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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영웅은 마왕이 되었다
6화
마법을 영창하며 문자 배열을 바꾸려는 찰나, 순식간에 완성되어 버린 암흑탄이 쏘아지며 고블린 검사를 가격했다.
“키익! 누구냐!”
적중과 동시에 작은 폭발이 발생했으나 위력이 부족한 탓에 큰 대미지를 주지는 못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분노한 고블린 검사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시안을 발견했다.
“네놈이구나! 인간!”
콧바람을 뿜으며 달려드는 고블린 검사와 자신의 손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던 시안이 겨우 문제점을 파악했다.
“특전으로 받은 캐스팅 속도 세 배. 그게 원인이구나.”
원인을 파악하니 작게나마 화가 치밀었다.
두 배도 아니고 세 배의 영창 속도 증가. 어찌 보면 마법사에게 축복이나 다름없는 특전이지만 적어도 개조 마법을 사용하는 시안에게는 아니다.
그가 사용하는 개조 마법은 어디까지나 영창 과정. 즉 캐스팅의 순간에 마도 문자를 재배열하는 것으로 발동한다. 그런데 영창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은 그만큼 문자를 재배열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과 동일하다.
“특전은 무슨, 완전 저격 너프잖아! 보상이라며 포장해 놓고 똥을 담아서 선물해 줬어. 일부로 그런 거라면 크로노스 그놈들은 타인의 괴로움을 즐기는 성격파탄자들이야.”
머리에 떠오르는 온갖 저주의 말들이 산더미처럼 많았으나 그것을 모두 내뱉기에는 주어진 시간에 여유가 없었다. 어느덧 고블린 검사가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다.
시안은 흥분으로 들끓던 마음을 억지로 가라앉혔다. 들어주는 이도 없는데 불평불만을 늘어놔봤자 바뀌는 것은 없다.
“후우… 괜찮아. 고작 시간이 세 배 정도 촉박해진 것뿐이잖아. 그 정도로 내가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미르의 시안을 너무 얕본 거야.”
치솟는 분노를 오기로 바꾼 시안이 재차 마법을 발동했다.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마도 문자가 나타나는 것과 동시에 재배열을 시도했다.
“암흑탄. 개조 마… 이건 또 뭐야!”
재배열되는 문자를 확인한 시안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배열되는 문자가 난생 처음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알고 있는 마도 문자가 아니었다.
예상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사건으로 인해 시안이 어찌하면 좋을지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했다. 그사이에 완성된 암흑탄. 그것도 난생 처음 보는 문자들이 중구난방으로 재배열되어 완성된 암흑탄은 그의 손 위에서 급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아, 이거 왠지 위험…….”
[퍼엉!]
결국 한계까지 부풀어 오른 암흑탄이 그의 손 위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본능적으로 마력 방패를 만들어 몸을 보호하기는 했지만 강력한 충격으로 인해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렇게 보인 빈틈은 고블린 검사에게 있어 천재일우의 기회나 다름이 없었다.
“으아아악!”
고블린 검사가 내지른 검이 시안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PPO특전으로 인해 높은 어빌리티를 갖게 된 시안이지만 레벨이 깡패라는 말처럼 눈이 확 뜨이는 공격력에 시안의 방어는 종잇장처럼 찢어발겨졌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끝장을 보겠다는 듯 고블린 검사가 그의 어깨를 강하게 물었다. 인간의 것보다 맹수의 것을 닮은 고블린 검사의 이빨이 어깨와 가슴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위험해. 이건 진짜 위험해. 이러다 죽는다!’
경종이 울렸다. 급속도로 빠져나가는 HP를 보며 시안은 절박함에 시달려야 했다. 사망이라는 두 글자가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것만 같다.
일반적인 접속 제한 24시간도 무서운 페널티지만 시안은 마왕 후보다. 그리고 그가 마왕 후보로써 사용할 수 있는 목숨의 개수는 딱 세 개뿐이다.
“으아아아! 고블린 따위에게 죽을까 보냐!”
귀중한 목숨을 이토록 허무하게 날려버릴 수 없다 판단한 시안이 지근거리에서 암흑탄을 쏘아냈다. 비록 개조 마법은 사용할 수 없지만 세 배라는 압도적인 영창 속도를 이용해 MP를 쥐어짜내며 마법을 연사했다.
고블린 검사의 생명력이 빠르게 깎여 나갔지만, 이미 시안의 생명력은 한계에 봉착해 있었다.
결국 시안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사망하셨습니다. 남은 목숨 : 2개.>
<마왕 후보 시안은 네임드 몬스터 고블린 검사에게 복수의 마크를 새겼습니다. 복수에 성공할 경우 ‘죽음을 딛고 일어선 자’스킬을 획득하게 됩니다.>
* * *
“야, 엄마가 오늘도 늦는다고 먼저 밥 먹으래. 피자 시켰으니까 8000원 내놔. 정확히 반이야. 내가 900원 더 내는 거니까 감사하라고.”
소율이 자주 출몰하는 서식지로 들어가기 위해 문고리를 잡아 돌리며 선율은 소리쳤다. 보나마나 새로 시작한 게임에 열중하고 있느라 들리지 않을 테지만 이른바 습관이다.
그런데 그녀의 예상과 달리 소율은 게임을 하고 있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 등을 보이고 있는 그는 노트를 펼쳐놓고 무언가를 열심히 필기하고 있었다.
“공부? 수능 전날에도 게임을 하던 놈이 이제 와서 공부를 할 리가 없는데… 저 노력으로 공부를 했으면 한국대에 수석으로 붙었겠다.”
수상쩍음을 감지한 그녀가 책상으로 다가가 그가 적는 것이 무엇인지 훔쳐보았다.
“이게 뭐야?”
노트에 적힌 문자를 본 그녀가 흠칫 몸을 떨었다. 여러 나라의 문자에 관심이 많은 그녀이지만 난생 처음 보는 문자가 노트 위를 어지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랍어보다 더 난해하고 기괴한 문자를 소율은 계속해서 비어 있는 공간에 기입해 나가고 있었다.
“아, 뭐야. 너 언제 온 거야? 말했지만 노크하고 다니라고 했잖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너 뭐 하고 있는 거야. 도대체 그 문자는 뭐고. 이상한 종교라도 시작한 거야? 만약 그런 거라면 정신병원에 처넣을 거야.”
“…아, 이거? 그렇게 위험한 건 아니야. PAO에서 마법을 사용하는데 필요한 문자야. 정확하게는 마법을 개조하기 위해 필요한 문자이지만… 홈페이지를 찾아봤는데 PPO시절 사용하던 문자는 고대 문자로 취급되면서 멸종했고, 그 자리에 새로운 형식의 마도 문자가 만들어졌다나 봐. 게다가 또 문자의 수는 몇 배나 많아져서 수천 가지나 된다고. 나는 이걸 다 외워야 해. 이 문자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장소에 배치했을 때 어떤 효능을 보이는지…….”
“네 반응을 봐서는 충분히 위험해 보이는데.”
끊임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소율은 무언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음침하고 위험해 보였다.
종잇장처럼 구겨진 얼굴로 뒷걸음질 치던 선율이 진심을 담아 몇 마디 매도의 말을 내뱉는다.
“게임 시작 하루 차 맞지? 겉모습만 봐서는 1주일 정도 로그아웃도 안 하고 게임에 매진한 폐인 같아.”
“그렇게 칭찬해도 아무 것도 안 나와.”
그러나 불행하게도 20년에 달하는 세월을 함께하며 그녀의 독설을 들어온 소율은 어느 정도의 내성을 가지고 있었다. 뻔뻔하게 대답하는 그를 보며 선율은 포기를 선언했다.
“가뜩이나 못생긴 얼굴, 더 못생겨서 보고 있기도 힘드네. 더 보고 있으면 속이 뒤집어질 것 같으니까 퇴장하겠어. 빨리 8000원 줘.”
“그게 자기 얼굴에도 침 뱉는 행위라는 것은 알고 있지? 쌍둥이.”
“흥.”
비웃음을 남긴 선율은 원하던 지폐 몇 장을 손에 쥐고 방에서 퇴장했다.
남겨진 소율은 자신이 만들던 노트를 보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은 기분이 침착해졌기 때문에 스스로를 되돌아볼 여유가 생긴 까닭이다. 고작 이 정도로 이성을 잃은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소율은 단순히 즐기기 위해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7천만 플레이어와 10억에 달하는 팬들이 지정한 공공의 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게 PAO의 세계로 기어들어간 것이다.
특전으로 인해 마왕 후보라는 색다른 직업을 얻은 것까지는 좋았다. 이 전설급 직업이 복수를 위한 날개를 달아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미르 최강의 무기라 할 수 있는 개조 마법은 봉인당했고, 그 여파로 고작 고블린 따위에게 살해당해 세 개밖에 없는 목숨 중 하나를 잃었다.
심지어 다음 주에는 라이벌인 미르의 이향과 마왕의 자리를 놓고 사투를 벌여야 한다. 그녀 역시 당장 개조 마법을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그녀는 실질적으로 개조 마법을 만들어낸 창시자. 문자와 배열의 패턴이 조금 바뀐 역경쯤이야 금방 헤쳐 나갈 것이다.
이러한 악조건이 겹쳐 있는데 폭주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잃어버린 목숨은 어쩔 수 없지. 앞으로 안 죽으면 되는 일이야. 하지만 개조 마법은… 역시 포기 못해. 미르의 근간이 되는 기술이니까.”
소율의 시선이 책상 위에 있는 노트로 향했다.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방대한 분량의 문자가 어지럽게 춤을 추고 있다. 마치 네가 할 수 있겠냐고 도발하는 것만 같다.
“…미르를 무시하지 말라고. 진짜 악랄한 마왕이 되어서 게임 서비스를 1년 만에 끝내주마. 그때 가서 울고불고 용서를 구해도 협상은 없다.”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소율은 포기하지 않고 의지를 불태웠다.
주문한 피자를 가지고 온 배달원이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까지도 소율의 열정적인 공부는 계속되었다.
* * *
다음 날. 24시간의 접속 제한이 풀리고 PAO에 접속한 시안은 전날 하지 못한 것을 끝마치기 위해 곧장 고블린 거점으로 향했다.
개조 마법에 대한 연구는 다소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라이벌인 이향과의 전투는 고작 6일이 남아 있을 뿐이다. 어처구니없는 죽음으로 하루를 꼬박 날렸으니 조금이라도 세력을 키우기 위해 치열하게 행동해야 한다.
목적지에 도착한 시안은 50개의 영혼 조각을 사용해 고블린 석상을 세웠다.
모아놓은 대부분의 영혼 조각을 사용하게 되었지만 크게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소모하기 위해 벌어들인 재화를 끌어안고 있기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한 자루 검을 지팡이처럼 짚고 있는 고블린의 석상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효과를 부여해 주었다.
<칼을 가진 고블린 석상 Lv1.>
고블린을 위해 만들어진 석상. 수많은 고블린들이 이 석상을 보고 기뻐하며 자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어린 고블린들이 전사로써의 꿈을 키우게 된다.
― 훈련소에서 희귀 등급의 특별한 고블린이 탄생할 확률 증가한다.
― 휘하 고블린의 근력과 민첩이 3씩 상승한다.
― 휘하 고블린들의 체력 회복력이 20% 상승한다.
비싼 값을 치르기는 했지만 효과는 만족스럽다. 초반에 어빌리티 여섯 개는 굉장히 커다란 가치로 작용해 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제를 소지하지 못하는 몬스터의 특성상 체력 회복력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다. 만족할 결과에 시안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채 10분을 유지하지 못했다. 사냥을 보냈던 고블린 중 복귀한 녀석이 고작 세 마리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레벨이 6까지 올라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어 있는 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나머지 둘은 어디에 버려두고 온 거야? 부디 죽었다는 말만은 하지 말아줘.”
“슬라임 무리와의 전투 도중 죽었다. 용맹하게 죽었다.”
“하지 말아달라니까. 너무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아깝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플레이어와 달리 몬스터는 죽으면 부활하지 않는다. 싼 값으로 인원을 보충할 수 있다지만 한 푼이 아까운 초반부에는 커다란 출혈이다.
무엇보다 보충되는 고블린은 5레벨에 불과하다. 머릿수는 유지한다 할지라도 부대의 전투력은 감소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고블린의 죽음을 예방하며 성장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며, 시안은 비어버린 인원을 보충하기 위해 두 마리의 고블린을 추가로 소환했다.
“음?”
시안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훈련소에서 어슬렁거리며 걸어 나오는 두 마리의 고블린 중 하나가 일반적인 고블린과 달리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보를 확인한 결과 레벨 8의 희귀 등급 몬스터인 고블린 검사임을 알 수 있었다. 석상을 세운 후 조속히 효과를 본 것이다.
불쾌함으로 인해 시종일관 구겨져 있던 시안의 표정이 다리미질이라도 한 것처럼 대번에 펴졌다. 그는 꽃도 부러워할 미소를 지으며 고블린 검사의 어깨를 붙잡았다.
“지금부터 네가 이 무리의 분대장이다. 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고블린과 슬라임을 싹 쓸어버리도록!”
시안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기존의 분대장이던 고블린을 해임하고 고블린 검사에게 그 자리를 주었다.
“키익! 내가 분대장이다! 분대장한테 맡겨라!”
분대장이라는 꼬리표에 폴짝폴짝 뛰며 기뻐하는 고블린 검사와 달리 해임된 고블린은 풀이 죽어 고개를 숙였다. 정리 해고된 중년인을 보는 것 같아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약한 소리 하지 마! 이 세상은 실력 중시 사회다. 지휘권을 가지고 싶다면 노력해라. 노력해서 강해져라! 네가 지금보다 더 강해진다면 다음에 만들 분대의 분대장 자리를 약속하지.”
“키익,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하지만 노력한다. 더 강해진다.”
한 번 권력의 맛을 본 고블린은 의지를 불태웠다.
막 소환되었기 때문에 팔팔한 고블린 검사가 다른 네 마리의 고블린들을 데리고 숲으로 향했다. 이제 막 복귀한 고블린들이 쉬고 싶다며 애원했으나 시안은 애써 외면했다.
“아무리 고블린이라도 굴리다 보면 언젠가 써먹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겠지.”
악덕 마왕 후보가 그곳에 있었다. 고블린들의 미래에 가혹하리만치 어두운 먹구름이 모여드는 순간이었다.
6화
마법을 영창하며 문자 배열을 바꾸려는 찰나, 순식간에 완성되어 버린 암흑탄이 쏘아지며 고블린 검사를 가격했다.
“키익! 누구냐!”
적중과 동시에 작은 폭발이 발생했으나 위력이 부족한 탓에 큰 대미지를 주지는 못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분노한 고블린 검사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시안을 발견했다.
“네놈이구나! 인간!”
콧바람을 뿜으며 달려드는 고블린 검사와 자신의 손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던 시안이 겨우 문제점을 파악했다.
“특전으로 받은 캐스팅 속도 세 배. 그게 원인이구나.”
원인을 파악하니 작게나마 화가 치밀었다.
두 배도 아니고 세 배의 영창 속도 증가. 어찌 보면 마법사에게 축복이나 다름없는 특전이지만 적어도 개조 마법을 사용하는 시안에게는 아니다.
그가 사용하는 개조 마법은 어디까지나 영창 과정. 즉 캐스팅의 순간에 마도 문자를 재배열하는 것으로 발동한다. 그런데 영창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은 그만큼 문자를 재배열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과 동일하다.
“특전은 무슨, 완전 저격 너프잖아! 보상이라며 포장해 놓고 똥을 담아서 선물해 줬어. 일부로 그런 거라면 크로노스 그놈들은 타인의 괴로움을 즐기는 성격파탄자들이야.”
머리에 떠오르는 온갖 저주의 말들이 산더미처럼 많았으나 그것을 모두 내뱉기에는 주어진 시간에 여유가 없었다. 어느덧 고블린 검사가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다.
시안은 흥분으로 들끓던 마음을 억지로 가라앉혔다. 들어주는 이도 없는데 불평불만을 늘어놔봤자 바뀌는 것은 없다.
“후우… 괜찮아. 고작 시간이 세 배 정도 촉박해진 것뿐이잖아. 그 정도로 내가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미르의 시안을 너무 얕본 거야.”
치솟는 분노를 오기로 바꾼 시안이 재차 마법을 발동했다.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마도 문자가 나타나는 것과 동시에 재배열을 시도했다.
“암흑탄. 개조 마… 이건 또 뭐야!”
재배열되는 문자를 확인한 시안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배열되는 문자가 난생 처음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알고 있는 마도 문자가 아니었다.
예상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사건으로 인해 시안이 어찌하면 좋을지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했다. 그사이에 완성된 암흑탄. 그것도 난생 처음 보는 문자들이 중구난방으로 재배열되어 완성된 암흑탄은 그의 손 위에서 급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아, 이거 왠지 위험…….”
[퍼엉!]
결국 한계까지 부풀어 오른 암흑탄이 그의 손 위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본능적으로 마력 방패를 만들어 몸을 보호하기는 했지만 강력한 충격으로 인해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렇게 보인 빈틈은 고블린 검사에게 있어 천재일우의 기회나 다름이 없었다.
“으아아악!”
고블린 검사가 내지른 검이 시안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PPO특전으로 인해 높은 어빌리티를 갖게 된 시안이지만 레벨이 깡패라는 말처럼 눈이 확 뜨이는 공격력에 시안의 방어는 종잇장처럼 찢어발겨졌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끝장을 보겠다는 듯 고블린 검사가 그의 어깨를 강하게 물었다. 인간의 것보다 맹수의 것을 닮은 고블린 검사의 이빨이 어깨와 가슴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위험해. 이건 진짜 위험해. 이러다 죽는다!’
경종이 울렸다. 급속도로 빠져나가는 HP를 보며 시안은 절박함에 시달려야 했다. 사망이라는 두 글자가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것만 같다.
일반적인 접속 제한 24시간도 무서운 페널티지만 시안은 마왕 후보다. 그리고 그가 마왕 후보로써 사용할 수 있는 목숨의 개수는 딱 세 개뿐이다.
“으아아아! 고블린 따위에게 죽을까 보냐!”
귀중한 목숨을 이토록 허무하게 날려버릴 수 없다 판단한 시안이 지근거리에서 암흑탄을 쏘아냈다. 비록 개조 마법은 사용할 수 없지만 세 배라는 압도적인 영창 속도를 이용해 MP를 쥐어짜내며 마법을 연사했다.
고블린 검사의 생명력이 빠르게 깎여 나갔지만, 이미 시안의 생명력은 한계에 봉착해 있었다.
결국 시안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사망하셨습니다. 남은 목숨 : 2개.>
<마왕 후보 시안은 네임드 몬스터 고블린 검사에게 복수의 마크를 새겼습니다. 복수에 성공할 경우 ‘죽음을 딛고 일어선 자’스킬을 획득하게 됩니다.>
* * *
“야, 엄마가 오늘도 늦는다고 먼저 밥 먹으래. 피자 시켰으니까 8000원 내놔. 정확히 반이야. 내가 900원 더 내는 거니까 감사하라고.”
소율이 자주 출몰하는 서식지로 들어가기 위해 문고리를 잡아 돌리며 선율은 소리쳤다. 보나마나 새로 시작한 게임에 열중하고 있느라 들리지 않을 테지만 이른바 습관이다.
그런데 그녀의 예상과 달리 소율은 게임을 하고 있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 등을 보이고 있는 그는 노트를 펼쳐놓고 무언가를 열심히 필기하고 있었다.
“공부? 수능 전날에도 게임을 하던 놈이 이제 와서 공부를 할 리가 없는데… 저 노력으로 공부를 했으면 한국대에 수석으로 붙었겠다.”
수상쩍음을 감지한 그녀가 책상으로 다가가 그가 적는 것이 무엇인지 훔쳐보았다.
“이게 뭐야?”
노트에 적힌 문자를 본 그녀가 흠칫 몸을 떨었다. 여러 나라의 문자에 관심이 많은 그녀이지만 난생 처음 보는 문자가 노트 위를 어지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랍어보다 더 난해하고 기괴한 문자를 소율은 계속해서 비어 있는 공간에 기입해 나가고 있었다.
“아, 뭐야. 너 언제 온 거야? 말했지만 노크하고 다니라고 했잖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너 뭐 하고 있는 거야. 도대체 그 문자는 뭐고. 이상한 종교라도 시작한 거야? 만약 그런 거라면 정신병원에 처넣을 거야.”
“…아, 이거? 그렇게 위험한 건 아니야. PAO에서 마법을 사용하는데 필요한 문자야. 정확하게는 마법을 개조하기 위해 필요한 문자이지만… 홈페이지를 찾아봤는데 PPO시절 사용하던 문자는 고대 문자로 취급되면서 멸종했고, 그 자리에 새로운 형식의 마도 문자가 만들어졌다나 봐. 게다가 또 문자의 수는 몇 배나 많아져서 수천 가지나 된다고. 나는 이걸 다 외워야 해. 이 문자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장소에 배치했을 때 어떤 효능을 보이는지…….”
“네 반응을 봐서는 충분히 위험해 보이는데.”
끊임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소율은 무언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음침하고 위험해 보였다.
종잇장처럼 구겨진 얼굴로 뒷걸음질 치던 선율이 진심을 담아 몇 마디 매도의 말을 내뱉는다.
“게임 시작 하루 차 맞지? 겉모습만 봐서는 1주일 정도 로그아웃도 안 하고 게임에 매진한 폐인 같아.”
“그렇게 칭찬해도 아무 것도 안 나와.”
그러나 불행하게도 20년에 달하는 세월을 함께하며 그녀의 독설을 들어온 소율은 어느 정도의 내성을 가지고 있었다. 뻔뻔하게 대답하는 그를 보며 선율은 포기를 선언했다.
“가뜩이나 못생긴 얼굴, 더 못생겨서 보고 있기도 힘드네. 더 보고 있으면 속이 뒤집어질 것 같으니까 퇴장하겠어. 빨리 8000원 줘.”
“그게 자기 얼굴에도 침 뱉는 행위라는 것은 알고 있지? 쌍둥이.”
“흥.”
비웃음을 남긴 선율은 원하던 지폐 몇 장을 손에 쥐고 방에서 퇴장했다.
남겨진 소율은 자신이 만들던 노트를 보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은 기분이 침착해졌기 때문에 스스로를 되돌아볼 여유가 생긴 까닭이다. 고작 이 정도로 이성을 잃은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소율은 단순히 즐기기 위해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7천만 플레이어와 10억에 달하는 팬들이 지정한 공공의 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게 PAO의 세계로 기어들어간 것이다.
특전으로 인해 마왕 후보라는 색다른 직업을 얻은 것까지는 좋았다. 이 전설급 직업이 복수를 위한 날개를 달아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미르 최강의 무기라 할 수 있는 개조 마법은 봉인당했고, 그 여파로 고작 고블린 따위에게 살해당해 세 개밖에 없는 목숨 중 하나를 잃었다.
심지어 다음 주에는 라이벌인 미르의 이향과 마왕의 자리를 놓고 사투를 벌여야 한다. 그녀 역시 당장 개조 마법을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그녀는 실질적으로 개조 마법을 만들어낸 창시자. 문자와 배열의 패턴이 조금 바뀐 역경쯤이야 금방 헤쳐 나갈 것이다.
이러한 악조건이 겹쳐 있는데 폭주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잃어버린 목숨은 어쩔 수 없지. 앞으로 안 죽으면 되는 일이야. 하지만 개조 마법은… 역시 포기 못해. 미르의 근간이 되는 기술이니까.”
소율의 시선이 책상 위에 있는 노트로 향했다.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방대한 분량의 문자가 어지럽게 춤을 추고 있다. 마치 네가 할 수 있겠냐고 도발하는 것만 같다.
“…미르를 무시하지 말라고. 진짜 악랄한 마왕이 되어서 게임 서비스를 1년 만에 끝내주마. 그때 가서 울고불고 용서를 구해도 협상은 없다.”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소율은 포기하지 않고 의지를 불태웠다.
주문한 피자를 가지고 온 배달원이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까지도 소율의 열정적인 공부는 계속되었다.
* * *
다음 날. 24시간의 접속 제한이 풀리고 PAO에 접속한 시안은 전날 하지 못한 것을 끝마치기 위해 곧장 고블린 거점으로 향했다.
개조 마법에 대한 연구는 다소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라이벌인 이향과의 전투는 고작 6일이 남아 있을 뿐이다. 어처구니없는 죽음으로 하루를 꼬박 날렸으니 조금이라도 세력을 키우기 위해 치열하게 행동해야 한다.
목적지에 도착한 시안은 50개의 영혼 조각을 사용해 고블린 석상을 세웠다.
모아놓은 대부분의 영혼 조각을 사용하게 되었지만 크게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소모하기 위해 벌어들인 재화를 끌어안고 있기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한 자루 검을 지팡이처럼 짚고 있는 고블린의 석상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효과를 부여해 주었다.
<칼을 가진 고블린 석상 Lv1.>
고블린을 위해 만들어진 석상. 수많은 고블린들이 이 석상을 보고 기뻐하며 자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어린 고블린들이 전사로써의 꿈을 키우게 된다.
― 훈련소에서 희귀 등급의 특별한 고블린이 탄생할 확률 증가한다.
― 휘하 고블린의 근력과 민첩이 3씩 상승한다.
― 휘하 고블린들의 체력 회복력이 20% 상승한다.
비싼 값을 치르기는 했지만 효과는 만족스럽다. 초반에 어빌리티 여섯 개는 굉장히 커다란 가치로 작용해 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제를 소지하지 못하는 몬스터의 특성상 체력 회복력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다. 만족할 결과에 시안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채 10분을 유지하지 못했다. 사냥을 보냈던 고블린 중 복귀한 녀석이 고작 세 마리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레벨이 6까지 올라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어 있는 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나머지 둘은 어디에 버려두고 온 거야? 부디 죽었다는 말만은 하지 말아줘.”
“슬라임 무리와의 전투 도중 죽었다. 용맹하게 죽었다.”
“하지 말아달라니까. 너무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아깝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플레이어와 달리 몬스터는 죽으면 부활하지 않는다. 싼 값으로 인원을 보충할 수 있다지만 한 푼이 아까운 초반부에는 커다란 출혈이다.
무엇보다 보충되는 고블린은 5레벨에 불과하다. 머릿수는 유지한다 할지라도 부대의 전투력은 감소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고블린의 죽음을 예방하며 성장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며, 시안은 비어버린 인원을 보충하기 위해 두 마리의 고블린을 추가로 소환했다.
“음?”
시안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훈련소에서 어슬렁거리며 걸어 나오는 두 마리의 고블린 중 하나가 일반적인 고블린과 달리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보를 확인한 결과 레벨 8의 희귀 등급 몬스터인 고블린 검사임을 알 수 있었다. 석상을 세운 후 조속히 효과를 본 것이다.
불쾌함으로 인해 시종일관 구겨져 있던 시안의 표정이 다리미질이라도 한 것처럼 대번에 펴졌다. 그는 꽃도 부러워할 미소를 지으며 고블린 검사의 어깨를 붙잡았다.
“지금부터 네가 이 무리의 분대장이다. 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고블린과 슬라임을 싹 쓸어버리도록!”
시안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기존의 분대장이던 고블린을 해임하고 고블린 검사에게 그 자리를 주었다.
“키익! 내가 분대장이다! 분대장한테 맡겨라!”
분대장이라는 꼬리표에 폴짝폴짝 뛰며 기뻐하는 고블린 검사와 달리 해임된 고블린은 풀이 죽어 고개를 숙였다. 정리 해고된 중년인을 보는 것 같아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약한 소리 하지 마! 이 세상은 실력 중시 사회다. 지휘권을 가지고 싶다면 노력해라. 노력해서 강해져라! 네가 지금보다 더 강해진다면 다음에 만들 분대의 분대장 자리를 약속하지.”
“키익,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하지만 노력한다. 더 강해진다.”
한 번 권력의 맛을 본 고블린은 의지를 불태웠다.
막 소환되었기 때문에 팔팔한 고블린 검사가 다른 네 마리의 고블린들을 데리고 숲으로 향했다. 이제 막 복귀한 고블린들이 쉬고 싶다며 애원했으나 시안은 애써 외면했다.
“아무리 고블린이라도 굴리다 보면 언젠가 써먹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겠지.”
악덕 마왕 후보가 그곳에 있었다. 고블린들의 미래에 가혹하리만치 어두운 먹구름이 모여드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