저히 제 몸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안 돼, 왜……? 나, 하하, 안 돼… 이건… 아냐…….”
턱이 굳은 것처럼 입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신음처럼 헛소리와 웃음이 흘러나왔다.
눈앞이 뿌옇다. 희미하게 호랑이의 잔상이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이내 보이지 않았다.
대신 파노라마처럼 긴 영상이 스쳐 지나간다.
뭘까? 이게 뭐지?
누군가의 미덥지 못한 미소를 언뜻 본 듯도 하다.
괴물이 덥석, 머리를 물었다. 턱 힘이 어찌나 대단한지, 단번에 목이 끊어졌다. 머리를 잃은 몸이 시멘트 바닥 위를 나뒹굴었다.
잘근잘근 씹어 입안에 있는 것을 삼키고, 바닥에 남아 있던 고깃덩이에 고개를 처박았다.
* * *
“어, 어어?”
학교 정문. 한쪽 겨드랑이에는 축구공을 끼고, 운동장을 사이에 두고 학교 건물을 마주한 채 찬비는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잠시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망연해졌다.
“어이, 거기! 뭐해?”
누군가 찬비에게 말을 걸었다. 체육 선생님이었다. 인상을 찌푸리더니 찬비를 알아보고 근처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여기서 뭐하고 있어? 너네 반은 지금 체육 아닐 텐데?”
“…지금 몇 시죠?”
얼빠진 표정으로 찬비가 물었다. 체육 교사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학교 건물 위에 붙어 있는 커다란 시계를 가리켰다.
“눈은 장식으로 달았냐? 5시가 넘었다.”
5시? 그제야 시뻘건 저녁놀로 물든 운동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점심시간에… 운동장에 나왔다.
그러고 나서…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
찬비는 멍하니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하나씩 짚어보기 시작했다.
“축구공을 주우러 갔다가… 사람 머리가 떨어져 있어서…….”
그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선생님에게 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저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되는 대로 뇌까리고 있을 뿐이었다.
“도망치는데… 괴물을 만나서…….”
“어이, 너 괜찮냐?”
그제야 체육 교사는 그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어 물어왔다.
“계속 쫓아와서… 도망쳐서…….”
그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입술을 계속 달싹거리고 있었다. 눈에 초점도 없었다. 체육 교사는 찬비의 한쪽 어깨에 손을 올리고 흔들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거? 야, 왜 그래?”
“내가, 다리가… 물고… 물려서…….”
그러나 찬비는 힘없이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괴물이 어쨌다는 둥, 완전히 넋이 나간 것이 미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섬뜩해진 체육 교사는 그의 어깨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고 외쳤다.
“강찬비? 야! 정신 차려!”
“…흑, 히히히. 전부 먹었다.”
찬비가 목을 긁고 나오는 듯한 숨소리를 내며 웃었다. 입꼬리를 잔뜩 올리고서. 하지만 뺨을 타고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소름이 돋은 체육 교사가 진저리치듯 손을 떼었다. 찬비는 실이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풀썩, 그 자리에 쓰러졌다.
먹고 먹히다 (1)
끄그그끄그그끼기기기기끼기까가가가까가각.
여태껏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로 호랑이가 울부짖었다. 그것은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 같기도 했고, 고속으로 달리던 자동차에 급제동을 거는 소리 같기도 했다. 두 번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을 만큼 기분 나쁜 소리였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먹잇감을 발견했다는 환희의 외침일까? 아니면 위험하다는 경고의 울음일까? 어느 쪽이든 전혀 달갑지 않은 소리였다.
울부짖은 호랑이가 이내 찬비 쪽을 보며 몸을 잔뜩 움츠렸다.
덮쳐 올 것이다.
깨달은 순간, 찬비는 급히 자신이 왔던 모퉁이 쪽으로 몸을 피했다. 그 즉시 뒤에서 묵직한 것이 벽에 충돌하는, 교통사고라도 난 듯한 굉음이 들렸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전력으로 달렸다.
크게 충돌하고도 호랑이는 전혀 다치지 않은 듯, 뒤에서 곧바로 자신을 쫓아오는 네발짐승의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래가 끓는 듯한 거친 숨소리, 시멘트로 된 바닥을 깨뜨리며 거칠게 디디는 소리, 충돌음과 함께 무언가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호랑이의 몸뚱이에 부딪친 주변 사물들의 파편들이 뒤에서 마구 튀며 소리를 냈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어떤 모습으로 자신의 뒤를 쫓고 있을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매우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따라잡히겠어!’
찬비의 속도는 호랑이에 비해 턱도 없이 느렸다. 때때로 나무 따위를 끼고 방향을 틀었지만, 호랑이는 그대로 몸을 부딪쳐 부서뜨리며 따라왔다. 속도조차 거의 줄지 않는다.
‘어떻게 하지? …아!’
정면에 한 건물의 입구가 보였다. 공사가 중단된 오래된 빌라 건물. 현관문조차 달려 있지 않았으나, 입구에 출입 금지 표시와 함께 철망으로 된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다.
그는 죽을힘을 다해 그쪽으로 뛰었다.
‘좁은 곳으로 들어가야 해!’
거대한 호랑이는 통과할 수 없을 크기의 입구다. 몸을 부딪쳐 부수고 들어온다 해도 내부는 더욱 좁을 것이다. 들어가기만 한다면 더는 쫓아오지 못하리라.
호랑이와의 거리는 이제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마음만 먹는다면 달리고 있는 그의 몸 어느 부위든지 단번에 낚아챌 수 있을 듯했다.
끄그그기가가가가각.
아니나 다를까, 호랑이가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를 내며 목을 쭉 뻗고 덮쳐 왔다. 이빨로 가득한 입이 그를 한 번에 삼킬 수 있을 만큼 벌어졌다.
드디어 호랑이가 입을 닫으려는 순간, 찬비는 달리던 그대로 펄쩍 건물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우당탕!
“으윽!”
몸을 던져 바리케이드 사이를 통과한 찬비가 바닥에 엎어져 굴렀다. 그 통에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던 건축자재들이 마구 떨어져 내렸다. 정리조차 되어 있지 않은 바닥을 힘껏 구른 탓에 온몸이 욱신거렸다.
그러나 아파하고 있을 새도 없이, 급히 콘크리트 바닥을 짚고 반쯤 기다시피 입구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졌다.
입구에서는 금속이 부딪치는 듯한 깡깡, 소리가 들렸다. 호랑이가 입구에서 몇 번이고 아가리를 벌렸다, 오므렸다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건물째로 씹어 삼켜 버릴 기세로 부딪치며 밀고 들어오려고 했다. 그때마다 바리케이드 끼익거리고, 벽에서 콘크리트 가루들이 떨어져 내렸다.
호랑이의 이빨이 닿자, 그리 두껍지 않은 벽 속에서 허연 단열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애초에 그리 튼튼한 건물은 아닌 듯하나, 그래도 저 호랑이를 막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헉… 헉…….”
찬비는 안전하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다.
심장이 튀어나올 듯 뛰고 있었다. 뒤늦게 갈비뼈 있는 데가 아려왔다. 뛸 때는 알지 못했는데 온몸이 후들거렸다. 한숨을 돌리고 나니 울분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때, 벽에서 떨어진 돌조각이 눈에 띄었다. 찬비는 다리에 힘을 주어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돌을 집어 들어 호랑이 쪽으로 힘껏 내던졌다.
“얌마! 이거나 먹어라!”
돌이 호랑이의 이빨에 부딪치며 카랑한 금속성을 냈다.
그러자 호랑이가 갑자기 뚝 멈췄다. 다른 돌을 주워 들어 이어 던지려던 찬비도 당황하며 움직임을 멈추고 쳐다보았다.
“뭐, 뭐야?”
듣기 싫은 그 울음소리조차 없이, 마치 굳어버린 것처럼 한동안 잠잠히 있던 호랑이는 벌리고 있던 아가리를 천천히 오므리고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찬비는 숨을 죽인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 * *
호랑이가 완전히 사라지고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찬비는 누군가 자신을 찾으러 오거나, 하다못해 차 한 대라도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인적이 드문 외곽 지역에서도 더 안쪽으로 도망친 탓에 주변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갔나?”
밖은 기분 나쁠 만큼 고요했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로 보아, 적어도 호랑이는 이 주변에 없는 듯하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살펴봐도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여기서는.
찬비는 조심스럽게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다, 이내 멈춰 섰다.
‘설마 기다리고 있다가 덮친다던가? 그 정도의 머리를 쓸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걸음을 옮겨 입구로부터 대여섯 걸음 정도 떨어진 곳까지 다가갔다. 그러곤 다시 멈췄다.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찬비는 신고 있던 신발을 한 짝 벗어 들어 밖으로 슬쩍 던졌다.
그러나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신발은 소리도 없이 나타난 선홍색 아가리 속으로 빨려들 듯 사라졌다. 그러고는 철컹거리는 금속성과 함께, 믹서에라도 갈리는 듯한 마구 터지는 소리를 내며 요란스럽게 씹혔다.
“으아악!”
찬비는 비명을 지르며 후닥닥 물러나, 계단까지 올라갔다.
호랑이의 아가리가 다시 자신의 신발을 뱉어냈다. 바닥에 떨어진 신발은 다져진 것처럼 찢기고 구멍이 뚫려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찬비는 신발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완전히 갈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여차하면 내일까지도 기다릴 셈이었다. 살 수 있다면 노숙쯤은 못 할 것도 없다. 다음엔 자기가 저렇게 씹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오금이 저렸다.
호랑이가 자신을 포기하거나 잊어버리도록, 가능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찬비는 더욱 물러나 계단을 오르기로 했다. 반쯤 층계를 올라갔다.
그러다 문득 아가리가 열리고 닫히는 철컹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지?’
돌아본 곳에는 호랑이가 입을 쩍 벌려 혀를 내밀고 있었다.
긴 혀가 살아 움직이는 뱀처럼 그를 향해 뻗어오고 있었다. 더듬이처럼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다행히 혀가 움직이는 속도는 아주 느렸다. 그러나 닿는 순간, 카멜레온이 파리를 낚아채듯 끔찍한 아가리로 그를 끌고 들어갈 것이다.
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도 이를 악물었다.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도 거의 주저앉은 상태로도 찬비는 계속해서 위층으로, 위층으로 계단을 기어오르며 물러섰다. 짓다가 만 빌라 건물은 위로 갈수록 휑했고, 마감도 되지 않아 철근이 그대로 들여다보였다.
5층.
마지막 계단이 끝나고, 찬비는 복도 끝까지 물러섰다. 그러나 혀는 아직도 뻗어오고 있었다.
‘도망칠 곳이 없어.’
절망하던 그때, 햇빛이 들지 않아 어둑한 복도 구석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초록색 비상구 표시를 보았다.
찬비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급히 문을 찾아 밀었다. 문은 다행히 잠겨 있지 않았다.
그러나 도망칠 곳을 찾고 있는 동안 더욱 가까워져 있던 혀가 미처 문을 닫기도 전에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으아아악! 꺼져!”
찬비는 비명을 지르며 문을 밀어 닫으려고 했다. 문에 끼인 혓바닥은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발악하듯 몸부림치며 빠져나갔다. 그사이 재빨리 문을 닫고 잠그려고 했으나, 바깥쪽에는 잠금장치가 없었다.
쿵!
문이 당장이라도 문짝째 떨어져 나갈 듯 들썩거렸다. 거칠게 부딪쳐 오기라도 한 듯, 험악한 소리를 내며 문이 조금씩 찌그러졌다. 찬비는 문에 등을 대고 있는 힘껏 막고 서 있었다.
두어 번 더 돌진해 오던 혀는 문고리를 잡고 몇 번 흔드는 듯하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찬비는 서 있던 그대로 너덜너덜한 문 앞에 허물어졌다.
그러나 곧바로 다시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자신을 포기했을 리 없다.
이번에는 또 무엇을 하려고 할까?
분명히 무언가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찬비는 필사적으로 생각해 내려고 애썼다.
그때였다.
쿠웅!
그는 갑작스러운 진동에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지진이 난 듯 건물 전체가 흔들리며 불길한 흔들림이 느껴졌다.
“뭐, 뭐야!”
비명처럼 외쳤다. 그러나 허공에 흩어지는 것은 억눌린 채 간신히 새어 나오는 듯한 목소리일 뿐이었다. 숨이 가쁘고, 눈 주위가 곧 터질 것처럼 열이 올랐다.
쿠웅! 쿠웅!
진동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끄그그끄끼이기긱!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가 다시 한번 울렸다. 아주 가까이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그의 발밑, 옥상 끄트머리였다.
찬비는 허겁지겁 뒷걸음질 쳐 멀어졌다. 벗어나자마자 그가 서 있던 자리에 호랑이의 앞발이 쑥 올라와 쿵, 옥상 바닥에 실금을 만들며 박혔다. 뒤이어 건물째 휘청이는 진동과 함께 호랑이의 머리가 따라 올라왔다.
비명을 지르고 싶은데, 목이 졸린 듯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물러선 찬비는 옥상 문에 다다랐다.
그러나 아까 전 마구 들썩거리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아무리 쥐고 흔들어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문이… 안에서 잠겨 있다.
그사이 호랑이가 앞다리를 이용해 상체를 옥상 위로 끌어 올렸다.
“살려줘…….”
간신히 잔뜩 쉰 신음이 한 줄기 흘러나왔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상체를 완전히 끌어 올린 호랑이가 단번에 힘을 주어 옥상 위로 올라섰다. 그러고는 아주 천천히 다가왔다.
‘꿈이지, 이거? 나도 여름이처럼 악몽을 꾸는 거지?’
급기야 찬비는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온몸을 타고 오르는 전율이, 눈앞에서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위압감이, 이것이 꿈이 아니란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는 다시 뒷걸음질 쳤다. 도망갈 곳은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물러났다. 피로와 공포로 다리는 이미 한계였다.
발뒤꿈치에 옥상의 턱이 걸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남은 것은 5층 높이의 낭떠러지뿐이었다. 등 뒤에서 서늘한 바람이 그를 떠밀듯 불어왔다.
선택해야 한다. 떨어질 것인지, 이대로 먹힐 것인지…….
아마 뛰어내리는 쪽이 나을 것이다. 씹어 먹히는 것보다는 살 확률이 높을 테니까.
그런데 만일 살았다고 해도, 그 뒤엔 어떻게 해야 할까. 뛰어내린 후에도 계속 쫓아온다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 뛰어내리면… 적어도 계속 도망칠 수는 있어.’
결국 그는 뒤로 돌았다. 호랑이가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었다.
지체할 새도 없이 찬비는 옥상 아래로 뛰어내렸다. 등줄기를 찔러 올리듯 아찔한 느낌. 찬비는 그것이 추락의 공포 탓이라고 생각했다.
“아아아악!”
소리가 나지 않던 목에서 찢어질 듯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끔찍한 격통이 느껴졌다.
질끈 감고 있던 눈을 뜨자 회색 건물 벽이 흐릿하게 아른거렸다.
그는 공중에 거꾸로 매달린 채 시계추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뛰어내린 옥상 끄트머리에서, 호랑이가 고개를 내밀고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꽉 물고 있었다.
“끄아아아악!”
이어 찬비는 위로 내던져지듯 끌어 올려졌다. 낙하하여 바닥을 구르고 나서야, 뒤늦게 소름 끼치는 부양감의 잔상이 느껴졌다.
옥상 위로 되돌아와 있었다. 지독한 아픔에 공포조차 잊힐 듯하다. 내려다본 다리는 이미 한 번 물린 것만으로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무릎 아래가 고기 조각이 되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도저히 제 몸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안 돼, 왜……? 나, 하하, 안 돼… 이건… 아냐…….”
턱이 굳은 것처럼 입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신음처럼 헛소리와 웃음이 흘러나왔다.
눈앞이 뿌옇다. 희미하게 호랑이의 잔상이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이내 보이지 않았다.
대신 파노라마처럼 긴 영상이 스쳐 지나간다.
뭘까? 이게 뭐지?
누군가의 미덥지 못한 미소를 언뜻 본 듯도 하다.
괴물이 덥석, 머리를 물었다. 턱 힘이 어찌나 대단한지, 단번에 목이 끊어졌다. 머리를 잃은 몸이 시멘트 바닥 위를 나뒹굴었다.
잘근잘근 씹어 입안에 있는 것을 삼키고, 바닥에 남아 있던 고깃덩이에 고개를 처박았다.
* * *
“어, 어어?”
학교 정문. 한쪽 겨드랑이에는 축구공을 끼고, 운동장을 사이에 두고 학교 건물을 마주한 채 찬비는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잠시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망연해졌다.
“어이, 거기! 뭐해?”
누군가 찬비에게 말을 걸었다. 체육 선생님이었다. 인상을 찌푸리더니 찬비를 알아보고 근처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여기서 뭐하고 있어? 너네 반은 지금 체육 아닐 텐데?”
“…지금 몇 시죠?”
얼빠진 표정으로 찬비가 물었다. 체육 교사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학교 건물 위에 붙어 있는 커다란 시계를 가리켰다.
“눈은 장식으로 달았냐? 5시가 넘었다.”
5시? 그제야 시뻘건 저녁놀로 물든 운동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점심시간에… 운동장에 나왔다.
그러고 나서…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
찬비는 멍하니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하나씩 짚어보기 시작했다.
“축구공을 주우러 갔다가… 사람 머리가 떨어져 있어서…….”
그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선생님에게 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저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되는 대로 뇌까리고 있을 뿐이었다.
“도망치는데… 괴물을 만나서…….”
“어이, 너 괜찮냐?”
그제야 체육 교사는 그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어 물어왔다.
“계속 쫓아와서… 도망쳐서…….”
그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입술을 계속 달싹거리고 있었다. 눈에 초점도 없었다. 체육 교사는 찬비의 한쪽 어깨에 손을 올리고 흔들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거? 야, 왜 그래?”
“내가, 다리가… 물고… 물려서…….”
그러나 찬비는 힘없이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괴물이 어쨌다는 둥, 완전히 넋이 나간 것이 미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섬뜩해진 체육 교사는 그의 어깨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고 외쳤다.
“강찬비? 야! 정신 차려!”
“…흑, 히히히. 전부 먹었다.”
찬비가 목을 긁고 나오는 듯한 숨소리를 내며 웃었다. 입꼬리를 잔뜩 올리고서. 하지만 뺨을 타고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소름이 돋은 체육 교사가 진저리치듯 손을 떼었다. 찬비는 실이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풀썩, 그 자리에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