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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 : 소울 콜렉터 1권 (24화)


9. 666 (1)

‘조용하다.’
염라는 최구용의 방 앞에 서서 문고리만 바라보고 있었다.
지나치게 조용했다. 뭔가 나타났다면 금비가 소리쳐야 할 텐데도 방 안에서는 기분 나쁜 기운만 감돌고 있고 마치 방 안이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것처럼 조용했다.
‘설마 무슨 일이 생겼나?’
그가 직접 부적까지 써 줬더만 도대체 얼마나 강한 악령이기에 이토록 지독한 기운을 내뿜으며 그가 직접 써준 부적이 통하지도 않는 걸까.
이토록 문을 열기가 겁난 적은 처음이었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이 문을 연 순간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강력한 귀기를 가진 귀신을 필두로 수많은 귀신들이 이 문을 연 순간 방 안에서만 요동쳤던 귀신들이 무섭게 빠져나올 것이다.
‘사라를 데리고 왔어야 하나.’
일기장 덕분에 이 회사에 대한 걸 어느 정도 건지긴 했는데, 그렇다고 사라를 이쪽으로 불러와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녀는 이 회사에 관해 좀 더 알아봐야 한다.
‘내가 하는 수밖에.’
염라는 품에서 메모지와 볼펜을 꺼내 가볍게 부적을 만들고는 문에 탁 붙였다.
「옴.」
염라의 외침과 함께 문 너머의 방에서 알루미늄 배트에 야구공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며 마치 폭탄이 터진 듯 무형의 기운이 방에서 뿜어져 나갔다.
터어엉―!
가벼운 진동이 잠잠해지자 염라는 한 번 더 주문을 읊조렸다.
「모든 존재는 부처와 보살 앞으로 귀의한다. 눈앞의 아이들은 고개를 조아리거라.」
귀기가 날뛰기 시작했다. 염라는 자신의 몸에서 백이 빠져나가는 걸 느끼며 입술을 꽉 물었다. 본래 밀교의 법사들은 이 뜻을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께 귀의합니다.’라고 전해지고 있다. 맞는 말이지만 염라는 그런 뜻으로 외우지 않고 이 주문의 본질, 참회에 중점을 두고 악마를 향해 쏘는 것이었다.
방 안이 잠잠해졌다. 아무리 강력한 악령이라 해도 다른 퇴마사도 아닌 염라가 외는 주문은 그 어떤 주문보다도 절대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듣지 않을 리 없었다.
‘좋아, 이제 들어가 볼…….’
쾅쾅쾅―!
“……!”
잠잠했던 귀기가 갑자기 날뛰기 시작하면서 문이 부서질 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밀교의 진언이 통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면 다른 주문을 외워야했다.
‘어디, 옥황… 아니 거기선 야훼라고 불리던가. 내가 사용하면 위력은 좀 떨어지지만 그래도 악령들에겐 통할 테니…….’
「천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창조주를 믿는다. 방 안의 악령들을 잠재워…줘라.」
도무지 바랍니다, 부탁드립니다 등은 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염라와 옥황은 그 위치가 똑같은 신이었다. 애초에 옥황이 이 기도를 들을 리 없을 테고 단순히 염라가 힘을 발현하기 위한 일종의 과정이었다.
“…….”
두 번의 의식을 통해 귀기가 강제로 막힌 듯 날뛰면서도 나오지 못하자 염라는 후우 깊은 숨을 몰아쉬며 문을 대고 있는 손에 힘을 꽉 쥐었다.
꽈드드득―!
그 순간 문에 균열이 일어났고 집 안이 지진이 일어난 듯 전체가 위아래로 힘차게 요동쳤다. 하지만 집 안에 사용인들은 그걸 느끼지 못하는 듯 평소와 다름없이 움직였다.
거센 소리, 당장 집이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떨림과 집 안에서 눈에 띄게 균열이 일어났지만 염라를 제외한 그 누구도 그 균열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천장이 무너지고 돌가루가 툭툭 떨어져 내렸다. 바닥이 박살나고 마치 싱크홀처럼 아래로 정처 없이 수렴했다.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웃거나 쉬거나 대화를 하고 있었고, 염라 또한 그 상황이 보이고 있음에도 그 자리에서 아무런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으직―!
이내 염라가 손을 대고 있던 문이 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듯 방 안으로 쑥 빨려 들어가며 집 전체가 폭격을 맞은 듯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앙―!
“…….”
답답하게 불어오는 후덥지근하고 끈적끈적한 공기.
흔들리는 염라의 머리카락 사이로 불씨들이 바람결에 흩날렸다. 건물을 통과하는 바람 소리는 마치 귀신의 울음소리 마냥 섬뜩했고, 그 분위기에 맞게 일대가 폭격이라도 맞은 듯 황폐화되어 있었다.
검붉은 하늘, 황으로 가득한 노란 구름. 태풍이라도 불고 있는 건지 하늘의 구름은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빠르게 움직였다.
세상의 종말이라도 일어난 것 마냥 좀 전까지 멀쩡했던 세계가 뒤바뀌어 있었다.
검붉은 하늘의 빛을 받은 듯 바닥 또한 검붉은색의 바닥으로 가득했고, 드문드문 검게 그을린 흙들이 검붉은 바닥을 꾸미고 있었다.
다 죽어간 색처럼 회색빛을 내뿜는 집은 더 이상 집 역할을 못하는 듯 스위스 치즈 마냥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었고, 귀퉁이는 쥐가 한 입 크게 배어 물은 듯 반파되어 있었다.
모든 게 죽어 있고, 죽은 자들이 사는 세상. 죽은 자들이 처음 눈떠서 보게 되는 세상이자 모든 탐의 고향… 음의 세계였다.
염라는 천천히 최구용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가구들이 다 박살나 있어 성한 곳이 없었다. 염라는 주술로 신발을 만들어내고, 지저분해진 방 안을 꾹꾹 밟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분명 염라의 주술을 받고 쓰러져 있어야 할 귀신들이 온데간데없이 텅 빈 방이었다.
‘그새 깨어났나.’
악령의 힘이 생각보다 대단한 걸까, 염라의 힘이 많이 약해진 걸까. 귀신 하나 붙을 수 없다니 스스로 치욕이라 느끼며 문득 구석을 바라봤다.
구석에는 염라와 금비를 차로 데리고 온 이 집의 사용인이 있었다.
금비 데려다주고 오라 했더니 이런 곳에 자고 있는 그의 꼴을 보며 염라는 몸을 숙여 사용인의 얼굴을 툭툭 두드렸다.
“어이, 이봐요.”
염라가 그의 볼을 두들기며 깨우자 정신이 나가 있던 사용인은 그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악!”
염라는 그가 소리를 지르든 말든 관심 없는 듯 주변을 휙휙 바라보며 물었다.
“최구용씨랑 내 제자는 어디 있죠?”
그 말에 사용인은 어버버 하더니 하늘과 반파된 집을 보며 동공을 심하게 떨었다.
“뭐, 뭐… 여기 왜…….”
“당신이 알 거 없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빨리 말해. 나 여기선 인내심이 없거든.”
염라가 이를 빠득 물며 주저앉아 있는 그의 멱살을 잡고 말하자 사용인은 겁먹은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 떨며 말했다.
“그, 그게… 저도… 잘…….”
“쯧.”
염라는 별 볼일 없다는 듯 인상을 구기더니 멱살을 풀고 허리를 세웠다. 사용인은 아직도 여기가 꿈인가 생각하며 자신의 얼굴을 짝 소리 나게 힘차게 때렸다. 아파하는 것 같았지만 깨어나고 싶다는 일념으로 계속 얼굴을 때리고 있었다.
“아, 그만해요. 그런다고 깨어날 줄 아나.”
“…예?”
「잠이나 자고 있어라.」
어느새 금안으로 변한 염라가 사용인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내뱉으며 손을 그의 눈앞에 가로로 휙 흔들었다.
사용인은 잠시 아, 하더니 이내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와 그의 눈을 감겼고 몸에 힘이 풀린 듯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염라는 혹여나 이 남자가 괜히 지나가는 탐이나 악령한테 붙잡힐까 품에 있던 메모지에 금비에게 줬던 부적과 똑같은 걸 써서 그의 등에 딱 붙였다.
“당분간은 안전하겠지.”
염라는 무너진 침대를 밟고 창밖을 바라봤다.
높다란 산이라서 그런지 주변 풍경이 훤히 들여다보였지만 어디에도 금비와 최구용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분명히 강력한 악령을 만났고, 그 악령들을 필두로 수많은 귀신들이 몰려들었을 것이다. 감당하기 힘들었던 금비는 부적을 통해 악령들을 쫓아내려 했겠지만 이내 그녀의 주위로 몰려든 귀신들로 인해 힘도 못 써보고 음의 세계에 강제로 잡혀간 것이다. 구석에서 자고 있는 사용인도 마찬가지고.
원래의 목표물이자 먹잇감인 최구용도 당연히 데려갔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곳에 안 보이면 산을 내려가야 한다는 건데…….’
염라는 별장에서 보이는 산 아래쪽을 바라봤다.
산의 검붉은 바닥과 흑색의 흙에서 수많은 뭔가가 들썩였다. 마치 좀비처럼 바닥을 기어오고, 땅속에서 올라오는 악령들. 너무 원한이 심해 저승사자의 인도를 뿌리치고 나온 것들이었다.
염라는 산에 있는 귀신들을 눈으로 세어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 많군.’
사용인에게도 말했지만 염라는 이곳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그가 음의 세계를 오래 이용할수록 저승사자들은 그를 쉽게 발견하게 된다. 이 세계는 탐과 저승사자들의 세상이었으니까.
그와 상극인 악마들이라면 또 모를까, 저승사자들과 염라의 싸움은 염라가 훨씬 더 손해였다. 게다가 이미 트릭이란 저승사자 때문에 염리와 접촉이 있었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한층 조심해야 했다.
‘빨리 찾아서 데리고 가야겠군.’
염라는 창문에서 훌쩍 뛰어 내려 산비탈을 따라 내려갔다.
그 순간 산에 있던 악령들이 뱀처럼 바닥을 미끄러지며 염라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키키키키키.”
“키에에에!”
꽤 오래 전에 죽었던 악령들답게 지독한 기운이 똘똘 뭉쳐 있었고 형태도 자신이 인간이었던 기억을 잃은 듯 마치 악마들처럼 기괴하게 뒤틀려 있었다. 성격도 악마와 같아지는 듯 자신이 인간이었던 걸 잃어버린 귀신들은 오로지 본능에 충실해지며 인간을 자신이 장난감으로 삼았다.
“먹어 치워주마아아!”
목이 긴 악령이 입을 쩍 벌리며 염라를 향해 총알처럼 날아왔다.
그 순간, 악령의 머리 위로 기다랗고 단단한 막대가 뚝 떨어지며 염라를 깨물지 못하게 하고 막대는 관자놀이를 뚫고 바닥에 쑥 박혀 이내 악령의 머리는 막대기를 따라 피를 묻히며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하늘에서 떨어진 막대기에는 한글로 붉게 쓰인 글씨가 박혀 있었다.
『이진욱, 여기서 죽다.』
“끄으으으…….”
머리가 관통된 악령은 아직 죽지 않은 듯 신음 소리를 내며 박혀 있는 막대를 빼내기 위해 기다란 팔로 막대를 꽉 잡고 흔들었다.
“소용없어. 네 생각보다 깊게 박혀 있거든. 네놈의 묘비니까 잘 간수해라.”
“묘…비?”
악령은 눈동자를 굴려 자신의 머리를 매다 꽂은 묘비를 바라봤다.
“내… 이름?”
인간임을 잃어버렸던 그는 자신의 이름조차 모르는지 눈알만 굴린 채 염라를 바라봤다.
어느새 염라의 등에는 각목처럼 생긴 묘비 다발이 부채처럼 펼쳐져 있었고, 그의 주위로 서너 개의 묘비가 둥실둥실 떠다니며 염라를 쫓아가고 있었다.
한 악령이 어이없게 쓰러지자 다른 악령들은 당황한 듯 염라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염라는 저승을 총괄하는 저승의 지배자였다. 혼들의 이름을 알아내는 것쯤이야 별것 아니었고, 성불은 못 시키더라도 움직이지 못하게 묘비를 세우는 것쯤은 가볍게 가능했다.
다만 숫자가 많으면 그만큼 시간이 걸리는 것뿐이고, 시간이 걸리면 저승사자와 마주치거나 금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서둘러 움직이는 것이었다.
“경고하지. 여기서 자유롭게 살고 싶으면 내게 안 오는 게 좋을 거다. 아니면 지금 머리에 묘비가 박힌 악령처럼 평생 저 자리에서 못 벗어날 테니까.”
염라가 금안을 빛내며 말하자 본능에 충실한 악령들은 공포라는 본능도 있는 듯 그의 협박에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크…….”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악령들 입장에서 염라는 정말 먹음직스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강력한 기운, 악령들조차 벌벌 떨게 만들 정도의 힘. 만일 저 육체를 가진다면 자신들은 얼마나 무적일까. 저 힘으로 자신들의 욕심을 채울 수 있단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차며 공포라는 감정을 밀어냈다.
그리고 이내 그들은 결정했다.
“키야아아아!”
“네 몸 내놔!”
“죽어어어!”
수많은 악령이 그의 앞, 뒤, 옆을 덮치며 날아오자 염라는 공중에 떠 있는 묘비 두 개를 꾹 쥐고 쯧 혀를 찼다.
“시간이 없으니 명복조차 빌어주지 않겠다.”
염라가 마치 두 개의 칼을 갈 듯 묘비를 교차하며 갈자 묘비에 붉은 글씨가 자동적으로 나무를 긁어내며 써졌다.
『김향지, 여기서 죽다.』
『황유, 여기서 죽다.』
염라의 등 뒤에 있는 수많은 묘비에도 빠른 속도로 붉은 글씨가 휘갈겨지며 묘비의 주인이 될 사람의 이름이 쓰여 졌다.
양쪽에 가장 먼저 날아오는 두 악령을 향해 염라는 힘차게 둘의 머리를 내려찍고는 남은 귀신들을 향해 어금니를 물고 금안을 빛냈다.
“이제부터 여기는 귀신 산이 아니라… 귀신 무덤이다.”

* * *

「최구용… 최구용…….」
동굴에서 말하는 것처럼 울리는 여성의 목소리.
금비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앞에 보이는 캄캄한 천장. 벌써 밤인가. 잠을 잘못 잔 건지 욱신거리는 뒷목을 주무르며 그녀는 주위를 휙휙 둘러보다가 방 안의 창문을 바라봤다.
붉은 하늘, 노란 구름. 밤이 아니라 저녁인가 싶었지만 마치 태풍이라도 부는 것 마냥 구름이 빠르게 흘러갔고, 밖의 풍경도 조금 이상했다. 자신이 자고 있는 사이에 전쟁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땅에 다 죽은 흙바닥, 그리고 당장 무너질 듯 균열이 간 건물들과 이미 무너진 건물들이 그녀의 눈 속에 가득히 들어왔다.
‘뭐, 뭐야?’
그녀는 창문으로 다가가 손을 쑥 뻗었다.
“으악!”
유리창이라도 있을 것 같단 생각에 아무 생각 없이 뻗었는데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자 놀란 금비는 잽싸게 창문틀을 잡고 휴우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리고 이내 다시 한 번 가까이서 밖을 바라봤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무너진 건물, 황폐한 바닥, 나무 한 그루와 풀 한 포기 없는 세상. 노을은 당장 빛을 잃을 것처럼 태양빛이 흔들렸고, 핏빛 하늘에 누런 구름은 인터넷에서 보던 목성 안의 구름처럼 유독한 가스로 꽉 차 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자다 일어났는데 세상이 변했다?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오랜 시간 잠에서 깬 것만 같았고,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만 같았다.
「최구용…….」
금비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홱 돌렸다. 방 안은 깨끗하게 청소된 것처럼 가구 하나 없이 마룻바닥만 있었다. 사람의 모습도,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방에서 약간은 섬뜩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겁먹은 얼굴로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 누군가 있다면 일단 이 세상이 어딘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믿고 굳게 닫혀 있는 방의 문을 밀었다.
그그극― 끼익―
꽤 오랫동안 열리지 않은 방처럼 경칩이 힘겹게 돌아갔고 폐가의 집 마냥 문 열리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좁은 복도가 나타나며 목소리는 계속 근처에서 울리고 있는데 복도 어디에도 목소리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근처 다른 방에 있는 듯싶었다.
금비는 떨리는 눈동자로 복도를 걸으며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더 크게 들리는 곳을 확인했다.
딸깍―
‘분명 근처에 들리는 소리인데 문을 열면 없네.’
게다가 이 집은 오래 전에 사람들이 전부 나간 건지 가구 하나 보이지도 않았다. 밖에 보이는 황폐화된 다른 건물들보다 무척 멀쩡해 보였지만, 기분 나쁠 정도로 가구 하나 없는 집이라 지금 걷고 있는 게 께름칙하게 느껴졌다.
이곳이 어딘지가 중요하긴 했지만 여자의 감이라는 걸까, 워낙 집 자체가 불길하게 느껴져서 그녀는 마지막으로 방 하나만 둘러보고 나가야겠단 생각을 하고 바로 앞에 있는 문고리를 잡았다.
「최구용…….」
“아.”
다른 곳보다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즉, 이곳 너머에는 누군가 있는 게 확실했다.
끼이이이―
경칩이 뻐근하게 움직이며 문이 열리고, 그곳은 여태 보던 방과는 전혀 다른 풍경처럼 돼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창문, 그 사이로 펼쳐지는 푸른 하늘, 하얀 구름, 넓은 들판에 능선 너머에는 광활한 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금비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풍경, 자신이 자기 전에 보았던,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