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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악몽 (2)
아침 7시를 알리는 음악이 기숙사 전체에 울려 퍼진다. 발랄한 음색의 아이돌 음악이었다. 청월고등학교에서는 보름마다 한 번씩 학생들에게 신청을 받아, 가장 많이 신청된 순서대로 아침마다 두세 곡씩을 틀어주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음악이 알람 곡인데.’
이불 속으로 고개를 파묻고 있는 것은 찬비였다.
결국 어쩔 수 없이 크게 기지개를 켰다. 지금 들리고 있는 곡은 ‘인터 걸’의 ‘Browse me’로, 벌써 몇 주째 반복되는 곡이라 질릴 것만 같다.
‘몇백 명에게 신청 받아도 다 비슷비슷한가 보지? 이런 게 획일화라는 건가. 무섭네.’
그러다 문득 자신도 신청곡으로 ‘Browse me’를 써서 제출했다는 게 떠올랐다. 헛웃음이 나왔다. 결국 찬비는 실눈을 뜨고서 완전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일어나 보니, 옆 침대가 비어 있었다.
“뭐야, 어디 갔지?”
그때, 마침 화장실에서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소년이 나왔다.
“좋은 아침.”
찬비는 표정을 찌푸렸다. 얼굴이 영 좋지 않아 보였던 것이다.
“나야 좋은 아침인데, 너 혹시 어제 그러고 나서 못 잤냐?”
“그래도 잠에서 깨기 전까지 세 시간은 잤으니까 괜찮겠지.”
찬비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 세 시간마저도 편하게 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어제처럼 심한 건 처음 봤는데…….’
상태가 영 안 좋아 보이는 것도 그렇지만, 어제 뒤척이는 소리에 깨서 본 모습은 지난 1년간 본 것 중에서도 최악이었다. 찬비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그냥 오늘은 학교 쉬지 그래? 너 아파서 잔다 할게.”
“아냐, 괜찮다니까.”
‘괜찮긴.’
찬비는 속으로 혀를 찼다. 두 눈이 퀭한 것이 금방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듯했다.
실제로 소년의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았다. 아니, 매일매일 고작 서너 시간밖에, 그것도 푹 자지도 못하니 항상 좋지 않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매일 밤 꿈에 대한 공포로 쉽게 잠들지 못하는 건 물론, 깨고 나서도 한참이나 몸을 떨어야 한다.
그냥 무서운 꿈 정도가 아니라 진짜 죽음의 공포를 느끼니 자고 싶어도 쉽게 잠들 수가 없었다. 간신히 잠든다 해도 깰 때까지는 줄곧 악몽에 시달려야 하니 편히 잘 수 있을 리도 없었다.
이것이 마음가짐이나 약물치료 같은 것으로는 바뀌지 않는 괴로움이라는 것을, 이미 찬비는 알고 있었다.
찬비는 창백한 소년의 안색을 다시 한번 살폈다.
“그럼 이따 점심시간 전에 적당히 보건실 가서 자. 잠 설치는 거야 다들 알고 있으니까, 누가 뭐라 하진 않겠지.”
“응.”
소년이 교복을 입으며 대답했다.
하얀 와이셔츠 위에 검붉은 색의 재킷. 왼쪽 가슴 위에 있는 초록색 명찰에는 하얀 실로, ‘한 여름밤’이라는 특이한 이름이 수놓아져 있었다.
소년, 아니, 여름밤이 위에서부터 차례로 단추를 여미며 말했다.
“슬슬 준비하고 가자.”
“아, 응.”
결국 찬비는 애써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우고, 웃통을 벗으며 화장실로 향했다.
* * *
“헤이, BAAAM! 좋은 아침!”
교실에서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 우렁찬 소리로 인사하며 다가왔다.
2학년이 되면서 같은 반이 된 전유성이었다. 쌍꺼풀이 없는 큰 눈에 함박웃음을 띤 채, 두 팔까지 옆으로 펴 들고 있다. 그 탓에 키가 확 크면서 다소 깡총해진 교복 소매가 더욱 눈에 띈다.
유성은 여름밤을 항상 ‘밤’이라고 불렀다.
“어, 좋은 아침.”
여름밤이 전혀 좋아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유성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 여름밤의 앞자리에 아무렇게나 털썩 앉았다.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데? 뭐 날려 버리고 싶은 거 있어, 밤?”
“…….”
여름밤은 그저 멋쩍게 웃어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평소 그는 유성을 대하기 좀 어려워했다.
학기 초, 유성이 불쑥 ‘너 이름 특이하다?’며 말을 걸었다. 그리고 그 뒤로 매일 같이 일방적으로 자리에 찾아와 말을 걸고 있었다. 항상 조용히 있는 것에 익숙한 여름밤은 활달한 유성을 좀 부담스러워했다.
“걔 간밤에 악몽 꿔서 잠 설쳤다.”
보다 못한 찬비가 여름밤 대신 대답했다. 그러자 유성의 두 눈이 댕그래졌다.
“아, 그 유명한 ‘한여름밤의 꿈’이냐. 와, 어떻게 꿈을 매일 꿀 수가 있지? 그것도 잠을 설칠 정도로 무서운 악몽이라는 거잖아. 신기하다.”
유성의 호들갑에도 여름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미 여름밤의 악몽은 ‘한여름밤의 꿈’이라는 이름으로 애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숙사에서 여름밤과 가까운 방을 쓰는 아이들은 모두 비명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1학년 때는 학교에서 ‘얼굴은 몰라도 비명 소리는 안다’는 식으로 아이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려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그는 꿈을 꾸는 것뿐만 아니라, 꿈을 꾸는 것으로 인해 주변에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것이 찬비는 조금 안타깝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무슨 꿈이었는데?”
“아, 뭐… 그냥…….”
‘알아봤자 좋을 것 없는데.’
눈을 내려 뜨며 여름밤은 속으로 생각했다. 사실 지금도 머리를 파고들던 이빨의 감촉을 떠올리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꿈에서 본 장면인데도, 그것은 태연한 얼굴로 교실에 앉아 있는 자신이 신기할 정도로 생생했다.
찬비는 흘깃 여름밤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여름밤은 계속 법석을 떨며 ‘뭐가 나왔냐, 그렇게 무섭냐’며 물어보는 유성에게 뭔가 눌린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있었다. 내색하거나 말하지는 않지만, 이 화제가 달갑지 않은 것이다.
찬비는 어떻게 해서 이놈을 쫓아 보낼까 싶어 인상을 쓴 채 유성을 바라보았다.
그때, 더욱 달갑지 않은 대사가 등장했다.
“허, 밤도 밤이지만 너도 고생이 많다. 바로 옆에서 밤마다 뒤척거릴 거 아냐.”
“…….”
여름밤은 저런 말을 들어놓고도 아무 말 못한 채, 싸해진 분위기를 살피고만 있었다.
‘그게 안 그래도 미안해서 움찔거리는 애한테 할 소리냐?’
짜증이 와락 났다.
“야, 농담이면 거기까지만 해라. 넌 재밌다고 하는 소린가 본데 할 소리가 있고 안 할 소리가 있다.”
냉랭한 찬비의 반응에 유성이 주춤했다. 그제야 유성은 자신이 너무 생각 없이 이야기했다는 것을 깨닫고, 미안한 웃음을 지었다.
“아, 너무 멀리 갔나? 미안하니까 표정 풀어라. 무섭다, 새끼야. 야, 그러고 보니 나 너한테 볼일 있어서 왔는데?”
그러고는 재빨리 화제를 전환한다. 그 모습에 혀를 차면서도 찬비가 물었다.
“나한테?”
“어, 오늘 점심시간에. 알지? 빠지기 없기다. 이기고 튀는 놈이 제일 나쁜 놈이야.”
뭔 소린가 했더니 축구 이야기였다.
2학년에 올라온 뒤 에이스인 찬비와 유성을 중심으로 체육시간에 종종 팀 대결을 했는데, 저번 주부터 그게 점심시간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현재 전적은 2대 0. 워낙 존재감이 없는 여름밤은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두 번 다 유성의 팀이 아깝게 졌다.
찬비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솔직히 당혹스러웠다. 잘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는 별로 축구를 좋아하지도 않고, 친구들이 강하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하게 된 것이었다.
축구를 하고 나면 지치는 것도 달갑지 않지만, 점심 먹을 시간이 애매해진다는 것 또한 이 상황이 달갑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였다. 어쩌면 이번에도 매점 빵으로 식사를 때워야 할 수도 있다.
“나 오늘 체육복을 기숙사에 두고 와서 말이야.”
찬비가 유성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이건 사실이기도 했다. 평소 깔끔한 성격의 그는 한번 입은 체육복은 꼭 그날 빨아서 기숙사에 두기 때문에, 수업이 없는 날에는 체육복이 없었다.
씨알도 안 먹힐 변명이란 걸 알지만, 이걸로 오늘 하루라도 빠지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었다.
“와, 빼기냐? 치사한 새끼. 그럼 내일은 꼭 갖고 와라. 내일은 있든 없든 내가 너 둘러메고서라도 나간다.”
찬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어, 그럼 내 거 입어. 사물함에 있어, 32번.”
뜻밖에도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배신자가 입을 열었다.
돌아보니 여름밤이 해맑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제 딴에는 도움이 되고 싶어서 한 말이겠지만.
찬비의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 그럼 됐네. 밤, 나이스! 그럼 이따가 보자.”
유성이 그의 어깨를 툭, 치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찬비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 * *
점심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찬비의 예상대로 점심도 포기한 채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갔다. 다른 반보다 빨리 운동장을 선점하기 위해서였다.
찬비는 운동장 선점이 실패하기를 내심 바랐지만, 발 하나는 엄청 빠른 유성 덕에 어려움 없이 성공한 모양이었다.
“여긴 우리 구역이다!”
“다른 데 가서 알아보시지!”
운동장을 점령한 유성과 그의 친구들이 다른 반 아이들에게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다른 반 아이들은 별 집착 없이 평화롭게 점심을 먹으러 돌아갔다.
‘우리 반 새끼들은 어떻게 되먹은 거야. 니들 배고프지도 않냐.’
찬비는 그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윽고 축구공을 가진 아이가 운동장에 도착하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처음 공을 잡은 것은 유성의 팀. 운동장 좌측 외곽으로 드리블을 하며 질주하고 있었다.
“패스!”
멀리서 유성이 외쳤다. 곧 긴 패스가 날아왔다. 공을 받아낸 유성이 쏜살같이 달려, 골문 앞에서 슛을 때렸다.
공은 골대의 우측 구석을 향했다. 간신히 골키퍼가 몸을 날려 튕겨냈지만, 슛을 날린 후에도 멈추지 않고 뛰어오던 유성이 튕겨 나온 공을 그대로 헤딩하여 다시 골대 안으로 박아 넣었다. 경기가 시작된 지 몇 분 채 지나지도 않아 터진 첫 골이었다.
“우오오오오오!”
유성은 팀원들과 얼싸안고 한마음이 되어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찬비에게는 어느 원시 부족의 괴성처럼 들릴 뿐이었다.
‘저렇게도 좋을까.’
골키퍼가 공을 참과 동시에 찬비가 앞으로 뛰어나갔다. 있는 곳은 우측 날개. 다른 아이들은 중앙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찬비!”
다급한 외침과 함께 공이 날아왔다. 그와 동시에 유성 팀 한 명이 찬비의 앞을 가로막으며 마킹해 왔다.
그러나 그는 달려가던 방향을 꺾으며 수비를 제치고, 앞으로 나가 공을 받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골대 우측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던 아이에게 패스했다.
곧 골 망이 흔들림과 동시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1대 1, 동점이다.
환호도 잠시, 포화 같은 소리와 함께 유성 팀 골키퍼가 골대로 들어온 공을 멀리 차올렸다. 단번에 길게 패스해서 빠르게 점수를 따자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욕심이 너무 컸다. 바람 때문인지 공은 예상을 훨씬 벗어나서 왼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결국 떨어지는 지점 근처에서 대기 중이던 찬비 팀 수비수에게 공을 빼앗겼다.
“으악, 안 돼!”
유성 팀은 비상이 걸려 급히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람이 공보다 빠를 수는 없는 일. 이미 자신의 포지션으로 돌아가 있던 찬비 쪽으로 재차 공이 길게 패스되었다.
찬비는 공을 받기보다, 공이 떨어지는 방향으로 같이 뛰었다. 근처에는 아무도 없다. 골대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자연스럽게 공이 발 앞에 떨어져 내렸다.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 찬비는 골대 위쪽을 노리고 강하게 슛을 날렸다. 커다란 폭성과 함께 공이 솟구쳤다.
“어라?”
골문 위를 스치며 저 멀리 날아가는 공. 힘차게 날아가던 공은 은행나무가 높이 자란 학교 담장을 넘어, 보이지 않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허허허.’
찬비는 속으로 헛웃음을 지으며 가만히 서서 그 광경을 망연하게 바라보았다.
뒤늦게 달려온 유성이 헐떡이며 닦달했다.
“어이, 날린 사람! 빨리 주워 와라!”
“알았어, 좀만 기다려.”
찬비는 하필이면 공이 날아간 방향과 정반대 방향에 있는 정문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 * *
찬비는 빨간 벽돌로 된 학교 담장을 따라 빙 돌며 뛰었다.
‘아까 공 넘어갈 때 은행나무가 있었지.’
담 너머에서도 보일 만큼 큰 나무였기에, 어디쯤 떨어졌을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었다.
담장 근처를 살피며 뛰다 보니, 건설 중인 주택들이 밀집한 외곽 지역이었다.
이 근처는 별로 온 적이 없다. 바로 근처긴 하지만 학교와 기숙사, 가끔 시가지만 왔다 갔다 하던 그로서는 처음 오는 곳이었다. 다른 곳과는 달리 어딘지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바닥이 울퉁불퉁하게 시멘트로 대강 마감이 되어 있어 별로 걷는 느낌이 좋지 않다. 더구나 인적도 없어서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으스스했다. 건물들도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 꽤 오래된 듯했다.
‘건물을 짓다가 말았나?’
그러나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 건 빨리 축구공을 찾아서 돌아가는 것이다.
담장을 흘끗 보니, 너머로 은행나무의 끄트머리가 보였다. 그렇다면 공은 이 근처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 것이다.
찬비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건물 그늘 밑에 있는 시꺼멓고 둥그런 물체를 발견했다.
“아, 저기 있네.”
얼른 그쪽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공에 검은 털 같은 것이 잔뜩 붙어 있었다.
“이게 뭐지?”
찬비는 털이 붙은 쪽에 손을 대봤다.
“으!”
깜짝 놀란 찬비는 재빨리 손을 떼고 물러났다.
딱딱하고, 거기다 조금 따뜻하기까지 했다. 절대 공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촉감이었다. 게다가 털은 달라붙은 것이 아니라 이 정체불명의 물체와 연결되어 있었다.
사늘한 바람이 목 뒤를 스치고 지나간 듯했다. 물체가 서서히 절반쯤 굴러왔다.
찬비는 그 자리에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쓰러졌다.
두 눈을 부릅뜨고 경악에 찬 어떤 남자의 얼굴이 찬비와 눈을 마주쳐 왔다. 그것은 사람의 머리통이었다.
“추, 추, 추, 추, 축구공. 찾아야…….”
주저앉은 채 중얼거렸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 아니지! 빨리 도망을.”
진정해, 침착해야 해.
그는 재빨리 남자의 머리로부터 시선을 돌리며, 땅을 짚고 일어섰다. 그리고 급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살인자가 이 근처에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목을 저렇게 절단해 놓다니 제정신은 아닐 것이다. 맨손으로 저렇게 했을 리도 없으니 흉기도 갖고 있을 게 분명했다.
축구 때문에 휴대폰은 교실에 둔 채였다. 최대한 빨리 학교나 사람이 있는 곳에, 적어도 전화가 있는 곳까지 가서 경찰이나 선생님한테 말해야 한다. 사람이 많고 안전한… 신고도 할 수 있는 곳으로.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은…….
찬비는 곧장 최대한 밝고 넓은 쪽으로 걸어갔다.
일단 위험에서 벗어나는 게 먼저다. 먼저 넓고 사람이 있을 만한 길에 도달해서, 신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나았다. 이 으슥한 곳을 그대로 통과하는 건 위험하다.
행인이 있다면 더 빨리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 숨어 있을 만한 장소를 피해 돌아가야 한다. 머릿속이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침착해 보려고 해도, 방금 본 잘린 머리가 자꾸 떠올랐다.
등 뒤에서 누군가 쫓아오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어 연신 뒤를 돌아보며, 찬비는 점점 더 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어떤 건물의 모퉁이를 돈 순간.
만나고 말았다.
‘저게 뭐야?’
심장이 빠르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찬비는 덜덜 떨며 재빨리 몸을 돌려 건물 뒤로 숨었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본 것들 중에 가장 끔찍하게 생긴 생물이었다.
생김새는 호랑이다. 그러나 보통 호랑이의 크기가 아니라 거의 집채만 했다. 코끼리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정말이지 괴상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얼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빨로 가득 찬 아가리만이 있을 뿐이다.
찬비는 귀상어의 머리를 떠올렸다. 본래 눈이 있어야 할 납작한 얼굴 부분이 위아래로 갈라진, 입을 쩍 벌리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귀상어.
‘아직 눈치채진 못한 것 같아.’
호랑이와의 거리는 조금 떨어져 있고, 사이에는 건물이 있다.
찬비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천천히 왔던 쪽으로 뒷걸음질 쳤다. 건물을 끼고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면 눈치채지 못하게 지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돌렸다.
뒤를 돌아본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은 번들거리는 이빨로 가득한 선홍색 아가리였다.
악몽 (2)
아침 7시를 알리는 음악이 기숙사 전체에 울려 퍼진다. 발랄한 음색의 아이돌 음악이었다. 청월고등학교에서는 보름마다 한 번씩 학생들에게 신청을 받아, 가장 많이 신청된 순서대로 아침마다 두세 곡씩을 틀어주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음악이 알람 곡인데.’
이불 속으로 고개를 파묻고 있는 것은 찬비였다.
결국 어쩔 수 없이 크게 기지개를 켰다. 지금 들리고 있는 곡은 ‘인터 걸’의 ‘Browse me’로, 벌써 몇 주째 반복되는 곡이라 질릴 것만 같다.
‘몇백 명에게 신청 받아도 다 비슷비슷한가 보지? 이런 게 획일화라는 건가. 무섭네.’
그러다 문득 자신도 신청곡으로 ‘Browse me’를 써서 제출했다는 게 떠올랐다. 헛웃음이 나왔다. 결국 찬비는 실눈을 뜨고서 완전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일어나 보니, 옆 침대가 비어 있었다.
“뭐야, 어디 갔지?”
그때, 마침 화장실에서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소년이 나왔다.
“좋은 아침.”
찬비는 표정을 찌푸렸다. 얼굴이 영 좋지 않아 보였던 것이다.
“나야 좋은 아침인데, 너 혹시 어제 그러고 나서 못 잤냐?”
“그래도 잠에서 깨기 전까지 세 시간은 잤으니까 괜찮겠지.”
찬비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 세 시간마저도 편하게 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어제처럼 심한 건 처음 봤는데…….’
상태가 영 안 좋아 보이는 것도 그렇지만, 어제 뒤척이는 소리에 깨서 본 모습은 지난 1년간 본 것 중에서도 최악이었다. 찬비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그냥 오늘은 학교 쉬지 그래? 너 아파서 잔다 할게.”
“아냐, 괜찮다니까.”
‘괜찮긴.’
찬비는 속으로 혀를 찼다. 두 눈이 퀭한 것이 금방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듯했다.
실제로 소년의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았다. 아니, 매일매일 고작 서너 시간밖에, 그것도 푹 자지도 못하니 항상 좋지 않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매일 밤 꿈에 대한 공포로 쉽게 잠들지 못하는 건 물론, 깨고 나서도 한참이나 몸을 떨어야 한다.
그냥 무서운 꿈 정도가 아니라 진짜 죽음의 공포를 느끼니 자고 싶어도 쉽게 잠들 수가 없었다. 간신히 잠든다 해도 깰 때까지는 줄곧 악몽에 시달려야 하니 편히 잘 수 있을 리도 없었다.
이것이 마음가짐이나 약물치료 같은 것으로는 바뀌지 않는 괴로움이라는 것을, 이미 찬비는 알고 있었다.
찬비는 창백한 소년의 안색을 다시 한번 살폈다.
“그럼 이따 점심시간 전에 적당히 보건실 가서 자. 잠 설치는 거야 다들 알고 있으니까, 누가 뭐라 하진 않겠지.”
“응.”
소년이 교복을 입으며 대답했다.
하얀 와이셔츠 위에 검붉은 색의 재킷. 왼쪽 가슴 위에 있는 초록색 명찰에는 하얀 실로, ‘한 여름밤’이라는 특이한 이름이 수놓아져 있었다.
소년, 아니, 여름밤이 위에서부터 차례로 단추를 여미며 말했다.
“슬슬 준비하고 가자.”
“아, 응.”
결국 찬비는 애써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우고, 웃통을 벗으며 화장실로 향했다.
* * *
“헤이, BAAAM! 좋은 아침!”
교실에서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 우렁찬 소리로 인사하며 다가왔다.
2학년이 되면서 같은 반이 된 전유성이었다. 쌍꺼풀이 없는 큰 눈에 함박웃음을 띤 채, 두 팔까지 옆으로 펴 들고 있다. 그 탓에 키가 확 크면서 다소 깡총해진 교복 소매가 더욱 눈에 띈다.
유성은 여름밤을 항상 ‘밤’이라고 불렀다.
“어, 좋은 아침.”
여름밤이 전혀 좋아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유성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 여름밤의 앞자리에 아무렇게나 털썩 앉았다.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데? 뭐 날려 버리고 싶은 거 있어, 밤?”
“…….”
여름밤은 그저 멋쩍게 웃어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평소 그는 유성을 대하기 좀 어려워했다.
학기 초, 유성이 불쑥 ‘너 이름 특이하다?’며 말을 걸었다. 그리고 그 뒤로 매일 같이 일방적으로 자리에 찾아와 말을 걸고 있었다. 항상 조용히 있는 것에 익숙한 여름밤은 활달한 유성을 좀 부담스러워했다.
“걔 간밤에 악몽 꿔서 잠 설쳤다.”
보다 못한 찬비가 여름밤 대신 대답했다. 그러자 유성의 두 눈이 댕그래졌다.
“아, 그 유명한 ‘한여름밤의 꿈’이냐. 와, 어떻게 꿈을 매일 꿀 수가 있지? 그것도 잠을 설칠 정도로 무서운 악몽이라는 거잖아. 신기하다.”
유성의 호들갑에도 여름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미 여름밤의 악몽은 ‘한여름밤의 꿈’이라는 이름으로 애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숙사에서 여름밤과 가까운 방을 쓰는 아이들은 모두 비명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1학년 때는 학교에서 ‘얼굴은 몰라도 비명 소리는 안다’는 식으로 아이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려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그는 꿈을 꾸는 것뿐만 아니라, 꿈을 꾸는 것으로 인해 주변에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것이 찬비는 조금 안타깝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무슨 꿈이었는데?”
“아, 뭐… 그냥…….”
‘알아봤자 좋을 것 없는데.’
눈을 내려 뜨며 여름밤은 속으로 생각했다. 사실 지금도 머리를 파고들던 이빨의 감촉을 떠올리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꿈에서 본 장면인데도, 그것은 태연한 얼굴로 교실에 앉아 있는 자신이 신기할 정도로 생생했다.
찬비는 흘깃 여름밤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여름밤은 계속 법석을 떨며 ‘뭐가 나왔냐, 그렇게 무섭냐’며 물어보는 유성에게 뭔가 눌린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있었다. 내색하거나 말하지는 않지만, 이 화제가 달갑지 않은 것이다.
찬비는 어떻게 해서 이놈을 쫓아 보낼까 싶어 인상을 쓴 채 유성을 바라보았다.
그때, 더욱 달갑지 않은 대사가 등장했다.
“허, 밤도 밤이지만 너도 고생이 많다. 바로 옆에서 밤마다 뒤척거릴 거 아냐.”
“…….”
여름밤은 저런 말을 들어놓고도 아무 말 못한 채, 싸해진 분위기를 살피고만 있었다.
‘그게 안 그래도 미안해서 움찔거리는 애한테 할 소리냐?’
짜증이 와락 났다.
“야, 농담이면 거기까지만 해라. 넌 재밌다고 하는 소린가 본데 할 소리가 있고 안 할 소리가 있다.”
냉랭한 찬비의 반응에 유성이 주춤했다. 그제야 유성은 자신이 너무 생각 없이 이야기했다는 것을 깨닫고, 미안한 웃음을 지었다.
“아, 너무 멀리 갔나? 미안하니까 표정 풀어라. 무섭다, 새끼야. 야, 그러고 보니 나 너한테 볼일 있어서 왔는데?”
그러고는 재빨리 화제를 전환한다. 그 모습에 혀를 차면서도 찬비가 물었다.
“나한테?”
“어, 오늘 점심시간에. 알지? 빠지기 없기다. 이기고 튀는 놈이 제일 나쁜 놈이야.”
뭔 소린가 했더니 축구 이야기였다.
2학년에 올라온 뒤 에이스인 찬비와 유성을 중심으로 체육시간에 종종 팀 대결을 했는데, 저번 주부터 그게 점심시간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현재 전적은 2대 0. 워낙 존재감이 없는 여름밤은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두 번 다 유성의 팀이 아깝게 졌다.
찬비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솔직히 당혹스러웠다. 잘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는 별로 축구를 좋아하지도 않고, 친구들이 강하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하게 된 것이었다.
축구를 하고 나면 지치는 것도 달갑지 않지만, 점심 먹을 시간이 애매해진다는 것 또한 이 상황이 달갑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였다. 어쩌면 이번에도 매점 빵으로 식사를 때워야 할 수도 있다.
“나 오늘 체육복을 기숙사에 두고 와서 말이야.”
찬비가 유성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이건 사실이기도 했다. 평소 깔끔한 성격의 그는 한번 입은 체육복은 꼭 그날 빨아서 기숙사에 두기 때문에, 수업이 없는 날에는 체육복이 없었다.
씨알도 안 먹힐 변명이란 걸 알지만, 이걸로 오늘 하루라도 빠지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었다.
“와, 빼기냐? 치사한 새끼. 그럼 내일은 꼭 갖고 와라. 내일은 있든 없든 내가 너 둘러메고서라도 나간다.”
찬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어, 그럼 내 거 입어. 사물함에 있어, 32번.”
뜻밖에도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배신자가 입을 열었다.
돌아보니 여름밤이 해맑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제 딴에는 도움이 되고 싶어서 한 말이겠지만.
찬비의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 그럼 됐네. 밤, 나이스! 그럼 이따가 보자.”
유성이 그의 어깨를 툭, 치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찬비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 * *
점심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찬비의 예상대로 점심도 포기한 채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갔다. 다른 반보다 빨리 운동장을 선점하기 위해서였다.
찬비는 운동장 선점이 실패하기를 내심 바랐지만, 발 하나는 엄청 빠른 유성 덕에 어려움 없이 성공한 모양이었다.
“여긴 우리 구역이다!”
“다른 데 가서 알아보시지!”
운동장을 점령한 유성과 그의 친구들이 다른 반 아이들에게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다른 반 아이들은 별 집착 없이 평화롭게 점심을 먹으러 돌아갔다.
‘우리 반 새끼들은 어떻게 되먹은 거야. 니들 배고프지도 않냐.’
찬비는 그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윽고 축구공을 가진 아이가 운동장에 도착하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처음 공을 잡은 것은 유성의 팀. 운동장 좌측 외곽으로 드리블을 하며 질주하고 있었다.
“패스!”
멀리서 유성이 외쳤다. 곧 긴 패스가 날아왔다. 공을 받아낸 유성이 쏜살같이 달려, 골문 앞에서 슛을 때렸다.
공은 골대의 우측 구석을 향했다. 간신히 골키퍼가 몸을 날려 튕겨냈지만, 슛을 날린 후에도 멈추지 않고 뛰어오던 유성이 튕겨 나온 공을 그대로 헤딩하여 다시 골대 안으로 박아 넣었다. 경기가 시작된 지 몇 분 채 지나지도 않아 터진 첫 골이었다.
“우오오오오오!”
유성은 팀원들과 얼싸안고 한마음이 되어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찬비에게는 어느 원시 부족의 괴성처럼 들릴 뿐이었다.
‘저렇게도 좋을까.’
골키퍼가 공을 참과 동시에 찬비가 앞으로 뛰어나갔다. 있는 곳은 우측 날개. 다른 아이들은 중앙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찬비!”
다급한 외침과 함께 공이 날아왔다. 그와 동시에 유성 팀 한 명이 찬비의 앞을 가로막으며 마킹해 왔다.
그러나 그는 달려가던 방향을 꺾으며 수비를 제치고, 앞으로 나가 공을 받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골대 우측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던 아이에게 패스했다.
곧 골 망이 흔들림과 동시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1대 1, 동점이다.
환호도 잠시, 포화 같은 소리와 함께 유성 팀 골키퍼가 골대로 들어온 공을 멀리 차올렸다. 단번에 길게 패스해서 빠르게 점수를 따자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욕심이 너무 컸다. 바람 때문인지 공은 예상을 훨씬 벗어나서 왼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결국 떨어지는 지점 근처에서 대기 중이던 찬비 팀 수비수에게 공을 빼앗겼다.
“으악, 안 돼!”
유성 팀은 비상이 걸려 급히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람이 공보다 빠를 수는 없는 일. 이미 자신의 포지션으로 돌아가 있던 찬비 쪽으로 재차 공이 길게 패스되었다.
찬비는 공을 받기보다, 공이 떨어지는 방향으로 같이 뛰었다. 근처에는 아무도 없다. 골대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자연스럽게 공이 발 앞에 떨어져 내렸다.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 찬비는 골대 위쪽을 노리고 강하게 슛을 날렸다. 커다란 폭성과 함께 공이 솟구쳤다.
“어라?”
골문 위를 스치며 저 멀리 날아가는 공. 힘차게 날아가던 공은 은행나무가 높이 자란 학교 담장을 넘어, 보이지 않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허허허.’
찬비는 속으로 헛웃음을 지으며 가만히 서서 그 광경을 망연하게 바라보았다.
뒤늦게 달려온 유성이 헐떡이며 닦달했다.
“어이, 날린 사람! 빨리 주워 와라!”
“알았어, 좀만 기다려.”
찬비는 하필이면 공이 날아간 방향과 정반대 방향에 있는 정문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 * *
찬비는 빨간 벽돌로 된 학교 담장을 따라 빙 돌며 뛰었다.
‘아까 공 넘어갈 때 은행나무가 있었지.’
담 너머에서도 보일 만큼 큰 나무였기에, 어디쯤 떨어졌을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었다.
담장 근처를 살피며 뛰다 보니, 건설 중인 주택들이 밀집한 외곽 지역이었다.
이 근처는 별로 온 적이 없다. 바로 근처긴 하지만 학교와 기숙사, 가끔 시가지만 왔다 갔다 하던 그로서는 처음 오는 곳이었다. 다른 곳과는 달리 어딘지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바닥이 울퉁불퉁하게 시멘트로 대강 마감이 되어 있어 별로 걷는 느낌이 좋지 않다. 더구나 인적도 없어서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으스스했다. 건물들도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 꽤 오래된 듯했다.
‘건물을 짓다가 말았나?’
그러나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 건 빨리 축구공을 찾아서 돌아가는 것이다.
담장을 흘끗 보니, 너머로 은행나무의 끄트머리가 보였다. 그렇다면 공은 이 근처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 것이다.
찬비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건물 그늘 밑에 있는 시꺼멓고 둥그런 물체를 발견했다.
“아, 저기 있네.”
얼른 그쪽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공에 검은 털 같은 것이 잔뜩 붙어 있었다.
“이게 뭐지?”
찬비는 털이 붙은 쪽에 손을 대봤다.
“으!”
깜짝 놀란 찬비는 재빨리 손을 떼고 물러났다.
딱딱하고, 거기다 조금 따뜻하기까지 했다. 절대 공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촉감이었다. 게다가 털은 달라붙은 것이 아니라 이 정체불명의 물체와 연결되어 있었다.
사늘한 바람이 목 뒤를 스치고 지나간 듯했다. 물체가 서서히 절반쯤 굴러왔다.
찬비는 그 자리에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쓰러졌다.
두 눈을 부릅뜨고 경악에 찬 어떤 남자의 얼굴이 찬비와 눈을 마주쳐 왔다. 그것은 사람의 머리통이었다.
“추, 추, 추, 추, 축구공. 찾아야…….”
주저앉은 채 중얼거렸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 아니지! 빨리 도망을.”
진정해, 침착해야 해.
그는 재빨리 남자의 머리로부터 시선을 돌리며, 땅을 짚고 일어섰다. 그리고 급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살인자가 이 근처에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목을 저렇게 절단해 놓다니 제정신은 아닐 것이다. 맨손으로 저렇게 했을 리도 없으니 흉기도 갖고 있을 게 분명했다.
축구 때문에 휴대폰은 교실에 둔 채였다. 최대한 빨리 학교나 사람이 있는 곳에, 적어도 전화가 있는 곳까지 가서 경찰이나 선생님한테 말해야 한다. 사람이 많고 안전한… 신고도 할 수 있는 곳으로.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은…….
찬비는 곧장 최대한 밝고 넓은 쪽으로 걸어갔다.
일단 위험에서 벗어나는 게 먼저다. 먼저 넓고 사람이 있을 만한 길에 도달해서, 신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나았다. 이 으슥한 곳을 그대로 통과하는 건 위험하다.
행인이 있다면 더 빨리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 숨어 있을 만한 장소를 피해 돌아가야 한다. 머릿속이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침착해 보려고 해도, 방금 본 잘린 머리가 자꾸 떠올랐다.
등 뒤에서 누군가 쫓아오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어 연신 뒤를 돌아보며, 찬비는 점점 더 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어떤 건물의 모퉁이를 돈 순간.
만나고 말았다.
‘저게 뭐야?’
심장이 빠르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찬비는 덜덜 떨며 재빨리 몸을 돌려 건물 뒤로 숨었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본 것들 중에 가장 끔찍하게 생긴 생물이었다.
생김새는 호랑이다. 그러나 보통 호랑이의 크기가 아니라 거의 집채만 했다. 코끼리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정말이지 괴상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얼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빨로 가득 찬 아가리만이 있을 뿐이다.
찬비는 귀상어의 머리를 떠올렸다. 본래 눈이 있어야 할 납작한 얼굴 부분이 위아래로 갈라진, 입을 쩍 벌리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귀상어.
‘아직 눈치채진 못한 것 같아.’
호랑이와의 거리는 조금 떨어져 있고, 사이에는 건물이 있다.
찬비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천천히 왔던 쪽으로 뒷걸음질 쳤다. 건물을 끼고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면 눈치채지 못하게 지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돌렸다.
뒤를 돌아본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은 번들거리는 이빨로 가득한 선홍색 아가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