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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 : 소울 콜렉터 1권 (23화)


8. 첫 퇴마 시험 (3)

끼익―
“이곳입니다.”
사용인이 호화스러운 문을 열며 금비를 방 안으로 안내했다.
마룻바닥에 하얀 벽지, 눈앞에는 태양빛을 막아줄지 의문인 수준의 얇은 커튼이 겨울바람에 펄럭였고, 창문 바로 아래엔 긴 침대가 벽에 딱 붙어 있었다. 침대 위에 남자는 마치 쥐죽은 듯 뻣뻣한 정자세로 자고 있었다.
“어엇, 왜 창문이…….”
분명 닫아 놓은 창문이 열려있기에 사용인은 다급하게 창문으로 다가가려고 했다.
“자, 잠깐만요!”
금비가 그의 손을 낚아채듯 확 잡으며 사용인이 가는 반대 방향으로 끌었다. 힘이 세진 않아서 넘어지진 않았으나 약간 주춤한 사용인은 금비를 바라봤다.
금비는 눈살을 찡그리며 답답한 신음을 흘리고 활짝 열려 있는 창문을 보고 있었다.
그어어―
끄끅.
창문을 통해 악마도 탐도 아닌 것들이 몰려 들어오고 있었다. 눈알은 어디다 빼먹었는지 텅 비었고 피눈물만 흘리며 입은 사람이 벌릴 수 있는 만큼 쩍 벌리고 칠판 긁는 목소리를 내며 창문을 타고 기어 들어오고 있었다. 마치 일본 공포 영화에서 나오는 귀신이 움직이는 그런 모습이었다.
‘뭐야, 저게?’
너무 끔찍한 몰골에 금비는 입을 막으며 서 있었고, 귀신들이 보이지 않던 사용인은 그녀가 먼 허공을 보고 기겁하는 모습에 오도 가도 못하고 그녀의 곁에 서 있었다.
그 사이 귀신들은 침대에 단정하게 누워 있는 남자, 최구용을 향해 손을 쭉 뻗었다.
귀신들이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가려는 행위, 빙의 현상이었다.
실제로 빙의를 보는 건 처음이지만 염라에게 닳고 닳도록 들은 설명이었기에 금비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강제 빙의. 사람의 허락 하에 귀신에게 몸을 준 게 아니라 원한이 극도로 강한 귀신이 기가 당장 죽어도 의심이 없을 정도로 허약한 자의 몸에 들어가는 현상으로 원 주인의 혼은 의지가 없을 경우 혼이 빠져나가 그대로 죽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안 돼!’
금비는 최구용 앞으로 가서 주머니에 있는 흔한 형태의 볼펜을 꺼내 손바닥을 마치 메모지처럼 사용하듯 뭔가를 빠르게 적어갔다.
‘아마 이거였지?’
그녀와 염라가 가르쳐준 문자를 적은 뒤 그녀는 마치 수화를 하듯 약지와 중지는 구부려서 깍지를 끼고, 양 엄지는 세워서 마주 대고 배에 붙인 뒤 검지와 새끼손가락을 세워 퇴마를 하기 위한 인을 맺었다. 이내 가볍게 눈을 꾹 감았다가 눈을 번쩍 뜨며 최구용의 가슴에 글씨가 쓰여진 손바닥을 박아 넣듯 힘껏 후려쳤다.
「퇴(退)!」
터어엉―!
컥 소리와 함께 최구용이 멀건 침을 내뱉었다. 그 순간 그의 심장 부근에서 쇠를 긁는 것 같은 소름끼치는 소리가 흘러나오며 세 덩이의 검은 기운이 최구용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귀신!’
퇴마를 할 때 악마와 귀신을 구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가장 흔하게 것은 유황 냄새였다. 그들의 몸에서는 어째서인지 늘 유황 냄새가 역하게 났는데, 사람의 몸속에 기생했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또 다른 구별법은 바로 퇴마를 할 시에 드러나는데, 만일 악마라면 인간의 입, 코, 귀 등의 구멍에서 나오며, 영안이 없는 사람도 볼 수 있다. 반대로 귀신이라면 구멍이 아닌 마치 인간의 몸에서 유체 이탈하듯 나오는데, 이들은 오로지 영안을 가진 사람들만 볼 수 있기에 유황 냄새 다음으로 구별법이 상당히 쉬웠다.
‘악령이 셋?’
하나라고 생각했던 금비는 방 안을 날아다니는 악령들을 보며 예쁜 인상을 찡그렸다. 한 사람의 몸에 수많은 귀신들이 들어 있을 수는 있지만 사악한 기운을 뿜는 악령이 셋이나 있다니, 금비는 마냥 쉽게만 생각했던 염라도 이 광경을 보면 당황할 것이라 생각했다.
악령들은 자신들이 갑자기 몸에서 이렇게 쉽게 떨어져 나가자 당혹스러운 듯 방 안을 배회하더니 다시 금 최구용을 향해 들어가려고 손을 뻗기 시작했다.
‘하나면 모르겠는데 셋은… 내가 할 수 있을까?’
어차피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 금비는 입을 꽉 물고 염라가 준 종이를 꺼내 달려가려고 했다.
사아아아―
“……!”
언제부터 있던 걸까. 갑자기 나타난 것 마냥 싸늘한 공기가 방 안을 뒤덮고 그녀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등 뒤에서부터 뱀처럼 기어 올라오는 서늘한 감촉. 사람의 손과 같은 느낌이었다. 다리, 허리, 목, 그리고 얼굴까지 천수관음의 손 마냥 수많은 손들이 넝쿨줄기처럼 그녀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아, 잠깐……!’
금비는 낯빛이 흙빛으로 변한 상태로 바닥을 내려다봤다.
발목을 적시고도 남을 검은 먹물이 가득한 연못에 있는 느낌이었다.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그녀를 붙잡은 수많은 손은 그녀를 잡아먹기 위해 먹물이 가득한 연못에서 눈을 번뜩이며 아래로 당기고 있었다.
그들은 이내 조바심이 난 듯 연못에서 튀어 올라왔다.
캬아아아!

“허어? 하여튼, 가만히 두질 않는구나.”
서고에서 누군가의 일기장을 보고 있던 염라는 갑자기 느껴지는 싸한 기운에 일기장을 탁 덮고 서고 밖으로 나섰다.
“아, 퇴마사님이십니까?”
꽤 미남의 남자가 염라 앞에 서서 느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요새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쉼표머리란 건가, 파마기가 살짝 죽은 머리에 왁스를 발라 제법 훈남의 모습을 풍기는 남자는 사람이 맞나 의심이 갈 정도로 창백한 하얀 피부에 시원하게 뻗은 코, 립글로스를 바른 것 마냥 붉은 입술을 가지고 있었다.
인상적인 짙은 눈썹과 단지 눈만 봐도 여성들을 홀릴 것 같은 그윽한 짙푸른 눈동자, 턱은 종이를 갖다 대면 베일 정도로 날카롭고 얇은 턱선을 가진 전형적인 귀공자 스타일의 모습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봤다면 떠받들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인체의 황금 비율을 가진 남자는 180㎝은 되어 보이는 키에 호리호리해 보이면서도 다부진 어깨를 가지고 있었고, 어깨선이 도드라질 정도로 쫙 빼입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염라는 인간 중에서도 이런 남자가 있나 싶을 정도로 감탄하고 있었다. 몸에서 풍겨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은 것은 물론, 이 정도 외모면 신들 중에서도 으뜸이었다. 성형이라도 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조각과 같은 외모에 완벽한 몸을 가진 남자를 보며 염라는 170㎝이라는 작은 키로 그를 올려다봤다.
“예. 지금은 제 제자가 하고 있을 겁니다.”
“아아, 그러시군요.”
미남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품에서 명함을 꺼내 염라에게 내밀었다.
“아, 저는 테마그룹 회장님의 아들, 안샘이라고 합니다.”
아들이 이렇게 잘생겼던 건가, 하며 염라는 명함을 받아 확인했다.
“이름 아래 네임드 안은 뭐죠?”
영화 이름인가 했지만 명함에 영화 이름이 있을 리 만무했다. 샘은 멋쩍게 웃으며 뒷목을 긁적였다.
“아하, 그거… 제 외국 이름입니다. Naimed An. 앞이 이름이고 뒤는 성을 땄습니다. 그럴싸한가요?”
그러니까 직역하면 ‘유명한 안’이란 뜻 아닌가, 하고 생각하며 굳이 발음까지 굴려가며 말하는 것에 염라는 어색하게 웃으며 지갑 안에 그의 명함을 넣었다.
‘아, 시간을 너무 뺏겼군.’
염라가 우월한 키로 자신을 찍어 누르듯 내려다보는 샘을 지나쳐 가려는 그때, 샘이 염라의 팔을 꽉 붙잡고 서고를 바라봤다.
“잠깐. 이곳에서 뭐하고 있던 건지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
샘이 서고를 가리키며 말하자 염라는 샘의 손을 떼어내며 그가 잡은 부위를 손으로 문질렀다.
“집 안에 귀신이 많아서 말이죠. 왜 이러나 좀 살폈습니다.”
“남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는 거 아닌가요? 허락은 받으셨나요?”
본인 집도 아닌데 왜 이렇게 참견인가. 사업 파트너라서 신경 쓰기라도 하는 건가.
“이 집 사용인에게 물어보려고 제 제자 안내만 끝나면 오라고 했는데 안 와서 말이죠. 먼저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남의 집인 데도요?”
염라를 향해 웃는 얼굴로 적의를 뿜어내며 염라는 쯧 혀를 차며 고개를 숙여야 하나 생각했다. 인간 사회 구조에 대해 별로 신경을 안 쓰는 주의였던지라 이런 부주의함이 발생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인간에게 고개를 숙이자니 영 체면이 서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다간 상황이 안 좋아질 터, 어찌됐든 테마 그룹의 소속원으로 있는 이상 현 회장의 아들이자 차기 회장에게 잘 보여야 했다.
“죄송합니다. 이 집에 워낙 귀기가 많아서 조사 차 좀 성급하게 굴었군요.”
“이 일은 퇴마 협회장한테 갈 겁니다.”
염라는 고개를 숙인 채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과격한 퇴마 방법으로 근신까지 먹었는데 또 징계를 먹게 되다니. 다음부터 이런 조사는 조심스럽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귀기가 많다는 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샘의 말에 염라는 고개를 들어 그를 살폈다. 그는 집 곳곳에 붙어 있는 염라가 쓴 부적을 보며 물었다.
“귀신들이 많습니다. 대략적으로 이쪽에 있는 이사님께 원한이 있는 거 같던데…….”
“최구용 이사님한테요…….”
샘은 뭔가 짐작하는 게 있는 듯 말끝을 흐리며 홀로 뭔가를 고개를 끄덕이고 납득했다.
염라는 샘을 보며 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코트 안주머니에 손을 쑥 넣었다.
‘업경대를 써볼까?’
염라가 들고 다니는, 저승에서 사용하는 도구가 몇 가지 있었다. 항상 품속에 있었으며, 이는 자신이 탈출할 때도 품에 있었는데, 하나는 염리가 쫓고 있는, 여러 차원을 넘나들도록 열쇠 역할을 하는 황금 도장 옥새, 염라가 사용하는 무기인 붉은 곤봉과 채찍, 그리고 모든 존재의 전생 혹은 현재의 생을 보여주는 거울, 업경대.
업경대를 통해 금비의 과거를 본 적이 있으며, 이는 거울에 비친 존재가 경험한 것이라면 당시 그 존재가 생각했던 것들까지도 비추어 볼 수 있었다.
‘좋아, 이 귀신 산이나 최구용이란 놈이 뭔가 음모가 있는 거 같은데……. 이놈을 알아보면 알 것 같군.’
회장의 아들인 만큼 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퇴마를 이렇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지에 대한 이유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염라는 품에서 접이식 작은 손거울을 꺼내 들어 펼치고 샘을 비추었다.
파아앗―!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샘이 여기로 오는 과정… 계단을 오르고 있는 모습, 산에 도착한 모습, 차를 타고 가는 모습, 집으로 향하는 모습.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테이프를 되감기 하듯 돌아가고 있었다.
‘음?’
새벽 네 시. 그는 이 깊은 새벽에 잠도 자지 않고 기분 나쁜 의식이라도 하는 것 마냥 책상 앞에서 촛불을 켜고 서 있었다.
염라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것을 확인해 보려는 찰나.
쨍강―!
“……!”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업경대가 쩍 하고 금이 가며 파편이 밖으로 튀어나갔다.
깜짝 놀란 염라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닥에 떨어진 거울 파편을 바라봤고, 생각에 잠겨 있던 샘 또한 놀라서 생각에서 깨어나 염라와 바닥에 떨어진 파편을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염라는 멍한 표정을 지은 채 거울이 깨진 업경대를 탁 닫고 품에 넣었다.
“아, 아뇨. 거울이 깨졌네요. 오래 돼서 그런가…….”
“오래 돼서 거울이 깨져요? 푸하하하, 재밌는 분이시네.”
갑자기 거실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달려온 몇몇 사용인들이 바닥에 있는 유리 조각을 보고는 달려와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염라는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 보니, 어디 가시려는 것 같던데…….”
샘의 말에 염라는 아, 하며 수상쩍은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까보다도 더 기운이 날뛰고 있었다.
‘흠, 실패한 건가?’
아무래도 힘든 상대였으니 퇴마는 못 했으리라 생각했다. 난이도가 별 하나 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별 네 개짜리. 염라는 깨진 거울에 대한 생각은 뒤로 하고 서둘러 그녀를 돕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염라는 2층으로 올라가며 자신의 등을 바라보고 있는 샘의 눈길을 애써 무시했고, 그의 등을 뚫어지게 보고 있던 샘은 흐응, 하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