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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영웅은 마왕이 되었다
3화


그것으로 영상은 끝이 났다. 다시 한 번 어둠이 찾아오더니, 이번에는 정상적으로 PAO의 홍보 영상이 나타났다.
홍보 영상은 간단하다. 다시 한 번 대륙에 찾아온 악에 대항하기 위해 고대 영웅들의 영혼을 소환하는 금발의 아름다운 성녀가 영상의 주인공이다.
고대 영웅들의 영혼이란 전작인 PPO를 즐겼던 플레이어들이며, ‘고대 영웅의 영혼을 받아들여 기억과 힘의 일부를 계승한다’라는 설정을 통해 약속한 특전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홍보 영상이 끝을 맺은 후, 시안의 눈앞에 두 개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성녀의 의식이 고대 영웅의 영혼을 소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당신에게 소환된 영혼은 영웅이었으되 마도(魔道)를 걷게 된 ‘시안’입니다. 수락하실 경우 플레이어는 ‘마왕 후보’가 되어 일반 플레이어와는 다른 방식으로 게임을 즐기게 됩니다.>
<거절하실 경우 특전을 습득하지 못한 신규 가입자처럼 영혼을 받아들이지 않은 새로운 영웅으로 활동하게 되며, 특전은 지급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어둠 속.
존재하는 것은 선택을 강요하는 두 개의 메시지뿐이다.
“마왕… 마왕이란 말이지.”
메시지를 접한 소율은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렇게 감춰진 장소에는 진득하다 못해 사악하기까지 한 미소가 걸렸다.
마왕.
무려 PPO의 역사에 종말을 불러온 시나리오 최후의 보스 몬스터로 신기의 도움이 없으면 사실상 쓰러뜨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최강이자 최악의 적으로 등장했다.
물론 크로노스가 생각이 있는 이상 플레이어에게 그만 한 권한과 능력을 쥐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직업군과 비교하자면 굉장히 가치를 가지고 있을 것은 자명하다.
소율이 PAO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어디까지나 받은 것을 돌려주기 위함이다. 그를 위해 소율은 자신이 원하는 결말을 이끌어 내기 위한 계획을 노트 한 권 분량으로 완성해 두었다.
하지만 그 노트를 폐기해도 괜찮겠다 싶을 만큼 특전으로 주어지는 것들이 매력적이다. 어쩌면 특전으로 인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계획보다 앞당겨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마음의 추가 기울었다.
“마왕 후보가 되겠다.”
한참을 고민하던 소율은 결국 특전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PVP팀 미르는 모든 플레이어로부터 공적으로 낙인이 찍혀 있다. PPO의 골수팬들이 사랑하던 PPO의 결말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두 사람을 가만두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염색과 렌즈 등을 제외하고 외형을 바꾸지 못하는 PAO의 특성상 얼굴을 알아보는 이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정체가 탄로 나는 것은 찰나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되면 평소 PVP팀 미르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PK(Player Kill)와 무한 척살을 부르짖으며 개미 떼처럼 달려들 것은 안 봐도 훤하다.
하지만 마왕 후보가 되면 그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매진할 수 있다. 한 명의 플레이어를 위해 이만 한 컨텐츠를 마련해 준 크로노스 사에게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플레이어 한소율. 마왕 후보 시안이 되어 플레이를 시작합니다. 위대한 마신의 축복이 당신의 앞길을 함께합니다.>
<전직 효과 : 세 개의 목숨>
마왕은 여러 개의 목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신은 약한 것을 싫어해서 패자의 힘을 거두어 가버립니다. 세 개의 생명을 전부 소진할 경우 플레이어는 마왕의 힘을 잃고 평범한 인간이 되어버리니 주의해 주세요.
<전직 효과 : 타락의 권능>
타락을 받아들여 마족이 되었습니다. 마족은 마력을 운용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가진 종족입니다. 레벨이 상승할 때 높은 확률로 마력이 상승합니다.
<전직 효과 : 명성은 무의미>
마계의 종족에게 명성은 무의미합니다. 명성을 대신하여 공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종족 효과 : 마력의 이해>
적은 마력으로 높은 효율을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법 공격력이 20% 상승합니다.
<종족 효과 : 두 배 빠르다>
마족은 마력을 운용하는 속도가 남다릅니다. 마법 캐스팅 속도가 100% 상승합니다. 재사용 대기시간이 20% 감소합니다.
<직업 효과 : 사실 세 배였다>
당신은 마족들의 위에 군림하는 마왕의 후보생입니다. 마력에 대해 더욱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법 캐스팅 속도가 추가로 100% 상승합니다. 재사용 대기시간이 20% 추가로 감소합니다.
<직업 효과 : 고작 이 정도냐>
마법의 정점에 선 마왕 후보인 당신은 모든 마법에 저항력을 갖게 됩니다. 항마력이 15% 상승합니다. 속성 내성이 10% 상승합니다.
<직업 효과 : 꿇어 엎드려라>
마왕 후보는 마족들을 다스려야 합니다. 통솔력 어빌리티가 생성됩니다.
<특전 : 초월자의 영혼>
초월적인 업적을 쌓은 영혼을 받아들이셨습니다. 모든 어빌리티가 10 상승합니다.
<특전 : 여기 왔던 곳인데요>
당신은 이미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한 영혼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같은 레벨에 이르기까지 습득하는 모든 경험치가 20% 상승합니다.

<어빌리티>
이름 : 시안
레벨 : 1
직업 : 마왕 후보(Rank ― 전설)
종족 : 마족 ― 전설
공포 : 0
HP : 600
MP : 450
근력 : 30
마력 : 30
체력 : 30
정신력 : 30
민첩성 : 30
내구성 : 30
통솔력 : 30

<소지 스킬>
어둠 마법(하급 1단계), 종속 마법(하급 1단계), 부대 관리(하급 1단계).

* * *

눈을 뜬 시안은 울창한 숲의 한중간에 버려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초록빛이 무성한 초목뿐이며, 고개를 들면 우거진 나뭇잎과 가지 사이로 몽실몽실한 구름이 떠다니는 하늘이 보인다.
아무리 둘러봐도 도시나 마을과 관련된 것은 보이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완벽한 자연뿐이다.
아무리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라고 하지만 정도가 있는 법이다. 가뜩이나 마왕 후보라는 직업 탓에 일반 플레이어와 다른 방법으로 게임을 해야 하는데 간단한 설명조차 없다면 그건 자유가 아닌 방치다.
“힌트라도 줘야 할 거 아니야, 힌트라도!”
시안은 답답한 가슴을 치며 도움을 요구했다.
다행이도 하늘 저편에서부터 날아온 무언가가 그에게 길을 제시해 주었다.
[안녕하십니까, 마왕 후보 시안 님! 당신을 서포터하게 될 사역마 왕눈이라고 합니다.]
스스로를 왕눈이라 소개한 사역마는 작명자의 센스에 무릎을 치며 감탄을 터뜨릴 만큼 절묘한 외형을 하고 있었다.
외피가 보호하고 있는 하나의 눈알에 네 장의 박쥐 날개와 두 개의 다리가 달려 있다. 디자이너의 얼굴과 사상이 궁금해질 정도로 흉악하고 혐오를 유발하는 외모가 시안의 표정을 굳어지게 만들었다.
“내가 비위가 약해서 그런데, 다른 녀석으로 서포터를 바꿀 수는 없어?”
시안은 직설적으로 자신의 기분을 내뱉었다.
직접적인 매도의 말에 시무룩해질 법도 하건만 왕눈이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기뻐하며 시안의 주위를 열심히 날아다녔다.
[제가 못 생겼다고 차별하시는군요. 게다가 상당히 직설적… 하지만 그 부분이 멋져!]
“그래서, 된다는 거야, 안 된다는 거야?”
[안타깝게도 서포터의 교체는 불가능합니다. 껌딱지처럼 붙어 있을 거예요!]
왕눈이는 날개에 달려 있는 발톱을 이용해 시안의 팔에 들러붙어 언행일치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런데 마왕 후보는 뭘 해야 하지? 일반 플레이어들처럼 몬스터를 사냥하며 레벨을 올리면 되는 건가?”
[뭘 하실지 결정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시안 님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마왕 후보는 반드시 마신님께서 내린 칙명을 완수하셔야 합니다. 마왕이 되기 위해서는 마신님께 눈도장을 찍어야 하거든요.]
날갯짓을 하며 시안의 주변을 한 바퀴 비행한 왕눈이가 갑작스럽게 바닥에 침을 뱉었다. 끈적끈적하고 독한 냄새가 나는 침에는 청색의 두루마리가 섞여 있었다.
그를 본 시안의 표정은 명명백백하게 불쾌함으로 일그러졌다. 가뜩이나 왕눈이의 생김새로 인해 일그러진 얼굴이 한층 더 격하게 일그러지니, 지옥문을 열고 올라온 귀신조차 겁을 집어먹고 달아날 얼굴이 완성되었다.
눈치 빠른 왕눈이는 시안의 눈빛에서 자그마한 살의를 읽어냈다.
“…만약 저걸 나보고 받으라고 하면 물만 봐도 거품을 물게끔 트라우마를 만들어주겠어.”
[무, 물고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 생각은 요만큼도 하지 않았다고요. 정말이에요.]
허겁지겁 두루마리를 펼친 왕눈이는 목을 다듬기 위해 헛기침을 했다. 그러더니 큰 목소리로 두루마리에 적힌 내용을 낭독한다.
[두둥! 마왕이 되기 위한 길. 그 첫 번째∼! 두두둥! 마왕이 되려는 자, 영토를 확보하라!]
왕눈이가 입으로 착실한 효과음까지 내며 두루마리의 낭독을 마치자 시안의 눈앞에 메시지가 등장했다.

<시나리오 퀘스트 발생!>
마왕이 되기 위한 첫 걸음 ― 난이도 F.
마왕이 되려는 자, 그 위대한 족적을 새길 땅을 선별하여 점령의 깃발을 꽂아라!
― 원하는 땅을 자신의 영토로 복속시킬 수 있습니다. 인간의 영토와 겹치는 것도 가능하나, 발견될 경우 토벌대가 편성될 수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명령어 : 영토 선언.

“으아, 설마 영지를 운영하는 건가? 그런 쪽에는 별로 재능이 없는데…….”
퀘스트를 확인한 시안이 앓는 소리를 했다.
최강의 PVP팀 미르의 일원인 시안이 관심을 갖는 분야는 플레이어끼리 행하는 박진감 넘치는 전투와 드넓은 대륙의 미지를 향한 모험이다. 한 자리에 주저앉아 영지를 키우는 것에는 전혀 경험이 없다.
관심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잘해낼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마음부터 들었다.
하지만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는다. 시안은 조속히 퀘스트를 완료하기 위해 주변에서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다.
“기왕이면 물이 있는 장소였으면 좋겠는데.”
[아, 그거라면 저쪽에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안내할까요?]
“부탁할게.”
시안은 자신이 얼마나 유능한지 보여주겠다며 호들갑을 떠는 왕눈이의 안내를 받아 숲을 나아갔다.
앞을 가리는 나뭇가지를 꺾어가며 5분 정도를 가니 물소리가 들렸다.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자 이내 자갈밭과 함께 맑은 물이 흐르는 강이 나타났다.
물살은 강한 편이며 폭이 1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인다. 수심은 깊은 편인지 바닥이 보이지 않았고, 이따금 물고기가 수면 위로 뛰어오르며 얼마나 풍족한 자원을 갖춘 곳인지를 자랑했다.
주변의 전망은 탁 트인 편이다. 불어오는 바람을 막는 나무도 없어 적당히 선선하기도 하며 조금 전까지 주변에서 알짱거리던 모기 따위의 벌레도 보이지 않는다.
“이 정도라면 적당하겠지. 영토 선언!”
흡족한 미소를 지은 시안이 명령어를 외치며 발을 구른다.
그 순간 <투쾅!>하고 강철이 어긋나는 듯한 날카로운 굉음이 울렸다. 동시에 대지가 수차례 격하게 진동하더니 그의 발끝에서부터 빛의 파동이 생성되었다.
[우왓! 깜짝이야… 시안 님! 제 심장이 놀라서 정지하지 않도록 이런 건 미리 말해주셨으면 합니다!]
“그거 내가 할 말 아니야?! 나도 엄청 놀라는 중이거든!”
화들짝 놀란 그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사이, 빛의 파동은 정확한 원을 유지하며 급속도로 확장되었다.
어디까지 뻗어 나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확한 것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다행이도 추가적인 메시지가 떠오르며 범위를 측정할 척도를 가르쳐 주었다.

<영토를 획득하셨습니다. 획득한 영토는 미니맵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메시지가 표시된 직후 당장 확인해 보라고 재촉하듯 미니맵에 표시됐다.
시안이 지나온 길이 표시된 미니맵에는 영토일 것이라 유추되는 청색의 원이 그려져 있었다. 그것만으로는 정확한 넓이를 알 수 없었으나, 어정쩡한 규모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드디어 영토를 갖게 되었군요. 이로써 시안 님은 진정한 마왕 후보가 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왕눈이가 호들갑을 떨며 시안의 주위를 비행했다. 하는 짓은 귀엽지만 생긴 것이 워낙 흉측한 까닭에 모기를 잡듯 손바닥을 휘둘러 쳐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퀘스트를 완료했기 때문에 보상으로 소량의 경험치를 받았다. 레벨은 그대로였으며, 딱히 물질적인 보상은 없었다.
“왕눈아. 이제 또 뭘 해야 하지?”
[모든 근원이 되는 땅을 얻었으니 이제는 마왕 후보님의 명성을 드높일 차례겠죠.]
왕눈이가 침을 뱉자 또다시 청색의 두루마리가 나타났다. 학습 능력이 뛰어난 왕눈이는 자신에게 싸늘한 눈초리가 향하기 전에 부리나케 달려들어 두루마리를 주워들었다.
[크흠, 크흠. 마왕이 되기 위한 길, 그 두 번째∼! 두둥! 두두둥! 마왕이 되려는 자, 마왕성을 세워라!]

<시나리오 퀘스트 발생!>
마왕이 되기 위한 두 번째 걸음 ― 난이도 F
마왕이 되려는 자, 그 위대한 명예를 널리 알릴 마왕성을 건설하라!
― 자신의 영토 위에 마왕성을 건축할 수 있습니다.
명령어 : 마왕성 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