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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영웅은 마왕이 되었다
5화
“흥!”
자신의 미간을 노리고 쏘아지는 돌멩이를 보며 코웃음을 친 시안은 살짝 고개를 비틀어 피해냈다. 고속으로 날아온 돌멩이가 그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간다.
시안은 정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조금이라도 마법을 정확한 장소로 날려 보내기 위해 손바닥이 아닌 손가락으로 목표를 가리키는 것은 6년 전부터 계속된 습관이다.
“암흑탄.”
마력으로 만들어진 새까만 구체가 날아가는 장소에는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는 고블린이 있었다.
고블린은 몸을 던져 공격을 회피하려 했으나, 좌측 가슴에 흑색의 문장이 새겨진 고블린이 달려들어 옆구리에 녹슨 단검을 틀어박았다.
“키아악! 아프다!”
비명을 지르기 위해 크게 벌린 입안으로 암흑탄이 틀어박혔다. 겉으로 드러난 곳보다 약한 입안의 피부에 가해진 공격이므로 당연히 치명타가 작렬하며 고블린으로부터 대량의 생명력을 갈취했다.
쓰러진 고블린이 자세를 취하기도 전에 여러 개의 암흑탄이 신체 곳곳을 때렸다. 특전으로 인해 무려 세 배의 캐스팅 속도를 가진 시안은 MP가 허락하는 한 무서운 수준으로 마법을 연사할 수 있다.
그렇게 쓰러진 고블린은 영혼 조각 세 개와 녹슨 단검을 떨어뜨린 채 사라졌다. 부하 고블린은 전리품을 회수해서 시안의 앞에 늘어놓았다.
“이로써 영혼 조각은 60개. 모으느라 힘들었다.”
시안은 수 시간을 투자해 거의 서른 마리의 고블린을 사냥했다. 운이 없었는지 소위 말하는 득템은 없었으며, 대부분의 전리품이 이빨이나 가죽, 녹슨 단검 따위였다.
시안은 5레벨이 되었다. 본래라면 특전으로 인한 경험치 버프로 인해 더 높은 레벨을 달성해야만 했다. 하지만 함께 사냥을 한 고블린이 절반을 가져가는 통에 성장이 더뎌지고 말았다.
야금야금 경험치를 뺏어간 고블린의 레벨은 아슬아슬하게 6을 넘어섰다. 본인보다 레벨이 낮은 몬스터를 사냥하면 습득하는 경험치의 양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시스템 때문에 성장 속도는 상당히 더딘 편이었다.
“언제까지고 이 짐 덩어리를 데리고 다닐 수는 없으니 적당히 졸업시켜야겠군.”
머리도 좋지 않고 전투 능력도 그리 높지 않은데다가 이렇다 할 특징도 없는 일반 등급의 몬스터 고블린은 시안이 바라는 동료로써의 기준점에서 한참 미달이었다.
그렇다고 알아서 성장하라고 방치했다가는 강력한 몬스터를 만나 돌연사를 당할 수도 있다. 때문에 절반의 경험치를 강탈당하면서도 데리고 다닌 것이다.
하지만 지갑이 부유해진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시안은 영토의 서쪽에 고블린 훈련소를 세웠다. 바닥에서 빛이 번뜩인 후 고블린 훈련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같잖은 마왕성이 등장할 때와 동일한 효과를 동반하며 나타난 훈련소는 열 사람이 족히 누울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천막이었다.
“결국 이것도 천막이냐고…….”
훈련소의 외형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시안은 마음껏 투덜거렸다.
[고블린 훈련소 Lv1.]
마왕 후보 시안이 만든 고블린 훈련소다. 영혼 조각을 소모해 마계에 있는 고블린을 소환할 수 있다. 적은 확률로 높은 등급의 고블린이 소환된다.
가치 : 2
소모 : 영혼 조각 3.
효과 : 고블린의 모든 어빌리티가 1씩 상승.
보통 고블린을 사냥하면 적게는 하나, 많게는 세 개의 영혼 조각을 얻을 수 있다. 즉 단순히 병력을 늘리기 위함이라면 다소 수고를 들이더라도 소환을 하는 것보다 직접 뛰며 사로잡는 편이 이득이다.
하지만 고블린을 사냥하면 경험치와 전리품, 스킬 숙련도를 얻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고블린 석상을 건설하면 적은 확률로나마 네임드 몬스터까지 얻을 수 있으니, 아무래도 소환을 하는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었다.
“종속 계약의 경우 백날 숙련도를 올려봤자 요구되는 체력의 잔량에 조금 보정을 받는 것뿐이니, 당장 급하게 숙련도를 높일 필요는 없겠지.”
판단을 마친 시안은 남은 영혼 조각을 사용해 고블린 병사를 소환하려 했다. 하지만 <저택이 부족해 고블린을 소환할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나타났다.
자세히 살펴본 결과 고블린 저택 하나당 다섯 마리의 고블린을 관리할 수 있게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시안은 다섯 개의 영혼 조각을 사용해 고블린 저택을 소환했다. 아니나 다를까, 저택 역시 천막이었다.
“개발자 중에서 지독하게 천막을 좋아하는 놈이 있는 게 분명해.”
최대 인구가 늘어났으므로 조속히 고블린을 소환했다. 최대치를 꽉꽉 채워 네 마리를 소환했으나 특수 건물인 석상이 건설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소환된 모두가 일반 고블린이다.
하나같이 맨손이었으므로 전리품으로 얻은 녹슨 단검을 들려주었다. 빈곤하기 짝이 없는 무장이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일렬로 나열해 있는 다섯 마리의 고블린을 둘러본 시안은 지금까지 묵혀두고 있던 부대 구성 스킬을 사용했다.
<부대 구성 ― 하급 1단계.>
마왕과 그 후보의 전용 마법으로 몬스터의 영혼을 묶어 견고한 결속력을 가진 부대를 만들어낸다. 부대로 편성된 몬스터는 한 몸처럼 움직이게 되며 어빌리티 보정을 받는다. 부대의 장으로 선별된 몬스터는 ‘의념 통화’를 통해 마왕의 지시를 받을 수 있다.
숙련도가 높아지면 더 높은 수준의 부대를 편성할 수 있게 된다.
― 5인으로 구성된 분대를 최대 세 개까지 편성 가능. 분대에 소속된 모든 몬스터의 어빌리티 5 상승. 획득 경험치 20% 상승.
― 현재 편성된 분대 : 없음.
일반적으로 숙련도를 높이지 않은 초급 사제의 축복이 모든 어빌리티를 5 상승시켜 준다. 효과는 동일하지만 마력소모도 없고 지속시간도 없으니 효율성은 압도적으로 높다.
다섯 마리의 고블린을 ‘고블린 1분대’로 편성한 시안은 그동안 데리고 다니며 키운 덕에 가장 레벨이 높아진 녀석을 분대장으로 삼았다.
“지금부터 너희는 한 팀이다. 함께 돌아다니면서 이 근방의 몬스터를 사냥하는 거야.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할 수 있겠지?”
“키익! 알겠다. 우리는 한 팀이다!”
“좋아. 그러면 출발해라. 사이좋게 지내고.”
시안은 아이에게 첫 심부름을 보내는 부모의 심정으로 고블린들을 배웅했다. 맡겨만 달라는 듯 가슴을 두드리는 뒷모습이 그토록 불안할 수가 없었다.
“니들 목숨 값이 영혼 조각 세 개니까 절대 죽지 마라.”
고블린들이 들었으면 눈물을 쏟았을 무정함이었다.
혼자 남겨진 시안은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6시 10분. 저녁을 먹을 시간이지만 무려 1년 만에 하는 가상현실 게임은 공복조차 잊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하루 정도는 저녁밥 안 먹어도 안 죽어. 무엇보다 나는 지금 마음의 양식을 쌓고 있으니까!”
꼬르륵!
“…배고프다.”
현실의 육신이 느끼는 공복은 참을 수 있다지만 게임 내 아바타가 느끼는 공복은 참을 수 없고, 참아서도 안 된다.
공복을 무시하면 서서히 신체적 능력이 떨어지며 체력의 소모도 빨라진다. 그러다가 일정 수치 이하까지 공복이 감소하면 빈사 상태에 빠지고 더 심해지면 아사까지 겪게 된다.
굶주린 배를 움켜쥔 시안은 식량을 구할 필요를 느꼈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라면 상점에서 식량을 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안은 일반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거의 테러리스트로 취급되는 PVP팀 미르의 일원이며 동시에 마왕 후보다. 그들과 접하는 것은 자살 지망이나 진배없는 행위이므로 다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건축 커맨드에 교역소가 있었지.”
짧은 고민을 마친 시안은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민망한 마왕성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건축 커맨드를 이용해 옆에다가 교역소를 만들었다.
교역소는 천막 일통의 건축물 사이에서 유일한 석재 건물이었다. 하지만 창문이 하나 있을 뿐, 어디에도 출입구는 보이지 않는다.
“이건 어떻게 사용하는 거야? 하다못해 사용 설명서라도 동봉해 둬야 하는 거 아니야? 엄청나게 불친절하네.”
[구매? 판매?]
“우와악!”
창문 너머의 어둠으로부터 자그마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들어온 기습에 놀란 시안이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다. 작은 웃음소리가 간드러지게 들려온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 그래서, 구매할 거야? 그렇다면 목록을 줄게. 아니면 판매? 그렇다면 상자를 줄게.]
모습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는다. 그 대신 창문을 통해 불쑥 튀어나온 희고 작은 손이 물품 목록이라 추정되는 얇은 책자 한 권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시안은 움찔거리면서도 책자를 받아들었다.
거래 방식이 워낙 특이해서 혹시 내용물도 특별할까 싶었지만 단순한 기대에서 끝나고 말았다. 물품 목록은 식량이나 회복 물약 등 간단하게 구할 수 있으면서도 모험에 반드시 필요한 것뿐이었다.
혹시 동전 등의 화폐가 필요할까 싶었지만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영혼 조각이 마족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정식 화폐인 것인지 물품의 대금도 전부 영혼 조각으로 치르게끔 되어 있었다.
시안은 몇 가지 식량의 구매를 요청했다.
[알겠어. 잠깐만 기다려 봐.]
창문 너머로 손이 사라진 후, 10여 초가 흘렀다. 그 후 창문에서 자그마한 박스가 튀어나왔다.
구매한 물품의 목록에 비해 한없이 작은 상자다. 하지만 거꾸로 뒤집은 상자에서 물리적 법칙을 무시한 채 물품들이 계속해서 쏟아졌다.
“인벤토리와 비슷한 효과를 가진 건가?”
홀로 추리하고 홀로 납득한 시안은 구매한 물품들을 전부 인벤토리에 구겨 넣었다. 그리고 고블린을 사냥하며 얻은 쓸모없는 전리품을 죄다 꺼냈다.
“이것들을 팔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해?”
[그 상자에 넣어줘∼]
애교 많은 목소리를 따라 상자에 고블린의 소재를 하나씩 넣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소재가 상자의 입구에 닿자 인벤토리에 들어가는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모든 소재를 상자에 넣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손이 튀어 나왔다. 자그마한 손바닥 위에 상자를 올려놓자 10여 초의 시간이 흐른 후 일정량의 영혼 조각을 지불받을 수 있었다.
[원하면 인간들의 화폐로도 계산해 줄 수 있어. 하지만 10%의 수수료를 받아 갈 거야. 혹시 더 거래할 것이 있어? 아니라면 조금 쉬고 싶네.]
“거래는 충분해. 그런데 너는 누구야? 마족인가?”
[응, 마족이야. 이름은 슈리. 마계 상인 슈리야.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내 이름을 불러줘, 마왕 후보님.]
스스로를 슈리라 밝힌 목소리는 작별 인사를 끝으로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상당히 재미있고 인상적인 거래 방식이라 생각하며 몸을 돌린 시안은 서쪽 숲으로 향했다. 그의 입에는 굶주림을 달래줄 건량이 물려 있었다.
모험의 준비도 끝마친 그의 걸음에서 당찬 기개가 엿보인다. 시안은 부디 들끓는 흥분을 식혀줄 강한 몬스터와 조우하기를 바라며 더욱 깊은 곳으로 나아갔다.
* * *
사건은 숲을 돌아다니던 시안이 한 마리의 고블린과 조우하며 시작되었다.
“키익! 키익! 산책하기 딱 좋은 날씨군.”
그가 조우한 고블린은 제대로 된 의복을 걸치고 있었고 흉부에는 강철판을 덧댄 갑옷을 입고 있었다. 심지어 장식용 뿔이 달린 투구와 둥근 방패, 예리하게 번뜩이는 검으로 완전무장을 갖추고 있다. 의심할 것도 없이 네임드 몬스터다.
“…네임드 몬스터, 고블린 검사인가.”
커다란 나무기둥 뒤에 몸을 숨긴 시안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고블린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몬스터 중에서는 특별한 가치를 가진 녀석들이 존재한다. 같은 종이라 할지라도 레벨과 종족 값 등의 어빌리티가 높아 상대하기 까다로운 존재들. 그들을 두고 플레이어들은 네임드 몬스터라 칭한다.
지금 시안의 눈앞에 나타난 고블린이 그러하다. 고블린 검사라 불리는 이 몬스터는 일반 고블린보다 세 개가 높은 8레벨의 몬스터다.
“레벨 차이 때문에 일반 공격은 안 통하겠고, 드디어 개조 마법이 등판할 때가 되었군.”
자신보다 한참 강한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만만하게 소매를 걷어붙인 시안이 앞으로 나섰다.
“암흑탄.”
스킬 이름을 외치자 그의 손 위로 흑색으로 빛나는 띠가 회전하며 마법진을 형성한다.
그 띠를 이루고 있는 것이 마도 문자라 불리는 것이다. 이 문자가 일정한 규칙을 갖춘 상태로 모였을 때 마법이 발현된다. 이것이 크로노스가 설정한 PAO에서 마법 따위가 발현되는 원리다.
그런데 미르의 쌍룡은 이 설정을 이용해 개조 마법이라는 것을 탄생시켰다.
무려 수천 가지나 되는 마도 문자를 암기하는 데 성공한 미르는 문자의 일부를 빼내고 다른 문자를 끼워 넣거나 문자의 배열을 바꾸는 것으로 마법의 효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부분의 경우 문자의 배열이 조금만 달라져도 마법이 증발해 버리지만 이따금 잘 맞물리면 기발한 효과를 발휘하기도 했다.
암흑탄 하나만 놓고 봐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본디 암흑탄은 직선으로 나아가며 물체와 맞닿을 경우 폭발하는 마법이지만 이것을 개조할 경우 커브를 그리며 날아가기도 하고, 폭발의 공격력이 줄어드는 대신 범위를 넓힐 수도 있으며, 제자리에 수 초간 정지했다가 쏘아지는 것도 가능하다.
피나는 노력의 결과 미르는 수많은 종류의 개조 마법을 개발해 냈다. 그렇게 일반 마법사들보다 몇 배는 압도적이고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효율적인 마법을 구사할 수 있게 된 미르는 승률 8할을 자랑하며 명실상부 전설로써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무려 7천만 플레이어 중 정점에 설 수 있게 해준 기술이 자신을 배신할 리가 없다. 그렇게 믿고 있었기에 시안은 자신보다 한참은 레벨이 높은 네임드 몬스터 고블린 검사에게 단신으로 시비를 걸 수 있던 것이다.
하지만 예상치도 못한 문제가 나타났다.
“…어라?”
5화
“흥!”
자신의 미간을 노리고 쏘아지는 돌멩이를 보며 코웃음을 친 시안은 살짝 고개를 비틀어 피해냈다. 고속으로 날아온 돌멩이가 그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간다.
시안은 정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조금이라도 마법을 정확한 장소로 날려 보내기 위해 손바닥이 아닌 손가락으로 목표를 가리키는 것은 6년 전부터 계속된 습관이다.
“암흑탄.”
마력으로 만들어진 새까만 구체가 날아가는 장소에는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는 고블린이 있었다.
고블린은 몸을 던져 공격을 회피하려 했으나, 좌측 가슴에 흑색의 문장이 새겨진 고블린이 달려들어 옆구리에 녹슨 단검을 틀어박았다.
“키아악! 아프다!”
비명을 지르기 위해 크게 벌린 입안으로 암흑탄이 틀어박혔다. 겉으로 드러난 곳보다 약한 입안의 피부에 가해진 공격이므로 당연히 치명타가 작렬하며 고블린으로부터 대량의 생명력을 갈취했다.
쓰러진 고블린이 자세를 취하기도 전에 여러 개의 암흑탄이 신체 곳곳을 때렸다. 특전으로 인해 무려 세 배의 캐스팅 속도를 가진 시안은 MP가 허락하는 한 무서운 수준으로 마법을 연사할 수 있다.
그렇게 쓰러진 고블린은 영혼 조각 세 개와 녹슨 단검을 떨어뜨린 채 사라졌다. 부하 고블린은 전리품을 회수해서 시안의 앞에 늘어놓았다.
“이로써 영혼 조각은 60개. 모으느라 힘들었다.”
시안은 수 시간을 투자해 거의 서른 마리의 고블린을 사냥했다. 운이 없었는지 소위 말하는 득템은 없었으며, 대부분의 전리품이 이빨이나 가죽, 녹슨 단검 따위였다.
시안은 5레벨이 되었다. 본래라면 특전으로 인한 경험치 버프로 인해 더 높은 레벨을 달성해야만 했다. 하지만 함께 사냥을 한 고블린이 절반을 가져가는 통에 성장이 더뎌지고 말았다.
야금야금 경험치를 뺏어간 고블린의 레벨은 아슬아슬하게 6을 넘어섰다. 본인보다 레벨이 낮은 몬스터를 사냥하면 습득하는 경험치의 양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시스템 때문에 성장 속도는 상당히 더딘 편이었다.
“언제까지고 이 짐 덩어리를 데리고 다닐 수는 없으니 적당히 졸업시켜야겠군.”
머리도 좋지 않고 전투 능력도 그리 높지 않은데다가 이렇다 할 특징도 없는 일반 등급의 몬스터 고블린은 시안이 바라는 동료로써의 기준점에서 한참 미달이었다.
그렇다고 알아서 성장하라고 방치했다가는 강력한 몬스터를 만나 돌연사를 당할 수도 있다. 때문에 절반의 경험치를 강탈당하면서도 데리고 다닌 것이다.
하지만 지갑이 부유해진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시안은 영토의 서쪽에 고블린 훈련소를 세웠다. 바닥에서 빛이 번뜩인 후 고블린 훈련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같잖은 마왕성이 등장할 때와 동일한 효과를 동반하며 나타난 훈련소는 열 사람이 족히 누울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천막이었다.
“결국 이것도 천막이냐고…….”
훈련소의 외형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시안은 마음껏 투덜거렸다.
[고블린 훈련소 Lv1.]
마왕 후보 시안이 만든 고블린 훈련소다. 영혼 조각을 소모해 마계에 있는 고블린을 소환할 수 있다. 적은 확률로 높은 등급의 고블린이 소환된다.
가치 : 2
소모 : 영혼 조각 3.
효과 : 고블린의 모든 어빌리티가 1씩 상승.
보통 고블린을 사냥하면 적게는 하나, 많게는 세 개의 영혼 조각을 얻을 수 있다. 즉 단순히 병력을 늘리기 위함이라면 다소 수고를 들이더라도 소환을 하는 것보다 직접 뛰며 사로잡는 편이 이득이다.
하지만 고블린을 사냥하면 경험치와 전리품, 스킬 숙련도를 얻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고블린 석상을 건설하면 적은 확률로나마 네임드 몬스터까지 얻을 수 있으니, 아무래도 소환을 하는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었다.
“종속 계약의 경우 백날 숙련도를 올려봤자 요구되는 체력의 잔량에 조금 보정을 받는 것뿐이니, 당장 급하게 숙련도를 높일 필요는 없겠지.”
판단을 마친 시안은 남은 영혼 조각을 사용해 고블린 병사를 소환하려 했다. 하지만 <저택이 부족해 고블린을 소환할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나타났다.
자세히 살펴본 결과 고블린 저택 하나당 다섯 마리의 고블린을 관리할 수 있게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시안은 다섯 개의 영혼 조각을 사용해 고블린 저택을 소환했다. 아니나 다를까, 저택 역시 천막이었다.
“개발자 중에서 지독하게 천막을 좋아하는 놈이 있는 게 분명해.”
최대 인구가 늘어났으므로 조속히 고블린을 소환했다. 최대치를 꽉꽉 채워 네 마리를 소환했으나 특수 건물인 석상이 건설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소환된 모두가 일반 고블린이다.
하나같이 맨손이었으므로 전리품으로 얻은 녹슨 단검을 들려주었다. 빈곤하기 짝이 없는 무장이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일렬로 나열해 있는 다섯 마리의 고블린을 둘러본 시안은 지금까지 묵혀두고 있던 부대 구성 스킬을 사용했다.
<부대 구성 ― 하급 1단계.>
마왕과 그 후보의 전용 마법으로 몬스터의 영혼을 묶어 견고한 결속력을 가진 부대를 만들어낸다. 부대로 편성된 몬스터는 한 몸처럼 움직이게 되며 어빌리티 보정을 받는다. 부대의 장으로 선별된 몬스터는 ‘의념 통화’를 통해 마왕의 지시를 받을 수 있다.
숙련도가 높아지면 더 높은 수준의 부대를 편성할 수 있게 된다.
― 5인으로 구성된 분대를 최대 세 개까지 편성 가능. 분대에 소속된 모든 몬스터의 어빌리티 5 상승. 획득 경험치 20% 상승.
― 현재 편성된 분대 : 없음.
일반적으로 숙련도를 높이지 않은 초급 사제의 축복이 모든 어빌리티를 5 상승시켜 준다. 효과는 동일하지만 마력소모도 없고 지속시간도 없으니 효율성은 압도적으로 높다.
다섯 마리의 고블린을 ‘고블린 1분대’로 편성한 시안은 그동안 데리고 다니며 키운 덕에 가장 레벨이 높아진 녀석을 분대장으로 삼았다.
“지금부터 너희는 한 팀이다. 함께 돌아다니면서 이 근방의 몬스터를 사냥하는 거야.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할 수 있겠지?”
“키익! 알겠다. 우리는 한 팀이다!”
“좋아. 그러면 출발해라. 사이좋게 지내고.”
시안은 아이에게 첫 심부름을 보내는 부모의 심정으로 고블린들을 배웅했다. 맡겨만 달라는 듯 가슴을 두드리는 뒷모습이 그토록 불안할 수가 없었다.
“니들 목숨 값이 영혼 조각 세 개니까 절대 죽지 마라.”
고블린들이 들었으면 눈물을 쏟았을 무정함이었다.
혼자 남겨진 시안은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6시 10분. 저녁을 먹을 시간이지만 무려 1년 만에 하는 가상현실 게임은 공복조차 잊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하루 정도는 저녁밥 안 먹어도 안 죽어. 무엇보다 나는 지금 마음의 양식을 쌓고 있으니까!”
꼬르륵!
“…배고프다.”
현실의 육신이 느끼는 공복은 참을 수 있다지만 게임 내 아바타가 느끼는 공복은 참을 수 없고, 참아서도 안 된다.
공복을 무시하면 서서히 신체적 능력이 떨어지며 체력의 소모도 빨라진다. 그러다가 일정 수치 이하까지 공복이 감소하면 빈사 상태에 빠지고 더 심해지면 아사까지 겪게 된다.
굶주린 배를 움켜쥔 시안은 식량을 구할 필요를 느꼈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라면 상점에서 식량을 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안은 일반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거의 테러리스트로 취급되는 PVP팀 미르의 일원이며 동시에 마왕 후보다. 그들과 접하는 것은 자살 지망이나 진배없는 행위이므로 다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건축 커맨드에 교역소가 있었지.”
짧은 고민을 마친 시안은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민망한 마왕성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건축 커맨드를 이용해 옆에다가 교역소를 만들었다.
교역소는 천막 일통의 건축물 사이에서 유일한 석재 건물이었다. 하지만 창문이 하나 있을 뿐, 어디에도 출입구는 보이지 않는다.
“이건 어떻게 사용하는 거야? 하다못해 사용 설명서라도 동봉해 둬야 하는 거 아니야? 엄청나게 불친절하네.”
[구매? 판매?]
“우와악!”
창문 너머의 어둠으로부터 자그마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들어온 기습에 놀란 시안이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다. 작은 웃음소리가 간드러지게 들려온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 그래서, 구매할 거야? 그렇다면 목록을 줄게. 아니면 판매? 그렇다면 상자를 줄게.]
모습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는다. 그 대신 창문을 통해 불쑥 튀어나온 희고 작은 손이 물품 목록이라 추정되는 얇은 책자 한 권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시안은 움찔거리면서도 책자를 받아들었다.
거래 방식이 워낙 특이해서 혹시 내용물도 특별할까 싶었지만 단순한 기대에서 끝나고 말았다. 물품 목록은 식량이나 회복 물약 등 간단하게 구할 수 있으면서도 모험에 반드시 필요한 것뿐이었다.
혹시 동전 등의 화폐가 필요할까 싶었지만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영혼 조각이 마족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정식 화폐인 것인지 물품의 대금도 전부 영혼 조각으로 치르게끔 되어 있었다.
시안은 몇 가지 식량의 구매를 요청했다.
[알겠어. 잠깐만 기다려 봐.]
창문 너머로 손이 사라진 후, 10여 초가 흘렀다. 그 후 창문에서 자그마한 박스가 튀어나왔다.
구매한 물품의 목록에 비해 한없이 작은 상자다. 하지만 거꾸로 뒤집은 상자에서 물리적 법칙을 무시한 채 물품들이 계속해서 쏟아졌다.
“인벤토리와 비슷한 효과를 가진 건가?”
홀로 추리하고 홀로 납득한 시안은 구매한 물품들을 전부 인벤토리에 구겨 넣었다. 그리고 고블린을 사냥하며 얻은 쓸모없는 전리품을 죄다 꺼냈다.
“이것들을 팔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해?”
[그 상자에 넣어줘∼]
애교 많은 목소리를 따라 상자에 고블린의 소재를 하나씩 넣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소재가 상자의 입구에 닿자 인벤토리에 들어가는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모든 소재를 상자에 넣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손이 튀어 나왔다. 자그마한 손바닥 위에 상자를 올려놓자 10여 초의 시간이 흐른 후 일정량의 영혼 조각을 지불받을 수 있었다.
[원하면 인간들의 화폐로도 계산해 줄 수 있어. 하지만 10%의 수수료를 받아 갈 거야. 혹시 더 거래할 것이 있어? 아니라면 조금 쉬고 싶네.]
“거래는 충분해. 그런데 너는 누구야? 마족인가?”
[응, 마족이야. 이름은 슈리. 마계 상인 슈리야.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내 이름을 불러줘, 마왕 후보님.]
스스로를 슈리라 밝힌 목소리는 작별 인사를 끝으로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상당히 재미있고 인상적인 거래 방식이라 생각하며 몸을 돌린 시안은 서쪽 숲으로 향했다. 그의 입에는 굶주림을 달래줄 건량이 물려 있었다.
모험의 준비도 끝마친 그의 걸음에서 당찬 기개가 엿보인다. 시안은 부디 들끓는 흥분을 식혀줄 강한 몬스터와 조우하기를 바라며 더욱 깊은 곳으로 나아갔다.
* * *
사건은 숲을 돌아다니던 시안이 한 마리의 고블린과 조우하며 시작되었다.
“키익! 키익! 산책하기 딱 좋은 날씨군.”
그가 조우한 고블린은 제대로 된 의복을 걸치고 있었고 흉부에는 강철판을 덧댄 갑옷을 입고 있었다. 심지어 장식용 뿔이 달린 투구와 둥근 방패, 예리하게 번뜩이는 검으로 완전무장을 갖추고 있다. 의심할 것도 없이 네임드 몬스터다.
“…네임드 몬스터, 고블린 검사인가.”
커다란 나무기둥 뒤에 몸을 숨긴 시안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고블린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몬스터 중에서는 특별한 가치를 가진 녀석들이 존재한다. 같은 종이라 할지라도 레벨과 종족 값 등의 어빌리티가 높아 상대하기 까다로운 존재들. 그들을 두고 플레이어들은 네임드 몬스터라 칭한다.
지금 시안의 눈앞에 나타난 고블린이 그러하다. 고블린 검사라 불리는 이 몬스터는 일반 고블린보다 세 개가 높은 8레벨의 몬스터다.
“레벨 차이 때문에 일반 공격은 안 통하겠고, 드디어 개조 마법이 등판할 때가 되었군.”
자신보다 한참 강한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만만하게 소매를 걷어붙인 시안이 앞으로 나섰다.
“암흑탄.”
스킬 이름을 외치자 그의 손 위로 흑색으로 빛나는 띠가 회전하며 마법진을 형성한다.
그 띠를 이루고 있는 것이 마도 문자라 불리는 것이다. 이 문자가 일정한 규칙을 갖춘 상태로 모였을 때 마법이 발현된다. 이것이 크로노스가 설정한 PAO에서 마법 따위가 발현되는 원리다.
그런데 미르의 쌍룡은 이 설정을 이용해 개조 마법이라는 것을 탄생시켰다.
무려 수천 가지나 되는 마도 문자를 암기하는 데 성공한 미르는 문자의 일부를 빼내고 다른 문자를 끼워 넣거나 문자의 배열을 바꾸는 것으로 마법의 효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부분의 경우 문자의 배열이 조금만 달라져도 마법이 증발해 버리지만 이따금 잘 맞물리면 기발한 효과를 발휘하기도 했다.
암흑탄 하나만 놓고 봐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본디 암흑탄은 직선으로 나아가며 물체와 맞닿을 경우 폭발하는 마법이지만 이것을 개조할 경우 커브를 그리며 날아가기도 하고, 폭발의 공격력이 줄어드는 대신 범위를 넓힐 수도 있으며, 제자리에 수 초간 정지했다가 쏘아지는 것도 가능하다.
피나는 노력의 결과 미르는 수많은 종류의 개조 마법을 개발해 냈다. 그렇게 일반 마법사들보다 몇 배는 압도적이고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효율적인 마법을 구사할 수 있게 된 미르는 승률 8할을 자랑하며 명실상부 전설로써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무려 7천만 플레이어 중 정점에 설 수 있게 해준 기술이 자신을 배신할 리가 없다. 그렇게 믿고 있었기에 시안은 자신보다 한참은 레벨이 높은 네임드 몬스터 고블린 검사에게 단신으로 시비를 걸 수 있던 것이다.
하지만 예상치도 못한 문제가 나타났다.
“…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