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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영웅은 마왕이 되었다
11화
시안은 조속히 슬라임 요람을 건축했다. 고블린의 훈련소와 동일한 효과를 갖춘 요람은 묘한 색의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였다.
슬라임의 가격은 영혼 조각 두 개. 필요로 하는 통솔력은 0.5다. 부담이 되는 가격은 아니었으므로 저택의 역할을 하는 둥지를 포함해 마구잡이로 찍어냈다. 어느덧 그의 주변에는 청색의 체액을 가진 다섯 마리의 슬라임이 꾸물거리고 있었다.
그중 한 마리를 동반한 시안이 향한 곳은 대장간이다. 전날 지독한 노동에 시달린 대장장이 고블린은 모루에 머리를 얹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대장장이, 심심해 보이네?”
“키익! 아니다. 전혀 심심하지 않다. 바쁘다!”
혹시라도 일을 시킬까 고블린은 자신의 모든 연기력을 동원해 일하는 척을 했다. 하지만 시킨 일이 없는데 일거리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무 것도 안 하고 놀고먹기만 하는 네가 피둥피둥 살 찔까 봐 일거리를 가지고 왔다. 나만 한 주인도 없지?”
“키익… 양심도 없는 소리다. 나는 게으름 부리고 싶다. 오늘은 금속을 두드리고 싶지 않다.”
“안 돼. 게으름은 만악의 근원이다. 너는 이 녀석의 안장을 만들어 줘. 고블린들이 타고 다닐 수 있도록.”
그제야 고블린의 시선이 동반한 슬라임에게 향했다.
고블린은 창의력이 극도로 부족하다. 학습한 것은 만들어낼 수 있지만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에 몹시 취약했다. 때문에 시안은 시간을 투자해 설계도를 그려주었다.
그 결과, 자그마한 등받이가 달린 안장이 슬라임의 등 위에 놓이게 되었다. 느슨해 보이는 외형과 달리 튼튼하게 고정되어 있다.
“어떠냐, 주인. 내 걸작이다.”
“오오, 괜찮아. 나쁘지 않아. 오히려 라임의 등에도 달아주고 싶을 정도야. 훌륭해. 이걸 네 개 더 만들어줘.”
“키익?! 나한테 그러지 마라. 노동 개선을 요구한다!”
연인에게 버려진 것처럼 애처로운 자세로 손을 뻗는 고블린 대장장이를 뒤로한 시안은 휘하 고블린 중에서 가장 높은 레벨을 가진 고블린 검사를 불렀다.
고블린 검사는 조속히 슬라임에게 호기심을 보였다.
“슬라임 등에 달린 저건 뭐냐?”
“안장이라는 거야. 올라타 봐.”
“키익, 하등한 슬라임 따위의 등에 올라타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비하 발언을 서슴지 않는 고블린 검사의 표정은 벌레라도 씹은 듯 구겨져 있었다. 그 얼굴이 정말 싫지만 상사가 시키니 마지못해 일을 하는, 표정 관리 안 되는 직장인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슬라임 위에 올라탄 고블린 검사의 표정이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슬쩍 얼굴을 붉힌 채 환호하는 모습이 일평생을 맨바닥에서 잠자다가 난생 처음 물침대를 사용해 본 소녀를 연상하게끔 한다.
“탑승감이 어때?”
“재, 재미있고 푹신푹신하다! 키익!”
신난 고블린 검사가 본격적으로 슬라임을 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맞물리지 않은 톱니처럼 삐걱거렸으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마음이 통한 건지 한 몸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정도면 어느 정도 전투에서도 써먹을 수 있겠네.”
비록 슬라임이 말처럼 빠른 것은 아닌지라 기마병처럼 압도적인 돌파력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 말과는 다른 독창적인 특징이 있다. 슬라임 자체가 공격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슬라임이 죽을 때 자폭을 하면 위에 타고 있는 놈도 손잡고 사이좋게 요단강을 건너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응, 비밀로 하자.”
강가에서 마냥 해맑게 웃으며 슬라임과 뛰노는 고블린 검사가 들었다면 경기를 일으켰을 한마디를 중얼거리며 시안은 본격적으로 고블린 기병대를 만들었다.
완성된 고블린 기병대의 수는 총 다섯. 고블린과 슬라임 둘이서 하나가 되어야 하므로 두 번의 부대지정 스킬을 사용해야만 했다.
그렇게 제법 공을 들여 완성한 고블린 기병이 어느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었던 시안은 조속히 그들을 데리고 거점의 서쪽으로 향했다. 사냥감은 역시 만만한 고블린이었다.
“키익?!”
가장 처음에 조우한 고블린 한 마리가 시안과 다섯 마리의 고블린 기병을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나 목숨을 걸고 싸우는 앙숙 관계인 슬라임을 타고 다니는 다섯 마리의 고블린과 그들을 통솔하는 한 명의 인간이라니.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냥의 시간이다!”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신이 난 고블린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적을 향해 앞 다투어 달려들었다. 그 후 벌어진 것은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 일방적인 도륙이었다.
“우와아…….”
다섯 마리의 고블린이 하나의 적을 둘러싸고 검을 휘두른다. 그 밑에 있는 슬라임들 역시 쉬지 않고 이빨을 놀렸다.
그 안에서 죽어가는 고블린의 모습은 PPO를 4년간 플레이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시안이 보기에도 처참하고 잔혹했다.
10초가 채 지나지 않아 웃는 얼굴로 돌아오는 고블린 기병들의 가방에는 새로운 전리품이 담기게 되었다.
“이거 굉장히 재미있다.”
“즐거워 보이니 다행이기는 하네. 하지만 이래서야 얼마만큼 강해졌는지 알 도리가 없잖아. 다음부터는 한 명씩 움직이도록 해.”
“알겠다. 우리는 착한 고블린. 명령에 따른다. …오옷! 저기에 다음 사냥감이 있다! 전원 돌격, 돌격이다!”
“방금 말하고 5초도 안 지났잖아! 새대가리냐!”
새로운 사냥감을 발견하고 고삐를 휘두르던 고블린들은 시안에게 철저한 응징을 당하고 벌을 서게 되었다.
무릎을 꿇은 채로 슬라임을 머리 위에 짊어진 고블린 다섯 마리가 육중한 무게감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사이, 시안은 그들이 발견한 사냥감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한 마리의 고블린이 슬라임과 싸우고 있었다. 슬라임은 일반 몬스터였으나 그를 상대하고 있는 고블린은 검과 방패, 그리고 뿔 모양의 투구를 갖추고 있는 네임드 몬스터인 고블린 검사였다.
그런데 고블린의 머리 위에라는 문자가 떠올라 있었다. 그를 통해 처음으로 자신에게 죽음을 선물해 준 고블린 검사라는 것을 알아차린 시안의 입가에 샐쭉한 미소가 걸렸다.
“찾았다.”
리벤지. 복수라는 단어가 달콤한 과실처럼 느껴졌다.
“너희들은 이 주변에서 적당히 놀고 있어. 나는 지금부터 저놈에게 복수를 할 테니까.”
“알았다. 놀러간다!”
행여 시안의 마음이 바뀔까 허둥지둥 슬라임을 내려놓은 고블린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그렇게 혼자가 된 시안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개조 마법의 종류를 개산하며 두 몬스터가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고 있는 장소로 다가갔다.
타이밍 좋게 그들만의 싸움도 끝을 고하고 있었다.
고블린 검사가 내리친 검이 슬라임의 외피를 찢자 상처로부터 대량의 체액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패배를 직감한 슬라임이 몸을 부풀리며 자폭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고블린 검사의 방패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슬라임의 자폭은 덧없는 자살로 끝을 맺고 말았다.
몬스터와 몬스터의 전투이기 때문에 슬라임의 사체는 금방 사라지지 않았다. 고블린 검사가 수거해 가지 않는다면 꼬박 하루가 지난 후에나 사라질 것이다.
“키이이익! 나의 승리다!”
간단하게 승리를 취한 고블린 검사가 승리의 포효를 내지른다. 검과 방패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함성을 내지르는 녀석은 고블린 주제에 제법 용맹해 보였다.
시안은 쓰러진 슬라임에게 다가갔다. 혹시나 전리품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녹슨 단검을 사용해 이리저리 들쑤셔 봤으나 플레이어가 획득할 수 있는 전리품은 없었다.
“키익, 넌 뭐냐!”
그제야 자신의 전리품 앞에 쭈그리고 앉아 칼질을 하고 있는 시안을 발견한 고블린 검사의 표정이 꿈에 나올까 무서운 수준으로 구겨졌다.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 고블린은 맹수마냥 으르렁거리며 시안을 위협하기 위해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인간. 당장 꺼져라. 그건 내 전리품이다. 나는 지금 몹시 기분이 좋으니 당장 사라진다면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 네놈의 목숨은 살려주마.”
전날 쓰러뜨린 시안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 고블린 검사가 거만한 자태로 말했다.
“뭘 잘난 듯이 말하고 있어? 고블린 주제에… 하지만 전리품을 가로채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그러니 돌려주마.”
시안은 적대할 의지가 없음을 알리기 위해 두 손을 어깨 위로 들고는 뒷걸음질로 거리를 벌였다.
“키히히, 말귀가 밝은 인간이군. 네 소심함이 목숨을 살렸다. 만약 저항했으면 목과 분리된 네 몸뚱어리를 감상할 기회가 있었을 텐데, 아쉽군.”
“그래그래, 감사합니다.”
심드렁하게 대꾸하는 시안을 향해 거만한 미소를 지어준 고블린 검사가 전리품을 회수하기 위해 접근해 왔다.
고블린 검사가 허리를 숙인 순간, 슬라임의 거대한 몸체 사이에 교묘하게 숨어 있던 암흑탄이 고블린 검사의 미간으로 쏘아졌다.
“비열한 놈! 함정인가!”
네임드 몬스터답게 고블린은 몸을 비틀며 가까스로 암흑탄을 회피했다.
그런 고블린의 눈에 보인 것은 얼굴 가득 섬뜩한 미소를 지은 채 녹슨 단검을 휘두르는 시안의 모습이었다. 그 안광이 광기로 번뜩이고 있었다.
“그래, 함정이시다. 조금 전 사체를 뒤적거리고 있을 때 함정을 만들어 놨지. 개조 마법으로 암흑탄의 발사 시간을 지연시킨 거야. 놀랐어?”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웃는 시안을 보며 고블린 검사는 얼굴을 붉히고 분을 토해냈다.
“위대한 고블린 검사인 이 몸이 그깟 공격에 당할 것 같으냐!”
고블린 검사가 시안의 공격을 막기 위해 방패를 들었다.
하지만 가해지는 충격은 없었다. 방패로 공격을 막으리라고 예상한 시안이 휘두르던 단검을 도중에 회수한 것이다.
이어서 내뻗은 오른손이 비어 있는 고블린 검사의 얼굴을 노렸다. 그 손에는 섬뜩하게 빛나는 암흑탄이 들려 있었다.
“키에에엑!”
암흑탄이 폭발하며 고블린 검사가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다. 반면 마력 방패 마법을 사용한 시안의 손은 부상 하나 없이 멀쩡했다.
얼굴을 감싸 쥐고 뒷걸음질 치는 고블린 검사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턱을 노린 찌르기가 이어졌다. 빈틈을 찌른 깔끔한 일격에 고블린 검사는 맥없이 뒤로 쓰러졌다. 공격력이 모자랐는지 피부를 뚫지는 못했다.
눈물이 핑 도는 고통을 참아내며 몸을 일으킨 고블린 검사는 정면으로 무언가가 날아오는 것을 포착했다. 그것이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준 암흑탄이라 생각한 그가 재빠르게 바닥을 굴렀다.
조금 전까지 고블린 검사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돌멩이 두 개가 날아와 박혀들었다.
“도, 돌멩이라고?!”
“아직 MP 총량이 낮아서 마법을 마음껏 사용하는데 에로사항이 있어. 그래서 돌멩이를 던져봤는데 속아줘서 고마워. 네가 멍청해서 정말 다행이야.”
자신을 조롱하는 시안의 음성과 포위하듯 날아오는 두 개의 암흑탄을 확인한 고블린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자세가 흐트러져서 피할 수가 없다. 몸으로 견뎌야만 했다.
하나의 암흑탄은 미간을, 다른 하나의 암흑탄은 교묘하게 흉갑을 피해 복부를 가격한다. 고블린은 한 움큼의 피를 토했다.
“쿨럭! 감히… 감히 인간 따위가!”
“다른 것은 몰라도 튼튼해서 좋네. 괜찮은 느낌의 샌드백이야.”
“크아아악! 네놈을 반드시 내 칼의 먹이로 삼고야 말겠다!”
머리끝까지 분노한 고블린이 악을 쓰며 시안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재빠르게 몸을 빼내던 시안이었으나 재수 없게도 슬라임의 사체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아, 잠깐 기다려. 타임!”
허둥대는 그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당혹감이 엿보인다.
이것을 하늘이 내려준 절호의 기회라 판단한 고블린 검사가 아직까지도 쓰러져 있는 시안의 숨통을 끊기 위해 몸을 던졌다.
공중으로 뛰어오른 고블린이 온 힘을 담은 검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을 때, 당황하던 시안의 표정이 초승달을 닮은 비열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피어난 저 미소가 고블린으로 하여금 불안함과 공포를 느끼게 만들었다.
“함정이 하나라고 누가 이야기했던가? 나는 말한 기억이 없는데. 아, 이거는 만드느라 조금 고생했어. 지연 시간을 상당히 길게 설정했거든.”
그 순간 슬라임의 사체가 만든 그림자로부터 검은색의 암흑탄이 발사되었다.
얼굴을 향해 점점 크기를 키우는 암흑탄을 보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방적으로 농락당했음을 깨달은 고블린 검사의 표정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설마 넘어진 것마저 속임수였단 말이냐!”
“오오, 정답! 어쩐 일이야. 죽을 때가 되니 갑자기 똑똑해 졌나?”
강력한 일격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틈을 파고든 암흑탄은 여지없이 고블린 검사의 급소에 적중했다.
“…분하다.”
네임드 슬라임과의 전투로 소모되어 있던 고블린 검사의 체력이 일방적으로 얻어맞은 끝에 바닥을 드러냈다. 쓰러진 고블린 검사는 전리품으로 갑옷과 작은 방패를 남기고는 빛의 입자가 되었다.
“전리품은 두 개인가. 내가 사용하기에는 너무 작은데. 하긴, 착용할 놈이야 썩어 넘치도록 많으니까.”
휘하 고블린들을 떠올리며 전리품을 회수한 시안은 허리를 펴며 늘어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잃어버린 목숨에 대한 복수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보수는 비단 몬스터를 사냥해 얻을 수 있는 전리품뿐만이 아니다.
<복수에 성공했습니다. 보상으로 ‘죽음을 딛고 일어선 자’ 스킬을 습득합니다.>
<죽음을 딛고 일어선 자>
진정한 마왕은 쉽게 죽지 않는 법입니다. 사망할 경우 생전의 50%에 해당하는 HP를 가진 영체가 되어 시체 위에 머무릅니다. 30초 동안 영체가 사망하지 않으면 마왕은 다시 한 번 깨어날 것입니다.
마왕으로 각성해야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 24시간.
“보험인가. 나쁘지 않아.”
스킬 설명을 확인한 시안이 굉장히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세 개밖에 없는 목숨 중 하나를 잃어버린 탓에 조금 불안한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그런데 조건부이기는 해도 부활 스킬이 생겼으니 보험에 가입한 것처럼 마음이 조금은 든든해졌다. 1:1이라면 그리 쓸모가 있는 스킬은 아니지만 다수와 다수의 싸움처럼 지켜줄 이가 있다면 전략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복수도 성공적으로 끝났겠다, 슬슬 본래의 목적으로 되돌아가 보실까.”
고블린 기병의 효율을 확인한다는 당초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시안은 휘하 몬스터들과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의념 통화 스킬을 사용했다.
잠깐의 잡소리가 들린 후, 시안이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고막을 찢어발길 듯한 고블린의 외침이 들려왔다.
[키이이익! 여자는 죽이고 남자는 사로잡아라! 우리들의 무서움을 널리 알리고 공포를 심어주는 거다. 키킥, 키이익!]
“…신나게 놀고 있는 모양이네. 조금 너무 신난 것 같기는 하지만… 모른 척할까.”
광기마저 느껴지는 고블린의 유희에 놀란 시안은 황급히 의념 통화를 거두었다.
“그동안 스트레스가 쌓인 걸까.”
매일 의무적인 반복 사냥만 하느라 쌓인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과정이라 판단한 시안은 묵묵히 그들의 자유를 허락했다. 기병의 성능 검증이야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거점으로 돌아가기 위한 첫 걸음을 떼었을 때였다. 누군가 의념 통화를 걸어왔을 때 들려오는 알람이 요란하게 울어 댔다.
익숙하게 시스템을 불러온 시안은 발신자의 이름을 확인한다. 발신인이 라임과 함께 오크를 사냥하고 있을 소향이라는 것을 확인한 시안은 지체 없이 통화를 수락했다.
“무슨 일이야?”
[오빠, 오크, 엄청난 오크가 나타났어!]
11화
시안은 조속히 슬라임 요람을 건축했다. 고블린의 훈련소와 동일한 효과를 갖춘 요람은 묘한 색의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였다.
슬라임의 가격은 영혼 조각 두 개. 필요로 하는 통솔력은 0.5다. 부담이 되는 가격은 아니었으므로 저택의 역할을 하는 둥지를 포함해 마구잡이로 찍어냈다. 어느덧 그의 주변에는 청색의 체액을 가진 다섯 마리의 슬라임이 꾸물거리고 있었다.
그중 한 마리를 동반한 시안이 향한 곳은 대장간이다. 전날 지독한 노동에 시달린 대장장이 고블린은 모루에 머리를 얹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대장장이, 심심해 보이네?”
“키익! 아니다. 전혀 심심하지 않다. 바쁘다!”
혹시라도 일을 시킬까 고블린은 자신의 모든 연기력을 동원해 일하는 척을 했다. 하지만 시킨 일이 없는데 일거리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무 것도 안 하고 놀고먹기만 하는 네가 피둥피둥 살 찔까 봐 일거리를 가지고 왔다. 나만 한 주인도 없지?”
“키익… 양심도 없는 소리다. 나는 게으름 부리고 싶다. 오늘은 금속을 두드리고 싶지 않다.”
“안 돼. 게으름은 만악의 근원이다. 너는 이 녀석의 안장을 만들어 줘. 고블린들이 타고 다닐 수 있도록.”
그제야 고블린의 시선이 동반한 슬라임에게 향했다.
고블린은 창의력이 극도로 부족하다. 학습한 것은 만들어낼 수 있지만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에 몹시 취약했다. 때문에 시안은 시간을 투자해 설계도를 그려주었다.
그 결과, 자그마한 등받이가 달린 안장이 슬라임의 등 위에 놓이게 되었다. 느슨해 보이는 외형과 달리 튼튼하게 고정되어 있다.
“어떠냐, 주인. 내 걸작이다.”
“오오, 괜찮아. 나쁘지 않아. 오히려 라임의 등에도 달아주고 싶을 정도야. 훌륭해. 이걸 네 개 더 만들어줘.”
“키익?! 나한테 그러지 마라. 노동 개선을 요구한다!”
연인에게 버려진 것처럼 애처로운 자세로 손을 뻗는 고블린 대장장이를 뒤로한 시안은 휘하 고블린 중에서 가장 높은 레벨을 가진 고블린 검사를 불렀다.
고블린 검사는 조속히 슬라임에게 호기심을 보였다.
“슬라임 등에 달린 저건 뭐냐?”
“안장이라는 거야. 올라타 봐.”
“키익, 하등한 슬라임 따위의 등에 올라타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비하 발언을 서슴지 않는 고블린 검사의 표정은 벌레라도 씹은 듯 구겨져 있었다. 그 얼굴이 정말 싫지만 상사가 시키니 마지못해 일을 하는, 표정 관리 안 되는 직장인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슬라임 위에 올라탄 고블린 검사의 표정이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슬쩍 얼굴을 붉힌 채 환호하는 모습이 일평생을 맨바닥에서 잠자다가 난생 처음 물침대를 사용해 본 소녀를 연상하게끔 한다.
“탑승감이 어때?”
“재, 재미있고 푹신푹신하다! 키익!”
신난 고블린 검사가 본격적으로 슬라임을 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맞물리지 않은 톱니처럼 삐걱거렸으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마음이 통한 건지 한 몸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정도면 어느 정도 전투에서도 써먹을 수 있겠네.”
비록 슬라임이 말처럼 빠른 것은 아닌지라 기마병처럼 압도적인 돌파력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 말과는 다른 독창적인 특징이 있다. 슬라임 자체가 공격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슬라임이 죽을 때 자폭을 하면 위에 타고 있는 놈도 손잡고 사이좋게 요단강을 건너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응, 비밀로 하자.”
강가에서 마냥 해맑게 웃으며 슬라임과 뛰노는 고블린 검사가 들었다면 경기를 일으켰을 한마디를 중얼거리며 시안은 본격적으로 고블린 기병대를 만들었다.
완성된 고블린 기병대의 수는 총 다섯. 고블린과 슬라임 둘이서 하나가 되어야 하므로 두 번의 부대지정 스킬을 사용해야만 했다.
그렇게 제법 공을 들여 완성한 고블린 기병이 어느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었던 시안은 조속히 그들을 데리고 거점의 서쪽으로 향했다. 사냥감은 역시 만만한 고블린이었다.
“키익?!”
가장 처음에 조우한 고블린 한 마리가 시안과 다섯 마리의 고블린 기병을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나 목숨을 걸고 싸우는 앙숙 관계인 슬라임을 타고 다니는 다섯 마리의 고블린과 그들을 통솔하는 한 명의 인간이라니.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냥의 시간이다!”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신이 난 고블린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적을 향해 앞 다투어 달려들었다. 그 후 벌어진 것은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 일방적인 도륙이었다.
“우와아…….”
다섯 마리의 고블린이 하나의 적을 둘러싸고 검을 휘두른다. 그 밑에 있는 슬라임들 역시 쉬지 않고 이빨을 놀렸다.
그 안에서 죽어가는 고블린의 모습은 PPO를 4년간 플레이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시안이 보기에도 처참하고 잔혹했다.
10초가 채 지나지 않아 웃는 얼굴로 돌아오는 고블린 기병들의 가방에는 새로운 전리품이 담기게 되었다.
“이거 굉장히 재미있다.”
“즐거워 보이니 다행이기는 하네. 하지만 이래서야 얼마만큼 강해졌는지 알 도리가 없잖아. 다음부터는 한 명씩 움직이도록 해.”
“알겠다. 우리는 착한 고블린. 명령에 따른다. …오옷! 저기에 다음 사냥감이 있다! 전원 돌격, 돌격이다!”
“방금 말하고 5초도 안 지났잖아! 새대가리냐!”
새로운 사냥감을 발견하고 고삐를 휘두르던 고블린들은 시안에게 철저한 응징을 당하고 벌을 서게 되었다.
무릎을 꿇은 채로 슬라임을 머리 위에 짊어진 고블린 다섯 마리가 육중한 무게감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사이, 시안은 그들이 발견한 사냥감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한 마리의 고블린이 슬라임과 싸우고 있었다. 슬라임은 일반 몬스터였으나 그를 상대하고 있는 고블린은 검과 방패, 그리고 뿔 모양의 투구를 갖추고 있는 네임드 몬스터인 고블린 검사였다.
그런데 고블린의 머리 위에
“찾았다.”
리벤지. 복수라는 단어가 달콤한 과실처럼 느껴졌다.
“너희들은 이 주변에서 적당히 놀고 있어. 나는 지금부터 저놈에게 복수를 할 테니까.”
“알았다. 놀러간다!”
행여 시안의 마음이 바뀔까 허둥지둥 슬라임을 내려놓은 고블린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그렇게 혼자가 된 시안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개조 마법의 종류를 개산하며 두 몬스터가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고 있는 장소로 다가갔다.
타이밍 좋게 그들만의 싸움도 끝을 고하고 있었다.
고블린 검사가 내리친 검이 슬라임의 외피를 찢자 상처로부터 대량의 체액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패배를 직감한 슬라임이 몸을 부풀리며 자폭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고블린 검사의 방패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슬라임의 자폭은 덧없는 자살로 끝을 맺고 말았다.
몬스터와 몬스터의 전투이기 때문에 슬라임의 사체는 금방 사라지지 않았다. 고블린 검사가 수거해 가지 않는다면 꼬박 하루가 지난 후에나 사라질 것이다.
“키이이익! 나의 승리다!”
간단하게 승리를 취한 고블린 검사가 승리의 포효를 내지른다. 검과 방패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함성을 내지르는 녀석은 고블린 주제에 제법 용맹해 보였다.
시안은 쓰러진 슬라임에게 다가갔다. 혹시나 전리품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녹슨 단검을 사용해 이리저리 들쑤셔 봤으나 플레이어가 획득할 수 있는 전리품은 없었다.
“키익, 넌 뭐냐!”
그제야 자신의 전리품 앞에 쭈그리고 앉아 칼질을 하고 있는 시안을 발견한 고블린 검사의 표정이 꿈에 나올까 무서운 수준으로 구겨졌다.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 고블린은 맹수마냥 으르렁거리며 시안을 위협하기 위해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인간. 당장 꺼져라. 그건 내 전리품이다. 나는 지금 몹시 기분이 좋으니 당장 사라진다면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 네놈의 목숨은 살려주마.”
전날 쓰러뜨린 시안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 고블린 검사가 거만한 자태로 말했다.
“뭘 잘난 듯이 말하고 있어? 고블린 주제에… 하지만 전리품을 가로채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그러니 돌려주마.”
시안은 적대할 의지가 없음을 알리기 위해 두 손을 어깨 위로 들고는 뒷걸음질로 거리를 벌였다.
“키히히, 말귀가 밝은 인간이군. 네 소심함이 목숨을 살렸다. 만약 저항했으면 목과 분리된 네 몸뚱어리를 감상할 기회가 있었을 텐데, 아쉽군.”
“그래그래, 감사합니다.”
심드렁하게 대꾸하는 시안을 향해 거만한 미소를 지어준 고블린 검사가 전리품을 회수하기 위해 접근해 왔다.
고블린 검사가 허리를 숙인 순간, 슬라임의 거대한 몸체 사이에 교묘하게 숨어 있던 암흑탄이 고블린 검사의 미간으로 쏘아졌다.
“비열한 놈! 함정인가!”
네임드 몬스터답게 고블린은 몸을 비틀며 가까스로 암흑탄을 회피했다.
그런 고블린의 눈에 보인 것은 얼굴 가득 섬뜩한 미소를 지은 채 녹슨 단검을 휘두르는 시안의 모습이었다. 그 안광이 광기로 번뜩이고 있었다.
“그래, 함정이시다. 조금 전 사체를 뒤적거리고 있을 때 함정을 만들어 놨지. 개조 마법으로 암흑탄의 발사 시간을 지연시킨 거야. 놀랐어?”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웃는 시안을 보며 고블린 검사는 얼굴을 붉히고 분을 토해냈다.
“위대한 고블린 검사인 이 몸이 그깟 공격에 당할 것 같으냐!”
고블린 검사가 시안의 공격을 막기 위해 방패를 들었다.
하지만 가해지는 충격은 없었다. 방패로 공격을 막으리라고 예상한 시안이 휘두르던 단검을 도중에 회수한 것이다.
이어서 내뻗은 오른손이 비어 있는 고블린 검사의 얼굴을 노렸다. 그 손에는 섬뜩하게 빛나는 암흑탄이 들려 있었다.
“키에에엑!”
암흑탄이 폭발하며 고블린 검사가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다. 반면 마력 방패 마법을 사용한 시안의 손은 부상 하나 없이 멀쩡했다.
얼굴을 감싸 쥐고 뒷걸음질 치는 고블린 검사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턱을 노린 찌르기가 이어졌다. 빈틈을 찌른 깔끔한 일격에 고블린 검사는 맥없이 뒤로 쓰러졌다. 공격력이 모자랐는지 피부를 뚫지는 못했다.
눈물이 핑 도는 고통을 참아내며 몸을 일으킨 고블린 검사는 정면으로 무언가가 날아오는 것을 포착했다. 그것이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준 암흑탄이라 생각한 그가 재빠르게 바닥을 굴렀다.
조금 전까지 고블린 검사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돌멩이 두 개가 날아와 박혀들었다.
“도, 돌멩이라고?!”
“아직 MP 총량이 낮아서 마법을 마음껏 사용하는데 에로사항이 있어. 그래서 돌멩이를 던져봤는데 속아줘서 고마워. 네가 멍청해서 정말 다행이야.”
자신을 조롱하는 시안의 음성과 포위하듯 날아오는 두 개의 암흑탄을 확인한 고블린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자세가 흐트러져서 피할 수가 없다. 몸으로 견뎌야만 했다.
하나의 암흑탄은 미간을, 다른 하나의 암흑탄은 교묘하게 흉갑을 피해 복부를 가격한다. 고블린은 한 움큼의 피를 토했다.
“쿨럭! 감히… 감히 인간 따위가!”
“다른 것은 몰라도 튼튼해서 좋네. 괜찮은 느낌의 샌드백이야.”
“크아아악! 네놈을 반드시 내 칼의 먹이로 삼고야 말겠다!”
머리끝까지 분노한 고블린이 악을 쓰며 시안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재빠르게 몸을 빼내던 시안이었으나 재수 없게도 슬라임의 사체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아, 잠깐 기다려. 타임!”
허둥대는 그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당혹감이 엿보인다.
이것을 하늘이 내려준 절호의 기회라 판단한 고블린 검사가 아직까지도 쓰러져 있는 시안의 숨통을 끊기 위해 몸을 던졌다.
공중으로 뛰어오른 고블린이 온 힘을 담은 검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을 때, 당황하던 시안의 표정이 초승달을 닮은 비열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피어난 저 미소가 고블린으로 하여금 불안함과 공포를 느끼게 만들었다.
“함정이 하나라고 누가 이야기했던가? 나는 말한 기억이 없는데. 아, 이거는 만드느라 조금 고생했어. 지연 시간을 상당히 길게 설정했거든.”
그 순간 슬라임의 사체가 만든 그림자로부터 검은색의 암흑탄이 발사되었다.
얼굴을 향해 점점 크기를 키우는 암흑탄을 보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방적으로 농락당했음을 깨달은 고블린 검사의 표정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설마 넘어진 것마저 속임수였단 말이냐!”
“오오, 정답! 어쩐 일이야. 죽을 때가 되니 갑자기 똑똑해 졌나?”
강력한 일격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틈을 파고든 암흑탄은 여지없이 고블린 검사의 급소에 적중했다.
“…분하다.”
네임드 슬라임과의 전투로 소모되어 있던 고블린 검사의 체력이 일방적으로 얻어맞은 끝에 바닥을 드러냈다. 쓰러진 고블린 검사는 전리품으로 갑옷과 작은 방패를 남기고는 빛의 입자가 되었다.
“전리품은 두 개인가. 내가 사용하기에는 너무 작은데. 하긴, 착용할 놈이야 썩어 넘치도록 많으니까.”
휘하 고블린들을 떠올리며 전리품을 회수한 시안은 허리를 펴며 늘어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잃어버린 목숨에 대한 복수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보수는 비단 몬스터를 사냥해 얻을 수 있는 전리품뿐만이 아니다.
<복수에 성공했습니다. 보상으로 ‘죽음을 딛고 일어선 자’ 스킬을 습득합니다.>
<죽음을 딛고 일어선 자>
진정한 마왕은 쉽게 죽지 않는 법입니다. 사망할 경우 생전의 50%에 해당하는 HP를 가진 영체가 되어 시체 위에 머무릅니다. 30초 동안 영체가 사망하지 않으면 마왕은 다시 한 번 깨어날 것입니다.
마왕으로 각성해야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 24시간.
“보험인가. 나쁘지 않아.”
스킬 설명을 확인한 시안이 굉장히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세 개밖에 없는 목숨 중 하나를 잃어버린 탓에 조금 불안한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그런데 조건부이기는 해도 부활 스킬이 생겼으니 보험에 가입한 것처럼 마음이 조금은 든든해졌다. 1:1이라면 그리 쓸모가 있는 스킬은 아니지만 다수와 다수의 싸움처럼 지켜줄 이가 있다면 전략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복수도 성공적으로 끝났겠다, 슬슬 본래의 목적으로 되돌아가 보실까.”
고블린 기병의 효율을 확인한다는 당초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시안은 휘하 몬스터들과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의념 통화 스킬을 사용했다.
잠깐의 잡소리가 들린 후, 시안이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고막을 찢어발길 듯한 고블린의 외침이 들려왔다.
[키이이익! 여자는 죽이고 남자는 사로잡아라! 우리들의 무서움을 널리 알리고 공포를 심어주는 거다. 키킥, 키이익!]
“…신나게 놀고 있는 모양이네. 조금 너무 신난 것 같기는 하지만… 모른 척할까.”
광기마저 느껴지는 고블린의 유희에 놀란 시안은 황급히 의념 통화를 거두었다.
“그동안 스트레스가 쌓인 걸까.”
매일 의무적인 반복 사냥만 하느라 쌓인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과정이라 판단한 시안은 묵묵히 그들의 자유를 허락했다. 기병의 성능 검증이야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거점으로 돌아가기 위한 첫 걸음을 떼었을 때였다. 누군가 의념 통화를 걸어왔을 때 들려오는 알람이 요란하게 울어 댔다.
익숙하게 시스템을 불러온 시안은 발신자의 이름을 확인한다. 발신인이 라임과 함께 오크를 사냥하고 있을 소향이라는 것을 확인한 시안은 지체 없이 통화를 수락했다.
“무슨 일이야?”
[오빠, 오크, 엄청난 오크가 나타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