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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엔드(HAPPY END) 4화
1. 걸어 둔 시간 (4)


벌겋게 부어 있는 서글픈 눈이 나를 보았다. 갑자기 문이 열리자 놀랐는지 딸꾹질을 시작한 남자아이가 소매 끝으로 부어오른 눈을 닦았다. 대여섯 살 된 것 같은 아이는 초라한 행색이었다.
안타까움보다 망설임이 많이 들었다. 좁고 가난한 고아원은 사람을 더 데려올 만한 처지가 아니었다. 원장 선생님이 부담스러워하시면 어쩌지. 나는 어렸지만 잔인하도록 현실적인 생각을 하다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름이 뭐야?’
울어 붉어진 얼굴을 들고 아이가 눈을 깜박거린다. 독촉하듯 다시 물었다.
‘몇 살이야?’
초여름이라고는 해도 새벽 공기는 조금 쌀쌀했고 개구리는 여전히 시끄럽게 울었다. 낯설도록 차갑고 눅눅한 새벽, 아이를 하나 주웠다.
아이는 다섯 살, 이름은 하재연이었다. 원장은 남루한 몰골의 아이가 추가됐다고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일을 했다고, 착한 아이라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나 등을 돌려 몰래 한숨을 내쉬는 걸 보면서 죄책감을 느꼈다.
당시 하나 있었던 보육 선생님은 원장이 쓸데없이 인덕을 베푼다고 짜증을 내며, 재연에게 화장실을 가리지 못하면 체벌을 할 거라고 으름장을 놨다.
불협화음 같은 환영 속에서 아이는 복도 맨 끝 방을 배정받았다. 아이들은 가뜩이나 좁은 방에 사람이 늘었다고 하루 종일 투덜거렸다.
숨이 헉헉 막히는 여름이 깊어지는 동안, 하재연은 자주 잠에서 깨어났다. 더위에 시달리느라 잠을 설친 채로 새벽을 서성거리고 있으면 어김없이 재연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엄마를 부르며 목 놓아 우는 재연 때문에 같은 방을 쓰는 아이들은 늘 불만투성이였다.
고아원에서 엄마와 아빠는 금지된 단어였다. 늘 투덜거리는 아이들 틈에서 그 애를 끌어내, 눈물이 그칠 때까지 손을 잡고 걸었다. 더러운 것을 날려 버리듯 울음을 날려 버리듯, 빈 복도를 한참이나 서성였다.
그 세월은 길었다. 나중에는 잠에서 먼저 깬 아이가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을 기다릴 정도로 우리는 친해졌다. 아이는 조금 더 큰 내 손을 구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꽉 쥐고 걸었다. 땀에 젖은 손바닥이 축축했다. 늦은 새벽, 숨겨 둔 초콜릿을 통통한 입술 사이에 물려 주며, 대문 바깥에서 주워 길러 낸 아이를 귀애했다.
우리는 어렸고 삶은 후줄근했다. 하지만 좋았다. 둘이 같이 있었기에 나쁘지 않았다.
아. 하지만 저 애는 이제 나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하는걸. 나 혼자만의 감상이 무슨 소용인가.

***

“하재연, 그 염병할 새끼를 만나서 그런가…….”
꿈에서 깨니 새벽이었다. 네발짐승처럼 기어가 거울을 보았다.
“재수 없는 꿈을 꾸고 지랄이야, 염병…….”
창백한 얼굴은 역겨웠다. 그 위에 원장의 늙은 얼굴이 겹쳐 보였다. 거울의 유리가 가루가 되어 부서질 때까지 두들겨 패 죽여 버리고 싶었다. 역겨워, 더럽다. 누가? 내가. 요란한 생각을 하면서 거울을 보았다. 손바닥만 한 더러운 표면에 악몽에 푹 젖은 얼굴이 울고 있었다.
허리 높이의 냉장고 문을 열고 맥주를 꺼냈다. 출소 후에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았다. 새 부리로 쪼는 것처럼 쑤시는 머리를 짚은 채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벽에 걸린 거울이 정면에서 보였다.
어차피 전진밖에 할 수 없을 거라며, 저주 같은 말을 한 재연은 그 뒤로 연락이 없었다. 의문스러운 말을 하며 날카롭게 굴던 모습과 꿈속에서 만났던 모습이 차근차근 떠올랐다. 최초의 기억이라 부를 만한 부드럽고 작은 손도 떠올랐다. 묘한 향수병을 느꼈다. 생생한 감촉을 지우려 뒷머리를 벽에 처박았다.
회색 건물이 그리울 리가. 사탕을 빨아 먹는 것처럼 거울에서 얼굴을 핥아 치워 버리고 남은 맥주를 빨아 마셨다. 온몸이 척척했다.
반지하 원룸에 앉아 목을 길게 빼야만 보이는 창 너머 나무에 초록 물이 들어 있었다. 아직도 봄이었다. 봄이 뭔 대수인가. 고개를 떨어트리며 웃었다. 끝이 나기 전까지는 행복했던 꿈을 계속해서 보고 있다가 잠에서 깨면 다시 생지옥이었다.
등 뒤에 매달린 날갯죽지가 따끔거렸다. 원장을 죽인 밤의 화마는 흉터를 남겼다. 아니, 사실은 불을 내기 전에 생긴 흉터다. 손끝으로 상처를 더듬거리며 원장을 기억했다. 주름이 져 축 늘어진 볼과 부푼 흉곽.
“아버지…….”
아버지, 그때 왜 저를 죽이셨어요. 저만은 아버지를 믿고 따랐을 텐데. 아버지의 가장 성실한 첫 번째 종으로 이름도 의지도 잊고 살았을 텐데.
꿉꿉한 마음을 타인이 알아주진 않는다. 귀신들이라고 알아줄 리도 없다. 기력이 쇠하자 좋은 먹잇감이었는지 귀신들이 요란스럽게 돌아다녔다. 집 안 구석구석을 뒤지며 물건을 마음대로 건드리는 바람에 딸기잼이 들어 있던 병이 떨어져 깨졌다.
삽시간에 흘러 퍼지는 단 냄새와 유리 조각과 함께 끈적거리는 잼을 보자마자 화가 솟아 꼭지가 빙글 돌았다. 방 구석구석 귀신을 쫓아 보겠다고 굵은 소금을 퍽퍽 뿌려 대며 난리를 치고 나서야 시끄럽던 소음이 조금 줄어들었다.
종량제 봉투를 뚫고 나온 유리병 조각 위에 테이프를 붙이며 중얼중얼 욕을 뱉었다. 병을 치운 손바닥이 끈적끈적했다. 딸기잼은 빠르게 녹아 뭉글뭉글해져 벌레를 불러들였다. 한낮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이제는 정오가 되면 기온이 27도까지 치솟았다. 봄인가 여름인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열이 아스팔트를 뜨끈하게 데웠다.
꿈과 귀신들의 소동에 불쾌한 것치고는 괜찮은 토요일이었다. 동굴처럼 바닥을 파고들어 앉은 집이라 그나마 시원했다. 장마철만 빼면 살 만할지도 모른다. 시체처럼 차가운, 둥근 모양의 귀신 하나를 옆구리에 끼고 그런 생각을 했다. 퀴퀴한 쓰레기봉투를 이제 바깥에 내놓을까, 하는데 도어락 열리는 소리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같이 리듬이 들어간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전과자.”
허락도 없이 다짜고짜 남의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놈은 뻔했다. 서주영이다. 주말인데도 출근을 했는지 양복을 입고 있었다.
“뭐야.”
“연락도 없길래 죽은 줄 알고 찾아왔지.”
살랑살랑 웃는 얼굴이 반갑지는 않았다. 쓰레기봉투를 현관 바깥에 내놓는 사이 서주영은 알아서 작은 방석을 하나 깔고 앉아 있었다. 뭉친 채로 굴러다니는 이불을 한쪽 구석에 처박아 놓고 엉금엉금 걸어가 마주 앉았다. 주영이 커다란 봉투에서 뭔가를 꺼냈다. 전기 포트였다.
“짠, 선물이다. 능동적이고 유동적인, 상쾌하고 발랄한 생활을 위한 필수품이지.”
“전혀.”
왜 전기 포트 따위에 그렇게 많은 수식어가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딱 잘라 대꾸하자 주영이 금방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너 주려고 일부러 회사에서 슬쩍했단 말이야.”
“회사는 너 안 자르냐.”
“응. 이거 합법적인 거야.”
주영이 들어서 보여 주는 전기 포트는 꽤 비싸 보였다. 플라스틱이 아니라 유리로 만들어진 포트는 내부가 선명하게 보였다.
“여기, 금 갔잖아.”
“…….”
서주영이 가리킨 곳은 손잡이였다. 몸체도 아니고 손잡이에, 1센티미터쯤 돼 보이는 금이 가 있긴 했다.
“멀쩡하잖아.”
“사장님이 바꾸랬어.”
“너희 사장님 돈 많냐.”
“내 월급 주잖아.”
“아.”
멍청한 소리를 내면서 봉지를 열어 맥주 캔을 하나 꺼냈다. 방금 샀는지 맥주 캔은 손가락이 떨어질 정도로 차가웠다. 빠르게 풀탭을 따고 쭉 들이켰다. 보리 맛이 풀풀 나는 맥주를 여러 모금 삼키자 코가 울렸다.
“크으.”
“역시 술이 최고지…….”
심각한 얼굴로 알코올을 평가한 주영이 봉투 안에서 안주를 꺼내 들었다. 큼지막한 과자 봉투를 보고 소반을 얼른 끌어다 앞에 놓았다.
과자를 한 주먹 입에 넣고 으적으적 씹었다. 이게 오늘 첫 끼였다. 짭짤한 과자를 먹다가 봉투 밑에 깔린 삼각 김밥을 발견했다. 비닐을 까는 동안 서주영은 알아서 전기 포트에 물을 붓고 있었다. 컵라면을 뜯는 모습을 보며 물었다.
“밥 안 먹었냐?”
“응.”
“주말에 출근했는데 밥도 안 줘?”
“출근한 거 아냐.”
“그럼?”
“밤새웠어. 이제 퇴근했다.”
“…….”
턱밑까지 그늘이 내려온 주영이 우울한 얼굴로 맥주를 마셨다. 순식간에 맥주 한 캔을 비워 낸 얼굴에 홍조가 어른거렸다. 날밤을 꼴딱 새고 술부터 마시다니 저놈 위장도 철벽이구나.
“때려치울까.”
“응.”
남 인생인데 어떠랴 싶어 사직을 권고했더니, 다시 주영이 도리질을 쳤다.
“아, 안 돼.”
“왜.”
“월급이 많아.”
서주영은 멀쩡하게 생겨서는 물욕에 찌들어 있었다. 고아원에서 같이 지낼 때는 저런 인간이 아니었는데. 팔짱을 낀 채 혀를 찼다.
“돈 아까워서 보증금은 어떻게 빌려줬냐.”
“투자야, 투자. 여기도 언젠가 재개발이 들어가면…….”
“월세거든.”
잘못된 망상을 바로잡아 주자 주영의 고개가 힘없이 푹 꺾였다. 우울한 직장인의 몰골을 보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서주영이 나무젓가락을 뜯으며 말했다.
“사장님한테 보너스로 건물 달라고 해 볼까.”
“사표를 쓰고 싶으면 써라. 말 돌리지 말고.”
“네가 대신 일해 볼 생각 없냐.”
그렇게 말하며 서주영이 입맛을 쩝쩝 다셨다. 고등학교도 졸업 못 한 사람한테 비서 일을 하라는 건가. 입술을 비틀면서 빈정거렸다.
“너희 사장님 사업 망치기로 작정했냐.”
“야, 우리 사장님 쿨해. 전과 그런 거 안 따져.”
“너희 사장도 전과 있으신가 보네.”
말하고 나니 웃겼다. 픽 웃으면서 익지도 않은 라면 면발을 건져 올렸다. 주영이 라면 안에 들어 있는 싸구려 어묵을 들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 사장님은 그냥 법을 신경 안 쓰셔.”
“…….”
세상은 코딱지만큼 공평하다고, 서주영은 이름 있는 대기업에 다니는 대신 상사를 심각하게 잘못 만난 모양이었다. 물론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보너스 받았다고 사 줄 고기가 중요하지.
“음, 맛있네.”
한 젓가락 가득 씹어 삼킨 주영은 포만감이 올랐는지 기분 좋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덩달아 라면을 입에 가득 넣고 씹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주영이 먹다 남긴 삼각 김밥 자투리를 마저 해치우며 눈을 빛냈다.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너 제대로 취직할 생각은 없어?”
“……뭐, 막노동 자리가 또 있으면 몰라.”
“경비는 어때.”
“미친, 경비? 한 대 맞으면 날아가겠네.”
나는 절대로 골격이 단단하다고 할 만한 몸이 아니었다. 못 먹고 자란 것치고 키가 작은 것도 아니었지만 남들에 비하면 마른 체구였다. 교도소에서 툭하면 두들겨 맞아 맷집만 늘었지, 비실비실해서 잔병치레도 많았다. 소장이 독방에 그만 좀 들어가라고 애원을 할 정도였다.
“우리 회사는 경비원이라고 몸싸움 시키진 않아. 그냥 출입증 검사하고, 위치 안내하고 그 정도야.”
“안 해.”
“야, 너 막노동 계속하면 뒤로 넘어간다?”
“닥쳐.”
저건 친구라는 놈이 죽으라고 굿판을 펼치네. 욕을 하며 컵라면 그릇을 싱크대에 처박았다. 반쯤 남은 국물이 하수구로 줄줄 흘러내린다. 뻘건 국물이 핏물 같아 눈앞이 어지러웠다. 개수대에서 물이 꽈르르 내려가는 소리를 들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봐, 진짜 넘어간다니까. 아까 들어오는데 귀신 보는 줄 알았다.”
휘청거리는 걸 봤는지 서주영이 혀를 찬다. 거기다 대고 네가 본 게 진짜 귀신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적인 대꾸를 해 주진 않았다. 주영은 지금 자기 머리 위에서 목매 죽은 놈이 늘어트린 혀로 발꿈치를 핥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거품을 물고 쓰러질지도 모른다.
“어차피 공사니까 몇 달만 하면 끝이야. 일당도 많이 주고.”
“아, 그래. 거기 꽤 이름 있었지. L캐피탈이라고 했었나?”
“응.”
“최근에 업계 1위로 올라앉은 곳이야.”
그 회사가 얼마나 더러운 손을 탔는지 모르는 주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싱크대를 붙잡고 있다가 곧 쓰러질 것 같아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소문으로는 대부업보다 인신매매로 돈깨나 번 거라는 말이 있더라. 사장님이 관심 있다고 명함 받아 왔어.”
“…….”
정정한다. 주영이 다니는 회사가 뭐 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영은 몰라도 얘네 사장은 L캐피탈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확실히, 그 회사는 인신매매로 버는 돈이 더 많았다. 표면에 내세운 대부업을 이용해 돈을 빌려주고는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팔아 치웠다. 그들에게 있어 인간은 남은 금액을 쥐어짜 낼 걸어 다니는 금고밖에 되지 않았다. 공사는 장기를 박박 긁어낸 뒤 남은 껍데기를 처리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그런 회사에 관심 있다고 말한 사장도 문제가 있는 거 같은데. 한숨을 쉬면서 주영에게 다시 사직을 권유했다. 월급 때문에 안 된다고 파르르 떨던 주영은 갑자기 배가 덜 찼다며 치킨을 시켰다. 마음대로 하라고 내버려 두고는 바닥에 드러누웠다. 사 준다면 먹고 말지.

“음, 이번 신메뉴는 별로다.”
“역겨워.”
이상한 맛이 나는 치킨 조각을 집어 던지며 욕을 하자 주영이 양념이 묻은 튀김옷을 벗기며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왜 통과시킨 걸까?”
“응?”
“우리 회사 계열사야, 이 치킨.”
“……그러냐.”
“꼭 이야기해야지. 사장님 성격 같은 맛 난다고.”
얘가 안 보는 사이에 입만 살았군.
“너는 왜 안 잘리는 건데?”
“아, 하재연이랑은 연락하냐?”
뻔뻔하게 말을 돌린 주영이 실실 웃으면서 지껄였다. 연락 없어. 대꾸하자 주영이 금방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너희가 벌써 떡이라도 친 줄 알았지.”
주영이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고 다른 손의 검지를 찔러 넣으며 외설적인 흉내를 냈다. 뒤통수를 내리치자 밟힌 개구리처럼 납작 엎드린 놈이 비명을 질렀다.
“상스러운 행동 좀 하지 마.”
“야, 네가 더 상스러워.”
“닥쳐.”
“후후, 게이 커플의 탄생이라니. 대한민국의 2세 씨가 마르겠군…….”
헛소리를 꾸역꾸역하는 주영의 입을 역겨운 맛이 나는 치킨으로 틀어막았다. 주영이 우물우물 살점을 씹으며 불분명한 소리를 냈다.
“야, 있잖아.”
“없다.”
“감방 조크냐.”
“…….”
닥치고 치킨이나 먹어. 치킨 무 하나를 씹으며 짜증을 내자 주영이 맥주로 입 안을 쓱 헹구고는 휴대폰을 들었다.
“음, 내가 심심해서 하재연 조사 좀 했거든.”
“……어, 그러냐.”
두 번 심심하면 인신매매도 할 놈일세. 황당한 얼굴로 중얼거렸더니 주영이 씩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겉보기에는 평범하게 대학 다니면서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좀 이상해. 갑자기 양부모랑 왕래도 없어지고, 같은 학과생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좋은 거 같진 않더라. 그리고 최근 걔 주위에 이상한 일이 주변에 많다던데.”
“이상한 일이 뭔데?”
“누가 죽거나, 다치거나 하는 일들.”
무슨 소리야. 눈을 찌푸리자 주영이 휴대폰을 흔들었다.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는 액정에서 뿌연 빛이 흘러나왔다.
“그게 하재연이 그런 거라는 말이 많더라. 매번 사고 현장에는 있는데,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어서 의심만 사고 있다더라고.”
말을 멈추고 잠깐 머뭇거리던 주영이 느리게 입을 열었다. 흐려져 어두워진 얼굴이 불빛에 일렁거렸다.
“너 싫어하는 놈들 많아. 나오면 바로 죽여 버리겠다고 아직도 이를 갈더라. 걔도 그런 새끼일지 모르지. 조심해라.”
돌려서 말했지만 서주영은 고아원 동기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순박하던 얼굴이 틀어져 칼날이 되던 순간을 생각하며 물었다.
“너는?”
그렇게 치면 서주영도 원망을 가지는 게 맞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에 저놈도 기다렸다는 듯이 칼을 들고 달려들지도 모른다. 원룸 건물은 CCTV도 달리지 않은 허름한 곳이었다. 질문을 들은 주영이 씩 웃으면서 맥주 캔을 잡았다.
“과거에서 질척거리면 아무것도 못 해. 너도 빨리 벗어나라.”
“거참, 눈물 나게 좋은 조언이네.”
빈정거리면서 발로 어깨를 콱 밀어 넘어트렸다. 서주영은 빨리 가라는 구박에도 굴하지 않고 낄낄 웃으며 뒹굴뒹굴하다 밤이 늦어서야 겨우겨우 집을 나갔다. 잔뜩 구겨진 정장을 입은 뒷모습이 문밖으로 빠져나가자 현관문이 탁 하고 닫혔다. 건전지 좀 갈아 달라고 잠금장치에서 삐릭거리는 경고 소리가 났다.
나를 죽이고 싶어 하는 놈이라. 구석에 처박아 둔 짐을 뒤졌다. 고아원에서 다 함께 찍은 사진이 어디 들어 있었던 것 같다. 교도소에서는 고아라고 하면 아주 조금 불쌍하게 여기는 게 있어서 일부러 들고 있었던 사진이었는데 소장이 챙겨 주는 바람에 출소 후에도 들고 나왔다.
테두리가 갈라진 낡은 사진은 대문 앞에서 다 함께 찍은 모습이 들어 있었다. 아이들 틈에서 어린 나와 재연이 개구쟁이처럼 브이를 그리며 웃고 있었다. 옆에는 주영도 활짝 웃으며 서 있었다. 몇 안 되는 원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사건 당일, 벽돌로 내 머리를 내리치려다 붙잡힌 놈이 있었는데. 그때 제정신이 아니라 기억이 잘 나진 않았다. 네 명인가 다섯 명인가…….
머리를 긁적이며 입맛을 다셨다. 주영이 두 다리 뻗고 자지 말라고 고사라도 지내는 것 같다. 하재연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머릿속에서 날아간 뒤였다.

***

꽃구경은 3일에 비가 5일이라더니, 봄날은 어디 가고 미세 먼지가 기승이었다. 작업 마스크를 쓰긴 했지만 가릴 수 없는 눈은 따끔따끔했다. 먼지 때문에 색이 멀겋게 변한 하늘을 보며 쌍욕을 했다. 엄청나게 더웠다.
“날씨 한번 죽이네.”
여름이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찐다고 다들 앓는 소리였다. 작업복 안에 갇힌 몸에서 열기가 화롯불처럼 솟아올랐다.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모래 포대를 바닥에 내던지고 몸을 비틀었다. 거친 마대로 된 포대를 옮기느라 살이 벅벅 쓸려 따가울 정도였다. 얼음물에 담가 둔 생수병을 하나 꺼내는데 작업반장의 두툼한 손이 신경질적으로 가슴팍을 밀쳤다.
“어이, 고 영감더러 나오라고 해.”
“네.”
안전모 안에 갇힌 머리카락이 축축했다. 목장갑을 낀 손으로 이마의 땀을 훔쳐 내며 걸음을 옮겼다. 남들이 뼈 빠지게 일하는 사이 노인은 시원한 컨테이너 안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밉살스러운 인간.
“작업반장님이 찾는데요.”
“으응, 뭐어?”
노인이 숨 꺾이는 소리를 내면서 소파에서 일어났다.
“작업반장님이 찾는다고요.”
“망할, 그 새끼는 툭하면 늙은이를 불러내. 노인 공경이 없어…….”
끝없이 투덜거리던 노인이 손을 덜덜 떨면서 담배에 불을 붙이곤 라이터를 던졌다.
“옜다, 너도 피워라.”
덩달아 담배에 불을 붙이며 미간을 찌푸렸다. 공사장에서 고 영감으로 불리는 노인은 인부들에게 하루 치 일당을 지급하고 서류 작업을 대충 처리하며 하루를 보냈다. 다들 일흔이 넘은 노인네가 하는 일도 없이 팔자도 좋다고 투덜거렸다. 작업반장은 사사건건 고 영감을 씹어 댔다. 그리고 그건 고 영감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