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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 : 소울 콜렉터 1권 (21화)


8. 첫 퇴마 시험 (1)

금비는 번화가를 거닐며 신부가 준 서류를 닳도록 읽어보고 있었다.
가벼운 신상명세서, 진료 기록서, 생활기록부 등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등이 있어 만나지 않아도 어떤 성격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우와, O형이래요. 나랑 같은 혈액형이네.”
“그런 쓸모없는 거 보지 말고, 좀 건실한 걸 봐.”
염라가 문서 한 곳을 손으로 두드리자 금비는 입을 삐쭉 내밀며 바라봤다.
“테마 그룹의 일원이네요. 그래서 중요하다고 했구나!”
“보통 제 가족은 더 중요하게 여기는 법이니까.”
“에, 가족이에요? 그런 건 안 나와 있는데.”
혈연이 아니라 사업으로서의 가족을 뜻하는 거였는데. 염라는 한숨을 쉬며 이런 애를 맡아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탓했다.
누가 운명을 짜준 건지 몰라도 좀 똑똑하고, 좀 더 가능성 있는 애를 내려줄 것이지, 가장 쓸 일 없는 카드가 적절한 순간에 아주 조금 도움이 되는 정도였다. 이것보다 좋은 카드는 쌔고 쌨는데 왜 자신에겐 오지 않은 건지.
금비는 자신이 잘못 봤나 싶어 종이를 앞뒤로 넘기며 뒤적뒤적 거리더니 염라에게 속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튼, 그럼 언제 퇴마 시작해요?”
“며칠 뒤에 하자. 그쪽한테 가르쳐야 할 것도 있고, 갑자기 그쪽에 들이닥칠 수는 없으니까.”
“알겠어요! 그럼 이거 먼저 달달 외워야지!”
금비는 서류를 흔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듯 웃고는 염라에게 방방 손을 흔들었다.
“내일 봬요!”
번화가 거리에서 금비와 헤어지자 어느새 사라가 인파 속에서 뒤따라와 염라의 옆을 걷고 있었다.
“주변에 저승사자들의 기척은 없습니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네요. 그 저승사자가 이야기 하지 않았더라도 갑자기 연락이 끊기면 수상해서 정찰을 보낼 텐데.”
“나도 지금 그게 이상해. 그래서 네게 주변을 맡기는 거야. 나보다 눈이 더 좋으니까.”
염라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품에 그가 만든 부적 몇 개를 품고 다녔다. 이걸로 저승사자들을 어쩌진 못하겠지만 최소한 움직임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우뚝―
염라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바닥을 바라봤다.
“왜 그러십니까?”
심각한 얼굴로 바닥을 보는 염라를 따라 사라도 시선을 내렸다.
흔한 길바닥이었다. 잘 깔려진 자갈들 사이로 일정 거리에 따라 틈새가 있었고 그 틈새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으나 딱히 문제가 될 정도로 수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음, 아냐. 요새 너무 예민해져서 별 게 다 수상해 보이는구먼. 괜히 걷고 있는 사람은 저승사자나 악마 같고, 가로등들은 어떤 무기로 보이고…….”
“제가 있으니 이제 좀 쉬시기 바랍니다.”
사라가 그의 마음을 잘 다독이자 염라는 그녀가 있어 다행이라며 웃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퇴마 협회라면 많은 퇴마사들이 있을 텐데, 염라 님은 위험하지 않으신 겁니까?”
그가 아무리 퇴마사를 자처하고 있다지만, 그리고 그가 아무리 신이라고 하지만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악마나 탐, 악령,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초자연적인 존재들을 없애는 자들이었기에 그게 설령 신이라고 한들 그들은 염라가 신인지 악마인지 구별할 순 없었기에 시선이 곱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처럼 행동하고 다니는 거야. 그들이 내게 보이는 기운은 처음 보는 기운이기에 굉장히 모호하게 느껴질 텐데 그렇다고 인간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면 바로 퇴마당할 테니까.”
“신도 퇴마를 당합니까?”
“퇴마는 신성한 힘 같은 게 아냐. 신에게 힘을 빌려오는 거라 생각하는 녀석들이 있는데, 다 본인 힘이야. 이끌어 내는 방식이 다를 뿐. 퇴마사들이 하는 퇴마는 다른 세계의 존재를 원래 있던 세계로 쫓아 보내는 거지. 그걸 잘 포장해서 악마나 악령 등을 쫓는 힘이라고 하는 거고.”
사라는 역시 인간들은 선동당하기 참 쉽군요, 라며 주변을 지나가는 인간들을 보고 마치 비웃듯 씩 웃었다.
“아무튼 걱정 없어. 게다가 퇴마 협회에는 반신 혼혈도 많아서 내가 신인지 인간인지 잘 구별 못할 거야.”
“반신 혼혈… 그렇군요. 인간과 신의 혼혈. 그들이 아직도 존재 하는군요.”
다시 발걸음을 멈춘 염라는 하늘을 바라보며 양팔을 쫙 벌렸다.
“세상이 악으로 뒤덮을 때, 신의 사도가 내려오리라. 신들은 그런 말로 인간들과 살을 섞지. 악마들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까 미리미리 만들어 두는 거야.”
그렇다고 신과 살을 섞은 인간들 사이로 항상 반신이 태어나는 건 아니었다. 신의 피를 물려받은 아이로 태어날 확률은 1할. 인간의 그릇이 신의 힘을 받아들이기에는 그 육체가 너무 연약하기에 정말 특출나게 강한 아이가 아닌 이상은 애초에 수정조차 되지 않았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신들이 인간과 사랑을 나눴을 텐데도 불구하고 반신의 혼혈이 적고, 반신 영웅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경우가 이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혼혈이라 하니까 악마와의 혼혈이 떠오르네요.”
“…아, 맞아. 그건 더 드문 일이었지.”
악마나 천사들은 신들과 달리 인간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날 수가 없었다. 혼이 아예 없던 신들과 달리 혼이 있는 악마와 천사들은 인간이랑은 혼의 구조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었는데, 그중 한 악마는 색다른 방법으로 교묘히 이용해 악마의 아이를 태어나게 만들었다.
지옥에 있어야 할 사탄이 언제인지 자신의 혼 일부를 떼어내서 양의 세계에 사는 생물 하나에게 뿌리고 갔었다. 아마 지옥에 갇히기 수천만 년 전이 아닐까 싶었는데 그 씨앗이 윤회를 통해 돌고, 돌고, 돌며 인간으로 태어나게 된 것이었다.
“이름이 데미안이었던가.”
아이가 태어난 시간, 6시 6분 6초. 악마의 숫자 ‘666’. 그때까지만 해도 인간들은 물론이고 신들조차 그 숫자가, 그리고 그 아이가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알지 못했다.
그가 성인 되고, 기묘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새로 태어나야 할 아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죽지를 않나, 신도들이 갑자기 누군가를 향해 경배를 하고, 신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그 꼬리를 찾다가 발견한 것이 데미안. 유일무이한 인간계의 사탄의 자식.
전혀 유래 없던 대악마의 출현. 고작 인간의 몸으로 대악마와 필적한 힘을 가진 아이는 인간계를 뒤엎기 위해 자신과는 완전히 상극인 예수가 태어날 모든 가능성을 배제시켰지만 결국엔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염라의 심판 아래 팔열지옥 중 가장 끔찍한 곳인 대초열지옥으로 보내 버렸던 걸 염라는 기억했다.
“…그 녀석이 환생까지 얼마나 남았지?”
염라는 데미안을 굉장히 예의주시했다. 다른 반신의 혼혈들은 육체가 끝나고 나면 그로써 신의 피를 물려받은 힘이 없어진다. 혼에는 신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탄의 자식은 달랐다. 사탄이 뿌린 씨앗이 단순히 육체의 씨앗이 아닌, 사탄의 어떤 힘의 산물이었기에 마치 바이러스가 사람의 몸을 숙주 삼아 기생하듯 사탄의 힘이 다른 생물의 혼으로 들어가 기생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감시가 약해졌을 때, 사탄의 힘은 막 태어날 생명의 혼으로 들어가 이 세상에 현현한 것이었다. 마치 예수가 태어나는 것처럼.
그걸 막기 위해 염라는 데미안이 생전의 죗값을 치르고 지옥에서 나와 윤회를 하기까지 얼마나 남았나 세고 있었다.
“그냥 소멸시키면 되지 않나요?”
사라의 말에 염라는 고개를 흔들었다. 악마의 힘이 깃든 혼이라고 하나 원래는 아무런 죄 없는 깨끗한 혼이었다. 단순히 악마의 혼이 깃들었다고 해서 소멸시키는 것은 안 될 일이었다.
반대로 신의 힘이 깃든 혼이 죄를 지었다면 천국으로 보내야 하는 건가. 저승은 저승의 율법이 있었다. 인간은 생전의 행실에 따라 지옥 또는 천국으로 보내는 것이지 소멸시키는 것은 그런 저승의 율법을 어긴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었다.
“만일 염리 아가씨가 지옥에서 그 혼을 꺼낸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생각하기도 싫지만 이미 꺼냈을 수도 있겠어.”
일 년 동안 많은 걸 바꾼 그녀였기에 지옥에 있는 그 혼을 꺼낼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악마들과 달리 데미안은 인간의 혼이었기에 충분히 환생을 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인간세계로 나올 수 있었다.
사아아―
“……?”
등줄기를 따라 뱀이 타고 오르듯 올라오는 오싹한 한기. 염라는 오싹해진 기운에 인파 속을 거닐며 주위를 둘러봤다. 양기가 가득한 인파 속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음기. 건물 사이사이에 있는 골목길에서부터 반투명한 형태의 사람들이 물밀 듯 휩쓸려 나오고 있었다.
저승사자들의 인도 아래 저승으로 가야 할 혼령들이었다. 그런 혼령들이 뭔가에 홀린 것 마냥 한 곳을 향해 마치 좀비처럼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사라는 혹여나 염라가 무슨 일을 당할까 옆에서 붙어 염라에게 다가오는 자들이 없는지 혼령들을 향해 흘겨봤고, 염라는 이 기묘한 현상에 왜 저승사자 한 명이 없는지도 의문을 품고 있었다.
언뜻 봐도 족히 백은 되어 보였다. 수많은 혼이, 그것도 전생에 인간이었던 혼들이 어느 한곳으로 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염라는 거대한 빌딩이 자신의 눈앞에 들어오는 것을 확인했다.
방금 전, 염라가 나온 테마 백화점.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오른 백화점을 향해 혼들이 마치 빨려 들어가듯 백화점을 향해 몸을 던졌다.
“혼령들이 저 백화점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퇴마사들의 짓일까요?”
“아니. 퇴마사가 이 많은 혼령을 끌어 모을 수는 없어. 혼령이 이렇게 모이는 것도 모이는 거지만… 이 상황에 저승사자가 안 보이는 게 더 이상하다.”
“어차피 일을 안 하지 않습니까. 그들이 없는 건 문제가 되는 게 아닐 거 같은데요.”
“저승사자들이 인도하는 걸 뜻하는 게 아냐. 그 녀석들 기준으로 먹을 음식이 이렇게 많은데도 안 보인다고? 그래, 저승사자는 일이 있어서 못 온다고 쳐도, 탐은? 그리고 악마는?”
이 일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생각한 염라는 이를 꽉 물고 테마 백화점으로 걸어가려고 했다.
척, 하고 사라가 그의 손목을 꽉 잡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안 됩니다. 무슨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곳에 염라 님이 가시면…….”
원래의 염라라면 전혀 문제가 없을 테지만 지금의 염라는 너무나 나약했다. 본래 힘의 1할밖에 발휘하지 못한다면 끽 해야 탐 몇 마리 없애고 끝날 것이다. 염라의 목숨도 목숨이지만 그의 품에는 중요한 물건, 옥새가 있었다. 저게 만일 염리의 계획이라면 절대 말려들어선 안 됐다.
“…알겠어. 하지만 알아볼 가치는 충분히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