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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 : 소울 콜렉터 1권 (20화)


7. 흉터 아가씨 (3)

번화가 거리의 중앙에 있는 거대 쇼핑몰, 테마 백화점. 높이도 높이지만 크기도 커, 한국 제일의 쇼핑몰이라 불리는 거대한 백화점이었다.
“여기는 왜……?”
금비는 이런 백화점에 들어오는 것조차 처음이었기에 기에 눌린 표정으로 백화점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아무나 이용할 수 있는 백화점이 아닌 듯 매장 입구에는 검은 정장에 건장한 체격의 사내 두 명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회원 카드를 보여주십시오.”
사내가 염라와 금비를 막아서며 말하자 염라는 지갑에서 ‘VIP+’라 적힌 카드를 내밀었다. 사내는 그 카드를 받아들고 보안 시스템에 올려놓았다.
붉은 빛이 카드를 지나가더니 이내 컴퓨터에 떠오르는 녹색 창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염라에게 카드를 건넸다.
“협조 감사드립니다. 뒤에 계신 여성분은?”
“제 파트너입니다. 보증인 자격으로 한 명 정돈 가능하죠?”
건장한 체격의 사내들이 무섭지 않은 듯 염라가 능숙하게 말하자 사내들은 알겠다며 염라와 금비를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즐거운 쇼핑되시기 바랍니다.”
금비는 염라가 움직이기 불편할 정도로 염라의 등에 딱 달라붙어 걷고 있었다.
“우와, 우와… 저 여기 처음 와 봐요. 소문으로는 아무나 못 들어가게 한다더니 진짜 막 회원증도 있고 그러네요. 염라 씨는 여기에 VIP 플러스라 돼 있던데 도대체 언제…….”
“테마 백화점은 퇴마를 인정하는 테마 그룹이 퇴마사들을 후원하며 만든 거야.”
“오…….”
퇴마에 대한 것들을 모두 사실이라 믿으며 퇴마사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테마 그룹. 퇴마사들에게 발생한 사건이라든지, 혹은 실력은 좋지만 배를 곯는다거나 아니면 종교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던지 퇴마를 제외한 모든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도와주는 신기한 그룹이었다.
테마 그룹의 후원을 얻은 퇴마사들은 각지에 있는 퇴마사들과 쉽게 연락이 닿게 되며 그로 인해 퇴마협회라는 거출한 이름을 내걸고 퇴마사라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초기엔 테마 그룹에 후원을 받기 위해 너도 나도 퇴마사를 자칭하기 시작하고, 그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자 테마 그룹의 회장은 퇴마사들이 진짜 확인하기 위해 직접 퇴마를 시험해보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왜 퇴마사들을 후원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나, 지레짐작으로 테마 그룹의 회장은 퇴마사들을 모아 뭔가 무서운 짓을 벌이려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다만 퇴마라는 허황되고 미심쩍은 힘이기에 그 누구도 함부로 테마 그룹의 행동에 브레이크를 걸진 못했다.
“와, 그럼 무상으로 도와주는 건가요?”
“무상은 아니야. 정기적으로 퇴마로 인해 얻은 수입의 일부를 줘야 해. 물론 따로 제시된 금액은 없어. 십 원짜리라도 주고 이곳에 있고 싶다, 라는 의지를 표출하면 되지.”
“그럼 무상과 다를 게 없네요.”
“하나 더, 퇴마를 하기 전에 자신이 테마 그룹의 퇴마사라고 밝히는 게 중요해. 퇴마를 하고, 사람들을 도와주며 테마 그룹의 이미지를 높이는 사업이지.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이곳에 있게 해주는 거야.”
장사꾼들은 손해 보는 행위를 하지 않았기에 금비는 과연, 하며 그들의 속셈을 알고 싶어 했다. 하지만 염라도 그들이 속셈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의 목표인 저승으로만 멀쩡히 돌아가서 질서를 바로 세울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참, 그러고 보니 사라 씨는 어떻게 해요? 집에 두고 왔잖아요.”
“굳이 같이 올 필요가 없지.”
애초에 사라는 이곳에 못 들어온다. 사라는 이미 죽은 귀신과 같은 존재이기에 이곳으로 들어왔다간 바로 퇴마되어 지옥으로 가거나 천국으로 가거나, 아무튼 위험해진다. 게다가 회원권도 없기에 그녀가 퇴마사라고 알고 있는 금비에게 둘러대기도 마땅치 않아진다.
“걔는 걔 나름대로 행동이 있어.”
“아아… 친구라기에 엄청 같이 다닐 줄 알았는데.”
금비가 말한 친구는 단순히 파트너가 아닌 이성 친구인 줄 알았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자신보다 사라를 먼저 챙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자신과 둘이서만 오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염라와 금비는 구석에 버튼 하나 밖에 없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이제부터 그쪽이 만날 사람들은 죄다 퇴마사들이야. 퇴마 협회라는 이름답게 이곳 협회장부터 전부 퇴마사니까, 그쪽은 절대로 신계 언어를 할 수 있단 걸 비밀로 해야 해.”
“아… 그, 그럼 어떻게 해요? 저 퇴마 협회 가입시켜 주려고 한 거 아니에요?”
“맞아. 할 수 있다는 걸 입 밖으로만 내지 않으면 되니까… 뭐 당장 뭘 하는 건 아니니까 나중에 제가 시키는 대로만 해.”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금비는 답답한 심정에 이것저것 따지고 싶었지만 이 상황 자체가 자신의 지식 밖이라 그저 염라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염라는 어떻게 금비를 자연스럽게 퇴마사로 만들고 자신의 파트너로 데려올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우선 그녀의 특별한 능력을 사용하는 걸 보여준다. 어차피 퇴마사들은 그녀가 사용하는 언어가 뭔지 관심도 없을뿐더러, 제대로 듣지도 못할 것이다.
수많은 언어, 수많은 종교를 가진 퇴마사들이 모이는 곳이기에 그녀가 특별한 언어를 내뱉는다고 해서 이게 신계의 언어인지, 산스크리트어인지, 라틴어인지 뭔지도 모를 수밖에 없었다.
엘리베이터는 한참 내려가고 있었다.
“와, 진짜 깊네요.”
“퇴마사들을 후원하고 있다지만 그렇다고 일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퇴마사들이 돌아다니게 할 순 없으니까. 다들 기피할 거 아니야. 사실 이 백화점 아래에 퇴마사들이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할 걸.”
“어차피 일반 사람들은 여기 못 오지 않아요?”
“굳이 백화점이 문제가 아니라 이곳에 퇴마사들이 모여 있단 게 알려지면 이 근방에 사람이란 사람은 다 없어지겠지. 최소한 지금처럼 번화가는 아닐 거야.”
하긴, 하며 금비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 본다고 해도 기피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그런 사람들이 무더기로 있다고 하면 아마 근처에 오지도 않을 것이다.
띵―
드디어 깊고 깊게 내려가던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육중한 철문이 천천히 열리며 새로운 세상이 보였다.
검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긴 복도, 잘 깔려져 있는 레드 카펫. 그리고 복도에 끝에는 대강당의 문처럼 생긴 게 굳게 닫혀 있었고 문틈 사이로 색색의 빛이 깜빡 거리며 복도까지 울릴 정도로 커다란 진동이 느껴졌다.
온몸이 떨릴 정도로 울리는 진동에 금비는 염라에게 꼭 붙어 따라다녔다.
복도 끝에 다다라 소리가 크게 울리는 곳에 손을 뻗어 문을 열자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그녀의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쿵쿵쿵―!
녹색, 파란색, 붉은색 휘황찬란한 불빛이 정신없게 깜빡거리고 흔들렸고, 백 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홀 전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클럽 같은 곳이었다.
바 테이블에는 몇 명의 바텐더가 술을 만들고, 주문한 사람들에게 건네고 있었고, 홀의 중앙에는 커다란 무대 위에 많은 남녀가 살을 맞대고 춤을 추고 있었다.
무대 주변에는 꽤 많은 테이블이 무대를 감싸듯 둘러져 있었고 각각 테이블에는 평균적으로 서너 명에서 많으면 대여섯 명까지 모여 술을 마시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전체적인 모습은 클럽과 닮았지만 인테리어의 분위기가 사뭇 섬뜩했다.
두개골을 촛대 대용으로 해놓지 않나, 테이블보가 이상한 마법진으로 가득했고 부적을 태워서 먹는 사람도 있으며, 십자가 문양이 박힌 은제 단도를 가지고 돌리며 놀고 있는 사람, 여자들을 안으며 한 손에는 염주를 한 손에는 십자가를 들고 기도 하는 사람도 보였다. 아무리 봐도 퇴마사들 보다는 약간 사이코나 양아치 집단이 있는 곳으로밖에 안 보였다.
“너무 그렇게 사람들에게 시선 주지 마. 찍히니까.”
“힉.”
염라의 말에 금비는 재빠르게 염라의 등으로 시선을 거두고 그의 옷자락으로 얼굴을 숨겼다.
“근데 좀 뭐랄까… 신성한 분위기일 것 같았는데…….”
이건 아무리 좋게 봐도 클럽 분위기였다. 뭔가 퇴마사들에 대한 분위기가 깨진 느낌이었다.
“신성하고 체면 차리는 건 밖에서 이야기고. 아무래도 악마나 귀신들을 많이 보다보니 정신적으로 다들 지쳐 있어.”
“미쳐 있다고요?”
“지쳐 있다… 아니, 그것도 맞는 말이네.”
음악 소리가 너무 커서 제대로 들리지 않은 금비는 잘못 들은 듯 그렇게 말했으나 염라는 그 말도 틀리지 않았다는 듯 정정시켜주지 않았다.
염라는 내부를 계속 걸으며 부적으로 덕지덕지 붙인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일전에 염라에게 연락을 했던 신부가 클럽 소리가 들리는 환경 좋지 못한 방에서 경건하게 성경책을 읽고 있었다.
신부는 의외라는 듯 눈을 지그시 뜨며 그를 바라보더니 성경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염라? 자네, 이곳에는 웬일인가? 협회 가입할 때 빼고는 한 번도 안 오더니. 이거 퇴마사들이 좋아하겠는 걸.”
그가 퇴마사가 된지는 일 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는 퇴마 업계에서 굉장한 유명인이었다. 아무리 강력한 악마들이라도 그의 손에 닿으면 바스러지는 어마어마한 퇴마 실력. 그러면서도 일반 사람들까지도 반병신으로 만드는 잔혹함. 많은 이들이 그를 싫어하면서도 찾을 수밖에 없는 그 실력에 만나보지 못했어도 입소문으로 항상 나돌 정도였다.
그런 실력과 유명세에도 워낙 자신을 알릴 생각이 없던 염라는 딱 한 번 퇴마 협회에 가입한 이후로 온 적이 없었기에 신부는 그가 이곳에 오자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신부님은 이곳에서 책이 읽혀요? 차라리 집에 가서 읽으시는 게 좋을 텐데.”
“뭐, 여기 애들이 의뢰 받고 주는 걸 잘 못하다보니 내가 앉게 됐네. 며칠만 여기 있다 보면 저런 소음도 그냥 익숙해져.”
아무리 익숙하다 해도 여전히 시끄러운 듯 신부는 말과 다르게 문을 쿵 닫고 염라에게 물었다.
“그런데 진짜 웬일인가? 설마 일 달라고 여기까지 찾아온 건 아닐 테고, 심지어 근신 중인 사람이… 게다가 못 보던 아가씨까지 대동하고… 결혼 하나?”
“에, 아니… 아니요!”
오히려 금비가 놀라며 소리치자 염라는 조용히 좀 하라는 듯 그녀의 머리를 눌렀다.
“뭐랄까, 제자 같은 겁니다. 제 파트너가 되게 협회에 가입시켜 주려고요.”
“허어, 자네가 여기에 온 것도 놀라온데 제자라니? 그래, 뭐… 실력은 괜찮나?”
“제가 보증하죠.”
염라가 당당하게 말하자 금비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염라를 바라봤다.
보증한다니. 금비는 여태까지 염라에게 배운 것 하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와서 실력을 보증한다니. 자기한테 퇴마 재능이 없다고 한 것도 이 남자 아니었던가.
“자네가 보증한다니 믿겠지만… 그렇다고 바로 협회에 가입은 불가능하네. 시험은 봐야하니까.”
신부는 서류뭉치가 쌓인 책상으로 다가가더니 서류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어디… 염라를 쫓아다니며 퇴마는 배우긴 했을 테지만… 제대로 된 퇴마 일은 처음이겠지?”
쫓아다녔지만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데요, 라며 말하고 싶었지만 염라의 눈초리도 있고 금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 하고 답했다.
“뭐 여기 있는 놈들이 워낙 짬밥 좀 생겼다고 일을 가리고 있네. 중요한 일이긴 한데 어려운 일은 아니야. 그쪽… 아,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
“아, 한금비라고 합니다!”
군기가 바짝 든 것처럼 금비가 힘차게 말하자 신부는 끌끌 거리며 마음에 드는 듯 그녀에게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그럼 금비 양, 자네에게 이걸 퇴마 시험으로 해보겠네. 염라, 자네가 따라가서 지도해 주고. 평가는 그쪽에서 들을 거니까 자네는 혹여나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 주기만 하면 되네. 절대 퇴마 행위는 하지 말고. 자네 근신 중이야!”
자꾸 근신을 언급하며 염라의 행동을 제약하자 염라는 알겠다며, 여러 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기대하겠네.”
금비는 서류를 꾹 쥐더니 전의가 불타는 표정으로 신부를 바라보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꼭, 꼭 잘 해볼게요!”