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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 : 소울 콜렉터 1권 (22화)
8. 첫 퇴마 시험 (2)
부우웅―
엔진 소리가 잔잔한 호화로운 자동차 안에서 염라와 금비는 도착지까지 뒷좌석에 앉아서 대기하고 있었다. 금비는 긴장을 한 상태로 이미 수십 번이고 읽어서 외웠을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서류 뭉치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거 계속 보고 있으면 뭐가 달라져?”
염라는 퀭해진 눈으로 서류를 보고 있는 그녀를 보며 묻자 금비는 고개를 살짝 돌려 염라를 바라보더니 다시 서류 뭉치로 시선을 옮겼다.
스스로 처음 해보는 일이었기에, 금비는 마치 해외여행을 홀로 처음 나가는 기분처럼 걱정만이 앞서고 있었다.
염라와 금비는 현재 테마 그룹에서 보내온 자동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염라는 자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번화가를 벗어나 줄줄이 늘어진 건물들과 길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이 휙휙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 안에서는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 가득했고, 뚫어지게 서류 뭉치를 바라보던 금비는 눈이 아픈 듯 눈을 지끈 감으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아아, 이렇게 본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그거 방금 내가 했던 대사 같은데.”
절대 실수하지 않겠다, 나도 잘해 보이겠다는 일념으로 금비는 이번에는 핸드폰에 적어뒀던 염라가 알려준 주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요, 저기요. 염라 씨, 나 잘할 수 있겠죠?”
금비는 한 손으로는 스마트 폰을 잡고 바라본 채 한 손으로는 날파리처럼 염라를 툭툭 치며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가만히 있던 염라는 짜증난 듯한 마디 툭 던졌다.
“못해.”
직설적으로 던진다고 토라질 거였으면 진작 토라졌을 것이다. 그녀는 염라의 그런 반응을 예상한 듯 바로 맞받아쳤다.
“아씨! 좀 제가 이렇게 긴장하면 용기 좀 북돋아줘요!”
실패하면 좀 귀찮아지긴 할 테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능력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염라는 그녀가 어떻게 되든 살아만 있으면 관심이 없었다.
“어떻게든 살려는 드릴게.”
잘못되면 죽기라도 한 단건가, 하는 생각에 금비는 이내 절망한 듯 고개를 떨어뜨렸고 염라는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고 생각에 잠겼다.
지금은 그녀의 일보다는 백화점을 향해 혼령들이 몰려갔다는 것에 더 신경이 쓰였다. 사라에게 알아보라고는 했지만 사라는 염탐에 특출난 능력이 없었다. 누구 하나 피떡으로 만든 뒤 붙잡고 물어보지나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염라가 뒷조사 하는 건 들킬 염려가 너무 컸기에 자신의 곁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곤 사라밖에 없었다.
보통 이런 시련을 당하면 주변의 동료 한두 명쯤은 더 있지 않던가, 그것도 종류별로. 머리 쓰는 쪽, 전투 쪽, 의료 쪽 등등… 왜 염라 주변에는 덜 떨어진 반푼이 인간과 싸움에만 특출 난 경호원이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운이 좋지 않은 편이라 생각했다.
계속 앉아만 있으니 힘들었던 건지 금비는 운전석에 있는 테마 그룹의 사용인에게 물었다.
“저기… 얼마나 더 가야해요?”
사용인은 정면 한 번, 내비게이션을 한 번 보고는 간단하게 답했다.
“삼십 분만 더 가면 됩니다.”
금비는 털썩 앉아 이젠 아예 외울 정도로 신물 나게 본 서류 뭉치를 집었다.
테마 그룹의 이사, 최구용. 회장과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업 파트너, 그의 생애를 쭉 본 금비의 감상은 어릴 때부터 무척 욕심이 많았으며 이사가 됐을 무렵에는 야욕가의 본성을 드러낸 탐욕스러운 인물이었다. 재력으로 결혼한 인물이었으며, 자식은 딸 하나, 아들 하나.
테마 그룹을 차지하고 싶어 하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그럼에도 테마 그룹 회장은 그를 거두고 있는 중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밝히는 이유가 뭐지?’
테마 그룹 쪽에서 직접 보내온 문서들일 텐데 마치 퇴마사들이 그를 처리해 주길 바라는 느낌이었다.
“도착했습니다.”
도무지 금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문서들을 읽고 있을 때, 어느덧 시간이 꽤 지난 건지 사용인이 산 입구에 차를 멈춰 세우며 차에서 내렸다.
염라와 금비 또한 차에서 내려 주변을 바라봤다.
도시에서 제법 멀리 온 건지 공기가 상당히 맑았고 미세 먼지만 가득해 보이지 않았던 도시의 하늘과 다르게 깨끗하고 푸른 하늘이 여실히 보였다.
“이쪽으로…….”
사용인이 산 입구에 잘 깔려진 나무 계단을 가리키며 올라가자 금비는 주변을 휙휙 둘러보고는 으슬으슬 들어오는 산의 차가운 공기를 막기 위해 자기 몸을 꽉 껴안고 올라갔다.
스무 계단쯤 올라갔을까, 금비는 계단을 오르다 말고 주변을 바라봤다.
벌건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심지어 나뭇잎 하나 없는데도 불구하고 산은 제법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여기 뭔가…….”
“그쪽도 느꼈나보네. 귀기(鬼氣)야.”
금비는 힉, 하며 창백해진 얼굴로 혹여나 염라를 놓칠세라 그의 옆에 찰싹 붙어 움직였다.
“귀기요? 귀신을 말하는 거죠? 귀신이 있어요?”
무슨 소리 하는 건가. 염라는 자신의 팔을 꽉 안은 금비를 떼어내며 당연하지 않냐며 말했다.
“그쪽도 지금 귀신 퇴치하러 가는 거거든요. 무서워하면 어떻게 해요.”
“그, 그래도! 귀신이 싫은 건 싫어요!”
다른 상황이면 이해가 가지 않았겠지만, 상황이 상황인 듯 염라는 주변을 슥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산이 워낙 정기가 맑아 귀신들의 소굴이 되는 경우는 많았지만 이건 마치 강령술이라도 한 것 마냥 산이 온통 한이 많은 귀신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칠판을 긁는 듯한 섬뜩한 기운에 염라조차도 소름이 돋는데 하물며 인간이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아직 금비는 못 본 듯싶지만 아마 곧 돌아보면 지구 한 바퀴 돈 것 마냥 온갖 귀신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등골이 오싹한데… 온통 귀신 천지 맞죠? 제가 지금 안 보고 있어서 안 보이는데 지금 시선이 느껴져요!”
호들갑 떨며 염라를 흔들자 인내심에 한계를 느꼈던 그는 그녀를 한 손으로 들고 걸어 올라갔다.
“헉.”
진짜 살이 많이 빠지기라도 한 걸까. 사람이 한 손으로 들다니. 금비는 놀라서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만져봤지만 그렇게 빠지진 않은 것 같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뼈 무게라는 게 있는데 염라는 힘들이지 않고 한 손으로 금비를 풍선 들 듯 들고 있어 벙 쪘다.
“신부님… 쉽다더니.”
염라가 중얼 거리자 금비는 염라의 손에 매달린 채 그를 바라봤다.
“그쪽, 좀 힘들겠네.”
“그게 무슨……?”
“제법 원한이 깊은 놈이라… 힘내봐.”
염라가 사악하게 씩 웃자 금비는 헉 하고 숨을 삼키더니 이내 산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네에에에에에?”
금비가 겁먹은 표정으로 염라의 손에서 발버둥 칠 때 계단 끝, 저편에 산 공기 맡으며 편하게 쉴 수 있는 호화로운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귀신을 볼 수 있는 사람들로서는 산 자체가 귀기가 가득해서 그다지 편하게 느껴지는 장소는 아니었다.
“저곳이 최구용 이사님이 계신 별장입니다.”
별장을 바라본 금비와 염라는 각자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우와… 부잣집은 뭐가 돼도 다르구나. 우리 집도 못 사는 수준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꽤 넉넉하게 잘 사는 집에서 태어난 금비는 자신의 집이 별장보다 작다는 생각에 인상을 찌푸리며 괜스레 부잣집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우리 집 정원보다 작네.’
한편 저승의 대왕이었던 그는 자신의 집을 상상하면서 이곳 부잣집 사람들은 하나같이 왜 이리 포부가 작은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부자라고 불릴 정도면 저런 정원 수준보다는 더 크게 만들 수 있을 거 아닌가.
‘그나저나…….’
염라는 올라가면서 다시 산을 살펴봤다. 겨울임에도 마치 바닥을 먹물로 칠한 것 마냥 까맣고, 음침한 숲. 분명히 밝은 낮인데도 어두워 보였으며 마치 밤처럼 숲속이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이 정도의 귀기면 거의 강령술로 귀신을 왕창 부른 수준이 아닌가 싶었다.
하긴, 염라도 염라대왕일 때 저승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욕하고 저주했다. 부잣집 사람들이라고 다르겠는가. 태초부터 저승의 지배자였다는 권리가 주어진 염라대왕과 달리 그들은 권력을 얻기 위해 인성을 포기하고 돈을 얻기 위해 사람을 포기한 자들 아닌가. 아마 최구용 또한 원한을 산 귀신들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알아봐야겠군. 원래 귀신 산 같은 곳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저승사자들이나 악마, 탐들이 몰려오거나 사람들이 관광지로 삼기 전에 이곳을 깨끗하게 만들어야 했다.
‘저승사자들이 안 하니 내가 하는구먼.’
원래는 저승사자들이 이런 귀기가 짙은 곳으로 가서 사람들에게 피해주기 전에 정화하는 일을 하는데, 그 일을 염라가 맡게 되니 진짜 말단이 된 느낌에 분위기가 축 쳐졌다.
뼛속까지 시린 추위인지 아니면 귀신들의 서늘한 기운인지 절로 몸이 움츠러든 금비는 주위를 조심스레 살펴봤다.
나무 뒤에 인간의 눈보다도 커다란 눈을 가진 여자가 얼굴을 빼꼼 내밀고 금비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으…….”
보기만 해도 오싹해져서 금비는 다시 못본 척 고개를 돌리고 앞만 바라봤다.
“그, 저기… 염라 씨. 저 괜찮아요? 저기 집주인 이사님처럼 귀신들이 빙의하는 거 아니죠?”
“아, 뭐…….”
염라가 귀찮은 표정으로 대답하지 않자, 금비는 겁에 질린 표정과 함께 화가 난 표정으로 소리쳤다.
“아, 뭐… 라뇨! 대답이 뭐 그래요! 하나뿐인 제자가 어떻게 되는지 걱정도 안 돼요?”
“악마한테도 씌어놓고 귀신한테 씌는 걸 걱정해?”
“뭔 상관이에요! 바퀴벌레 한 번 몸에 기어 올라왔다고 다른 바퀴벌레들도 기어오게 냅둬요?”
오, 제법. 귀신을 바퀴벌레에 비유한 건 귀신이 기분 나빠하겠지만 어쨌든 그녀가 그렇게 맞받아 칠 줄은 몰랐던 건지 염라는 속으로 감탄하며 그녀를 자리에 내려놨다.
확실히 금비는 신기가 없기 때문에 여러 잡귀들한테는 빙의하기 딱 좋은 먹이였다. 그녀가 사용하는 신의 언어는 퇴마를 도와주는 무기보단 세상의 물리 법칙을 입맛대로 만지는 일종의 치트 키 같은 것이었기에 귀신들을 보호하는 힘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염라는 품에서 작은 메모장과 볼펜을 꺼내더니 그림과 문자를 끄적였다.
처음에 금비는 그게 뭔지 몰랐으나 지금은 그가 부적을 쓰고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보통 영험한 부적이라면 노란 종이에 정성을 다해 쓰는 게 기본일 텐데, 염라는 그런 것 없이 그냥 대충 써서 내밀었다.
부적의 내용도 전부 직설적이었다. 이를 테면, 오지마라, 쫓아내라, 붙어라 등… 사실 부적인지 그냥 글씨인지도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렇게 부적 대충 써도 돼요?”
염라는 메모장 한 페이지를 뜯어내 금비에게 건넸다.
“아니. 원래 신한테 좀 기도하고, 정성스레 써야 하는데… 난 필요 없어.”
그가 신인데 누구한테 기도를 한단 말인가. 그가 쓰는 글이 곧 부적이고, 곧 자연의 법칙인데. 하지만 금비는 그가 단순히 실력이 좋다 생각하며 자신도 언젠가 저런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오, 그래도 이번 건 좀 부적 같네요.”
일전에 대충 쓴 것 같은 부적들과 달리 이번에 염라가 건네준 것은 제법 길고 특이한 문자와 그림이었다.
『천지의 음과 양이요, 이치와 기운의 변동이요, 차고 더움의 정기니, 나누면 한 이치가 만 가지로 다르게 나타나고 합하면 한 기운일 따름이니라.』
“가지고 있는 것 자체로 충분히 영험하긴 한데, 잘 가지고 있다가 귀신들이 몰려올 것 같으면 태워. 라이터는 있나?”
금비는 주머니에서 편의점에서 파는 일회용 라이터를 꺼내 흔들었다.
“다른 거에 방해 받으면 안 되니까 미리 써주는 거야. 게다가 그쪽은 몸을 지킬 만한 신기가 없으니까.”
염라의 말에 금비는 차분히 가라앉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씩 그녀는 자신이 진짜 퇴마사라도 된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염라는 몇 번이고 그녀의 환상을 부수며 그쪽은 퇴마 재능이 완전히 없다고, 다른 퇴마사들은 기본적으로 하는 걸 못하는 게 될 법한 일이냐며 면박을 주었다.
“들어가시죠.”
어느덧 별장 앞에 선 그들은 사용인이 문을 열어주자 꽤 커다란 집에 발을 들였다.
“넓다!”
염라와 금비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거실이 그들은 제일 먼저 맞이했고, 사용인은 위층으로 올라가면 이사님이 계신다며 안내했다. 그때 염라는 발걸음을 멈추고 사용인에게 물었다.
“아, 저는 괜찮습니다. 여기서 기다리도록 하죠.”
“하지만…….”
사용인은 금비를 바라보며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차에서 말하는 걸 들어보니 금비는 퇴마 일이 처음인 듯싶었고, 딱 보기에도 부족한 게 많아보였다. 아무리 봐도 퇴마 조수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던 사용인은 제발 염라가 해주기를 바라며 말을 끌었다.
금비는 약간 무시당했단 느낌에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어색한 웃음으로 기분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저 사람이 잘못돼도 내가 바로 도울 수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보다 저는 이 집 외적인 부분을 손봐야 할 것 같은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염라는 품에서 메모장을 꺼내 똑같은 문양과 글자를 그려 넣더니 다섯 장 정도 찢어내서 사용인에게 보여주었다.
“집 안에 잡귀가 가득해요. 그쪽 주인님은 쓰러져 있으니 그쪽에게 물어봐야겠네요. 저 사람 안내해 주고 나면 저랑 이야기 좀 합시다.”
그의 말에 금비와 사용인은 힉, 하고 놀라며 집 안을 쉭쉭 바라봤다. 사용인이 눈에는 당연히 안 보이겠지만 금비는 금방 집 안에 있는 귀신들을 눈치챌 수 있었다.
마치 벽에 녹아든 것 마냥 눈이나 얼굴만 내밀고 금비와 염라, 사용인을 바라보며 씩 웃고 있었다.
“이, 일단… 이쪽으로 오시죠.”
금비는 사용인에게 끌려가면서도 염라를 바라보며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무, 무서워요, 염라 씨! 가, 같이 좀 도와주시지!’
하지만 마음속으로 외쳐봐야 염라는 아무런 반응 없이 주변만 바라보며 곳곳에 부적을 붙이고 있었다.
“아씨… 무서워어어!”
8. 첫 퇴마 시험 (2)
부우웅―
엔진 소리가 잔잔한 호화로운 자동차 안에서 염라와 금비는 도착지까지 뒷좌석에 앉아서 대기하고 있었다. 금비는 긴장을 한 상태로 이미 수십 번이고 읽어서 외웠을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서류 뭉치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거 계속 보고 있으면 뭐가 달라져?”
염라는 퀭해진 눈으로 서류를 보고 있는 그녀를 보며 묻자 금비는 고개를 살짝 돌려 염라를 바라보더니 다시 서류 뭉치로 시선을 옮겼다.
스스로 처음 해보는 일이었기에, 금비는 마치 해외여행을 홀로 처음 나가는 기분처럼 걱정만이 앞서고 있었다.
염라와 금비는 현재 테마 그룹에서 보내온 자동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염라는 자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번화가를 벗어나 줄줄이 늘어진 건물들과 길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이 휙휙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 안에서는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 가득했고, 뚫어지게 서류 뭉치를 바라보던 금비는 눈이 아픈 듯 눈을 지끈 감으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아아, 이렇게 본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그거 방금 내가 했던 대사 같은데.”
절대 실수하지 않겠다, 나도 잘해 보이겠다는 일념으로 금비는 이번에는 핸드폰에 적어뒀던 염라가 알려준 주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요, 저기요. 염라 씨, 나 잘할 수 있겠죠?”
금비는 한 손으로는 스마트 폰을 잡고 바라본 채 한 손으로는 날파리처럼 염라를 툭툭 치며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가만히 있던 염라는 짜증난 듯한 마디 툭 던졌다.
“못해.”
직설적으로 던진다고 토라질 거였으면 진작 토라졌을 것이다. 그녀는 염라의 그런 반응을 예상한 듯 바로 맞받아쳤다.
“아씨! 좀 제가 이렇게 긴장하면 용기 좀 북돋아줘요!”
실패하면 좀 귀찮아지긴 할 테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능력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염라는 그녀가 어떻게 되든 살아만 있으면 관심이 없었다.
“어떻게든 살려는 드릴게.”
잘못되면 죽기라도 한 단건가, 하는 생각에 금비는 이내 절망한 듯 고개를 떨어뜨렸고 염라는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고 생각에 잠겼다.
지금은 그녀의 일보다는 백화점을 향해 혼령들이 몰려갔다는 것에 더 신경이 쓰였다. 사라에게 알아보라고는 했지만 사라는 염탐에 특출난 능력이 없었다. 누구 하나 피떡으로 만든 뒤 붙잡고 물어보지나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염라가 뒷조사 하는 건 들킬 염려가 너무 컸기에 자신의 곁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곤 사라밖에 없었다.
보통 이런 시련을 당하면 주변의 동료 한두 명쯤은 더 있지 않던가, 그것도 종류별로. 머리 쓰는 쪽, 전투 쪽, 의료 쪽 등등… 왜 염라 주변에는 덜 떨어진 반푼이 인간과 싸움에만 특출 난 경호원이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운이 좋지 않은 편이라 생각했다.
계속 앉아만 있으니 힘들었던 건지 금비는 운전석에 있는 테마 그룹의 사용인에게 물었다.
“저기… 얼마나 더 가야해요?”
사용인은 정면 한 번, 내비게이션을 한 번 보고는 간단하게 답했다.
“삼십 분만 더 가면 됩니다.”
금비는 털썩 앉아 이젠 아예 외울 정도로 신물 나게 본 서류 뭉치를 집었다.
테마 그룹의 이사, 최구용. 회장과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업 파트너, 그의 생애를 쭉 본 금비의 감상은 어릴 때부터 무척 욕심이 많았으며 이사가 됐을 무렵에는 야욕가의 본성을 드러낸 탐욕스러운 인물이었다. 재력으로 결혼한 인물이었으며, 자식은 딸 하나, 아들 하나.
테마 그룹을 차지하고 싶어 하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그럼에도 테마 그룹 회장은 그를 거두고 있는 중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밝히는 이유가 뭐지?’
테마 그룹 쪽에서 직접 보내온 문서들일 텐데 마치 퇴마사들이 그를 처리해 주길 바라는 느낌이었다.
“도착했습니다.”
도무지 금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문서들을 읽고 있을 때, 어느덧 시간이 꽤 지난 건지 사용인이 산 입구에 차를 멈춰 세우며 차에서 내렸다.
염라와 금비 또한 차에서 내려 주변을 바라봤다.
도시에서 제법 멀리 온 건지 공기가 상당히 맑았고 미세 먼지만 가득해 보이지 않았던 도시의 하늘과 다르게 깨끗하고 푸른 하늘이 여실히 보였다.
“이쪽으로…….”
사용인이 산 입구에 잘 깔려진 나무 계단을 가리키며 올라가자 금비는 주변을 휙휙 둘러보고는 으슬으슬 들어오는 산의 차가운 공기를 막기 위해 자기 몸을 꽉 껴안고 올라갔다.
스무 계단쯤 올라갔을까, 금비는 계단을 오르다 말고 주변을 바라봤다.
벌건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심지어 나뭇잎 하나 없는데도 불구하고 산은 제법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여기 뭔가…….”
“그쪽도 느꼈나보네. 귀기(鬼氣)야.”
금비는 힉, 하며 창백해진 얼굴로 혹여나 염라를 놓칠세라 그의 옆에 찰싹 붙어 움직였다.
“귀기요? 귀신을 말하는 거죠? 귀신이 있어요?”
무슨 소리 하는 건가. 염라는 자신의 팔을 꽉 안은 금비를 떼어내며 당연하지 않냐며 말했다.
“그쪽도 지금 귀신 퇴치하러 가는 거거든요. 무서워하면 어떻게 해요.”
“그, 그래도! 귀신이 싫은 건 싫어요!”
다른 상황이면 이해가 가지 않았겠지만, 상황이 상황인 듯 염라는 주변을 슥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산이 워낙 정기가 맑아 귀신들의 소굴이 되는 경우는 많았지만 이건 마치 강령술이라도 한 것 마냥 산이 온통 한이 많은 귀신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칠판을 긁는 듯한 섬뜩한 기운에 염라조차도 소름이 돋는데 하물며 인간이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아직 금비는 못 본 듯싶지만 아마 곧 돌아보면 지구 한 바퀴 돈 것 마냥 온갖 귀신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등골이 오싹한데… 온통 귀신 천지 맞죠? 제가 지금 안 보고 있어서 안 보이는데 지금 시선이 느껴져요!”
호들갑 떨며 염라를 흔들자 인내심에 한계를 느꼈던 그는 그녀를 한 손으로 들고 걸어 올라갔다.
“헉.”
진짜 살이 많이 빠지기라도 한 걸까. 사람이 한 손으로 들다니. 금비는 놀라서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만져봤지만 그렇게 빠지진 않은 것 같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뼈 무게라는 게 있는데 염라는 힘들이지 않고 한 손으로 금비를 풍선 들 듯 들고 있어 벙 쪘다.
“신부님… 쉽다더니.”
염라가 중얼 거리자 금비는 염라의 손에 매달린 채 그를 바라봤다.
“그쪽, 좀 힘들겠네.”
“그게 무슨……?”
“제법 원한이 깊은 놈이라… 힘내봐.”
염라가 사악하게 씩 웃자 금비는 헉 하고 숨을 삼키더니 이내 산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네에에에에에?”
금비가 겁먹은 표정으로 염라의 손에서 발버둥 칠 때 계단 끝, 저편에 산 공기 맡으며 편하게 쉴 수 있는 호화로운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귀신을 볼 수 있는 사람들로서는 산 자체가 귀기가 가득해서 그다지 편하게 느껴지는 장소는 아니었다.
“저곳이 최구용 이사님이 계신 별장입니다.”
별장을 바라본 금비와 염라는 각자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우와… 부잣집은 뭐가 돼도 다르구나. 우리 집도 못 사는 수준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꽤 넉넉하게 잘 사는 집에서 태어난 금비는 자신의 집이 별장보다 작다는 생각에 인상을 찌푸리며 괜스레 부잣집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우리 집 정원보다 작네.’
한편 저승의 대왕이었던 그는 자신의 집을 상상하면서 이곳 부잣집 사람들은 하나같이 왜 이리 포부가 작은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부자라고 불릴 정도면 저런 정원 수준보다는 더 크게 만들 수 있을 거 아닌가.
‘그나저나…….’
염라는 올라가면서 다시 산을 살펴봤다. 겨울임에도 마치 바닥을 먹물로 칠한 것 마냥 까맣고, 음침한 숲. 분명히 밝은 낮인데도 어두워 보였으며 마치 밤처럼 숲속이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이 정도의 귀기면 거의 강령술로 귀신을 왕창 부른 수준이 아닌가 싶었다.
하긴, 염라도 염라대왕일 때 저승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욕하고 저주했다. 부잣집 사람들이라고 다르겠는가. 태초부터 저승의 지배자였다는 권리가 주어진 염라대왕과 달리 그들은 권력을 얻기 위해 인성을 포기하고 돈을 얻기 위해 사람을 포기한 자들 아닌가. 아마 최구용 또한 원한을 산 귀신들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알아봐야겠군. 원래 귀신 산 같은 곳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저승사자들이나 악마, 탐들이 몰려오거나 사람들이 관광지로 삼기 전에 이곳을 깨끗하게 만들어야 했다.
‘저승사자들이 안 하니 내가 하는구먼.’
원래는 저승사자들이 이런 귀기가 짙은 곳으로 가서 사람들에게 피해주기 전에 정화하는 일을 하는데, 그 일을 염라가 맡게 되니 진짜 말단이 된 느낌에 분위기가 축 쳐졌다.
뼛속까지 시린 추위인지 아니면 귀신들의 서늘한 기운인지 절로 몸이 움츠러든 금비는 주위를 조심스레 살펴봤다.
나무 뒤에 인간의 눈보다도 커다란 눈을 가진 여자가 얼굴을 빼꼼 내밀고 금비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으…….”
보기만 해도 오싹해져서 금비는 다시 못본 척 고개를 돌리고 앞만 바라봤다.
“그, 저기… 염라 씨. 저 괜찮아요? 저기 집주인 이사님처럼 귀신들이 빙의하는 거 아니죠?”
“아, 뭐…….”
염라가 귀찮은 표정으로 대답하지 않자, 금비는 겁에 질린 표정과 함께 화가 난 표정으로 소리쳤다.
“아, 뭐… 라뇨! 대답이 뭐 그래요! 하나뿐인 제자가 어떻게 되는지 걱정도 안 돼요?”
“악마한테도 씌어놓고 귀신한테 씌는 걸 걱정해?”
“뭔 상관이에요! 바퀴벌레 한 번 몸에 기어 올라왔다고 다른 바퀴벌레들도 기어오게 냅둬요?”
오, 제법. 귀신을 바퀴벌레에 비유한 건 귀신이 기분 나빠하겠지만 어쨌든 그녀가 그렇게 맞받아 칠 줄은 몰랐던 건지 염라는 속으로 감탄하며 그녀를 자리에 내려놨다.
확실히 금비는 신기가 없기 때문에 여러 잡귀들한테는 빙의하기 딱 좋은 먹이였다. 그녀가 사용하는 신의 언어는 퇴마를 도와주는 무기보단 세상의 물리 법칙을 입맛대로 만지는 일종의 치트 키 같은 것이었기에 귀신들을 보호하는 힘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염라는 품에서 작은 메모장과 볼펜을 꺼내더니 그림과 문자를 끄적였다.
처음에 금비는 그게 뭔지 몰랐으나 지금은 그가 부적을 쓰고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보통 영험한 부적이라면 노란 종이에 정성을 다해 쓰는 게 기본일 텐데, 염라는 그런 것 없이 그냥 대충 써서 내밀었다.
부적의 내용도 전부 직설적이었다. 이를 테면, 오지마라, 쫓아내라, 붙어라 등… 사실 부적인지 그냥 글씨인지도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렇게 부적 대충 써도 돼요?”
염라는 메모장 한 페이지를 뜯어내 금비에게 건넸다.
“아니. 원래 신한테 좀 기도하고, 정성스레 써야 하는데… 난 필요 없어.”
그가 신인데 누구한테 기도를 한단 말인가. 그가 쓰는 글이 곧 부적이고, 곧 자연의 법칙인데. 하지만 금비는 그가 단순히 실력이 좋다 생각하며 자신도 언젠가 저런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오, 그래도 이번 건 좀 부적 같네요.”
일전에 대충 쓴 것 같은 부적들과 달리 이번에 염라가 건네준 것은 제법 길고 특이한 문자와 그림이었다.
『천지의 음과 양이요, 이치와 기운의 변동이요, 차고 더움의 정기니, 나누면 한 이치가 만 가지로 다르게 나타나고 합하면 한 기운일 따름이니라.』
“가지고 있는 것 자체로 충분히 영험하긴 한데, 잘 가지고 있다가 귀신들이 몰려올 것 같으면 태워. 라이터는 있나?”
금비는 주머니에서 편의점에서 파는 일회용 라이터를 꺼내 흔들었다.
“다른 거에 방해 받으면 안 되니까 미리 써주는 거야. 게다가 그쪽은 몸을 지킬 만한 신기가 없으니까.”
염라의 말에 금비는 차분히 가라앉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씩 그녀는 자신이 진짜 퇴마사라도 된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염라는 몇 번이고 그녀의 환상을 부수며 그쪽은 퇴마 재능이 완전히 없다고, 다른 퇴마사들은 기본적으로 하는 걸 못하는 게 될 법한 일이냐며 면박을 주었다.
“들어가시죠.”
어느덧 별장 앞에 선 그들은 사용인이 문을 열어주자 꽤 커다란 집에 발을 들였다.
“넓다!”
염라와 금비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거실이 그들은 제일 먼저 맞이했고, 사용인은 위층으로 올라가면 이사님이 계신다며 안내했다. 그때 염라는 발걸음을 멈추고 사용인에게 물었다.
“아, 저는 괜찮습니다. 여기서 기다리도록 하죠.”
“하지만…….”
사용인은 금비를 바라보며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차에서 말하는 걸 들어보니 금비는 퇴마 일이 처음인 듯싶었고, 딱 보기에도 부족한 게 많아보였다. 아무리 봐도 퇴마 조수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던 사용인은 제발 염라가 해주기를 바라며 말을 끌었다.
금비는 약간 무시당했단 느낌에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어색한 웃음으로 기분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저 사람이 잘못돼도 내가 바로 도울 수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보다 저는 이 집 외적인 부분을 손봐야 할 것 같은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염라는 품에서 메모장을 꺼내 똑같은 문양과 글자를 그려 넣더니 다섯 장 정도 찢어내서 사용인에게 보여주었다.
“집 안에 잡귀가 가득해요. 그쪽 주인님은 쓰러져 있으니 그쪽에게 물어봐야겠네요. 저 사람 안내해 주고 나면 저랑 이야기 좀 합시다.”
그의 말에 금비와 사용인은 힉, 하고 놀라며 집 안을 쉭쉭 바라봤다. 사용인이 눈에는 당연히 안 보이겠지만 금비는 금방 집 안에 있는 귀신들을 눈치챌 수 있었다.
마치 벽에 녹아든 것 마냥 눈이나 얼굴만 내밀고 금비와 염라, 사용인을 바라보며 씩 웃고 있었다.
“이, 일단… 이쪽으로 오시죠.”
금비는 사용인에게 끌려가면서도 염라를 바라보며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무, 무서워요, 염라 씨! 가, 같이 좀 도와주시지!’
하지만 마음속으로 외쳐봐야 염라는 아무런 반응 없이 주변만 바라보며 곳곳에 부적을 붙이고 있었다.
“아씨… 무서워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